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gua

여행기/Guatemala 2003. 4. 12. 19:14
인터넷 까페에서 옆에 앉아있던 그링고가 내가 사진 올린 것을 점검하고 있으니까 url을 가르쳐 달란다. 나갈 때까지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찍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슬며시 감췄다. 쪽 팔렸다.

사진을 잘 찍겠다는 욕심이 사라졌다. 일부는 입장시간 제한 때문이다.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이 드물다. 인도라면 가능했다. 오직 인도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스타워즈의 어떤 씬이 띠깔의 이 광경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 Great Pyramid에서 바라본 이 사진을 아주 잘 찍는 방법을 알고 있긴 했다.

해는 5시 45분에 맞은편 지평선에서 뜬다. 해가 뜨기 20분 전에 사이트에 도착한다. 숲속에서 안개가 피어오를 것이다. 지평선 부근은 핑크빛을 띄고 먼 하늘은 푸르게 빛날 것이다. 화면을 네 부분으로 대충 나누고 지평선을 3/5 위치에 둔 다음 근경과 원경, 핑크빛과 푸른빛 사이에 피라밋 대가리를 위치시킨다. 그러려면 저 사진처럼 꼭대기에서 찍을 것이 아니라 피라밋에서 열계단쯤 내려온 후 카메라를 약간 아래로 내리는 기분으로 찍으면 될 것 같다. 해가 뜨려고 할 때쯤 빛은 지평선과 근경 사이를 수평으로 달린다. 해가 거의 질 무렵도 마찬가지다. 석양 무렵이 아침보다 낫지 않은 것은 정글에 깔리는 안개 때문이다. 안개가 숲을 반쯤 가리면 띠깔 유적지는 지구가 아닌 곳이 될 것 같다. 달이 아주 밝은 날 해가 바로 질때쯤. 음 이건 일년중 며칠 기회가 없겠군. 예전에 이란에서 터키로 넘어올 때 아라랏산을 보고 맛이 간 적이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아랫동이는 어둠 속에 잠기고 꼭대기는 날카로운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그때는 멋진 광경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스무장이 넘는 사진 중 단 한 장도 제대로 찍힌 것이 없어서... 울었다.

띠깔보다 멋있는 광경이 있을까? 있다. 인도 함피다. 띠깔 유적지가 20km^2나 되는 '거대' 유적지라지만 함피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엄청난 유적 규모와 비교하면 세발의 피다. 함피의 비자야나가르 유적지는 거의 공짜면서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띠깔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있다. 지금까지 내가 돌아본 유적지 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도 카쥬라호의 서부 유적군이고 단일 건축물로는 인도의 마두라이에 있는 미낙쉬 신전이다. 미낙쉬 신전에서 넋이 빠져서 사진 찍는 것을 잊었다. 규모와 아름다움 양자를 다 말하려면 앙코르와트 뿐이다. 세상의 어떤 유적지도 보는데 적어도 3일이 걸리는 곳은 앙코르와트 말고는 없다.

섣불리 단정짓지 말고, 다 보고 나서 얘기 하라고 말할 개제가 아니다. 주요 고대 문명은 잉카를 제외하고 다 봤으니까. 잉카의 사이트는 크기나 아름다움에서 상기한 사이트보다 나을 수가 없다. 시니컬하게 말해서 마야/아즈텍/잉카 문명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선구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나마 미국/유럽인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유적지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를 찾느라 한 시간을 거리에서 헤멨다. 이 삐끼, 저 삐끼를 전전했지만 방값이 비교적 비싸다. 왜 그런가 싶더니만 세마나 산타라는 그리스도 수난극이 다음주 중에 안띠구아에서 벌어질 예정. 전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축제인데(관광청 팜플렛을 보니) 시작되자 마자 다른 도시로 뜰 생각이다. 지금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고 축제 덕택에 숙소 잡기가 어려워서 애 먹은 생각을 하면...

부엌을 사용할 수 있다길래 오랫만에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밥을 얹어놓고, 야채를 썰고, 볶다가, 밥이 다 익어서 야채 볶는데 그냥 부었다. 국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겠기에 야채를 잘게 썰어 소금 약간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붓고 저으면서 거품은 건졌다.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는 무진장 시끄러운 중국 처녀가 괜히 시비를 걸었지만 개무시하고 묵묵히 만들었다. 남이사 '복잡하고 손이 가는' 요리를 만들어 먹던 말던 신경쓰지 말고 얼른 나가서 관광이나 잘하란 말이야. 자기가 권한 옥수수를 안 먹으니까 '점잔을 빼면서' 심통 부리는 것 같다. 음. 다 만들어놓은 음식은 고양이조차 거들떠보지 않았다. 삐깐떼(매운 야채 절임)와 곁들여 먹으니 무척 맛있다. 저녁에는 '광둥 스타일 정통 초우면 컴패티블 푸드'을 만들어서 중국 여자애를 한코 죽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수퍼마켓에서 Salsa Soya 소스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Salsa란, 재료가 뭐든 간에 '무조건 맛있다'는 뜻이다.


정식 요리 명칭: backpacker's 'really' gut-filling fried rice with unstable quatum mechanical probablity

화산에 가려니 아침 6시에 출발한단다. 또 새벽인가? 좀 쉬어야겠다. 화산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활화산이라는 소리를 해서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가능하면 투어 안하고 호젓하게 혼자 올라가고 싶은데... 산적들을 만나서 산생활의 고충을 들어보고 도네이션도 좀 하고...

띠깔 유적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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