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icaca

여행기/Peru 2003. 5. 26. 19:40
아침 일찍 일어나 띠띠까까 호수로 향했다. '아침 일찍'... 으윽... 배를 타고 보니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열세 명. 나와 일본인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쌍쌍이다.

미국인 아줌마의 주장에 따르면 자국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이 좀 한심한 편이란다. 그녀는 가이드가 구사하는 '복잡한' 단어에 감동한 것 같다. 그녀는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고 여행 좀 하게 생긴 마이애미 총각하고 줄곳 얘기를 나누었다. 마이애미 총각은 아줌마에게 이란에 꼭 가보라는 얘기를 했다. 내심 그가 이란을 여행하다니, 참 대단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국적이 탄로나면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하니까. 그와 단 둘이 얘기 할 기회가 있어서 페르세폴리스에 관해 얘기했다. 페르세폴리스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추 피추를 능가한다고 안 되는 영어로 하나 둘 따지고 있었는데, 이 친구 쉬라즈 얘기를 하면서 페르세폴리스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의아해서 이란에 언제 갔었냐고 물으니 얼버무린다. 엉? 케밥 먹어봤다며? 그는 쉬쉬케밥이 무언지 몰랐다. 황급히 도망친다. 그 친구 대신 미국인 아줌마한테 진짜 페르시아를 느끼고 싶으면 케르만의 시장통에 가보라고 열나게 설명했다. 가급적 '어렵고 우아한' 단어를 써가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끼리 떠들거나 서로 개성을 존중하는 것인지 앙숙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테면 '너 같은 관광객 때문에 띠띠까까 호수가 오염되고 있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Uros, Amantani, Taquile 섬을 도는 1박 2일 투어였다. 여러 투어를 비교해서 밥을 가장 많이 주는 이 투어를 선택했다. 섬의 민가에서 하룻밤 자고 점심, 저녁, 심지어 아침까지 얻어 먹는다. 저렴하고, 밥이 공짜라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어떻게 40km 이내에 있는 섬들을 둘러보는데 2일씩이나 걸리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배를 타고 gps를 켜보니 이해가 갔다. 배는 12km/hr라는 어이없는 속도로 '일정하게' 달렸다. 자전거도 아니고... 띠띠까까 호수에는 모두 40여개의 섬이 있었다. 호수 건너편은 곧 가게 될 볼리비아다. 볼리비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 거렸다. 싸다니까.

우로스 섬은 갈대를 1m 두께로 얹어 띠띠까까 호수 위에 떠 다니는 인공섬이다. 띠띠까까 호수에 관해 이전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로스 섬의 원주민들이 유전병 치료의 혁명적인 단초를 제공한 순수한 피를 가진 종족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외에도 잉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화 속의 호수 라던가(그들 태양신의 탄생지), 내륙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큰 규모의 호수라는 등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titi = puma, caca = great or stone 이라는 뜻인데 심혈을 기울여서(또는 사시를 치켜뜨거나 스스로를 납득시키면) 호수 모양이 문득 푸마처럼 보일 때가 있다. 띠띠까까 호수에 얽힌 잉카 전설과 그들의 전통적인 삶은 원주민들과 뿌노의 관광업 종사자들을 먹여 살리는 주수입원이므로 강력하게 보전되어야 마땅했다.

우로스 원주민들이 가족혼을 통해 순수한 혈통을 면면이 이어 왔으리라 생각하고 물어보니 인근 아유마라와 혼인을 해서 피가 섞인 상태였다. 실망.

워낙 철저하게 강간지화가 진행되어 거의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갈대 배 타고 다른 곳으로 간 동안 할 일이 없어, 띄엄띄엄 영어를 할 줄 아는 원주민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태양전지를 발견하고 환호했다. 제대로 사네? 그는 '관광수입'으로 지멘스제 750불 짜리 태양전지를 최근에 장만했다. 저녁이 되어 관광객들이 돌아가면 태양전지로 축전된 전기로 TV를 관람하고 전등을 켰다. 그런 모습을 대낮부터 보여주면 관광산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태양전지 때문에 한 달에 150달러가 날아간다고 한다. 페루의 교사 월급이 2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그는 꽤 잘 사는 편이었다. 날더러 사진 찍겠냐고 묻길래 돈 받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그럼 안 찍는다. 돈 안 받을 테니까 찍어도 좋다. 그래서 그가 즐겨 먹는 물고기 사진과 그의 거친 팔뚝을 찍었다. 그는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에 다소 짜증이 난 상태인 것 같았는데, 자기가 지금 이런 집에서 살고 있지만 집 뒤에는 야마하제 모터를 단 최신식 모터 보트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갈대배만 몰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그래서 엿먹을 전통이나 갈대로 만든 좆 같은 관광 상품은 제껴두고 주로 남들이 재미없어 하는 얘기들을 나눴다. 그가 우로스 섬에 '전통적으로' 앉아 있으면 투어 가이드가 간강객들을 데리고 와 동물원 원숭이처럼 자기들을 보여준 후 여행사가 적당액을 분배해 주는데 그 수입이 변변치 않아서(여행사가 착취) 먹고 살기 위해 물고기도 잡는다고 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니 밭이 없어 농작물을 사와야 할 때가 죽을 맛이란다. 너도 '전통'맛 좀 보겠냐고 위협했다. 오... 노...

전통을 피해 달아났다. 배는 세 시간을 지루하게 달려 아만따니 섬에 닿았다. 원주민 가정 한 가구당 관광객 두 명씩 배정했다. 짝이 없는 나는 일본인 할아버지와 같은 가족을 따라갔다. 할아버지는(오까다 상)은 몸이 불편한데도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오스까라는 그집 아들네미와 마리라는 그집 딸네미와 땀 나도록 놀았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어쩐지 애들 놀이상대로 그 집에 들어간 듯 했다. 마리는 내 다리에 찰싹 붙어 다녔다.

오스까가 가진 재산 일호는 소니 라디오였다. 20솔 짜리 라디오인데 내 gps는 소리가 안 나기 때문에 그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사실 기를 쓰고 5불도 안 되는 그 싸구려 라디오보다 120불이나 하는 내 gps가 더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등 좀 한심한 짓을 했다. gps는 말이야, 아웃도어의 거친 세계를 지향하는 사나이의 첨단 로망이라고... 이 자식 영어를 모른다. 소니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전깃줄이 곳곳에 보이고 방 안에 전구가 있어 전기가 돌아오나 싶었는데 그건 그냥 폼이었다. 우로스 섬과는 달랐다. 집 안을 슬며시 뒤져 보았지만 태양전지나 축전지나 TV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 섬에서 라디오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첨단 미디어 통신기기인 셈이다. 왜 그리 라디오를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겠다.


Isla Amantani

밥 먹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할머니들과 어린 여자애들만 반긴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았다. 이래 가지고야 언제 젊은 원주민 처녀들과 로맨틱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보나 싶어 아쉬웠다.

산꼭대기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석양이다. 빛들은 칼날처럼 구름 사이로 쪼개졌다. 여기가 몇 미터더라... 4100m 되는 것 같다.

그 다음은 별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조금 더 참았다. 저녁을 먹고 사람들이 관광객용 피에스타(파티)에 몰려간 동안 마당에 서서 별을 쳐다 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오카다 상의 손을 끌어 별을 보여 주었다. 그는 감동했다. 말을 잊었다. 3900m의 전깃불이 없는 청명한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수이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믐에서 며칠 안 지났다. 운이 좋다.

한참 후에 오카다 상이 혹시 남십자성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남십자성을 별자리 지도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다. 쉽게 찾았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지금 적도를 넘어 남반구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여름으로 향하고 있지만 여기는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별자리들 중 생소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니까. 아아... pda가 날아가지만 않았어도 밤새도록 덜덜 떨면서 별을 잇는 기쁨을 맛 보았을텐데. 심지어 여긴 전기도 안 들어오는데...

마리가 꽃잎을 잔뜩 들고 방안에 들어왔다. 심심한가 보다. 촛불 아래서 마리의 산수 공부를 지도했다. 내가 경험한 중남미인들은 뺄셈, 특히 돈 계산에 취약하니 그거라도 가르쳐줘야 생활이 보탬이 될꺼라고 생각했다. 밥이 공짜니까 있는 대로 더달라고 해서 계속 먹었다. 일본인 할아버지는 음식이 워낙 더러워서 잘 먹질 못했다. 관광지라더니 내가 묵고 있는 집의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쩔쩔 매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산업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으로 믿는다.

간간이 일본인 할아버지와 얘기했다. 그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진로'를 그리워했다. 일본애들 만나면 의례껏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고 한국음식 매니아였다. 예전에 부산을 방문한 목적도 '본토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라나. 그에게 페루의 전 대통령인 후지모리의 안부를 묻자 좀 당황한 것 같다. 그가 나와 그 가족 사이의 통역 역할을 해 줬다. 고마웠다. 어딘가 모르게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일본 승려와 닮았다. 나보다 꼭 2배 나이가 많다.

밤에는 몹시 추웠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엄두가 안 나 그냥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아줌마가 뜬금 없이 춤추는 거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다 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었다. 어젯밤에 마리랑 춤을 췄는데 걔가 고자질한 것 같다. 어휴...

따말레섬, 주민들이 '전통적인 삶'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가이드의 지리한 설명을 들었다. 미국인들이 원주민 사진을 찍고 돈을 몇 푼 슬쩍 건네주는 모습을 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해 한다. 씁쓸하다.

만족스러운 투어를 끝마치고 픽업을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자기 호텔에 내렸다. 2성, 3성 하는 호텔에 내리는데 나 혼자 여인숙 같은 곳에 내리니까 기분이 좀 묘했다. 다들 저렴한 여행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여행 1주년을 자축하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지나쳤다. 오늘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돈을 펑펑 썼다. 그래봤자 4.7$어치 밖에 안 되었다. 지금까지 먹은 식사 중 가장 비싼 것은 꼬스따 리까의 산 호세 번화가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한 접시에 10$ 가량 하는 파스타였다. 워낙 고가라서 카드로 긁었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 식히는 과정인 것 같다. 잠시 머리 식히자는 것이 어느덧 일 년 째가 되어 머리가 점점 식어 가다가 절대 0도 부근에서 대뇌가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생체자석이 말을 안 들어 고민했다.

주간지 3개, 일간지 6개를 포함해 12개의 사이트를 정기 구독하고 틈틈이 만화책을 다운받아 보았다. 그런지 벌써 3개월쯤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인터넷 사용하면서 blog를 기록하거나 사진을 업로드하는 동안 뉴스와 만화책을 다운 받았다. 1시간 다운 받으면 3시간 정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용량의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값싸고 저렴한 문화생활이다. 그래서 웃겼다.

숙소에 돌아오니 뜨거운 물은 커녕 찬물도 나오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종업원들을 상대로 지랄했다.

여행 중에는 빛나는 승리로 점철된 영웅적인 행각을 이어갈 수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난 좆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노다메처럼 행복했다. 별빛 아래서 꼬마애와 춤도 추고.

띠띠까까 호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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