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에게 자전거 가방을 건네주려고 만났다. 근처 통닭집에서 맥주 한 잔 하다가 내일 강화도에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강의 야경이 마치 로트렉의 그림처럼 볼만하다. 알딸딸해서 그럴까?

다음 날 12시 20분쯤 출발. 도시락을 쌌다.


잠수교에서 본 오리떼

미리 가는 곳까지 트랙백 자료를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자동차로 하는 도로 내비게이션처럼 때 되면 어디서 방향을 바꾸라는 지시가 나온다. 웨이포인트만 몇 군데 찍어 라우팅을 하는 방식보다 정교하다. 강변남로 자전거 도로 끝단에 두 번 갔고 한 번은 보물찾기 하러 간 적이 있어 그 자료를 사용하니 그 이후부터 작업할 수 있어 쉽다. 코스: 집 -[자전거도로]-> 불광천 -> 올림픽공원 -> 성산대교 -[자전거 도로]-> 방화3동 -[일반도로]-> 방화역 -> 개화산역 -> 김포IC -> 김포시 -> 석산교 -> 초지대교 -[강화도]-> 길상공설운동장 -> 온수 -> 전등사 -> 함허동천(마니산 입구) -> 분오리돈대 -> 동막해수욕장 (64km)

성산대교를 건너 바람을 등지고 평균 25kmh의 속도로 달릴 때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전날 맥주 마시고 객기 부리며 50km를 달려 집으로 도착한 것 때문에 황씨 아저씨는 다리가 뻐근하단다. 왠간하면 20kmh로 달리기로 했다. 갑옷처럼 두른 것 같은 내 허벅지 근육은 기특하게도 이제 평지에서 순간적으로 35kmh를 낼 수 있다.

발산역부터 김포시까지 순조로왔고 컵라면을 사서 아파트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싸온 도시락이 남年? 편의점에서 물을 보충했다. 날이 흐려 덥지 않아 주행이 편안하다.

알맵이 오래전 지도인건지 석산교는 실제로 석산 인터체인지였고 인터체인지에서 강화도 초지대교 방면으로 널찍한 3차선 도로가 뚫려 있다. 갓길이 넉넉하다. 구릉이 얕아 주행은 쉬운 편이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평속 35kmh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사이클 선수의 평속이 40kmh임을 감안하면 더 무겁고 두꺼운 타이어가 달린 MTB로 35kmh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황씨를 버려두고 갈 수 없어 속도 경쟁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보다 빠른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속도는 힘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다운힐에 약하다. 속도가 심리적 수용 한계를 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손이 가니까.

길 한 번 헤메지 않고 쉬엄쉬엄 초지대교에 도착했다. 트랙백 자료를 만들 때 지도 매핑에 문제가 있어 gps를 보니 실제로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초지진 안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가 뒤늦게 입장료를 냈다. 낚싯대로 게를 낚는 사람이 있다. 갯벌에는 신발 신고 들어갈 수 없다. 갈매기들이 갯벌을 뒤뚱뒤뚱 걸어간다. 갈매기들은 신을 신지 않았다. 한 아저씨가 신을 신고 들어가 있다. 갈매기나 그 아저씨나 내가 볼 땐 천연하다.


초지대교에서 바라본 강화도. 감상평: 정말 특색없게 생긴 서해안 어느 섬.


초지대교. 자전거 주행의 꽃은 업힐이다. 업힐을 만나도 눈쌀을 찌푸리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여행 가능한 인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아마도.

강화도로 들어오면서 굽이굽이 언덕이 나타났고 황씨는 힘들어 한다. 강화도 들어서기 전까지는 거의 평지라 2시간 반 만에 초지대교까지 왔지만 강화도로 들어온 다음 부터는 업힐이 여럿이라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관광하면서 돌아다니자고 농짓거리를 하기도 했지만, 40분쯤 달리다 쉬다를 반복하니 그럴 시간도 없고, 황씨 안색이 변했다. 평지 주행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업힐에서는 차이가 벌어진다. 한 시간 반쯤 더 달려 분오돈대를 돌아 동막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썰물이라서인지 모래밭은 조금 밖에 안 보이고 너른 갯벌이 드러나 있다. 황씨를 편의점 앞에 쉬게 해두고 민박집을 알아보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민박 가격을 물어보니 3만원으로 어디나 일정해서 언덕배기에 무늬만 팬션인 민박집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저녁 먹었냐고 대뜸 물어본다. 안 먹었다니 해수욕장 중간에 있는 칡냉면집이 그나마 싼 집이라고 가르쳐준다. 갯벌을 눈 앞에 둔 바닷가에서 왠 칡냉면? 아니요, 회 좀 먹어보려고요. 일단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황씨는 안쓰럽게도 다리가 거진 맛이 갔다. 나왔다. 6시 반. 어둡다.


약수터 팬션(민박) with 갯벌 뷰. 팬션이라고 하기는 민망했는지 괄호 열고 닫고가 간판에 적혀 있다. 동해안을 따라 잡겠다고 부르짖는 서해안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에서 팬션이 들어선 것은 극히 최근의 일.

대하나 전어를 먹으려고 주인 아저씨에게 물으니 대하는 킬로그램에 3만5천원씩 한단다. 전어도 몇 마리 해서 3만원? 허걱했다. 어떻게 서울보다 더 비싸냐. 주인 아저씨 말로는 동막 해수욕장의 횟집은 같은 가격을 받으면서 무게를 속인단다. 강화도에 정착한지 8년 되었단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나마 전어회 무침을 싸게 샀지만 그래도 2만 5천원이나 한다. 굳이 음식점에서 먹을 것 없이 민박집에서 먹기로 하고 싸들고 왔다. 아저씨 말로는 강화도의 횟집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을 가락시장에서 사 온단다. -_- 그럼 강화도에서 전어 따위를 먹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겠네요? 라고 물으니 선도가 틀리단다. 선도라... 우리가 전어를 산 '그나마 싼' 가게는 커다란 수족관에 대하와 새끼 손가락만한 전어를 키우고 있다. 선도만큼은 죽이겠지.

아저씨더러 함께 먹자고 하니 아저씨가 소주 두 병과 사이다를 들고 나왔다. 공짜로 준다. 한참 즐겁게 술 마시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나와 주방에 밥 차려 놨으니 아저씨더러 들어가서 먹으란다. 아저씨가 들어가서 아줌마한테 한 소리 들은 다음에는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주인 아저씨는 보통 술을 마셨다 하면 고주망태가 될 때 까지 마시고 그렇게 마신 밤이면 아무데나 풀밭에 쓰러져 잠을 자는데 자기는 모기가 안 문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모기가 안 문게 아니라 모기가 물어도 감이 안 올 정도로 마신 거겠지. -_- 전어무침이 남아 밥을 비벼먹으니 그럴듯하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아저씨는 끝내 나오지 않으셨다.

PDA로 마야에 관한 글을 좀 읽다가 11시쯤 불 끄고 잤다. 모기가 극성이다. 어디선지 쿵-쿵- 하는 대포소리가 들린다. 병자호란인가? 천둥소리다. 모기들한테 물어뜯겨 잠을 설치다가 선풍기를 틀었다. 열대 지방을 여행할 때는 잘 때 실링 팬을 켜두는데, 그래 두면 모기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리느라 제대로 식사할 틈이 안 생긴다.

새벽에 설핏 잠에서 깨니 창밖으로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일곱시에 깨었다. 여전히 비가 온다. 아홉시까지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핸드폰에 기상청에서 보낸 문자가 찍혀 있다. 서울, 경기 호우 주의보 발령. 재난 발생 상황이면 문자가 오게 되어 있는데 어디 멀리 놀러갈 때면 늘 오는 친근한 메시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창밖은 지붕이 있는 베란다지만 바다 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 지붕이 쓸모없다. 황씨의 시집이 젖어 있다. 어젯밤에 약 2줄쯤 읽고 펼쳐둔 채 그대로 뻗은 것 같다.

라면 둘을 끓여 어제 싸온 도시락의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9시가 되었는데 TV에서는 뉴스를 틀어주지 않는다. 대신 코메디언들이 나와 무의미한 노래를 부르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서로 깔깔대고 있다. 아내한테 전화해 인터넷에 들어가 오늘 서해쪽 날씨가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응답이 왔다. '비!' '비?' '비!' 자전거를 맡겨두고 몸만 오란다. 싫다.

비가 내리는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창밖 전선에 까치가 조용히 앉아 있다. 뭔가를 시도하려는 것 같다. 까치는 날아보려고 퍼드득 날개짓을 한다. 강풍에 휩쓸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날개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고 바다 쪽을 바라본다. 내쪽을 바라본다.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날개를 퍼득여본다. 제자리다. 빗물을 털어낸다. 고개를 여기저기 돌린다. 난감해 보인다.

별 대책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비가 살짝 잦아든 틈에 민박집 아줌마에게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을 알려달라고 어제 초지진에서 받은 관광지도를 펼쳐 보였다. 강화 종합 시외버스 터미널은 여기서 너무 멀고 화도 버스 터미널이나 온수 버스 터미널이 가깝단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 되겠지. 아줌마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을 꺼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더니 비가 저렇게 오는데 정말 갈 수 있겠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별 수 없잖아요. 가야지. 아줌마가 트럭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단다. 속으로 얼씨구나 그 말을 기다렸어요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했다. 아줌마한테 비닐봉투를 구해 배낭 속의 짐을 쌌다. 비에 쫄딱 젖어 기분이 엿 같아 잠시 자전거를 세워 두고 담배 한 대 피우려고 하는데 담배 마저 젖어있으면 심하게 우울해지니까. 가는 길에 어제 전어무침을 산 가게에 들러 일회용 비옷을 샀다. 어차피 서울에 돌아가더라도 빗속을 달리려면 필요하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니 놀란다. 읍내에서 자전거 빌려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줄 알았나 보다. 어제 아저씨는 여자 여섯명이 자전거 타고 왔다가 완전히 퍼져 트럭으로 집까지 데려다 주고 7만원 받았단다. 황씨나 나는 가난해서 그럴 일 없다.

종점인 화도 터미널에 세워준다. 고마워서 돈을 좀 드리려니 안 받으려고 한다. 어제 공짜로 먹은 소주값, 밥값으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강화->신촌행 버스표를 사고, 비 맞으면서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실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처마 맡에서 담배를 피우며 우리가 삽질하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한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두 자전거의 앞 바퀴를 빼니 잘 들어간다. 처마 밑에서 담배를 한 대 빨았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쉴 때마다 사나이들의 구순기 영양간식인 담배를 자주 피웠다.

버스 라디오의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서해 인근에 풍랑 주의보가 발령되었고 경기, 서울 등지는 여전히 호우주의보가 내린 상태다. 하지만 강화도를 벗어나니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젖은 옷에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서늘하다. 한숨 놓고서야 숙소 화장실에 시계를 벗어놓고 온 것이 기억났다. 이런 낭패가. 민박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택배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버스의 라디오에서 우울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갈래요.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빈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내게 무지개를 따다준 소년 따라 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 없이 비가 내리네. 밥 딜런은 세상의 종말을 폭우로 표현했다.

신촌에 내렸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어제 갈 때 네 시간 반 걸린 거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단 점심이나 먹고 출발하자고 했는데 황씨가 벌써 저만치 갔다. 갑자기 장대비가 마구 퍼부었다. 상가 처마로 허겁지겁 대피했지만 벌써 다 젖었다. 심지어 마음 마저 젖었다. 허접한 일회용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앞 여밈에 틈새가 많아 통쾌하게 젖을 것 같다. 스카치 테잎을 꺼내 붙였다. 여행할 때 스카치 테잎을 들고 다니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황씨가 또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출발한다. 광흥창에서 300m만 가면 바로 강변 자전거 도로인데 정말 양화대교까지 가려는 것 같다. 먼저 내려가 전화질 하면서 기다렸다. 양화대교로 내려온다. 너덜너덜한 비옷을 스카치테잎으로 붙여 재무장했다. 비닐봉투에 곱게 넣어 둔 담배 한 대씩 나눠 피우고 헤어졌다.

119 차량, 경찰차량, 그리고 해상구조대가 강가를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세우고 살펴보니 웃통을 벗어제낀 어떤 아저씨 시체가 뱃전에 놓여 있다. 뛰어내리고 바로 건졌는지 배가 안 부풀었고 비를 맞으며 잠자듯이 누워 있다. 편안히 가시길.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자살하지 마세요' 라는 광고를 본 기억이 난다. 내 맘이다.

강변 자전거 도로는 텅 비어있다. 힘껏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비바람이 심해서 잘 안 나간다. 불광천 길로 들어섰다. 콸콸 흐르는 냇물의 수위가 자전거 도로와 높이가 같다. 불안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길이 잠겨 있다. 크랭크 축이 잠기더니 이번에는 상행 패달까지 잠겼다. 정강이 깊이의 구정물 속에서 용쓰며 패달질을 했다. 뭔가가 앞에서 헤엄쳐 지나간다. 곧 멸종할 수달인가? 아니다. 쥐다. 쥐가 안간힘을 쓰며 수영하고 있다. 안간힘을 쓰다 지치면 다리질을 멈추고 배를 수면에 드러낸 채 둥둥 떠다닐 것이다. 쥐는 살아야 하고 나는 집에 가야 한다. 쫄닥 젖은 회색 시궁쥐와 함께 온갖 잡것들이 둥둥 떠 다니는 똥물에서 함께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인지 기분이 별로다. 델리와 꼴까타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랬지.

물에 푹 잠긴 자전거가 걱정이다. 기껏 수리한 BB에 물이 들어간 것은 아닌지. 집에 돌아와 구정물을 휘젓고 다닌 발로 방안을 가로지르려니 민망하다. 샤워부터 했다. 핸드폰에 빗물이 들어가 뿌연 수증기가 끼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한다.

GPS의 트랙로그를 살펴보았다. 좀 이상한데? 어제 만든 트랙을 따라 갔더니 샘플링이 매우 성기게 되어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garmin 제품은 트랙로그를 저장하면 날짜가 리셋되어 버린다고 한다. 70여km 밖에 안 되지만 자료를 잃은 셈이다. 그렇게 해서 1004개의 계단이 있다는 마니산 한 번 못 올라가보고 제철임에도 맛없는 회를 비싸게 주고 먹고 비를 억수로 맞은 1박 2일의 여행을 끝냈다. '자전거 여행'이다. 도보와 자동차의 중간 쯤에 위치한 자전거 여행은 시야의 잊혀진 가장자리를 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복되는 갖은 '시련'을 통해 전보다 더더욱 건강해졌다. 힘든 신체활동은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뇌 속에서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하고 한번 분비되기 시작한 호르몬의 맛을 못 잊어 조건강화를 반복하게 된다. 마라톤 하이나 근육통 뒤에 찾아오는 멍한 평화는 중독성이 있는데 다른 모든 마약과 마찬가지로 중독된 행복감은...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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