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비닐 봉투에 담은 쥬스를 들고 입가에 Krong Tip을 물고 카오산 거리를 돌아다니던 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많은 것들은 바뀌었다.

황가는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 했다. 처음에는 라오스 일주를 계획했으나 시간이 없어 포기, 그 다음에는 북부 트레킹과 남부 섬 일정을 계획했지만 편히 쉴 곳을 간절히 원하는 직장인에게는 맞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푸켓을 거쳐 꼬 피피에 들러 며칠 푸욱 쉬다 오는 일정으로 다시 잡았다. 나야 뭐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다. 여기가 거기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아무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돈을 쓰다 보면 날짜란 흘러가게 마련 아니었던가.

비행기를 탈 때 짐 무게를 달아보니 5kg이 나왔다. 배낭 무게만 해도 1-2kg은 나갈텐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티켓은 타이항공 것이지만 아시아나 부스 옆에서 출입국 신고서를 레이저 프린터로 깔끔하게 출력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으로 태국음식이 나왔고 간만에 먹은 탓인지 먹자 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태국의 첫 맛은 늘 설사였다. 태국 음식에 사용되는 향신료 때문이 아닐까 싶다.

28만원짜리 항공권은 97년도에나 나올법한 가격인데다 방학이 겹쳐 기내에는 외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국서류는 말 그대로 20초도 안되 다 채워 넣었다. 지루한 비행 후 돈 무앙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쳤다. 이력이 생긴 탓인지 저절로, 퍼스트클래스보다 늦게 나오고도 퍼스트 클래스 보다 일찍 나왔다. ATM에서 카드로 3000밧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현금(달라)를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공항 오른쪽으로 주욱 가서 5밧 짜리 59번 버스를 탔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 중 59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가는 작자들은 나와 황가, 이름모를 한국인 한 명 뿐이었다. 혹시 그들은 그 버스가 24시간 운행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그들이 한결같이 들고 다니는 '헬로 태국' 분홍색 책은 2년 전의 것이고 정보 대부분이 out of date된 것들이다. 인세 문제로 저자가 더 이상 책을 업데이트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이라면 한국 출판사는 변함없이 한심해 보였다.

버스는 후덥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광포하게 한 시간을 달려 민주 기념탑, 복권청 맞은편에서 내렸다. 카오산으로 걸어갔다. 카오산 거리는 2년 새에 많이 바뀌었다. 마치... 바뀐 인사동 같았다.

숙소 찾기를 황가에게 맡겼다. 홍익여행사는 자리를 옮겼고 만남의 광장도 자리를 옮겼다. 사원 뒤로 돌아 홍익인간 골목으로 들어가 peachy guest house에서 직원을 깨워 160밧 짜리 팬 더블룸을 잡으니 새벽 2시 10분. 그나마 그 동네에서 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땅히 술 한 잔 할 곳이 없어 닭꼬치 셋과 맥주 두 병을 사들고 숙소로 다시 돌아와 샤워하고 마셨다. 눈을 붙일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다.


Peachy Guesthouse. 팬이 잘 안돌았지만 자는 중에는 그리 덥지 않았다.


6/30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 항공기 날짜를 바꾸러 홍익 여행사에 들렀다. 홍익여행사에는 한국인들이 바글거렸다. 저 줄을 기다리려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직접 타이항공에 전화를 걸어 항공권 일자를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타이항공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TAT에 들러 지도를 얻고 타이항공까지 걸어갔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홍익여행사에서 이전에 이집트 다합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고 경찰서에서 몇 시간을 보냈으며 태국 방송에도 나왔다고 한다. 여전히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다. 만나고 다시 만나고 또 만나고 카오산 같은 곳에서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 여행자들의 운명 같은 것일까? 아무래도 비슷한 고생을 한 동병상련의 감정 탓일께다. 다른 한국인들과는 사실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욕을 먹던 만남의 광장이 없어진 탓에 사람 만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식당을 하고 있는 홍익인간에 앉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어보며 죽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영업방해다. 그래서 그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홍익인간 역시 한국인이 적었을 당시에는 재밌는 곳이었을 것이다. 만남의 광장 사장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나 들어와 다다미방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을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기 뛰는 여행자들이 잘난척하며 영웅담?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여자애들에게 껄떡대는 모습이나 노련한 경험?으로 그들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고 날로 먹으려는 수작질을 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닐진대, 만남의 광장 사장만이 유달리 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예쁜 아가씨들에게 껄떡댄다고 볼 수도 없었고 여행 나와 제대로 마음 단속 하지 못하는 여자애들에게 똑같은 책임전가를 한다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쨌던 구설수는 참 무서운 것이다. 수년 전 악당처럼 생긴 만남의 광장 사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내게 묻던 일이 생각났다. 여기 있는 컴퓨터 전부가 바이러스 먹어서 인터넷은 못해. 누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30번 버스를 타고 콘송 사이따이(남부터미널; 이름을 잊은 줄 알았는데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에 들러 푸켓행 VIP 24석 버스를 755밧 주고 예약했다. 이렇게 비싼 버스는 처음 타 본다. 예전에 푸켓에 갈 때는, 아니 태국의 어디를 가던 창문을 열고 다니며 온갖 지점에서 서는 일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세수를 하면서 코를 풀면 콧구멍에서 검정색 땟국물이 나왔다. 일반 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타는 버스라서 여행자들이 잘 타지 않았는데 뒷자석에 대자로 누워 잠자기 좋았다. 가끔은 탑승한 현지인들이 위스키를 권해 주기도 했고 야심한 밤에 기어 올라와 흔들어 깨우는 잡상인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그런 짓은 다시 못 하겠다.

다시 511번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이동. 수쿰윗의 반 카니타에 가서 태국 궁중식을 먹어보려 했지만 오후 두 시가 넘어 포기했다. 가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대신 월텟의 MK restaurant에서 오랫만에 수끼를 먹었다.


World Trade Center는 World Plaza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맞은편에 Gaysorn 백화점이 공사를 마치고 새로 개장했다. 센과 이세탄 백화점 앞에는 밤이면 밴드 연주를 하며 맥주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노천식당이 생겼다. 지나가는 태국인 중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그들은 2년 전에 볼 때보다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급속한 문명화의 부작용일께다. :)

카오산으로 돌아와 tanning oil과 mosquito repelant를 구입하고 한 시간쯤 인터넷을 했다. 홍익 여행사에 맡긴 짐을 찾아 남부 터미널에 가서 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태국에서 VIP 버스를 타 본다. 상당히 넓은 좌석이고 항공기보다 편한 리클라이닝 시트다. 들어가자 마자 빵 세트와 우유, 물 따위를 나눠주었다.


남부터미널로 가는 도중 시내 버스 안에서. 왼쪽의 서 있는 작자는 차장. 버스에 차장과 운전수 체계로 운영하는 것이 운전수 혼자 돈 받고 운전도 하는 한국식 시스템보다 나아 보인다. 비록 비용은 더 들겠지만 운전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새벽 한 시쯤 버스가 멎고 VIP 전용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감격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VIP 버스구나 싶었다. 버스에서는 비디오로 Torque를 틀어주었다. 뒤척이면서 자다가 깨보니 푸켓에 도착했다. 7:30pm 출발해서 6:30am 도착.

7/1

어젯밤 인터넷으로 뒤져 알아낸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황가는 까말라 비치에 가길 원했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마땅한 정보가 없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방은 3일치 예약이 꽉 찼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게스트하우스의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이도 배낭여행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저렴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까말라 비치에 fantasea가 있다는 것 정도? 빠통 해변의 지도 위에 갈만한 곳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푸켓에는 볼꺼리가 없어 비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글쎄다. 볼 것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수년 전에 푸켓타운에 묵을 때는 150밧에 혼자서 샤워가 달린 더블룸을 잡았다. 아마 그때 숙소에서 베트남 상이용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숙소를 푸켓타운에 잡아두면 그곳을 기지삼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 좋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비치에서 아무리 싼 숙소라도 400-500밧 이상이 나온다. 그가 권해준 토니 리조트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었고 무려 1100밧이나 했다. 황가의 의향을 물으니 서슴없이 그곳에 묵잔다. 직원이 바우쳐를 뽑아올 동안 이번에도 역시 관광이 되는구나 탄식했다. 푸켓타운에 볼꺼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푸켓타운의 시장이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국 화교 및 이슬람의 영향, 씨 짚시들, 거기에 포르투갈 양식의 건물 등등을 나름대로 흥미롭게 관찰할 수도 있을텐데... 싸게하려면 얼마든지 싸게 할 수도... 모르겠다.

선라이즈 사장님이 우리를 국수집 까지 태워 주셨다. 25밧 짜리 바미 남을 시켜 먹었다. 상당히 훌륭한 맛이다. 라농 거리에서 빠통 비치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옆에 앉아있던 할마시가 친절하게도 버스는 두당 15밧이라고 가르쳐준다. 썽태우는 20밧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시내에서 중국인들처럼 중국식 아침을 먹을 수도 있고 딤섬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사먹던,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버스가 빠통 비치에 접근해 가는 동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좆됐다' 라고 중얼거렸다. 피부를 올리브 빛으로 태우려는 열망으로 이곳에 온 황가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숙소는 상당히 좋아보였다.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를 하니 피곤이 몰려왔다.



간단히 짐을 챙겨 해변에 나갔다. 의자 하나 빌리는데 50밧, 태닝 오일을 몸에 바르고 누웠다. 하늘이 수시로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가끔 비가 오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피부를 태웠다. 갑자기 비가 와서 해변을 떠났다. 첫번째 ATM에서 돈을 뽑는데 실패, 그 옆의 것에서는 다행히 돈을 뽑을 수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져 숙소로 황급히 대피했다. 비는 한 시간 내내 미친듯이 내리다가 말끔하게 개었다. 지구 온난화에 발맞춰 태국의 우기도 점점 지랄스러워 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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