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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Mexico 2003. 3. 19. 12:32
Los Mochis -> Guadalajara -> Guanajuato. 22hrs.

멕시코에는 세 종류의 시간대가 존재했다. 티후아나는 바자 캘리포니아의 GMT-8, 로스 모치스 부근은 -7, 그리고 과나후아또는 -6. 모치스에서 버스가 왜 안 오냐며 이 사람 저 사람 괴롭히다가 그 동안 시각을 안 맞추어 한 시간 일찍 와서 뻘짓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떠나는 마당에 인터넷 주인은 한 시간 이용하면 십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은근히 건네주며 빙글빙글 웃는다. 숙소 녀석도 청소하다 말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빙글빙글 웃고, 숙소 밑의 토플리스 바의 기도 녀석도 빙글빙글 웃었다.

교통비와 숙박비가 워낙 펑펑 나가서 앞으로 주로 밤차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단지 한 시간 늦잠을 잤다는 이유로 마사뜰란행을 포기하고 과달라하라로 가기로 했다.

과달라하라에 아침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버스 터미널에 맡기고 쎈트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았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멕시칸과 눈이 맞아서 난 영어로 떠들고, 그는 에스파뇰로 떠들었지만 어떻게 잘 되서 택시를 타고 10킬로미터를 싸게 달렸다. 어떻게든 대화가 된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시내에 볼거리가 몰려 있어 편했다. 박물관 3, 성당 4, 광장 3, 관공서 빌딩 2, 고풍스러운 18세기 극장 하나, 이렇게 돌아다녔는데 입장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아서 놀라웠다.

관공서 빌딩의 계단에 그려진 어떤 화가의 30m짜리 벽화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이렇게 멋진 색채의 혼합은 처음 본다. 붉은 갈색의 폭풍, 물어물어 화가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두었다. 그 화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마티스가 생각났다.

이 빌어먹을 가이드북은 버스 번호만 적어놓고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안 적어 놨다. '버스 터미널'이 에스파뇰로 뭔지 몰라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아무도 모른다. 맞는 버스 번호인 것 같아 잡아 타고 운전수에게 꼭 버스 터미널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건만, 버스는 엉뚱한 곳을 달리다가 생판 이상한 깡촌에 도착했다.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는 40분 후.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를 쳐다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수줍어서 말도 못 걸고 내 얼굴만 쳐다보면서... 누군가 'hello'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데리고 왔다. 내가 질문을 하고 그가 간신히 대답을 하면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내가 묻는 말에 그가 곧잘 영어로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아... 깡촌... -_-

10분쯤 그짓을 했지만 박수치고 휘파람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묻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무도 날 볼 사람이 없는 곳에 오면 하게 되는 이상한 짓거리들을 조금 했다. 아무도 안 보니까... 한 녀석을 붙잡아 서로 등을 맞대고 열 발자국 걸어간 다음에 뒤로 돌아 빵 쏘면 누가 더 멋있는 폼으로 죽는 연기를 하나... 마을의 청년들과 일대일로 서부식 결투를 벌였다. -_-

그짓으로 30분을 보내고 나니 선인장만 횡하니 서 있는 그곳에서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 터미날을 쎈뜨랄 데 아우토부세스 Central De Autobuses 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망할 놈에 가이드북에는 그런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정보를 적어놓지 않았다. 에스파뇰 모르면 죽으란 말이냐?

과나후아또 행 버스는 이루 말할데 없이 럭셔리 했다. 이렇게 럭셔리한 버스는 처음 타 봤다. 하긴 이제껏 시간당 30페소로 계산했는데 이번에는 시간당 60페소로 계산해야 했다. 4시간에 256페소(25$)가 나와 기가 질려 버렸다. 어쩌나, 버스 터미널의 길이가 2-3킬로미터고 모듈이 6개나 있고 거기에 있는 버스 사무실이 100개가 넘고 그중 열 군데 이상을 배낭 메고 표를 구하러 다니다가 기진맥진해 버렸고 시간은 자꾸만 가고 있는데...

그래서 과나후아또에 저녁에 도착했다. 터널을 지나서 위로 기어 올라가니까 도시 중심부였다! 오오... 유네스코는 그래서인지 아예 도시 전체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해 버렸다. 그나저나 이 빌어먹을 가이드북에는 싼 숙소가 딱 한 군데만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숙소는 종종 사람들이 몰려 방을 잡기가 힘들다고 적혀 있었다. 왠걸, 들어가니 일본인 둘 밖에 없었다. 지난 5일 동안 여행자라곤 지금 본 일본인 둘이 전부다.

광장 벤치에 앉아 옥수수와 콜라를 먹었다. 아무 것도 안해도 흐뭇하다. 어쩌면 여기서 며칠 퍼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배도 부르고... 더 먹고 싶어도 배가 차서 먹지 못한 적은 중국 여행 할 때 빼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나저나 과달라하라에서 부터 주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는 혼자 와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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