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al Ruinas

여행기/Guatemala 2003. 4. 11. 17:47
환경이 훌륭함에도 대마는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땅에서 대마가 핍박받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덥다길래 일찍 가면 덜 덥겠거니 싶었는데, 아니다.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한테나 더울 것 같다. 새벽 바람에 '떨면서' 짐을 싸서 호텔에 맡기고 띠깔 유적지행 차를 탔다. 새벽 6시에서 저녁 4시까지 10시간 가까이 띠깔 유적지에서 개겼다. 뭐 사진을 찍는다거나 마야 문명의 미스테리에 관한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잡으려고 두리번 거렸다기 보다는... 싸 가지고 간 두 끼 분량의 도시락을 천천히 먹거나 모기에 뜯기면서 밀림 속을 거닐거나(헤메거나) 유적의 제단에 누워 잠을 자는데 시간을 보냈다. 제단은 의외로 포근했다.

띠깔 유적지는 띠깔 국립공원 한복판에 있었다. 빨렝게에서 그렇게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원없이 밀림을 헤메다녔다. 밀림 속에 혹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유적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야생동물을 부지기수로 만났을 뿐이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쌍안경을 구하지 못했다. 쌍안경으로 야생동물을 관찰하기에는 끝내주는 곳이다. 바나나 한 조각이나 빵 한 조각에 혈안이 된 녀석들이 우글거렸다. 유적지 곳곳에 뜻은 잘 모르겠지만 comida, anima 란 단어 따위가 들어간 에스빠뇰 게시판이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밥 먹을 때마다 아장아장 기어와 옆에서 밥 달라고 쳐다보는데.. 안 주기가 뭣했다.


길을 잃고 정글 속을 헤메다가...

마야 유적에 워낙 흥미를 잃어서 이젠 뭘 봐도 그저 그렇지만(아시아에 비하면 엄청 단순한 인간들인 것 같다) 사원 양식을 대충은 구분할 수 있었다. 이건 떼오띠와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군. 이게 이거보다 앞서 지은 것 같은데? 등등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지금까지 들러본 박물관 덕택이다. 멕시코에 비하면 유적 관리는 엉망임에도 입장료는 동등한 수준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추측이 대충 맞았다. 끔찍한 가뭄이 이어지는 동안 피지배층이 사제 계급을 대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천문 관측은 점점 덜 중요해지고 달력은 잊혀지고 사제들은 권력을 잃었다. // 중간계급이 없었던 마야 사회에서 지배층의 붕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했을 것 같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두 계급 구조 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주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사회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가 의문이다. 그럼 상거래로 돈을 버는 상인들 역시 지배층이었다는 말인가? 세금을 징수하는 관료도 지배층이고, 기술과 학문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야 사제들이었을 것 같지만. . 마야 제국(?)이 순식간에 붕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그걸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석기 동굴 씨족 원시인들의 자위행위지.

세력 확장이 없었고 계급갈등이나 권력의 분배 문제가 별로 없고 인디오들 전부가 교육을 받지 못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른 대륙과 긴밀한 무역을 하지 않아 우물 안 개구리였고 청동기도 없었고 세상에 그 흔해빠진 사랑의 시조차 기록에 남은 것이 없고 두 말 할 것도 없이 학문이나 기술의 전승도 없고 어둠의 일곱 신과 싸우는 태양신을 돕기 위해 인신공양이나 드리고 앉아 왕의 '신전'을 건설하는데 몰두해 있었다면 이 문명은 망해도 싸고 망해야 한다고 봤다.

마야 유적과 마야 유적지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AD 12~18세기 무렵까지 '찬란하게 이어졌다는' 마야 문명이 의외로 초라하고 한심하다는 것. 뭐가 찬란하다는 것인가. 대체 뭐가? 그 시기에 건너편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다른 문명권은 마야에 비하면 1000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마야 문명이 그럴듯하고 신비스러워 보이는 것은 새로운 문명을 발견한 고고학자들 눈에나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정체된 문명, 정체된 사회, 내부적으로 소통조차 없었던....

너무 심하게 말했나? 흠. 박물관에 가서 친히 둘러보라. 그 시절까지 꾀죄죄한 토기들과 천 쪼가리들,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금세공품 밖에 안 보인다. '문화'가 실종되었고 '발명'과 '발견'이 없다. 도시에 수로를 만들었다지만 하천의 관계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하천을 제어하면 대규모 농경이 가능함에도 대규모 농경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식량창고가 있기나 했을까? 정글에 불 지르고 화전을 계속 하면서 움직여 다녔는데 그건 지극히 원시적인 농경이다. 열대다 보니 천문관측기술이 농경에 도움이 된 적은 없을 것이다. ·"$%"·$%"·$

남쪽 유적지의 따뜻한 바위에 누워 있다가 선잠에서 깨어보니 벌써 오후 4시. 사방에서 원숭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해가 지고 있다. 유적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산타 엘레나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어젯밤 삐끼가 말해준 중국 음식점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양 많고 싸다길래... 그런데 음식점이 아니라 디스코텍이다. 왜 음식점 이름이 mi disco일까 궁금했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주인에게 물으니 음식을 판단다. 메뉴판을 갖다준다. 음식점 맞군. 쵸우면과 맥주를 시켰다. 중국인이 운영하니까 정통 초우면을 먹을 수 있을 꺼라 내심 기대했는데 국적불명의 이상한 음식이 나왔다. 어떤 음식이든 칠리 소스를 뿌리면 맛있어지기 때문에 왕창 뿌렸다. ...... 짬뽕맛이 났다.

피곤하지만 과떼말라 시티에 갔다가 바로 안띠구아로 움직였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유적지에서 자고 유적지에서 세수하고 움직이는 형편. 차 시간이 많이 남아 광장에서 애들 농구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플로레스나 안띠구아나 짐작대로 관광도시였다. 차 타고 오면서 안띠구아에서 일주일쯤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스페인어를 배워서 여행하려면 아랍에서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스페인어를 알게 되면 중남미인들과 아주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데 그건 아랍도 마찬가지였다. 여행하러 왔지 스페인어 배우려고 온 것이 아니고, 다른 데에서는 하지 않았는데 왜 굳이 중남미에서는 하려는가... 하는 반성을 했다. 앞으로도 줄기차게 어려움이 이어지겠지만, 끝까지 게기자. 음... 그래도 치치까스떼낭고의 분위기가 정 좋으면 더 머물기 위해서라도 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안띠구아에 도착하자 마자 커다란 화산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해서 세 시간쯤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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