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이다. 5년 만에 제주 자전거 일주를 다시 한다.

여자 또는 인간의 어리석은 습성 중 하나는 학습 수준의 고저, 지성의 개발 과정에 상관없이 시시한 것에 쉽게 매료된다는 것이다. 잘나지 않아도 되고 잘 생기지 않아도 되고 가난해도 상관없다. 굳이 멋있어 보이지 않아도, 뭔가 설명하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쳤다고 봐야지. 이런 관점은 천박하고 한심해서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말할까. 심지어 모험조차 하지 않는 여자(인간)를 비웃고 싶어서다. 인간에게는 호기심도, 상상력도, 모험에 대한 열정도 거의 없다.

이틀 전, 황씨더러 자전거를 우리 집에 놔두고 가라고 했다. 아니면 그의 집에서 가까운 강변 터미널까지 잔차를 몰고간 후 버스를 타고 인천에서 내려 인천항까지 가라고. 후자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기, 북악 터널을 넘어 힘겹게 자전거를 끌고 왔다. 언젠가는 그 혼자서 강변 터미널에 자전거를 싣고 가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통과해 해남 땅끝 마을까지 투어를 기획했으나, 강화도 여행에서 익히 드러난,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 달 정도 부족한 황씨의 적은 연습량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제주 할인 배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해 아무래도 죽어라고 달리기만 하는 서해안보다는 제주도가 나을 것 같다. 일단은 황씨를 강하게 키워야 갖은 악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내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마조히즘 투어가 가능하니까.

그래도 수요일에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늬만 그렇지 직장인과 다를 것이 없어 지난 2년 동안 적어도 동업하는 직장인들과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시간대에 일하는 생활이 되었다. 적당한 핑계를 궁리하다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작년에 돌아가신 처가집 큰할아버지의 장례에 다녀온다고 말할 것이다. 아내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 뿐이다.

계획은 이틀 전에 짰다. 마침 GPS Trackmaker에서 불러다 쓸 수 있는 비트맵 지도를 자동으로 캡쳐해 GDI+ API로 이어 붙이고 좌표를 제시하는 알맵의 플러그인을 완성했다. 기반 지식이 없어(없다기 보단 업무도 아닌데 귀찮아서) GDI+로 팔레트를 만드는데 애먹었는데 vs.net 2005 베타버전의 preliminary help를 보면 GDI+ API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함수들이 대폭 추가될 전망이고 그것들을 활용하면 프로그램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알맵 사이트에 무료 플러그인 등록을 했지만 감감 무소식 -- palm의 Pathaway나 GPS trackmaker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데 아쉽다. 망할 정부는 세금을 그렇게 뜯어가면서도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세납자에게 공개한 적이 없듯이(그건 학자들 책임도 크다. 왜 목숨을 걸고, 평생의 과업으로 만들 생각을 안 하는가? 그러고도 인문의 위기 어쩌구를 말한단 말인가?) 아직도 '제대로 된(말하자면 공짜)' 국가 표준 좌표 지도가 없다.

gps trackmaker에서 지도를 불러와 좌표와 비트맵 지도를 맵 매칭하고 네 개의 트랙과 하나의 루트를 짰다. eTrex 시리즈는 루트를 하나만 지정할 수 있어 아쉽다. 황씨는 제주의 관광지 좌표를 별도로 제작해 메신저로 내게 파일을 건네주었다.

황씨가 제주도에 가면 한라산에 반드시 오르겠다고 해서 나흘 일정 중 하루를 할애하고 남은 3일 동안 자전거로 해변도로를 완주해야 하는데, 소위 '마의 중문 코스'를 포함한 120km를 첫날 달리게 되었다. 계획대로 라면 둘째날은 63km, 세째날은 56km.

이번에 웨이 포인트를 입력하는 방식을 바꿨다. 대분류는 일자, 소분류는 위치순열, 마지막 postfix는 교차로에서 방향지시다. 예를 들어 D1-20R은 제주 투어 첫날 20번째 포인트, 진행로의 500m 후방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의미한다. V,E,S등의 문자도 부여했다. D1-V1은 뷰포인트#1(관광지), D1-E1은 eat place#1, D1-S1은 sleep(lodging)을 의미.

작성된 트랙에 주요 관광지 좌표를 병합하고 코스를 그에 맞춰 좀 더 수정해 루트 포인트 61개, 트랙포인트 541개, 웨이포인트 75개 짜리 거의 완전한 제주도 자전거 여행용 트랙로그 (3.2MB)를 완성했다. 그러나 알맵의 지방도는 갱신이 늦어 신뢰할 수 없다. 12시쯤 황씨가 집에 왔다. eTrex에 트랙로그와 루트 정보를 입력했다.

아내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챙겨갈 것들 중 몇 가지를 빼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응암역 자전거도로를 지나 성산대교를 건너 강변남로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가다가 안양천으로 들어서서 1호선 구일역 앞 다리에서 일반 도로를 타서 온수 - 부천 - 부개 - 부평 - 간석 - 주안 - 도화 - 제물포 - 도원 - 주안 사거리 - 인천항 사거리 - 인천항 연안 여객 터미널에 이르는 코스다. 성산대교 기점으로 트랙의 총 길이는 34km, 집에서부터 거리는 45km이다.

짐은 간단하다. 옷가지는 상의 한 벌, 반바지 하나, 팬티 하나, 입고 있는 수영복 하나(항상 피에르 가르뎅의 수영복처럼 생기지 않은 수영복에 감사한다), 스포츠타월, 작은 등산 손수건 한 장. 음식: 점심 주먹밥, 사과 하나, 진통제, 먹다 남은 견과류 봉투. 전자기기: GPS, PDA, PDA 충전용 어댑터, 충전지 4개, 디지탈 카메라. -끝- 영원한 여행의 벗인 칫솔과 때수건, 스카치 테잎을 챙기지 못했다.


성산대교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자기는 누군가 안장을 훔쳐가는 바람에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세상에는 희안한 사람들이 참 많다. 황씨가 좌판에서 장갑을 하나 샀는데 썩 괜찮아 보여 5천원 주고 내 것도 샀다.


안양천 자전거 도로. 일반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잠시 쉬다.

한산한 안양천 자전거 도로에서부터 평속 25-30kmh로 힘차게 밟았다. 부평역 부근에서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잠시 쉬며 땀을 식혔다. 이어폰을 안 챙겨와서 pda에 기껏 챙겨놓은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섭섭하다.

인천시내에서 한두 번 헤메고 속도차 때문에 각기 다른 길로 가다가 바람과 먼지 회오리를 일으키는 거대한 컨테이너 트럭과 나란히 달려 인천항에 도착했다. 자전거는 물론 온 몸에 먼지가 자욱하다. 오후 5시. GPS가 없었으면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의 길 찾기다. GPS가 없다면 아무 준비도 안한 황씨는 내 뒤를 쫓아오지 못하고 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GPS 만세다.

줄곳 일반도로를 달린 탓에 얼굴이 시꺼매지고 자전거에도 먼지가 내려 앉았다. 전날 예매한 표를 찾으로 창구로 갔다. 아무도 없다. 5:40pm쯤 예매한 표를 찾았다. 금액은 안 나와 있고 30% 할인된 표라고 표시되어 있다. 30% 할인이라니, 몹시 기쁘다. 여행사를 통하면 이렇게 된다. 히죽.

인천 연안 여객 터미널 앞에서 빈둥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제대로 된 유니폼을 갖춘 사람들이 최소한 수십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호화스러운 자전거를 몰고 속속 도착한다. 십만원대 싸구려 자전거를 몰고 온 우리는 구석에 찌그러져 담배나 빨며 앉아 있는데 명찰을 단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제주도 자전거 투어 하세요? 네. 저분들도 제주도에 투어하러 가나 보죠? 예스. 그러더니 내 자전거와 황씨 자전거를 대충 훌터보고 나서 자기들은 청해진 해운의 초청으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주 자전거 투어를 하게 되었단다. 일인당 3만원씩 받고 오늘 저녁 출발해 내일 아침 도착해서 516 도로나 1100 도로를 타고 제주도를 횡단(종단?)한 후 저녁때 돌아와 다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청해진 해운은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그 행사를 기획했고 앞으로도 몇 가지 제주 자전거 여행 상품을 만들 계획이란다. 4박 5일 일정의 자전거 투어는 대략 13만원 가량 하는데, 인천-제주 왕복 배편과 3박 펜션 숙박비, 아침 저녁 식사 제공 등 매력적인 조건이다. 30퍼센트라는 파격적인 할인율에도 불과하고 우리는 두 사람의 왕복 배편만으로도 13만원을 썼다.

그 아저씨는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독일까지 25박 26일 코스로 돌아다녔는데 독일에는 산마다 성이 있단다. 그랬던가? 속초까지 14시간 만에 완주하고 내가 해남마을까지 갈 생각이라고 말하자 자기는 25시간만에 거기 다녀 왔단다. 보통 그런 빡센 주행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고 죽을 싸가지고 간단다. 산에서 다운힐 할 때 보통 60kmh, 최대 80kmh의 속도로 내려온다는 가공할 실력의 소유자다. 내가 사정이 훨씬 좋은 일반도로에서 무서워서 60kmh를 넘기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가 브레이크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뒷 브레이크:앞 브레이크 비율은 7:4 정도가 좋단다. 내 자전거의 타이어로는 오프로드 등의 험로주행에서 애 많이 먹을 꺼라고 말한다.

자기가 맡은 투어 맴버 중에는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일반 도로 주행 목적으로 MTB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자는 그렇게 비싼 자전거를 왜 타고 다니는지 자기도 이해하지 못한단다. 자기는 동네에서 돌아다닐 때는 중국산 싸구려를 타고 다닌다며, 산에 가는 것이 아닌 이상 굳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값 비싼 자전거를 탈 이유가 없단다. 그러더니 당신들이야말로 여행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음식 빼고는) 갖은 궁상을 떠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제주시에서 서귀포라? 가능하다고 위로해준다.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탄 경험이 있고 120km 정도의 도로면 7시간 안에 주파가 가능하지만 황씨가 걱정이다. 여차하면 중간에 멈출 작정이다.

개찰시간이다. 자전거는 배에 공짜로 실을 수 있다. 화물칸에 자전거를 내려놓고 3등실로 올라갔다. 벌써 사람들이 들어차 남은 자리가 별로 안 좋다.


오하마나호. 일본에서 제작한 배같다. 선실의 플러그가 110V용이다.

배는 6:30pm에 인천항을 출발했다. 황씨는 여객선을 둘러 보더니 풀장이 없어 후졌다고 말한다. 나는 배가 기대 이상으로 참 럭셔리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이 내 네번째 제주 여행이다. 남들 신혼여행 때 간신히 한 번 가는 제주도를 무려 네 번이나 다녀가는 것이다.


출발에 앞서 짐칸의 내리문을 올리는 중.


인천연안항.


곧 어두워졌다. 식당 옆 갑판에 앉아 컵라면을 사다가 점심 때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아까 그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캬~ 자네들은 정말 여행을 할 줄 알아, 하면서 웃으며 지나간다. 그저 궁상이다. 사과를 깎아먹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또 지나가면서, 이젠 후식까지? 껄껄 웃는다. 그저 궁상이다. 누구나 우리를 세상근심을 잊어버린 순진한 30대처럼 안 보고 학생처럼 봐준다. 장점 많다.

매점에서 캔 맥주를 하나 사다 마시면서 식당에서 벌어지는 무료 공연을 잠깐 관람했다. 필리핀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길래 환하게 웃어주고 손을 흔들었더니 흘낏 쳐다보면서 살짝 눈웃음을 짓는다. 동향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귀여운 아가씨라 웃음이 나온다.

상갑판에 올라갔다. 문근영이 '댄서의 순정'을 찍은 자리라며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다. 선두로 가는 길은 막아 놓았다. 선두에는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측풍이 심해 파도가 갑판을 적신다. 휘청거렸다. 춥다.


9/29

생일이랍시고 핸드폰에 문자가 찍힌다. 내 생일은 국가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극비사항이다. 다른 많은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주인공'들처럼 내게도 출생의 비밀과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이 있다. 농담.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에(문 앞 자리다) 잠자리가 불편해 일찍 깼다. 파도가 높아서 예정보다 30분 늦게 제주항에 도착했다. 날이 흐리다. 시계(기압계)가 없어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 강화도에 갔을 때 화장실에 남겨둔 시계를 부쳐달라고 민박 주인장에게 부탁했는데 투어 전날 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동막 해수욕장이 시골이라 택배가 늦게 온단다. 나는 어린 시절 걸어서 두 시간이나 걸리고 모내기 때문에 늦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다녔다.


해가 뜬다. 날이 흐리다.

내리려는 사람들로 로비가 북적인다. 자전거 투어로 왔다는 할아버지와 잠깐 얘기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그들은 오늘 산길을 타고 갔다가 저녁때 돌아와 인천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배 이름이 오하마나(Ohamana)인데 한 등산객 아저씨가 '오나마나'호라고 낄낄거린다. 승객은 등산객 절반, 자전거 투어 맴버 절반, 그리고 뻘쭘한 떨거지 우리 둘 정도.

내리자마자 짐칸에서 자전거를 꺼내 재빨리 나왔다. 여행 오래하다보니 이럴 때 요령이 붙어 늘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온다.

담배 한 대 빨고 GPS를 조정했다. 서쪽으로 깃발이 펄럭인다. 바람을 굽어보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9am 출발.

칼 호텔을 지나 항구에 인접한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잠깐 방파제에 멈춰 낚시 구경 했다. 용두암에 도착. 황씨 왈: 사진하고 똑 같군. 용두암에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데 잊어버렸다. 승천하려고 끙끙거리는 형상이다. 해변에 인접한 까페 거리를 지나쳤다. 영화, 드라마 촬영 장소라고 선전문구들인 간간이 보인다. 그림같은 집들이다. 그러나 카페보다는 담배연기 자욱한 선술집 취향이다. 느와르의 주인공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슬며시 술집에 들어선 사람들을 훌터보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혼자 홀짝이는... 음... 이상한 놈 같군.

패달을 밟았다. 지나가는 바이크 라이더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애월항 부근 식당에서 멎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해안도로를 따라 마땅한 식당을 찾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갈비탕을 주문하고 황씨더러 해물뚝배기 먹으라고 하니 해물을 별로 안 좋아 한단다. 그러더니 갈비탕을 주문한다. 제주도에서 갈비탕이라? 나야 몇번 방문했으니 상관없지만. 어쨌든 배불리 먹었다.


해안 도로

협제 해수욕장에서 멈췄다. 10:40분. 바람이 등을 밀어 진행이 아주 쉽다. 황씨는 아직 바람의 영향을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샤워장이 문을 닫았지만 웃도리를 벗었다. 아래는 어제부터 줄곳 수영복을 입고 있다.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일렁이는 파도가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수심이 얕아 한참 나아가도 물이 가슴 언저리에 미치지 않는다. 협제 해수욕장은 내가 알기로 제주도에서 가장 가볼만한 해변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기회가 되는 대로 '해수욕'을 즐겨야 한다. 해수욕장이 문을 닫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가을이 지닌 천 가지 매력 중 하나다.

적당히 해수욕을 즐기고 근처에서 샤워할 만한 곳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좀 난감하지만 바닷물에 젖은 채로 자전거를 타면 피부가 쓸리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앞에서 벌거벗고 손바닥에 물을 떠 몸을 씼었다. 마침 대변을 보러 온 사람이 외면한 채 조용히 칸 너머로 들어간다. 한쪽에서 똥을 싸고 한쪽에서 몸을 씼고 수영복과 샌들을 빨고 있는 아스트랄한 상황 되겠다.

야영장에 한 친구가 앉아 빵과 우유를 먹고 있다. 우리처럼 자전거 여행을 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 모습을 보니 몇 년 전 자전거 여행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궁상스러웠다.


해녀상. 제주 해안 도로 곳곳에서 해녀들이 출장 전후에 들락거리는 건물로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협제 해수욕장에 슬픈 추억이 남아 있다. 두번째 제주 여행 때 비행기를 늦게 타서 저녁 무렵 협제 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옆 야영장에 텐트를 치려고 보니 비바람이 송림 사이를 거세게 불어와 도저히 텐트를 칠 형편이 안 되었다. 악전고투 끝에 포기하고 근처 민박집으로 '대피'했던 기억이 난다. 어두컴컴한 동네 어딘가 다 쓰러져가는 '수퍼'에서 라면을 사다가 끓여먹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찬밥을 줬다. 참 맛있게 먹었다.

아내는 제주도 가면 유카리 아가씨를 만나라고 했다. 만나서 선물을 건네주라고. 한림에 산다는데 마침 근처이고 전화가 왔다. 술자리 한두 번 같이 한 것 빼고 잘 모르는 아가씨라 좀 뻘쭘한데 제주도 왔다고 대접한다고 하면 내가 좀 민망할 것 같다. 유카리는 유칼립투스의 일본어식 발음일까?


절리가 될뻔한 흔적. 섭씨 800도 부근에서 해안에 내려온 마그마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거북등처럼 갈라진다.


풍력발전 시범설비.

사실상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서해안을 모두 지났다.

수월봉을 지날 무렵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보여 옆으로 가면서 말을 걸었다. 어제 저녁에 도착해서 한가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부산 친구다. 황씨는 뒤쳐졌다.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수월봉 앞에서 기다렸다. 자전거 타는 젊은 아가씨가 지나간다. 혼자 이런데 돌아다니다니 대견하다. 샌들을 벗고 핸들에 아까 빨아놓은 수영복을 말리며 황씨가 오길 기다렸다. 한참 후에 나타났다. gps 배터리가 다 되어 길을 잃고 잠시 헤멨단다.

바람이 거세 진행이 더디다. 그제서야 황씨는 제주 바람의 엄청난 파괴력을 실감하게 된 것 같다. 해변도로로 계속 내달렸다. GPS가 있기에 제주도의 해변도로를 샅샅이 훌터갈 수 있게 되었다. 대정에 도착한 것은 4시 무렵. 교차로에서 황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나쳐 가면서 나를 못 본 것 같다. 한참 기다리다가 전화로 좌표를 알려주고 그 앞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바람은 사진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견과류를 씹어 먹으며 황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대정 시내에서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내장이 등짝에 붙은 것처럼 허기가 졌다. 간신히 식당을 찾아 들어가 고등어 조림과 갈치 조림을 먹었다. 밥을 두 공기씩 먹었다. 황씨는 바람 때문에 많이 지친 것 같다. 대정에서 하룻밤을 보내던가 아니면 중문에서 숙소를 잡자고 꼬셨지만 가는데까지 가보겠단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 시계를 보니 5:30pm. 관광이라고는 용두암에 한 번 들르고 협제 해수욕장에서 잠시 파도를 즐긴 것 밖에 없지만 진행이 더디다. 해 지기 전에 중문에 닿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여차하면 민박을 잡자.

본격적인 맞바람이다. 황씨는 말 그대로 끙끙대고 있다. 내 뒤에 바짝 붙으라고 말했다. 내가 바람막이가 되는 동안 진행이 수월할테니. 해안도로를 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산방산을 앞에 두고 오른쪽 도로를 따라갔다.

산방산으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맞바람까지 가세한다. 왠만하면 버티겠지만 확 끼치는 바람에 자전거가 갑자기 멈춘다. 앞뒤 기어는 2:1, 내렸다. 내려서 걸었다. 여기서 힘을 빼면 중문 앞의 연달은 고개에서 헐떡일 것이 뻔하다. 산방산 앞자락의 커다란 절 앞에 멈춰 쉬었다. 기억으로는 동양에서 몇째 가는 규모의 절이다. 이름이 보문사 였던가? 바람에 지치고 시간이 많이 늦어 황씨더러 들어가 보라고 말하기가 뭣하다. 보문사 맞은편 용머리 해안 쪽에 하멜이 제주에 표류해 왔을 당시의 배를 재현해 놓았다.


하멜 휴게소. 나는 어린 시절 왜 외국인이 한국에 떠내려와서 살다간 여행기를 읽었을까.

산방산을 에둘러 제주 조각공원 앞에 도착.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이니 지나가자. 12번 국도와 만나는 화순 삼거리를 향해 진행했다. 업힐 구간. 힐탑에서 황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많이 지쳤는지 언덕 시작부터 자전거를 끌고 온다. 괜찮겠어? 괜찮아요, 보기에 내가 맛이 간 것 같으면 세워줘요. 나는 네 엄마나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안색이 변하지 않은 걸로 보아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담배 한 대 빨면서 잠시 쉬었다. 이제부터 업, 다운, 업, 다운이 연속되는 마의 중문 코스가 시작이다. 사실 산방산을 빙 둘러가는 코스는 관광도 되고 대정에서 중문에 이르는 그 소름 끼친다는 연속 업,다운힐을 반 정도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내 판단이 옳은지 긴가민가하다.

중문 앞 삼거리까지 대략 5km 구간.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플래시를 켜고 후미 깜빡이등을 켰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플래시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쓸모가 없다.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나아갔다. 3km쯤 진행하고 황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매번 쉴 때마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황씨는 쉴 때면 담배를 두 가치씩 물었다. 나는 혼자 자전거 타고 다닐 때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지만 황씨와 다닐 때는 담배를 피운다. 나는 아직 견딜만하다. 되레 맞바람 코스를 통과하고 저녁을 먹은 이후 부터는 원래 체력의 8할을 회복했다. 수 년 전 이 고개에서 헉헉 거릴 때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문 앞에서 대기. 황씨가 오면 중문에서 하룻밤 보내자고 말할 생각. 황씨가 나를 지나쳐 중문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소리질러 불렀다. 괜찮아? 오늘만 벌써 몇번째 묻는 질문. 괜찮아요. 서귀포까지 갈 수 있겠어? 예스. 좋아, 가자. 7:30pm.

아름답다는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기 전에 들른 휴게소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시원한 얼음과자를 먹었다.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왜 그 고생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냐고. 차라리 오토바이를 빌려서 돌아 다니라고. 사실 별 고생을 안 했기 때문에 그냥 웃었다. 옆의 젊은 아저씨가 대화에 끼어 든다. 어디서 묵어요? 찜질방이요. 제주시에 가면 탑동에 3천원짜리 찜질방이 있어요. 아줌마들한테 물으면 다 알 겁니다. 오 그래요. 몽산포인지 모슬포인지 근처에 가면 자리물회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할아버지가 말해준다. 어 그거 6월에 먹는 거 아녜요? 냉동 자리가 있단다.

황씨가 지나가길래 불러 세웠다. 하드 하나 사먹고 가라고. 잘 가고 있는데 세운다고 투덜거린다. 서귀포시를 4km 남겨두고 끔찍한 업힐이 두 개 등장. 자전거에서 안 내리고 개기며 끝까지 올라갔다. 더럽게 힘들군. 이럴 줄 알았으면 중문을 통과해 서귀포시에 이르는 길로 가자고 하는 건데. 황씨에게 미안하다.

쉬엄쉬엄 서귀포시 도착. 8:30pm. 아내가 알려준 쌍둥이횟집을 찾아갔다. GPS 덕을 톡톡이 본다. 먼저 횟집에 앉아 황씨에게 횟집의 좌표를 알려줬다. 황돔과 광어가 싱싱하다길래 그걸 주문. 앞 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머리에 꽃을 꽂더니 자기가 어때 보이냐고 묻는다. 미친년 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어렴풋이 동막골이 생각난다고 대꾸했다. 좋아한다.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여자들에게 늘 경이감을 느낀다. 서로서로에게 꽃을 꽂아주는데 참 재밌게들 보인다.

에피타이저가 도착했다. 소라, 고둥, 갈치회, 한치, 문어, 오분자기, 그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심지어 스끼다시로 한치물회와 초밥까지 등장하셨다. 아내에게 들은 바가 있어 초밥을 제외하고 스끼다시는 가급적 손대지 않았다. 그거 먹다가 배가 불러오면 다른 것들은 먹지 못할 테니까.

9:10pm. 황씨가 도착했다. 건강하고 씩씩해 보인다. 우리는 '한라산 맑은 소주'를 기울이며 서귀포 시 진입할 때 갑자기 나타난 그 빌어먹을 업힐 둘로 얘기꽃을 피웠다. 전채를 다 먹을 때쯤 황돔과 광어가 나왔다. 두껍고 싱싱하다. 어이없을 정도로 푸짐하다. 배불리 먹고도 남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먹어보기로 했다. 매운탕과 밥이 등장하셨다. 매운탕을 다 먹고 나자 이번엔 팥빙수가 나타나셨다. 그야말로 배터지게 먹었다. 7만원이다. 분량으로 4인분 이상이다. 뭍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종류의 만찬이다. 진정한 회를 먹어본 것이다. 이 횟집에서 회 한 접시 먹기 위해 비행기 타고 서귀포에 오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11:30pm,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숙소를 찾으러. GPS에는 300m 전방에 있다고 한다. 서귀포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찜질방인 '옥찜질방'을 간신히 찾았다. 여성전용이다. 간단히 엿됐다.

허전한 맘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찜질방 없냐고 물었다. 중문에 있다고 한다. 아니면 여기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서귀포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시간이 많이 늦어 시가지 중심에 있는 모텔로 갔다. 4만원 달란다. 협상했다. 3만 5천원. 3만원까지 떨궜다.


모텔 시설은 그럭저럭 괜찮다. 맥주 한 병 사서 마시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다. 피곤했나 보다.

9/30

7시쯤 깨었다. 날이 흐리다. 중문에 널려있는 관광지를 하나도 보지못한 것, 그리고 숙소를 중문에 잡지 못한 것 때문에 후회스럽다. 중문에 찜질방이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나야 벌써 한 번 씩은 다 본 것들이라 괜찮지만 황씨는 뭐 하나 제대로 본 것 없이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야 하는 피치못할 불상사가 되니까. 이대로 성산에 갈 수는 없다. 황씨한테는 오늘 코스가 아주 쉽고 바람도 우리를 도울 꺼라고 말했다. 황씨는 바람에 환멸을 느끼는 표정이다.

외돌개로 향했다. 비가 간간히 내린다. 황씨한테 전화해서 낚시점에 들러 비옷을 하나 사두라고 말했다. 외돌개에서 황씨가 올 때까지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스님 한 분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정신 사납게 하더니 are you chinese?라고 영어로 묻는다. 주변에 중국인 떼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지만 자전거 타고 온 중국인은 처음 본다는 말투였다. 얼떨 결에 no라고 영어로 댓구했다. 장난끼가 돌아 no, i'm malaysian이라고 덧붙였다. 마누라는 중들을 많이 알아 중들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편인데 난 안 그런 편이다. 말레이지아에서 한국 회사의 협력사에서 업무 배우러 왔는데 코리아가 원더풀하고 물가가 '의외로 싸다'고 말했다. 영어가 딸리는지 슬그머니 사라진다. 말레이지아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나라 하나도 안 우습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관광지에서도 낚시질에 여념이 없는 아저씨는 어떻게 절벽을 내려가 저기서 낚시를 하게 되었을까. 멀어서 사람이 잘 안 보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비까지. 황씨가 푸념한다. 말했다; 나하고 여행 다니면 늘 비를 보게 되거든. 일관성있게도. 그래서 나는 비옷을 들고 온 것이다.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황씨더러 천지연 폭포에서 표 끊을 때 학생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일반 2천원, 학생 천원이다. 우린 늘 배우는 관계로, 학생이 맞다.


천지연 폭포


관광 온 중국 학생

아침으로 럭셔리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전복죽을 시켰다. 벌써 11:30am이다. 유명인사들이 자주 방문해 주시는 유명 식당이다. 한 대접 가득히 나오는 전복죽은 색깔이 그럴듯하고 전복 쪼가리도 꽤 많이 들어있지만 생각보다 전복향이 안 나고 맛이 없다.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다. 이게 무슨 전복죽이냐, 참기름죽이지.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깔끔하게 비웠다.


전복죽 먹은 식당


무슨 나방이 전투기처럼 생겼을까. 혹시... 제비는 전투기처럼 생긴 나방을 두려워 했을 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무슨 축제를 한다. 축제는 관심없다. 비 맞으며 정방폭포를 구경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샌달이 없어 물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샌달을 신고 왔다. 물을 첨벙이면서 폭포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수심이 깊다. 황씨를 비웃었다. 갯벌 밖에 없는 강화도에 가서는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더니 맨 바다 투성이인 이곳에 와서는 운동화를 신고 온다고.


정방폭포


정방폭포에 놀러온 중국 학생

서귀포 KAL 호텔을 지나 계속 나아갔다. 비가 많이 온다. 비옷을 입고 짐칸 묶는 줄로 허리를 동여맸다. 그래놓으니 타지에서 놀러온 각설이들처럼 보인다. 폭포처럼 비가 쏟아진다. 앞이 안 보일 지경이다. 비옷의 후드가 자꾸 벗겨졌다. 모자를 쓰고 후드를 덮은 후 그것을 고정하려고 손수건을 동여맸다.

감귤밭을 지나간다. 침을 꿀떡 삼켰다. 초록색 감귤은 덜 익은 것인지 아니면 제주에서 재배하는 여러 감귤 품종 중에 하나인지 알 수가 없다. 노변을 따라 주욱 늘어선 감귤 농장에서 하나 따 먹고 싶은 애처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마음 좋은 주인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하나 따서 갖다주는 뭐 그런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갔지만, 아무도 없다. 비만 억수같이 쏟아지고...

감귤밭을 다 지나고 나니 비가 그쳤다.

신례리를 지날 때쯤 자전거 뒷부분이 푹 하고 꺼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주행이 안된다. 뒤를 흘낏 쳐다보니 타이어가 축 늘어졌다. 펑크다. 빌어먹을.

황씨가 다가왔다. QR레버를 제끼고 브레이크를 끌러 뒷바퀴를 완전히 떼어내고 타이어를 들어 올렸다. 빵구 때우는 것은 어렸을 때 몇 번 해 본 것 빼고 익숙치 않지만 어떻게든 해볼 참이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처음 하는 거니 타이어를 다 빼내고 타이어 속에 말려 들어간 튜브를 펴냈다. 펌프로 튜브에 바람을 흘려 넣으면서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튜브를 돌려 넣으며 기포가 올라오는 부분을 찾는 '표준 수리방법'을 따를 주변 여건이 아니기에 밸브 조임 나사를 풀러 입으로 바람을 넣어 황씨더러 어디 구멍이 났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쉽게 찾았다. 구멍이 길쭉하다.

사포가 없는 관계로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난 부분을 비벼 꺼칠한 면을 만들고 본드를 바른 후 살짝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펑크 패치를 붙였다. 잠시 대기. 타이어 한쪽을 림에 끼우고 튜브를 밸브쪽부터 끼워 맞춘 후 살살 밀어넣었다. 자전거 여행 중인 사람들이 흘낏 쳐다보고 지나간다.

타이어를 다 말아넣고 펌프로 바람을 넣었다. 잘 안들어간다. 십여분 해봤지만 바람은 1/3 밖에 차지 않았다. 이 망할 놈에 펌프는 그 허접함 때문에 믿음이 안 가더니 이제사 본격적으로 속을 썩이는구나. 애당초 장난감 같은 펌프를 산 내 잘못이지.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바람 넣을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황씨가 정찰을 나가 주변 마을에서 수소문을 한다. 나 역시 근처 철공소에 물었다. 위미 사거리 왼편 주유소 뒤에 농기계 수리점이 있단다. 고맙습니다. 황씨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러더니 먼저 가 있겠다고 하면서 자전거를 몰더니 주유소 쪽에서 멎지 않고 마을로 들어가버렸다.

어 거기가 아닌데... 펑크 때우느라 거의 30분을 소비하고 농기계 수리소까지 가는데 다시 30분을 보냈다. 수리소 아저씨들은 오리지날 제주도 방언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뭔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서울 말씨로 말하면 즉각 서울 말씨로 댓구한다. 바람 좀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바람을 너무 많이 넣어주셨다. 하지만 바람 넣어준 것만도 고맙다.

펑크는 왜 나나? 왜 나는지는 모르겠고 타이어에 바람이 덜 들어가 있을 때 접지면적이 늘어 자주 난다.

위미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황씨를 찾았다. 그는 주유소에서 제 자전거 바람을 넣으려 했다가 주유소 직원이 황당하게 쳐다봐 민망해서 나왔단다. 달리자.


해안도로를 따라 신영영화박물관까지 밟았다. 비맞은 강아지 꼴로 데스크에 물었다. 사설 박물관인데 입장료가 6천원이란다. 건물 내외 규모로 봐서는 그다지 볼만한 꺼리가 없을 것 같다. 펑크 수리하느라 기름때가 낀 손톱과 숯검댕이라도 씻으려고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은 박물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이용할 수 있단다. 에잇. 그냥 가고 만다.


12번 국도를 따라 이동했다. 국도 중간쯤에서 해안도로 진입로를 찾았다. 더 볼 것도 없어 12번 국도로 계속 이동하는 것이 편하지만 그래도 이왕 제주도에 온 김에 해안도로란 도로는 다 찾아가자. 초소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인사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는다.


제주민속촌박물관에 도착. 입장료 6천원. 황씨와 타협했다. 입장료 쓸 돈을 모아 저녁때 배터지게 먹자. 오늘은 제주 똥돼지로 하자고. 아침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성산에서 제주 똥돼지 아니 흑돼지로 유명한 집을 알아 놓았다. 아내는 사무실 직원들과 제주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열댓 명의 사람들이 조리 도구를 들고 가서 제주도에서 자전거와 차량을 빌려 재밌게 놀다 갔다. 황씨와 나 둘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쓸쓸히 여행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사람이 모이면 그 규모 탓에 다양하고 풍요로운 체험을 할 수 있으니까.


5:30pm, 황씨가 올 때까지 횅한 탐라수산 직판장 앞에서 기다렸다. 황씨는 보통 나보다 뒤쳐지고 그럴 때면 짬짬이 바닷가 갯바위에 나가 게를 잡던가(잡으려 노력했다) 파도를 타고 흘러온 온갖 이상한 물건들을 건져 올리는 등 혼자 시간을 보냈다. 비 맞고 펑크나고 하늘은 구름으로 어둑어둑하고. 멀리 어슴프레하게 섭지코지가 보인다. 이제 다 온 셈이다.


황씨가 도착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았다. 황씨더러 먼저 가서 숙소를 알아볼테니 천천히 오라고 말했다. 날이 어두워졌다. 평소에는 물론, 어제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입증한 헤드라이트를 켜고 후미 깜빡이도 켰다. 섭지코지를 지났다. 오늘은 너무 늦어 섭지코지는 내일 갈 것이다. 내일은 아주 시간이 많으니까.

일출봉 도착. 민박집 몇 군데를 전전하며 가격을 알아보았다. 2만원 균일. 아내는 펜션에 묵으라고 하지만 펜션은 비수기에도 5-6만원씩 한다. 몇 군데 들르면서 따뜻한 물은 나오는지 방은 깨끗하고 넓은 지, 전망이 괜찮은지를 점검했다. 그리고 짐이 거의 다 젖은 상태라 말려야 한다. 황씨가 올 때까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흑돼지 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농협 앞이라고 하는데 농협 앞에는 해산물 식당 밖에 없다.

민박에 짐을 풀고 자전거는 비 맞지 않게 현관 안으로 끌어놓았다. 민박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 흑돼지 잘하는 집을 찾아갔다. King mart 앞이다. 정육점과 식당을 겸업한다. 직접 돼지를 잡는단다. 아내 때부터 이구동성으로 그 집이 맛있다고 하는 걸 보니 괜찮은 집인 것 같다.


생각보다 별반 맛이 없다. 육질이 좀 다르고 오겹살이란 것 뿐 돼지고기는 역시 돼지고기인 것이다. 수입하는 고기는 껍데기를 벗기기 때문에 삼겹살은 수입인지 국산인지 알 수 없으나 오겹살은 확실히 국산이라는 정도. 어제 처럼 간단히 소주 두 병 마시고 생고기 2인분과 갈비 2인분을 시켜 먹었다. 그제서야 왜 고기가 별반 맛없게 느껴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기는 확실히 괜찮다. 그런데 그걸 가스불 철판에 구우니 영 맛이 없는 것이다. 여름에 돌판과 숯불로 돼지고기를 구워먹어봐서 안다. 가스불에 고기를 굽는 집은 일단 피하는게 상책이다. 하여튼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처럼 맥주를 한병 더 사다 마시고 라면도 좀 사뒀다.

숙소 앞에서 젊은 친구가 자전거에 바람을 넣으려고 용을 쓰고 있다. 밸브가 희안하게 생겨서 바람이 안 들어간단다. 할머니 셋이 말 그대로 왈가왈부 하면서 입으로 침을 튀기며 각자의 견해를 밝히지만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여자들이란... 황씨와 둘이 바람 넣는 것을 도와줬다.


민박에 돌아와보니 모포가 적어 빈 옆 방에서 몇 개 슬쩍 했다. 배개하고 비누도 가져왔다.

10/1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4am. 다시 잠을 청했다.

밤새도록 선풍기를 켜 놓았지만, 어제 비에 젖은 옷가지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았다. 웃도리를 걸치니 시원하다.

6am, 황씨를 깨웠다. 비록 비가 내리고 있지만 일찌감치 일출봉에 올라갈 참이다. 전에 왔을 때 경험으로는 아침 나절이 좀 지나면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기 때문이다. 비옷을 챙겨 입고 한기가 스며드는 어둑어둑한 숙소 앞에 나왔다. 숙소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고 그 옆에 일출봉 입장로가 있다. 숙소 하나는 잘 잡았다. 용궁 민박이다. 숙소 뒷편으로 돌아가면 개구멍이 있을 법 싶다. 여기서는 확인이 잘 안된다.


말 옆에서도 변함없는 포즈를 취하는 중국 텔레토비 학생. 비는 내리고 어두워서 포커스가 안 맞는다.


특이한 포즈로 말 옆으로 접근한다.

자전거를 타서인지 다리가 뻣뻣하다. 오르는 길은 별 문제 없지만 내려올 때 슬며시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알이 배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근육통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길가에 설치해둔 스피커에서 성산포 낭송가사가 흘러나온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언제 들어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듯한 가사다. 일출봉 전망대에서 성산을 바라보던 황씨가 신음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야. 그는 도착한 날부터 종종 '한국이 아니야'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성산은 제주에서 가장 척박한 땅에 속한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이렇게 빗방울이 보인다.



일출봉 정상 전망대

배를 타던 날 만났던 아저씨는 성산포-제주 구간이 제주 자전거 투어에서 가장 재미없는 코스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어젯밤 황씨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성산포에서 516 도로까지 가는 코스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를 보았다. 꾸준한 업힐이다. 도로가 몇번의 교차로를 만나 복잡하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는 짐작할 수 없다. 그쪽 코스로 간 사람 얘기를 아직 못 들어 봤으니까.


일출봉에서 바라본 어슴프레한 서쪽은 끝없는 산과 고개의 연속이다. 가장 먼쪽에는 안개 속에 푹 파묻힌 한라산이 있다.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한라산이 거기 있을 뿐이다. 제주시에서 시작하여 한라산의 산 중턱을 따라 1100 도로와 516도로가 서귀포까지 이어진다. 어젯밤에는 다리 상태가 괜찮다면 그리 가겠노라고 황씨에게 말했다.


일출봉 산책로에는 쥐며느리들이 우글거린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았다.

생각이 바뀌었다. 다리 상태와 상관없이 가자. 하지만 황씨를 12번 국도로 혼자 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일단 GPS가 있으니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쉬울 것이다. 56km, 업힐이 거의 없고 성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12번 국도를 만나면 그저 주욱 진행하면 쉽게 제주시에 닿을 수 있다. 별다른 관광거리는 없고 용담과 만장굴, 흑모래가 깔린 삼양 해수욕장 정도? 아무리 늦어도 4시 이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했다. 내가 과연 저 길을 갈 수 있을까. 해발 600여미터까지 차츰차츰 고도가 높아간다. 얼마나 많은 고개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고생을 부러 사서 할 필요가 있나.

라면을 끓여 밥 말아 먹고 제주 뉴스를 보았다. 오늘은 제발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비가 오지 않는단다. 그리고 제주시에서 벌어지는 공청회 중계가 나온다. 주제는 제주 날씨 예보가 하도 잘 틀려 대책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제주도 날씨는 잘 맞았을 것이다. 그저 내가 와서 비가 온 것 뿐이다. 나는 레인맨이니까.


설법을 위해 산을 오른다.


길에서 찢어진 비옷을 줍다.


한 말씀 하신다.


비 맞고 바람 맞다 보면 이렇게 된다.


용궁민박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봉

9.30am, 숙소를 나왔다. 스니커즈 넷, 물 따위를 샀다. 제주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되지만 어제 물병을 재털이로 활용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물을 샀다. 스니커즈 둘을 황씨에게 주었다. 점심은 궁하게, 저녁은 거나하게 먹자고 말했다.

자전거 상태가 말이 아니다. 체인에서 삐꺽이는 소리가 나고 페달질이 뻑뻑하다. 이틀 동안 바닷바람을 맞고 비를 맞으며 달렸더니 체인이 벌겋게 녹이 슬었다. 이틀 전 집을 나서기 전에 기름을 듬뿍 먹여 두었어야 하는건데... 교훈이다.


카메라를 노려보는 사마귀


섭지코지 진입로 앞에서 황씨와 헤어졌다. 황씨는 잘 갈 것이다. 황씨보다는 내가 걱정이다. 이번에는 GPS에 의존하지 않고 지도와 표지판을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쓸쓸하다.

농기계 수리점이나 오토바이 수리점을 찾았다. 부탁해서 체인에 녹 제거제를 흠뻑 먹여야 할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다. 지표가 되는 미니미니랜드를 표지판에서 찾았다. 우회전. 26km 가량. 수산리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길가다가 대형마트가 보이길래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왔다. 마트에서 녹 제거제를 팔고 있다. 하나 사서 녹이 슨 부위에 듬뿍 도포했다. 땟국물이 흘러 내린다. 브레이크를 조였다. 아저씨들 몇몇이 내가 자전거를 이리저리 손 보는 모습을 지켜본다.

성산에서 수산리로 향하기 직전. 아직은 완만.

10.30am. 쭉 뻗은 도로를 따라 고개를 몇 넘어 왔다. 금세 고도가 78m까지 올랐다. 속도는 별 의미가 없어 GPS의 디스플레이를 고도계로 맞춰 놓았다. 바람이 거의 안 불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살짝 비친다. 오늘은 정녕 하늘이 나를 밀어 주려는가.


그림같은 길. 한국이 아니야...


자기 최면: 이건 업힐이 아니야...

꾸준히 업힐이 계속되었다. 내리막이 없다. 전혀 없다. 고도는 120m까지 올라갔다. 주위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제주 주변에 널려 있는 오름(새끼 화산)들이 하나둘씩 사방에서 나타난다. 마을이 끝났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허벅다리가 묵직하다.


마을을 벗어나자 금새 먹구름이 몰려왔다.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비옷을 챙겨 입었다. 강 약약 중간 약약, 빗줄기는 굵어졌다 얇아졌다를 반복한다. 코끝에 빗방울이 맺혔다. 눈썹을 따라 옆 볼기를 타고 빗물이 흐른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시야가 흐릿하다. 손가락으로 대충 안경의 물기를 닦았다. 업힐은 여전하다. 비옷 속은 훈훈하다. 비옷 속은 땀으로 절은 셔츠의 물기로 척척하다.


잠시 쉬며. 화면을 빼곡히 채운 제주도 일주 도로 웨이포인트. 직선은 성산에서 제주까지의 직선 경로.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한 두 대씩 차가 지나간다. 그들은 힘겹게 고갯마루를 향해가는 나를 위해 중앙선을 넘어 건너 차선으로 비켜간다. 제주도에서는 차량이 크랙션을 울리는 경우가 서울과 다르다. 서울에서는 '저리 비켜 이 자식아' 라는 뜻인데, 제주에서는 '제가 뒤에 있습니다 이제 지나갈께요' 라는 뜻이다. 고맙습니다.


저건 메밀 아닌가?


해안도로에서는 절대 구경할 수 없는 종류의 풍경


지긋지긋한 업힐

비바람이 후드가 자꾸 벗겨져 손수건으로 묶었다. 업힐은 여전하다. 340m까지 올라왔다. 길섶에 자전거를 세우고 스니커즈를 하나 씹었다. 물은 벌써 2/3를 마셨다. 이렇게 비를 맞는데도 땀이 많이 나나 보다. 다리를 눌러보았다. 괜찮다. 어쩌면 아침에 타이레놀을 삼켜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4km만 더 가면 산굼부리다. 산굼부리에서 남은 스니커즈를 먹고 좀 쉬자.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목장에는 말들이 비를 맞으며 몇몇씩 떼를 지어 우두커니 서 있다. 말 등 위로 파닥파닥 부딪혀 튀는 빗줄기가 보인다. 꼬리와 갈기가 젖어 축 쳐졌다. 콧구멍으로 푸드득하는 수증기가 뿜어 나온다. 그들이 내딛고 있는 땅은 물이 고여 진창을 이루었다. 저것들이 서러브레드 종일까? 하여튼 조랑말처럼 작은 토착종이 아닌 늘씬하게 잘 빠진 경주마다.


호기심 많은 녀석. 슬슬 다가온다.


그리고 옆눈으로 쪼개본다.

산굼부리가 나타났다. 비가 그쳤다. 비옷 소매에서 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자전거 보관소를 찾았지만 안 보여서 매표소에 부탁해 매표소 뒷켠에 자전거를 세웠다. 쫄딱 젖었다. 가방을 열어 뒤집으니 물이 쏟아진다. 일부분 방수가 되는 가방이나 지퍼 틈새로 물방울이 스며들어가 바닥에 고인 것이다. 다행히 출발 전에 짐을 모두 비닐봉투에 싸 놓아서 젖은 것은 별로 없다.

길게 숨을 들이키면서 잠시 쉬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며 남은 스니커즈를 우걱우걱 씹었다. 산굼부리의 전체 조망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쪽의 햇빛이 비치는 아열대성 식물군과 남쪽의 온대성 식물군의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내심 기대하고 왔지만 빙 에두른 울타리는 특이한 화산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산굼부리 내부로의 진입을 막고 있다. 중앙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 오른다. 대체... 아무리 보호해야할 관광지라지만 왜 이따위로 만들어 놓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특이한 화산 형태, 산굼부리.


억세밭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길을 막아 놓았다. 숲속의 공지를 돌아다녔다. 생태 체험장이라던지 자연수목림이라던지 따위로 불리는 것들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산림욕을 한다는 말을 한다. 내가 강원도 촌뜨기라서 그런지 영 정이 안가는 서구화된 도시민들의 가엾은 한숨처럼 들린다. 오죽이나 '숲'이란 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면 그럴까 싶다.


'모든 숲속의 공터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어떤 신화학자(고고학자던가?)가 말했다. 누군지 기억 안난다. 공감하지만 이 공터에 이름 붙이기가 좀 민망하지 않을까.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셨다. 거의 수재민 꼴이다. 짐을 땅바닥에 풀어 헤치고 다시 정리했다. 비에 젖은 체인에서 물기를 닦아내고 녹 제거제를 듬뿍 뿌렸다. 녹이 벗겨지면서 금속이 삭아버리든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 짐을 싸고 비옷을 개어 짐받이에 묶고 짤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짰다. 사람들이 많아 땀에 절은 웃옷을 벗어 짜기가 좀 뭣하다.


다시 출발. 길이 아름답다. 숨막히게 아름답다.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이마에 땀방울이 벙글벙글 맺힐 지경이다. 430m에 이르렀다. 미니미니랜드를 지나쳤다. 힘들더라도 차라리 이 리듬 그대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에 힘을 주었다. 500m, '제주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정말 숨막히게 아름다운 숲길이었고, 이제 고생은 끝난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또 오르막이다. 대체 이놈에 오르막은 끝이 있긴 한건가 싶을 정도다. 이제 기어는 1:1, 거의 걷는 수준에 이르렀다. 560m, 516 도로와 교차점에 이르렀다. 아 살았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내리막길이 뻗어있다.

어..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니 또 오르막이다. 대체 어디까지 오르막인가. GPS의 고도계가 640m까지 올라가고서야 겨우 오르막이 끝났다. 이제 제주시까지는 14km가 남았다. 1pm이다.

쉬지 않았다. 귓가를 무섭게 가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60kmh로 미친듯이 내려간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업힐 지옥에서 구원받았다.


제주마 방목지 앞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아직 땀이 덜 말랐다. 벤치에 드러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흐르는 듯한 햇살을 바라보았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보니 1:20pm.


햇살에 당하고 젖어 불은 발


젖어서 축 늘어진 가방

황씨는 제주시에 도착했을까? 나는 그에게 3pm에 전화할 꺼라고 불안하게 말했다. 아침에 헤어질 때에는 내가 3pm까지 제주시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다운힐에서 60kmh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다. 그 이상은 무섭다. 돌 하나 튕길 때마다 마구 틀어지려는 핸들을 통제할 자신도, 연속된 굽이에서 제때 핸들을 꺾어 맞은 편 차량이나 이쪽 난간에 박지 않고 나아갈 자신은 아직 없다. 그러나 60kmh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보다 더한 긴장과 스릴을 맛보게 한다. 20분이 채 안되어 제주시, 시청 앞에 도착했다.

다시 자전거의 짐들을 꺼내 벤치에 펼쳐놓고 말렸다. 황씨에게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다. 배터리가 부족해 꺼놓은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일단 시청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 짐을 펼쳐놓고 말리거나 자전거를 정비하기가 뭣하다. 삼성혈로 향했다. 삼성혈 앞 수퍼에서 작업용 장갑 한벌과 하얀 목장갑 한벌을 구입했다. 그리고 삼성혈 옆 주차장에 쭈그리고 앉아 공구를 꺼내 자전거를 분해하여 온갖 종류의 얼룩이 진 프레임과 디레일러, 체인 등속의 때를 목장갑을 찢어 깨끗이 닦고 다시 조립하여 녹 방지제를 뿌렸다.

다운힐에서 하도 브레이크를 잡아 림에 녹아내린 고무 흔적이 남아 있다.

황씨와 3pm 쯤 통화하고 GPS 포인트를 알려주었다. 3:30pm쯤 제주민속박물관 앞에서 랑데부하고 잠시 쉰 후 시청 뒷편의 오분자기 뚝배기로 유명한 식당에 갔다. 오분자기는 전복하고 비슷하게 생긴 놈인데 된장과 함께 뚝배기에 끓여 먹으면 민물 달팽이(다슬기?) 토장국처럼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배를 대충 채우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시청 앞에서 빈둥거렸다. 축제 행진을 하려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건 아저씨가 악수를 하며 돌아다닌다. 황씨는 재빨리 비켰는데,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가 악수를 청해 얼떨결에 손을 잡았다. 그가 악수를 안 받으려는 나를 툭툭 치면서 한 말은 이랬다; 나는 제주 시장이요. 사람을 공손하게 대해야 하는데 잘 안되는 편이다.


갈옷을 입고. 두레기를 들고 춤추는 아줌마 아저씨들. 갈옷: 때가 안 타는 제주 전통 작업복이라니, 몹시 흥미가 생기는 옷이다.


저 멀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축제에 참가해 주셨다. 이들이 축제에 참가해 활짝 웃고 있는 동안 발리에서는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축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기 전에, 그러니까 행진한답시고 인파가 거리를 메우기 전에 제주 신시가지의, 우리가 숙소로 정한 찜질방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고등어 구이와 한치물회를 시키고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청해원의 한치 물회의 양은 감동적이다. 고등어 구이도 맛있고 밑반찬도 풍성하다. 듣자하니, 황씨가 오는 길에 별다른 고생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밥 먹고 술 마시는 내내 오늘 올랐던 성산-성판악 코스가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고 땀나는 도로다. 왜 이런 도로가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소개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술 마시면서 말했다. 내 생각에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배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여,

첫날: 자전거를 빌리고 자전거 빌린 김에 11번 국도와 1112번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교래 입구)에 데려달라고 해서 그 지점에서 출발하여 성산->서귀포까지 (시원하고 아름다운 숲과 대관령 필의 끝없는 내리막 길, 해안 도로에서 오징어에 소주 한 잔)
둘쨋날: 서귀포->중문->대정 (중문에 집중된 관광단지 관람)
세쨋날: 대정->제주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
네쨋날: 한라산 등반 (또는 여러 박물관들, 용담, 만장굴을 포함한 제주 시내 관광)

이다. 하지만 성산포에서 죽어도 해뜨는 걸 봐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해 뜨는게 신기한가? 해 뜨는 걸 지긋지긋하게 봐서 별로 흥미가 없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찜질방을 찾아갔다. 자전거를 주차장에 거치하고 욕탕에 들어가 비바람에 젖은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어주자 살 것 같다. 휴일이라 사람들이 바글거려 시끄럽지만 그래도 편히 잠들었다.

10/2

황씨는 오늘 한라산에 올라간다고 한다. 난 안 간다고 어젯밤 말했다. 한라산은 재미 없다. 황씨에게 한라산 가봤자 별 거 없다고 몇 차례 얘기했지만 그의 제주 여행에서 한라산 등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말리지 않았다. 만일 한라산을 포기했더라면 그는 제주 해안가에 퍼져있는 거의 모든 관광지를 다 둘러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여행과, 사랑의 황금율은,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후회할 일을 꼭 해야 한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라도.

제주식 한정식이 과연 어떤 것인지 맛보려면 오후 3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3시에 돌아오려면 오전 6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별 문제 없지만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고생이 심할 것이다.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길이 평탄해서 쉽다고 말해줬다. 가기 전에 황씨는 내 핸드폰과 그의 핸드폰을 찜질방 프런트에 맡기고 충전을 부탁했다. 내일은 전화로 연락이 되어야 하니까.

정말 6am에 나갔다. 난 7am까지 잤다. 황씨라면 백록담에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흰 사슴을 안개 속에서 힐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들 게임기 앞에서 잔 탓인지 밤새도록 게임 하려고 왔다갔다 하는 애들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한라산에 가는 대신 나는 제주 시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음식을 먹고 박물관 구경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일러 어제 미뤄두었던 빨래를 마저 하고 말리면서 '맛있는 관계'라는 만화책을 봤다. 꽤 재밌을 것 같은 만화였지만 역시 기본 포맷은 이리저리 얽혀있는 애정 관계다. 하품이 나올 때쯤 만화책을 덮었다.

9am, 충분히 쉬었으니 나갈 시간이다. GPS는 켜지 않았다. 해안도로를 도는 트랙로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어제 출발전에 모두 지웠고 GPS에 성산-제주 까지의 산림로의 트랙로그를 길이길이 보전해서 집에서 한번 훌터볼 작정이다.

유리네 식당에 갔다. 똥돼지, 아니 흑돼지를 넣어 만든 김치찌게를 주문했다. 97년 유리네 식당을 방문한,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의 수기 밑에서 식사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0년 전 고향맛을 여기서 경험하게 되는군요.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노무현은 뭘 먹었을까? 갈칫국? 성게미역국? 이 집은 맛이 별로고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인기가 넘쳐 아침부터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가까이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왔지만 희안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김치찌게의 양은 꽤 되는데 맛은 별로다. 두 번 먹어서 두 번 실패한 케이스다.

그런데 왜 자꾸만 흑돼지라고 하는거지? 똥돼지를 똥돼지라고 부르면 안되는 이유가 뭘까. 환경연대 같은 곳에서는 사람 똥을 리사이클링해 먹고 튼실하게 살이 찐 그 맛있는 똥돼지를 친근한 이름 그대로 널리 보급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흑돼지는 토종 돼지라서 근수가 수입돼지에 비해 모자라는 편이지만 제주도를 비롯한 몇몇 산간 지방에서 아직도 키우고 있다. 사람 똥은 소화가 되다만 영양의 보고다. -이상-

식사를 마치고 제주 종합 운동장에 들러 자전거를 다시 손 봤다. 기어가 뻑뻑해서 조이고 조정을 새로 하고 브레이크 이격도 제대로 손 봤다. 브레이크 패드가 많이 닳아 있다. 마음에 들 때까지 조정했다. 옆에서는 RC 카를 조정하는 아저씨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히 웃고 있다.

느적느적 돌하르방이 쓴 모자처럼 생긴 제주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돌하르방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걸로 아는데 제주 전역에서 본 것들은 모양이 하나 같다. 모두 짝퉁 카피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제주 전역에 널려있는 용암-구멍이 뒤숭숭 뚫린 현무암 돌하르방이 동자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아는데... 확실치 않다. 황씨가 전화했다. 정상에 다다르면 전화하라고 말한 바 있다. 11:30am 그는 정상에 올랐다. 다음 전화는 성판악에서 제주시행 버스를 탈 시점에 하라고 말했다.

매월 첫번째 일요일은 박물관의 입장료가 없단다. 전시물의 수준은 그저 그랬다. 한라산이 120만년 전에 생성되었고 산방산이 70만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것 정도를 배웠다. 신석기, 구석기 유물은 들르는 박물관에서 볼 때 마다 짜증이 난다. 전세계 거의 모든 박물관에서 항상 전시하는 그 흔해빠지고 심하게 말해 파렴치한 돌덩이들에는 아무 특색도, 신비감도, 심지어 재미 마저 없다. 어떻게 전 세계의 원시 인류는 하나같이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똑같은 방식으로 석기를 제작했을까? 어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이라는 것은 대체로 헛소리에 가깝단다. 공감한다. 신석기 아인슈타인 한둘 빼고 나머지는 모두 클론 같은 놈들이다. 21세기에도 사정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면 신석기는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고고학자들이 자기들이 발견하고 싶은 것만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시물이나 전시관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국립박물관임에도 한산하다. 어쨌거나 모든 여행의 출발점은 박물관이 되어야 옳겠지만 제주도에 하이킹하러 온 사람들에게 유물이 눈에 띌 지는 의문이다. 박물관에서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박물관 바깥의 야외 전시장을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돌아다녔다.

12시가 좀 넘어 배가 출출해서 그 유명한 도라지 식당에 찾아갔다. 이번에는 갈치국이다. 갈치국을 끝으로 나는 제주도에서 먹어볼 수 있는 특색있는 식사 코스를 하나도 남김없이 경험한 셈이 된다. 지금 이 시간에 한라산에서 삽질하고 있을 황씨를 생각하다보니 목이 메어 맛있는 갈치호박국을 조금 남기고 말았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 갔다. 오, 이거 예상 밖인걸. 전시물 수준이 훌륭. 비싼 값을 하는군. 전시물을 눈 높이에 맞춰 하향 배열한 디스플레이 방식은 수긍이 가지만 그래도 시점과 전시물 사이가 많이 벌어져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흠일 뿐, 전시물과 설명이 썩 괜찮은 박물관이다.


민속 자연사 박물관 외부 전시장


전시용 제주 똥돼지. 통시라 불린다. 제주도에서는 망자의 음식으로 돼지고기를 관에 올려놓기도 한다.


할매당이라고 하는데, 물색(나무에 걸어놓은 갖가지 천 쪼가리)이 별로 안 달려 있다.


박물관 야외를 돌아다니는 중에 바깥에 장터가 벌어졌는지 시끄럽다. 박물관 옆이 제주 민속 관광 타운인데 아마도 축제 때문에 장터를 벌여놓은 것 같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장터에 가서 놀았다. 이것 저것 공짜루 주는 음식들을 집어먹고 떡메도 두들기고 도자기 만드는 것 따위를 구경했다. 술도 몇 잔 얻어 먹었다. 그저 갈옷이 탐이 났는데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황씨한테 전화가 와서 약주는 그만 마셔대고 만나기로 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황씨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려오는 길에 죽죽 미끄러져서 여기저기 생채기가 보이고 팔 다리 할 것없이 온통 흙 투성이다. 내가 '맛따라 길따라'를 하며 한가하게 시내를 배회하는 동안 그는 온통 자갈밭 투성이인 한라산을 샌달을 신고 등반하며 어리버리 올라온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안개와 심한 바람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앞 사람의 발 뒤꿈치만 쳐다보며 올라갔다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정상에서 멍하니 20분을 보내고 다리가 풀린 상태로 악전고투 끝에 산을 내려왔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그가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에 먹은 컵라면 하나, 초코바, 아침에 사간 물은 일찌감치 떨어졌다.

여행과 사랑의 황금율은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후회할 일을 꼭 해야 한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라도. 다시는 한라산에 안 간다고 말한다. 그가 한라산을 내려오면서 품은 실낫같은 희망은, 그래도 내려가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담배 한 대 빨고 잠시 쉰 다음 꽤 유명하다는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서귀포에서 먹었던 회를 기억하며 이번에는 스끼다시는 콧방귀를 뀌며 쳐다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주도 한정식은 뭐가 다를까, 기대하며 밥상이 나오길 기다렸다.

나왔다. 해물뚝배기 각자 한 그릇, 한치회, 오징어조림, 한치와 새우를 넣은 해산물 샐러드, 고등어 조림, 그외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정식 상차림의 시시한 반찬류. 어떻게 된 일인지 제주 밥상의 감초격으로 빠지지 않는 생선젖이 없다. 이건...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한정식이다. 이건 제주도 음식도 아니다. 그냥 20세기 이후 한국에 정착한 정체불명의 빌어먹을 '정식', 웃기는 '관광정식' 바로 그것이다. 때마침 창 밖으로 관광버스가 들이 닥치는 것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걸 먹으려고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놀랍다. 어쩌겠나. 먹어야지. 나는 아침, 점심, 간식까지 먹어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황씨가 불쌍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건너편의 물항식당으로 가는건데. 아내는 물항식당이 제주항 부근에 있다고 말했지만 이번에 내가 두 번째 확인한 바로는 제주항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 같다. 물항식당에 가면 회라도 실컷 먹었을텐데!

그래도 황씨한테 미안한 것은 없다. 그는 제주도에 아무 생각없이 왔다. 만일 내가 빵과 우유만 먹고 돌아다녔더라면 그 역시 빵과 우유만 꾸역꾸역 먹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맛따라 길따라에 괜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은 오히려 내 쪽이다. 먹는데 돈을 많이 썼다.

자, 배를 채우고 자전거 정비할 겸 식당에서 물수건을 몇 장 얻었다. 제주항으로 출발했다. 제주공항과 평행한 좁은 도로를 질주했다. 비행기가 때마침 활주로를 지나가고 있다. 미친듯이 패달을 밟았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5:50pm. 간단히 컵라면 둘을 사들고 들어갔다. 수속이 바로 이루어져 자전거를 끌고 탑승구를 지나쳤다.


자전거를 타고 항구를 가로질러 배의 화물칸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올 때보다 사람이 많다. 엄청나게 많다. 분위기도 좋다. 온 사방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고스돕 판이 벌어졌다. 우리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 갑판에서 궁상스럽게 먹었다. 맥주 대신 백세주를 마셨다. pda로 책을 읽다가 열한시쯤 스르르 눈이 감겼다.

10/3


날이 밝아온다.

당산 화력 발전소를 지나간다. 저번 주에 우럭 낚시를 하던 곳이다. 배의 속도는 19노트 가량. 조류가 거세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단다. 배가 많이 흔들린다.

샤워를 마치고 책 좀 읽다가 배에서 내렸다. 역시 가장 빨리 내렸다.


인천연안항 청사 앞에서 자전거를 정비했다. 깨끗이 닦고 녹 제거제를 뿌리니 자전거가 훨씬 잘 나간다. 녹 방지제는 황씨에게 줬다.

원래는 제물포역부터 차례로 훌트면서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에 타려고 했는데 김씨 아저씨가 점심 한 끼 사준다길래 송내역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기로 했다.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웠다. 길을 몇 번 헤메고 황씨와 한 번 헤어졌다. 간신히 다시 만나 송내역 근방까지 왔다. 인천 도로는 오고 갈 때마다 개판이라는 생각. 황씨는 지갑을 두 번 떨구고 사고도 한 번 났다. 긴장이 풀린 탓일께다.

송내에서 김씨 아저씨와 형수님을 만나 소주에 삼겹살을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우리가 9인분을 먹었단다. 엄청나게 먹어댔군. 김씨 아저씨와 헤어져서 김포공항 역으로 향했다. 평균 25~30kmh로 나갔다. 자전거 진입이 금지된 도로지만 무시했다. 그럼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달란 말이다. 한강시민공원을 통해 강변 자전거 도로로 진입했다.


성산대교 앞에서 황씨와 헤어졌다. 나는 성산-성판악 주행을 통해 이전보다 근육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더 이상 근육이 아프지 않다. 황씨도 그렇다. 다음 여행은 지금보다 수월할 것이다. 다음 여행에서도 맛따라 길따라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 사람 더 꼬시면 텐트와 코펠을 들고 야영하면서 다닐 수 있다. 황씨는 김씨 아저씨를 꼬셔보려고 열심이다. 글쎄? 안 먹힐텐데... 나나 황씨나 자전거 얘기만 늘어놓으니까 만나기를 꺼리는 것 같다.

사람들로 버글거리는 자전거 도로를 갑갑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집에 도착했다. 4pm을 넘겼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피자를 시켜 먹었다. 영화 몇 편 다운 받아 차례대로 구경했다. 성산-성판악 코스의 트랙로그를 다운받아 살펴보고 낄낄 웃었다. 내가 미쳤지.


이렇게 해서 언제나 변함없이 비땀으로 얼룩진, 비비린내 나는 여행을 마쳤다.

꽃 사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