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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일어났다. 죽과 쌀국수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썽태우를 타고(10b) 므앙까오(수코타이 역사공원)로 갔다. 자전거를 빌리고(하루 20b) 아내를 뒷자석에 태워 공원 입구로 향했다.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150b)을 샀다. 그리고 역사공원을 동에서 서로 관통해 성벽을 지나 Wat Si Thone 까지 달렸다. 별 것 없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 애를 먹었다. 어느 도시에서건 자전거 탈 때 마다 한 번씩은 체인이 빠졌다. 지나가던 서양 소년이 체인을 다시 달도록 도와줬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한가로운 농촌을 유람했다. 150밧이나 주고 왔으니 뭔가 봐야겠기에 다시 역사공원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더 이상 살이 안 탈 꺼라고 생각했는데 살이 조금씩 더 타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왠 태국인이 한국인 여성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줄 알았단다. (뭐야? 부러운거야?) 수코타이 역사공원이 원래 생긴 모양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말레이지아의 타이핑처럼 노동자들을 동원해 대단위 인공 호수를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얕은 인공호수는 대량의 물을 증발시키면서 다소간 더위를 식혀주었다. 돌은 여전히 뜨겁다. 시원하게 생긴 나무그늘에 앉아 워터멜론 쥬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뙤약볕 아래 걸어다니면서 유적지를 관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보였다. 가엾다. 땀흘리며 빌빌 거리는 가엾음이다.

람캉행 대왕의 동상을 얼핏 보고 지나갔다. 더워서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얼굴은 봐줘야 할 것 같았다. 태국어를 만든 왕이다. 동서로 엄청나게 영토를 넓힌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같은 놈팽이는 별로 대단한 인간 취급을 안 하지만 글자를 만든 선행을 한 왕이라면야...

오후 1시쯤 돌아가기로 했다. 입구의 가게에서 얼어 붙은 수박쥬스를 급히 마시다가 골이 띵하더니 줄곳 두통이 달라 붙었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인터넷 가게에 들렀다. 두 가게 모두 windows 98이라 메모리 카드 리더의 usb storage 가 잡히지 않았다. 캐논의 생각없는 엔지니어들은 WIA(windows image acqusition) 드라이버와 twain만을 지원했다. removable drive를 지원하지 않아 메모리카드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 따위에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수 년 전에 싼 맛(9900원)에 구매한 메모리 카드 리더기를 이번 여행에 들고 왔다. 하여튼 windows 98 용의 usbstor.inf 파일만 있으면 쉽사리 해결될 문제인데 아쉽게 되었다. 다른 곳에 가보니 usb 포트가 없다. usb 포트가 있는 곳을 부러 알려준다며 방금 나온 가게를 손짓했다. 아내는 메신저질을 하면서 재밌는 방식을 사용했다. 메신저에서 한글 입력이 안 되니까 내 블로그 페이지를 열어 놓고 거기 코멘트의 텍스트 창에 한글로 문장을 입력한 다음 메신저 대화창에 컷앤 페이스트 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싶다.

점심 먹으러 시장통으로 갔다. 그린 커리와 밥을 시켰는데 평범한 덮밥이 나왔다. 어째 커리와 밥을 합쳐 20 밧 밖에 안 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양이 안 찬다. 가판에서 태국식 팬케익을 사 먹었다. 7밧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참 착하고 순한 것 같다. 관광객 상대로 도무지 사기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처 사원(wat rajthanee)에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중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두통이 심해서 숙소로 돌아와 타이레놀을 삼키고 잤다.

동네를 둘러봐도 마땅히 식사할 만한 곳이 없어 숙소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타이 커리와 밥(60b), 야채볶음과 밥(60b), 수박쥬스(20b), 싱하(35b)을 주문했다. 레드 커리가 나왔다. 커리(깽인데, 까리라고도 하는 것 같다)는 갖가지 향신료와 야채,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인 것이다. 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똠얌꿍보다 어떤 면에서는 맛있고 여러 향신료 때문에 시큼하면서도 담백하고 또한 깊고 은근한 매운맛이 난다 -- 태국 음식은 본질적으로 맵다. 깽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을 꺼라고 확신하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볶음밥과 쌀국수만 죽어라고 먹었다.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깽의 징그러운 첫인상 때문인지 잘 안 먹는 것 같다. 편의상 색깔로 나누어 레드, 그린, 옐로우 커리가 있고 해산물이나 닭고기, 소고기 따위를 넣는다. 벌써 두끼를 먹은 숙소의 음식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추천해도 되겠다.

주인장이 밥 먹는 동안 tv를 틀어주었다. YTN이 나와서 화들짝 놀랐다. 주 5일 근무제에 관한 토론 방송이 나오는 중이다. 뭐 다른 것은 모르겠고 일한 만큼만 임금을 지급했으면 좋겠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이 글을 작성중. 대체 왜 이렇게 시시콜콜한 여행기를 작성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주인장이 게스트북을 들고와 82년생 아가씨가 혼자 와서 외로워 하고 있다며 방 번호를 가르쳐준다. 맥주 다 마실 때까지 안 오면 방으로 들어갈란다.

누군가 방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아까 그 한국인 아가씨다. 방에 놀러오라고 했다. 여행 처음 하고 한 달 일정이고 치앙라이, 치앙마이, 치앙센 등을 다녀왔고 북쪽에서 방콕까지 슬슬 내려가는 중이고 18명이나 되는 엄청난 떼거지와 함께 트래킹을 했고(그중 15명이 한국인) 캄보디아와 푸켓 등에 갈 예정이란다. 오늘이 생일이라 케잌을 들고 왔는데 잘 안 먹어서 내가 세 조각 중 두 조각을 먹었다. 아내는 남은 과일을 다 줬다.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여행중 눈이 맞아 사랑의 행각을 벌이는 커플이라고 알아두면 될 듯 싶다.

아내가 pda에 있는 여자들 이름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옛 여자친구 전화번호를 보더니 연락할 필요 없으니 지워버리겠단다. 놔두라고 했다. pda에는 6년 동안의 지난 기록이 있다. 언제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여행했으며 누구와 술을 마셨나 따위. 최근 1년 동안은 거의 아무 것도 적지 않았다. 결혼, 신혼여행, 이번 여행 기록 정도 밖에. 지난 1년은 지지난 1년에 비해 사건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을 흔히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생활, 죽을 때까지 하게 될 일.

일찍 잔다. 더 볼 것이 없고 심심해서 내일 아침 일찍 방콕에 내려가 식도락이나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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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Si Thone.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공부한 고승이 남쪽 망고숲 옆의 Si Thone에 살았다는 말이 왓 파마무앙에 적혀 있다. 남은 것은 무의미한 폐허 뿐.



호수 공원.


눈 감고 걷는다.


갖가지 '양식'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700년 전의 석조 유적.


비정상적인 손가락 길이. 비정상적인 귀의 길이. 머리에 난 뿔 등등,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고, 거대로봇류 처럼 생겼다. 악당에 대한 자비심으로 그들을 지옥에 보내주는 마징가 제트같은 거대 로봇.


특이하게 생긴 입술. 열반의 끝없는 기쁨 때문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쯤 감은 눈으로 반은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그 반은 사바세계를 보고 있다. 늘어진 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부처 머리에 난 뿔은 깨달은 자만이 누리는 크나큰 기쁨, 완전히 열린 차크라를... 맞나? 열반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흡족한 나머지 눈을 게슴츠레 감은 채 입가에 미소를 짓는 상태와 비슷해 뵌다.


피사의 사탑? 동남아 열대 문명의 건축은 왠일인지 다 이 모양이다.


부처가 즐거워 보인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적지에는 거대로봇이 많았다. 부처들끼리 벌떡 일어나 한판 붙어 폐허가 된 것은 아닐까. 슈로대(슈퍼로봇 대전)


호박


Wat Mahathat. 스님 한 분이 단체사진을 찍고 짐을 챙겨 나가는 중.


제단에서 향을 피우고 절 했다.


폐허를 배경으로 한 골프 코스는 없는 것일까? 부처님 머리에 맞을 지도 모르겠군.


금색 매니큐어, 푸른 눈물. 지긋이 감은 눈.


매부리코, 달관.


악마들을 무찌르러 금방이라도 출격할 것만 같은... 손 길이.


SD 몽크


어딘가 모르게 크메르 양식을 생각나게 하는... 벽돌을 굽지 않아서인지 습기를 먹어 눌려 탑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반반해 보이는 것들은 '완벽하게' 시멘트로 복구한 것.



등 돌린 부처


등과 힙 라인의 저 섹시함이란...


부처의 팔 다리에는 근육이 없다. 그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


Wat Mahathat의 스투파.


유적 공원에서 Wat Mahathat만 봐도 전체 유적지의 절반은 본 것 같다.


표정만 봐도 흐뭇한걸.


반석을 받치고 있는 도깨비


반석 밑에 거꾸로 매달린 도마뱀


해골을 든 인간?


골프 코스로 정말... 딱이다.


Wat Sasi.


우유 먹다가 흘렸나?


필라가 제각각.


새집. 가짜 새까지..


구운 거위 모양의 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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