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nque

여행기/Mexico 2003. 4. 2. 06:17
비가 오는 길을 모자만 쓰고 반팔로 닭살이 돋은 채 추적추적 걸어갔다. 거리에서 반팔로 돌아다니는 미친놈은 나 밖에 없었다. 광장에서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담배를 물었다. 춥다.

멕시코의 190번 국도, 따빠출라에서 산 끄리스또발 데 라스 까사스 까지 이어지는, 푸른 구름이 솟아나던 오르막 길. 186번 국도, 산 끄리스또발에서 빨렝게로, 5시간 동안 2230미터를 서서히 정글로 추락해 가는 아름다운 코스. 이 근처의 폭포에서 프레데터를 찍었다. 춥긴 하지만 안개 속에 싸인 정글이 아름다웠다.

옆에 앉은 캐나다 할머니는 자기 친구들이 멕시코 여행을 하는 자기를 몹시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혼자 메리다로 향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멕시코에서, 아니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따꼬스를 맛 볼 수 있는 곳이 산 미구엘 데 아옌데라고 말했다. '그걸 먹고 감동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영어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뻐킹 굿이라고 할까? 옆에 앉은 멕시코 여자는 에스빠뇰로 뭐라고 말하다가 우리 둘이 이해를 못하니까 간단히, 따꼬스, 치아빠스, 굿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음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샀다. 버스 안에서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왠지 약올리는 것 같았다. 안개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얼어 죽을 지경인데도 버스에서는 에어컨을 끄지 않았다. 옆에서는 컵라면을 맛있게, 오래오래 먹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하나 남은 오이를 불쌍하게 깍아 먹었다. 결심했다. 나도 반드시 컵라면을 먹을테다.

데스꾸엔또! 데스꾸엔또 포르 화보르! 방값을 깍아 달라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되묻는다. 꼬레아? 동족에게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국인은 어디가나 게시판에 걸려있는 정액을 무시하고 나 처럼 깎으며 다니고 있을 생각을 하니까. 거리를 걷는 도중 얼핏 까페에서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두 명의 한국인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종종 그런 지친 표정을 보았다. 뭐가 문제일까? 아무튼 건승을 기원했다. 난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 관계로...

밥을 먹어야겠는데... 다시 미친척하고 가이드북에서 'highly recommand'하는 'seriously cheap and good' 음식점을 찾았다. 역시 실패였다. 가이드북을 믿고 간 음식점마다 실패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추측해 보았다. 비싼 곳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끼에 5불 이상을 줘야 한다. 이상하게 생긴 스파게티가 나왔다. 칠리 소스를 잔뜩 뿌리고 후추와 소금을 쳐서 먹었다. 그제서야 음식 같았다. 메인디시는 꿰사디야스인데 고기를 안 쓰고 햄을 썼다. 소스를 한 가지만 줬다. 레몬을 주지 않았다. 용서가 안된다. 부르르 떨었다. 가만, 이 가이드북... 영국에서 만든거지? 그랬었군. 이해가 간다. 부질없는 짓 그만하고 앞으로는 다리품을 팔아 '가이드 북에 안 나오는, 멕시칸들이 가는 음식점을 찾아서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3코스 정식이나 먹어야겠다.

음식점마다 desayunos라는 것을 팔고 있었다. 오고 갈 때마다 봤는데 언젠가는 먹어야지 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데싸유노스가 무엇인지 알았다. breakfast라는 뜻이었다. 바보.

망고와 빵을 샀다. 빵 맛이 훌륭하다. 내일 점심인데 그냥 다 먹어 버렸다. 거리에서 일본인 3명을 보았다. 일본인 3명, 한국인 2명이 있으니까 비로소 빨렝게가 관광지 같아 보였다. 그러고보니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극히 드물다.

무척 덥다는 빨렝게 역시 춥다. 빨렝게가 chol어로 fortification place라는 뜻이라고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팜플렛에 적혀 있었다. 내 노트에는 '빨렝게에서 모기 조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기들은 얼어 죽은 것 같다.

볼리비아에서 산사태로 700명이 죽었다. 어떻게 산사태가 나서 일주일간의 미국군 전쟁 사망자보다도 더 많이 죽을 수가 있지? 볼리비아에 꼭 가고 싶다. 비단 전세계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썸스업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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