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서울 생활 적응..
paedros
2003. 3. 5. 01:50
일주일이 넘었다. 여전히 한국에 있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여행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여행 얘기를 하는 것이 몹시 불편하게 여겨졌고 사람들이 내 여행에 관심을 두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고, 나는 지극히 파란만장한 변화를 체험했건만. 장기간의 여행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느끼게 된다는 몇 가지 전형적인 증상을 이런 저런 텍스트를 읽어 잘 알고 있었다. 내게는 부적응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서울과 한국에 일정 부분 떨어져 있었다는 낡고 유치한 거리감이 문제였다. 그 거리감은 평소에 여행자를 만나거나 현지인을 만날 때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mp3cdp에 mp3 cd가 한 장 들어 있었다. 10개월전과 마찬가지로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던 것이다. 어댑터를 찾아 충전하고 거리를 걷는 도중 음악을 들었다. 시간이 꽤 지난 관계로 iRiver의 사용법이 가물가물해 버튼을 잘못 눌러 suffle mode에서 흘러나온 곡은 outer limits였다. 곡이 다 끝나갈 무렵 가슴이 설레였다. 지금까지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이 정체모를 이질감이 마치 봄햇살에 녹아내리는 겨울 눈처럼 천천히 사라져갔다. 우스운 일이지만 한국 음식에도 별 정을 느끼지 못했고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평범한 일상을 얘기하는 동안에도 느끼지 못했던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을 음악을 통해 절절하게 느꼈다. 그 음악은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고, 누구나 들으면 지겨워하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여행하기 전, 그러니까 10개월 전을 떠올리게 한 것이 아니라... 4년 전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만화가게에 들러 책장을 넘겼다. 다른, 많은 변하지 않았던 것들처럼, 이것 조차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친근감이 든다든지...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원서로 읽었을 때와는 여러 모로 다른 느낌을 주었다. 젤라즈니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텔리 초인들의 비틀어진 조크가 어색하고 가엾어 보였다. 한동안은 중독자처럼 책을 그렇게 읽어댔지만 그래서 남는 것은 날렵하고 간사한 혓바닥 정도인데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자기 주장을 늘어놓을 일이 없으니까 머리통으로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지식이란 것이 한낱 쓰잘데없는 미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책은 계속 읽을 것이고... 그런 책들을 읽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사람들을 만나러 바깥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 박혀서 밥을 해 먹거나 영화를 다운 받아 보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삶이 이보다 더 간단해 질 수는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모든 사소한 일들에 신선함을 느끼던 감각과 감정이 지극히도 무디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 등등이 없다. 그냥 고독하다.
movable type으로 써보는 첫 일기 치고는 씁쓸하고 비관적인 듯. 멕시코의 작열하는 태양이 우울증을 날려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mp3cdp에 mp3 cd가 한 장 들어 있었다. 10개월전과 마찬가지로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던 것이다. 어댑터를 찾아 충전하고 거리를 걷는 도중 음악을 들었다. 시간이 꽤 지난 관계로 iRiver의 사용법이 가물가물해 버튼을 잘못 눌러 suffle mode에서 흘러나온 곡은 outer limits였다. 곡이 다 끝나갈 무렵 가슴이 설레였다. 지금까지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이 정체모를 이질감이 마치 봄햇살에 녹아내리는 겨울 눈처럼 천천히 사라져갔다. 우스운 일이지만 한국 음식에도 별 정을 느끼지 못했고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평범한 일상을 얘기하는 동안에도 느끼지 못했던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을 음악을 통해 절절하게 느꼈다. 그 음악은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고, 누구나 들으면 지겨워하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여행하기 전, 그러니까 10개월 전을 떠올리게 한 것이 아니라... 4년 전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만화가게에 들러 책장을 넘겼다. 다른, 많은 변하지 않았던 것들처럼, 이것 조차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친근감이 든다든지...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원서로 읽었을 때와는 여러 모로 다른 느낌을 주었다. 젤라즈니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텔리 초인들의 비틀어진 조크가 어색하고 가엾어 보였다. 한동안은 중독자처럼 책을 그렇게 읽어댔지만 그래서 남는 것은 날렵하고 간사한 혓바닥 정도인데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자기 주장을 늘어놓을 일이 없으니까 머리통으로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지식이란 것이 한낱 쓰잘데없는 미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책은 계속 읽을 것이고... 그런 책들을 읽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사람들을 만나러 바깥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 박혀서 밥을 해 먹거나 영화를 다운 받아 보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삶이 이보다 더 간단해 질 수는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모든 사소한 일들에 신선함을 느끼던 감각과 감정이 지극히도 무디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 등등이 없다. 그냥 고독하다.
movable type으로 써보는 첫 일기 치고는 씁쓸하고 비관적인 듯. 멕시코의 작열하는 태양이 우울증을 날려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