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미국 처녀다. 에스빠뇰을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친구와 여행을 시작했다. 멕시코 여행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과떼말라에 와 있단다. 그녀는 계획이 전혀 없다. 무뇌아인 줄 알았는데 내 가이드북을 쳐다보길래 빌려줬더니 게걸스럽게 읽는다. 마약 하는 친구들은 밥맛이라고 흉을 보고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자기 방에서 친구와 빈둥댄다. 그녀의 친구는 돌부처처럼 말이 없다.

그녀는 나처럼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부엌에 있던 각종 소스들이 사라져서 아침부터 우리는 조금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설탕'을 냅킨에 조금 덜어 가져왔다고 말하며, 여행을 오래하다 보면 이런 꽁수가 생긴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그녀는 자기 방에서 비닐 봉투를 가져와 봉투에 담긴 살사 칠리를 천진하게 보여준다. 허거덕. 액체를? 그녀는 치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준비된 고수였다...

엘레나는 여행자들을 만나거나, 풀밭에서 다른 미국인들처럼 요가에 몰두하거나, 파티씬에 휩쓸리지 않은 채,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낸다. 한 마디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보는 시간이 한 없이 느리게 흘러가거나 아예 정지된 놈팽이였다. 그렇다고 여행을 통해서 현지인과의 각별한 우정을 기대한다거나 모험과 로맨스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쿨함을 과시했다.

첫 여행이라는데, 장기 여행자의 노련미가 철철 풍겼다. 장기여행자들이야 만사가 시들하기 그지없다. 뭘 봐도 그게 그거같은 돌덩이인데... 가 증세다. 장기 여행자가 말하는 모험이란, 기껏해야 삐끼에게 당해 고생하거나(삐끼도 바보는 아니라서 몹시 경제적인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는 나같은 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주머니를 몽땅 털리거나, 비자 문제로 국경에서 오도가도 못하거나, 화산 꼭대기에서 폭풍을 만나 오들오들 떠는 종류의 것으로, 별로 낭만적이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쓸데없이 두뇌의 소중한 메모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아무 탈 없이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진국인 것보다 많았다. 로맨스? 우리는 각자 같은 목적지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 삶을 맛보다가 어느 순간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자다가 깨어 후회한다. 어쨌거나 엘레나는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나에 비해 어른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저 경지에 도달하려면 여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야채나 과일을 오물거릴 수 있을까. 저중심 설계 탓일까?

그런 사람이 게스트 하우스에 한 명 더 있다. 나이 70 먹은 과떼말라 노인이다. 그는 한밤중에 불을 꺼 놓고 방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닭이나 개를 뚜러지게 바라보고는 했다. 심지어 사람도 닭 보듯이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그 나이에 이르면 닭이나 사람이나 비슷해지는 걸까? 하지만 닭은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서 의자에 앉아 있고는 했다. 하루에 칫솔질을 세 번하고 세수도 세 번 했다. 나와 엘레나가 음식을 해 먹는 광경을 보고 고무된 나머지, 이제는 그 노인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음식 만드는 과정은 장인의 솜씨를 담은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였다. 단순한 야채 스프를 만드는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재료를 씻고 써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그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최고의 장기여행자였다.

날이 흐려서 마당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뭔가 움직이는 것들이 없어 볼거리가 떨어져 살아갈 희망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를 노인과 나는 하루에 여섯 차례 인사를 주고 받았다. 에스빠뇰을 잘 모르는 관계로 노인과 무슨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다가 눈길이 마주치게 되면, 아침이면 아침 인사, 점심에는 점심 인사, 저녁에는 저녁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꼬모 에스따? (how are you?)라는 에스빠뇰을 익혔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가 어제보다 윤택했다. 내가 부에나 따르데스(good afternoon)하면 그가 부에나 따르데스 라고 답했다. 내가 다시 꼬모 에스따? 라고 하면 그는 비엔, 그라시아스 아미고(fine, thanks my friend)라고 말했고, 그가 꼬모 에스따? 라고 물으면 나는 비엔 그라시아스 라고 대꾸했다. 그는 흡족한듯이 다시 닭들을 쳐다보고 나는 히히 웃고 새로운 에스빠뇰을 찾아 보았다.

이제 Que Soy? 라는 에스빠뇰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돌아갈 날이 머지않은 노인과의 대화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무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꿰 쏘이?' 는 아마도 '나는 누구인가?' 내지는 '나는 뭔가?' 라는 뜻일께다. 안띠구아의 거리를 지나가는 한 청년이 그 문장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은 동네에 짱 박혀 사는 서양 마약 장수가 커미션이나 벌어보자고 음산하게 생긴 서양인을 한 명 데리고 왔다. 게스트 하우스에 막 도착한 그가 한 첫 질문은, 부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한 동안 부엌과 주방기구를 정성스레 살피며 무엇을 해 먹을지 골몰하다가 눈썹을 찌푸리며 비관적인 표정을 지었다. 옷 차림새를 보니 작정하고 찾아온 장기여행자 같다.

그의 이름은 아담이다. '애덤'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링고구나. 표정이 왜 저 모양일까 싶었다. 그래서 세면대에 가서 내 표정을 살펴 보았다. 내 표정이 아담하고 많이 비슷했다. 아랍에서 표정이 굳은 후로 별로 풀리지 않았다. 특히 눈꼬리가 조금 반항적인데, Que Tu?(넌 뭔가?) 라고 묻는 듯이 건방졌다.

아담과 함께 한가하게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조용히, 화장실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부디 아름다운 보름달과는 아무 상관없는 질문이기를 바랬다. 한때 나는 태양이 250와트 짜리 할로겐 전구이고 보름달은 15와트 탄소 전구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각박하게 살았다. 이제는 안다. 달은 대기가 없는 황량한 곳일 뿐이고 달을 쳐다보는 내 시선이 백만배는 아름다우며 그건 몰지각함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사람은 바보스러울 때라야 행복해진다. 따라서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 그 바보스러운 상태를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바보스러움은 (부질없는) 열정과 결합했을 때 인간이 가진 가장 부도덕하고 매력적인 것이 된다. 그 바보스러움은 아담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화장실에 갔다온 그는 음산한 표정으로, 내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알람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내일 아침이 세계 멸망의 그날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다른 미국인들과 정신 상태가 달랐다. 코맹맹이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남미에서 많이 굴러먹었다. 볼리비아에 꼭 가야 한다면서 하던 말을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 노? 잇츠 라이크 인디아 한다. 대체 볼리비아에 뭐가 있길래 만나는 사람마다 볼리비아 하면 감격부터 하는 것일까... 혁명 정신에 몰지각한 볼리비아에서 게바라가 손목이 잘리고 비참하게 죽지 않았던가?

그는 여행 내내 본의 아니게 나처럼 독실한 수도승이 되어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다른 미친 미국인들과 달리 엘레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엘레나에게 한 첫 마디가, 여기가 샤워실이군 이었고 엘레나는 별 꼴이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설겆이에 열중했다. 수도승처럼 생긴 사람들은 여자들에게 무시당하기 때문에 더더욱 수도승의 길로 정진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는 샤워실을 몹시 비관적인 표정으로 살핀 후 입을 다물었다. 아무 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식당에 혼자 앉아 식사하는 서양 남자 여행자를 많이 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오래토록 식당에 앉아 있지 않았다. 밥 먹으면 바로 일어섰다. 어디 딱히 갈 데도 없으면서 갈 데가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서두른다. 사람들과의 화학반응을 신경쓰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거게 남자 (수도승) 여행자들의 공통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차고 있던 손목 시계를 빌려주었다. 마약 장수가 데려와서 마약하는 녀석인 줄 지레 짐작한 것이 미안했다.

혹시나 해서 그에게 이곳 게스트 하우스가 하룻밤에 20퀘찰이라고 넌지시 말하니까 알람시계가 없음을 밝힐 때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표정을 지었다. 마약 장수한테 주는 커미션을 포함해서 방값을 좀 많이 지불한 모양이다.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묵고 있는 방값을 끝끝내 말하지 않는 여행자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낙천적이며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듯한 말투로 종종, 10꿰찰 더 주고 배쓰가 포함된 아늑한 방에서 안락하게 묵는 것이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방보다 낫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데, 그럼 나는, 그럼요. 그깟 10꿰찰(1.5달러)이 얼마나 대단한 돈이라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없지요. 라고 대꾸했다. 언제나 그 게임의 승자일 수 없기에 내가 한 말은 비웃음이나 조소가 아니었고 사실 그대로였다.

음산한 아담은 별 말 없이 앉아 오랜 기간 간경련에 시달린 듯한 비극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방문을 열어 놓은 적이 없었다. 창문도 꼭꼭 닫아 걸었다. 마당에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그래서 그가 안에 있는지 없는지는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나 알 수 있었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보름달을 보고 화장실이 생각나는 자폐증 환자 같은 미국인은 처음 보았다. 멕시칸 마초같이 껄렁대는 녀석들은 무진장 많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중얼거리거나 떠벌리거나 친절한 척 하거나 상황에 쫄았다는 티를 안 내려고 시시껄렁한 위트를 꼭 빼놓지 않고 사용하는 미국인은 많이 보았다.

말 나온 김에, 미국인이 웃기는 점 중에 하나가 무척 약은 척 하면서 사기는 다 당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카우시우스하고 컨시우스하고 프래그마틱 한 체 하는 것은 어쩌면 미국에 사는 백인의 국민성 내지는 자기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편인데(얼웨이즈 노우 더 얼터너티브 웨이), 나보다 정도가 심해서 옆에서 보면 좀 안쓰럽다.

투어 하다가 가이드한테 팁 좀 주자고 뭔가 그럴듯한 제안을 해서 기쁜듯한 표정을 짓는 놈이 개중 제일 증오스럽다. 하여튼 미국인들이 아담처럼 뭘 묻기 전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묵묵히 바퀴벌레를 입에 물고 있는듯한 아담은 과떼말라에서 한 달 정도 보낼 예정이었는데 의외로 가볼만한 곳이 없더라고 말했다. 그는 마야 유적지의 이끼 낀 돌덩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오리지날 장기 여행자였다. 아스카 관광은 어땠는지 물었다. 가격은 그럭저럭 적당한데 비행시간이 짧다. 그렇다고 걸을 수는 없고 운운. 우주인에 관한 견해라도? 긴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짧다. 모르겠다. 잉카 트레일에 관해 묻자, 투어리스틱해서 재미없고 비싸다고 말했다. 어디가 좋아? 온두라스 해변. 싸다. 끝내준다. 열 댓마디가 찬사 일색이었다. 특히 싸다는 점이 요점이었다. 이 친구, 비록 표정은 꽝이지만 무언가 유용한 정보를 말할 줄 아는 친구같다. 아.. 다시 카리브해가 생각났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모든 투숙객들은, 아마도 담배를 안 피우는 아담도 앞으로 포함될 것 같은데, 음식을 만들 때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기 위해 여행자 중 유일하게 라이터를 갖고 있는 나에게 라이터를 빌리러 왔다. 엘레나에게 내 이름은 인디안 식으로 '머나먼 동쪽에서 불을 가지고 온 자'라고 말했다. 인디오 아줌마처럼 복스럽게 가슴을 흔들면서 웃는다.

이렇게 해서, 네 명의 여행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인사를 주고 받고, 하나 밖에 없는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

인류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것과 어울리거나 그것을 극복하거나 심지어 그것으로부터 소외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냥 경계없이 주마간산격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지능이 있는 한, 필요한 만큼 울궈 먹으면 될 것 같다.

아띠뜰란 호수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마을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부응한 개발욕을 막을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할 줄 아는 '지성인'의 주장은, 각박한 환경 내지는 현실 속에서 대낮에 일 없이 울어대는 미친 닭들의 울음소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일 없이 벽에 기대 졸고있는 주민들은 돈에는 크게 욕심이 없어 보였다 -- 주님이 있었다. 오히려 이 마을에 흘러 들어와 정착해서 살고 있는 서양인들이 서양인들을 상대로 장사 잘 하면서 건물 층수를 나날이 올리고 있었다.

산 뻬드로에는 식민지풍의 예쁘장한 건물이 없다. 계획없이 무절제하게 지었는데, 한 마디로 하드보일드했다. 어두컴컴한 맨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걸어나온 전형적인 인디오 복장의 아줌마가 주저없이 호숫가에 세제를 풀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의 목욕을 시켰다. 그 물을 퍼다가 음식을 만들고 식용수로 썼다. 경찰은 경찰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버스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차례차례 도시에서 온 짐들을 내리고, 아침마다 장이 열리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쳤다. 그럼 난 여기서 환경 걱정은 집어치우고 뭘 해야 하지? 요가를 하던가, 카누를 타던가, 말을 타던가, 화산 트래킹을 하던가, 쏠라 파워로 데운 호수물에서 목욕을 하던가. 아니면 마리화나를 피우던가? 음... 그냥 일없이 시간을 죽였다.

콘크리트 벽에 써 있는 글자들: Dios es amor 또는 Dios te ama. 미루어 짐작컨대 '신은 사랑이시다'. Jesus mi mejor amigo. '예수는 나의 가장 친한 벗'. 거리에는 요란한 개신교 찬송가가 하루 종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을에 개신교도가 꽤 많은 것 같다. 이런 저런 교회에서 아침 저녁으로 집회가 열린다.

담벼락에 기대앉은 젊은 인디오는 외국인들에게 그라스를 팔고 있었다. 그에게도 주님이 있었다. 경찰이 다가오자 갑자기 어투가 미묘하게 바뀌면서 악세사리 장사꾼으로 돌변하여 내게 해마 목걸이를 쥐어주며 영어로 그 정교한 기교와 오리지널리티를 유창하게 설명한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인디오 개신교도의 52배속 접신이라든가 현격한 영혼의 상승이 기대된다. 진심으로, 영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나 하나님의 축복이 깃들길 바랬다.

과떼말라에 온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레스토랑에서 식사해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라 죄책감이 들어 삐노끼오라는 이탈리아 '관광' 식당에서 라자냐를 주문했다. 무려 25꿰찰이나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무늬만 라자냐였다. 시장 골목에서 계산이 서툴러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야만 하고, 그러고도 번번이 셈이 틀리는 할머니와 옥신각신 하면서 야채를 사서 저녁을 해 먹는 편이 나았다. 할머니는 낄낄낄 웃으면서 어제처럼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마치 어린애 같다.

인터넷 가게 주인이 2꿰찰을 이유없이 할인해 주었다. 어제 사진 찍어줘서 그런가? 주민들은 멕시코에 있을 때보다 현저하게 아미고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조금 있으면 떠날 나라이지만 사람들이 기분 좋은 나라다. 그런데 남들 다 좋다는 안띠구아는 별로 좋은 줄을 모르겠다. 하지만 산 뻬드로는 좋다. 그냥 좋다. 세월이 흐르면 여기도 변할 것이다. 너무 늦지 않게 온 것을 행운이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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