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go fishing

paedros 2006. 10. 5. 21:54
피곤에 지쳐 맛이 간 윤과장이 뜬금없이 산에 가자고 말한다. 산에는 왜? 머리 식히러. 안 가. 라고 말했더니 이상한 얘기를 해 준다. 15년전, 인삼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여기저기에 인삼밭이 늘어났는데 들새, 산새들이 농부들이 심어놓은 인삼 열매를 따먹고 훨훨 날아다니다가 무심히 배설물을 산자락 여기저기 떨구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한반도의 여러 산에는 그때 뿌리를 내린 인삼이 산삼이 되어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며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단다. 특히 10~20년 근이 많다나?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주말마다 뒷산에 올랐는데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산에 오르자!

정말 할 일 없고 심심한 주말에는 옥상에 올라가 주저앉아 망원경으로 산자락을 살폈다. 수상쩍게 혼자 올라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오줌을 눗는 아저씨들이 자세히도 보인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소방헬기가 능선을 빙글빙글 돌았다. 누군가 떨어지거나 다치거나 한 것이다. 인구 천만이 넘는 도심 바로 외곽에 이런 암궤로 가득한 험한 산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휘적휘적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져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이 매 주말 어김없이 나와 이제는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는 점이 놀랍다. 한번은 나도 핸즈프리 이어폰을 꽂고 한가하게 전화를 걸어 통화하며 암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거진 수직벽을 기어올라간 적도 있었다. 핸즈프리는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으아아악 하는 현장감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진의 1:x-1 = x:1 지점에 있는 우리 집 옥상에서는 이곳이 정면이다. 나중에 gps로 찍어둬야겠군. 인간의 감각은 믿을게 못되니까.

vmware에 ubuntu server 버전을 시험삼아 설치했다. 그동안 페도라 코어를 사용했는데 워낙 떡대가 크고 무거워서 여러 모로 좀 부담스러웠다. 우분투 홈페이지에는 우분투가 아프리카어로 i am what i am because of who we are. 라는, 천진하면서 철학적인 해석을 달아 놓았다. 다큐먼테이션이 잘되어 있고 작고 가벼워 설치는 놀랍도록 쉽게 끝났다. 왜 진작 우분투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컨셉도 마음에 들고 원래 os가 이래야지 싶은 생각도 들고. 시간 나는 대로 서버를 모두 우분투로 교체해야겠다.

그리고 누가 뭔가가 좋다고 충고하면 게으름 피우지 말고 새겨 듣고 실천하자.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 책을 자주 읽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빌린 코엘료의 '악마와 미스 프랭', '피에트르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었다. 하도 많이 빌려서 책장이 너덜너덜하고 온 사방에 낙서 투성이인 그야말로 아낌없이 공분을 쏟아붓게 만드는 걸레가 다 된 책인데, 빌리려고 마음먹은지 1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서가에서 발견하고 빌린 것이다.


'공주가 개구리에게 키스해서 개구리가 멋진 왕자로 변하는 것은 동화 속 얘기일 뿐이야. 현실에서는 공주가 키스하는 순간 왕자는 개구리로 변해버리고 말아.' -- 그렇기도 하고, 키스하자 마자 개구리로 변한 공주도 꽤 여럿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래서 개구리를 함부로 잡으면 징역 2년 이하,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법이 그렇다.


날씨는 맑다 흐렸다 개떡같았다. 전날 천안에 도착해서 정말 열심히 땀흘려 일하다가 하룻밤 사장님 댁에서 신세지고 아침 일찍 작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장고(장구?)항으로 갔다. 거래처 사람들을 포함해 이번에는 열 다섯명의 인원이 배를 빌려 우럭 낚시를 간다. 회사에서 '협찬' 받으려 로비하느라 며칠 애먹었다. 15인용 낚싯배는 50만원을 들여 빌렸고 타래와 미꾸라지 미끼, 기타 음식들을 구입하려고 두당 3만원씩 추가로 걷었다. 날로 먹었어야 하는데, 재정적인 면에서는 실패한 셈.

쌀쌀한 날씨 속에서 배가 출항했다. 파도가 일어 다소 배가 흔들렸다. 처음 하는 친구들이 많아 전날 모두 키미테를 붙여오라고 일렀다. 키미테의 겉딱지를 자세히 읽어보니 '원리'가 적혀 있다. 평형기관인 귓속의 세반고리관의 수용기를 마비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배에 오르자마자 키미테를 떼었다. 생각해보니 여행할 때 거친 파도의 가랑잎처럼 운행하는 쪽배를 많이 타봐서인지 배멀미를 한 적이 없다.

어군탐지기의 도움을 받아 낚싯줄을 내렸지만 오전 내내 수확이 신통치 않다. 우럭은 대략 15-20m 되는 바닷속에서 서식하는 것 같다. 추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오면 줄을 약간 당겨 바닥에서 띄운 채 줄을 슬슬 당기거나 밀어 미끼로 쓰는 미꾸라지들이 먹음직스럽게 오르락내리락 흔들리게 하면 되는데, 줄을 당기는 느낌이 나면 좀 더 흔들었다가 잡아당기면 된다. 잡아당길 때는 약간의 중량감만 느낄 뿐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 20미터 깊이에서 갑작스럽게 끌어올려지는 우럭은 기압차에 의해 기절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기분, 어떤지 알 것 같다.

배에서 하는 우럭낚시는 처음 해 보는 사람도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우럭낚시질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열 명쯤. 그래도 무난히들 꾸준히 낚는다. 열다섯명이서 두당 평균 다섯마리 정도를 잡았다. 한 친구는 배멀미로 고생했다. 그는 흔들리는 뱃전에서 쉴새없이 토악질을 하다가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토사물에서 아침에 먹은 초콜렛 우유맛이 난다고 주장했다. 신선했다.

쭈구미, 낙지 따위들이 줄을 타고 기어 올라와 소주 댓병에 바로 토막내서 먹어 치웠다. 빨판이 혓바닥과 입천정에 달라붙어 꿈틀거렸다. 생물의 쫄깃한 감촉이 몹시 입맛을 당긴다.

해가 떠올라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낚시질은 제끼고 본격적으로 회를 뜨기 시작했다. 씨알이 예년보다 작아 우럭 한 마리를 두껍게 회를 치면 예닐곱 점 밖에 안 나왔지만 접시에 담자마자 이 손 저 손 사이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12시가 조금 넘어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잡은 고기는 얼추 60마리를 넘겼고, 그 중 20마리를 회떠먹고 남은 찌꺼지로 매운탕을 끓였다. 식욕들이 왕성해서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오후에는 영 입질이 없었다.

그래도 40여마리가 남아 오후 4시쯤 파장하면서 뭍으로 올라와 인근 횟집을 잡아 남은 우럭을 회쳐달라고 하고 그것으로 저녁을 때웠다. 하루종일 회와 매운탕을 배불리 먹어서인지 소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니 밤 열한시가 넘었다.


첫 수확. 우럭들의 멋진 드롭킥.


예상보다 조류가 거세 수확이 적었다. 평균 두당 열 마리는 잡아야 하는데...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낚는 신공을 펼치려 했으나 갈매기들이 배가 덜 고팠는지, 영악해진건지 쉽게 달려들지 않는다.


회치면서 야금야금 술잔을 비우던 두 과장님께서는 과음으로 일찌감치 뻗었다. 다들 낚시질에 정신이 팔려 회칠 사람이 없어서 잠시 즐거운 주사는 소강상태. 아, 흔들리는 뱃전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 한 잔 목구멍에 털어놓고 두껍고 쫄깃쫄깃한 우럭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게 정말 끝내준다.


삼치를 잡고 기뻐하는 젊은이. 나는 다섯 마리를 잡았다. 한 마리도 못 잡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주로 장갑이나 옷가지 등을 낚아 OTL하고 말았다.


낚시질 끝. 장어 한 마리, 장대 다섯 마리를 포함, 대략 40여마리쯤 남은 고기들. 장대는 횟감으로는 먹을 수가 없어 저녁으로 먹은 매운탕에 퐁당. 면밀히 계산해 본 결과 15명이 80여만원을 들여 간 이번 낚시는 손해는 안 났지만 거의 본전치기라서 입맛을 다셨다. 다음 번에는 괜찮은 낚싯배가 걸리길 기대해본다. 집으로 돌아갈 때 우럭 서너 마리쯤은 손에 쥐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 독기와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고 노련하며 경험도 댓따 많은 프로페셔널 중견간부들의 강력한 주장 대로 '회나 먹고 하루종일 즐겁게 놀면 장땡이지 워크샵은 무슨 워크샵' 이란 주제로 회사 가을 워크샵을 약간 아쉬운듯이 마감했다.

분실 휴대폰 주워 갖다 주면 2만원 준다던 우체국은 5천원짜리 상품권을 보내주셨다. 화이트보드에 간단한 문제를 휘갈겨 썼다. 사원들에게 알고리즘 문제를 내주고 제한 시간 30분 동안 코딩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코딩에 상품권을 건다고 말했다. 별반 독창성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빨리 프로그램을 짜서 버그 없이 실행한 친구에게 상품권을 줬다. 문제에 관해 너무나 많은 철학적 의문을 품었던 5년차 프로그래머를 제치고 회사에 마지막으로 입사한 막내가 상품권을 챙겼다.

가끔 머리도 식힐 겸 이런 이벤트를 자주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았다. 다음 문제는 뭐가 좋을까? 옛날에 어린 친구에게 스트링 검색 문제를 냈더니 누쓰의 책에서나 구경하던 알고리즘을 입도 안 닦고 짠 녀석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뭘 짰는지 모른다. 자기가 뭘 짜는지도 모르면서 래딕스 소팅이나 더블 해싱 알고리즘을 밥먹듯이 구현하는 친구였다. 확실히 이 바닥이 재밌고 요지경인 것은 상상력이 번뜩이는 어린 고수들 때문이다. 그 녀석은 그런 천재적인 머리로도 여자 문제는 마땅한 알고리즘이 없어 골치를 썩이더니 결국 3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갑자기 어학연수를 가버리더니 연락을 끊었다.

그런 친구들은 용을 써도 60마리씩 낚이지 않는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는 어부에게~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사랑의 예수님이 부르셨다네~

-- 어린 시절 사탕 챙기러 종종 가던 교회에서 들은 찬송가.

'사랑밖에 모르는 과장님'도 애타게 부르는데 좀 낚여줘야 예의가 아닐까?
응?
낚여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