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군데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사서 10불 주고 사서 그중 여섯 군데를 돌았다. 구멍난(폐기된) 학생증을 내밀었지만 25세 이상이라며 할인이 안된단다. 성당 들어가는데 돈을 받는 것에 익숙해 지지 않는다. 중미에서는 즐비하게, 화려한 것들을, 공짜로 봤는데... 남미는 다른가?

꾸스꿰냐,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 중 최고봉에 속한다는 것. 벽돌 이음새에 면도칼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만들었다는 것. 꾸스꼬의 도시 계획을 보니 꾸스꼬의 거리와 건물 배치가 푸마를 닮도록 해 놓았다. 샥샤이후만이 머리에 해당한다면 꾸스꿰냐는 음경 쯤에 위치. 암. 머리만큼 음경은 중요하지. 규모로 보아 그럴게 대단치는 않았다. 그러나 대비는 매우 인상적이다. 몇백 명 안되는 피사로의 부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성당을 지었을 리는 만무하고, 스페냐드 군대의 칼날에 떨었을 잉카인들이 자신의 조상들이 지어놓은 멋진 성을 파괴해서 그 벽돌로 스페냐드식 건물을 지었을 터인데, 그것들과 더러 남아있는 꾸스꿰냐의 기반이 부조화를 이루었다. 형편없이 만든 성당과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만든 성벽이라...

잉카 문명이 지배했던 시기를 살펴보았다. ad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다. 전 세계적으로 그 시절의 건축술을 비교해 보건대, 잉카 건축술이 남다르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돌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 쯤은 할 수 있다. 건물 벽 마다 약간의 경사를 주었는데(0.5도 가량)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놨는지, 이런 건물을 왜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건물을 짓기 전에 일종의 3차원 설계 조감도를 돌로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는 것. 특이하다고 하는 이유는 진흙으로 만들면 간단한데 왜 돌로 만들었나 하는 점이다. 아니면 돌로 만든 것만 남아있는 것이던지. 잘 만든 것들은 아름답다. 부스러기와 윤곽 밖에 남지 않았지만 꾸스꿰냐는 아름다웠다.

까떼드랄에서 사진 찍다가 걸렸다. 부주의했다. 사방에 사진 찍는 것을 감시하는 짭새가 깔려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날더러 여권을 달라고 한다. 어... 지금 없다고 했다. 이건 명백한 절도 행위이므로 경찰에 가자고 한다. 바쁜데 경찰에는 왜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그러면 사진 지우면 될 꺼 아네요. 개중 혼자서 길길이 날뛰는 작자가 있었다. 아아 사진 찍으면 안 되는지 몰랐다. 미안하다. 내가 지우려니까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 염려스러웠던지 자기가 직접 지운다. 성당이 성스럽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걸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찍은 잉카 유물을 찍은 사진은 지우지 않았다. 잉카 유물 찍은 것은 안 지우고 성당의 별볼일 없는 그림들은 지운다? 재산의 값어치를 평가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상황이 안 좋으니 부조리에 항의하지 말고(잉카 유물 사진도 지워야 공평하지 않은가!) 입 다물자. 경찰이 성당 바깥까지 정중하게 안내해 주었다. 다시 말해, 쫓겨났다. 성당 바깥에서는 성당 내부를 찍은 엽서를 버젓이 팔고 있었다. 비웃어야 하는데 민망하기만 하다. 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므로 돌아 다니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까뜨리나 성당에 들어가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관리인에게 들켰다. 굴뚝에 관해 좀 이상한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성당의 역사에 관해 설명해 주려고 했다. 별 관심 없는데... 내 국적을 묻더니 내가 리마에서 왔거나 미국인일 꺼라고 생각했단다. 거짓말. 그래서 그녀에게 시내에 일본 음식점이 있냐고 물었다. 알려준다. 킨 따로 주인은 나를 보더니 대번에 한국인인 줄 알아보았다. 음식이 쥐꼬리만큼 나와 몹시 허전했다. 한국인은 이렇게 먹으면 쓰러진다...

한국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corea house라고 씌여 있었지만 메뉴에는 중국식, 일식, 페루음식들이 뒤죽 박죽 섞여 있었고 심지어 가라오께도 운영하고 있다. 메뉴를 보고 이게 꼬레아노 라면 맞냐고 몇 번을 확인해서 물으니 그렇다면서 가져온 것이 중국식 완탕 스프였다. 어? 아닌데. 신라면 봉투를 들고온다. 바로 그거라고요! 끓여온 라면에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들어가 있다. 어쨋든 라면에 밥 말아 먹으니 좋다. 고기는 건졌다.

구불구불한 꾸스꼬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개중 절반이 레스토랑과 호텔이었다. 해가 질 무렵 산 블라스에서 느적느적 고개 중턱으로 올라가(꾸스꼬의 도시 설계상 푸마의 등 언저리에 해당)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달은 둥글고 선명했다. 달은 광장에 서성이는 레스토랑 삐끼떼와 그링고 그룹 관광객들과 무력하게 앉아 있는 거지들을 자세히 비춰 주었다.

밤에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꾸스꼬에서 경험한 여러 아이러니와 부조리 때문이라고 믿는다. 낮에는 쌀쌀하고 잘 때는 어깨가 시렸다.

디즈니가 48시간 이후면 다시 읽을 수 없도록 스스로 망가지는 self destructing dvd를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산소에 노출되면 dvd가 붉은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해 레이저를 차단한다나. 렌탈 회사에 다시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일회용... 훌륭한 기술이다. 빌려서 48시간 이내에 복사하고 원본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조지 부시가 '조지고 부시는' 사람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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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co -> Urbamba -> Ollantaytambo -> Agua Caliente

마추 픽추를 힘 안 들이고 가장 싸게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꾸스꼬 부근의 전 유적지를 3.5일 만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괜찮은 스케쥴을 '발견'했다. 그것보다 짧은 루트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난 그대로 하지 못한다. 이미 옵티마이징을 할 시기가 지나 버렸다. 꾸스꼬는 페루 관광의 핵심이라 많이들 찾는 곳임에도 최적 루트에 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리마에서부터 만나는 여행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하긴, 내가 지금 가는 코스는 페루 남부 여행 루트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지.

무슨 무슨 협회의 고산병 적응에 관한 몇 가지 주의점을 읽었다.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1. 물을 많이 마실 것.
2. 탄산 음료를 마시지 말 것. <-- 증세를 악화시킴.
3. 기름기 있는 음식을 피할 것.
4. 코카잎이나 코카잎으로 만든 차를 계속 마실 것.
5. 서서히 운동을 해 나갈 것
6.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을 것.

어떤 멕시코 여행자가 가르쳐 준 고산병 적응에 관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달디 단 캔디를 수시로 복용.

오얀따이땀보에서 예기치 못한 수확을 얻었다. 잉카 시절의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저 기차 시간이 남아서 돌아다닌 것 뿐인데... 운이 좋다. 성스러운 계곡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들이 많아 어차피 조용하게 시간 보내기는 글른 곳이었다. 지나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하면서...

페루는 투어를 따라가는 편이 안 그런 것 보다 나아 보인다.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도 아니고. 바예스타스 섬이나, 나스카나, 꼴까 계곡 등은 투어가 아니면 도저히 제대로 볼 방법이 없다. 바예스타스 섬이나, 나스카는 투어가 아니면 아예 갈 방법조차 없다. 꾸스꼬 주변의 잉카 유적도 마찬가지다. 왠간히 공부해 오지 않는 한, 이건 정말 심한 돌덩이들이다. 부조가 전혀 없다. 그래서 추측이나 상상이 매우 어렵다. 유적 형태의 기능적인 분류가 일부분 가능한 정도다. 이 지역을 방문할 때 배낭 여행자들이 늘 그렇듯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추천해 줄 수가 없다. 투어가 낫다. 가이드들 대개가 성실하다. 이런 것을 누가 조언해 줬더라면(아니면 게시판에 올리던가) 페루에서 멍청하게 도시를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텐데...

중남미 쪽은 한국 여행객들이 찾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 같다.

기차를 타니 아구아 깔리엔떼로 가는 배낭 여행자들이 거의 200명 가까이 되었다. 마추 픽추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잉카 트레일은 3박 4일에 140$ 가량 하고 지금 내가 따라온 길은 2박 3일에 50$ 정도 든다. 140$ 가량 들면서 나흘 동안 추위에 벌벌 떨면서 갖은 고생을 하고 마추 픽추를 찾는데, 나처럼 이런저런 트래킹을 많이 해 본 사람에게는 잉카 트레일이 별다른 매력이 없을 것 같다. 여행사를 전전하면서 잉카 트레일의 사진들을 쳐다보다가 안 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을 안 봤으면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사진에는 산뜻한 오솔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떼거지로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음에 안 든다.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해서 오후 3-4시면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고 그 다음에는 밥 먹고 할 일이 없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덜덜 떠는 것 밖에. 으쓱. 돈 더 들여 더 고생 하겠다는 패기가 하나도 안 부럽다. :)

Colca Canyon &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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