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aragua

여행기/Nicaragua 2003. 4. 30. 09:54
Tegucigalpa -> border -> Nicaragua Managua -> Granada

한산한 밤거리에서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은 거지와 강도와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는 마약상들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일년 동안 강도만 세 번을 당하고 소매치기는 다섯 번, 마리화나를 파는 작자들을 마약상 취급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거나 가내수공업 약재상 패밀리는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만났다. 또 있다. 거리의 여자들. 모두 슬기롭게 대응해서 돈 한푼 잃지 않았다. 거참... 한편으로는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몸이 솜뭉치 같아 걸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택시를 탔다. 약발이 워낙 쎄서 헤롱거린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몸이 좋아진 다음에는 내 몸이 그동안 얼마나 나빴는지 잘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알코올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몸이 알코올을 예전처럼 좋아하길 빌었다. 그 와중에도 택시를 잡아 협상했다. 그래 이놈아 나는 꼬레아노다. 꼬레아노는 다 나같은 놈들이다. 기사가 거지나 그 돈으로 불쌍해서 태워준다고 직직거렸다. 어젯밤 틈내서 게스트하우스 주인한테 택시비 다 물어본거지만 입을 다물고 실실 웃었다. 뭐 그냥 한국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 온두라스를 박살내면 그만이다.

비자 문제 만큼은 신경을 곤두 세우는데 비자 정책이 자주 바뀐다는 니카라구아의 외교부 홈페이지에 가보니 그렇잖아도 스트레스 돋게 만드는 에스빠뇰로 잔뜩 적어 놨다. 용어의 특성상(특히나 외교용어의 특성상) 영어로 적어 놓은 것도 이매모호해서 알다가도 모를 지경인데 간간히 아는 단어가 눈에 띄는 에스빠뇰 문서라면 짜증만 돋굴 뿐이다. 외교용어라... 이를테면 기분좋게 '당신은 웰컴이에요'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이런 이런 포말리티가 필요하며 이런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제한은 이러이러하다 라는 원칙론을 적어놓는데(애매하게) 실제 가서 영사나 사무관을 만나면 제한조건은 거의 없거나 명시적일 뿐 실무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엄포용이다. 우리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여 라는. 여행자/관광객은 별다른 꼬투리가 없으면 비자가 쉽게 나온다. 그리고 그 꼬투리라는 것들은 언제나 이유가 부족하므로 허점이 많아 헛점을 잘 캐치해서 강짜를 부리다보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경험상, 이성적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니카라구아 대사관에서 발급하는 비자는 25불 짜리인데 몸도 성치 않고, 여러 경험자들이 국경에서 받았다길래 국경에서 받기로 했다. 미친 가이드북은 대사관에서 받을 것을 권고했지만 얘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몸이 천당에 가 있으니 안전빵하게 투어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경에서 비자 발급 없이 투어리스트 카드를 10$에 발급해준다. 음? 왜 10$일까 싶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앞에서 얼쩡거렸는데 5$가 맞을 것 같아 왠지 속이 탔다. 투어버스라서 출국수속과 입국수속을 안해서 좋은데 비자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가 없다. 말이야 뭐 늘 안 통했으니까 그렇다치고. 이 망한 놈들은 왜 영어를 안 하는겨? 돈을 걷어가서 1시간 반 기다리니까 자기들이 서류까지 다 써서 한꺼번에 처리해서 가져온다. 물론 그걸 노린 것이긴 했지만 왠지 투어버스라는 것이 탐탁치가 않다. 쓰잘데 없이 미묘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차장 녀석은 내 패스포트를 들춰 보지도 않고 내게 건네준다. 다른 서양인들은 일일이 이름을 불러 여권을 돌려주면서. 녀석이 나를 기억한다는 뜻인데... 과떼말라 때부터 국경에서 이상하게 관심을 받았다. 파키스탄, 시리아 비자 때문인가? 내 얼굴을 보라고. 나쁜 짓하고는 거리가 멀게 생겼잖아. 국경에서 패스포트를 들출 때마다, 파키스탄 비자에서 멈칫하는 사무관들의 야릇하게 바뀌는 표정을 볼 때마다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환전상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눴다. 주로 숫자로 대화했다. 2003/4/29 고지환율은 1 USD 당 14.75 니까라구안 꼬르도바인데 14.50 정도까지 언급해서 흔쾌히 환전했다. 기분좋은 거래다. 환차손은 100불 기준 1.6$ 가량. 대단히 훌륭한 환율인데 요르단-이집트 국경에서 관리가 뉴스 볼 시간이 없어 잘못 알고 있던 덕에 공식환율보다 더 높게 받은 이후로는 환차손이 가장 적은 케이스다. 그만큼 양심적인 장사꾼이랄까? 엘 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 넘어올 때 환전상이 계산기로 장난을 쳤다. 기괴한 계산기였는데 10/2=4가 나오는 식이었다. 확인하지 않았으면 깜빡 넘어갈 뻔 했다. 어쨌거나 그때는 환차손이 너무 커서 안했다. 계산기에 무슨 조작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나도 배워서 써먹고 싶은데.

국경에서 기다리는 동안 서양 여자들 다리통을 보니 내 다리만큼 말이 아니다. 대체 뭐에 물렸기에 이 지경이 되었냐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개미라고 알려주니 반신반의한다. 당신 나무로 지은 집에서 잤지? 그렇단다. 한 여자는 워낙 긁어서 피멍이 들었다. 칼라민 연고가 소용이 없단다. 글쎄, 칼라민 연고가 소용없다는 말을 두어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럼 왜 그 약을 판매하는 것이고 왜 그 약이 벌레 물린데 치료제로 광범위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일까? 벼룩과 모기와 샌드플라이와 개미가 짖밟고 지나간 흔적들 사이의 차이를 말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만큼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없었다. 다 물려 봤으니까. 말 나온 김에 피부를 뚫고 자기 알을 낳는 벌레도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한 여자애는 자기 남자 친구랑 안 돌아다녀본데가 없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이 벼룩 저 벼룩 얘기를 늘어놓았다. 난 왠지 저러고 싶지가 않다. 약을 나눠줬다. 한 알에 0.7$나 하는 비싼 약인데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거 먹으면 쓰러지니까 자기 전에 먹으라고 당부했다. 난 정말 쓰러질 지경이었다. 버스에 올라 한 알을 삼키고 연구 좀 하다가 세상 모르게 잤다.


가장 쉽게 통과한 국경 되겠다. 국경에서 내려 한 시간 반쯤 기다렸다가 다시 투어버스를 탄 것이 고작이니까. 국경을 넘어 니카라구아 들어서서 시간 계산을 잘 해보니까 잘만하면 마나구아에서 바로 그라나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나구아는 나중에 또 들르게 될테니까. 그렇게 했다. 버스에서 내려 달겨드는 택시기사들과 쇼부를 쳐서 1$ 주고 4킬로쯤 떨어진 터미널로 향했다. 보통 2~3$ 정도 한다는 조언을 여행자들에게 들었는데 어째 인도에서처럼 협상이 내 뜻 대로 '합리적이고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게' 진행되어서 마음에 든다. 약 기운에 제정신도 아닌데. 그라나다행 완행 버스에 오른 시각이 저녁 6시. 미적미적 대는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도착하니 8시. 가게문을 다 닫아 텅빈 거리를 바짝 긴장한 채 30분쯤 걸어(헤메어) 싼 숙소(기쁨과 함께)에 도착.

그라나다는 밤에 안전한 도시같다. 엘 살바도르나 온두라스에 비하면 잘 사는 나라같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밤에 군경이 사방에 깔려있어 나다니기가 좀 캥기는 곳이었다. 그나저나 덕택에 하루종일 굶었다. 가게문을 다 닫아 뭘 먹을 형편이 안된다. 배는 고프고... 어쩔 수 없이 밤 늦은 시각까지 여는 비싸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밤늦은 시간에나 먹는 그저그런 음식을 시켜 먹었다. 오픈 테라스라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식사 한 끼로 어제, 오늘 삐끼들과 투쟁해서 아껴 모은 돈을 가볍게 날려버렸다. 하는 짓이 매번 이랬다. 절약해서 밥값으로 날리기.

음식이 맛있기나 하면 투정을 안 부리지!

숙소에 누워 오늘의 유머(조선일보)를 봤다. 며칠전보다는 증세가 호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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