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mistletoe

paedros 2011. 1. 24. 22:52
크리스마스 전후해서 필드 데모가 시작되어 송년회고 뭐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이럴텐데... 연말연초인데 겨우살이 아래 지옥 문 앞에서 일과 키스한 기분.

24일 밤 공짜표로 아이 데리고 뮤지컬 애니 관람. 25일에는 공원, 26일에는 경기도 박물관에 놀러갔다.

2011-01-01. 광교산 백운봉을 지나다가 뒤돌아서서... 신년산행 인파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적을 것 같은 길을 찾았다. 효행공원에서 출발, 백운봉을 거쳐, 하오고개를 넘어 청계산에 갔다가 내려온다는...

저 멀리 청계산이 보인다. 날씨가 별로 안 춥다. 오히려 땀이 뻘뻘 날 지경이라 외투를 벗었다. 언더레이어 한 장 입고 그 위에 폴라폴리스 셔츠를 걸친 상태로 산행. 물론 이러다 멈추면 저체온증으로 바로 골로 갈 수 있다. 라면을 끓여먹으며 잠깐 쉬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백운호수.

아직 하오 고개에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청계산에 오르기엔 너무 늦은 시각. 15:10

그냥 옥수수 스프나 끓여먹고 돌아가기로. 눈밭에 털썩 주저앉아 보온병의 뜨거운 물에 스프를 녹여 호호 불다가 후루룩 마셨다.

개울은 얼어붙었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렸다. 돌을 들추면 개구리 몇 마리쯤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어렸을 적에 떼로 산을 돌아다니며 토끼 잡던 생각이 난다. 토끼 고기는 구워 먹던 끓여먹던 맛이 없었다. 질기고 냄새 나서 뛰어다니며 잡은 보람을 못 느꼈다. 그래서 토끼에 대한 인상이 별로 안 좋다.

왜고리(왜가리?) 눈썰매장. 이런 걸 뭣하러 찍었지? 논에 물대서 얼린 것. 강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요즘 날씨는 따뜻한 편인데, 뉴스만 보면 춥다고 호들갑.

서남암문. 1월 2일 강추위가 시작되어 부러 아이를 데리고 화성에 놀러갔다. 눈이 적당히 있어 썰매를 태워줬다.

스테인리스 팬은 길들이기가 어렵고... 해서 스테이크 구울 땐 이 팬을 사용했다. 그릴에서 구운 자국도 그럴듯하게 생긴다. 요새 유행하는 다이아몬드 코팅 팬.

소금과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월계수 잎을 얹어 한 시간쯤 재웠다. 동네 정육점에서 구입한 손바닥 두 개 넓이의 한우 1등급 등심인데 고기가 별로 였다. 차라리 그보다 싼 호주산을 먹을 껄 그랬다.

대형 마트에 가면 싼 와인을 가끔 샀다. 와인 붐 덕택에 매대에 놓인 품종이 다양해 졌고, 와인 붐이 속절없이 꺼지면서 떨이로 판매되는 제품이 늘어 좋았다. 딱히 와인 매니아는 아닌데다 선호하는 제품도  없다. 맥주 마시자니 배 부르고, 혼자 소주 마시자니 한 병 따면 그걸 다 마시는게 부담스럽고, 와인이라면 저녁에 퇴근해 홀짝홀짝 한두 잔 마실 수 있어 별 부담이 안 되어 좋았다. 그나저나 와인과 궁합이 맞는 한국 음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와인과 삼겹살이 궁합이 좋다지만 소주와 삼겹살에 비할 수 있을까? 와인에는 그저 치즈와 스테이크, 몇 종류의 샐러드, 느끼한 파스타 류가 맞는 것 같다.

1월 3일부터 1월 5일까지 엄청난 속도로 프로그래밍을 했다. 1월 6일 테스트 러닝 성공.  저녁 무렵에 사장님과 통화하면서 일이 잘 되간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장님이 퇴근 중 뇌일혈로 쓰러지셨다. 직원들이 도로에 정차된 차에서 사장님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모셨다.

1월 7일 온사이트 일 좀 하다가 병원 방문. 중환자실 내방 시간을 넘겨 얼굴을 못 뵈었지만 별 걱정 안 했다. 1월 8일 아침 사장님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눈이 내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혈압이 다시 올라갔단다. 의식을 찾기만 하시면 된다.

사무실에서 일없이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때 사모님으로부터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원들과 함께 사장실을 뒤져 연락처를 챙겨 단체 문자를 보내고 당장 영정으로 쓸 사진을 뒤져서 찾았다. 담배를 연신 피웠다.

정신없이 삼일장을 치렀다. 대부분 알만한 거래처 사람들인 조문객들을 맞아 죽음을 매 번 설명했다. 월요일 아침 발인 전에 인사 드렸다. 울컥했다. 운구해서 화장장에 도착. 두 시간 동안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시고 나서야 슬픔과 함께 피로가 밀려왔다. 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간단히 대책회의를 하고 주주와 만날 회사측 대표자를 선임했다. 장례 기간 동안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할 말을 잃고, 집에 돌아와 누웠다.

일주일 동안 감기몸살로 고생했다. 그래도 일은 계속 했고, 밥을 꾸역꾸역 먹으며, 병이 낫길, 슬픔이 가시길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2011-01-16. 여전히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오늘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뉴스를 보고 집을 나왔다.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마실 가는 기분으로 명학역에서 내려 수리산에 올라갔다. 날이 추운 탓인지 등산객이 거의 없어 좋았다. 관모봉-태을봉-병풍바위-칼바위-슬기봉 아래. 머플러로 입을 가렸는데 입김이 금새 얼어붙었다. 캡을 잠깐 벗은 동안에는 머리카락이 얼었다. 등산 기록 두 개:

광교산: 21.08km, 3h02m, 6.9kmh
수리산: 13.65km, 1h37m, 8.4kmh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인데도 어떻게 평균 속도가 저렇게 나올 수 있을까? 조금 있으면 지나가는 토끼를 앞서갈 기세다. 작년에는 등산이나 자전거 주행을 별로 하지 않아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면 신년 들어 반쯤 미친 상태던가.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 그라운드 제로를 배경으로 오토바이 경주하러 터덜터덜 걸어가는 주인공. 버블로 시작해서 버블로 끝났다. 뭘 하자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잔인함?

여의도란 영화. 재미없고 무의미했다.

The Extraordinary Adventures of Adele Blanc Sec. 나는 이런 걸 왜 보고 있을까? 시간을 때워야 하니까.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하루히 시리즈는 뭘 봐도 재미가 없었다. 이유는, 음. 작화가 밥맛이라서?  보다 말고 더 안 봐도 될 것 같아 지워버릴까 몇 번 망설였다.

끝까지 봤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SF란다. 그건 아무래도 농담 같다. 책은 국내에도 번역된 댄 시먼즈의 히페리온. 한국판 표지가 모처럼 나쁘진 않았지만 일판하고 표지가 비교되었다.

Summer Wars. 스즈미야 하루히의 똥같은(평범한) 그림을 보다가 이걸  보고 안구정화 했다. 스토리야 뭐... 대충 아구만 맞으면 되지. 최근 들어 일본 드라마/애니에 뭔가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이끼. 만화책의 스타일리시한 그로데스크함은 다 어디로 가고... 200분 짜리 평범한 드라마/추리극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장 캐스팅은 영... 적응이 안된다. 설레설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재미있었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영화가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해되었다.

Expendables. 낯익은 액션 스타들이 대거 등장. 단순한 줄거리에 노구를 이끌고 액션을 '거행'했다.  사실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이 먹어 터미네이터 다시 보면 재밌을 것 같지만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록키나 퍼니셔도 재미가 없었다. 디어 헌터는 다시 봐도 재미 있었고 엔젤 하트나 이지라이더도 재미있었다 -- 감흥이 무뎌졌다기 보다는 자기 취향에 대한 견해가 뚜렷해진 것 뿐이다.

Big Bang Theory. S04E12. 빅뱅이론에서 이웃집 처녀를 통해 너드/기크와 일반인 간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것은 영 재미가 없지만, 카메라 들이대 수식을 인식하고 아마도 울프람 알파같은 엔진으로 해를 구해주는 앱을 작성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저거 만들면 정말 괜찮은 앱이 될꺼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요는 뭐... 그런데 저 앱은  화난 새대가리들로 돼지를 때려잡는 게임보다 쓸모있고 공공의 이익에 큰 기여를 하잖아? -_-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찌질 돋는 잉여물. 소 팔아서 여행이나 하려던 작자가 우여곡절을 겪는 홍상수 스런 이야기(홍상수 보단 궁상이 덜 하지만 오십보 백보 같다). 간혹 그림 좋은 배경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혹할 정도로 멋있지는 않았다. 절 이름이 '맙소사'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동선이 좀 오락가락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 대신에 돼지나 닭, 말을 데리고 돌아다녀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영화 같았다. 하지만 벚꽃 뜯어먹는 이 장면은 돼지로는 못해 먹겠지? 그러다가 감독이 뭔 생각이 있어서 소가 꽃 뜯어먹는 장면을 찍은게 아니라 소가 어쩌다 꽃을 뜯어먹는 장면을 찍은 것 같았다. 말하자면 돼지가 땅파서 뱀 잡아 먹는 광경이나 멧돼지와 고구마를 두고 다투는 장면을 의도한 연출로 찍을 것 같지 않았다.

부당거래. 검새와 짭새가 나와 누가 더 썩었나 자웅을 겨루는 영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그러게 말이다. 호의를 계속 퍼 줘서 그게 당연한 권리인 줄 알게 되는 '복지사회'를 만들어야지. 왕개미. 카메라 좋다.

부당거래. 핵심장면에는 맥주크림샤워. 오, 이렇게 술마시는 방법이 있었어! 감탄해서 뒤져보니 디겔러들이 벌써 따라 했고, 결론 냈다. 석 잔 정도 따를 수 있단다.

부당거래. 양아치 검새가 백 마디 쳐바르는 것 보다 류승완의 딱 이 각도가 딱 마음에 들었다. 이것하고 검새한테 끌려와 새벽까지 취조받고 검찰 빌딩을 터덜터덜 나오며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