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ida

여행기/Mexico 2003. 4. 4. 11:08
체크아웃 하려고 내려와보니 주인이 없다. 짐을 맡기고 나가봐야 하는데... 한 시간쯤 멍하니 기다리다가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 나왔다. 버스 터미널에서 Merida행 표를 끊고 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니 10시간에 30n$. 눈물이 나왔다. Misol-Ha로 가려고 콜렉티보를 알아보러 땀나게 돌아다녔다. 아직 12시 이전이라 그런지 투어 차량 밖에 없었다. 미솔하 편도가 30n$, 왕복이 60, 투어 티켓이 2군데 포함해서 100. 고작 30분 밖에 안 걸리는 곳에 있는데 30이라니... 그렇게 한 시간을 돌아다니니 지쳤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 Misol-Ha와 Agua Azul을 가는 투어 버스를 탔다. 담합이라도 한 것인지 가격이 다 똑같다.

미솔하에서 30분 쯤 꽤나 멋진, 시원스런 폭포 구경을 했다. 어디가 프레데터를 찍은 부분인지 모르겠다. 아구아 아술로 향했다. 졸립다. 봉고는 40킬로만 넘으면 항공기 뜨는 소음이 났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남매 지간이라는 두 캐나다 여자애들 뿐이었다. 둘 다 유창한 에스빠뇰과 프랑스 어를 하지만 의외로 영어는 더듬 거렸다. 그중 동생은 영 수줍어서 말도 안 하고 있었다. 내일 과떼말라의 띠깔로 간다고 말했다.


아구아 아술에서 캐나다 여자애들은 물놀이하고 있는데 수영팬티가 없어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얼쩡거렸다. 혼자 라면 어떻게 그냥 들어가겠지만 여자애들 보는 앞에서 민망하게 쇼는 못하겠다. 물이 드러워서 못 들어가겠다고 우겼다. 베트남의 한 도미토리에 두고 운 수영팬티가 간절하게 생각났다.

미솔하의 폭포만 보려고 했는데 아구아 아술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미솔하 폭포는 30분, 아구아 아술에서 4시간을 머무는 투어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돌아오는 길에 멕시코 친구를 태웠다. 워낙 손님이 없어서 운전수가 태운다고 했을 때 별 반대가 없었다. 그는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멕시코를 횡단하고 있었다. 에스빠뇰을 기차게 잘하는 두 캐나다 여자애들이 간간이 통역해 주었지만 언어 차이로 인한 상대적인 소외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멕시코 친구를 보니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를 여행했던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저 친구도 수년 후 혁명가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음. 물론 체 게바라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뛰어난 머리... 가 뒷받침 되어야 겠지만...

아구아 아술의 폭포 옆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향후 일정을 궁리했다. 빨리 움직이고 싶다. 하지만 몸이 따라줄지 모르겠다. 빨렝게 유적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다시 가봐도 괜찮을 곳 같다.

버스 시간은 밤 11시 45분. 투어가 오후 6시에 끝나 6시간 동안 할 일이 없다. 할 일이 없으니까 통 안가던 바에 들어가 맥주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오고 신나고 요란한 멕시칸 음악이 흘러 나왔다. 손님은 없었다. 거리에서 가게들이 하나둘 씩 문을 닫는 모습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몽사몽에 깨어 메리다에 도착. 첫번째 호텔을 찾았으나 문을 닫았다. "See you in Winter Season!" 터덜터덜 걸어 두번째 게스트 하우스를 잡고 샤워하고 우스말에 갈 계획을 세웠다. 찬란하고 뜨거운 유카탄의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