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간: 2001.10.13 ~ 21 (9일간)
일정: 방콕(2박)-꼬 따오(3박)-방콕(2박), 나머지는 길에서 버린 시간
숙소: 호텔(2박, 17만원), 방갈로(3박, 250밧, 300밧), 도미토리(2박, 90밧)
여행경비: 항공권(42만원), 호텔2박 조식포함(둘이 합쳐 17만원), 체류 비용 1인당 150$, 합쳐서 300$
1일 평균 경비: 2인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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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엑셀 파일


평균기온: 섭씨 33도.
 
M&A 합병인지 뭔지로 인생에 흥미를 잃은 프로그래머는 어느날 여행을 하고 싶다고 전화 주셨다. 사실 그가 의미했던 것은, 지금 생각이지만, '타일랜드 섹스 관광'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 잘못 골랐다. 지친 영혼과 육체를 편안하게 쉬게 하는 방법 중 최고는 그저 빡세게, 아무 생각없이 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얽힌 길에서 헤메고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며 부대끼는 사람들과 통하지도 않는 말로 우왕좌왕, 횡설수설 하다보면 모처럼 시간내서 염세, 허무주의에 탐닉할 시간이 없어 약간 서운해 질지도 모르겠다. 빡세게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머리통을 텅 비우는데 남다른 재주와 소질을 가지고 있다면 의자에 앉은 채로 상상의 도시를 여행하고 상상의 짐승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스트가 말했다. '아, 나는 내일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노라' 라고. 그리고 그에게는 지금이야말로 한 번도 가지 않고 남겨둔 길을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를 위해 스페샬 트래블링 어댑테이션 코스를 마련했고 여행지에서 자력갱생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오래 전, 나에게 회춘을 가져다 준 여행과 그 기쁨을 그에게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무척 쓸데없는 짓이지만 그에게 여행 코스를 잡아주고 준비물 따위를 알려주었다. 준비물은 그간의 경험으로 드라마틱하게 단순해진 상태였다. 칼, 라이터, 빤스 두 장, 티셔츠 두 장, 반바지 한 장, 스포츠타월 한 장, 칫솔 하나, 정로환 당의정, 샌달, 끝. 더이상 준비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Q: 나머지는요?
A: 현지조달.
옷과 신발만큼은 국산이 최고다. 그리고 항공권을 예매해주었다. 예매하다가 실수로 내 것도 함께 해 버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회사에 휴가를 가겠노라고 말했다. 휴가지, 또는 비상연락망 칸에다가 대충 국내의 아무 도시나 써놓고 떠나는 당일까지 내색하지 않고 지내는 등, 나름대로 정성스레 사기 행각을 벌여 사람들을 안심케 했다. 42만원짜리 항공권, 단지 동행을 안심시키기 위한 17만원짜리 호텔 스윗룸 2박 예약(미친 짓이다), 300달러의 경비. 나는 그에게 여행의 진수를 가르쳐 주면서 그를 뜯어먹으며 빌붙어 다닐 예정이기 때문에 262$만 준비했다. 지나치게 많이 준비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중 70$ 이상이 '쇼핑'으로 날아갔으니 실제 경비는 나나 그나 160$ 안짝이 되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쌀 것도 없었다. 여행 전날밤 술 먹고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후다닥 싸 버렸다. 심지어는 배낭 대신 조그만 가방에 되는대로 쑤셔놓았다. 떠나기 전날밤 술을 엄청 마시고 나랑 사귀고 싶다는 여자의 청을 거절했으며 그리고 더 마시고 또 마시고 낄낄낄 웃다가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회사일을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프로그램을 여덟 개 짰고 그와 관련된 다큐먼트를 다섯 개나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를 그만둬도 충분할 정도로 뒷정리를 깔끔하게 해 두었다. 이 김에 회사 관둘까? 아침 10시에 출근이라니. 너무하잖아! 마지막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문제가 생기면 어디어디로 email을 보내주십시오.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읽겠습니다.
 
썰렁한 거리를 지나 5500원짜리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코드 네임 불스, 나의 동반자, 내가 뜯어먹어야 할 시니어 펠라,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기해 볼래도 기억나지 않는 불행한 프로그래머, 수년간의 독특한 경험을 통해서도 프로그래머의 길을 깨닫지 못한 채 여자친구 하나 없이 방황하는 바보천치, 그것은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불행의 제곱. 악운의 내추럴 익스포넨셜.
 
그에게 모든 재량을 맡겼다. 나는 뒷짐을 진 채 그가 하는 꼴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를 따라 보딩 패스를 받고 커스텀을 통과하고 패스포트 컨트롤을 지났다. 그는 빌어먹을 라덴 덕택에 엊그제 샀다는 스위스제 빅토리녹스 나이프를 항공사에 빼앗겼다. 그에게 가이드북 알기를 죄수의 잠자리 맡에 놓인 성서처럼 소중히 알라고 꼬치꼬치 설교를 늘어놓고 비행기 스튜어디스의 외모를 흉보면서 브랜디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모포를 슬쩍하라고 음흉하게 충고했다. 계곡에 앉아있는 선생처럼 말했다. 우리 함께 철저히 어글리 코리안으로 행패나 부리자. 라고. 사실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돈 무앙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내 이름과 가련한 프로그래머의 이름이 적힌 피켓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황송할데가... 우리는 뒷문을 열어주고 짐을 짐칸에 넣어주는 리무진을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광활한 욕조에서 호강을 예감하며 첨벙이다가 옷을 갈아 입었다. 심지어는 객실에 리셉션 룸이 있었고 TV가 두 대나 되었으며... 5단 레버가 달린 에어콘이 있었다! 전등 스위치와 에어컨은 침대 맡에 있는 작은 탁자 위의 컨트롤러로 직접 제어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는 호텔 수영장이 보였는데 홍수에 휩쓸린 돼지처럼 사람들이 둥둥 떠 있었다. 햇살은 따가웠고 거리는 습기와 매연으로 가득차 있다. 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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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내부
 

여행할 때 즐겨입는 거지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짜두짝 주말시장으로 향했다. 짜두짝 시장에서는 온갖 짐승의 냄새가 풍겼다.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다. 나는 주저없이 행주 끓인 냄새가 난다는 평이 자자한 팍치(향초)를 잔뜩 집어넣은 국수를 그에게 권하며 말했다. 먹어. 먹는다. 팍치 없이 태국음식을 먹는 작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설사끼를 느낀다길래 남 깽 쁠라우(로칼 워터 윗드 아이스)를 권하며 말했다. 마셔. 마신다. 설사의 가장 좋은 예방책은 배를 채운 후 죽어라고 걸어 억지로라도 소화시키는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살아있는 지식을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 그를 데리고 매연과 시꺼먼 이국인들로 가득찬 거리를 네 시간 넘게 걸어다녔다. 피부의 모든 땀구멍에서 소금기가 섞인 액체가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짜두짝 시장에서 나는 190밧 짜리 방수시계를 구입했다. 시계 뒷딱지에는 OK라고 씌여 있었고 후에 물에 담궜다 꺼내자 곧바로 물이 들어갔다. 대체 뭐가 OK란 말인가, 이 싸구려 시계야? 그리고 사랑하는 모자와 작별했으며 100밧 짜리 새로운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닭똥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닭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꼬치구이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비록 내 눈알이 찌든 문명 속에서도 총기와 호기심으로 반짝이지만 늘 태국인, 아니, 태국 거지로 오해받았다. 옷차림으로 타인을 평가하려는 우둔한 사람들이 내면의 풍만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발생하는 불상사였다. 어떤 때는 피부 가죽을 벗기거나 두개골을 드러내 30여년 동안 잘 손질한 정원처럼 촘촘하고 꼬불꼬불하게 얽혀있는 대뇌피질을 보여주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대신 그들은 자비와 연민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거리에 앉아있는 내게 동전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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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산 싸구려 짜가 시계
 

거리에서 한 외국인이 다가와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동전을 짤랑이며 고개를 끄떡였다. 팟뽕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오늘 저녁 거기서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남자들끼리만 아는 음흉한 미소를 교환했다.
 
MAM pro로 경비를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하루에 1000밧씩 쓰기로 결심했다. 평소에 내가 태국에서 쓰는 돈은 많아봤자 150밧(4500원) 정도였다. 도미토리의 꾀죄죄하고 구석진 침대와 시장 골목에서 파는 국수와 덮밥, 그리고 약간의 과일과 꼬치로 호사를 누렸으며, 다섯 개의 구멍난 시트가 한 줄에 달린 비꺽이는 로칼 버스나 3.5밧짜리 시내버스만 타고 다녔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태국인들처럼, 아니 때로는 태국인들보다 더 거지같은 생활을 했지만 언제나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았고 또한 오크통속에서 이를 잡고 살아가는 그리스 철학자처럼 따뜻한 햇살에 씨익 웃음 지을 줄 알았다. 그런 나에게 1000밧은 실로 엄청나게 큰 돈이라서 어떻게 써야할 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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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마다 붙어있는 사당에서 꽃과 양초와 향을 사서 절을 하는 행인들
 
저녁에 팟뽕에 갔다. 스테이지에서 홀라당 벗고 기괴한 아크로바트 (쑈라고 한다)를 하는 여자들을 무미건조하게 쳐다보다가 예쁘장한 여자가 보이면 제스쳐를 취했고 그러면 옆에 와서 앉았다. 내 테이블에는 한 병의 씽 맥주와 콜라가 한 잔 놓였고 불스의 테이블에는 다섯잔의 콜라와 맥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콜라 잔 수만큼 홀딱 벗은 여자가 테이블에 앉는다. 불스 주변에는 발가벗은 여자 다섯이 엉겨 붙었는데 그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 친구랑 노는게 재미 없는지 내 곁에 와서 값싼 미소를 흘리며 몸을 더듬었다. 내 이름을 묻는다. 루크. 네 이름은?
 
스테이지 앞에는 서양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갑자기 여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정육점에서 전시되고 팔리는 고깃덩이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여자들, 싼 값에, 단지 콜라 한 잔에 희롱 당하고, 단돈 1000밧(2만 5천원)에 남자에게 몸을 내주며 밥벌이를 하는 태국여자들의 불행 또는 당신의 문명이 선사한 바이어스된 공정함이 지닌 시선 때문이리라. 남자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통곡과 내 즐거움은 우주끝까지 완벽한 평행선을 달려갈 것이다. 섬세하고 가느다란 머릿결, 부드러운 갈색 피부, 아름다운 눈동자, 오래전부터 팔리는 여자를 사서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여자들이 나랑 자려면 그들이 오히려 내게 지불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오만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쑈가 끝날 무렵 반쯤 정신이 나간 불스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키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꼬치 몇 조각과 시원한 맥주로 배를 채웠다. 불스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나는 10분 정도 책을 잡고 있다가 바로 골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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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꼬치 안주, 태국산 담배
 
하인라인의 책 제목: have a space suit, will travel. 오래된 옛말: 음식이 입에 맞는다면, 여행은 내내 즐거울 것이다. 불스는 호텔에서 주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객실을 나오기 전 룸메이드에게 주는 20바트의 팁이 아까워 do not disturb 전등을 켜두었다. 불스는 어글리 코리안의 행태에 실실 비웃음을 지었다. 호텔 프론트에는 신혼여행을 온 관광객들, 주로 한국인들이 북적였다. 호텔을 나오자마자 6시간쯤 쉴새없이 걸어다녔다. 불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난 경복궁, 창경궁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와서 남의 나라 왕궁을 몇 시간씩 걸어다니며 입을 헤 벌리고 땀을 구성지게 흘리면서 열심히 구경하고 있다는 점이 꽤 아이러니컬하게 여겨집니다. 그런가? 나는 하나도 안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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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시기에 세운 세 개의... 모르겠다. 묻지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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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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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금은 아니겠지 설마
 
에메랄드 사원이었다. 수백만 개의 색유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사원. 나는 사원에서 태국인들 틈에 끼어 앉아 금부처에게 향을 피웠다. 얼마나 한국인들이 오락가락 했으면 거기 안내인이 내 머리를 가르키며 '모자' 라고 말했다. 모자 벗으라는 뜻이다.
 
거대한 와불이 있는 왓 포에서 만난 사기꾼을 데리고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잘 놀았다. 즉, 필요한 정보를 뽑아낸 다음, 헌신짝처럼 그를 내팽개쳤다. 불스는 내가 외국인하고 대화를 할 때나 삐끼들을 희롱할 때면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리고 간단히 한 마디 했다. 영어가 딸려서요. (누군 안 딸리나?) 그 놈들이 내게 다가와서 한 말은 그런 것이다. 그런 복장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알고 있어. 오늘은 왕궁이 쉬는 날이다. 알고 있어. 넌 운이 좋은 편이다. 오늘만 특별히 문을 여는 곳인데 거기에 데려다 주겠다. 난 보석에 흥미없어. 아팃 선착장이 어느 쪽이지? 저쪽. 카오산까지 가려면 얼마야? 10밧 줄께 갈래? 30밧은 줘야 한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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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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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포 사원의 정원. 음. 태국인 가족을 찍고 말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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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포 사원: 무시못할 중국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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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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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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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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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파 라고 해야 하나?
 

왕궁 앞에 건널목에서 꼬마 아이가 '옵빠, 만원에 열깨!'를 외치며 왠 악세사리를 팔려고 졸졸 따라왔다. 안 산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따라오게 내버려두자 슬슬 갯수가 올라가 '옵빠, 만원에 이씹깨!'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불쌍하고 물기에 젖은 눈망울 때문에 잔인하게 대하기가 어렵다. 수박을 사먹으면서 권해주었다. 거절하며 소리친다. '만원에 오십깨!' 고개를 저었다. 악세사리에 취미 없다. 아이는 실망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크게 결심했다는 듯이, 그리고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일부분 손해를 감수할 각오를 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선언했다. '그럼 옵빠, 만원에 아홉개!' 만원에 아홉 개? 못내 웃음을 참고 아이를 남겨둔 채 뚜벅뚜벅 걸어갔다.
 
짜오프라야 강을 횡단하여 해부학 박물관에 들렀다. 신체를 종횡으로 잘라놓은 것들이 눈에 띄었고 다양한 샴 쌍둥이 시체가 커다란 유리병에 들어 있다. 어떤 아기 시체는 반을 갈라놓아 지독하게 적나라했다. 피부를 벗긴 남녀의 시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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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해 놓은 여자 시체: 발치에 꺼내놓은 내장이 보인다.
...
사진 못 찍게 하는 곳이지만 어글리 코리안은 추태를 부렸다
 
법의학 박물관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강간살해범을 목매달아 죽이고 미이라로 만들어 유리관에 전시해 놓았다. 완전히 말라붙지 않은 미이라에서 진액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 옆에는 그가 살해한 여자의 피묻은 옷가지와 공구가 걸려 있었다. 총알이 관통한 해골바가지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감탄스러운 것은 두개골을 관통한 어떤 시체의 머리를 잘라 총알의 궤적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 전체를 횡으로 절단하여 정수리에서 후두부에 이르는 대뇌의 피해를 보여준 전시물이었다. 그외 기차사고 시체들, 교통사고 시체들, 익사체들, 트럭 밑에 깔린 오토바이 사고 시체, 다양한 거리(밀착, 10cm, 20cm, 원거리 사격)에서 총 맞은 시체들, 조개에 뜯어먹힌 시체, 철사줄에 목이 잘린 것들, 도끼에 찍힌 것들, 번개맞은 시체 등등 다소 식상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다시 걸었다. 온몸이 땀에 절어 허연 소금기가 팔다리에 사뿐히 앉아 태양 빛에 반짝일 때까지 걸었다. 지독한 고통 뒤의 쾌락을 상상하면서. 물어물어 시간당 100밧 한다는, 여자를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은밀한 밀실에서 맛사지를 해준다는, 태국인들만 들락거린다는 맛사지 가게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용기있게 태국섹스관광에 나선 한국인처럼 들어갔다. 그야 물론 가장 예쁜 여자를 동행보다 재빨리 골랐으며 그 여자가 세숫대야를 들고와 발을 닦아주고 옷을 갈아 입힐 때까지 밀실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음탕한 기대감에 젖어 있었으나, 온 몸의 뼈가 재배치되는 고통스럽고 일견 환희에 찬 두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갔을 뿐이다. 온갖 기괴한 맛사지가 끝날 무렵, 모든 뼈 마디와 근육이 고통스럽게 비꺽였지만(그녀는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힘이 엄청나게 쎄다) 나는 처음으로 허리와 팔 다리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꺽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받아본 어떤 마사지보다도 뻑쩍지근했으며 다음에 또 하러 와야겠다는 굳은 결심과 더불어 눅신한 뼈마디, 근육 때문에 거리에서 픽 쓰러지기 전에 어서 빨리 아낌없이 돈을 투자해 배 불러 먹고 버스라도 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 하루 반나절 동안 모토 싸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다각도로 이용했다. 모두 불스를 위한 일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저 걷거나 값싼 버스만 탔을 것이지만, 불스를 위해서 2박에 무려 17만원이나 하는 값비싼 호텔, 그것도 스윗룸에 묵었던 것은 그에게 '적응'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태국은 그나마 나은 나라다.
 
카오산에 들렀다. 벌써 여섯 번째인 것 같다. 여전한 동네에서 새로 생긴 한국인 가게에 들러 섬으로 가는 조인트 티켓을 예매하고 도미토리를 둘러 보았다. 홍익인간과 만남의 광장에는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번, 저번 여행 때 신세를 지고 괜히 미안한 김에 맛대가리 없는 한국음식을 시켜 먹느라 오히려 경비가 더 많이 깨졌다. 게시판에서는 홍익인간의 불친절함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관광 패키지에 대고 이런 저런 욕들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일에 끼어들어 지저분해지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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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차담넌 거리에서 만난 행렬
 
저녁에 다시 고기들이 춤추는 나나 플라자로 향했다. 팟뽕에 비해 여자들이 훨씬 예뻐서 몹시 기뻤지만 쑈는 별볼일 없다. 특이한 것은 늙은 서양인들과 한국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점.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몸매와 얼굴, 특히 가슴이 예쁜 아가씨를 옆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줄기차게 자신의 양 부모가 중국인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녀의 피부는 타이족처럼 검거나 갈색을 띄지 않았다. '하얀 피부'에 대한 강박적일 정도의 집착이 이 나라의 미적 기준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애는 스물한살 먹은 치앙마이 출신의 귀여운 소녀였다. 가슴을 건드리면 놀라 몸을 떨면서 웅크리는, 한 눈에 봐도 수줍은 처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자애였다. 물론 남자친구가 없다. 그 가게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지 2개월이 안 되었고 경험이 부족해 스테이지에는 아직 서지 못했으며, 바깥에 자러 나가지 않는 등등. 그 아이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해맑은 미소를 지녔다. 그 아이처럼 이 여자도 한국인 친구를 가지고 있다며 쪼르르 달려가 그가 남긴 메모를 소중한듯이 가방에서 꺼내 보여준다.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 따위가 적혀 있다. 흠. 그렇군. 그러면서 자기는 좀 비싸다고 말한다. 24세 미만은 2000밧, 이상은 1000밧짜리 인어들. 불스의 눈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다음 번에는 혼자 와서 몸을 아끼지 말고 여자들을 정말 즐겁게 해 줘야지! 과연 그렇게 될런지는 의심스럽다.
 
공무원처럼 보이는 한국인이 경직된 표정으로 들어와 잠시 앉아 있다가 즉시 여자를 나꿔채 바깥으로 나간다. 다소 메스꺼운 기분이 들었다. 스테이지 주변에는 순하게 생긴 나이든 외국인들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하나둘씩 여자들을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한국인이 하나둘씩 꾸역꾸역 들어온다. 더 꼴보기기 싫어(아니 자신이 싫어져) 가게를 나왔다. 맥주값과 콜라값을 합쳐봤자 150밧 정도였다. 곁에 앉아 있던 여자애가 따라 나왔다. 불스는 미적거리며 가게 안에서 계산중이다. 바깥에 나와 삐끼와 함께 호객행위를 했다. 지나가는 양키들에게 커튼을 들쳐보이며 이 가게가 나나 플라자에서는 최고라고 설명했다. 가게 이름이 G-spot이다. 문 옆에 서 있던, 자기 일을 빼앗긴 삐끼가 낄낄낄 웃는다.
 
내 곁에 앉아 있던 중국인 집안이라고 우기던 여자애,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만한 미모를 지닌 여자가 커튼으로 알몸을 가린 채 바깥으로 몸을 비쭉이고 나를 최저라고 귀엽게 욕하고 있었다. 여행중 내내 기억에 남았다. 평생 예쁜 여자들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옆 가게의 여자가 갑자기 다가와 팔을 크게 벌렸다. 그녀를 껴안았다. 커튼 속에서 목만 내밀고 있던 중국인 아가씨, 유이는(그 여자의 이름) 토라졌는지 홱 고개를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에게 함께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궁색하게 늘어놓은 핑계는, 내게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개소리였다.
 
밤이 오고, 거리에 슬슬 보슬비가 내린다. 불스를 데리고 아랍인 거리로 향했다. 한 카페는 전등을 켰건만 사람들이 시꺼매서 불이 켜진 것 같지가 않았다. 눈알과 이빨이 껌뻑이고 있었다. 아랍인 거리 맞은편에는 이스라엘 대사관이 있다. 얘네들은 사이도 안 좋으면서 붙어 다니는데 전혀 불편함을 못느끼는 건지 원... 카오산에서는 라덴의 초상화가 그려진 티셔츠가 가게 곳곳에 걸려 있는데, 서양인들중 그 옷을 사서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 없다. 오래전부터 새뮤얼 헌팅턴의 관점에 다소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었다. 꾸란은 자비로운 '성서'다. 알면 알수록 친근감이 드는... 언젠가 아랍어를 배워 그들이 그다지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꾸란과 하디스의 운율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
 
수쿰윗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특히 빨간불이 켜진 곳만. 거리의 한 호텔 앞에 서 있던 게이에게 헤벌쭉 웃어보였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내가 불스에게 그가 게이라고 설명해주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거리에서 옷을 홱 벗겨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설명하기가 애매하지만 여장 남자와 여자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물리적으로 목젓이 보인다느니 걷는 폼이 어떻다느니 하는 것들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이 곧 올 것만 같다. 호텔로 돌아와 맥주와 닭고기를 먹으며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어제 빨았던 양말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다.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고 카오산에 들러 불스에게 이곳 저곳을 가르쳐 주었다. 식당은 여기 여기,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여기, 숙소는 여기여기, 배를 타려면 저기, 술을 마시고 싶으면 여기, 위조 신분증은 여기에서, 환전은 저기 가서. 이런 식으로. 음식에 빨리 적응해 내심 안도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가 스스로 가이드북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뒷짐을 진 채 방관했다. 버럭 성을 내기도 했다. 모르면 저 사람들에게 물어! 그에게 말해주었다. 여행지에서는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그는 한낮 동안 이국 땅에서 반쯤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서울 지리보다 방콕의 지리를 더 잘 안다는 사실에 그다지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적도, 불편한 미소를 지어본 적도 없다. 론리 플래닛의 코리아 편과 서울 편은 상당히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것들을 거울 삼아, 달리 말하자면 가이드 북 가지고 어떤 도시를 여행한다고 해봤자 그곳을 이해하는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내가 방콕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거리를 지나다가 헌책방에 지남철처럼 끌려 들어가 무의식 중에 책을 몇 권 샀다. 정말 빌어먹을 팔자려니 하고 반쯤은 포기했다. 어떻게 책 읽는 것이 먹어대는 본능처럼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 다행히 나는 책벌레가 아니라는 점에 다소 안도감 내지는 자부심을 느꼈다. 아니 책벌레에서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된 점이 기특하기도 했다.
 
맡겨놓은 짐을 찾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새벽녁에 춤폰에 도착. 벤치에 앉아 썽태우를 기다리는 동안 실없이 웃고 있는 미국인과 오스트리아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미국인 여자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사건의 지극히 단편적인 일부만을 알고 있었다. 불스는 내내 외면한 채 다른 자리 구석에 앉아 있었다. 재밌는 점은 오스트리아 연인이 미국인을 마치 벌레처럼 쳐다보며 그녀와 대화하기를 무척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그 불쌍한 미국인 아가씨는 지나치게 빠른 영어로 처음보는 나에게 자신의 인생관은 물론 별에별 얘기를 다 늘어놓기 시작했다. 재미는 있었다. 그녀가 섬의 남쪽 해변으로 간다길래 자동적으로 나는 동쪽 해변에 가서 수도승처럼 조용히 지내겠다고 말했다. 음... 그러니까... 이 미국인 아가씨의 수다와 함께 나흘 동안 같은 곳에 틀어박혀 있게 되면 우리가 꿈꾸던 조용하고 나른한 휴가는 물 건너가지 않겠는가?
 
나는 이 섬에 두번 째로 온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꿈 속에서 보았던 어렴풋한 기시감 따위를 느꼈다.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이 망할 놈의 동네가 '흥정'이 통하지 않았다는 악몽같은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불스와 나는 '돈'이 많다. 그래도 20밧 짜리 식사를 50밧에 할 생각을 하니 목이 메어왔다.
 
미니밴 짐칸에 짐짝처럼 부려졌다. 새까맣게 탄 여자애는 당신들이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아주 끔찍스러웠을 꺼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동쪽 해변은 정말 조용하다고도 덧붙였다. 동쪽 해변에 가는 사람은 거기 짱박혀 살고 있다는 그녀와 나, 불스 단 세 명 뿐이었다. 30분을 기다려도 차는 정족수가 차지 않아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편엽서를 붙였다.
 
정말 조용해 보였다. 아무도 가지 않는다니. 산길을 위태롭게 달려 섬의 동부 해안에 도착했다. 햇볕은 뜨거웠으며 '조용한' 동부 해변 답게 방갈로는 4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벙하게 해변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다이빙 리조트로 들어갔더니 같이 차를 타고온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이것 저것 설명해 준다. 댕큐. 레스토랑 옆에서 방갈로를 잡았다.
 
대나무와 야자잎으로 얽어놓은 나무 방갈로 앞에는 뜨끈뜨끈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바다 속에 뛰어들어 고기떼부터 확인했다. 지나치게 조용해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나뿐인 레스토랑에는 몇몇 외국인들이 햇볕을 피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대머리였고 팔 다리에 헤나를 새겨 놓았다.
 
불스는 물을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뻔한 경험이 있은 후로 수영은 커녕 물 속에 들어가는 일 조차 없었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나는 놀라서 입을 벌린 채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가 갖은 감정을 투사하며 살아가는 논리적이지만 비이성적인 세계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물에 뜨는 사람과 물에 뜨지 않는 사람. 충직하고 견고한 그의 믿음에 따르면 그는 후자에 속해 있었다. 밀실공포증 환자를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장롱에 갇혔다가 실신하고 깨어나자 마자 극도의 공포와 혼란을 느낀 나머지 다시 실신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을 두려워한다면... 해변은... 바다는... 아름다운 고기떼는... 가엾은 몽상에서 벗어나 정신 차리고 그에게 스노클과 핀을 빌려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죽지 않는 방법은 좀 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조교 역할을 하기로 했다.
 
엉덩이까지 차는 물에서 입과 코를 막고 물속에 잠겨 있다가 숨이 차면 나오라고 말했다. 5초도 견디지 못하고 그 얕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어서는 가엾은 모습. 손을 대는 바위마다 손바닥이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수직으로 내리 꽂힐 무렵, 그는 물속에서 30초 가량 버틸 수 있었다. 일어나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되었다. 다음에는 몸을 해면에 수평으로 띄우는 것. 이짓거리를 제대로 하게 만드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에게 고글을 뒤집어 씌우고 물 속에 잠수를 시키자 코로 물이 들어가서 또다시 허우적거렸다. 20분쯤 지나 고글과 맨몸으로 물 속에서 팔다리를 젓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30분이 흘렀다. 대롱을 꽂아 주었고 숨을 헐떡이는 것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동안 앞에 있는 작은 바위섬을 왕복하며 고기떼와 작년과 제작년에 못다한 대화를 마저 했다. 그들은 답례로 내 몸을 물어뜯었다. 엄청난 멸치떼가 그들의 작고 얇은 은빛 몸뚱이에 햇빛을 반사하며 마치 비이커 속에서 대류를 입증하는 톱밥처럼 경이로운 나선과 호를 그리며 움직인다. 바위섬에서 돌아올 무렵 그는 이제 물이 너무 얕아서 팔다리를 젓기가 불편하다는 투정을 늘어놓았다. 그의 가슴께, 그리고 목께까지 차는 곳에서 처음으로 자유롭게 물속을 왕복할 때 그의 얼굴에 즐거움이 꽃 피기 시작했다. 해먹에 누워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면서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는 나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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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몸 좀 풀고 담배 한 대 빨며... 조개 껍질로 만든 재떨이...
산호로 만든 풍경... 바람에 흔들리는 해먹...
얼간이같은 표정
 
해먹에 익숙치 않아 굴러 떨어졌다. 매우 아프다. 그러나... 어제 받은 타일랜트 트래디셔널 뻑적지근 정통 맛사지 덕택일까? 온 몸이 놀랍도록 유연하다. greg bear의 darwin's radio 첫장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책만 들었다 하면 잠이 든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주고 시원한 그늘에 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불스는 다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바위섬 근처는 수심이 대략 10여 미터 가량 되지만 물이 워낙 투명해 바닥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그 바닥까지 내려가 보고 싶지 않냐고. 고개를 젓는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일 섬 주위를 돌며 스노클링 투어를 할테니 연습 잘 해 두라고 말했다. 배 위에서 수심이 깊은 곳으로 뛰어내릴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 잔 연습이 남아 있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라이프 자켓을 입히지 않았다. 버릇 들면 물에 대한 공포심을 치유하기는 커녕 의존적이 되어 버리는 모습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저녁 무렵이 되어 그는 발이 닿지 않는 바다를 유영할 수 있었다. 그의 기쁨을 안다. 그래서 벌겋게 타들어가는 그의 등을 향해 깔깔깔 웃었다. 파도가 굽이치면서 파면은 수백만 개의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바위섬을 향해가는 수직으로 솟은 대롱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온다. 물을 뚝뚝 흘리면서, 발바닥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자신의 손바닥과 발가락에 산호가 남긴 상처에 개의치 않으면서 저기까지 갔다 왔어요 라고 말하는 녀석의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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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보이는 점은 섬을 향해 나아가는 그 녀석의 뒤통수
 
샤워 하고 100미터가 안되는 해변 중앙에 있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레스토랑에서 스팀드 라이스와 프라이드 치킨, 맥주 두 병을 사와 방갈로 앞에 주저 앉아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하늘 아래서 낄낄거리며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불스가 말했다. 서울이 생각나지 않아요. 내가 뭘 했는지도. 고개를 끄떡이며 대꾸했다. 나도. 머리속에는 스위치가 있는 것 같다. 스위치가 켜지면 이전 일들이 생각나지 않고 오직 여행에만 신경을 썼다. 사실, 불스에게 거의 모든 거래행위나 대화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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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갈로 안에 기어들어와 제 집인양 밍기적거리는 고양이
 
졸음이 밀려온다. 파도 소리만 들릴 뿐 바다와 하늘은 깜깜하다. 저녁 무렵 끼기 시작한 구름 탓에 아직 별이 보이지 않는다. 방갈로 안에서 잠이 들었다. 불스는 지쳤는지 금새 곯아 떨어졌다.
 
새벽에 깨어났다. 마치 자명종처럼, 생각났다는 듯이. 새벽 2시 20분, 전기가 끊겨 팬은 멎어 있다. 전등 스위치를 딸깍였지만 쓸모 없다. 입가에 미소가 고인다. 원하던 바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깡촌 해변. 기대감에 젖어 문을 열고 사박거리는 모래밭을 걸어 고개를 쳐들었다. 적도 부근의 선명한 별들이 지평선부터 하늘 천정까지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뭄이다. 이 급작스럽게 사기 조작된 여행의 본래 목적은 정확히 그뭄때 모래밭에 누워 별들을 바라보며 잠이 드는 상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에... 또, 야자수 그늘에 누워 회사에서 보내온 절박한 email을 읽고 콧방귀를 뀌며 무시해보려는 의도가 약간 있긴 하다. 그런데, 어 시팔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욕설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모래밭에 누웠다. 까칠한 산호 조각들이 등에 배긴다. 담배를 한대 물었다. 바이저를 꺼내 별자리를 확인했다. 로케일은 GMT+7, 방콕으로 맞추었다. 적당히 맞아 떨어진다. 하늘 천정에 오리온이, 플라이아데스가 반짝이고 있었다. 바이저의 액정을 껐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아침 무렵에깨어 방갈로로 기어 들어왔다. 룽기로 몸을 감고 따뜻하게 잤다.
 
햇살이 창밖으로 스며들었다. 파도 소리, 옅은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깨자마자 스노클을 들고 작은 백사장을 지나 바다로 나가 몸을 물에 담궜다.
 
'하나' 밖에 없는 레스토랑에서 먹어준 똠얌꿍과 카우팟꿈 맛은 최악이었다. 각기 새우가 세 마리 밖에 없었지만 seafood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채 상당히 높은 가격을 매겨 놓았다. 그래서 해변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게다가 스노클링 투어도 해야 하고.
 
갯바위 바깥쪽 바다는 몹시 깊었다. 바윗 그늘 아래는 어두워서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불쑥 불쑥 물고기들이 튀어 나왔다. 수온이 다르고 물결이 높다. 발질을 멈추고 가만히 뜬 채 고기들이 모여들 때까지 기다렸다. 머리속에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저 깊은 바다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갯바위로 기어 올라와 햇빛을 쪼였다. 해변이 저 멀리 보인다. 하루에 두어 차례 동부 해변을 왔다갔다하는 배가 오고 사람들이 움직인다.
 
짐을 꾸렸다. 양말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다. 맨발로 다니기에는 모래사장이 너무 뜨겁다. 동부 해변을 떠나는 사람은 여섯. 우리는 해변 중앙에 꽂혀 있는 팻말의, 하루에 네 차례 밖에 없는 차 시간에 맞춰 미니 밴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짐짝처럼 부려져 서부 해안의 중심 반 매핫에 도착했다. 길이 가파라 가끔 차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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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해변
 
선착장에서 섬 주변 스노클링 투어를 흥정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800밧에서 400밧 까지 떨구어 놓았다. 숙소를 잡고 다시 돌아올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북서부 해안으로 향했다. 숙소를 잡고 스노클 장비를 빌리고 오토바이를 빌리기까지 한 시간 반이 흘렀다. 숙소가 마음에 든다. 정원을 예쁘게 가꾸어 놓았다. 비수기라 방이 펑펑 남아 돌았다. 그런데 불스가 물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을 때 지었던 멍청하고 얼빠진 표정을 다시 한번 지어야 했다. 오토바이를 몰 줄 모른다고 말한다. 오...오토바이는 그럼 왜 빌린거지? 이동하기 불편하잖아요.
 
우리는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웠다. 시동 거는 것부터, 기어 변속에 이르기까지, 현지인들의 낄낄거리는 웃음 속에서. 내가 말했다. 자이로스코프 있잖아. 빨리 돌수록 안정적이지. 그래서 우리는 액셀을 밟았다. 왼쪽에 핸들이 달린 그들의 차선에서(차선 같은 것은 사실 없었고 도로의 절반은 비포장이었다) 왼쪽으로 달리는 정신나간 짓을 하며 간신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은 공포 만큼의 스릴이 있었다. 특히나 타이어가 고갯마루에서 붕 떠서 잔인한 중력의 사슬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는 기분이 정말 죽여줬다. 뒷 브레이크가 있는 지도 모르고 앞 바퀴 브레이크만 써서 빗물로 골이 푹 파인 경사 30도의 길을 무작정 내려가 본 적이 있는가? 오직 내가 믿었던 것은 자이로스코프의 원리 뿐이다.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스키드 자국은 3cm 두께로 퍽퍽 파였고 오토바이가 한동안은 미친 말 같았다. 차선이 헷갈려서 골치가 아팠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 입에서 흘러나온 대사는 흔히 이런 것들 뿐이다: 오오... 어어... 으아악... 정신차려! 자이로스코프를 떠올리라고! 회사도 망했잖아?
 
선착장의 보트 택시 기사는 '늦었어' 라고 간단히 말했다. 한숨을 쉬었다. 투어는 '말 그대로' 물 건너갔다. 기사는 이미 꼬 낭유안까지 가는 승객들을 여럿 모아놓았다. 할 수 없이 꼬 낭유안 섬까지 그 조그만 배에 아홉 명이 달라붙어 타고 갔다. 자리가 비좁은 관계로 한쪽 다리를 수면에 걸쳐 놓았다. 수면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바다속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인다. 난 이 택시 기사를 알고 있다. 2년 전에도 이 아저씨의 보트를 타고 꼬 낭유안에 갔다. 이빨이 다 빠져서 웃을 때는 합죽이 같았다. 그동안 돈을 벌었는지 빠진 이빨 사이에 덜그럭거리는 이빨을 달아 놓았다.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스노클링에 쓸데없는 자신감이 붙은 불스는 핀 없이 물 속에 뛰어들었다. 깜빡 잊고 말을 안해 주었다. 1미터 정도만 나가면 푹 꺼지듯이 수심이 깊어지는 이 섬 주위에는 해류가 있다. 게다가 밀물 때다. 그는 저만치 떠내려가다가 안간힘을 쓰며 물 위로 대가리만 간신히 내민 채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한걸?'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존심 때문에 구해달라고 소리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귀찮아서 던져두었던 핀을 달고(해류에 휩쓸리지 않게) 상당한 스피드로 달려가 그를 구출했다.
 
한국인 셋을 발견했다. 굉장한 자신감을 가진 채,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불스는 그들이 구명의를 입고 오리처럼 둥둥 떠다니는 모습에 콧방귀를 뀌었다. 낭유안 섬 주변은 지독하게 물이 맑다. 옅은 에머랄드 빛 수면 아래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온갖 종류의 열대어들이 유유자적 헤엄친다.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고기들이 정강이 주변에서 놀았다.
 
해가 진다. 멋있다. 멍하니 앉아 지는 해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거의 떠나고 해변에는 아무도 없다. 불스가 옆에 다가와 한 마디 했다. 여긴 여자랑 같이 와야 하는 곳이에요. 섬으로 돌아오는 길에 곳곳에서 바베큐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문득 email을 한번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은? 물론 과하게 먹었다. 이번에는 그릴에 구운 생선과 굴 소스로 조린 고기, 그리고 쌀밥을 먹었다. 맛있다.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용은 장난이 아니었다. 저녁 한끼에 둘이 합쳐 250밧이나 되었다. 커다란 생선 두 마리가 140바트.
 
가게에서 빈둥거리던 고양이들을 생선 냄새를 맡고 정신없이 몰려 들어와 식탁에 기어 오르려고 아우성을 쳤다. 얼룩 고양이와 살쾡이처럼 생긴 놈, 그리고 흰색 고양이다. 그들의 아우성에 견디다 못해(고양이 꼬리가 다리를 스칠 때면 간지럽기도 하고 소름이 흠씬 끼치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고기를 한점 뜯어서 던져주자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는다. 나무 바닥에 떨어진 고기 한 점을 두고 살쾡이와 흰 고양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꼼짝도 안 하고 서로를 노려본다. 마치 죽음의 결전을 앞둔 사무라이들 같다. 그러길 3분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전장의 한 복판에 갑자기 얼룩 고양이가 생선 조각을 채가려고 슬쩍 앞발을 내밀자 살쾡이가 앞발로 그 녀석의 머리통을 후려친 후 생선을 물고 달아난다. 그리고 양 앞발 사이에 생선을 끼고 두 녀석을 노려보며 천천히 생선을 뜯어 먹는다. 우리는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모양을 꾸준히 '관찰'했다. 고개를 돌리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바다가 보인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레스토랑에는 우리 말고 손님이 아무도 없다. 꼬 따오의 남쪽 해변에 있는 조그만 레스토랑이 생각났다. 그때는 매일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주인이 내 얼굴을 기억했다. 그 식당에 들어가면 주인이 반겨 주었다.
 
처음보다는 한껏 발전된, 그러니까 능숙한 기술로 오토바이를 몰고 숙소 부근으로 돌아갔다. 포장도로에서는 그가 몰고 비포장은 내 전문이다. 나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자이로스코프의 원리만 죽어라고 생각했다. 비까지 내려주셔서 도로 상태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오토바이를 둘이 몰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옆으로 태국 꼬마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쌩하니 지나친다. 밟으면 겁나고, 그래서 매우 쪽팔린다.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불스는 맥주 하나로 할 일 없이 두세 시간을 때울 수 있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워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익숙해진 사실을 그 덕택에 새삼 깨닫고는 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뭔가를 먹을 때는 주위에 각종 짐승들이 몰려왔다. 그가 그 점을 지적했다. 닭, 개, 고양이, 이상하게 생긴 새 등등. 비가 온 후 주위에서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다. 괴상하게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앞 방갈로에는 레즈비언 둘이, 옆에는 호머 둘이 있었다. 비좁은 해먹에 둘씩 끼어 앉아 있는 모습은 정답고 다정해 보이기 보다는, 그냥, 불편해 보인다. 해먹에 누워 있으면 등짝에 그물 자국이 난다. 그래서 원양어선에 잡힌 참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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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여자 둘이 놀러왔다
 
새 날이 밝았다. 시내에 또다시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 조그만 식당에서 그리운 물국수를 먹고 그리운 꼬치를 먹었다. 어제 본 한국인들이 미니 밴을 타고 남부 해변 쪽으로 가는 길에,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본다. 숙소를 알면 모여서 술이나 한 잔 하고 싶은데. 음... 그 친구 말고, 그 친구 일행인 한국 여자 둘과.
 
시내에서 빈둥대다가 엽서를 부쳤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부쳐 약올려도 괜찮은 사람들의 주소를 늘 바이저에 적어두고 다녔다. 인터넷을 조금 사용했다. 누군가 가게 창문에 '한글을 사용할 수 있어요' 라고 붙여 놓았다. 글씨를 잘 썼다. 한글 IME가 설치되어 있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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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해변의 우리 숙소, 빌린 오토바이
 
내일 떠날 배를 예약하려고 가격을 알아보았다. 스피드보트는 500밧, 익스프레스는 400밧, 슬로우보트는 200밧이다. 춤폰에 도착하는 시간 차이가 한 시간 밖에 안 나서 슬로우보트를 예매했다. 돈 굳었다.
 
해변으로 돌아왔다. 하루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불스는 쇼핑을 하고 싶어했다. 불스에게 스노클링 마지막 트레이닝을 '지도'하면서 나도 연습할 것이 좀 있다. 수면에서 깊숙이 잠수해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것. 주변에서 깡통을 하나 찾아내 얕은 바다에서부터 깡통을 던져 물어오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야자열매를 불스의 머리통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뜨는 것보다 가라앉는 것이 더 어렵다. 요령이 붙어 왠만큼은 바닥까지 내려가 깡통을 나꿔채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체력 소모가 심하다. 지나치게 격하게 움직이다가 실수로 코가 땅에 부딫혔다. 제기랄.
 
두세 시간의 격렬한 연습을 끝내고 점심을 먹을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노클링 투어는 갑자기 물 건너갔다. 바다에 비가 떨어졌다. 오전의 심한 운동 때문에 스노클링은 접어두고 숙소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었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인지 주위에서 희안한 소리가 들린다.
 
개들이 몰려왔다. 가는 음식점, 숙소마다 그 지역의 개, 고양이들이 방문해 주셔서 얌전히 앉아 기대감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먹다남은 과자를 던져주었다. 사실 이 과자는 고기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엊그제 고기들이 한참 주둥이로 온 몸을 쪼아서 과자를 던져줄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는 시간 내서 두세 시간쯤 책을 읽었다. 비가 오려고 해서 서둘러 식당을 찾아 나섰지만 시간이 아직 이른지 싸이리 해변에는 먹을만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 걷다보니 선착장 부근까지 오게 되었다. 식당에서 noname(묻지마)이란 메뉴를 찾아 주문했더니 새우와 생선과 닭을 밀가루에 발라 튀긴 것을 한 접시 그득 갖다 준다. 역시 고양이들이 몰려왔고 어제처럼 쟁탈전이 벌어졌다. 아... 배불리 먹고 시내에서 마침 보이는 꼬치 장사를 발견해 꼬치와 오징어 구이, 그리고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맥주와 함께 먹었다. 배불리 먹고 음식이 남아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짐을 메고 낑낑거리며 선착장까지 걸어갔다. 적어도 30분은 걸리는 거리다. 이 섬에 와서 처음 먹어보고 불스를 감동시켰던 바미를 먹으며 마지막으로 섬을 둘러싼 푸른 바다를 바라 보았다. 우리가 타려는 슬로우보트는 어수선하고 지저분한데, 그걸 타고 가려던 몇몇 서양인들은 발길을 돌린다. 바다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멍하니 안개에 휩싸인 채 섬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배 타고 다섯 시간 걸려서 춤폰에 도착, 불스와 나는 몇 마디 주고 받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버스를 예약하고 30분쯤 남은 시간 동안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동안 옆 가게에서 타이거 밤을 사려고 애썼는데 이빨 없는 할멈이 타이거 밤 대신 원숭이 밤을 주거나 고양이 밤을 줘서 기분이 매우 우스웠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내가 앉은 좌석에 불을 켜 주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틀 만에 원서 한 권을 떼었으니 웬간히 책 읽는데 이력이 붙은 셈이다. 불스는 가이드북과 바이저 엣지 달랑 하나 들고왔다. 크래들을 안들고 와서 충전식인 엣지는 사흘이 안되어 전원이 거의 바닥났다. 전지를 사다 갈아 끼울 수 있는 내 구닥다리 바이저가 여행 중에는 훨씬 잘 어울린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불야성을 이룬 카오산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와 이지 투어의 도미토리에 투숙. 밤 늦은 시간이라 샤워도 못하고 그냥 잤다. 뱃전에서 비를 맞고 떨었더니 감기 기운이 돌았다.
 
아침 일찍 죽을 한 그릇 먹고 월텟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오후 4시에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불스는 7000밧이 남았고 나는 4000밧 이상 남았다. 남은 돈을 환전하면 10여만원 가까운 돈이 되지만 오늘은 마음 잡고 평생 해 본 적이 없거나, 또는 괴로운 실패의 역사로 점철된 '쇼핑'이라는 것을 하기로 작정했다. 빠두남 시장과 나일럿 시장, 나라야 판, 이세탄 백화점, 센 백화점, 월텟 등을 할 일 없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다가 결국 아무 것도 사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백화점 앞에서 가방 장사와 실랑이를 벌여 550밧 짜리 조그만 가방을 250밧에 샀고, 백화점에서 향수를 샀다. 그리고 개당 80밧 하는 책갈피를 일곱 개 해서 200밧에 떨이로 샀다. 어쩐지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코헨의 협상의 법칙이란 책을 아직까지 안 사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서울에 돌아가면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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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텟(World Trade Center) 앞. 방콕의 가장 번화가
 
몇몇 약국에 들러보았으나 놀랍게도 감기약을 팔지 않았다. 간신히 구한 것은 relief of nasal congestion이라는 용도의... 코감기용 약과 타이레놀 뿐이다. 타이레놀만 먹고 그 믿을 수 없는 감기약은 먹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기침 때문에 심하게 골이 울려 골치가 다 아팠는데 점심으로 차를 결들인 스파게티와 마늘 빵을 먹고 타이레놀 한 알 먹고 차가운 코코넛을 먹고 두어 시간 나무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으니 감기 기운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새롭고 신선한 발견이다. 아마도 자율신경계의 내분비 대사를 억제하면서 두부 통증은 물론, 시상하부의 체온조절 제어부에 작용하여 비정상적인 체온과 기침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 아니, 단지 감기가 낫고 싶다는 희망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거리에서 말을 걸어오는 태국인들과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지포 라이터에 눈독을 들인다. 용기를 얻은 태국인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내 곁에 오고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피차 영어 몇 마디 못하는 사정은 마찬가지라 크게 재밌는 얘기는 나누지 못했다.
 
불스는 백화점을 전전하면서 테니스 라켓과 토스터기 따위를 샀다. 난데없이 왜 여행중에 그런 걸 사는지 이해가 잘 안 가서 물어보니 저에게는 저만의 독특한 내면세계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더라.
 
불스를 만나 꿈에 그리던 seafood를 먹으러 가서 바닷가제를 시켰는데 기대 이하의 맛이어서 입맛을 다셨다. 이런걸 맛있다고 잘들 먹는게 희안했고 불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바닷가제에게 있어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매료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700밧이나 주고 먹었지만(지금까지 식비로 쓴 것중 가장 큰 돈) 이건 태국 물국수 보다도 맛이 떨어진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생선에 소금을 잔뜩 발라 석쇠에 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저런 걸 먹는 편이...
 
맥주나 한 잔 하려고 시얌 스퀘어까지 걸어갔지만 하드락 까페가 없어져서 잠시 멍해졌다. 술 파는 가게가 없어 코코넛 쥬스 한 잔 시켜놓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가게에서 우두커니 있다가 나왔다. 어쨌거나 방콕의 이곳 저곳을 골고루 데려다 준 것으로 만족해야지. 다음에 불스가 이곳에 오면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 정도면 좋겠지. 저녁 늦게, 숙소에서 샤워를 마치고 인파로 북적대는 카오산을 지나 선착장 부근의 술집으로 향했다. 강변 근처의 널찍한 레스토랑에서 남은 돈을 털어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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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방콕의 한 도미토리
 
아침에 일어나 중국인들의 축제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firecracker를 터뜨릴 때마다 시끄러운 폭발음과 연기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랏차담던 거리를 죽 행진하던 사람들은 거의 3000명 이상은 되어 보였다. 이지투어를 나올 때 가게에서 점원으로 있는 태국인 아가씨가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아이같은 목소리로 말해 나도 모르게 그만 으흐흐 웃고 말았다. 귀여운 아가씨다. 나는 다시 여기로 돌아올꺼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는 너도 한국어를 잘 하게 되겠지. 라고도 중얼거렸다. 흥청망청 돈을 쓰긴 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어. 라고도 중얼거렸다.
 
불스가 산 테니스 라켓을 내내 들고 다니다가 귀국했다. 집 근처에서 500원 짜리 소주를 마시고 간단히 맥주를 한 잔 한 후 내 얼굴을 기억하는 바의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누다가 헤어졌다. 불스가 말했다. 다시 갈 겁니다. 이 여행은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보람을 느꼈다. 여행은 질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 추억이 지닌 그 수많은 얼터레이션이나 자작 사기극이 아닌 눈부신 경험으로 충만한. 내 팔목에는 지금 야자 열매로 만든 팔찌가 걸려 있다. 흠. 하지만 그에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진짜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2001/10/23,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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