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ama City

여행기/Panama 2003. 5. 6. 14:49
가물에 콩나듯이 가끔 말 붙여주는 현지인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어 심심하다. 담배가 있지만 거리에서 거지한테 담배를 얻어 피웠다. 그만큼 나도 줬다. 홍콩인들의 흡연 사스 예방론이라고 있다. '생고기는 쉽게 썩지만 훈제고기는 그렇지 않다'

깨보니 12시. 거리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공쳤다.

파나마시티는 우체국에서 집으로 우편이나 소포를 배달해주지 않는다. 우체국 안에 사서함을 개설해서 그리로 받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거리가 엉망진창이다. 번지나 건물 번호 같은 것이 아예 없었다. 길 이름이 두 블럭마다 바뀌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길 이름을 잘 모른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종단할 수 있는 길을 다섯 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오락가락했다. 비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물어물어 우체국을 찾아 거의 시 전역을 돌아다녔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체국 네 군데를 돌았다. 물건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세관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세관이라...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피나마 이외의 나라에서는 도난 사고가 잦아 받을 가능성이 낮았다. 이건 일종의 도박이다. 최장 3-4일은 더 머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될 것 같다.

비가 오니 우울하다. 꼬스따 리까부터 꼬미다 부페가 보여 한두 번 들락거렸다. 2-3불 정도면 먹을만한 양이 되었다. 밥 먹으니 기분이 그나마 나아졌다.

배터리까지 맛이 가는 것 같다. 충전을 시키면 1/3 정도 충전되다 말았다. 충전기, 충전지 어느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다. pda가 다시 맛이 갔다. 기계들이 하나둘 맛이 가면서 나를 희롱하는 것 같다. 충전지를 뜯었다. 인덕터스가 맛이 갔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파상을 찾았다. 인두와 납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그가 불쑥 영어로 말한다. 네 직업이 뭔지 알겠어. 하지만 이건 내 프로페션이야. 기술자들이란... 그에게 어디를 고칠지 알려줬다.

무슨 놈에 여행이 rpg 게임의 search and quest가 되가는 것 같다. 당면 과제: 충전기라는 아이템을 수리할 것. 우체국을 찾아낼 것. 항공사에서 적당한 가격의 항공권을 알아볼 것. 페루 자료 수집.

길거리에서 대형 x-men 2 포스터를 보았다. 극장 이름이나 위치가 적혀있지 않다. 흠.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키는군. 또다른 퀘스특 되려나. 거리 이름도, 극장 이름도, 극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극장을 물어 찾아내서 한번 보고 싶다.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물가가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인터넷은 시간당 0.5$ 밖에 안 한다. 거리에서 조그만 과일 쥬스 한 잔 마시는 가격이다. 중미 전역에서 가장 싸다. 호텔은 10불 정도면 묵을만한 곳들이 많다. 내일쯤 더 좋은 호텔로 옮겨볼 생각이다. 2불 더 주고 욕실과 에어컨이 달린 곳으로. 이럴 때 호강해보지 언제 호강한다냐... 나중에 예산 정리하면서는, 빠나마시티는 숙소값이 비싸서 어쩔 수가 없었지. 라고 자조하면 될 것 같다. 다음 날 호텔을 옮겼다. 전등에서 전기를 끌어썼다. 전화기까지 놓여 있었다. 글쎄.. isp만 알면... 인터넷을... 침대에 누워...

파나마에 왔는데 운하를 안 보고 갈 수 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운하 보려면 미라플로레스 락스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가면 된다. 쉽다. 운하는 이미 tv로 많이 봤다. 옛날 옛날에 자금성 만들었던 중국인들이 빠나마 운하를 만들었다. 안 봐도 훌륭하게 잘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홍콩인들은 알콜이 사스 균을 예방해준다는 낭설에 심취해 있다. 보라, 죽어라고 술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사스에 안 걸리지 않냐? 하면서. 홍콩 사람들은 정말 멋지다.

빠나마에서는 요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별걸 다 한다. 신호등이 있어서 거리를 횡단할 때 괴로움을 느꼈다. 중동에서 길들인 버릇 때문인지 차들이 달리는 거리로 뛰어들어 시간차를 절묘하게 활용하여 건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옛날에 하던 개구리 게임처럼.

게임에서 살아남은 개구리가 되고 싶다.
자,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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