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exed air

여행기/Mexico 2003. 3. 18. 05:46
2003.3.16

고작 이틀 여행한 미국에 관한 단상: LA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조그만 기계에 지폐나 크레딧 카드를 넣고 지극히 제한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USB 포트는 물론이고 cd-rom이나 플로피를 엑세스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브라우저는 말 그대로 브라우징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유로운 나라인 것 같지만 이런 식으로 무슨 무슨 룰이다 규칙이다 원칙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자유롭다는 것 하나를 위해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가 많다는 점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나은 점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썩 마음에 들지 몰라도 내게는 이래저래 정 떨어지는 나라다.

우유를 마셨다. 팩 겉포장에는 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염소젖 맛이 났다. 동네에서 벌어진 애들 축제를 구경했다. 이 동네에는 그런 것 외에 볼거리가 아무 것도 없었다. 애들 축제라서 부모들은 히주그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기억났다. 말레이지아의 타이핑(태평)이 이랬다. 그저 빈둥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던 곳.

식사는 매번 감동적이었다. 2 USD 안팎에 뭔지 모르는 음식과 콜라를 먹었다. 먹다가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음식이 맛있는 것일까. 옥수수 가루로 만들어 딱딱하게 튀기거나 찐 베이스에 고기와 야채를 듬뿍 얹고 거기에 고추 소스를 듬뿍 뿌린다. 모든 음식이 그런 모양이다. 그 두께가 한 입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컸다. 곁들여 먹는 고추와 오이 절임 맛은 환상적이었다. 따뜻한 그것을 씹다가 반쯤 얼은 콜라를 들이키면 목구멍부터 위장이 상쾌해진다. 이름이 뭘까? 무수한 종류의 또르띠야 중 하나같다. 너무 잘 먹어서 벌써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중동에서 앙상하게 말라가던 시절이 생각나 목이 메였다.

멕시코에서는 실내에 들어서면 모자를 벗는 것이 일종의 예절이다. 번번이 예절을 잊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맥주는 보통 식스팩으로 팔았다. 수퍼에서 여섯개들이가 43페소, 그러니까 4$ 미만. 여섯개를 다 먹어치울 수는 없고 한 두개만 사먹으려니 그게 문제다. 코로나 따위 흔해 빠진 것 말고... 떼까떼 Tecate를 먹고 싶다. 보자마자 그놈이 맛있어 보였는데 알고보니 한국의 카스 같은 '국민' 맥주였다.

아침에는 안개가 끼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형언할 수 없으리만치 멋진 달이 떠 올랐다. 대낮의 하늘 색깔은 말 그대로 라피스 라즐리 였다. 이렇게 멋진 하늘과 이렇게 멋진 달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배짱이처럼 살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멕시칸은 의외로 부지런했다. 게을러터진 동남아의 못되먹은 남자새끼들, 여자들에게만 일을 시키고 탱자탱자 노는 녀석들과는 조금 달랐다. 하여튼 동남아에서 제일 보기 싫은 모습이 남자들이 일은 안하고 그늘에 자빠져 시간을 죽이며 술과 마약에 쩔어서 쉽게 돈을 벌려고 잔대가리 굴리는 모습이다. 그렇게보면 일과 여가와 삶을 사랑하는 멕시칸이 어쩐지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대낮부터 바에 쳐박혀 술을 퍼 마시는 녀석들이 있다. 흠... 온지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 많은건가?

멕시코 여행은 만만치가 않다. 이동비와 숙박비가 장난이 아니다. 이 추세라면 한달에 700달러는 우습게 나갈 것 같다. 한번 이동에 3-40 USD가 날아갔다. 달리 말해 한꺼번에 왕창 움직이고 짱 박혀서 유스 호스텔을 전전해야 할 것 같다. 일단 멕시코시티에 가면 유적지에서 엄청나게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멕시코 국내 학생증을 만들어야겠다.

인터넷으로 아주 많은 일들을 처리 했다. 이제 경로가 슬슬 잡힌다. 로스 모치스는 쿠퍼 캐년으로 가는 입구이자 출구다. 쿠퍼 캐년으로 가는 기차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정평이 나 있다. 기차는 연착하기 일쑤고 끄릴에서 묵는 하룻밤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된다나... 평생에 딱 한번 밖에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땅인데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 피곤해서 안 가기로 했다. 세계 최고, 세계 유일에는 신물이 넘어온다.

깐꾼에서 쿠바의 아바나를 왕복하는 티켓을 230$ 내외에 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쿠바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기쁘다.

오수연, 이라크 파견 문인. 2년 간의 인도 생활을 바탕으로 '부엌'이란 작품을 냈다.

오늘밤에도 마리아치의 쌩음악이 아랫층에서 흥겹게 들려온다.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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