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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Peru 2003. 5. 21. 18:59
Machu Picchu photos

Agua Caliente -> Ollantaytambo -> Urbamba -> Cusco

새벽 5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밍기적거리다가 5.30am, 기차는 5.45am에 출발. 짐을 싸고 허겁지겁 달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동네 아줌마들이 깔깔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기차역을 알려준다. 계단에서 한번 엎어졌다. 일으켜준다. 추운 새벽인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기차는 8시쯤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해야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중간에 섰다. 자다 깨서 객실을 살펴보니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러 짐을 짊어지고 나갔다. 기차가 언젠가 가겠지, 여기서 움직이면 돈 낭비고 체력 낭비라니깐 하는 무책임한 희망을 품고 느긋이 객실에 앉아 눈을 붙였다. ...... 합쳐서 두 시간 넘게 지나도 아무 일이 없어 차장에게 물어보니 기차가 언제 출발할지 자기도 모른단다. 멋지군. 하는 수 없이 짐을 들었다.

gps로 찍어보니 목적지인 오얀따이땀보까지는 직선거리로 12km. 고개가 많은 산악이고 고도가 높아 배낭을 메고 도저히 걸어 갈만한 거리는 아니다.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탔다. 합승객이 너무 많아 아비규환이다.

차는 시속 10km의 속도로 비포장 도로를 달려갔다. 마추 피추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왜 도로를 안 만들었을까? 기껏해야 40~50km 구간인데. 대부분의 수입이 정부에 귀속되어 다른 일에 쓰여지던가 아니면 일부 재벌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페루의 IGV라는 부가세 비슷한 세금은 무려 18%나 했다. 도로 건설은 국가 개발 계획의 핵심적인 사업이다. 세금 걷어서 도로를 지을 것이지 빌어먹을 새끼들. 그러고 보니 주요 도로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페루의 관광지를 전전하면서 비까번쩍한 도심의 상가와 페루 농촌의 극단적인 가난이 이루는 대비가 보통 가난한 나라들 수준 이상 임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페루에서 데모가 잦은 것 같다.

트럭은 오얀따이땀보를 4km쯤 남겨두고 섰다. 앞에 데모 행렬이 걸어가면서 도로에 돌을 던져 놓고 있었다. 운전수가 내려 돌을 치운다.

하는 수 없네. 걸어야지. 트럭에서 내릴 때 말썽이 좀 있었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서양 여행객들과 트럭 이용료가 3솔이라고 바가지를 긁는 운전수와 대판 싸움이 붙었다. 대략 10km쯤 달렸으니까 운임은 0.5솔 정도가 적당한데 서양인들은 1솔 이상은 못 주겠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2솔 정도로 타협할 것이다. 나는 그 가격에 절대로 못 탄다. 일부는 달라는 대로 다 준 서양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서양애들이 흥정할 때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같이 덤터기 쓰니까. 나 혼자만 외롭게 0.5솔(신 꿴또~~)을 외치다가 목소리가 묻혀 버려서 트럭에서 내려 운전수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돈 안 내고 그냥 걸었다. 서양애들에게 바가지 씌우느라 바빠서 0.5솔 짜리를 신경쓸 틈도 없을 것이고 내가 0.5솔 짜리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협상해봤자 본전도 못 건질테고... 운전사와 차장이 뻘쭘하게 웃으면서 보내준다. 3솔 낸 녀석들이 내 운임까지 내준 셈이 될 것이다. 나야 그런 일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몇몇은 씩씩거리며 억울하다는 듯이 2솔을 말 그대로 도로에 집어 던지고 나를 따라 걸었다. 앞으로 2km만 걸어가면 된다. 대여섯 명이 걸었다. 미국인 셋, 좀 시건방진 프랑스 여자애 둘. gps를 보고 몇 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상대하기 싫어서 혼자 성큼성큼 걸었다. 그들이 현지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밥맛 떨어져서 그랬다.

기차가 멎자마자 재빨리 튀어나와 먼저 트럭을 타고 도착해서 헤메고 있는 여행자들과 시장통의 북적거림을 뚫고 지나갔다. 데모로 사방이 정신이 없다. 말려야 할 경찰은 박수치면서 데모대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페루의 사정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여기서 꾸스꼬 행은 드물게 한 두 차례 밖에 없다. 우르밤바에서 꾸스꼬 행을 갈아타는 것이 낫다. 꾸스꼬행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허름해 보이는 여행자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 했다. 까탈 안 부리고 따라오면 저렴하게 너희들을 꾸스꼬까지 데려다 줄 수 있지롱. 꾸스꼬행 다이렉트 버스는 5솔이다. 우르밤바까지 1솔, 한 시간 거리. 꾸스꼬까지 3솔, 두 시간 거리. 4솔.

꾸스꼬에 내려 여행자들과 바이바이했다. 푸노 간단다. 고도차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고산증이 벌써 일주일 넘게 괴롭힌다. '비바 라틴'이라는 한국 식당에 들어가 라면을 시켜먹었다. 라틴 여행인가 하는 책을 보니 중남미 코스를 밟은 몇몇 여행자들의 글이 있었다. 비바 라틴 사장님이 한국인이다. 숙소를 같이 하는 것 같아 물어보니 10달러란다. 아! http://www.amigos.co.kr이 여기였구나! 10달러는 좀 비싸서 짐을 지고 숙소를 찾으러 광장으로 향했다.

전에 묵은 숙소도 좋지만 다른 숙소를 찾아보려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숙소가 정말 많다. 15솔 하는 숙소를 30초 만에 10솔로 협상하고 얻었다. 새로 지어 깨끗하다. 하룻 동안 쌓인 피로가 그제사 갑자기 몰려왔다. 밤 열시쯤 컴퓨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었다. 뭘 할까...
마추 피추를 보고 나니 잉카 유적은 좀 그렇다. 더 보고 싶지도 않다.
다 제끼고 그냥 빈둥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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