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크루즈, 멕시코 시티, 엘에이, 도쿄, 지나친 도시들은 모두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왔다. LA에서 공항으로 갈 때는 심지어 Big Blue bus를 탔다.

멕시코 시티에서 엘에이로 갈 때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티켓을 발급한 로이드 아에로 볼리비아노 항공사에서는 자기들이 발급한 티켓이지만 항공사가 달라 연결편을 제공할 수 없다나? 세관을 통과해서 멕시코에 재 입국하여 다시 출국해서 짐 검사를 받고 비행기를 타라고. 흐음... 엿 먹어라. 한 시간쯤 델타 항공사와 나 자신에게 피차 기억하지 않았으면 싶을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 뜨기 바로 전에 보딩 패스를 손에 넣었다. 종이에 손으로 갈겨 쓴 것이었다. 산간오지에서 막 떠나려는 버스를 잡아 타는 분위기였다.

네 번의 항공기 이동에서 이번에 실험해 본 것은 과연 작은 가방에 칼을 넣고 공항 검색을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해냈다. 네 번의 검색 중에 걸리지 않았다. 테크닉은 간단했다. gps 리시버에 스카치 테잎으로 감아 붙이고 가방에 넣은 후 가방을 x-ray 검색대에 수직 방향으로 세워놓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칼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 대사관에 칼을 들고 들어간 이후 두번 째 쾌거였다. 미국 대사관에 칼을 들고 들어갔다라... 어째 말이 좀 으스스하군.

공항 면세점을 기웃거리며 살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맛이 간 디지탈 카메라를 대체할 만한 것을 사려고... 그러려면 일단 한국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격 정보를 알아봐야 한다. 면세점 가격이 더 비싸다. 그러다가 내가 호스팅을 하는 x-y.net이 시만텍 사이트 프로텍트 프로그램에서 블랙 리스트에 올라온 곳임을 알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 hotmail도 마찬가지였다. x-y.net에 perl 모듈을 좀 설치해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돌아온 답장이, 귀하 한 분을 위해서 설치해 줄 수가 없다나... 돌아가는 대로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LA에서 산타 모니카 비치에 하룻밤 묵었다. 하느라 했지만 그날 연결편은 오버부킹 된 상태였다. 계획에 없었으므로, 계획이 없었으므로 숙소 부터 찾아야 했다. 비지터 센터의 귀가 맛이 간 할머니에게 산타 모니카의 지도와 버젯 어코모데이션 리스트를 구한다고 얘기했다. 버젯 어커모데이션이 50불 부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헐리우드의 한인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가는건데... 해변의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리스트를 훌터 보았다. 잔디밭에는 노숙자들이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노숙할까? 비가 온다. 젠장할. 유스 호스텔이 하나 있다. 도미토리 31불. 5불 짜리 햄버거와 7.5불 짜리 영화티켓과 9불 짜리 점보 팝콘과 반스앤 노블스에서 산 두 권의 sf 등등등을 합쳐 70불을 하루 만에 날렸다. 산타 모니카 피어에서 멸치를 미끼로 쓰는 낚시꾼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만 잡는 것들이 시원치 않았다. 말로만 듣던 운동화 따위가 잡혔다. 거의 하루 종일 반스앤 노블스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렉 이건의 singleton은 참 싱겁고 영양가 없는 단편이었다.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니 10시, 도착하자 마자 전화는 딱 두 통 했다. 둘 다 받지 않았다. 얼씨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열쇠가 없다. 담을 넘었다. 냉장고 속에는 온갖 것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냄비가 없어서 프라이팬에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젓가락이 없어서 철사 옷걸이를 적당히 끊어 젓가락으로 사용했다. 그릇을 씻으려니 세제가 없다.

새벽 5시에 애니메트릭스라는 진부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워낙 진부해서 잠이 온 것 같다. 시차적응에 도움이 되는 영화같다.

방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망가졌으면 더 망가졌지. 컴퓨터의 os를 새로 설치하고 pda를 되살렸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뒷 주머니에 꼽고 머리방에 갔다. '언니'가 나를 기억했다. 파나미안 신성일 스타일은 그렇게 해서 잘려 나갔다. 샤워할 때 보니 여기 저기 벼룩에 물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벼룩에 뜯긴 자국이 사라질 때 쯤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겠지.

배낭을 탈탈 털어 모든 옷을 빨았다. Tuesday Island라고 적혀 있는 웃도리는 가끔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여행자들의 호기심꺼리였다. 모르겠는데? 라고 대답하다가 서 사모아 북부에 있는 작은 바위섬인데 일년 중 절반은 수중에 잠겨 있다 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걸 믿는 녀석도 있었고 그래서 로빈슨 크로소의 프라이데이 아일랜드의 배경이 되었으며 신밧드가 고래라고 착각한 섬도 그 섬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가 새끼에 새끼를 거듭쳐서 언젠가 미국이 핵폭탄 실험을 한 장소가 되었다가 원주민들이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공물을 바치던 섬이 되었다가 약 300년 전에 드디어 풀 한 포기가 돋아나기 시작했고 꽃게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바닷새가 태평양을 횡단하다가 쉬러 잠시 들르는 섬이기도 하고 펭귄도 있고(멕시코의 빠라까스를 방문한 후 추가) 해적들이 섬의 모습을 보고 달려 가다가 암초에 걸려 무수한 배가 침몰했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동대문 짝퉁 긴팔 웃도리에 새겨진 Tuesday Island라는 신비로운 장소가 탄생했다. 사실 그 Tuesday Island 라는 브랜드는 Thursday Island의 카피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목요일 섬은 어디냐고? 목요일 섬은 목요일 섬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다. 세상에는 몇몇 모험심이 강한 뱃사람들의 기억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하는 전설 속의 무인도가 일곱 개 있는데... 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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