잡기

임베디드 팡타그뤼엘

paedros 2003. 9. 24. 02:00
나의 병은 관계기피증 -- 크리시 중 어떤 대사: 언제나 문제가 있었지. 언제나 여자와, 문제가 있었지. 여러 여자분들께서 내 관계기피증을 '확립'해 주셨다. 불가에서는 인연을 끊어야 해탈한다고 수천년 째... 저러고 있다. 한곡 땡길까? Esperanto, Last Tango, Last Tango

'올드 스쿨' 올해 최악의 영화,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봤다. '맛있는 섹스'는... 시간낭비였다. '2fast and 2furious'는... 오래전에 눈알을 반짝이면서 fast and furious에 나오는 차들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차와 운전기술은 단순히 멋졌다. 그뿐이다. Nissan Skyline GT-R


처음에는 많이 웃고 아이같은 말을 하다가 점점 강아지 같아 지면서 나중에는 촛점을 잃은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하던 안 하던 처신이 그닥 다르지 않다고들 하지만 해석이 안되고 학습한 적이 없는 여러 종류의 외국어가 마치 한국어처럼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체험, 그것이 대뇌를 오염시켜 대량의 시냅스를 차단하면서 피질 하부의 뇌에 전해지는 자극을 피층에서 거르지 않기 때문에(사실은 그 역이지만) 상대의 마음이 해석과 여과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대뇌피질의 기능 부전이 보다 원시적인 뇌의 하부구조를 상대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서 짐승 내지는 파충류의 본성을 드러내 보이게 하는데, 놀라웁게도 그 짐승에게서 비정함이나 적개심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 내적으로는 사물의 정합성이랄까, 논리적으로 세상이 맞아 떨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풍부한 감각의 세례를 받는듯한 기분이 들었지만(감각차단이 주는 아이러니컬한 풍부함).

깨고나면 (엿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쿼런틴의 마지막 글귀처럼.
마약? 나노드럭 얘기 중. 닐 스티븐슨의 다이아몬드 시대가 곧 나온다길래.

델과 HP는 갑자기 TV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유야 뻔했다. 새로운 os가 수요를 창출하리라 믿었지만 두 차례나 기대가 박살났다. 시급히 돈벌이에 집착해야 하는데... 앞으로 PC로 장사해 먹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래, 유비퀴토스 티브이다. 나 멋졌어? 이러고 있을 것 같다. 유비퀴터스에도 디스플레이와 입력장치가 필요하다. 아... 키보드에 무선을 달고 화장실에 앉아 전면 거울에 떠오른 집안의 모든 기기들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것? 시시한걸. 아니면 자이로스코프를 단 TV 리모컨을 이용해 화면에서 커서를 움직이며 쑤신 팔에 짜증을 내던가? 방 구석 구석에 달려있는 동작감지센서들이 나를 지켜봐 주고 있을까? 외롭지 않게? 충실한 자바 지니처럼? 슬쩍 지나가기만 해도 유령집의 폴터가이스트처럼 장농이 제멋대로 열린다던가 불이 켜진다던가... 그래! 하나도 외롭지 않겠어! 니르바나의 주인공처럼 지랄하는 엘리베이터에 이렇게 한마디 해줄 수 있겠지. 닥쳐! 아니면, 꺼져! (be off!) 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등장하는 빌어먹을 인공지능 엘리베이터(우울한 엘리베이터?)에 농락당하면서 망연자실해지던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u-computing이란 조어가 일상화되기 전, 그러니까 소박하게 mcu니 avr이니 하는 것들로 불리던 작은 기계들이 있었고 지금도 하다 못해 냉장고나 TV, 전기밥통, 보일러 등에서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임베디드는 모르겠지만 유비퀴터스는 통신을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했다. 따라서 외롭게 돌아가던 밥통과 세탁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요청을 받아들이고 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밥통에 관해 말하고 싶은 '전부'는 입 다물고 밥이나 잘해 정도. 톨게이트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과금되는 시스템은 위험스러워 보였다. 유비쿼터스는 도심 거리를 꽤 짜증나는 것으로 만들 것 같다.

그렉 이건의 '리얼리즘 사이버펑크'는 확실히 그런 면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그의 피부 열전통(skin to skin infrared communication)은 근접 거리에서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도 명함카드의 교환을 없앴고 보안 통신의 신기하고 재밌는 양상을 보여줬다. 게다가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전력선 통신은 홈 네트웍에서 별도 배선의 필요성을 없애줄지도 모른다. 푸른 수염이 장미빛 미래를 보여줬을 때, 주변의 아무도 블루투스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펙은 지저분했고 대체 왜 그렇게 지저분하고 라이센스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딜버트식으로 말해 비즈니스 세계는 세상의 우수한 또라이, 최고급 멍청이들, 최최고급 바보 기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전념하는 삽질을 통칭하는 일반 명사기 때문에?

무선은 대세가 되겠지만 즐비한 무선에 오염되는 인간은? 거리에서 마저 난입하는 무선 스팸이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을 달가워할까? 반무선주의, 반편재 노선이 출현할지도. 무선클린지대나, 안티커넥션리스트같은. 난 '연결'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연결만큼은 선택하고 싶다. 불가에서는 '커넥션'을 끊어야 해탈한다고 수천년 째 저러고 있다.(어찌된 일인지 르네상스 이후 자유의지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처럼 취급되었다. 그것이 없던 시대에 살지 못해서 어떤 기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디즈니 만화부터 재미는 없고 한예술 한다고 우기는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떠벌린다. 하여튼, 휴양림 한복판에서 말을 걸어오는 빌어먹을 나무 따위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 어떤 나쁜 새끼가 내 임베디드 언더웨어에 채널을 맞추고 사정을 유도하는 개같은 광고를 보내는 걸 감내할 자신은 없다. 다 때려치우고 태양전지가 왕창 매달려있는 쓸쓸한 시골집에 머물러 백과사전이나 뒤적일까. 22세기 걱정은 그만하고.

나노테크=코스메틱스의 혁명. 나노테크는 산업계 하드웨어보다 진.선.미, 그것들을 몽땅 합친 '절대미'에 도전하는 여성 수요가 강력한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노포그가 정강이 털을 뽑아주고, 옆구리의 지방을 쪽쪽 빨아 분해하거나, 보톡스하고는 쨉이 안되는 믿음직한 성능으로 눈가위의 이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테니까.

다시 영화 니르바나로(사실 20세기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리얼리즘 사이버펑크'는 이 영화 밖에 없다), 끊임없이 옷 색깔이 바뀌는, 유비퀴토스 나노통신을 통해(일곱단계만 엮으면(커넥션) 인류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기괴한 이론도 있지만 그때 통신은 돈이 드는 장거리 직접 '인연'이 아닌 근거리 연속 체인을 통한 통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번은 팝아트 키취스러운 밀라노 패션이었다가 한번은 올 가을 도꾜 패션쇼에서 등장한 똥걸레 패션 따위로 옷가지를 바꿔준다. 나노포그면 사실 옷이란 것들이 필요없다. 피부, 그리고 포근한 나노포그. 이 정도면 족하니깐. 드렉슬러는 몽상가였고 그의 몽상은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나노포그는 화장빨이란 말을 없애고 나노빨이란 신조어로 대체될 지도 모르겠다. 나노포그는 물속에서 숨을 쉬게 해주고 벽 너머를 보게 해줄 수도 있다. 2300년쯤 되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부처와 예수를 비롯한 몇몇 성인들만 독점적으로 나노테크 후광을 달고 다녔지만 나노포그는 23세기 인류의 아우라가 된 채, 나노머신이 유전자를 후벼판 덕택에 성경 묘사 그대로 하늘에 물이 있던 시절처럼 모두 300살까지 장수할 것이다.

오래 살다보면 인류가 하느님만큼 타락해서 별에별 짓을 다 하겠지만. 그때 인류가 사지가 멀쩡하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뉴 에덴에 상주하는 사지타리우스와 인쿠부스 등등. <-- 황금 꽃가지가 빠졌군. 시들해진 인류는 외계인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외계인을 어느날 '발견'하고 환호작약할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후줄그레한 인종문제 따위는 쨉도 되지 않을 것이다. 코스메틱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닐 스티븐슨의 물질변환기(머티리얼 컴파일러)는 인류 전체를 살아서 숨도 쉬는 바로크, 여백을 두려워하는 괴물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두통이 사라지고 제정신이 들었지만, 원치도 않는 '인연'을 주구장창 엮어주시는 유비퀴토스 때문에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가 맛본 환희 같은 것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관계기피증? 그저 엿이나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