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az

여행기/Bolivia 2003. 5. 27. 18:34
Puno - border - Bolivia Copacabana - La Paz 12hrs.

아침 일찍 일어나 La Paz행 버스를 탔다. 왠 일로 아무 사고 없이 버스가 잘 가나 싶더니만 경찰 체크포인트에 차가 멈춰서 조사랍시고 설문지를 돌린다. 문항을 살펴보니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페루의 관광 시스템에 관한 만족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대체 어느 나라가 공권력을 앞세워 관광객 설문 조사를 한다며 잘 가던 버스를 한 시간 넘게 세워둘까. 설문지를 신랄하게 작성하고 나니(그래도 페루는 좋았다) 고생 하셨다면서 기념품을 준다. 버스가 가다가 다시 멎었다. 창밖으로 수떼! 수떼!를 외치는 걸 보니 또 데모구나... sute는 suit가 아닐까 싶다. Puno 사람들은 좀 무서웠다. 아스팔트에 돌 뿐만 아니라 깨진 유리병 조각을 깔아놓았다. 4시간 지체.

국경에서 여권 복사본을 달란다. 볼리비아는 과떼말라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은 나라로 알고 있다. 이민국 사람들이 어째 다소 희극적으로 보였다. 군복 탓일까.

여행 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지나온 국가들의 색채 이미지: 미국 노랑, 멕시코 낡은 주황, 과떼말라 회초록, 엘 살바도르 검정, 온두라스 황금색, 니까라구아 연두, 꼬스따 리까 은색, 빠나마 엷은 하늘색, 뻬루 짙은 초록, 볼리비아 채도가 낮은 빨강. 지나가면서 색깔이 바뀌었다.

꼬빠까바나에 하루쯤 묵어보는 건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라 빠스(라 빠스는 어두운 녹색)까지 버스표를 끊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띠띠까까 호수에 면한 조용하고 편한 도시 같다. 아름답다. 베리 매닐로우의 노래가 여기를 무대로 한 것인가? 로라라는 이름의 쇼걸이 있었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노래. 꼬빠까바나에서 내려 눈에 띄는 호스텔에 들어가 뒷일을 보고 관광버스 차장의 지시로 버스를 갈아탔다. 그 동안 옆 자리의 에쿠아도르 인한테서 벼룩이 옮았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벼룩은 통했고 그의 출입국 카드 작성을 도와줬다. 워낙 많이 작성해 봐서 빈칸 채우기에 불과했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면서 풍광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설산들이 열을 맞춰 왼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페루의 어떤 현대 화가가 설산을 인격화 해 표현한 그림이 떠올랐다. 설산은 그의 그림처럼 생겼다. 히말라야 같이 위압적이지 않고 마치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얼굴을 덮은 늙은 할아버지처럼 평원을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늙었지만 죽지 않은, 죽을 것 같지도 않은 정정한 노인네 같다.

흙벽돌로 지은 뒤숭숭한 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보트로 호수를 건너는 동안 내가 탔던 버스는 별도의 목조선에 올라 호수를 건넜다. 가라앉을 것처럼 위태위태한데 용케 건너온다. 띠띠까까 호수는 변함없이 맑았다. 호수 중간에서 엑스칼리버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 라 빠스... 저 멀리 황금색으로 물든 설산을 배경으로 석양 속에서 라 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가지를 형성한 비탈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군은 다마스커스를 연상시켰다. 어째서 도시 이름이 평화(paz = peace)일까. 평화가 없기 때문인가?

7시간이면 와 닿을 곳을 12시간 걸려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전전했다. 아직 성수기가 시작되지 않았을텐데 숙소 구하기가 힘들다. 거리에는 그링고가 우글거렸다. 한 시간 넘게 비탈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기진맥진했다. 간신히 25 볼리비아노 짜리 숙소를 잡았다. 3.3$짜리 치고는 깔끔했다. 배고프다. 짐을 내려놓고 식당을 찾아 돌아 다녔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밥 먹으려면 시장에 가라.' 라고 LP에 적혀 있었다. 시장에 서서 접시를 받아들고 이름 모를 음식을 먹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거리에서 이젠 딱히 신기하게 여길 만한 것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투어 만이 남았을 뿐이다.

가이드북을 읽어보니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최후를 마감한 곳이 볼리비아의 어떤 작은 도시 근처에 있는 광산이라고 하더라. 아, 잊지못할 그 영화의 한국어 제목과 마지막 프리즈가 떠올랐다. 그때 흘렀던 노래가 raindrops falling on my head였던가?

선댄스: 오늘은 내가 쏠께. 내일은 니가 쏴라.
부치: 좋은 생각이야. 넌 명사수니까.

-_-

볼리비아는 그러니까,

1. 체 게바라가 빨지산을 하다가 볼리비아군에게 죽음을 당한 곳
2. 베리 매닐로우가 젊은 날의 잊지못할 추억을 노래한 곳
3. 전설적인 강도단 부치와 선댄스가 볼리비아군에게 벌집이 된 곳.

이렇게 슬픈 사연이 많은 곳 임에도 옆 방에서는 이스라엘리 남녀가 헉헉대고 있었다.

투자의 세계에 엔지(NG)는 없다 - 김준형
옆집은 뭘해먹지 - http://wwww.menupan.com
http://www.alberteinstein.info

상트 페테르부르크 - 세계3대 박물관 에르미타지 박물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삼위일체 다리 등. 삼위일체 다리?

부산∼광주 통일호 운임 8,300원. 우등고속 18,700원과 일반고속 12,700원의 절반. 8h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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