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gucigalpa

여행기/Honduras 2003. 4. 27. 12:02
San Pedro Sula -> Tegucigalpa

수년 전 태풍 미치가 온두라스의 국토를 초토화한 후 별다른 국가적 제도적 장치의 보호가 없었던 온두라스 시민들은 집과 닭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온두라스 수탉은 한국의 장닭처럼 멋있게 생겼다. 닭을 잃은 농부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흉악한 절도/강도 사고가 무수히 발생하는 탓에 왠간하면 거리에서 걷지 말고 택시를 타길 충고한다. 주변국의 실정에 비추어 택시값이 워낙 싸기도 했다. 개중에서 콜렉티보라 불리는 '더럽게 싼' 택시들은 마치 이란의 사바리처럼 정해진 주행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1킬로미터쯤 가는데 0.2$ 가량. 대부분의 시민들은 언제 올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버스 보다는 택시를 더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택시비보다 음료비를 더 많이 쓰면서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바닷물에 담궈놓은 듯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도 뙤약볕 아래서 삐거덕 거리는 고물 로봇처럼 전진했다. 숙소로, 식당으로, 버스 터미널로, 광장으로.

태양이 가장 격렬하게 활동하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가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태양의 고도가 45도를 넘은 3시부터 해가 지기 1시간 전인 4시 반 정도까지가 가장 땀이 많이 흐르는 때다. 광선의 각도가 변화하면서 빛이 닿는 신체의 면적이 증가하고 대기를 뚫고 들어오는 태양광 중 자외선은 공기와 부유 입자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지고 대기와 먼지를 뚫고 전진하는 적외선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적외선은 쉽사리 몸을 뚫고 들어와 내장과 근육의 온도를 꾸준히 높이면서 몸을 행주 비틀듯이 땀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땀으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적어도 2리터 이상의 물과 음료를 마셨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딱히 건조한 날씨가 아님에도 흡수된 수분은 빠른 속도로 체외로 빠져나가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습도는 90% 이상 올라갔다. 피는 피를 부르고... 아니지, 땀은 땀을 부르고... 수분이 피부를 덥자 땀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할 열은 몸 안으로 되돌아간다. 덥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다...

볼거리 하나 없는 가엾은 거리를 할일 없는 개처럼 배회했다. 이 동네의 볼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민들을 가난으로 몰아놓은 천연덕스럽고 아름다운 주위의 자연 환경이다. 전 국토의 80 퍼센트 이상이 가파른 산악이라 농작물을 키울 형편이 안된다. 열대 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보이는 과일은 극단적으로 종수가 적다. 바나나, 망고,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사과가 거의 전부다.

개미한테 심각하게 물어뜯긴 팔다리가 가려워서 안티셉틱/안티히스타민을 구해야 하는데 마침 토요일, 일요일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다. 대체 얼마나 피곤했길래 섬에서 개미에게 그렇게 물려 뜯기면서도 곤히 잠들 수 있었을까. 피곤한 것이 당연한가? 왠만하면 무식하게 걸어 다녔으니. 하여튼 벼룩이나 모기도 아니고 개미한테 물리다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모기, 벼룩은 그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할 수 있었다. 벼룩이 찌를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 하고. 그 지독한 개미산 때문에 빨갛게 부풀어오른 작은 종기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워 참느라고 더 미칠 지경이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에어컨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일요일이라서 오후 3시 반 차 하나 밖에 없단다. 표 파는 아가씨는 도도했고 난 몹시 안타까왔다. 아픈데... 되돌아서 온 거리만큼 꾸역꾸역 다시 걸었다. 그나마 오전이라 땀이 많이 나지 않았다. 한 시간쯤 기다려 히터를 켜놓은 듯한 버스에 올랐다. 순서대로 약을 삼켰다. 기침/진해라고 씌어진 것 두 알과 진통제 500mg과 항생제 500mg.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배합과 똑 같다. 이 품종의 기침/진해약(안티히스타민)은 단 한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한 방에 뿅 가는 액티피드가 내게는 아주 잘 맞았다.

항생제 기운이 퍼지면서 슬슬 행복해지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차가 달린다. 10분도 안되어 시내를 빠져나간다. 차에 탄 사람들은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인다. 지금 빠져 나온 도시는 온두라스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다. 걸어서 25분이면 종단 내지는 횡단할 수 있다. 지금은 온두라스에서 첫번 째로 큰 도시인 떼구시갈빠로 향하는 중이다. 사람들이 떼구시갈빠라는 이름을 들어보기나 해 봤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진 cloud forest의 풍광은 더없이 위협적이고 아름답다. 차창 밖이라...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후덥지근한 열풍이 얼굴에 와 닿는다. 버스가 1초라도 멈추면 이마에서 주르륵 땀줄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있는 시민들의 염원은 한결 같다. 제발 계속 달려주기를, 열풍이라도 좋으니까, 차 안에서 풍기는 각종 냄새를 날려주시고...

고개를 돌렸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온두라스는 마치 열대판 설악산 같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허리에 정글 칼을 찬 메스티소(스패니시+인디언)와 가리푸나(인디언+흑인)가 나란히 도로 옆을 걷고 있다. 정복자 스패니시의 체면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 대단한 색욕에 삼가 경의를 표했다. 불과 다섯 세대 만에 온두라스 인구의 75%가 메스티소가 되었다. 첫 세대에 스패니시 한 마리가 몇 명의 토착 인디언 여성을 능욕해야지 2200만의 인구 중 75%가 혼혈이 될까. 세대당 평균 자녀수와 출산율과 사망율을 알면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약 기운에 기분이 좋아져서 만사가 귀찮다.

비몽사몽에 산자락 위로 떠오른 뭉게구름을 쳐다 보았다. 푸른색이다. 사진기를 더듬다가 관뒀다. 어차피 찍히지 않을텐데 뭐... 푸른색 구름을 두번째로 본다.

찢어지게 가난한 이 나라의 도로 시스템이 마치 전문가가 시공한 것처럼 정교한 이유를 알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개입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 때문이다. 이 정교한 도로망은 미국이 깔아준 것이다. 이를테면 도로의 회전반경이라던가 슬로프, 아스팔트의 두께 따위를 유지하는 토목공사는 선진 기술, 특히 측량과 설계, 시공과 그만한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돈이 없는 온두라스가 만일 도로를 자체적으로 건설했다면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처럼 아스팔트를 깔긴 깔았으되 설계하지 않고 대충 깔은 울퉁불퉁하고 괴상한 도로였어야 한다. 정글칼과 소 달구지로는 도로의 속도 한계를 계산한 후 설계한 이런 종류의 도로를 만들지 못한다. 너무 무시했나? 이 도로는 온두라스의 비참한 미국 현대 식민 역사로 보여서 그렇다.

온두라스인은 혁명을 통해 나라를 독립시키고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 최소한 그래 보인다. 태풍 미치만 아니었더라면, 아니 근본적으로 미국과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부패한 군부 독재 정권만 아니었더라면 온두라스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을까? 온두라스에는 혁명과 개혁을 짖밟은 미국이 있었다. 이 나라 걱정해 주러 여행온 것은 아니지만... 온두라스는 아마도... 레바논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꼬라지로 봐서는 발전속도가 참으로 더딜 것 같아 보인다... 안된 얘기지만 별다른 기적이 없는 한 동남 아시아권역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자력갱생으로 향하는 길이 저 밀림과 산세를 뚫고 나아가는 것처럼 험난해 보인다...

우띨라 섬에서 허겁지겁 빠져 나온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날 저녁 무슨 파티에 초대 받았었다. 분위기가 이상한 섬이었고 그 이상하다는 분위기의 대부분이 온두라스와는 다른, 정상적이지 못한 것임을 막연하게 감지했다. 어쩐지 그 섬은 미국인이 사들이고 그들의 이기적인 커뮤니티를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찌감치 빠져 나와서(파티에 안 갔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없었지만 혹시라도 우띨라 섬의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변칙적인' '비온두라스적인' 부분에 관해 딴 사람들에게도 좀 들어봐야겠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고? 중동 여행 끝나고 나서 그 동안 쓰고 다니던 노란 색안경은 버리고 지금은 색없는 안경 쓰고 다닌다. 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와 깐꾼은 서양, 특히 미국 여행자들이 판을 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떼말라의 치치까스떼낭고는 별명이 그링고떼낭고다. 그것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 둘은 각자의 문화라든가 삶의 양식에서 그 나라의 보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또한 미국적이라는 특성이 외부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우띨라에서는 거꾸로 '온두라스틱'하면서 온두라스의 보편적인 도시와는 아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관광지라던가 그런 부분이 아니라 가끔 여행자를 잡아서 인신 공양을 드리고 증거가 안 남게 나머지 살과 뼈는 잘 갈아 쏘세지로 만들어 파는 듯한...

멕시코가 미국과 캐나다를 엮는 북미권 자유 무역 협정의 기본 골격을 마련하고 곧 실현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멕시코는 중미 국가가 아니고 북미 국가다. 멕시코는 그 나라가 지닌 수많은 불가피한 행운에 하나 더 역사적인 행운을 타고났다. 지정학적으로 '돈버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중미로부터 원자재 수입과 싼 노동력을 이용해 북미라는 거대한 하이엔드 마켓에 팔아 먹거나 또는 그 반대도 되고. 21세기에 멕시코만큼 희망찬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헤롱거리면서 이런 저런 잡상을 떠올리다보니 아무도 이름을 기억해 줄 것 같지 않은 온두라스의 수도 떼구시갈빠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LA의 'HOLLY WOOD'라는 글자처럼 저 멀리 맞은 편 언덕 위에 하얀 글씨로 씌여진 대형 간판이 보였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Coca Cola


착취를 일삼았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군부 독재 정권 지원과... 내가 느낀 우띨라의 이상스러운 분위기에 대한 온두라스인의 답변은, Coca Cola Siempre(Coca Cola Always)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웃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내 편견이 웃음꺼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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