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ama

여행기/Costa Rica 2003. 5. 5. 18:14
San Jose -> border -> Panama City

복사한 론리의 파나마 섹션을 들쳐 보았다. 가이드북을 살펴봐도 싸게 먹히지가 않는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고 돈도 많이 들고... 하는 수 없이 투어 버스를 잡으러 갔다. 투어 버스의 가격은 17$, 내가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8$), 손수 국경을 건너고, 늦은 밤이라 차가 없으니 국경마을에서 1박 하고(6-7$) 다음날 파나마 시티로 가면(10$) 투어 버스 타는 편이 편하다. 표를 사는데 옆에 있던 멕시칸이 영어로 당신 왕복 티켓을 사야지 국경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알고 있지만 편도 티켓을 샀다. 왕복 티켓은 40불이나 해서 거지가 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돈이 별로 없다.


버스를 탔는데 옆 자리에 앉은 작자가 영어를 할 줄 안다. 아... 얼마나 오랫만에 들어보는 제대로 된 영어냐... 읽고 있는 책이 심상치가 않다. 중미 근현대사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 자락에는 소니의 MD 플레이어가 달려 있었다. 잘 사는구나... 꼬스따 리까 사람인데 직장이 파나마에 있단다. 그와 어쩌다가 중미의 경제 사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생각하는 중미의 경제는 정치와 지나치게 맞물려 있어 암울하다는 것이다. 멕시코는 괜찮지 않나? 했더니 실실 웃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의 가장 큰 문제는 국부가 계속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멕시칸은 돈을 좀 벌면 모두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고 또 미국으로 넘어갔다. 또한 미국인의 투자러시가 지속되면서 멕시코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이미 잠식했다는 것도 있었다. 멕시코인이 미국 비자를 받기가 워낙 까다로운 관계로 멕시코 부모들은 국경을 넘어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선물'한다고 했다. 왜 자꾸 미국으로 가려고 하느냐 하면 정치적인 불안감 때문이란다. 멕시코 의회나 대통령의 권한이 워낙 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서 누가 방아쇠만 한번 당기면 곧바로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국경에서 이민국 통과와 짐검사 따위로 2시간을 보냈다. 이민국 관리가 징그럽게 생겼다. 빠나마 이민국에서 뜬금없이 날더러 한국 돈을 보여달란다. 여권만으로는 당신이 북한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믿을 수 없단다.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었지만 내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터라 실랑이만 벌이고 있을 수가 없다. 배낭에서 한국돈 5000원 짜리를 꺼내 보여주니 자기한테 달라고 한다. 줄 수 없다고 우겼다. 이 자식이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10분이 흘렀다. 내가 졌다. 한국 동전 100원 짜리를 던져주고 투어리스크 카드를 사서 다시 스탬프를 찍으려고 이민국 관리 앞에 섰다. 밤 9시다. 그 자식이 스탬프 찍어주길 망설이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왕복 티켓 얘기가 나오면 어쩌나 속으로 좀 캥겼다. 날더러 인지를 사란다. 앞 사람이 사길래 별 생각 없이 1달러 짜리 인지를 샀다. 서류 작성비 2불을 내란다. 못주겠다고 말했다. 벌써 15분이 넘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너 이름이 뭐야? 라고 물으니까 마지못해 여권을 건네주면서 실실 웃는다.

배고파 죽겠는데 돈은 없고... 남은 꼬스따 리까 동전으로 빵 두 개를 사서 먹었다. 버스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했다. 인지는 꼬스따 리까 국민들이나 사는 것이다. 5불짜리 투어리스트 카드만 사면 되는 것이다.

빠나마 시티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썰렁하다. 어쩌라는거여... 물어물어 호텔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찍어둔 숙소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니 너무 멀다. 택시 타기는 싫고... 하는 수 없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 그럭저럭 쓸만한 숙소를 잡았다. 8불이나 들었지만 방에 TV가 있다는 점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잠 자고 일어나 인터넷 까페부터 찾았다. email을 작성해서 파나마 관광청과 이민국 앞으로 보냈다. 대통령 email 주소는 못 찾았다. 하자가 없음에도 인지 판매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내가 멍청했다는 얘기지만 그런 낌새는 비추지 않았다. 국경 이민 사무소 놈들 어디 한번 엿먹어 봐라. 과연 엿먹을까? 엿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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