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quipa to Cusco

여행기/Peru 2003. 5. 17. 19:11
엊그제 바빠서 미처 적지 못한 것들. Colca Canyon tour에 추가할 것들.

함께 투어에 간 일행은 페루에 정착해 살고 있는 미국인 가족 4명(아들, 딸은 페루인) 25$, 캐나다인 2명 20$, 한국인 1마리 18$, 페루 가족 3명 ?$. 캐나다인들과 한국인만 빼고는 모두 에스빠뇰을 할 줄 아는 관계로 스트레스 받게 에스빠뇰로 자세히 설명하다가 영어로 다시 설명한다. 남들 다 웃은 다음에 웃는 기분 아나?

국립공원을 지나갔다. 길은 내내 비포장이었다. 그 옆으로 아스팔트 길을 내고 있었다. 하하, 나는 운이 좋다. 뻑 가게 멋있는 국립공원이다. 특히 당나귀처럼 신음하는 고물 봉고로 비포장에서 먼지 날리며 달려야 제맛이 날 것 같다. 강수량이 연중 40mm에 불과한, 매우 황량한 동네라 정착해 살고 싶은 기분은 영 들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아닌 곳은 종종 멋졌다. 꼴까 계곡과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은 구차하게 주전부리를 떨 것이 아니라 그냥 한가할 때 가서 보면 될 것이다. 자외선이 듬뿍 들어간 햇살로 살균하면서. 구름, 새파란 하늘, 화산, 탁 트인 지평선, 점점이 움직이는 짐승들.


Reserva Nacional Salinas y Aguada Blanca. 앞 산은 El Misti(5822m). 아레뀌빠를 작살냈던 화산. 그 앞에 거의 멸종될 뻔 했던 Vicunya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

적어놓은 가격은 그들이 투어에 지불한 액수다. 가격 탓인지 우리는 각각 다른 숙소에 묵었다. 페루인 가족과 나는 한 숙소에 묵었다. 수준 차이가 현격하게 났다. 캐나다인 둘과 투어 내내 붙어 다녔는데, 별 이유는 없고 에스빠뇰이 물결치는 투어 차량 안에서 우리 셋먼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잉카 문명에 관해 공부할까 하다가 김이 새 버렸다. 그들이 식용으로 사용한 감자의 종류가 2000종이라는 글도 있고 200종이라는 글도 있었다. 헷갈리잖아. 문제는 그게 아니고 그들이 품종 개량을 시도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떻게 수천년 동안 자기들이 재배하는 주요 농작물을 그렇게 방치해 놓을 수 있을까. 시장에서 본 감자들의 종류가 여전히 가지각색이다. 바퀴가 없었다는 것은 이번에는 부차적인 문제다. 수도사 멘델 이전에도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은 인위적인 교배가 품질 개량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꼴까 계곡은 그런 육종학 실험을 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연간 서늘하고 일정한 기온과 풍부한 수량, 비옥한 토질 등등. 어쩌면 그런 이상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 근심 없이 살다보니까... 모르겠다. 나란 놈은 그런 시시한 것에 토라진다.

중간 중간 다른 투어차를 타고 온 일본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걔네들 가이드는 설명을 안 해주었단다. 차를 타고 행선지에 도착하면 사진 찍고 멀뚱히 있다가 다시 이동한다고. 그래서 그들에게 잉카 토착인들의 복식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우리 가이드는 아는 것이 많아서 너무 많은 설명을 해 줬다.

우리 팀 가이드는 머리가 벗겨진 인텔리인데 잉카 제국 얘기를 하다가 아레뀌빠의 식민 역사와(초기 피사로의 정복 기지) 현재의 아레뀌빠에 살고 있는 토착 인디헤나(인디언)의 비참한 삶을 얘기했다. 그들은 요즘 물이 없어 원주민끼리 돈을 걷어 50솔에 물탱크 하나를 산다고 한다. 아레뀌빠 시민들의 자존심 얘기도 줄기차게 늘어놓았다. 아레꿰빠는 식민지에 정복당하여 식민 생활에 젖은 페루인들을 멸시했는데, 먹고 살자니 자기들도 서양인들이 가져온 편리한 서구식 생활에 적응하는 등 전통적 이념과 생활의 불일치가 한동안 골이 깊었다나. 그런데 지진이 싹쓸이를 한 후 사정이 변했단다.

우리 안경을 끼고 머리가 벗겨진 인텔리 가이드는 취미생활로 태권도를 하고 있다. 날더러 한국에서도 태권도가 인기있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것은 태권도 협회의 뿌리깊은 비리 뿐이었다.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종류의 무술과 구기 종목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지 오래되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데이빗(캐나다인)이 나에게 물었다. 넌 그중 뭘 할 줄 아냐? 아무 것도 못해. 몹시 비웃는다. 당황한 나머지 나를 포함한 한국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태권도를 배우고 살인술도 배우고 개나소나 총질을 다 한다고 말했다. 나한테 M16A1 한 자루만 주면 여기 있는 콘돌들을 한 시간 만에 전부 몰살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말 좋은 사격 표적이라고도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몹시 썰렁해졌다. 콘돌이 페루의 국조였던가?

데이빗은 참 대단한 친구다. 한숨도 못자고 지난 밤에 10시간 동안 설사를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투어 팀의 여자들 앞에서 미소를 띄운 채 재롱을 떨며 그들을 즐겁게 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그 정신 만큼은 본받을만 하다.

캐나다인들을 포함한 우리 아웃사이더(떨거지) 셋은 콘돌을 멍하게 쳐다보는 일이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사실 할 일이 없어서) 1200미터짜리 계곡을 내려 가려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무안을 당했다. 하긴 그랬다, 우리는 콘돌이 아니라서 떨어지면 상승기류를 탈 수 없을 것이다.

높이 높이 높이 멀리 멀리 멀리 하지만 우아하고 느긋하게. 9시가 지나자 콘돌들이 사라졌다. 콘돌은 어디로 갔나. 잉카인의 비극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시나 노래 제목으로 어울릴 것 같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그런 얘기를 들어서 지금 기억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머리 인텔리 가이드 아저씨 말처럼 페루인들은 정체성을 잃고 특히나 돈이 한푼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인디헤나의 유아 사망률은 극단적으로 높단다. 페루는 극빈국 중에 하나였다. 잊어먹기 전에 적자. 가이드의 이름은 기예르모다. 그는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전공을 살려 가이드로 삽질하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얘기는, 스페니야드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토지를 약탈당한 사람들이 반군을 만들어 그들과 대항하다가 죽어간 얘기다. 그중 한 명은 잡혀서 사지를 말에 묶어 능지처참을 하려고 했는데 잘 찢어지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목을 잘랐다고 한다. 그 찢어지지 않은 남자를 꾸스꼬의 거리 무랄에서 발견했다. 과떼말라의 가엾은 인디오처럼 술과 마약에 쩔어 길거리에 개처럼 나뒹굴지 말고 잉카의 후손들은 잘 해 나가길 빌어줬다.


돌아오는 길에 치바이에서 데모가 있었다. 선생들이 파업하고 학생들이 그들을 밀어줬다. 선생들 봉급 인상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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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끼빠에서 꾸스꼬까지 12시간 걸리는 버스가 실제로는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편하게 가지고 그나마 침대차를 탄 것인데 이 모양이다. 중간 중간 도로를 점거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때마다 버스가 멎었다. 그때마다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데모를 한 모양이다. 어쩌면 일시를 정해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한 데모인지도 모르겠다. 이 데모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주요 도로 상에 돌을 깔아 차량 통행을 막고 구호를 외친다는 점이다. 투어 이틀하고 20시간 차를 타고 고산병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서 거진 3일째 맛이 간 상태인데 어서 빨리 꾸스꼬에 도착해 발 뻗고 누워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해 도착하자마자 페루 소식을 뒤져봤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다. 대체 이 나라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

버스가 멈춘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벌써 4시간을 기다렸다. 하는 수 없이 지도를 펼치고 gps로 지점을 찍어 대충 위치를 파악했다. 26번 도로와 어떤 도로가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한마디로 교통의 요충지인데 여기서 2시간을 더 가야 꾸스꼬가 나올 것이다. 직선 거리는 98km. 버스 앞으로 수십 대의 차량이, 버스 뒤로 또한 수십 대의 차량이 네 시간째 데모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짐을 버스에서 내려 각개전투를 할 생각이다. 히치라도 해야지 이거야 원.

버스가 움직였다. 다시 선다. 피시식 김이 샌다.

남들이 한 번 쯤은 와 보고 싶어하는 꾸스꼬에 그렇게 간신히, 꾸역꾸역, 돌을 치워가며 도착했다. 데모대는 도로에 깔아 놓은 돌을 치우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하지만 아레끼빠에서 꾸스꼬로 오는 도중에 본 풍경이 오래오래 인상에 남을 것 같다. 엄청나게 커다란 보름달이 평원을 비추는 장관을 넋을 잃고 쳐다 보았다. 잠을 못 잤지만... 아...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정말 운이 좋다.

별 생각 없이 페루에 와서 좋은 것 많이 본다. 멕시코 여행할 때처럼 어리버리 하다가 한 달 보내는 것은 우스울 것 같은 나라다.

꾸스꼬를 페루의 카트만두라고 하던데 도심의 지독한 매연이 카트만두와 정말 똑 같았다. 다른 점? 많다.

고산병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 마떼 데 꼬까(코카잎으로 끓인 차)와 코카잎을 줄기차게 마시고 씹었다. 차 안의 안내양은 내가 시들어 갈 때마다 따뜻한 마떼 데 꼬까를 건네줬다. 아레끼빠 사람들의 친절이 인상에 남는다. 아레끼빠 사람들은 지금까지 만난 페루 사람들과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다른 것 같다.

광장에 있는 INTEJ로 학생증 만들러 가봤다. 만드는 작자가 마추 피추 할인받으려고요? 라고 묻는다. 그런데요? 카드는 만들 수 있지만 꾸스꼬에서는 이 카드로 아무 것도 할인 안 됩니다. 예? 안되요. 예... 안 되는구나. 안 되는데 가지 말까?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랬지.

지쳤다. 만사가 귀찮아서 택시 타고 시내로 들어와 밥부터 먹고 빨래는 론드리에 맡겼다. 수염 안 깍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걸레같은 옷 뿐만 아니라 마음도 남루해졌다. 지금은 그냥 우라늄 235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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