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Mine

여행기/Bolivia 2003. 6. 6. 14:31
뽀또시에 도착하자 마자 한 일이 은 광산 투어 신청이다. 주인장은 태권도를 하고 있었다. 메달과 상장 따위를 보여준다. 태권도를 할 줄 알고 해서... 10 Bs 깎았다.

숙소에 샤워실이 하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샤워 하러 가니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의 여자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수도 꼭지 만지면 감전된다고 충고해 줬다. 감전 당했다. 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220V적인 떨림은 아니었다. 고작 48V 가량쯤? 그럼 당근 누전이지.

투어하러 가니 운 좋게도 투어 참가자가 나 밖에 없다. 다른 팀은 모두 떼거지였다. 광산에 가기 전에 광부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한다나... 이왕 해 주는 거 좀 비싸더라도 10 Bs(1.5$) 하는 다이나마이트를 샀다. 다이나마이트를 만지작거리니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고... 흐뭇하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야릇한 기분이... 어릴 적에 폭탄을 좋아했다. 군용 매뉴얼을 참고해 직접 만들어서 로켓을 날렸다.

가이드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가이드보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해서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은 광산은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사위원회가 몇 차례에 걸쳐 광산을 폐기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지만 8000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 한 정부는 거의 아무런 수익이 없는데도 광산을 가동하고 있었다. 사실 이 나라 처지에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광산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모르겠다.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18번 들렸다. 쿵...쿵... 진동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비좁은 광산 안에서 방금 전까지 쾌활하던 가이드는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이나마이트가 터진 쪽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천정에서 우수수 흙자갈이 쏟아져 내렸다. 가이드는 정말로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는 나가자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광부들의 신 앞에서 담배 빨면서 97% 짜리 알코올을 홀짝 홀짝 마시고 입에 불 붙이고 장난하면서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말이 투어지 그는 내 말벗이었다. 오랫만에 영어 할 줄 아는 현지인을 만났겠다...


겁을 먹은 그가 주변 광부들에게 물어보니 연 이틀을 쉰 건너편 광부들이 원래는 터뜨리지 말아야 할 다이나마이트를 오늘 한꺼번에 터뜨리고 있단다. 저번 주에 그러다가 한 명 죽었다. 말을 건네준 광부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은 중단된 상태였다. 누군가 오늘 일은 종쳤다고 말했다. 다이너마이트가 너무 많이 터져 갱도에 먼지가 가득 찬 상태였다. 영 안 좋아 보여서 나왔다. 그래도 3시간은 채웠다.

작년에 광산에서 30명 죽었다. 작업 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만도 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정과 망치, 그리고 수레 정도였다. 갱도를 받치는 부목도 없었다. 워낙 파대서 발을 구르니 바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광산이다. 오리지날 자연산 석면을 보았다. 그거 만지다가 피부암으로 맛이 간 사람들이 좀 있단다. 어떤 광부가 기념으로 은광석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가이드가 말하길 그는 갱도에서 25년 동안 '살아 남은' 베테랑이란다.

투어가 끝나고 길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했다. 은광석을 만지작거렸다. 햇살 아래에서 약간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베테랑이라... 난 33년 동안 비좁은 갱도처럼 답답한 세계에서 질식하지 않고 살아 남은 베테랑 2.0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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