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to Bagan

여행기/Myanmar 2005. 4. 5. 14:32
6시 기상. 숙소 카운터에 가서 티켓을 다시 물었다. 금시초문인 듯 한 말 또 하게 만든다. 어젯밤 다시 이 숙소를 찾아왔지만 도무지 나로서는 숙소 스태프들이 친절한 줄 모르겠다. 남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저 앵무새처럼 '안녕하세요'하는 정도랄까. 그들은 백불 환전해 달라는 내 부탁도 잊어 버렸고, 바간 버스 시간표를 아는 내 앞에서 바간 버스는 하루에 오후 한 편 뿐이라고 우겼고, 아침식사 준다는 말도 안 해서 저번에는 아침을 걸렀고, 체크인 다 마치고 20분 기다리는 동안에도 방 청소가 안 끝났고, 다시 찾아온 손님을 이래저래 귀찮게 하고(두번째 체크인인데 패스포트를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어젯밤 부탁한 티켓을 알아보지 않아 다시 묻게 만들었다. 좋은 숙소란 생글생글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 붙이는 것보다 손님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곳을 말한다.

사적인 통화를 하느라 20분이 지나서야 티켓 상황을 알려준다. 자리가 없단다. 입석이라도 괜찮냐고 묻는다. 일종의 감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 바간 가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명 있단다. 그러고는 은방울 자매와 스태프는 그 건을 잊은 채 태평하게 앉아 있어서, 내려오는 여행자들 마다 바간 가냐고 물었다. 이틀 동안 본 친구다. 택시 쉐어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왔다. 로얄 게스트 하우스가 친절? 그냥 평범한, 그저 그런 숙소다.

택시를 같이 탄 친구는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내가 구질구질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난 얘기를 줄곳 장황스럽게 늘어놓는 이유는, 아내가 나는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구질구질한 얘기, 한 이야기 또 하게끔 하는 이야기가 별로 내키지 않아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처음 나누는 말들이 무엇인가. 신변과 하는 일(여행에서 만난 여행자라면 여행 얘기)에 관한 것들이다. 서너번 하다보면 질린다. 어쨌거나 그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겨운 얘기인지(특히 아내는 거의 믿지 않을테지만, 나처럼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증명하려면 좀 더 흥미로운 주제를 제쳐두고 사람들 만난 얘기를 늘어놓겠다. 그러다보면 여행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남들의 개똥철학이 가진 자기모순이 스스로 드러나겠지.

택시 잡으려고 돌아다니다가 택시 삐끼가 하나 접근해서 버스 터미널까지 간다니까 운전수가 2천 달라고 하자 대뜸 하는 말이 i don't like cheating. don't cheat me. 였다. 갑자기 앞날에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 원체 서양 여행자들하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왜 가격 뻔한 걸 가지고... 그 친구가 잠깐 환전하러 간 사이 여러 택시 삐끼들과 환담을 나눠 판단해보니 2천이 적정선 맞다. 20분 남았는데 500짯 주고 싸이카 타고 가기는 시간이 늦고, 택시를 잡았다. i don't like cheating 어쩌구 하기 전에 시계를 보여줘서 입을 막았다. i don't like cheating이라니... 간만에 들어본다. 내가 알기로 치팅을 즐기는 여행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숙소에서는 좌석이 없다고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돈을 지불했다. 4200짰, 이제 대충 교통비를 감 잡았는데, 시간당 500짯으로 계산하면 소여시간과 도시간 이동 교통비가 얼추 드러난다. 4200짯이면 8시간 거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빙고! 좌석이 있다. 그럼 그렇지. 한 시간 전에 예약해도 자리는 난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좌석을 강제로 양보당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버스 상판에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오스트리아 친구와 나란히 일,이번 상석이다. 버스는 30분 후에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친구는 치앙마이에서 항공권을 끊어 만달래로 곧장 날아왔다. 복식의 특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인도에 다닌 티가 났다. 정말 그랬다. 제일 좋아하는 인도의 도시가 어디냐고 물으니 푸시카르란다. 푸시카르? 버스 여행 하다가 속이 뒤집혀서 푸시카르에서 묵게 되었는데 요양겸 며칠 쉬다보니 3주를 묵었단다. 25루삐짜리 숙소에서. 스물일곱, 독신, 학생. 가족은 아버지와 스페인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하나 뿐이고 빈에서 비즈니스 스쿨을 6년 다녔다. 빠이에서 잘 놀다가 누가 미얀마가 좋다는 소리를 해서 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빠이는 완전히 맛이 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태국 동부와 태국 최남단의 괜찮은 처녀지가 아직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기차 운전수였고, 그는 열살때 처음으로 기차를 몰아봤다. 기분 끝내줬겠다. 그래서 기차를 좋아하지만 버스는 영 아니란다. 남인도 얘기를 하다보니 그가 사원에도 제대로 들어가 본 적이 없고 프리스트와 노가리 까 본 적도 없고, 사두와 놀아본 적도 없는 등 다른 많은 서양 여행자들처럼 인도에서 재미있는 것만 쏙 빼고 불쌍하게도 다르질링이나 스리나가르 같은 곳에서 짱박혀 시간 죽이다 보니 깔리가 년인지 놈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다른 많은 '전형적인' 여행자처럼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고생담을 줄줄이 엮고 가끔 나이스 플레이스 한둘 쯤 튀어나오는 뭐 그런 것이다.

날더러 종교가 있냐길래 없다니까 놀라워 하는 눈치다. 한국에서는 출생 신고서에 종교를 적지 않냐고 묻는다. 한국에 종교 비슷한 것이 있는데 종교 라기보다는 종교 마케팅과 종교 삐끼와 종교 시장이 있어서 수요자들이 종교 쇼핑을 한다고 대꾸했다.

네가 한국에서 밤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네온 글로우 크로스를 볼 수 있는데(월리엄 깁슨을 아냐? 알면 상상이 될꺼다. 모른다) 마치 거대한 그레이브 야드를 연상시킬 것이라고, 도시는 그런데, 한국의 모든 산에는 호국 몽크들이 죽치고 있는 템플이 있어서 크리스찬과 몽크가 종교시장에서 경합을 벌이는 중이며 공식적으로는 한국의 종교시장을 크리스찬과 몽크가 7:3으로 나눠 먹고 있는데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해줬다. 종교시장은 그렇지만 그 생활과 문화가 종교와 분리되지 않은 의미에서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가 선교 활동이라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에게는 그게 무척 신선했던가 보다. 종교 얘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중국, 일본, 한국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관한 얘기가 뒤따랐다.

말한 것 중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국, 일본은 중국은 한 뿌리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 문화, 역사가 동아시아권 역사로 통합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앞으로 골치아픈 문제들이 많다. 뭐 그 정도.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지도 모르는 형편이라 한국이 20세기 신흥공업국가 중에서 매우 큰 생장(성장이 아니다)포텐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약하다는 것도 모른다. 그가 한국이 모더나이즈된 국가라고 할 때 나는 한국이 웨스터나이즈된 국가라고 야유했다. 그는 내심 한국의 생활 수준이 동남아 여러 국가 보다 약간 나은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아는게 그거 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알면 된 거다 굳이 알려줄 필요 없고 서양 사람들한테 한국이 어떻다느니 설명하는 것을 별로 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여행을 통해 동양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 나라 사정을 알게 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국의 숙소 가격이 얼마냐고 묻길래 미니멈 십불이고 그걸로는 거지같은 방 하나 간신히 구하니까 유스호스텔을 잘 찾아보라고 말해줬다.

십오세가 넘은 사람은 오스트리아에서 직업과 진학 둘 중에 하나를 스스로 선택하는데 대부분 직업을 선택해서 오스트리아 인들 중에서 자기만큼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유럽식 교육의 문제점을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그만큼 영어를 잘 하는 오스트리아 사람을 여러 번 만났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인간은 호모 제록스라서 반복암기, 복제를 통한 학습이 창의력 운운하며 실제로는 그저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고 '방치하는' 학습보다는 유효하다고 본다. 창의력의 상당 부분이 섬세한 복제 능력, 따라하기에 좌우된다는 것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다. 소위 창의력(창조적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좀 더 기술자스럽게 말해)의 습득 시기가 영아 때 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20세 이전까지 단순 암기 학습한 것들이 전면에 등장해 뇌에서 조화로운 양자 폭풍(패턴 일치, 깨달음 등 뭐라고 부르건 간에)을 일으키는 시점은 십육세-이십세 무렵이 맞지 않을까 싶다.

(영아때 사고의 자율성을 통제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그것이 발현될 토양이나 사고 선택의 자유가 현세 이전에 단지 부족했을 뿐일 수도 있다. 한국인이 밀집 사회에서 별고없이 존재하려면 자신의 미친 생각을 합의 가능한 최저-상한 수준으로 노말라이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이제 아무도 한국 사회가 초딩부터 보수 꼴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사회를 박살낼 것 같은 반타협적이고 자기중심적 규준으로부터 균등 조화와 이데올로기의 일치를 목말라 하지 않던가?

내 견해는 그러니까 창의적 사고방식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암기 등의 방식으로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고(이 과정이 가장 중요. 영아 시기를 지나면 지식의 흡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식-수단을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봄) 더불어 학습의 방법을 배우는 등의(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자발적인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맞지 않냐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그럴듯 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의 자유방만한 유럽식 교육의 문제점에 맞장구를 쳐 준 것이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창의력 교육이나 대안교육이 기존의 강압적이고 전통적인 학습에 비해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여겼다.

흠, 영어나 학습은 그렇다치고,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세계 인식이 없으면 그냥 오스트리아라는 깡촌에 사는 촌뜨기에 불과하다. 그는 여행이 한국인을 만나 한국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지적인 면에서 나같은 한국 여행자를 통해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다. 차라리 한국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고 한국에 찾아가서 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아야지, 나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 상황은 나름대로 즐거운 무협지가 되어 버린다. 학습에 관한 얘기 이후로는 입 안으로 먼지를 삼키며 졸기 바빠서 더 이상 대화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차가 송아지를 치일 뻔 해서 깨어나 다시 잡담을 늘어 놓았다. 어찌된 일인지 승객이 30퍼센트는 늘어난 것 같아 버스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그가 한국에서 갈만한 곳이 어딘지 추천해 달란다. 한국만의 독특한 관광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외국인을 만나면 떠들어대는 내 십팔번은 백두대간 종주이지만 너무 자주 써먹어서 나 자신이 식상해진 나머지 새로운 아이템을 떠올려 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템플스테이를 알려주었다. 외국인 여행객 상대하는 여행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절간에서 몽크들과 함께 참선하다가 잠시 딴 생각하거나 조는 머리통에 죽대를 한방씩 날리면 중들도 재밌어 할 것 같다. 제대로 하기 위해, 머리는 민다. 자기가 먹을 나물은 자기가 캐도록 하고 숙소 청소 등속도 '마음 수양'을 위해 본인이 알아서 하게 하면 되니까 절간에도 여러 모로 큰 노력 안 들이고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 테마는(이건 말하지 않았다) 한국 고유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밀리터리 트레이닝 캠프다. 제대해서 놀고 있는 조교들 모아 가슴에 명찰 하나씩 붙여준다. 'license to kick'이라고, 한국 군대의 강도높은 훈련은 주둥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한국의 살벌한 분단 대치 상황을 설명하고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잠시 브리핑한 후, 돈 내고 들어온 여러분은 조인트를 까여도, 불알 한 쪽이 터져도 그 책임을 묻지 않겠으며 여기서 받은 훈련 내용을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별 이유는 없다. 장사속이다) 피의 각서를 쓰게 한 후 입교시킨다.

훈련은 6주 과정이다. 여행자 훈련생들의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이마데 돋은 식은 땀을 닦게 될 정도로) 살벌한 훈련과 갖은 구타를 통해 그들은, 한국식 군대용어로, 드디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만일 자기 힘 믿고 개기는 혈기 왕성한 놈이나 방법론적 회의에 심취한 녀석이 있으면 그 즉시 조교들 떼거리로 집단구타를 실시한다. 그리고 훈련이 없는 날에는 잔디깎기와 경쟁을 붙여준다.

훈련 일주차, 마리화나에 쩔은 몸을 갱생하고 플라워 파워를 믿는 온갖 히피스러운 정신상태를 고상한 맨정신, 즉 군바리 정신으로 일깨운다. 훈련 2주차, 익숙해질만하면 온갖 트집을 다 잡아 군대란 그저 집에 키우는 강아지처럼 상사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곳임을 똑똑히 깨닫게 만든다. 훈련 3주차 pt열나게 시키고 마지막에 실탄 사격 훈련 5분 실시하고 훈련 4주차에 일주일간 행군을 실시하여 개인주의자에게 동성애, 아 실수, 동지애를 가르치고, 5주차에 야산을 빌려 서바이벌 북진 통일 게임과 일본 원숭이 정벌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예로운 향토 예비군복을 지급한 후 이틀에 걸쳐 진정한 전역 군인의 행동거지를 지도한다. 이거 의외로 익사이팅하고 도전적이다. 대다수 국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군 경험이 전무하며 한국군의 훈련 강도는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다. 장비가 후져 정신력으로 버티다보니... 이 밀리터리 캠프의 단점은 실탄 사격 연습이 가능한가와 이런 걸 즐기는 개마초들에게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친구에게는 아시아권 최고의 밤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의 나이트 부킹 또는 루어낚씨질을 소개해 줬다. 한국에 놀러온 여행자들이 동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있는 영어 학습 열풍에 힘입어 쉽게 강사 자리를 얻고 수많은 현지 여자들을 골라 사귀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등등.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여덟 시간에 걸쳐 했다. 내 자신이 지겹다. 이런 얘기나 늘어놓으려고 비싼 돈 들여 여행하겠나. 아내 말대로 나는 사람을 가린다. 귀찮아 한다. 오늘 충분히 했고 아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매우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면 믿지 않겠지. 가급적 안 만난다. 안 만나고 얘기 안 한다. 그게 내 삶에서 앞으로 주욱 나아갈 방식이다.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오스트리아 촌뜨기는 버스에 내려서 삐끼떼가 몰려오는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그들을 마다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삐끼 하나 골라잡아 마차에 누워 숙소까지 띵까띵까 가는데 그는 배낭 메고 졸졸 따라온다. 마치 다른데 갈 것 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숙소에 도착해서 안 도와줬다. 협상 안되니까 멍하니 있다가 다른 데 가서 에어컨도 없는 방을 이틀에 십불로 잡았다. 나? 나는 그가 협상하다가 실패한 아가씨더러 예쁘다고 한 마디 해주고 더블룸 에어컨 있고 배쓰 포함해서 이틀에 7불.

이번 여행에서는 가이드북도 안 들고 왔고, 프린트물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내가 즐겨하는 방식대로 무작정 가서 알아서 하는 방식을 택했다. 숙소 매니저에게 항공권 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항공권을 맡기고 괜찮은 식당을 물었다. 미얀마식 백반으로 오랫만에 포식했다. 대략 2달러에 고기 커리 한 가지와 열 다섯가지 반찬, 국, 한 솥 분량의 밥이 통째로 나오고 식사가 끝나면 세 가지 디저트를 먹는 코스다. 모든 반찬이 기름에 볶아 기름기가 너무 많고 약간 짜서 반찬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숙소에 벼룩이 있는 것 같다. 에어컨을 틀고 나일론으로 된 츄리닝을 입고 잤다. 벼룩은 나일론을 싫어한다. 그나저나 젠장 난 왜 맨날 벼룩에 물리냐...

열시 무렵에 픽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빨래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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