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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에 잤다가, 새벽에 잠깐 깨어 여명이 끼어든 새벽을 관람했다. 전깃불 덕택에 원시적인 새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얼굴만 문대고 어리벙벙한 상태로 숙소에서 일하는 친구를 따라 450밧 짜리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했다. 항구 앞에서 사람들이 모이자 커다란 녹색 배를 타고 피피 레를 향해 배가 나아갔다. 피피 돈과 피피 레 사이에서 강한 해류가 흘렀다. 조류라고 해야할지 해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가 치솟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고물이 치켜 올라가기도 했다. 상석에 앉아 있었던 관계로 거진 바이킹 놀이기구에 가까왔다.

사진기나 현금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장비를 챙겨 입수. 이번 스노클링은 '빵'과 함께 했다. 빵을 부숴서 뿌리니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들었다. 어, 정말 재미있다. 빵을 자꾸만 뿌려 내 주변은 온통 물고기떼로 가득 찼다. 봉투 안에서 빵을 떼어 내려니 더 이상 빵이 없다. 대신 소세지가 잡혔다. 물고기들이 소세지를 좋아할까? 좋아한다. 훨씬 좋아했다. 백 빵 보다 소세지 하나가 더 낫다. 소세지를 흔들며 물고기를 희롱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세지 하나로 한 30분을 잘 놀았다. 소세지가 1/3 토막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 바닥으로 소세지를 잡고 살짝 손바닥을 펼쳐 물고기떼가 미친듯이 몰려들 때 재빨리 손가락을 오무려 소세지를 감췄다. 이거 정말 재미있다. 물고기는 지능이 낮은 탓인지 그렇게 놀려대는 데도 쉴 새 없이 몰려 들고 흩어졌다. 물고기떼는 마치 삐끼들처럼 행동했다.

스노클링 한 번, 밥을 먹고, 다시 두 번 더, 각각 한 시간씩 하니 기진맥진했다. 황가는 겁을 집어먹고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았다. 입수하자 마자 10-20m 깊이여서 혈압이 솟구치고 팔다리가 뻣뻣해 진단다. 배 위에는 여러 국적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우아하게 썬텐을 하고 있었다. 스노클링은 깡으로 하는 거야. 말했다. 내가 두번째 스노클링을 할 때는 함께하는 여행자가 없었다. 롱 테일 보트에서 뱃사공과 함께 바다에 나가 그냥 막무가내로 떨구고 (살아서) 헤엄쳐 돌아오는 것이었다. 수영은 전혀 할 줄 몰랐고 라이프 자켓이라고 준 것은 어설픈 스티로폼이었다. 어쨌거나 살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 다음부터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캐러비언 씨에서의 스노클링은 개중 가장 멋졌고 가장 무서웠다. 1-2미터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도의 골과 용마루 사이를 왕복하면서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내팽개쳐지고 수도 없이 튜브로 물이 들어왔고, 목구멍으로 쓰디쓴 바닷물을 넘겼다. 라이프 자켓을 벗으면 무서워서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절대로 라이프 자켓을 벗지 않았을 뿐더러 핀을 벗어 던지는 등의 만용도 부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안다.

배 갑판에 누워 살이 타들고 가고 있을 때 황가에게 도가 사람들이 단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 얘기해줬다. 어제는 부처 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태국이나 필리핀의 무인도로 가는 왕복 배편을 만들고 현지 여자들을 몇명 사들여 섬에다 풀어놓은 다음 사냥해서 잡아 먹는 계모임에 관한 얘기도 했다.

네번째 스노클링은 하지 않았다. 조류가 거세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내려갔다. 그렇잖아도 지쳤는데 그 조류에서 버틸 재간은 없었다. 스노클링 투어는 오전 열 시에 시작해서 오후 네 시에 끝났다. 세 시간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섯 시간이나 했고, 밥도 주고 물은 무제한 공짜였고, 과일 쪼가리도 몇 개 준다. fin을 빌리려면 별도로 50밧을 내야 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그 비용도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450밧에 여섯 시간을 잘 놀았으면 괜찮은 투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선실로 몰아놓고 우리가 투어를 할 동안 비디오를 찍던 친구가 찍었던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DV로 찍은 것으로 화질이 생생하고 스노클링 하면서도 미처 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말미잘, 산호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들, 바닷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여러 생물체들이 그야말로 총천연색으로 하늘거리는 멋진 비디오였다. 500밧에 cd로 떠 준단다. 필요없다. 내가 나오는 장면은 고작 두 컷 뿐이었고 소세지를 든 채 대마왕처럼 물고기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기가 막히게 멋진 모습은 누락되었다.


물 빠진 해변

시장통에서 40밧 짜리 쇠고기 국수를 먹고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입구에서 어제 방을 안내해준 직원이 불러 세웠다. 오늘 방값을 지불하란다. 어제 이틀치 600밧 다 줬잖아? 아니란다. 600밧은 하루치 방값이란다. 무슨 소리냐, 너가 어제 방 하나에 300밧이라서 여기 온 거잖아. 코 피피에서 방 안에 냉장고, 온수를 제공하고, 해변에서 이렇게 가까운 숙소가 300밧 짜리는 없고, 두당 300밧이란다. 어제 분명히 너가 그렇게 말해서 따라온 거지 안 그랬으면 내가 미쳤다고 따라오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영수증을 보여줬다. 영수증에는 어제 하루치 방값 600밧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가 얼굴을 쳐다 봤다. 황가는 숙소를 잡아본 적이 없다. 지불할 때 확인을 안 한 것이다. 직원의 말이 괘씸해서 더 따져볼까 하다가 600밧 더 주고 그냥 숙소로 걸어갔다.

여행사에 들러 200밧 짜리 크라비행 배편을 예약했다. 해변을 가로질러 뷰 포인트로 올라갔다. 해가 지는 모습이나 구경하자 싶어서 였다. 다들 올라가는 계단으로 안 가고 반대쪽 로달람 비치 쪽으로 난 비스듬한 산등성이를 기어 올라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사진을 다 찍은 태국인들이 먼저 내려가고, 그 다음으로 사진을 다 찍고 볼일을 마친 일본인들이 내려갔다. 지평선에 떠 있는 구름의 형태로 보건대 오늘 '끝내주는' 석양을 구경하기는 다 글렀다고 생각한 우리도 해가 지기 5분 전에 내려왔다. '로맨틱' 운운하며 끝내 남아 있는 떨거지들도 있었다. 석양은 필리핀의 보라카이가 드라마틱하고 멋졌다. 아무래도 보라카이가 석양 만큼은 최고같다.



내려오는 길에 '활달하게' 뛰어가는 무슬림 아가씨가 있었다. 어쩌다가 말을 해 보니 난생 처음 보는 '타이 무슬림'이었다. 타이 무슬림 여자는 남자와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나 보다, 무척 신기했다.

다시 시장통에 들렀다. 황가에게 해변의 해산물 요리를 사주기는 커녕 시장통에서 밥 사다가 숙소에서 먹는 궁상을 차마 더 하기에는 미안한 나머지 혹시나 해서 수년 전 추억의 맛집에 들렀다.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주인은 여전히 친절했고 그 친절한 주인은 여전히 날 보고 '곤니찌와'라고 말했다. 바나나 쉐이크 25밧 짜리 2개, 코코넛 밀크로 만든 커리 50밧, 플레인 라이스 10밧, 카오 팟 까이 40밧 이렇게 해서 135밧을 지불했다. 주인은 15밧을 덜 계산했다. 오래오래 추억의 맛집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8시 30분. 냉장고에는 물병만 다섯개가 있었다.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쉬었다. 살은 끔찍하게도 많이 탔다. 더 뭔가를 하기에는 지친 하루다.

'다빈치 코드'를 읽기 시작. 나는 책 한 권 들고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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