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u Picchu

여행기/Peru 2003. 5. 20. 19:33
gps가 고장났나? 마추 피추에 올라왔다. gps에는 2500m라고 찍혔다. 오얀따이땀보가 3500m니까 그것보다 훨씬 잘난 마추 피추는 4000m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200m를 더 올라가 와나 피추에 이르렀을 때 정상 지석에는 2700m라고 적혀 있었다. 어라? 맞잖아? 학자들이 마추 피추가 경이로운 건축물이라고 게거품을 물었을 때 나는 마추 피추가 최소한 4000m는 되어서 엄청난 노동력을 들여 어렵게 건설한 것으로 믿었다. 2500m라... 약간 실망. 멕시코의 떼오띠우와깐이 중남미 전체를 통털어 최고의 건축인 것 같다... 잉카의 건축가들은 부조나 조각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 단지 벽을 쌓고 집을 지었는데 아파트 건설업자와 뭐가 다른지 누가 설명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마추 피추 입구에서 폐기된 국제학생증의 구멍을 살짝 가리고 내밀었다. 학생할인, 되었다. 만세다.

남들은 120$ 주고 잉카 트레일로 3박 4일 벌벌 떨며 고생해서 와 닿는 곳인데 나는 50$ 들여서 2박 3일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마지막까지 안 걸으려고 버스 타고 마추 피추에 올라갔다. 그 사람들이 잉카 트레일을 트래킹해서(고생해서) 닿았는데 마추 피추가 별로 안 멋있으면 김 새거나 열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마추 피추는 최고다. 이렇게 멋진 계획 도시는 로마 시절에는 흔해 빠진 것이긴 하지만 700m의 깍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세운 건물들과 저 멋지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테라스는 입에서 으윽 하는 감탄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심하게 씹었군.

처음 마추 피추의 테라스를 보았을 때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올랐다. 우연찮게도 작은 광장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야마 몇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음... 유럽 여행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도 웃통을 벗고 선텐을 하고 있었다. 보기 싫다.


마추 피추 전경. 맞은편의 산은 와나 피추.

마추 피추의 사소한 단점들은 몇 안 되었다.

그들은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정교하게 지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탐구욕으로 가득찬 채 건물의 돌을 들어 보았다. 들린다. 밀어 보았다. 밀린다. 욕 먹을까 봐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주위에는 인부들이 돌 틈에 낀 이끼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저 이끼들은 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하여튼, 발로 열나 걷어차면 마추 피추는 무너진다. 이유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얄 패밀리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몇몇 건물들과 성스러워 보이는 것들은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잘 지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종으로 힘을 균등하게 받지 못해서 그렇다. 기초 공사를 어떻게 한 거지? 어떤 일본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마추 피추의 어떤 부분은 한 달에 1cm씩 가라앉고 있단다. 그래서 2002년부터 마추 피추에 하루 입장객 수를 500명으로 제한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마추 피추는 언젠가 그링고 관광객들과 함께 무너져 내릴 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장관일 것 같다.

그 다음은 용도를 알 수 없는 테라스다. 테라스에는 작물을 키울 수가 없다. 농작물을 키우면 테라스가 무너진다. 테라스가 좁아 농작물을 키우면 지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그래서 테라스를 만든 것이 경작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건축물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잉카인의 아크로 폴리스를 지탱하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야마를 키우려고 뿌리가 깊숙히 박히지 않는 풀들이 테라스 에서 자라게 내버려 둔 것 같다. 풀이 자라면 야마들이 풀을 뜯어먹고, 잉카인은 야마를 잡아먹고. 테라스의 또다른 목적은 도시를 잘 은닉하는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밑에서는 테라스 때문에 건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에서는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마추 피추에는 자폐증 왕족들이 살고 있었을까? 어떤 주장에 따르면 선택받은 여자들이 마추 피추에서 살았다고 한다. 유골의 80%가 여성이었다. 소수의 사제와 다수의 여성들이라면 음... 흔한 그림이 나오는군...

마추 피추 유적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게 '과학적'인 부분은 태양석이다. 한눈에 보자마자 알았다. 그런데 그놈에 태양석은 하루 중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눈금이나 파낸 흔적이 없다) 계절의 변화만을 추적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천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장치 같은 것은 없었다. 잉카 문명은 ad 12세기에서 ad 17세기 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에 다른 문명권에서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천문 관측 시설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천문관측의 목적도 아리송하다. 주변에 컬티베이션이 가능한 면적은 강을 따라 지극히 좁았다. 여긴 꼴까 계곡처럼 광대한 경작지가 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잉카인들은 창문을 항상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건축의 기적 중에 하나인 아치를 17세기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은 ad 2세기 무렵 그것을 발견했다. 아마 더 이전에 아치를 알았을 것이다. 가이드라면 왜 그들이 마름모꼴로 창문을 만들었는가 라고 질문한 후, who knows? nobody knows!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연극적으로. 흐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3000년 전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은 완전히 똑같다. 현세의 사람들이 그 당시 사람들이 뭔가를 하나 이룩해 놓았으면 기특하다는 듯이 찬탄을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추 피추의 수로 관계 시설: 로마에 비교할 바는 아닌 것 같고, 위쪽 지방의 떼오띠우아깐 문명의 사우나 시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당시 아랍 문명권은(특히 무굴은) 기압차를 이용하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끌어 올리고 자랑 삼아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잉카는 2단계 수도꼭지를 만들었다. 이거 정말 신기하다.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고 눈으로 보면 재밌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가이드가 시범을 보일 때는 오얀따이땀보의 수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실험해 보니까, 된다.

아무튼 여러 가지 면에서 마추 피추는 최고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 보았다. 잘못 읽었다. 마추 피추는 '남미' 최고의 유적지였다. 으어어어...

마추 피추는 고소 공포증을 유발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분위기가 사뭇 으시시했다. 직접적인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사진들의 입체감이 없는 묘사와는 달리 그 테라스를 걷고(모르타르 안 발랐다. 모서리에서 발 구르다가 추락할 수도 있다) 건물 사이를 돌아 다니면 내가 마치 공중에 뜬 건물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발걸음이 가볍다->시원하다->썰렁하다->으시시하다 순으로 기분이 변했다. 감이 느려서 그런건가...

마추 피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심심해서 와나 피추로 올라갔다. 와나 피추란 마추 피추 사진에 흔히 등장하는 마추 피추보다 약 200미터 높은 모나미 볼펜 끄트머리처럼 생긴 산이다. 올라가는 입구에서 이름을 적었다. 가끔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봐 이름을 적어두고 돌아오면 돌아왔다고 신고하란다. 그렇게 위험한가? 고소 공포증이 거의 없는 편인데도 올라갈 때부터 분위기가 안 좋다. 바위는 미끄럽고 계단은 무너질 것 같았다. 다시 생각나는 것인데, 이 미친 놈들은 모르타르를 안 썼다. 잉카인은 날개라도 달렸단 말인가? 아니면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라도 했나? 최소한 잉카인들에게 고소 공포증은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정신병인 것 같다. 태양과 콘돌의 후손이니까?

빡세게 30분 가량 올라가 마지막 오분은 오체투지로 기다시피해서 정상에 이르렀다. 2500미터라서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무시무시하다. 뭘 하나 굴리면 지엄한 중력 가속도를 충실히 지키며 떨어져 내릴 것 같은 900미터의 깍아지를 듯한 절벽이 눈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와나 피추에서 중력의 사과와 에너지 바를 피지컬한 점심으로 먹고 담배 한대 피운 후 내려왔다. 바람이 안 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상에서 겁에 질렸음에도 겁에 질리지 않은 체 하는 있는 집 페루 자제들과 농담 따먹기를 했다. 어제부터 줄곳 만났는데, 재밌고 밝은 아이들이다.

에너지 바: 트래킹할 때 반드시 지참하라는 식품. 여러 곡물류와 견과류를 살짝 압축해서 만든 과자. 대략 100kcal 정도인데 400kcal라고 믿을 수 없는 사기를 치는 제품도 있다. 적어도 4개를 먹어야 한 끼 식사를 한 정도가 되는데(1솔) 조금 무겁더라도 사과(1kg에 1솔)가 나을 것 같다. 초콜렛바만도 못하다. 신뢰가 안 가는 제품이다. 잉카의 전통적인 어떤 식품은 고단백질이라 우주 비행사들이 먹는다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음료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잉카 사람들은 콘돌이 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들도 날아보자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콘돌 같은 커다란 날개를 만들고 벼랑에서 연습 끝에 드디어 조정에 성공했다. 상승기류를 정복했다. 그들은 당시 잉카의 전통적인 고단백질 음료수를 끼니 때마다 마셨을 것이다.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와나 피추와 마추 피추와 그 아래에 있는 아구아 깔리엔떼 사이를 행 글라이더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잉카 글라이더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들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예술의 방종이 인간성을 망가뜨리고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신석기 시대에 숙지한 다음 모든 과학문명을 폐기하고(글라이더나 바퀴 따위 빛나는 최신 기술) 그것을 기록하는 문자 체계를 없애버린 채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서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들은 황금을 찾아 헤메다니는 스페냐드라는 돌발변수를 예측하지 못했다. 때문에 잉카는 몰살 당하고 현재의 잉카 후손들은 스페인 문화에 거의 동화되거나 흡수되고 심각한 빈부의 격차가 중대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잉카의 후손들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게 된 데에는 거개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지, 잉카 문명이 다른 문명과 교류를 못해 심각하게 정체된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발해와 돈독한 교류를 가졌더라면 글라이더에 바퀴를 달고 양 날개에 화통을 설치하고 몸통에 화약을 달아놓은 콘도르 전폭기를 개발했을 지도 모른다. 수백대의 콘도르 전투기가 푸른 하늘을 뒤덮고 구름 사이를 넘나들며 스페냐드의 무적 함대를 전멸시키는 장쾌한 광경을 상상해 봤다. 상상만 할 수 있어서 아쉽다. 식민 역사란 더럽게 슬프고 구역질나는 것이다.


와나 피추 정상. 매우 스산.

돌아와서 몇 명이나 와나 피추를 올라갔나 봤다. 오늘은 140명 가량. 별로 추천해주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가봤자 전망이 끝내 주게 좋지도 않았다. 원근이 안 잡힌다. 그냥 정력이 남아돌아서 올라갔다 오는 것이지. 마추 피추는 hut of the care taker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가장 멋지다. 엽서 사진에 워낙 많이 등장해서 식상하긴 하지만. hut of care taker에서 draw bridge 쪽으로 좀더 가면 테라스와 도시 윤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발자국이 나 있었다.

마추 피추에서 내려 올 때 버스를 탔다.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에는 노인네들만 탔다. 다른 사람들은 걸었다. -_-; 1m 라도 덜 걸어보자고 하는 짓이긴 하지만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마추 피추가 4000m는 되는 줄 알고 부러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4000m가 어떤 곳이냐. 내리막길에서도 숨이 턱까지 차고 땀이 주르륵 흘러 내리는, 그런 곳이다. 사전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않은 탓이다.

마추 피추에 올라가느라 고생 했으니 이제 온천욕을 즐겨야지. 수영복은 없고 반 바지와 타올을 들고 온천을 찾아갔다. 오오... 단돈 1.5$짜리 노상 온천이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천에는 서너 명의 인디헤나 밖에 없다. 머리에 비를 맞으며 따뜻한 온천 속에서 손가락이 심하게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밍기적 거렸다. 뼈속까지 시원하다... 여독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 같다. 온천은 흙바닥에 사방을 콘크리트로 둘러놓은 단순한 것이었다. 발바닥이 따끈따끈한 것을 보니 밑에서 물이 데워지는 것 같다. 서양애들이 몇몇 들어오려고 해서 재빨리 나왔다. 서양 애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한 공포 내지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들이 탕에 들어오면 물이 더러워 진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며칠 샤워를 안한 내가 더 탕을 더럽혔을텐데...

온천을 끝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자. 식당을 전전했다. 별로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 고르는 건 정말 일이다. 그러다가, 입이 방정이라고... 20솔 하는 식사를 6솔에 해주면 먹겠다고 말했다. 그는 7솔을 불렀다. 맙소사. 식사를 가지고 흥정을 하다니... 그리고 흥정이 되다니! 아무리 everything is negotiable이라고 하지만 식사 가지고 흥정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섰다. 손님이 없다. 비수기니까. 레스토랑 세팅이 럭셔리하다. 괜히 비싸 보이는데 들어온 것 같은데.. 그냥 점심 때처럼 시장통에서 왕창 퍼주는 밥이나 배불리 먹을 껄 그랬나? 그래도 빈티 좀 그만 내고 제대로 먹어보자. 온천에 들어가 모처럼 기분이 개운한데...

송어가 이 지방 특산물이었지. 물이 차갑고 맑은 동네다. 하지만 강원도하고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온두라스 정도라면 강원도와 막상막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옥수수 크림 스프와 송어 튀김과 밥과 감자 튀김과 샐러드와 레몬 쥬스를 시켰다. 감자 튀김은 언제나 plentyful하게 나와서 만족스럽다. 감자의 제국이니까.

스프가 잘 나왔다. 제대로 크림을 얹어왔다. 따뜻하다. 적당한 끈기에 맛이 고소하고 식욕을 돋군다. 식탁 세팅은 약식이지만 제대로 해 놨다. 한켠에 스페인 와인 셀렉션 북이 놓여 있다. 암 그래야지.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메인 디시가 나왔다. 송어 튀김은 뼈를 바르고 양쪽을 저며서 밀가루 옷을 아주 얇게 입혀 튀겨왔다. 모양은 예쁘장하고 그럴듯 한데, 소스가 약간 무겁고 고기 맛이 별로다. 무슨 망할 놈에 양식이라고... 역시 송어는 회를 떠서 회고추장에 퍽퍽 발라 소주와 함께 배불리 먹어야... 샐러드는 약간 미끈거리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먹을만 했다. 레몬 쥬스는 단순히, 신선했다. 레몬 쥬스는 만점이다. 서빙 보는 태도가 나쁘고 와인을 권하지 않았다. 아무리 싸게 '할인'해서 먹는 것이지만 디저트 주문을 안 받아 점수가 많이 깎였다. 난, 젤리를 먹을 생각이었다... 음. 빈티가 나서 그랬나? 뜨내기 손님을 받는 관광지 식당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럭 저럭 맛있게 먹었다. 온천욕 다음에 괜찮은 식사를 한 정도면 까탈 부리지 말고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맨날 식당에서 이 지랄을 하니 여자가 도망가지.

지배인이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계산서를 내밀었다. 나도 약간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계산을 치렀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당근 하뽕(일본)이지. 사요나라, 하고 인사한다. 암, 사요나라지. 마추 피추 마을은 관광지답게 숨이 턱턱 막히는 가격을 제시하고는 했다.

아, 그러나 마추 피추...
오늘 저렴하게 한 관광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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