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Guatemala

여행기/Guatemala 2003. 4. 11. 11:05
출발은 여섯시인데 다섯시부터 깨우고 지랄이다. 왜들 이리 부지런을 떠는가. 피곤해 죽겠는데. 샤워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돌리니 물이 안 나온다. 머리가 젖은 채로 잤더니 심하게 뻗쳤는데... 하는 수 없이 피같은 미네랄 워터를 조금씩 부어가며 칫솔질과 세수를 했다. 250ml 밖에 안 썼다. 리셉션에서는 미네랄 워터로 세수했다니까 웃고 지랄이다. -_-; 잠이 덜 깨 거리를 나서니 마치 베트남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멕시코가 잘 사는 이유는(값비싼 여행지가 된 이유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있는 것 같다. 부지런함.

비가 온다. 우기가 시작된 것 같다. 비가 아주 심하게 왔다. 잤다. 깼다. 멕시코 이민국에서 출국 수속을 마쳤다. 유속이 아주 빠른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강이 아무래도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것 같다. 맥주캔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강물 곳곳에는 작은 소가 형성되었다.

썰렁한 강 건너편에 도착하니 거기가 과테말라 이민국이란다. 내 비자를 굉장히 유심히 쳐다본다. 패스포트를 이리저리 넘겨본다. 코리아? 씨.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봤자 어쩌겠냐. 비자 받았으면 그만이지.

과테말라행 편도 투어행을 잡길 아주 잘했다. 혼자서 빨렝게에서 이런 저런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새벽 네시부터 차를 두 번 갈아타고 배를 타러 온 미국인은 사공이 건네주지 않으려 해서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투어팀은 강을 건넜지만 그는 300뻬소를 주고도 배에 사람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간신히 보트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50꿰찰을 지불한다. 그가 소요한 총 경비는 400뻬소 가량, 투어가격은 250뻬소. 나같으면 보트 가격을 협상해서 100뻬소만 주겠다. 안 받으면 안 간다. 미쳤냐? 25분 배 타는데 무슨 비행기 타는 것도 아니고 300뻬소 씩이나 주게. 하여튼 가이드북의 괴이한 헛소리를 믿었더라면 고생할 뻔 했다.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 이민국 앞.


아이들이 마을 공터에서 축구하고 있다. 떼거지로 몰려들어 인사를 한다. 서양것들은 애들을 애써 무시한다. 귀여운 것들, 인사성도 바르지. 누군가 갑자기 군바리식 경례를 했다. 답례를 하자 다들... 경례를... 왠지... 인도 깡촌이나 라오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떼말라에 오길 잘했다. 굉장히 친근감이 들게 생긴 고물차를 타고 역시 친근하기 짝이 없는 비포장도로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린다. 이렇게 차가 심하게 흔들려야 관절과 근육이 골고루 움직여 뻐근해지지가 않는다. 비포장도로와 똥차가 그래서 좋다. 친근감이 팍팍 우러나오는 소들이 마치 차를 처음 보기라도 하는듯이 화들짝 놀래 길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화전을 보았다. 정글 곳곳에서 마른 불꽃과 연기가 치솟았다. 이것이야말로... 마야 역사 3000년 동안 변치 않았던 바로 그 농작법! 오오... 아. 감탄할 일은 아니지. 메소아메리카 문명권은 어쩐 일인지 청동기가 없었다. 청동기 문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알래스카로 넘어간 후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것일까? 고립은 그렇다치고, 동광맥에서 불 한번 지펴보지 않았단 말인가? 이렇게 축복받은 땅에서.

국경을 건너자마자 이렇게 달라지다니. 재밌다. 25년 전에 과떼말라를 방문한 늙은 미국인 부부가 버스에 타고 있었다. 직업을 묻진 않았지만 고고학자 처럼 보인다. 마야 유적만 죽실나게 돌아다녔는지 모르는게 없다. 아는 게 없어서 질문할 것도 없었다. 그냥 어떻게 해서 마야력이 그렇게 정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는지 아냐고 물으니 실실 웃으면서 자기는 모른다고 대꾸했다.

플로레스에서 내렸다. 국경에서 환전하지 않았다. 환율이 나쁘니까. 플로레스에 도착한 것이 4시, 은행은 문을 닫았다. 2시 반에 도착해야 할 차가 사람이 덜 찼다고 안 가고 개기니까 네시가 되서 도착한 것이다. 과테말라 돈이 없어서 숙소를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배고프고 더위에 지쳐 갈증 나는데. 여기 저기 물어 인터넷 가게에서 환전. 다섯시. 가이드북의 숙소 정보는 믿을 수가 없어서 땀나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싼 숙소를 찾아보았다. 40꿰찰 이하의 숙소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무시했다. 과테말라는 인도같은 곳이다. 있다. 있을 것이다. 다섯시 반 간신히 체크인. 30꿰찰, 약 4불 가량. 숙소는 인도의 감방같이 생긴 그런 곳이었다. 길에서 만난 저렴하게 생긴 일본인에게 숙소 정보를 물으니 20불 짜리에 묵으면서 아주 만족한다고 말한다. 나와는 레벨이 다른 사람이었다. 해브 펀 하고 돌아섰다.

잘 사는 멕시코와 달리 과테말라 사람들은 인간 냄새가 난다. 헤헤 잘 웃고. 수도인 과테말라 시티가 위험한 곳이니 가지 말고 안띠구아로 바로 가란다. 고개를 끄떡였지만 가야 한다. 그에게 한국이 대체 어디 붙어있는지 지도를 그려 가르쳐 주었다. 자기들 땅보다 좁은 땅덩이에 4500만이 산다니까 몹시 놀란다. 과떼말라 총 인구가 2천만이란다. 알지. 잘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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