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ada

여행기/Nicaragua 2003. 5. 1. 20:01
더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체온이 1도 상승하면 신진대사가 10% 가량 증가하고 그에 따라 500~1000ml의 수분이 더 필요하단다. 체온을 낮추기 위해 얼음을 넣은 코코아물로 버티고 있다. 코코아물은 마시고 비닐봉지에 든 얼음을 목덜미에 얹어 다니니까 애들이 웃는다. 우기가 시작된 줄 알았는데 아직 며칠 더 남았다. 어서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

에어컨이 그리워서 숙소를 전전해봤지만 지금 묵고 있는 숙소보다 비싸서(도미토리가 7.5$, 지금 있는 숙소는 선풍기가 있는 싱글로 4$) 가기가 꺼려진다. 여행중 만난 한국인이 추천해준 호스텔에는 풀장이 있고 인터넷이 30분 동안 무료다. 생까고 마구 써도 될 것 같다. PS2가 있어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복도 곳곳에는 해먹도 있었다. 도미토리를 살펴보니 A/C 아우틀렛이 없다. 그래서 안 갔다.

이 작고 매혹적인 식민지풍의 도시에 있는 건물들이 멕시코에 있는 식민지풍 건물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처마의 폭이다. 도로 쪽으로 난 처마가 넓어서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려준다. 마음에 든다. 대신 2층이 없고 따라서 꽃 장식을 해 놓은 작은 베란다가 없다.

같은 식민지풍 건물인데도 조금씩 차이가 눈에 띈다. 식민지, 스페인 풍 건물은 길거리로 난 벽면에 창문 몇개 달랑 달려 있고 출입구가 정문 하나, 건너편 길쪽으로 쪽문이 하나 달려 있다. 입구 안은 일종의 리셉션이고 리셉션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면 빠르께(정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복도가 있고 복도를 따라 방들이 있다. 바깥의 소음과는 달리 안은 조용하고 시원하다. 한켠에는 물을 담아놓는 커다란 콘크리트 수통이 있고 거기서 빨래를 할 수 있다.



니카라구아 식민풍 건물의 내부에는 복도를 따라 많은 수의 흔들의자와 해먹이 놓여 있다. 때로 벽에 무랄을 그려놓는다. 색감은 전반적으로 얘네들 먹는 푸르고 붉은 망고와 닮았다. 열대임에도 건물 내부에는 모기가 없다. 높은 천정 탓에 언제나 바람이 불어 습기를 날려 버리고 모기 또한 조용히 쓸어버리는 것 같다. 벽은 일반적으로 속이 빈 콘크리트인데 겉에 회벽을 두껍게 발라 벌레가 잘 기어다니지 않는 것 같다. 벽돌도 물론 사용했다. 언젠가 벽돌 굽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대체로 잘 굽는 편은 아니다. 벽돌을 제대로 구우려면 벽돌집을 쌓아 내부에서 불길이 골고루 번지도록 통퐁로를 잘 만들어줘야 하는데 벽돌을 굽다가 심한 열변형으로 벽돌집이 무너지거나 풍로를 작게 만들고 벽돌을 두껍게 쌓아 한쪽만 심하게 그을리고 부르튼 벽돌을 만들었다. 정원에 꽃은 잘 키우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용 자재나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 성의가 없어서 좀 안타깝달까. 내가 십장이거나 공사 감독이었으면 즉각 잘라버리고 값비싼 한국인 인부를 투입했을 것이다. 일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가장 상위 층에는 방수도료나 고무를 발라야 하는데 안 바른다. 비가 많이 안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붕과 천정 사이에 배수로를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지은 집이 그 모양이라 제대로 짓지 않은 집은 껍데기는 멀쩡해 보여도 영 꽝이다. 지진나면 틀림없이 무너질 얇은 벽과 물이 샐 구석이 너무 많고 지붕과 천정 사이는 대낮의 열기로 열지옥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여튼 높은 천정을 만든 것은 잘한 것이지만 높은 천정에 걸맞는 건축이 아니라서 유감스럽다.

그라나다에서 눈에 많이 띄는 것은 해괴하게도 부동산 가게였다.

틈틈이 입력하고 있는 라틴위키가 여기를 여행하게 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인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중남미는 누워서 떡먹기랄까... 인도나 여타 여행지와 다른 점이라면 동선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택시를 타지 않을꺼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 아, 달리 말해 나는 상당한 체력을 지녔다. 4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들고 32도를 오락가락하는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 다니니까.

bLog는 자폐증 환자들의 노출증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 같은데 홈페이지의 조회수가 45일 동안 2700회가 나와서 대단하다. 같은 코스를 밟는 여행자들이 이 blog를 봐주고 어디 가 보라고 제안이나 충고를 해줬으면 싶은데, 중미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씨가 마른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안녕하세요?' 라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크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미국인, 한국에서 얼마간 놀았고... 별 관심없는데 자꾸 말을 시켜 도망가느라 애먹었다. 좀 고독하게 내비두면 좋겠다. 대신 니카라구아 애들과 놀았다.


멋있어 보이려고 인상을 긁긴... 니카라구아인들은 여자에게 쓸데없이 친절한 것만 빼면 한국인과 많이 비슷해 보인다.

볼거리가 없다. 볼거리는 멕시코와 과떼말라에서 모두 끝장난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일없이 도시 사이를 잇는 기분 밖에 들지 않는다. 거대한 니까라구아 호수를 보고 나니 오떼뻬께 섬에 안 들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스따 리까로 직행이다. 호수나 섬이나 화산이나 정글 같은 거 말고 좀 더 신선한 것 없을까? 모험과 로맨스가 있고 24시간 편의점과 24도의 쾌적한 온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친절한 상어와 열대어가 우글거리는 잔잔한 초호 바다, 5분 거리에 쏘가리가 잡히는 맑은 시냇물, 거리에는 친절한 아랍인 장사꾼들, 식당에서 타이음식과 베트남 음식과 광둥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 있고, 삐끼는 인도스럽고 숙소비는 이집트처럼 싸고 멕시코처럼 손쉽게 맛있는 맥주를 구할 수 있고, 여행자 거리에는 미국인과 이스라엘리가 전혀 안 보이고, 숙소는 산 뻬드로 라 라구나처럼 한가하고, 현지 여자들이 나같은 동양인에게 반갑게 꼬리치는 그런 여행지 없나?

책 10권 만드는데 15만원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다. 여행 끝나면 여행기를 제대로 손봐서 책자로 만들어 친지들에게 나눠줄까 보다. 진작 알았으면 처음 여행 시작할 때부터 여행기를 제대로 써둘껄 그랬다.

hawler monkey가 뭔지 알았다. congo다. 띠깔에서 그들의 괴괴한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쫓아가서 돌이라도 던져보는 건데... 아쉽다.

더위를 무릅쓰고 거의 아비규환에 가까운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닭을 잘라서 판매하는 가판을 발견. 앗. 오늘은 백숙이나 해먹자. 최근에 배운 것을 토대로 잘린 부위가 분홍색인 것을 골랐다. 싱싱한 닭은 분홍색이라고 하더라. 이것 저것 재료를 다 사니 25꼬르도바(1.7$). 흐뭇. 한국인에게 고춧가루를 받은 것이 있어서 제대로 된 오이절임과 제대로 된 것 같은 무지 매운 닭죽을 해 먹었다. 용기 있어 보이는 외국애에게 맛 보게 해 주었더니 오 쉿! 이라고 외쳤다. 참고로 외국인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오 쉿 !이라고 외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맵단다. 그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두 그릇을 해치웠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위장이 얼얼하다. 콧물이 나왔다. 닭죽 먹으니까 살 것 같다.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수준이다.

담배를 물고 신문을 들여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멜론 사러 시장 갔다가 마땅한 놈이 보이지 않아 정처없이 걷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세 시간 동안 계란 네 개 사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못 산 채 거리를 헤맸다. 한심하다.

니카라구아 인은 친절하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니면 한 블럭이나 두 블럭 쯤은 우습게 지나쳤다. 멕시코서부터 중미인들의 뛰어난 방향감각과 거리 감각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냥 친절하기만 했다. 정확하게 친절했으면 더더욱 좋겠다.

사내 대탐험/데이브 베리 지음/조경숙 옮김/아름드리미디어 -- "이 책은 여성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이해시켜주므로." -- 놀고 있네.

페로몬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페로몬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개미나 벌같은, 그러니까... 벌레같은 인간이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나오는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 이런 홈페이지나 보고 있다니... 우윽... 인터넷이 워낙 빨라서 마음에 든다.

여행 오기 전에 iRiver의 Flash Memory MP3 Player를 사려고 고심했었다. 안 산 것이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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