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ness

여행기/Mexico 2003. 4. 1. 09:39
골목의 벽에 종종 적혀 있는 에스빠뇰:

* Bush terrorista! 흠... 부시는 테러리스트다?
* No a la guerra en iraq. 'guerra'는 전쟁. 추측해 보건대 이라크 전쟁 반대 라는 뜻인 듯.
* llama tu mama. 'tu mama'는 your mother이니까, 이건 필시 무지 심한 욕인 것 같다. 써먹어야지~

그란데 왜 라 꾸까라차가 바뀌벌레인 술 몰라술까? 조금만 생각하미엔 알 쑤 있었는데... cockroach가 바뀌벌레니까. 까사 블랑까 casa blanca.. 위떼 호우쎄 white house. 까사 네그로 casa negro... 블라끄 호우쎄 black house. 쎄르베싸 도스 에뀌쓰 cerveza dos equis... 도우블레 에뀌스 비르 double x beer? 벽보와 깐빤을 보면써 오늘도 간딴히 에스빠뇰을 공부앴다.

Sci-fi author Cory Doctorow recently received a lot of attention for releasing his first novel, Down and Out in the Magic Kingdom, as a free download. The book has been downloaded more than 75,000 times and been the subject of stories and reviews in newspapers all over the world ...

흠. 코리 닥터로우가 누굴까. 소설은 재미있을까.

하루종일 안개비/가랑비가 내렸다. 이 비를 누가 뭐라고 부르던데 알아 들을 수가 없으니 잊어버렸다. 모자를 쓰고 천천히 광장으로 걸어갔다. 광장에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는 것은 멕시코로 들어와서 처음 보았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워낙 할 일이 없어 표라도 예매할까 해서... 매표원이 묻는다. @#%#$!$#$%? 빨렝께. @%##@$ㅆ@#!$@#!$!#? 음... 마냐나... 디에스 띠엔떼. ^^%&$%%$^? 오첸따? 오케이. 놈브레? 씨. 이렇게 아주 능숙한 에스파뇰로 버스표를 끊었다.

에스파뇰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 이제 1에서 10까지 알아들울 수 있게 되었고 그 수준으로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하던 어깨를 으쓱한 후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는 한 1분쯤 떠들고 나서 하하 웃고는 어깨를 두드리고 아미고, 비엔 비아헤! 하고 사라졌다. 그가 가랑비에 관해 무슨 얘기를 했는데 잊어 버렸다.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지만 자존심 강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점심을 먹었다. 패스트푸드 점이라지만 이걸 과연 패스트푸드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생고기에 양념을 발라 철판에 굽고 치즈를 녹이고 토마토와 당근을 썰고 빵을 굽고 베이컨을 굽고 계란 지단을 만들고 차곡차곡 얹어 10분 만에 갖다 주었다. 이름은 그냥 '스페샬'이었다. 이건 패스트 푸드가 아니다. 날재료를 처음부터 가공했으니까. 그래서 신음이 나왔다. 설렁탕은 패스트푸드일까 아닐까? 이런 저런 이유로 패스트푸드 라는데 한 표. 앞으로는 패스트푸드라면 이를 갈면서 설렁탕을 먹는 사람을 보면 비웃어줄테다.

다시 비를 맞으며 인터넷 까페에 갔다. 한 시간에 5뻬소. San Cristobal de las Casas는 멕시코에서 이제껏 인터넷을 사용한 곳 중 가장 싼 도시. 그래서 2시간을 넘게 사용하면서도 부담이 없다. 다음에서 latinamerica 까페와 5불 생활자 까페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꾸바로 들어가는 100불 짜리 왕복 선박표를 깐꾼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꾸바에 대한 무라까미 류 식의 낭만이 내게는 없다. 그냥 까스뜨로의 장기 독재 집권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이고 교육수준이 워낙 높아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할 일이 없어 거리에 나가 창녀가 된 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정도. 꾸바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숙박비만 최소한 하룻밤에 15불 이상이며 먹이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 등등등 이었다. 무라까미 류의 소설을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집어던진 기억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적당히 그럴듯하게 포장한 감상주의가 싫다. 내가 감상주의자니까. 꾸바는 제끼기로 했다. 꾸바에 관해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꾸바는 중미에도 남미에도 속하지 않는 나라인 것 같다는 점. foot print mexico and central america와 lonely planet south america(shoestring series) 어디에도 cuba라는 나라는 없었다. 그럼 꾸바야, 너는 뭐냐? 스꾸바냐?

칠레가 2003년 3월 1일부로 무비자 국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보았다. 일단 급한 대로 별 이유 없이 만세!를 외치고, 잔머리를 굴려 어떻게 일정을 짜야지 칠레까지 갈 수 있을까 곰곰히 궁리해 보았다. 아니, 머리 속에서 지도와 경로를 그렸다. 빨렌께, 아구아 아술, 미솔헤 2일, 메리다, 우스말, 치첸 이싸 3일, 깐꾼과 이슬라 무헤레스에서 3일, 체뚜말 1일 하면 멕시코 일정을 바쁘게 끝낼 수 있다. 벨리스를 경유해 플로레스, 띠깔 포함해서 2일, 과떼말라 시티에서 빈둥거리며 2일, 안띠구아/치치까쓰떼낭고 3일, 다시 과떼말라 시티에서 싼 싸바도르로, 온두라스를 어떻게든 제끼고 니까라과로. 그 다음에 막막해졌다. 계획이 없으니까. 19일 소여. 니까라과, 꼬스따리까, 빠나마를 10일 이내에 통과하면 꼴룸비아는 앞으로 딱 한 달 후에 도착하게 된다. 4월 말. 오예. 5월 1일, 보고따에서 일정을 시작해서 꼴룸비아, 에꽈도르, 뻬루, 볼리비아, 칠레를 한달 안에 돈다? 정신 나갔군.

계획을 짜지 않았다.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여행자를 만나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숙소야 그냥 알아서 되는대로 찾아가고 아무 거나 먹고 볼거리 라고 가이드북에 적힌 것들 조금 보면 하루 일정 끝이다. 귀찮아서 에스빠뇰 공부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영어도, 한국어도, 스페인어도 모두 엉망진창이다. 가끔은 아랍어가 튀어 나와서 어이가 없었다. 인사할 때 살람 알레이꿈이라고 벌써 몇번째인지. 아랍 생각이 자꾸 났다. 이란, 시리아 따위의 나라가 그립다. 이라크에 안 간 것도 후회가 되었다. 전쟁으로 바그다드가 쑥밭이 되었을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500불 아끼지 말고 갔다올 것을...

이렇게 되는대로 여행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아랍의 무슬림에 대한 인상이 지나치게 좋게 머리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지 싶다. 그들을 별 이유없이 좋아했다. 사막 한 복판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에서 조그만 점이 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숨을 헉헉 거리며 달려온 꾀죄죄한 거지 소년이었다. 그는 그 먼 거리를 뛰어와서 날더러 자기 식구들 천막에 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했다.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을 하려고 사막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뛰어오다니. 찢어지게 가난한 주제에. 흥. 시리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십자군 성을 늦게 까지 둘러보느라 버스가 모두 끊겼단다. 택시를 타야 할 꺼라고 했지만 웃기지 말라고, 왜 벌건 대낮에 버스가 끊기냐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기다렸다. 내 옆에 한 청년이 서성였다. 너도 버스를 기다리냐고 물으니 대충 그렇단다. 버스는 안 왔다. 청년이 뭐라고 택시에 대고 말하니까 웃는다. 택시가 몇 대 지나갔고 한 대가 섰다. 청년과 내가 막 우기자 간신히 쉐어드 택시가 되어 1/20 가격으로 값싸게 돌아갈 수 있어 기뻤다. 청년 쪽을 돌아보고 너도 얼른 타라고 손짓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 녀석은 내가 택시를 안 잡자 택시 드라이버를 설득해 그 택시를 쉐어드 택시로 만들어주고 그게 제대로 될 때까지 지 할 일도 안하고 거리에서 날 돕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통해야 내가 그 사정을 알지! 고맙고 또 미안하잖아 임마! 레바논의 바알벡에서도 사정이 비슷했다. 이란에서는 정도가 심해 몹시 귀찮았다. 아니 이슬람 국가 전체가 그 모양이었다. 그런 족속들이 사는 나라가 미국의 침공을 받고 있으니 밤마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뉴스를 붙들고 전황을 아니 피해를 지켜보게 된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인간방패로 간 사람들은 전쟁에 의해 다치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무슬림들의 이방인에 대한 한 없는 친절을 경험해 보았을까? 그치들이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과 수천년 동안 사이좋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까? 그저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이라 미국이 힘이 강하건 개긴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랬다. 들은 바로는 내가 여행한 나라들의 친절은 약과라고 했다. 예멘과 이라크, 미국이 엄청나게 싫어하는 이 두 국가를, 친절의 축(axis of kindness)이라고 해야겠지.

친절한 나라들에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무슬림 국가 특히 아랍세계의 무슬림 국가는 그것이 문화와 전통과 맞물려 있어 그 친절함이 상대적으로 거대해 보이게 마련이지만, 친절한 나라들은 대체로 가난하다는 것, 그래서 소위 인간 냄새가 난다는 점.

멕시코는 잘 사는 동네라서 '친절력'이 조금 시들한 감이 있었다. 인간성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을 가려면 비자비가 얼마가 들더라도 값싼 곳으로 가야할 것 같다. 시급히 과떼말라로 직행해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돌아다녀야지 싶다.

날이 흐리고 거리는 일요일이라 을씨년 스럽고 비 맞으면서 걸었더니 추워서 이가 닥닥 떨리고... 중동에서도 떨면서 다녔는데 여기까지 와서 긴팔 입고 덜덜 떨면서 다닐 줄이야... 북위 12도의 열대 임에도 해발 2200m에 날 흐리고 비까지 오니 밤에는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잤다.

맥주나 한 잔 할까 했는데 오늘은 수퍼에서 술을 안 파는 날인가? 손님들이 술병을 들고 오면 노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왜 안파는겨. 슬프잖아. 에스빠뇰을 알아야 어제는 팔았는데 오늘은 왜 안 파는지 묻기라도 하지. 지난 16일 동안 멕시칸 중 영어를 말하는 사람을 딱 두 명 봤다. 비슷했던 이란에서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그나마 영어를 알아 들었는데, 여기서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들이 하나같이 에스빠뇰을 유창하게 내뱉었다. 그래서 하비따시온 리브레? 우노 노체, 꾸안또 꾸에스따 포르 노체? 데스꾸엔또 포르 화보르~ 소이 에스뚜디엔떼~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잠은 자야 할 것 아닌가... 3개월 동안 닭살 돋게 에스빠뇰을 사용할 생각을 하니... 으윽... 영어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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