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arta

여행기/Indonesia 2011. 12. 23. 12:00
새벽 5시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짐은 그저께 밤에 챙겨뒀다. 어제는 송년회가 있었고 신입사원에게 엔지니어링은 마인드와 소울을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뻘소리를 한 것이 기억 나서 민망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민망한 얘기는 아니었다. 꼰대스러울 뿐이지.

자고 있는 아이와 아내를 놔두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어렴풋한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발발 떨다가 버스를 타고 서수원 터미널로 갔다. 생뚱맞은 위치에, 이용객이 별로 없는 터미널. 매표소에서 공항버스 표를 12000원 주고 샀다. 한 시간 걸려 공항에 도착. 짐을 붙이고 항공좌석표를 찾았다. 

자동출입국 심사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여권을 스캔하고 지문을 찍으면 등록이 끝난다. 자동출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을 스캔하고 지문을 검사하니 광속으로 통과. 하지만 수속을 밟고 공항 대기실까지 가는데 무려 2시간이 걸렸다. 공항이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공항에 두 시간 전에 도착했으나 항공기 탑승까지 15분 정도의 여유 밖에 없었다. 

공항 라운지에는 naver wifi가 무료다. 인도네시아 정보를 적어둔 파일을 회사 컴퓨터에 놔두고 온 게 기억난다. androidvnc로 회사 컴퓨터에 접속을 시도했으나 안 붙는다. 출근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인터넷이 다운되었단다. 그 파일을 google docs로 옮겨야 하는데... 포기. 남은 10여분 동안 휴대폰의 Locus App으로 600MB 분량의 인도네시아 지도 tile 파일을 다운로드 했지만 해상도가 떨어져 쓸모없는 수준. 괜히 휴대폰 배터리만 낭비한 것 같다. 미련없이 로커스 앱과 데이타를 지웠다. 
 

인도네시아 국적기(?)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기. A330

항공기 탑승. 기내에서 LP 인도네시아 가이드북을 잠깐 공부. 여행 준비할 시간이 없어 루트조차 제대로 못 짰다. 어디로 갈까. 계획은 이렇다;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셔틀 버스를 타고 Gambir train stasiun에 가서 Yogyakarta행 기차표를 산다. 기차표를 구할 수 없으면 Pasar Senen Stasiun역으로 걸어가서 가격이 싼 bisunis class 기차를 시도해본다. 자바섬을 가로질러 여행하다가 Surabaya까지 가서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와 하루쯤 자카르타 시내 관광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중간 과정은 여행하면서 차차 생각해 보기로. 플랜B까지 짰으니 잠이나 자자.

도착 1시간 전. 자와해 보르네오 섬 부근

깨보니 기내식을 나누어 주고 있다. Garuda Indonesia 항공기 기내식은 halal을 따랐고 그래서인지 맛이 없었다. 순한 필스너인 bintang 맥주 한 캔 마셨다. 자바 커피는 맛있었다. VOA(visa on arrival)을 기내에서 받았다. 25$. 인천공항 가루다 인도네시아 카운터 옆에서 바우처를 구매하고 그걸 내밀면 기내에서 비자를 주는 식. 아니면 공항에서 긴 줄을 기다려 비자를 받아야 한다.


공항 도착. 후덥지근. Baggage Claim으로 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러 겨울옷을 벗고 배낭에 넣었다. 반바지에 반팔. 이 동네에선 반바지 입고 돌아다니면 이상하게 본다는데? 나와보니 어디에서 짐을 찾는지 몰라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친구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데려다 주고 짐을 찾아준다. 그러더니, '모니'를 요구. 히죽 웃으며 거절. 

환전소의 환율이 형편없어 ATM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arrival에 있는 한 ATM에서 거래에 실패. 더 이상 ATM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헤메다가 물어보니 2F Depature에 있단다. 씨티 국제 체크카드로 200만루피아를 찾았다. 이걸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Gambir Stasiun행 Damri 버스 티켓 가격은 20,000루피아.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기다리다가 4.40pm 쯤 버스에 올랐다. 지랄맞은 교통체증 때문에(안 그래도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은 국제적인 명성을 자랑) 한 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 6.40pm이 되어서야 도착. 가는 길 내내 samsung, LG, SK, Lotte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별 감흥이 없었다.

감비르역의 매표 창구에는 보아뱀처럼 구불구불한... 기나긴 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표 구하긴 글른 것 같은데? 안내센터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물어보니 holiday season이라 기차표를 내일까지 구할 수 없단다. 파사르 세넨 역에서는? 마찬가지란다. 혹시 버스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고개를 설레설레. 거기도 아마 마찬가지일 꺼란다. 어영부영 하다보니 7.30pm.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어떻게 할까... 별 수 없다. 자카르타에서 하룻밤 묵으며 여행사에서 가는 교통수단이 있는지 알야봐야지. 예정에 없던 플랜 C다.

모자를 눌러 쓰고 비를 맞으며 어두운 밤거리를 터덜터덜 걸었다. 현지인들은 차가 오건 말건 무단횡단을 했다. 나도 그렇게 했다. 비가 와서 가이드북을 꺼내볼 형편이 아니라서 순전히 감을 믿고 내려가면... 안 되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Jalan Jaksa(작사길)을 찾아갔다. 잘란 작사는 조용한 버전의 카오산 같달까? 

숙소부터 잡자. 첫번째 게스트하우스는 8.5만을 불렀다. 침대 하나 선풍기 하나 달랑. 네고가 안된다. 다음 GH는 7만. 상태가 더더욱 안 좋다. 처마 밑에서 LP를 꺼내 뒤적여 Hostel 35를 찾아갔다. 12.5만 싱글. 비싸서 포기하고 다른데 가보니 24만. 

인니인들은 숫자를 말할 때 아래 천 단위는 잘랐다. 그래서 24만은 two hundred forty. 뉴스에서 내년쯤 인도네시아에서 화폐의 denomination을 한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럼 천 단위 이하 절삭? 

그곳의 친절한 매니저가 싼 GH를 소개해 준다. 이쪽 골목으로 죽 들어가면 있다고. Kresna Hostel은 8만에 spartan room. 그 옆의 bloem steen은 single이 다 나가고 double을 8만 달란다. patio도 있고 해서 햇볕은 절대 안 들 것 같은 그 방으로 잡았다. 샤워하고 게스트하우스 정원에 나와 담배 한 대 빨고 있으니 비가 멎었다.

Bloem Steen Hostel. Jalan Jaksa 북쪽 입구에서 얼마 안 가서 왼쪽 골목(Gang) 안쪽에 있는 숙소. 휴일 성수기라 방이 없어 double 80,000rp에 잡았다. 옆 Kresina Hostel은 거지같은 single room이 80,000rps.

배 고프지만 여행사부터 들렀다. 족자행(Yogyakarta니까 욕야카르타 라고 해야 하는데 족자카르타 또는 jogja로 부르더라) 내일 저녁 출발하는 투어버스(A/C 달린 미니버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를 알아봤다. 240,000rp. 매우 비싸다. 일반적인 버스 가격이 90,000rp인데... 그건 가이드북에 적힌 작년 가격이고 인도네시아의 엉망진창인 경제 사정과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12만 이상은 안 나올 것 같은데... 다른 여행사도 같은 가격을 불렀다. 담합같다. 족자까지는 12시간쯤 걸린단다.

첫번째 여행사로 돌아와 예약. 길거리에서 나시 고랭을 파는 노점을 발견. 8,000rp. 아직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 감이 안 잡힌다. 말레이지아와는 조리 방법이 조금 달랐다. 웍에 기름 두르고 익은 쌀과 시금치 같은 야채를 썰어 볶다가 소스를 좀 치고 계란 하나 풀어 같이 볶아 접시에 내 주는게 끝. 소스의 주성분은 MSG. 동남아시아 여행하면서 MSG를 피할 수는 없겠지. 맛있게 먹었다. 

노점상 근처의 24시간 편의점 Circle K에 들렀더니 창문에 free wifi라고 써 있었다. 편의점에서 물 한 병(1800rp) 사고 어떻게 wifi를 사용하냐고 물으니 암호가 적힌 종이를 준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트윗질을 좀 하고 아내와 skype로 영상통화를 한 다음 정보를 뒤졌다. jakarta는 볼 것 없는 도시란다. 

오늘 하루 종일 휴대폰의 GPS가 잡히지 않다가 wifi가 되니 GPS가 바로 잡힌다. GPS 화면을 보면서 걷다가 숙소 근처 까페의 의자에 앉아있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았다. 숙소에 돌아와 담배 한 대 피웠다. 휴대폰을 충전시키고 잠들었다.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방문해 주신 모기에 뜯기다가 8am 기상. 샤워하고 체크아웃하면서 짐을 게스트하우스에 맡기고 National Monumentum(일명 Monas)까지 걸었다.

출입구를 찾아 한참 헤멨다. 친절한 현지인들 도움으로 남서쪽에 있는 입구를 찾았다. 볼게 없었고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학생들의 긴 줄이 서 있어 올라가지 않았다.

National Monumentum. 줄여서 Monas. 입구는 지도상 좌하단 하나만 개방되어 있다. 입구 찾아 돌아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다. 개구멍이 있다는데 수선을 다 해놨는지 안 보이고... 왼쪽의 빨간 차는 유료 화장실.


거리는 차량과 오토바이로 시끄러웠다. National Museum까지 걸어갔다. 아무렴 여행의 시작과 끝은 박물관이지! 아이들이 바글거려서 신관부터 구경. 말로만 듣던 Homo Florensis를 감동적으로 쳐다봤다. 

Homo Floresiensis. 2003년 Flores의 Liang Bua 동굴에서 발견된 이 난쟁이 유골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 인간 진화의 연결 고리로 추정되어(9만년에서 10만년 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옆에 적힌 설명이 그렇다는 얘기고...). 내가 알기론 플로레시엔시스는 현재는 현생인류와 다른 종류로 분류된 걸로 알고 있음. 어쨌거나 박물관에 온 보람을 느낀 화석


국립박물관 구관. 카이로 박물관처럼, 박물관의 유물 보관하는 유리 케이스가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듯. 저게 모두 티크목.


아담한 국립박물관을 나와 근처의 Inscription park까지 걸었다. 입장료를 안 받는다. 하지만 볼 것이 없다. 공원 근처의... Masakan Padang이라 씌어진 식당에 들어갔다. 마사칸 파당은 아마도 부페를 말하는 것 같다. 접시에 밥을 담고 원하는 반찬을 접시에 담아서 먹는 것 같다. Es teh(ice tea)까지 합쳐 18,000rp. 죽어라고 나시 고랭만 먹게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음식이 있다니... 꽤 먹을만 했다. 

박물관 앞으로 돌아왔다. TransJakarta 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과일 모듬을 10000rp에 파는데 양이 부담스러워서 먹지 않았다. 버스는 3500rp로 정액이며 무제한 환승이 가능. 지하철이 없는 이 대도시에 지하철을 대체하는 대중교통수단. kota에 도착. 더치 시대의 식민지풍 건물들이 조그만 광장을 중심으로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근처에 박물관이 네 개쯤 있었다. 

Cafe Batavia에 들어가 무선랜을 사용(wifi 암호는 cafevatavia 1085). es kopi(Ice Coffee)가 무려 37,500rp. 인도네시아에서 사용하는 말은 영어에서 차용해 온 것이 많은데 음가만 비슷. 한 동안 인도네시아의 어떤 부족이 한글을 문자로 사용한다는 한국 기사가 인기를 끌었다. 수천 개의 섬에서 살아가는 300여개의 ethnic group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문자인 영어를 사용 중. 표음문자인 한글이 굉장히 우수하다고 하지만 한글로도 꽤 많은 음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한글이나 영어나 음가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를 못 느낄 뿐더러, 또 어떤 문자가 다른 문자보다 더 우수하다는 견해엔 별로 공감이 안 간다. 나중 기사를 보니 한글 사용하는 댓가로 돈을 주기로 했단다. 흔한 삽질?

watch tower까지 걸어가다가 더워서 멈췄다. kota 중심가로 돌아와 노점상에서 파는 시원한 과일 쥬스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입장료 20000rp를 내고 Wayang Museum에 들어갔다. 한국인이라고 반가워한다. 인형 박물관이 무척 만족스럽다.

마하바라타의 한 장면. 크리슈나가 마차를 몰며 활을 쏘는 아르주나를 재촉한다. 죽여라, 저들을 모두 죽여라




무대인사 중인 배우들. 인도네시아 여행 중에 인형극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미디어를 통해 가멜란 음악이나 와양극을 어린 시절에 본 적이 있어서...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니벨룽겐의 반지나 오페라의 유령 등도 직접 보는 일은 없지 싶어지는데?


도자기 박물관과 자카르타 역사 박물관은 가지 않았다. Mandiri bank Museum에서 오래된 컴퓨터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애플 ][다. ][+도 아니고! caps lock이 없어 대문자만 가능했던 기억이...


kota역에서 버스를 탔다. 수퍼마켓에 들러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요량으로 Plaza Indonesia에 가보려고 Sarinah에 내렸다. 문간에서 경비원이 가방을 검사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심상치 않은데? 플라자 인도네시아는 부자들만 오는 곳 같다. 별로 볼 것이 없어 나왔다. 

Plaza Indonesia 부근의 skyscraper. 부러 열흘 휴가를 내서 이런 곳을 관광하는 타잎은 아니라서...

Plaza Indonesia 내부를 헤메다가 발견한 서점의 romance 코너. paperback을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비닐로 포장해 놔서 페이지를 열어볼 수가 없다 -_-


다시 버스를 타고 Monas 근처에서 내려 잘란 작사까지 걸었다. 


거리 입구의 포장마차에서 미에 고랭을 시켜 먹으며 동네에서 축구하던 애들과 얘길 나눴다. 계산할 때 아저씨가 8000rp를 부르니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나도 눈치가 있다. 오버차징이구나. 수퍼에서 산듯한 인스탄트 라면을 끓여 풀데기 몇 개 얹은 것을 외국인이라고 비싸게 받으니 같이 먹던 애들이 할 말을 잃어 조용.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먹고 있는 이 인스탄트 미에 고랭은 어떤 작자가 세계 10대 라면 중 하나라고 꼽던 것이다. 계산하고 어제 묵었던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으며 샤워 좀 하자고 부탁했다. 개운하다.

길가에서 망고를 좀 사 먹고 여행사에 짐을 내려놓고 Circle K 앞에서 인터넷으로 아내와 딸과 얘기했다. 옆에 앉은 인도네시아 여자가 어떤 서양 남자를 걷어차는 중이다. 자기는 예쁘지도 않고 기혼에 애까지 있으며 남자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으나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련단다. 그리고 자기는 섹스를 정말 좋아해서 별별 사람들과 다 자 봤다. 하지만 섹스 외에 자기에게는 something inside가 있단다. 듣고 있자니 그걸 맞장구 치며 듣고 있는 서양 남자가 무척 불쌍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겨우 겨우 회사 컴에 접속해서 모아놓은 인니 정보 텍스트 파일을 Google Docs에 올리고 폰의 문서도구를 열어봤다. 인코딩이 안 맞아 글자가 깨진다. 텍스트 파일을 utf-8로 변환하고 구글 닥스에 다시 올렸다. 이번엔 된다. 그런데 적어놓은 정보가... 워낙 빈약해서 도움이 안된다. 이걸 대체 왜 적어놨지?

차가 온다는 6pm에 맞춰 여행사에 들어갔다. 아직 차가 안 왔단다. 담배를 두어 대 피우는 동안 게이 같아 보이는 손톱이 긴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300만루피아를 주면 섹스 마사지가 가능하단다. 관심없다. 인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얘기를 나놨다. 한국 기업이 큰 건물을 많이 지어 놨단다.

출발 예정 시간에서 시간 반을 기다리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릴없는 얘기를 나누다보니(과일장수, 어제 나시고랭 먹었던 포장마차 아저씨, 인니에 정착해 관광객 상대로 술집을 하는 잘란 작사의 독일인 아저씨 등등) 기사가 도착했다. 드디어 출발인가? 미니 버스에 아무도 없다. 뒷좌석에 다리를 뻗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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