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a Cruz

여행기/Bolivia 2003. 6. 8. 16:27
Potosi -> Sucre -> Santa Cruz. 20hrs

시계가 맛이 가서 10.30am에 12.30pm인 줄 알고 차를 탔다. 4000m에서 420m까지 떨어졌다. 열대 도시가 의외로 을씨년스럽고 춥다. 한 시간 반을 숙소를 찾아 헤메다가 시장 한복판의 숙소를 값싸게 얻었다. 6시간쯤 걸었는데 다리에 피가 몰려 쑤셨다. 고도차 때문일까. 그 전에는 자다가도 숨쉬기가 힘들어 헉헉 거렸다.

점심때 아마존 생선을 먹었다. 이빨이 흉칙하게 돋은 80cm 짜리를 토막낸 것이었다. 튀긴 생선을 고추 간장 절임에 찍어 먹었다. 이 맛이지.

그 동안 못한 얘기를 하자. 아니, 안 한 얘기를.
그러고 보니 중남미 히피 얘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구나.

히피들아... 잘 지내고 있냐? 내가 만난 히피 중 단연 으뜸은 라 빠스에서 보고 오루로에서도 본 미국인인데 50대 아저씨였다. 네팔에 등반하러 갔다가 친구들이 그를 버려두고 떠나서 어쩌다가 놀러 갔던 파슈파티나트에서 사람을 만나 그를 찾아 돌아 다니다가 한 구루(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와 인연을 맺었다. 몇 개월 산 속에서 매일 매일 스승으로 부터 그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옮아 온 spritually fucking 벼룩을 잡으며 지냈다.

한 번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카트만두 시내에 갔다가 곤드레가 된 이후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그의 스승이 너는 나를 찾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단다) '길'을 찾다 찾다 지쳐서 울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단다. 가 보니 자기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마누라와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서 자동차 한 대 끌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니(차가 고장나서 나중에는 걸었다.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어느새 비자도 없이 두 나라 국경을 넘었다.

경찰이 그를 잡았고 용케 대사관에 끌려갔다가 거기서 여행 서류를 만들어 돈 한 푼 없이 인디헤나를 따라 트럭을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방황했다. 여행자들이 그를 도와줘서 과떼말라에서 2년쯤 있다가 돈이 좀 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한 것이란다. 도저히 백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검은 피부, 지속적인 영양 불균형 상태, 발달한 폐...

그를 처음 만난 라 빠스에서 내가 똥 빠지게 찾은 숙소에서 체크인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누굴 닮았다면서 말을 걸어왔다. 자기가 네팔에 있을 때 어떤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10년 넘게 수도를 하고 있다고. 수행? 글쎄다... 구루한테 영혼을 삥 뜯기고 있었을 것 같은데. 야금야금.

그가 가르쳐줬다. 당신 이름이 루크야? 응 그런데? 루크...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을 껄? 응? 루코라고 하지 않아? 아...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왜 내 이름을 여기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만 하면 그들이 깔깔 웃어대는지 평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묻고 있었다. 루코는 말이야... 에스빠뇰로 '미쳤다'는 뜻이야. 아... 그랬군. 6년을 넘게 돌아다녀서 꼬라지는 거지 같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간신히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미친 놈이었구나...

그를 오루로에서 다시 봤을 때, 나는 재키 찬이라는 맛없는 중국집에서 한 식사로 기분이 상해 공원에 앉아 시발시발 거리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 '어이 루코'(어이 미친놈) 이라고 말을 붙였다. 그는 신지학(그런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괴상한 학문이 있다)에 조예가 깊어서인지 나한테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공원에서 요가 생쑈를 하며 애들 푼돈을 뜯고 있었고 난 졸지에 그의 친구가 되어 원숭이쇼에 동참하며 코카잎을 삥 뜯겼다. 코카잎으로 피리를 분다. 재밌다.

내가 네팔에 다시 갈 꺼라니까 너는 나와 '인연'이 있으니 다시 만날꺼다 라고 말했다. 그의 스승처럼 말하고 싶었다. 비틀비틀(zigzag) 걷기 때문에 나를 똑바로 찾아올 수 없을 꺼라고. 그가 그날 내게 준 가르침은 '오늘 벌지 못하면 끝장이야' 였다. 그는 내가 묵고 있는 뜨거운 물 펑펑 나오는 숙소같은 곳은 잡을 엄두를 못 냈지만 그렇다고 돈을 꾸지는 않았다. 일견 비장미가 넘쳐 보이면서도 거지로서 지녀야 할 최후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중남미에서 만난 히피 중 유일하게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최신식 히피가 아니었다. 올드패션인 그의 이름은 에드먼드인데 언젠가 그 홀쭉한 180cm의 대머리를 만나면 오루로에서 '미친놈'에게 삥 뜯은 것을 갚을 때가 되었다고... 지금쯤 곧은 철길을 따라 비틀비틀 걷고 있지 않을까?

멕시코의 유스 호스텔에서 만난 노트북 히피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만난 사람들의 대화를 끊임없이 노트북에 기록했다. 천천히 말하라고 강요했다. 왜 기록을 하냐고 물으니까 그게 자신의 삶을 찾는 실마리라고 말했다. 자기가 타인과 하는 말을 관조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그의 영혼의 실마리는 검색엔진에서 찾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 같아서 구글을 사용해 봤냐고 물었다. (그런 류의 nerd들은 구글광이다) 그는 한참 딴 소리를 하다가 자신이 '인도에서 제작된 허접한 공산품'임을 고백했다 -- 인도에서 2년, 인도 정부에서 그에게 나가달라고 말했단다. 추방이다. 15년 전 얘기니까 인도에서 한참 바퀴벌레같은 히피들을 박멸할 때 얘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무래도 드러그 트래피킹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고아, 파티, 영적이고 때로 육체적인 관계들.

중남미 히피 커넥션의 핵심은 인도에서 영혼을 찾아 헤메다가 영혼이 1/3만 발견되어 섭섭한 나머지, 남은 영혼을 찾으러 중남미로 넘어온 케이스들인 것 같다. 그는 내가 만난 히피 중 '유일하게' 산 스크리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대학교수 쯤 되는 줄 알고 여러 차례 그를 추켜세우며 추궁해 봤지만 전력을 말해 주지 않았다. 말하자면 신비에 쌓인 보잘 것 없는 히피였다.

그런데 산 스크리트 어를 해독하는 히피를 본 적이 있나? 난 처음 봤다. 내 생각이지만 산 스크리트 어를 해독하면 깨달음이 백만 배 쯤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에게 여자 히피들과 성관계를 가져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 점이 늘 관심꺼리였다. 그는 나를 잠깐 노려보다가 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에 뒤가 캥겨서 그에게 맥주를 한 병 사 줬다. 나는 두 병을 마셨고 그는 한 병을 비운 후 더 사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 동안 그의 노트북을 구경했다. 폴더에 내 이름은 있었는데 다른 사람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열 받았지만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이 자식 거짓말을 하고 있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노트북을 열어 자기가 기록한 것들을 조금 보여줬다. 내가 잘못 알았다. 다른 파일들이 있었다. 그는 나를 히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도 짧고 깔끔했으며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차 있다고 믿는 편이었고 영적인 것들과는 아주아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전생에 영적으로 지독한 샌드플라이한테 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점 때문에 내게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걔가 내 맥주는 안 사왔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날 시끄러운 멕시칸 청년과 브라질 청년이 나가서 춤이나 추자고 꼬시고 있었고 나는 몸치인 것이 좀 쪽팔려서 화장실에 짱박혀 똥을 오래 누었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났다.

우리는 email 주소를 교환했는데 두어 번 안부인사를 묻고 감감 무소식이다. 그 후로 그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왠지 그랬다. 산 스크리트어는 죽은 언어고 죽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죽을 꺼라고 생각했다. 그게 주술과 마법이 죽은 이유다. email에서 그는 볼리비아로 갈 꺼라고 말했다. 내심 그를 볼리비아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꺼라고 기대했다. 그가 볼리비아에 와서 나를 만났더라면 우주 창생의 비밀을 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

그에게 '기록'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처럼 내가 그에게 한 말들을 시간을 두고 읽어보고 싶었다. 얼마나 헛소리를 많이 늘어 놓았는지, 내가 살아가면서 한 헛소리들의 두께를 보고 싶었다. 이 blog도 사실 헛소리였다. 여행하면서 얻은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적지 않았으니까. 적으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여기다가 구체적으로 적으면 어떤 그래피티가 나올까. 촘촘히 엮인 실이 아니라 스웨터를 만들 수 없는 잘못 짜여진 편직물에 비추어진 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이 더더욱 처절하게 드러나겠지? 그럼 슬프겠지? 슬픈 짓을 왜 하지? 그래서 슬퍼지지 않으려면 그런 짓을 할 생각을 걷어야겠지? 울컥.

하지만 어쨌든 사진에 사람을 찍지 않듯이 사람 얘기를 별로 안 하게 된다.

그나저나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어디서 거지같은 행색을 한 히피들이 똥에 꼬이는 파리처럼 많이 꼬였는데(전생에 팔자가 드센 증거) 히피 얘기라면 할 말 참 많다. 그들에게 나눠줄 네팔제 버팔로 뿔로 만든 피어싱 악세사리를 누군가에게 다 줘 버려서 그런 작자들을 만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도 히피를 만나면 재밌다. 영 우스꽝스러운 관광객이나 바쁜 여행자들 하고는 틀리니까. 하다못해 은하수를 보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순진한 인간들이라... 아무리 그들이 철판 깔고 행복 외에는, 인류의 복지 외에는 딴 생각 해 본 적이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하나가 되자는 허튼 소리를 늘어 놓더라도. 어쩌면 정서적으로 내가 그 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멕시코 마리아치 히피도 있고 처녀귀신처럼 생긴 할머니 히피도 있고... 그들은 내 영혼을 갉아먹기 위해 네팔이나 인도에서 화물로 붙인 것 같았다. 어째서 히피들은 하나같이 옴나마 시바나 자이구루 나부랑이 따위를
중얼거리며 접근하는 것일까? 신기하도다. 그리고 왜 나만 괴롭히고... 지랄이야.

볼리비아 제 2의 도시임에도 싼타 끄로스는 지극히도 볼 것이 없다. 마침, 토요일, 일요일에 걸려 문을 일찍 닫았다. 가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옷을 론드리에 맡겼다.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이틀을 버텨야 한다.

인터넷을 하고 밥을 먹고 공원에 하릴 없이 앉아 시간을 보냈다. 구두닦이가 내 신발을 닦아줬다. 1 Bs였다. 운동화를 닦을 수 있는지 몰랐다. 닦을 수 있었다. 까불까불 하는 구두닦이 녀석들과 시간을 보냈다. 오늘 밤에는 영화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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