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ilo -- bus 4hrs --> Kalibo -- minivan 2hrs --> Caticlan -- boat 15min --> Borcay

나는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아내는 7개월 전에 마지막 해외 여행을 마쳤다. 다시 말해, 게스트 하우스의 욕실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궁상스럽게 팬티와 양말을 빨아본 것이 적어도 7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호텔에서 '공짜'로 준다는 아침 식사를 챙겨먹기 위해 일어났다. 새소리가 들린다. 또 아침 7시다. 이러다가 아침형 인간들과 친구 되겠다. 해산물을 간절히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날짐승, 들짐승 류 따위가 나온 부페식 이침 식사는 실망스러웠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 하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에어컨 버스는 10시 20분에 있고 논 에이컨 버스는 15분 마다 있단다. 두 말 할 것 없이 논 에어컨 버스에 탔다. 값싸고 신선한 시골 공기를 흠뻑 마실 수 있고 서는 정류장 마다 떼거리로 버스에 올라와 물건을 파는 행상들이 있어 여러 모로 이익이다. 시골 버스의 또다른 장점은 서스펜션/쿠션이 상당히 안 좋아 심하게 덜컹이는 관계로 고급 버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전신 운동이 골고루 되고 내장도 함께 흔들려 소화 촉진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에어컨 버스 같은 고급 버스를 타면 쿠션이 너무 좋아 자세가 고정되어 졸다가 목이 아프다거나 허리가 결리고 배가 더부룩해 지는 등 건강에 안 좋다고 본다.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이니 만큼 이제는 시골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다.

네 시간 동안 평균 50kmh의 속도로 달려 칼리보에 도착했다. 칼리보는 예상했던 대로 썰렁한 도시였다. 물어물어 까띠끌란행 미니밴을 찾았다. 사람들이 다 차야 출발한단다. 시간이 남고 승객이 더 생기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아 보여 아내를 놔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초우 킹의 쇼 윈도우에 달싹 붙어 상당히 맛있어 보이는 곤지(congee)를 군침을 흘리며 쳐다 보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처럼 필리핀에도 중국음식점이 많았다. 언젠가는 저 곤지를 꼭 먹고 말겠다. 미니밴 터미널로 돌아오니 운전수, 차장, 승객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띠끌란 항에는 한국인들이 우글거렸다. 배표가 17.5페소인데 항구 이용료가 20페소라니 웃기잖아?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에서나 보던 아우트리거 보트(out-trigger boat)를 탔다. 모터가 달려 있다. 여기저기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 20분쯤 뱃전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섬에 도착했다. 이런 저런 코티지, 팬션,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 뒷편에 있는 코티지를 잡았다. nipa hut이라고 불리우는 야자잎으로 얽기섥기 엮어 만든 오두막을 하룻밤 400페소에 잡았다.

보라카이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이런 저런 여건을 보건해 보라카이가 태국 해변에 비하면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2km에 달하는 하얀 모래 해변은 인상적이었다. 하얀 모래 해변은 아마도 산호가 바스러져서 생긴 것일께다. 대낮에 해변을 돌아다니면 눈이 아플 것만 같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물어 값싸게 해산물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알아두었다. 시장통에 있었다.


Boracay,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한숨 돌린 후 해변에서...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arlan이란 18살 짜리 꼬마와 모래로 장난치면서 협상을 시작했다. 2-30분쯤 떠들면서 어르고 구워 삶아서 3시간에 1000페소 짜리를 5시간에 1200페소(22$ 가량)에 합의했다. 세 가지가 다른 패키지와 달랐다. 1. 내일 아침에 알란을 데리고 시장에 나가 해산물을 현지인 가격으로 사 준다. 2. 고여사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3. 우리 둘과 캡틴, 보조 딱 4명만 배에 타고 간다. 가이드가 붙어있는 한국 관광객의 경우 80-100$ 주고 열댓 명이 떼거지로 하는, 소위 Island hopping이란 것이다.

알란은 한국인 가이드가 엄청난 커미션을 챙긴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관광객이 없으면 보라카이는 망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보라카이에는 맨 한국인들만 보였다. 특이하게도 어느 여행지를 가나 바퀴벌레처럼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다니는 일본인 여행자들이 필리핀에서 만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피노이들한테 일본 식민지 시절의 증오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돈 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해산물 식당을 못 찾아 상하이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나마 싸고 맛있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상하이 레스토랑의 식사는 한심했다. 일로일로에서 워낙 잘 먹은 탓에 이런 평범한 배낭여행자의 식사가 이제는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가난하고 꾀죄죄한 배낭 여행자가 아니란 말이다, 지난 날의 고생을 딛고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 두 사람이 하루 평균 40-50$씩 쓰는 21세기형 웰빙 배낭 여행자란 말이다.

해변에 밀려온 뗏목이 보였다. 아내를 태워 바다로 밀었다. 멀리 떠나 보내고 제 2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계획이었다. :)

보라카이 해변 북쪽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여럿 보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리조트 등의 비싼 숙소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1박에 100$ 이상씩 하는 호텔 수준의... 아내가 저런 숙소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아 다행이다.

워낙 생각없이 온 탓에 준비한 것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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