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ta

여행기/Indonesia 2011. 12. 30. 12:00
아침에 깨보니 6.30am. 세수만 하고 어제 사온 물을 마셨다. 짐을 정리하고 내려와 아침으로 토스트, 계란 프라이, 커피 따위를 먹고 마셨다. 어제 먹은 팬케잌과 더불어 정말 맛이 없다. 아침 식사를 안 줘도 좋으니까 방값이나 깎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7.30am쯤 숙소를 나와 Monkey Forest를 향해 걸었다. 도착해 보니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입장료를 받는 사람이 아직 출근하지 않은 듯. 무료 입장.

인디애너 존스 분위기가 나는 작은 사원과 밀림이 펼쳐졌다. 원숭이들이 코코넛 껍질을 깨먹고 뛰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9.10am. 걸었다.

왕궁에 가서 구경할 것도 없는 내부를 하릴 없이 돌아다니다가 북쪽 길을 슬슬 걸어가는데, 앞서가던 서양남녀가 갑자기 서로를 부등켜 안더니 키스를 한다. 보기 민망해서 돌아섰다. 이건 뭐... 우붓에서 열렬한 사랑을 찾아낸 또 다른 쥴리아 로버츠?

어제 못갔던 Dewi Warung이 맛있다길래 그 식당을 찾으러 Jl. Hanuman까지 갔다가 길을 잠시 잃고 헤멨다. 우붓의 중심가는 부띠끄, 마사지샵, 채식주의자 카페, 여행사가 전부인 것 같다. wifi 접속이 안되도 wifi를 켜놓고 있으면 GPS assist data를 인근 wifi ap로부터 다운받아 비교적 빠르게 위치를 찾아주어 여행이 그 동안 편했다.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Dewi warung에는 wifi가 없었고 전반적인 메뉴가 어제 밥을 먹었던 warung lokal보다 약간 비싼 편. 그래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문이 잠겼다. warung lokal에 다시 들러 mie goreng을 시켜 먹었는데 어제 먹었던 나시 고랭과는 달리 영 아니었다. 그래도 무성의한 인스탄트보단 나았다. 어떤 외국인 라면 전문가는 내가 자카르타의 잘란 작사에서 먹었던 인스턴트 미에 고랭을 세계 10대 라면 중에 하나로 꼽았다. 그 미원 덩어리의 맛대가리 없는 비빔면이 뭐가 그리 맛있다는 건지 믿겨지지 않는다. 이 나라 저 나라 온갖 라면을 섭렵해 본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 라면은 면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자국의 면음식을 단순히 인스탄트화한 것에 불과하다면 한국 라면은 제2의 창조라 불러도 될만큼 독자적인 음식 장르다.

마누라와 딸과 skype로 잠시 통화했다. 딸애는 어젯밤에 아빠가 보고 싶어 자다 깨어나 흑흑 울었단다.

11.30am이 다 되어 숙소에서 도착해 샤워하고 체크아웃했다. 관광 안내소의 벤치에 앉아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방금 관광 안내소를 찾은 여자는 숙소의 옆 방에 묵고 있던, 혼자 여행 온 인도네시아 아가씨였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마치 생쥐처럼 금새 방 안으로 들어가 숨던... 아침에 주인 할머니의 손자로 보이는 정신지체아 소년이 내게 집적거릴 때(사실 우리 둘이 놀았다) 옆 방의 문이 달그락 거리며 잠기는 소리를 들었다. 숙소에는 낮이면 마사지를 하는 젊은 아가씨들이 계단 맡에 걸터 앉아 있었다. 손톱을 손질하고 매니큐어를 만지작거리며... 마치 음란한 마사지 샾이라도 되는 것처럼(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미소 한 번 없이 그들을 스쳐갔다. 친절하지만 피곤에 절은 것 같은 표정이 얼핏 얼핏 지나가곤 하던, 서빙을 보고 방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던 점원들. 나이를 먹어도 영민한 눈동자가 반짝이던 주인 할머니. 맛없는 음식, 젤라또 가게에 길게 늘어선 관광객들, 길을 가득 메운 차량, 서양 여행자가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차와 오토바이 사이에 다리가 끼어 있는 걸 빼냈다. 시장에서 3,000rps란 대단히 저렴한 가격에 타이거 밤을 팔던 아줌마에게 깍아 달라고 말했다가 혼줄이 나기도 하고, 한국인 신혼여행자들이 북새통의 시장에서 뭐 사갈만한 거 있나 둘러보는 모습을 보았다. 시장통의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이다가 과일을 내게 하나 주며 먹어보라던 아줌마의 웃는 얼굴, 싸롱을 입지 않고 시내의 사원에서 기다란 장대를 들고 과일을 따던 아저씨, 공사중인 사원 앞에서 담배를 바꿔 피웠던 아저씨 등등이 생각났다. 우붓에는 혼자 온 여자 여행자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여기 며칠 더 머물렀어야 했다. 조그맣고 사건 당시엔 금새 잊어버렸던 인상들이 광합성하는 수초들의 잎사귀 뒷면에서 풀풀 피어오르는 산소방울처럼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관광안내소에는 에코 트래블을 주관하는 무수한 여행사들의 팜플렛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MTB를 타고 논 사이로 난 길을 달리고 건강식이라는 채식을 먹고 마시며 로컬리 마을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놀다가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잔다던가... 차가 도착했다. 운전사가 내가 들겠다는데 굳이 짐을 들어 차로 옮겨줬다.

차량은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인도네시아 여행자가 한 명 탔다. 그는 자와섬에서 전국일주 중이다. 길거리에 트렁크를 놔두고 우두커니 앉아있던 미국인 여자가 두 번째로 탔다. 승객은 그걸로 끝이다. 두 명 이상이 안되면 미니버스를 운항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세 명이라 참 다행이란다. 이게 과연 5만 루피아나 주고 탈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냥 로컬리들이 타는 미니버스를 타고 덴파사르 북부 터미널에 갔다가 거기서 쿠타행 미니버스를 다시 타는게 낫지 않았을까? 난 내가 그렇게 내켜하지 않았던, 여행사나 전전하는 서양 여행자처럼 돌아다니는 중이다. 차는 이제 시작된 교통체증 속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미국 여자는 덥다고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탄소 풋프린트를 적게 남기려고 에어컨을 일부러 고장낸 것 같다고, 인도네시아 어디가나 에어커이 맛간 차들 뿐이라고 말하니 자기는 발리에만 왔고 자와 섬에는 안 가봤단다. 

애리조나 출신. 친구가 내일 쿠타 해변에 도착하고 자기는 해변 근처의 어떤 호텔을 미리 예약해 놓았단다. 뻥 같다. 혼자 다니는 것 같다. 운전사는 지금이 성수기라 쿠타 해변에서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떻게 되겠지. 이번 여행은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저번 미얀마 여행처럼 가이드북에 의존하지 않고 그저 포인트만 잡고 되는대로 돌아다니는 중. 졸립다. 땀을 흘리며 늘어진 채 선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했다. 

인도네시아 배낭 여행자는 미국인 여자와 어디가 더 더운지 경쟁했다. 애리조나는 무려 150F 란다. 다만 건조해서 여기처럼 덥지는 않다고... 운전사가 숙소 위치를 묻더니 자기는 쿠타 해변 앞에 차를 세우는데 거기서 미국 여자가 예약한 숙소까지는 꽤 거리가 멀다고 원한다면 웃돈을 주면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200,000rps. 놀랍군. 휴대폰으로 구글 지도를 띄워 그 숙소를 찾아보니 쿠타 해변에서 약 3km 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더워서 저 거대한 트렁크를 질질 끌며 가긴 무리같기도 하고... 운전사가 장사하겠다는데 참견하기 뭣해 입을 다물었다. 

지긋지긋한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던 쿠타 해변에는 3pm, 그러니까 3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참 희안한 것은 그때까지 대화하는 동안 운전사와 인도네시아 여행자는 내가 인도네시아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단다. 운전사는 내게 행운을 빌어줬다. 숙소를 얻길 바란다며.

내린 곳은 Jl. Legian 남쪽 입구. 레지안 길은 쿠타해변로와 남쪽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가량 주욱 평행하게 이어진다. Kuta 해변은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3K중 하나로 불리던 곳이다. Kaosan, Katumandu, Kuta. 약 20년 전 배낭여행자들의 성지같았던 곳. 

행운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저가 숙소가 몰려있는 Poppies Gang이란 귀여운 이름의 길거리 근처에 있는 거의 모든 숙소가 full이었다. 거의 모든 숙소란? 골목이 하도 복잡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모든' 숙소에 들러보진 못했다. 어쨌든 배낭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차츰차츰 북쪽으로 떠밀리듯 이동하다 보니 쿠타 해변의 북쪽 끝까지 올라왔다. 250,000짜리 fan room, 250,000짜리 a/c룸 등을 지나쳤다. 더 뒤져보니 150,000짜리 fan 룸이 있다. 삐끼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삐끼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찾기도 했다. 지친다. 비싸면서도 방이 너무 구질구질해 북쪽으로 더 올라가니 150,000짜리 그럭저럭 괜찮은 방이 나왔다. 협상이 안 된다. 내일 예약이 걸려 있단다. 그냥 150,000에 잡았다. 숙소 잡는데 무려 두 시간 가량을 보냈다. 어느새 5pm. 피부에서 소금이 벅벅 긁힌다. 짐을 내려놓고 일단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마치고 짐을 정리한 후 해변으로 걷다가 외국인이 현지 여자애를 오토바이로 치는 사고를 봤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이를 병원에 보낸다. 어제 우붓에서도 사고를 봤다. 심한 교통 체증에 자동차 두 대 사이를 무리하게 헤집고 가던 오토바이가 끼었다. 서양 아줌마를 오토바이에서 빼내고 다리를 살피니 멀쩡했다.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긁힌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연신 살폈다. 자동차 운전수들은 괜찮다며 두 사람을 길섶으로 옮겼다. 

해변은 지저분했지만 surfing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하고 싶다. 한 시간쯤 눈여겨보니 어떻게 타는지 알겠다. 서핑을 할 처지가 아니라서 심난. 해변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일몰을 보았다.

야시장을 찾아갔다. 새우 버터구이 30,000, 빈탕 맥주 큰 병 30,000. 밥 3,000. 총 63,000 밥을 먹었다. 새우는, 달랑 새우만 기름에 튀겨 가져오더라. 홛앟나 나머지 하하 웃고 말았다. 맥도널드 세트 메뉴가 35,000인데 그것보다 더 비싸면서 맛은 별로.

Kuta square에서 뭐 쇼핑할 것 없나 뒤지다가 아내와 내 t-shirt를 카드로 긁었다. 하루가 심심하게 가 버렸다. 내일은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matahari 내부의 super에서 몇 가지 선물꺼리를 장만하기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mini mart에서 차 7,500짜리를 하나 사서 마시며 wifi를 좀 했다. 왠지 재미가 없다. 

12월의 마지막 날 아침, 7.30am. 딱히 할 일도 없고 checkout time이 11am이라 애매해서 10.30am까지 밍기적거렸다. 드라마 두 편 보고 짐 정리하고 샤워. 나가는 길에 숙소에 짐을 맡기고 해변에 가려니 비가 온다. 살살 온다.

오늘은 쇼핑하는 날이다. 아내는 cinger chocolette가 있으니 사오란다. 까르푸를 찾으러 갔다가 못 찾았다. 엉뚱한 곳에서 길을 헤멨다. discovery mall에 들러(배가 고파서) 점심 세트를 시켰는데 28,000 짜리가 간에 기별도 안 가고 흡사 사기당한 느낌. 엿같은 식사. 까르푸 대신 mall galeria를 찾아 출발. 

일단 아까 먹은 점심이 부실해서 다시 밥을 먹었다. es teh 5,000, nasi soto ayam 10,900. 훨씬 낫다. 샌들 때문에 난 발의 상처가 아파서 밴드에이드 5,000 구입. 인니인으로 안다. 하긴 foot stall에서도 그랬고 인니 여행 며칠 후부터는 죽 인니인으로들 알았다.

수퍼에서 가면 2개를 각각 15,000에 구입. 달걀 부침은 30,000.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가 지루해서 ace shop에서 집 꾸미기 용품들을 구경. 우리니라와 달리 직접 집을 꾸미는 사람들이 많은 지 싱크대부터 욕조까지 온갖 것을 다 판다. MTB는 최고가가 한화 60만원 가량.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최근 인니에는 자전거 바람이 불고 있다. 

여전히 비가 와서 mall galeria에 들러 duty free shop에 갔는데 기념품 단가가 너무 비싸 살 엄두가 안 났다. tiger balm이 2.5$, 우붓 시장에서는 3,000. 공시 환율이 9,600인데 여행자 거리에서는 9,300~9,500까지 봤지만 갤러리아 환전소는 8,800. 갤러리아 앞에서 모터바이크를 타고 가던 서양인이 걸렸다. 벌금이 백만 루피아라던가?

꾸따 해변을 향해 걸었다. 여전한 바다. circle k에서 맥주 한 병 16,000 사들고 wifi 사용.wifi 속도가 느려 별로 할만한게 없다. 옆 자리의 십대 애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놀고 있다. 

숙소로 가서 샤워하고 짐을 찾았다. 길리언 도로를 따라 내려 가다가 마타하리의 수퍼에 들러 쇼핑하기 전에 저녁을 먹기로. 빈탕 맥주 한 병, 야채 샐러드, 포모도르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132,250이 나왔다. 카드로 긁었다. 뭔가 이 곳 해변은 나하고 코드가 안 맞는다.

마타하리 수퍼에서 물고기(60,000) arak, 젓가락, 초콜렛 따위를 사니 552,750. 왠지 쇼핑이 마음에 안 든다. 길거리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 소음 공해다 싶을 정도로 골목마다 쾅쾅 울리는 음악. 

공항까지 걷는다. 중간중간 인도에 구멍이 나 있다. 

Tuban 길에 있는 Krisna Oleh-Oleh Khas Bali 라는 가게에 우연히 들렀다. 9.00pm. 대단한 곳이다. 정신없이 쇼핑. 그래도 286,000 밖에 안 들었다. 기운이 나서 씩씩하게 걸었다. 하늘은 온통 폭죽의 불꽃이고 매케한 연기 속에서 사람들은 새해를 축하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난 것 같다.

걸어서 공항에 도착하니 9.40pm, 세수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출국 절차를 마치니 10.10pm. launge에서 유로 launge(100,00)에 들어가 죽치고 앉아 과자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여행이 끝났다. 

수원은 여전히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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