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비자

paedros 2005. 3. 10. 22:54
아내가 비자를 만들어 왔다. 비자를 발급받고 나니 여권에 더 기록할 페이지가 없다. 2001년에 만든 여권이니 그동안 많이도 울궈 먹었다. 이번 미얀마 비자는 희안하게도 여권에 붙은 비자 스티커와는 별도로 석 장의 서류를 미리 작성하고 공항에 도착해 그 중 두 장을 제시해야 한다.

대마초의 법적인 허용이라... 글쎄다.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신해철, 전인권 등과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이를테면 노래를 업으로 삼는 행운을 누리지 못해 삽질이나 하는 팀원들이 평소 즐겨하던 그 재밌는 일은 안 하고 사무실 구석에 벌러덩 누워 대마초를 빨면서 세상은 좋은 것이야 하고 헬렐레 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상상을 했다. 옛날 마약의 폐해를 경고하던 '공익'광고와 내 머리속에서 떠오른 영상이 그렇게나 똑 같았다. 왠 미친놈이 거리에 자빠져 눈이 뒤집힌 채 헤헤 거리고 있는 광고의 한 장면. 게시물을 읽다보니 어떤 친구가 이렇게 적어 놓았던 것 같다. '사강이 말하길,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왜 그것을 공권력으로 막으려 하는가?' 좋은 말이다.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다 해봐라. 나중에는 쪽팔려서 못하니까. 그나저나 자식이 그런 말을 하면 안타까워 할 부모가 한둘 쯤은 있을 것 같다. 피워보면 알게 되겠지. 법적 제제가 풀려 마음껏 대마초를 피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이후가 몹시 궁금하다. 대마초를 좋아했고 기회만 주어지면 피워댔지만, 안 피울꺼다... 라고는 못하겠고... 법이 풀어줘도 거의 안 피울 것이다.

전인권은 대마초 빨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된다. 그림도 되고 글도 된다. 그런데 운전이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나 프로그래밍은 잘 안될 것 같다. 아참, 내 경우에는 대마초 피우니까 발기가 잘 안 되었다. 그저 세상이 웃기고 즐겁고 재밌었다. 그래서 생각컨대, 정서적 파탄의 시기에 대마초가 술, 담배, 맛있는 음식, 사랑의 손길, 심지어 친구의 진심어린 충고보다 백 배쯤 효과적일 꺼라고 나름대로 평가한다. 대마초를 피우는 내 모습을 바퀴벌레 쳐다보듯 하는 한국인을 향해서도 환하게 웃어줄 수 있다. 그렇게 좋다.

CVS를 갈아엎고 subversion을 쓸까 하다가도 벌써 수개월째 망설이기만 했다. 하필 툭하면 깨져서 인상이 매우 안 좋은 버클리DB를 사용할 줄이야... 좀 더 지켜보고. CVS 특히 *닉스 버전의 CVS는 여러가지 괴롭고 신경 쓰이는 문제들이 많았다. CVSNT를 사용하다가 보안 때문에 리눅스에 CVS를 설치해서 쓴 이후로 잡다하고 귀찮은 일꺼리들이 늘어났다. 학교의 네트웍에 서버가 물려있다보니 러시아, 필리핀, 우크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어떻게든 비비고 들어오려는 녀석들이 하루에 너댓명씩은 되었다. NT가 인트루더에 대해 특별히 로그를 남기는 것도 아니고 오디팅 기능이 미흡해서 그동안 NT 서버를 쓰면서 해킹 시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NT를 없애고 서버군을 모두 리눅스로 갈아치웠다. 와우 대신 페도라를 설치하고 SE모드를 사용하고 ssh를 비표준 포트로 사용하니 아예 시도 자체가 블로킹 되어 갑자기 서버가 잠잠해졌다. 지금은 열악한 모뎀으로 매일 꾸준히 방문해 주셨던 필리핀 해커가 그리울 지경이다. 제작년에 17만원 주고 산 서버는 사망하셨다. 리눅스를 설치했던 그 서버는 자기가 맛이 가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주셨다. NT였다면 아무 말 없이 픽 죽어버렸을 상황이었다.

도서관에서 점심 먹고 잡지를 읽다 왔다.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은 여섯권, 건질만한 책은 한 권도 없었고, 진도가 매우 느린데, 중간에 묵향을 19권까지 읽고 다큐멘터리를 30여편 가까이 보고 시리즈물도 꽤 많이 봤고(스타트랙, 커넥션, 리제네시스, 배틀스타 갤럭티카, 밀레니엄, 사이언스21, 바빌론5 따위), 7-80권씩 하는 만화책을 서넛 보고 매일 12시간씩 일하니까 책(단일 주제를 가진 단행본이 더 정확하겠지) 읽을 시간이 많이 줄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미디어물이나 시리즈물, 만화책 따위에 각각 책과 등가한 점수제를 도입해 책 읽은 갯수를 늘릴까 하다가 왠지 쩨쩨하고 야비해 보여서 관뒀다. 그동안 그것들은 카운트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 폄하한다기 보다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매년 미디어물에 대한 비중이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3개월 동안 영화와 미디어물을 합쳐 적어도 400시간 이상 보았고 하루에 2-300kb 분량의 텍스트를 본다. 이동 중에 간신히 책을 읽는 정도다. 일과 여가 활용이 그 모양이다보니 산에 올라가서 근육이 당겨 헉헉 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저번 산행은 생각할수록 당혹스러웠다. 세 시간 동안 쉬지않고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체력이 그렇게나 바닥이 났을 줄이야... 어쨌든, 그렇다고 그렇게 본 것들이 소화가 잘 될까? 대다수 영상물은 하향평준화 되다 보니 중언부언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탓에 밀도가 낮고 단위 시간당 흡수율이 떨어졌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일정 정도 이상의 품질을 찾기 힘들다. 이유야 뭐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인문사회학에 대한 강한 거부감 탓인데, 요즘은 서점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더라도 기술서, 실용서 따위만 보고 인문 서가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점에서 한두권씩 읽은 책들은 읽은 책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 올해 관심있게 본 책들은 건축, 환기 시스템, 항공, 위성통신, PIC, AVF, FPGA에 관한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