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co

여행기/Peru 2003. 5. 11. 12:13
날씨가 쌀쌀하다. 날이 흐리다.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위험하다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엘 살바도르에서처럼 나를 주시하는 부랑아의 눈길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저녁 9시가 넘었지만 안전하다. 새벽애는 거리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했다.

귤 1kg가 1솔(345원), 점심 한 끼가 3.5솔(1200원) 가량. 꼬스따 리까나 빠나마보다 싸다. 두 나라는 이해할 수 없이 물가가 비쌌다. 지들이 미국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 나라들 밥값이 비싼 것은 오로지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페루도 후지모리가 대통령 하던 시절에 떼거지로 이민 온 일본인들 때문에 물가가 상당히 오른 편이라고 들었다. 몇몇은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극장에서 x-men 2를 봤다. 마치 서커스 단원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연습한 다음 한 가지씩 묘기를 부리러 나온 것 같았다. 스토리의 밀도가 희박하다. 잘들 놀고 있구나 싶었다. 마그네토의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자비에르 박사에게 그런 대단한 능력이 진즉부터 있었다면 성능이 떨어지는 보통 인간들을 싹쓸이 해 버렸어야 한다. make it so 해 버리라고 피카드. 정신병에 걸린 호머 사피엔스는 6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도가 안 보인다.

방법 개념도를 그렸다. 멕시코에서 손으로 그려 보고 두 번째로 그리는 셈이다. 작전지도를 그리고 나니 루트가 한 눈에 들어왔다. 페루 북부(아마존과 안데스의 고봉)는 제꼈기 때문에 간단해서 좋다. 15일 정도면 관광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리마에서 삐스꼬로 이동. 사막과 해변 한 가운데로 길이 나 있다. pan-america highway. 적도 부근이고 해변 근처인데(따라서 고도가 100m가 채 안되는데) 날씨가 이렇게 차가운 것은 그... 악명 높은 해류의 영향 때문인가? El Nin~o. 에스빠뇰을 아주 조금(little, poco)이나마 이해하기 때문에 니뇨가 작은 사내아이를 뜻하리라고 짐작한다. 엘 니뇨는 7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고(7년 짜리 어린애) 그 다음 해에는 La Nin~a(작은 소녀)가 이어진다. 엘 니뇨와 라 니냐는 말 그대로 집안(페루)의 재앙이다. 엘 니뇨 때문에 사막이 암처럼 자라나는 것 같다. 나일강을 따라 이어진 누비아의 사막이 떠올랐다. 그 사막은 자존심이 있어 보였다.

삐스꼬에 도착하자 시큼한 생선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는데 내 앞에 있는 아저씨가 작성한 카드를 보니 corea del sur(남한)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분이세요? 고개를 끄떡인다. 그 아저씨도 나처럼 사람 만나는 일에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하다. 같은 숙소에 묵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서 다시 만나지 않았다. 피차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인 것 같다.

빠라까스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좀 일찍 도착했더라면 물개가 왕창 있는 국립공원 뒷편에 가 볼 생각이었는데 버스 기사가 이 시간에 가면 별로 안 좋을 꺼라고 말렸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반도를 돌다가 나를 내려준다. 친절하다. 하는 수 없이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다가온 거지와 얘기했다. 그는 삐스꼬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들이 자기를 미친 놈 취급한다고 말한다. 무슨 사고가 나서 삐스꼬에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횡설수설이다. 물개 얘길 하다말고 갑자기 펭귄으로 바뀌었다. 거지가 어떻게 그리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나. 미쳤다고 생각할 밖에. 그와 오랜 시간 옥신각신 하다가 내가 1솔을 동냥하고 그가 리마에서 나를 재워 주기로 합의를 봤다. 펠리컨들이 자기 배인 양 어선에 올라서서 저녁식사로 무슨 생선을 먹을까 골몰한다. 태평양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삐스꼬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세비체를 먹을까 했는데 음... 이 집에는 없네? 아로스 꼰 마리스꼬스. 1.5불로 엄청난 양의 밥과 샐러드가 나와 어안이 벙벙했다. 여러 종류의 어패류가 밥 속에 파묻혀 있다. 페루 사람들은 대식가인가? 며칠 동안 밥 양이 너무 많아 남기기도 뭣하고, 좀 난처했다. 식당을 나와 배가 무거워 펭귄처럼 걸었다.

pc방을 기웃거리다가 마침 컴퓨터를 조립하는 친구가 보여 펭귄처럼 걸어가 windows xp cd를 구워달라고 부탁했다. 12솔. 약 3달라 가량? 비싸게 받아먹는군. 으쓱. 어쩌겠나 아쉬운 사람이 손 벌려야지. 2개월 전 집을 나올 때 빅토리녹스 칼과 xp cd를 두고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얼간이인 것 같다.

원숭이 우리에 컴퓨터를 넣어두고 어떤 글자를 타이핑하나 살펴 보았단다. 원숭이들은 S를 유난히 좋아했다더라. 서칭 엔진의 검색 1위를 차지하는 단어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S로 시작했다. 결론: 인류의 90% 이상은 원숭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

오아시스 도시인 Ica에 가볼까?
내일 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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