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센트럴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5시 55분 해남행 표를 예매했다. 마누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 이 더위에 어딜 가? 라고 묻는다. 기나긴 장마 기간 동안 칼을 갈았다. 아니 체인을 갈았다. 체인에 기름을 듬뿍 먹였다. 오후 4시무렵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가는 길에 다리밑 행상에서 5천원짜리 반장갑을 샀다. 작년에 산 것을 잃어버렸다. 지난 장마에 떠내려갔던 성산대교 밑의 자전거 포는 어느새 건물을 다시 세웠다. 타이어에서 통통 소리가 날 때까지 자전거 펌프로 바람을 우겨 넣었다.

오후 네시 무렵인데도 찌는듯이 덥다. 반포대교를 건너 터미널로 진행, 평속 22kmh로 밟아 대략 1시간 안에 도착. 평창 여행할 때 봐두었던 개구멍으로 잔차를 몰고 버스 스탠드로 진입. 휴가철이라 창구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얼른 예매한 표를 끊고 십여분 시간이 남아 롯데리아에서 저녁으로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롯데리아의 날이 갈수록 한심해지는 불고기버거 세트를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외국인 둘이 한국인은 참 야만스럽다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암, 야만스럽지.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더니 자신감을 얻었는지, 옆 자리의 동료가 우리가 지금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 살면서 돈을 벌고 있으니 그만 하라고 만류하는데도 걱정하지 말라며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앉아 그들을 욕하고 있는 것을 못 알아 들을 뿐더러 알아들어도 반론 한 마디 제대로 못할 꺼라고 떠벌렸다. 그 동안 재밌게 듣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푸훕'하고 웃고 말았다. 당황스럽게도 눈이 마주쳤다. 입에서 튀어나온 빵조각을 손가락으로 우겨놓고 천진하게 바라봤다. 외국 여행할 때 만난 서양인들 말로는 내 눈빛이 그다지 천진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내 눈빛은 '뭘 쳐다봐 ㅅㅂㄹㅁ' 라고 말하는 듯한, 안 좋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머쓱했는지 접시를 치울 때까지 그 둘은 석상처럼 굳어 한 마디도 안 했다.

자전차를 버스 짐칸에 밀어놓고 예약한 1번 자리에 가니 아줌마가 앉아 있다. 멀미 때문에 그러니 자기 자리로 가 줄 수 있겠냐고 한다. 설렁설렁 고개를 끄떡이고 그 자리에 가니 사람이 앉아 있다. 표를 보여준다. 그 자리가 맞다. 원래 내 자리에 앉아 있는 아줌마는 그럴리가 없다며 자기 표를 보여준다. 다음날 표다. 보통은 내렸다가 자리가 남으면 차에 오르는데 원래 자리 주인을 통로에 세워두고 자기는 자리에 앉아 승객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린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그만큼 야만스럽다.



전라도에 들어섰다. 해가 지고 있다. 용광로에서 방금 꺼낸 동전처럼 새빨간 해가 산허리에 걸려 있다. 떠나온 서울의 최고 기온은 34.7도. 여러 차례 관찰한 결과 하늘에 해가 떠 있을 때는 해가 있는 방향에서 맞은편으로 바람이 분다. 그러니까 해를 향해 페달질을 하는 것은 도발적이다. 원래는 강진에서 내려 하룻밤 묵고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 묵고 목포로 가는 코스를 생각했으나 해와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서 순리대로 해남에서 출발해 강진에 도착하는 것으로 바꿨다. 대략 90km 가량이니 5시간 주행거리인데 아침에 나서서 정오가 되기 전에 땅끝을 통과한다. 그렇게되면 해를 등지고 한 두시간 더 가면 강진에 이르게 된다는 계산이다.

iSilo로 강진 정보를 담은 텍스트 파일을 열어보려고 애썼다. 잘 안된다. 파일을 UTF-8로 저장해 놓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십여분 삽질하고 나서 간신히 읽게 되었는데 휴대폰의 여분 배터리를 챙기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그런데 숙소정보가 없네? 휴대폰의 배터리는 절반쯤 남았다. 아껴 써야지. 이번 여행에는 pda를 들고 오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일정관리를 하고 정보를 담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런데 별 정보를 담지 않았다. 읽을꺼리 역시 챙겨오지 않았다. 장마 동안 내가 준비랍시고 한 일이 그렇지 뭐.

해남에 도착. 서울과 달리 선선하다. 맛집이라는 청운정이 버스 터미널 옆에 붙어있다. 터미널 옆에 찜질방도 보인다. 하지만 해남군 외곽의 녹주 맥반석 싸우나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으므로 잊어버리고 군 외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녹주 사우나에서 묵으면 아침에 7km를 세이브할 수 있다. 다, 계산한 것이다.

군 바깥으로 나오니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 야트막한 산 밑으로 가열된 대지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수증기가 안개처럼 펼쳐져 있다. 불빛 하나 없는 고적하고 어딘가 음산한 1차선 도로를 달리니 나도 모르게 심박수는 물론 패달질이 빨라진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도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기다란 빛의 경로가 새겨진다. 안개가 낀 밤, 노란눈을 한 늑대가 먹잇감을 잡으려고 달려오는 듯한. 키가 크고 음침한 가로수, 안개처럼 피어난 수증기 속에서 거뭇거뭇 보이는 숲. 녹주 싸우나는 시내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민박촌에 있다. 길이 잘 안 보여 도움이 안되는 전조등을 깜빡이며 컴컴한 길을 위태위태 달려 싸우나에 도착해보니 내부수리중이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낭패다. 아니 계산상 착오다.

근처에 민박집이 여럿 불을 밝혀놓고 있지만 몇만 원씩 하는 민박집에서 묵기는 좀 버겁고, 핸들을 돌려 시내로 향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건 안부 전화다.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컴컴한 도로 한 복판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시내에 도착해 터미널 맞은편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옆 찜질방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네 대의 자전거가 서 있다. 짐받이에 침낭 따위를 묶어놓은 것을 보니 여행중인가 보다. 들어가서 아는 척 해 봐야지. 하룻밤 자는데 6천원, 간단히 샤워하고 찜질방 안에 들어서니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다. TV 뒷편에 자리잡고 눈을 붙였으나 애들이 PC에서 인터넷과 게임을 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담배 피우러 찜질방 옥상에 올라왔다.

7시에 일어났다. 간신히 두세 시간 잔 것 같다. 찜질방에 올 때마다 매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찜질방 주인 아저씨에게 근처 먹을만한 밥집을 물었다. 식당에서 5천원짜리 백반을 시키니 13가지 반찬과 재첩국을 갖다준다. 반찬이 너무 많은데... 반찬이 약간 짜다. 단백질이라고는 조기 한 마리와 재첩국 달랑 둘 뿐. 생선젓 마저 보이지 않는 잔디밭 식단. 반찬 가짓수만 많아 남은 음식 쓰레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걱정되는 밥상이다. 남도의 한상 가득한 밥상이 있는 그대로 즐기기엔 부담스럽다.

밥 먹고 8시 출발. 어젯밤 찜질방을 찾으러 갔던 으시시한 그 길을 따라갔다. 그늘이 거의 없어 아침해가 옆얼굴에 그대로 햇살을 쏟아부었다. 아침나절부터 땀이 난다. 논밭이 즐비하게 펼쳐진 별로 인상에 남을 것이 없는 길을 달렸다. 가끔 습지가 보였다. 낚시 채널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 남도의 제 고향을 방문해 논밭 사이로 갈대와 억새가 무성한 습지에서 어린 시절에 하듯이 낚시질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가 하룻밤 동안 잡은 물고기는 붕어 서너 마리, 팔 다리에는 모기에 물어뜯긴 상처가 즐비하게 돋았고 아침해에 얼굴은 쾡하니 초췌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추억을 곱씹으며 고향에 돌아와 낚시하니까 좋았노라고 웃는다. 낚시 채널은 늘 그랬다. 개고생하고 성과는 쥐꼬리만하지만 낚시꾼들은 웃는다.

이번 주행 복장 역시 수영복이다. 수영복에 상의만 져지를 입었다. 작년에 옥션에서 산 2만원짜리 싸구려 져지 상의인데 색깔이 등산복처럼 어둡고 탁해서 마누라는 영 없어 보이는 복장이라고 말한다. 방수가 잘되고 땀이 잘 마른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해외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그깟 없어 보이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있어 보이려면 30-40만원 든다. 정말 있어야 입는 제대로 된 져지 말이다.

느적느적 갔다고 생각했지만 평속은 꾸준히 23-25kmh를 넘나들었다. 채 10시가 안되었는데도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10시 조금 넘어 청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해변으로 용감하게 걸어갔다. 상의를 벗어 모래밭에 던져두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물이 맑다. 자맥질을 하며 몸의 열기를 식혔다. 아, 좋다.


30여 미터를 걸어도 물이 허리께까지 밖에 차지 않았다. 어젯밤에 통통한 반달을 보았다.


짐을 풀기 귀찮아 휴대폰의 130만 화소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영 구리다. 지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곳곳에서 야만스러움이 넘치는 한국인 같다.

그늘에 앉아 몸에 묻은 물기를 말렸다. 즐겨먹는 폴라포를 하나 샀다. 관광지 스럽지 않게 제값(500원)에 판매한다. 들고갔던 MP3P에 새로 산 AAA 전지를 넣고 라디오 방송을 잡아보려 했지만 잡음이 심하다. 어쩔 수 없이 MP3를 틀었다. 가뿐하다.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출발.

청호 해수욕장을 벗어나자 마자 해발 0m에서 55m까지 올라간다. 땀이 비오듯이 쏫아졌다. 아침부터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에서 직사광선의 위력을 체감 중. 하지만 아직은 기온이 30도를 넘기지 않은 듯하다. 허덕허덕 헐떡이다가 기어비가 1:1까지 내려간다. 땅끝 까지 산 하나를 넘는 것이다. 1년여를 자전거를 탔어도 이런 언덕 하나 가뿐하게 넘지 못하다니 자괴감이 생긴다.

땅끝에 도착. 도로에 차가 밀려 서행 중. 이 더위에 땅끝 전망대에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어 차량 진행 관리 하는 사람에게 물어 완도쪽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비오듯 땀을 흘리는 내 얼굴에 안타까운 듯이, 여기서 내려 오신 길을 다시 올라가 중턱의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됩니다 라고 말한다. 중턱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잠시 땀을 식히고 싶은데 그늘이 없는게 문제지.


도로를 따라가면서 '전망 좋은 곳 앞으로 300m' 같은 게시판을 자주 보았다. 땅끝 전망대 밑의 바글거리는 주차장과 달리 여기서도 남쪽 바다를 쳐다볼 수 있다. 뜨거운 날씨에 증발한 해수 때문에 어차피 먼 바다를 보기는 글렀다.


물론 여기도 땅끝이다.

완도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통 해발 20m에서 45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햇살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에서 본격적으로 쏟아붓는 열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냄비 속에서 황기, 대추, 마늘, 밤 등 갖은 양념과 함께 팔팔 끓고 있는 닭 한 마리가 생각난다. 어디 좀 쉬어갈 곳 없을까...

12시 조금 넘어 사구미 해수욕장 팻말이 나타난다. 갯펄과 흡사한 해변, 고운 모래 때문에 물이 탁해 보인다. 여기저기 수초가 돋아있고 바닥은 잔 진흙층으로 미끌거린다. 하지만 시원한 바닷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살 것 같다. 아까 송호 해수욕장에서 입고 있던 수영복 속으로 모래알이 박혀 엉덩이가 들쑤신다. 천원 주고 샤워장에서 옷을 빨고 샤워했다.


근처 가게 앞 시원한 그늘 평상에 앉아 담배 한 모금 빨았다. 휴대폰이 열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땅끝에서 사진을 찍은 후 계속 액정이 켜져 있어서인지 전지가 다 소모되어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셧다운되었다. 휴대폰을 사 놓고 충분한 튜닝을 거치지 않아 아직 불안정하다.

다시 출발해야지? 해가 하늘마루에 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지나가는 차량을 제외하고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도로 갓길에서 생태계의 놀라운 다양성을 목격할 따름이다. 뱀, 참새, 까치, 다람쥐, 청살모, 고양이 등등 다양한 짐승들이 배가 터져 죽은 후 가죽만 남은 채 말라가고 있다. 특히 장마 탓인지 말라서 바삭바삭해진 지렁이가 무척 많다.

사구미를 거쳐 완도 다리 앞 삼거리까지 가는 길이다. 태양은 진행방향에서 100도 무렵 위치, 등 뒤를 따뜻하게 가열한다. 기온이 얼마까지 올라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표상의 온도는 대략 40도 가량 되지 싶다. 이 정도의 기온은 방콕 시내를 걸어다닐 때 일상적으로 경험한 수준이다. 다만 다리를 계속 저어야 하므로 땀으로 손실되는 체액이 상당하달까. 벌써 140ml 폴라포 1개와 500ml 물병 1.5병을 비웠다.

시간이 되면 완도에 들러보고 싶지만, 해남에서 강진까지는 대략 93km, 하룻동안 주파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더위로 인한 체력 손실을 감안하면 완도는 지나치는게 낫겠다. 연료가 바닥이 나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된 것이다. 여차하면 배낭 속의 비상식량인 건빵을 먹는다. 건빵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안이 바싹 말라온다.

완도대교 앞 3거리 앞에서 자전차를 세웠다. '김가네 식당'이 보인다. 오후 1시 30분. 이 집 백반이 유명하다길래 점심을 반드시 거기서 먹자 해서 일부러 들렀다. 별다른 메뉴는 없고 5천원 짜리 백반이 디폴트. 반찬이 너무 많아 커다란 쟁반에 2층으로 쌓아왔다. 세어보니 모두 16가지, 어이가 없군. 거기에 시레기 국과 밥, 돼지불고기를 싸먹을 쌈용 채소를 가져다 준다. 명불허전이다. 아침 식사와 달리 단백질 덩이 반찬이 많다.

온 몸에 열이 펄펄 나니 물부터 두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장이 뜨겁고 허기진 상태라 밥을 허겁지겁 먹기 십상이지 싶어 부러 밥을 꼭꼭 씹어먹었다. 하지만 찬의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여전히 음식이 내 입맛에 약간 짠 편. 그런데 특별히 놀랍고 감동적인 반찬이 하나 있다. 고동 무침. 얼추 백여개는 됨직한 한 접시의 고동 무침을 내기 위한 정성과 노동력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식당 앞에 나와 잠시 쉬었다. 건너편 도로에서 이글이글 아지랭이가 피어오른다. 끔찍스럽다.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어.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다산초당이다. 별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목표를 정해둬야, 이 더위에 만사가 귀찮아져서 줄곳 패달만 밟으며 여기저기 지나치지 않을테니까. 담배 한 대 피우고 폴라포로 내장을 식히고 화장실에서 얼굴에 물을 뿌린 후(거울을 향해, 정신이 좀 드냐?) 출발.

등짝을 지지듯이 퍼붓는 광포한 햇살 때문에 출발하자마자 기가 꺽였다. 땀은 그야말로 비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작년 동해 주행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도로에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피부에서 땀이 마르면 그대로 쓰러진다 -- 일사병. 김가네 식당을 기준으로 불과 10킬로미터가 안되는 거리를 주행하면서 500ml 물병을 다 비웠다. 그늘 한 점 없다. 그저 벼들이 열심히 잘 자라고 있는 막막한 평야다. 등짝에 물을 쏟아 부었으나 찜통에서 익어가는 만두처럼 등짝이 뜨끈뜨끈하다. 이래선 도저히... 약 15km를 달린 후 부터는 눈을 두리번 거리며 그늘을 찾았다. 온 몸이 너절하다.

20km좀 넘어서자 건너편으로 숲 그늘이 있는 초등학교가 보인다. 방향을 틀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다. 아, 국내에 이런 학교가 남아 있었나 싶다. 무성한 숲,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늘마다 지역 주민들이 돋자리를 펴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학교 분위기가 참 좋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수돗가에서 웃통을 벗고 물병에 물을 담아 온 몸에 연거푸 퍼부어 등목을 했다. 지나가는 참새들처럼 아이들 몇몇이 다가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빨아 먹는다. 정겹기 그지없다. 등목을 해도 달아오른 몸뚱이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고작 한 시간을, 그것도 해를 등지고 달렸는데 햇살이 이다지도 사람을 기운 빠지게 만들 수 있다니... 죄 없는 나그네를 튀겨버릴 것 같은 더위, 마치 길섶에서 말라죽은 지렁이라도 된 것 같은 심정.


열기가 좀 가라앉아 근처 대나무 숲 앞에 앉아 쉬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정말 살 것 같다. 뱀 한 마리가 한가하게 기어간다. 잡아서 껍질을 벗겨 구워먹기엔 좀 작은 크기다. 아, 자리가 너무 좋아서 자전거 그만 타고 열기가 누그러지는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가고 싶다.

그럴 수는 없지. 벌써 오후 3시 30분. 조금 있으면 다산초당에 입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GPS를 살펴보니 다산초당까지 앞으로 4km. 여기서 푹 퍼져있지 말고 일단 다산초당까지 가서 쉬자.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학교를 조금 지나니 강진 / 다산초당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꺽어 열지옥의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올라갈 때 무척이나 힘들어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GPS로그를 보니 23m에서 64m까지 올라가는 마치재라는 길이다. 표고차가 40여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언덕길인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한참 기승을 부리는 더위 때문이었지 싶다. 마치재 마루에서 잠깐 쉬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등을 돌리자 시원한 바람이 언덕을 넘어와 내 품에 안겼다. 좋아.

다산초당까지 순식간에 주파했다. 길섶에 배낭을 맨 젊은이가 보인다. 도보여행중인가? 버스를 기다리는 듯.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때문에 강진, 해남을 찾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었다(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은 아니다. 하루 코스로 딱히 갈 데가 마땅치 않아서 온 거지.

다산유물 전시관 앞에 자전차를 세우고 그늘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입장권을 어디서 사야 해요?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강진에서는 말이요, 표 사서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나도 웃었다. 강진은 아직 관광산업에 오염되지 않은 것일까? 마음에 든다. 여름에는 오후 6시까지, 겨울에는 5시까지가 관람시간이다.

다산초당은 여기서 800여 미터 거리에 있다. 기운이 없어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차나무가 꽃을 피웠다. 다산초당에 훈장 선생님 같은 분이 앉아 힘들게 올라온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아버지는 하늘같은 존재라서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가르침 대로 어른들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도로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해 무척 난감해 한 적이 있다. 정약용 선생도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쳤을까? 아닐 것이다.

여기 물 마실 데가 어디 있어요? 처자에게 물으니 뒤로 돌아가면 마실 물이 있다고 한다. 약천이다. 정약용 선생이 이백년전 찻물로 사용하려고 만든 조그만 샘. 물맛이 맹숭맹숭하다. 이게 차 우리기 좋은 물인가? 퇫마루에 멍하니 앉았다. 울창한 숲속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던 정약용 선생은 이곳에서 몹시 고독하게 지냈을 것 같다. 사위가 음침하고 우중충하여 상상과 많이 달랐다. 그야말로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다'고 그가 말한대로의 유배지였던 것이다.

이곳에 앉아, 또는 동암에 앉아 차를 우리거나 책을 쓰고 가끔가다 헤장선사를 만나러 백운사를 간 것 빼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음울한 유배지다. 기운이 빠진 상태고 어두컴컴한 숲속을 흔들거리며 걸어와 주저앉아서 남인의 한 선비가 이곳에서 느꼈을 적막감을 상상하니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게다가 다산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사나 찬양은 집어치우고 내가 쓴 글이나 한 줄 더 읽어라' 그는 실학파의 거장이다. 김정희의 글씨는 여전히 아름답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관뒀다. 약천에서 받은 물을 떠마시고 전혀 경건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다리를 여러 차례 식혔다. 나도 실학한다.

그대로 내려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식히고 다산 유물 전시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얼마전 '정약용 살인사건'에서 본 내용 그대로의 다산의 일생을 요약하는 비디오를 두 번 보았다. 그의 지난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기 보다는 에어컨이 무척 시원해서 그냥 죽치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애들이 저그 떼처럼 오락가락 해서 계속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고, 바깥에 나와 해가 기울기를 기다렸다. 머리속으로 태양의 입사각에 따른 광량과 조사거리를 계산하며 졸았다. 6시가 되면 빛의 강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계산이고 나발이고 필요없다. 지랄같이 날 더운데 그냥 6시에 해 기울면 출발하자. 수돗가 건너편 숲으로 적송이 보인다. 졸다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껌뻑였다. 나는 상상한 것을 생생하게 보는 특이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적송 세 그루가 맞다. 아, 적송이구나. 궁궐짓던 나무지 라고 중얼거렸다.

여섯 시다. 해가 기울자 하늘은 새파랗고 높아 보인다. 유물 전시관에서 조금 내려와 수퍼에서 폴라포를 사다가 마룻머리에 앉아 건너편의 동네 노인네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한가하게 바라보았다. 침을 꿀꺽이는 할아버지들이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폴라포 맛이 평소보다 두 배는 맛있다. 눈치 빠른 주인 아줌마가 아이스 바를 꺼내 할아버지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아줌마가 묻는다. 민박 안 해요? 강진가서 찜질방에서 자려고요. 땜질방? 찜질방이요. 혼자 자전거 타고 왔어요? 네. 왜 동무랑 함께 오지 않고 혼자 왔어요? 혼자 다니니까 좋기만 한데요, 내킬 때 서고 내킬 때 가고. 잘 먹었습니다.

강진까지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역시 더위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간 것이었다. 다리 근육이 생생하게 잘 움직인다. 아까 길섶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아마도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일 서울행 버스를 예매하려고 줄을 섰다. 내 앞의 아줌마가 창구의 아줌마에게 말한다. 아니, 그래도 말은 좀 곱게 하시지 않구선. 내 차례가 되자 창구 아줌마가 변명한다; 혼자 표를 팔래니 바빠서요. 신경질이 나네요. 아침 9시 30분 차는 사람이 꽉 찼단다. 그 다음 차는 우등이고. 그 다음 차는 오전 11시. 오전 11시 차로 주세요.

강진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숙소를 눈에 박아두고 군청 근처의 강진 맛집을 가자. 모텔이나 여관은 눈에 띄지만 찜질방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강진에는 찜질방이 없단다. 근처에도 없어요? 없어요.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내일 서울행 버스표를 오늘 광주행 버스표로 바꿨다. 남도 음식은 두 끼면 충분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남도 음식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맛없는 비타500을 사먹었다. 암, 비타민을 보충해야지.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7시 좀 넘어 출발해 8시 30분에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에서 묵을까? 광주에서 묵으면 내일 오전 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때는 오후다. 이 지랄맞은 더위에 또 자전차를 몰고 가야 한다. 밤 9시 출발하는 버스를 끊고 휴대폰을 충전시키면서 터미널 식당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밥'을 주문했다. 터미널 식당의 그 맛없는 음식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맛 좋은 비빔밥이다. 아쉽지만 5분 동안에 허겁지겁 해치우고 버스에 올랐다. 피곤한 나머지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서울 남부 터미널에 도착. 오전 12시 30분. 느적느적 강변도로를 따라 집에 도착했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샤워하고 잤다. 온 몸이 후끈거린다.

평속 17.2kmh, 최고속 52.7kmh, 순수 주행시간 5h16m, 주행거리 92.9km(gps), 99.074km(지표 길이). 터미널에서 집까지의 23km는 제외.

해수욕장 두 군데 들러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상 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눈이 휘뚱그레지는 점심을 흡족하게 먹고, 다산초당에 들러 관광유적지는 안 들러봐도 괜찮다는 실학의 깊이를 체험하고, 도암 초등학교의 대나무숲 그늘에서 선선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보낸 시간이 다 합쳐 거의 다섯 시간에 이른다. 주행시간과 얼추 균형이 맞다. 야밤에 찜질방 찾아 돌아다닌 것으로 삽질은 딱 한 번 밖에 안 했다. 최근 들어 가장 보람찬 여행이 된 것이다.

조사한 식당 리스트:

* 해남 청운정: 061-533-6633. 해남 버스 터미널 옆. 아침식사 가능.
* 김가네쉼터: 061-535-2680. 완도로 들어가는 길목. 백반.
* 강진 둥지식당: 강진 군청 앞 작은 골목길 안에 위치. 강진 사람들이 자신 있게 권하는 맛집. 홍어 삭힌 것과 함께 나오는 한정식이 일품.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중무휴. 061-433-2080
* 강진 동해회관: 짱뚱어탕. 푹 고아낸 구수한 영양탕. 전남 강진군 강진읍 프린스모텔 옆 061-433-1180

주행 로그:

* 해남, 강진 트랙로그 gtm file
* Google Earth Map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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