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에 들러 전입 신고. 민방위 훈련은 1년째 빠지고 있는 중이다. 비자문제 때문에 은행 잔고증명서를 떼었다. 그러니까 카드로 현금인출이 되지 않았다. 물어보니 잔고증명서를 뗀 날은 현금 인출을 할 수 없다나... 동대문에 가서 만오천원짜리 싸구려 릿지화와 양말 열 켤레를 구매. 외국에서 구매했던 양말과 신발은 이미 찢어지거나 누더기가 된 상태였다. 여전히 국산이 낫다. 더더욱 심한 것은 그렇게 구매했던 것들과 국산 사이에 가격 차이가 없다는 점.

교보문고로. lonely planet middle east 2003년 판이 나온 것을 보고 픽 한숨을 쉬었다. LP의 정보가 부정확해서 그렇잖아도 수고스럽게 중동 정보 위키 페이지를 만든 것인데, 이젠 필요없을 것 같다. 남미 여행정보 위키 페이지를 과연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아무렴. 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많이는 안 할 생각. 하루종일 비 맞으면서 돌아다녔다.

영화 영웅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광경이 나타났다. 신장 위구르 지역과 구채구,강남의 몇몇 물 좋은 곳이 로케 장소였구나! 가본 곳이 나와서 반가웠다.

항공권 구매한 지 일주일쯤 지났다. 64만원+세금 7만8천원짜리. LA in, LA out. 6개월 오픈. 원래는 LA in, New York out으로 하려다가 대체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 빠져오게 될지 가닥이 안 잡혀 스케쥴 변경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구매. 그 이틑날 스케쥴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통보. 진작 말해주지 않구선... 하려니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 브라질의 상 파울로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한국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음... 돈 몇푼 아끼려다가 항공권을 저 모양으로 사놓고 보니 또 속이 쓰려왔다. 평생 복권 같은 걸 안 사는 이유가 워낙 '복'이 없어서 인데, 복이 없는 것 까지는 참아줄 수 있지만 '불운'을 몰고 다니는 것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남들은 안 하는 그런 삽질을 열심히 해도 그놈에 '운'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도 오고 해서 길거리에서 튀김에 맥주 한 잔. 지나가는 서양 여자들은 어째 한국인들이 하고 다니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뒤로 묶은 긴 생머리. 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ubiquitous한 매트릭스 패션(롱 코트 + 검정 바지 + 검정 구두). 그래... 그 꼴을 외국인 여자들이 따라 하면서 몰개성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웃겼다.

술 안 마시려고 개겨 봤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어젯밤엔 섹스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양성간의 커뮤니케이션 배리어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통신 수단이라는 지극히 학술적인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집 컴퓨터에 있는 수 기가 분량의 포르노를 심심할 때 보았는데 그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아보지 못했다. 술 취해서 괜한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다.

사람들에게 전화 하기가 정말 껄끄러웠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할 얘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국에 왔는데 안 만나기도 뭣하고. 안 만나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앞으로 최소한 3개월 동안,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곰곰히 궁리해 본 후, 만나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지었다. 훌륭한 결정인 것 같다.

여행 생각하면 두근거리고 겁이 난다. 앞으로는 들러 붙어다니는 행운이 없을테니까. 말하자면 온갖 삽질을 하면서 성격이 점점 드러워지다가 종국에는 삐끼들 생피를 빨아먹으면서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까...

아... 여행 준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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