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yakarta

여행기/Indonesia 2011. 12. 25. 12:00
한 삼십분 달리더니 차가 선다. 짐칸에 재봉틀을 실으려고 한다. 재봉틀이 너무 커서 들어가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옥신각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재봉틀은 포기했다. 승객들이 꾸역꾸역 차에 올랐다.

삼십분 쯤 차가 달리더니 승객을 태운다. 그렇게 해서 네 시간 동안 12명의 승객을 태우고 자카르타 시내를 빠져나간 시각이 12am. 그때쯤 간식으로 빵과 물을 줬다.

아마도 자카르타 시내를 돌며 승객을 모집하는 것 같다. 미니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내가 앉은 열에 4명이 앉았다. 아이 둘, 어른 둘. 앞에 앉은 아이 엄마가 사탕을 준다. 줄 게 없어 민망했다. 여자애한테 말을 걸어봤지만 말이 뚝뚝 끊겼다. 그 옆 자리 아이는 차멀미로 연신 게웠다. 먹은 걸 다 게웠는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무릎이 앞 좌석에 닿아 불편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바깥을 보니 정글 한 복판에 난 1차선 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가 없는 건가? 중간에 차가 멈추더니 아침을 먹잔다. gps를 간신히 잡아 살펴보니 족자까지 100km 쯤 남았다. 8am.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하지 싶다.

비가 쏟아졌다. 밥은 조금 있으면 도착할 족자에서 먹기로 하고 내 옆에 앉은 아저씨와 장쾌하게 쏟아지는 비를 구경하며 손짓 발짓으로 얘기를 나눴다. 48세, 자식은 다섯. 자카르타와 고향을 한 달씩 오가며 생활. 요리사. 푸딩을 잘 만든단다. 한달 월급은 백만 루피아. 집 없고 차 없다. 임대한 좁은 방에서 아이 셋과 자카르타에 산다. 그래도 히죽히죽 잘만 웃었다. 저 아이들이 당신 딸이냐? (내 옆에 앉아있던 아이들) 아니다. 딸들은 자카르타에 있고 그 중 하나는 대학에 보냈다. 등 허리가 휘어지시겠군. 담배를 교환해서 피웠다. 내 담배가 좋단다. 비가 잦아 들었고 다시 미니 버스에 올랐다.

미니버스가 보르부두르 부근에서 빙빙돌더니 아저씨를 이름 모를 시골 마을에 떨구었다.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12.30pm 무렵 미니버스는 족자카르타 시 어귀에 닿았다. 그런데 시내로 안 들어가고 시 외곽으로 주욱 빠져 나간다. 어어... gps를 켜서 보여주며 내가 내릴 곳은 족자 시내 tugu stasiun이라고 손짓발짓을 동원해 알렸다. 그저 내 휴대폰의 gps를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걱정 말란다. 투구역에 내릴 때까지 족자카르타를 뺑뺑이 돌며 모든 손님을 내려주고 거의 마지막에 내렸다. 그 때가 2.10pm. 징하다. 무려 18시간을 비좁은 미니버스를 타고 간신히 이곳에 도착. 운전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welcome to jogja! 하면서 함박 웃으며 손을 흔들고 떠났다.

대낮부터 마사지 하고 가라는 손길을 뿌리치며... Yogyakarta Tugu Stasiun(족자카르타 투구역) 남쪽길 숙소 밀집 거리를 찾아 가는 중.

투구역 앞 저렴한 숙소가 몰려있는 골목을 돌았다. 여러 숙소를 전전했지만 마음에 들거나, 가격이 싼 곳은 보이지 않았다. 연말이라 방이 꽉 차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골목길을 한 시간쯤 전전하다가 twin bed, bathroom inside를 100,000 루피아에 얻었다. ISTI 라는 곳. 



음... LP를 안 봤다. 봐도 별 무소용이라 그냥 발로 뛰는 형편. 게스트하우스 주인장과 대화를 하는데 숙소에 묵고 있던 일본인 아가씨 둘이 옆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주인장은 지금 쁘람바난에 가면 늦을 꺼란다. 오후 다섯시면 돌아오는 버스 타기가 힘들고 연휴라 관광지인 그곳에 사람이 지금 엄청나단다. 한숨... 아닌게 아니라 오는 길에 본 족자 시내는 엄청난 차량과 인파로 미어터졌다. 

주인장에게 여행사 추천을 부탁했다. 대부분 여행사들의 투어 가격이 비슷하지만, Sosro tour가 수익 일부를 떼어 지역 사회에 환원(기여)한단다. 일본 여자애 둘은 각자 따로 와서 족자에 장기 투숙 중이다. 특별히 어디 돌아다닐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난 지금 투어 예약하러 가려는데 같이 가겠어요? 물으니 어물어물한다. 하긴 나 같은 아저씨랑 누가 같이 가고 싶겠어.

미로같은 숙소골목을 돌아 소스로 투어에 찾아 가서 투어 상품을 찾아봤다. 아가씨가 친절해서 이래저래 여러 가지 얘길 나눴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끄라톤과 따만사리를 구경하고 내일 하루 날 잡아서 보르부두르와 쁘람바난 투어를 하는게 낫단다. 디엥고원은? 투어로 가지 말로 근처 도시에 하루 묵으며 1박 2일 정도로 가는게 좋다 -- 투어 비용도 비싸고 하루종일 차만 탄단다. 아가씨가 추천한 투어에서 아침식사를 뺀 것으로 예약했다. 히죽 웃으며 말한다; 그래요 식사는 숙소에서 주니까 필요없죠. 내가 묵은 숙소는 식사 대신 무한 리필 차만 준다. 투어 가격은 60,000rp. 보르부두르 입장료 120,000 + 쁘람바난 입장료 105,000. 한 방에 285,000루피아를 썼다.

Jalan Malioboro(말리오보로 거리)의 인파로 붐비는 상점들. 연말연시 탓인지, 아니면 족자카르타가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서인지 하루종일 인파로 북적거렸다.

박물관과 kraton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숙소거리에서 약 1.6km 정도. 인파로 미어터진 Jalan Malioboro를 걷다가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사람이 방글방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반겼다. 지금 가봤자 kraton이 문을 닫았을 꺼란다. 영어가 유창하고 사람 좋게 생겨서 한 동안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하는 어떤 바틱 전시장에 가서 훌륭한 예술품을 감상하라는 것. 바틱에 관심이 없어 그냥 가겠다고 했다. 아까 듣기론 끄라톤은 그래도 따만사리는 그냥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고 들었다.



마스지드에서 기도 중인 사람들. 손과 발을 씻고 신발을 마당에 벗고 마스지드에 들어갔다. 기도할 시간. 같은 이슬람 국가인 옆 나라 말레이지아와도 사뭇 다른 내부 분위기. 마치 흔한 동남아의 불교 사원 분위기랄까...

끄라톤은 문을 닫았다. 배가 고파서 자리를 접고 떠나려는 미 아얌 포장마차를 잡아 음식을 시켰다. 맛 없다. 마스지드에 들러 손발을 씼고 잠시 쉬다가 따만사리로 가니 자칭 경비(security)라는 친구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더니 날 안내해 주겠단다. 혼자 가면 길을 잃는다나? 돈을 줄 수 없다고 하니 무료란다. 한 눈에 봐도 삐끼인데 이렇게 아는 척 해주시니 고맙다. 난 삐끼가 없으면 여행이 안 되는 타잎이라서...

삐끼의 아버지는 끄라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government officer)인데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족자에서 심하게 존경 받는 술탄을 위해 봉사하고 있고(공무원이?) 엄마는 와양극 가수란다. 자기 집은 따만 사리 옆에 있단다. 

그림자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을 만드는 장인. 버팔로 가죽에 세공


따만사리의 목욕탕. 술탄의 부인들이 여기서 목욕.

길을 잃기 딱 좋은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술탄의 목욕탕을 구경하고 골목 어귀의 kakilima에서 과일을 사서 나눠 먹었다. 까끼리마는 다섯(lima) 다리(kaki)라는 의미로 노점의 두 바퀴와 스탠드, 그리고 주인의 두 다리를 뜻한다. 나시 고랭, 미에 고랭, 박소(bakso, baksu), 과일 등을 파는 간단한 노점상인데 인도네시아 어디 가나 널려 있다. nasi는 rice, mie는 noodle, goreng은 볶았다는 뜻. 논에서 자라는 벼는 padi라고 부르고 시장에서 파는 쌀은 beras, nasi는 찐(끓인) 쌀.

따만사리의 미로같은 골목길을 가다가 만난 과일장수 아저씨. 1달러 정도(10000rp)면 한끼 식사 대용으로 열대 과일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삐끼가 족자에 왔으니 Nasi Gaduk을 먹어 보란다. 한참 친절하고 싹싹하게 군 다음 가족이 운영한다는 바틱 매장에 나를 데려갔다. 자기 친형님이란 분이 나와(그럴 리가 없겠지만) 물건을 이것저것 보여주신다.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지만 바틱이나 그림자 연극 소품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형님이란 사람은 하지만 왜? 왜 물건을 안 사냐? 이렇게 훌륭한데? 라고 의아해 하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눈으로 찰칵찰칵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찰칵찰칵. 조카, 아우가 운영하는 다른 매장을 두어 군데 더 돌며 찰칵찰칵 눈으로 사진을 찍는 시늉을 하니까 삐끼는 실망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가이드해 줘서 고마웠다.

길 잃은 미아처럼 두리번거리며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따만사리 근처 어딘가에 새시장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새소리를 따라 가니 여러 명의 심사위원이 새장을 하늘에 매달고 맵시와 울음소리를 듣고 새를 품평하고 있다. 새 주인들은 새들을 북돋아 자기가 키우는 새들이 좀 더 아름답게 짖도록 촉구하고, 구경꾼 무리가 미소띤 얼굴로 광경을 바라본다. 한 켠에는 까끼리마에서 박소를 팔고 있다. 한가하고 기분 좋은 광경이다. 

지나가다 본 인터넷 가게(wartel). 30분에 보통 2000rp. 정도, 1시간에 3000~4000rp 가량인데, 여행자 거리에서는 시간 당 7000~10000rp 사이. 256 Kbps ADSL 라인이라 속도는 어느 정도 나온다.

왕궁 앞 광장으로 천천히 걸었다. 놀이기구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장터에 널린 자자난(길에서 파는 여러 종류의 간식꺼리를 총칭)을 몇 개 사 먹었다. 하나당 2000~4000rps. 시골 장터 구경하는 기분. 티셔츠 하나가 10000~20000rps. 품질이 조악. 단기 여행이라 굳이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놀이터에서 파는 잡다한 간식꺼리들(대개 0.5달러 미만)을 주워 먹으며 한가하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70~8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도 21세기다.

해 질 무렵 동네 한 바퀴 도는 기분으로 말리오보로 거리를 벗어나 크게 외곽으로 걸었다. 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어제처럼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1차선 도로에 한데 뒤엉켜 심한 교통체증으로 정체되어 있다. 가는 길에 과학관으로 보이는 건물을 바깥에서 구경했다. 


족자카르타(Yogyakarta)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고적지이자, 문화예술의 중심 도시. 한낫 신호등 제어기에도 까꿍 괴물같은 수묵 그래피티를 그려놨더라. 그 때문에 도시가 지저분해 보였다.

말리오보로 거리의 한 복판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Mal Malioboro) 꼭대기 층의 food court에서 박수 세트 메뉴를 주문. 1층에서 바비걸 경진대회가 벌어졌다. 조그만 아이들이 저마다 미를 뽐내며 날카롭게 짹짹 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거리에서 먹는 음식보다 현저하게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삼켰다. 테이블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카운터에서 재떨이를 들고와 딱히 할 일도 없고 담배 한 대 빨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쁘람바난과 보르부두르 유적지에 관한 책을 사려고 쇼핑몰 지하의 서점에 들렀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서점만한 곳이었고 유적지에 관한 책은 없었다. 지하에 있는 수퍼에서 내일 아침 꺼리와 맥주 따위를 사고 거리에서 안주로 먹을 간식꺼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비에 젖고 땀에 젖고 먼지와 분진으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옷가지들을 모아 빨래를 하고 맥주를 들이키며 일정을 점검했다.

가져온 전자항공권의 날짜를 보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마침 일 층에 앉아 있던 주인장에게 물어 근처 인터넷 까페를 찾아갔다. 떠나기 전날 밤, 웹질을 하다가 아무 생각없이 12/31 Denpasar(Bali) to Jakarta 항공권을 덥썩 산 생각이 났다. 일정이 꼬여 디엥 고원에 가는 여정을 포기했음에도 자카르타에서 족자행 교통편을 구할 수 없어 하루를 보낸 덕에 발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로 돌아와서 자카르타에서 하루 묵으며 관광하려던 계획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냥 발리에서 1/1 아침이나 점심 비행기(라이온 에어편?)를 타고 자카르타로 가서 1/1 밤 23:30에 출발하는 자카르타 to 인천 행 비행기를 타면 된다. 

옵션은 넷이다. 만날 이런 저런 기획을 하다보니 옵션이 이렇게 많을 땐 왠지 기쁘다.

  • 라이온 에어 항공권의 스케쥴을 12/31에서 1/1로 변경. 
  • 가루다 인도네시아의 귀국 항공편 스케줄을 12/31로 하루 댕기기.
  • 그게 안되면 라이온 에어 항공권을 환불하고 1/1 다른 항공편으로 자카르타로 간다. 연휴인데 가능할까?
  • 그마저 안되면 라이온 에어 항공권을 환불하고 인천행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편을 jakarta to incheon에서 denpasar(bali) to incheon으로 변경한다. 생각해보니 가루다 인도네시아에 출발지 변경을 문의했었고 답변을 준다고 했는데 답변이 없었다. 바빠서 다시 연락할 틈이 없어 떠나기 전 날 밤 갑자기 생각나서 백업으로 라이온 에어 항공권을 구입한 것이다  -- 요새 하도 바빠서 경황이 없다.
인터넷 가격이 30분에 5000rps로 비싼 편. 256K ADSL 라인은 꽤 속도가 잘 나와 옆 자리의 여행자는 헤드셋으로 스카이프 음성 통화 중. windows server 2003이 설치되어 있다. 한글을 볼 수는 있지만 korean ime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한글 타이핑은 할 수 없다. 예전에는 인터넷 까페이 들르면 카메라 사진을 업로드하고 사진을 올리는 동안 한글 설치한 다음 블로그 따위를 썼다. 와이파이 되는 휴대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간단히 올리면 되니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이온 에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환불 신청하는 메뉴가 없다. 어떡하지? 내일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가자. 18시간 동안 불편한 버스를 타며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족자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숙소로 돌아가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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