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났다. 닭들이 우짖는다. 미얀마 닭들은 마지막 여운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꼬끼요꼬끼요' 대신 '꼬끼요 꼭'하고 잘룩 울음허리를 끊었다. 낮에는 발음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베란다로 붉디 붉은 해가 떠올랐다. 해 뜨는 시각 5:30am, 해지는 시각 6:30pm.


2달러가 안되는 괜찮은 숙소의 아침.

주인 아줌마의 추천으로 옆집에 가서 '꼭이요 꼭' 아침 닭으로 국물을 우려낸 맛있는 샨족 스타일 국수나 먹을까 했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근처 찻집에 앉아 라파이를 시켜 한 잔 들이키고 뜨거운 차를 몇 잔 더 마셔 속을 풀었다. 입술이 하얗게 떠 있다. 숙소 주인장에게 기차 시간을 물으니 'nine thrity maybe'에 출발한다고 알려준다. '아마도 9시 30분'까지는 '최소한 한 시간'쯤 여유가 있어 동네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동네 정경. 오른쪽의 쓰레기만 빼고. 아침을 만들어 먹으려고 곳곳에서 피운 장작불 탓에 대기가 뿌옇다. 어쨌든 호빗족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같지 않을까 싶다. 오른쪽 쓰레기만 빼고.


잠에서 깬 사람들이 다운타운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샨 궁전에 갔으나 너무 이른 시각인지 문이 닫혀 있다. 그에게 샨족 역사에 관해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샨족은 아마도 중국 서북부에 사는 장족이 이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샨 궁전만 빼고 사실상 이 동네의 모든 '관광' 포인트를 어제 다 둘러본 것 같다. 트레킹이 있는데 소수민족 구경거리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는 주인장한테 온수 샤워는 필요없다고 떵떵거렸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쌀쌀하다. 공동 샤워장에서 슬그머니 온수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윽 차거. 태양열 축열로 쌓아놓은 온수는 어젯밤에 벌써 다 식었나 보다. 방값을 지불하고 체크아웃했다. 주인 아줌마는 장사속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목소리로 며칠 더 쉬다가지...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기차역 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들었다.


아침 시주 행렬에서 본 괴승. 가다가 pda를 숙소에 두고 온 것 같아 철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배낭을 열어 뒤적이고 있었는데, 슬며시 다가와 시주받은 과자 하나 건네주고 쓰읍 웃더니 자기 갈 길을 간다. 중들이 원래 시주받은 거 사바세계의 평민 족속과 나눠먹기도 하던가? 아니, 그건 그렇고, 내 몰골이 뭐가 어쨌길래 자비심이 발동한 거지?

기차역은 정말 징하게 생겨 먹었다. 식당인지 역사무실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공무원'이 앉아 외국인 삥 뜯어먹고 있었다. 오늘 출발하는 외국인이 있냐고 물으니 없단다. 2달러짜리 티켓을 사려다가 마음이 변해 4달러 짜리 티켓을 끊었다. 기차여행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사연 많다. 인도에 있을 때 라즈다니는 물론 샤탑디 한 번 타보지 못했고 중국에서는 꼬랑내가 진동해서 거의 미쳐버릴 것 같은 3등석 기차만 타고 다녔다. 베트남에서 딱 한 번 타 본 기차는 멀미로 밤새도록 왝왝대는 아줌마가 옆에 앉아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탄 기차는 그나마 컴파트먼트였는데 사막을 가로지르다 보니 자나깨나 먼지를 뒤집어 썼다. 모처럼 분위기 잡고 안데스에서 탄 기차는 파업 때문에 가다가 멎었다.

이쯤 되면 기차에 한이 맺히는 것이 당연해서 기차를 안 타게 된다. 특별히 띠보에서 핑우린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이유는 이 구간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은 협곡을 통과하는 코스이고 경치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며, 매번 기차운이 나쁠 수는 없을 꺼라는 확률적 믿음이 있었다. 암 뽑기지. 그래서 띠보를 방문한다기 보다는 기차여행이 여기까지 올라온 목적이다. 그리고 이왕 가는 김에 2달러 더주고 좀 더 안전빵하게 럭셔리 기차 한 번 타보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기차는 정확히 나인 써티 펄햅스에 도착해서 텐 섬씽에 출발했다. 와우! 제 시간에 오는 기차라니 신선한 충격이다. 한 시간 밖에 안 늦었다. 만사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자리를 보니... 2달러 짜리 ordinary class와 내가 끊은 4달러 짜리 first class 좌석 사이에 차이점은 앉는 자리에 쿠션이 하나 더 깔려 있는 것 밖에 없다. 좌석 번호는 일번. first class라서 일반인들이 범접치 못할 뭐 그런 멋진 칸을 상상했는데, 오디너리와 마찬가지로 온 사방에 짐짝들이 꾸깃꾸깃 쑤셔 넣어져 있고 닭장처럼 바글거렸다. 내 자리에 젊은 처자가 앉아 있다. 눈치 주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손짓 발짓을 해보니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먹겠다. 멀미가 날 것 같으니 자리를 좀 양보해 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멀미? 아, 그러라고. 얼마든지.

멀미가 난다는 처자가 왠일인지 스테이션에 도착할 때마다 자꾸 창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한다. 뭐 부탁이니까 들어주지만 왜 저럴까. 그 처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창문에 유리창이 달린 것이 아니라 숨구멍이 숭숭 뚫린 그냥 철판이다.

다음 역에서 창문을 좀 늦게 닫다가 물벼락을 맞았다. 역 주변에 양동이와 컵을 들고 어슬렁 거리는 꼬마애들이 바글거렸는데, 양동이 물을 손님한테 파는가 보다, 야, 저렇게 물도 한 컵씩 팔다니 여행 오래 하고 볼 일이야, 나름대로 신선하고 여유롭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기차가 슬슬 출발하기 시작하자마자 컵으로 양동이 물을 퍼다가 창문 마다 냅다 뿌려대는 것이다. 일부 힘 좋은 놈들은 양동이 채로 들이 부었다. 호스도 있었다.

그 양동이 물을 뒤집어 썼다. 역마다 있는 그 망할 녀석들이 집요하게 부어대는 통에 옷이 흠뻑 젖고 젖은데 또 젖으니까 옷이 마를 새가 없다. 쫓아가서 알밤이라도 먹여주려고 하니까 말린다. 처음에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페스티벌 이란다. 워터 페스티벌, 낀쏨? 태국식으로 송크란 축제, 그게 앞으로 일주일 후에 시작되는데 이 깡촌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이 난리다. 아니 컨츄리 사이드에서는 축제를 무려 한달 동안 한단다. 그래서 매 스테이션 마다 속수무책으로 물을 뒤집어 쓰고, 축제지, 허,허, 암, 축제니까,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내 기차여행은 매 번... 관두자.


정겹고 친근한 보통 시골역 풍경같지?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오른쪽 구석에 물 양동이와 컵을 들고 승객을 바라보는 저 불순한 눈빛이 군중 속에 틈틈이 도사리고 있다. 저 앞에도 한 놈 있다. 이 놈들은 물을 뿌려대고 움직이는 기차를 향해 악귀처럼 낄낄 웃는다.

카메라가 젖어 세상에서 두번째로 깊은 계곡 모습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핑우린에 도착. 기차는 두 시간 연착.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 픽업이 역 앞에 있다. 픽업을 몇 번 타보니 사람들에 치이는게 끔찍해서 500짯 더 주고 운전수 옆, 앞 좌석에 앉기로 했다. 만달래까지 1500. 짐을 다 싣고 그 비좁아 터진 좌석에 사람들이 꽉 차고 열댓 명쯤 차 난간에 샹들리에에 달린 유리조각처럼 주렁주렁 매달리고 나서야 차가 출발한다.

내 옆에는 군바리가 앉았다. 대학 마치자 마자 하사관으로 들어가서 지금 captain이란다. 자기는 일반 군인과 다르단다. 자꾸 스왓, 스왓, 람보, 코만도 하길래 뭔 소리인가 했더니 특무대(special army force)소속인 것 같다. 인상 참 드러웠지만 화끈하게 자기는 타이놈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애 둘 딸린 아버지 답지 않게.

ak47과 m16을 사용한다니 반갑긴 하다. 이들의 정신력은 소총으로 능히 코브라를 하늘에서 떨굴만도 했다. 그런데 특무대가 그런 구질구질한 소총을 사용한단 말인가? 담배를 자꾸 권하고 휴게소에서 쉴 때 음료수도 사준다. 그러더니, 한국은 핵을 가져서 좋겠다는 것이다. 얼떨떨하다. 또,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한국 여중생 얘기를 한다. 자기 같았으면 미국놈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분해한다. 나는 그저 평범하고 애국심 강한 바보 군바리인 줄 알았는데, 이 나라엔 대체 얼마나 많은 구두닦기 대학생과 해골 바가지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온 몸에 문신을 새긴 날나리 처럼 생긴 장교들이 있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나 더, 한국의 소식은 미얀마로 전해지는데, 한국의 여러 신문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 중에 컨텐츠가 제대로 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주변 나라 소식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인 셈이다. 언제까지 그러려는지들.

잘 가던 픽업이 멎었다. 운전수가 뒤에 가서 한참 소리를 질러댄다. 승객 중 몇 명이 사라진 것이다. 앞 좌석에 타고 있어서 몰랐는데 장교가 통역해주길, 뒷 손님 중에 한 명이 술을 사들고 타서 컨덕터를 포함한 뒷좌석 손님들이 한 모금씪 병나발을 불었는데(아마 400짰 짜리 지독한 만들래 럼일 것이다) 다들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휴게소에서 술을 잔뜩 사 들고 올라타서 몇 병인가 더 마시고 잠시 엔진 식히는 틈에(여기 차들은 가끔 엔진을 식혀줘야 한다) 숲 속에 짱 박혀 자고 있다가 못 탔단다. 다들 삘리리 맛이 가서 누가 안 타고 누가 탄 건지도 파악이 안된단다.

안타까웠다. 평소 아내는 내가 현지인들과 잘 안 어울린다고 구박을 주고는 했는데, 뒷좌석에서 술이 도는 줄 알았더라면 앞에 타지 않았을텐데... 아무튼 차장은 근무중 술을 마셨다고 운전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향방중인 향토예비군처럼 여기 저기 짱 박힌 사람들을 수거하러 돌아다녔다.

그래서 예정보다 한 시간 반 늦게 만달래 기차역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애 딸린 미얀마 람보는 담배를 한 가치 더 권하고, 손님들은 휘청휘청 말 그대로 그들이 가져온 푸댓자루와 함께 떨어져 내리고, 운전수는 자기가 태운 최초의 외국인을 잊지 않겠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과자도 줬다. 그는 힌두교도라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떼를 전혀 짜증스러워 하지 않았고(요즘은 인도인들도 툭하면 도로를 가로막고 똥을 싸는 성스러운 흰 소에 짜증을 내는 판인데) 그들이 다 건네갈 때까지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 그가 말하고 장교가 통역해 주길, 한국이라면 손님들이 술 처먹고 행패 부리지도 않고 시간도 엄수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차가 좀 늦게 오면 술도 안 처먹은 손님이 운전수를 두들겨 팬다고 말해줄까 하다가, 그래도 사람 사는게 어디나 똑같으면 재미없으니까, 한국은 품위있고 교양있는 나라로 남겨두자. 사실 그거 통역하기 힘들다.

다시 로얄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가끔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제발 도착할 때까지 비야 오지 말아라... 너무 늦어 바간행 표를 예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열블럭쯤 걸어 도착. 얼른 체크인하고 바간행 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티켓 오피스가 문을 닫았단다. 내일 아침 일찍 꼭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탁자 위에 어디서 많이 보던 담배곽이 눈에 띄었다. 디스 플러스, 한국인이세요? 물으니 그렇단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여행자들이 가물에 콩나듯 눈에 띄어 쓸쓸했는데... 5주 동안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을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이다. 5주라니 부럽다.

하루 종일 거의 물만 마셔 허기가 져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지경이라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밥 먹고 돌아왔다. 바나나 스플릿은 이번에도 먹지 못했다. 전 세계의 바나나 스플릿을 다 먹어보자는 소박한 꿈이 그 동안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시도였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숙소에서 그가 기다려 주고 있었다. 함께 맥주 한 잔 했다.

별 일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신없는 하루였다. 비틀즈를 듣다가 세상 모르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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