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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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edros 2005. 3. 26. 11:58
사람이 꽤 많이 참석해서 번잡할 것이 뻔한 sf 모임에는 가지 않았다.

저작권법 이외의 대안이 있는가 하는 얘기를 듣고 보니, 코리 닥터로우가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한 SF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군. 인간 활동의 동기 부여를 화폐에 대한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욕망에서 집단내 순위를 유지하려는 원숭이 수준으로 떨구어 놓은 소설이었다. 비아냥 아니고 칭찬이다. 그 소설에서 나처럼 국가경쟁력 향상에 묵묵히 음지에서 삽질하는 '산업역군'은 최하층 쓰레기였다.

저작권은 '거래'가 된다. 그 거래는 저작자가 원할 수도 있고 저작을 원하는 다른 사람이 원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파악한 21세기 저작권법의 본질은 그 거래의 신뢰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에 워낙 냉소적이고 순 욕설만 늘어놓아서 내 얘길 들어주는 사람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는 정치적 올바름이 왜 한심한 사고방식인지, 저작권법이 왜 악법인지 블로그 들락거리는 사람에게 조리있게 설명하는 사이트도 아니고 앞으로 그럴 생각도 없다. 거래의 주체는 아까 말한 대로, 저작권자 뿐만 아니라 개나 소나 다 된다 이다. 자본주의 체계 이외의 대안이 없다면(예술의 여러 동기부여 중 자산증식을 통한 행복의 고취도 무시 못할 수준이라고 하더라. 미소 지었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 거래가 되는 것들에 관한 논쟁은 일정 수준의 암묵적 합의가 필요한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았다. 예도 필요할까? 개인적으로 저작권 때문에 슬픈 추억이 많다. 슬프다기 보다는 배고픈 기억이다. 이를테면 회사와 거래할때 내가 소스를 GPL하에 두고 싶다고 철딱서니 없이 밝히면 업체에서는 거의 실시간 내지는 자동적으로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파블로프의 침흘리는 개를 연상하면 딱이다), 계속 고집을 부리면 댓가를 치뤄야 했다 --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평소 철학'은 그만 논하고, 가치를 발견하면 침을 흘리는 자와 거래한다. 거래된 '품목'이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 한, 그 침흘리는 자는 '나'라는 원저작자와 상관없이 댓가를 치른 후 권리를 양도 받고 다른 침흘리는 자와 거래 한다. 그 다른 자는 또 다른 침흘리는 자와 거래한다. 표현이 매우 컬러풀하나, 머리속에 별다른 예가 떠오르지 않는다. 저작권이나 특허권이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침 흘릴 가치가 있는 소중한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는, 피터 드러커가 수 권의 저작을 통해(어쩌다 보니 수 년에 걸쳐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그렇게나 입에 침이 마르게 주구장창 강조하는 '지식노동자'다. 게다가 그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거의 모범답안에 가까운 지식노동자였다. 나같은 사람에게 아이디어는 판매할 시장에서 쳐주는 값비싼 상품이 아닌 그저그런 '근로 생활'이다. 난 직간접적으로 많은 특허를 만들었고 한 달에 보통 2-3개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적용한다. 그리고 그 근로 활동을 일당 7만원 받고 잡일하는 잡부와 동등하다고 여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7만원 보다 더 주고 싶어 하는데 '나의 평소 세계관과 철학'을 논하며 말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근로 활동이 나로서는 한 십년 해 봐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포크레인 삽질(해 봤다. 어렵다)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경영학계의 다시없을 위대한 석학을 비롯한 모든 침흘리는 자들이 주장하면서(물론 드러커가 주장하는 것은 전이와 트랜드를 말하는 것이지 이런 식의 논리는 아니었다. 드러커는 언제나 지식산업 이외의 것을 다소 낮게 평가했고 테일러식 관찰과 학습에 따라 언제든지 쉽게 재현, 대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30년 동안 구두를 꿰메다가 도통한 사람이라든지 위폐를 가려내는 전문가나 병아리 감별사, 난자에 체세포 핵을 솜씨좋게 집어넣는 한국인들, bga를 납땜인두로 귀신같이 붙이는 사람들이었다. 드러커는 그런 사람들과 옆집에 살아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음... 노동과 기술, 예술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그의 편견에 대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길어지므로 다음에 기억나는 대로 할 말을 정리해 둬야겠다) 급여를 올려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나. 저작권이 자원,자본,지식,으로 이어지는 서구의 자산 이동의 핵심이고 더 이상 울궈먹을 것이 없어진 나머지 그것을 고도화하여 비좁은 지표상에서 이루어지는 제로섬 게임에서 일시적인 자원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서구의 나머지 세계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인류공영을 위해, 모두가 이익인 제도라는 헛소리에 맞장구를 쳐줘야 함을 그렇게 쌀 떨어지는 생활감각으로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타임 선정 20세기 최고의 서적 100권

Ⅰ. 문학

1. D.H.로렌스/ 아들과 연인/ 1913
2. 루쉰/ 아큐정전/ 1921
3. 엘리엇/ 황무지/ 1922
4.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5. 토마스 만/ 마의 산/ 1924
6. 카프카/ 심판/ 1925(?)
7.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27
8.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1927
9.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 1929
10.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
11.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1932
12. 앙드레 말로/ 인간조건/ 1933
13.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14. 리처드 라이트/ 토박이/ 1940
15.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1941
16. 카뮈/ 이방인/ 1942
17. 조지 오웰/ 1984/ 1948
18.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1952
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1955
20.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1956
21.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22.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1957
23. 치누아 아체베/ 무너져내린다/ 1958
24.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59
25. 조지프 헬러/ 캐치 22/ 1961
26.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962
27.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1967
28.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980
2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30.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1989

II.인문

1.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1900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강의/ 1916
3.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20
4. 라다크리슈난/ 인도철학사/ 1923~27
5. 지외르지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23
6.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
7. 펑유란/ 중국철학사/ 1930
8.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1931~64
9. 마오쩌둥/ 모순론/ 1937
1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41
11. 장 폴 사릍르/ 존재와 무/ 1943
12.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5
13.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1947
14. 시몬 드 보봐르/ 제2의 성/ 1949
15.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951
1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953
17. 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1957
18. 에드워드 헬렛 카/ 역사란 무엇인가/ 1961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1962
20.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1962
21.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1964
22. 미셸 푸코/ 마과 사물/ 1966
23. 노엄 촘스키/ 언어와 정신/ 1968
24. 베르터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1969
25.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앙티오이디푸스/ 1972
26.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1976
27.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1978
28.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979
29.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1979
30. 위르겐 하버마스/ 소통행위이론/ 1981

III. 사회

1. 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1902
2.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 1911
3.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1926~37
4. 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1932
5. 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이자.화폐 일반이론/ 1936
6. 윌리엄 베버리지/ 사회보험과 관련 사업/ 1942
7. 앙리 조르주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1947
8. 앨프리드 킨지/ 남성의 성행위/ 1948
9. 데이비드 리스먼/ 고독한 군중/ 1950
10.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1950
11. 존 갤브레이스/ 미국의 자본주의/ 1951
12. 대니얼 벨/ 이데올로기의 종언/ 1960
13. 에드워드 톰슨/ 영국노동계급의형성/ 1964
14.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1964
15. 마셜 맥루헌/ 미디어의 이해/ 1964
16. 케이트 밀레트/ 성의 정치학/ 1970
17. 존 롤스/ 정의론/ 1971
18. 이매뉴얼 위러스틴/ 세계체제론/ 1976
19.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1980
20.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1987

IV.과학

1.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대성원리/ 1918
2. 노버트 비너/ 사이버네틱스/ 1948
3. 조지프 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 1954
4.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1962
5. 제임스 워트슨/ 유전자의 분자생물학/ 1965
6.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1978
7.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1980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1980
9. 이리야 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0.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1988

V.예술,기타

1. 헬렌 켈러/ 헬렌 케러 자서전/ 1903
2.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1926
3.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 1927~29
4. 에드거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1937
5.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940~50
6.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1947
7. 에른스트 한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948
8. 말콤 엑스/ 말콤 엑스의 자서전/ 1966
9.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1975
10.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긴 여정/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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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책이 있고... 왜 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도 있고... 목록 자체가 21세기 하고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인 것 같다. 컨템포러리 마스터피스 쪽은 거의 전멸이랄까? 다른 말로 하면 목록 작성한 이들이 살 날 얼마 안 남아 좋았던 옛날을 추억하는 노인네들이지 싶다. 쳇. 몇 권 읽은 책이 없어 목록에 굳이 트집을 잡았다. 저것들 중 49권 읽었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나머지 51권은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