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8시 기상. 아내가 느적거려(쉬러 왔으니까... 란다) 9시쯤 체크아웃. 내가 짐 싸는 속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3분이면 숙소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짐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배낭에 쑤셔넣을 수 있다. 배낭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을 다년간 연구한 결산이다. 짐이 없기도 했다. 티셔츠 하나, 런닝 하나, 새로산 반바지, 팬티 두 장, 양말 두 켤레가 옷가지의 전부.

숙소 주인장이 카오산까지 바로 가는 여행사 버스는 없단다. 버스 터미널까지 픽업해줄테니 10분만 기다리란다.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은근히 걱정되었다. 방콕에 오후 다섯시쯤 떨어지면 교통체증 때문에 머칫에서 방람푸까지 가는데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빨리 버스를 타는 것이 바람직했다.

종업원들이 밤이나 낮이나 묵고있는 손님을 대하면 생글생글 웃어서 괴기스럽다. 밥 먹으면서 숙소에 있던 코엘료의 eleven minutes를 잠깐 읽었다. 주인이 책이 마음에 들면 가져가란다. 도로 내려놨다. 꿈을 꾸게 한다는 코엘료의 소설은 다음에 읽자. 지금은 노트북에 있는 아즈망가를 마저 봐야 한다.

주인이 차로 데려다 주면서 TR 게스트 하우스에 식당이 생긴 다음 부터는 아침에 공짜로 주던 티가 없어졌고 대신 버스 터미널까지 프리 픽업을 투 웨이로 해준다며 가이드북에 꼭 그 내용을 업데이트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한국인 여행자들 중 일부는 자기 숙소에 묵으면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다가 그냥 간다고 한다. 여행 중 묵게 되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보통 정보 수집의 1차 소스다. 그 다음은 삐끼. 그런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지 못하면 가이드북에 코박고 있어야 할텐데? 영어의 장벽이 그리 심할까?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과묵한 사람들이거나 나처럼 늘상 뻔한 대화가 귀찮고 지겨워서 안 하고 자력갱생하는 타잎일 것이다.

터미널에서 티켓을 끊으려니 250b란다. 올 때 2등 에어컨 버스를 200밧 준 기억이 나서 카운터에 물었더니 정부버스가 200밧, 자기들 wintour의 사설 버스는 1등 버스이고 요금이 250밧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999 또는 99번 창구에서 판매하는 정부 버스는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떨어지는 편이라서 내심 꺼리는 편. 두 말 없이 wintour의 1등 에어컨 버스를 끊었다. 빵과 우유, 음료를 두 번쯤 나눠준다. 티켓에 붙어있는 식권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고양이 머리띠를 한 안내양은 유니폼으로 입는 치마 폭에 다리가 걸려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었다. 안내양은 손님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그들이 사용한 컵을 모아 휴게소 뒤켠에서 씻는다. 체크 포인트나 검문소를 만날 때마다 쪼르르 달려나가 사인을 받고 일지를 기록한다. 새로운 손님이 타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손님들이 음료나 담요를 요구하면 갖다 준다. 안내군도 있다. 안내군은 노는 것 같다.


장거리 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휴게소. 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2년 전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했다. 눈부시게!

지루한 버스 여행 동안 노트북을 꺼내고 pda를 꺼내고 그동안의 일정을 정리했다. sony에 번들로 포함된 intellisync는 업그레이드를 안해서인지 outlook과 싱크할 때 엔트리를 자꾸 잃어버렸다. 그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일전에 메모리 스틱이 날아갔을 때 하드리셋을 한 후 싱크를 하니 최근 2주 간의 엔트리가 하나도 싱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하여튼 일정을 다시 입력했다.

6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방콕에 다 이르러 갑작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 가량 서행했다. 알고보니 교통 경찰 ten birds이 멀쩡한 도로를 막아놓았다. 어느 나라나 경찰 ten birds이 문제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단속하던 경찰을 봤다. 과속은 아니고,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했고 머플러를 개조한 것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녀석을 잡아 세웠다. 면허증도 제대로 제시한다.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도무지 무슨 꼬투리로 멀쩡히 잘 가던 오토바이를 세웠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옆에 있던 황가가 '쯧쯔... 반바지로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건가? 잡힌 놈만 유달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착하니 5시. 끔찍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3번 버스를 타고 짜두짝 공원까지 가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방람푸까지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 지 알 수 없다. 갈길이 멀다. 물론 이런 상황도 예상했다. 차야 가던말던 한가히 뵈는 아내와 달리 나는 '언제나' 대안이 있었다. 미련없이 머칫 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BTS로 갈아 타고 Chit Lom으로 갔다. 여섯 정거장 밖에 안되는데 표값이 35밧이다. 서민이 이런걸 타고 다닐 수 있을까? 시민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한달에 400달러를 버는 나라에서. 벌이는 그렇지만 먹을 것이 워낙 많아 굶어죽는 거지는 절대 없다는 것이 태국의 '자랑거리'다.

방을 잡기 전에 먼저 아내에게 약속했던 대로, 야마네에 들러 김초밥과 오에코돈, 짬뽕을 먹고 오이시에서 80밧 짜리 초밥 세트와 35밧 짜리 날치알이 들은 삼각김밥을 샀다. 교통체증이 심화되기 전에 월텟 앞에서 2번 버스를 탔다. 복권청에서 내려 볼수록 정 떨어지게 생긴 카오산 로드를 횡단해 사원 뒷편 길로 이동. 러브호텔로 지역 주민들에게 명망높은 쑥바삿 게스트하우스에 투숙. 400밧, double, with bath, a/c, tv.

쑥바삿 게스트 하우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인터넷 가게에서 한 시간에 35밧 짜리 인터넷을 했다. 어제, 그제 쓴 로그를 올렸다.

오후 10시. 땅에 복수라도 하듯이 미친듯이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세븐일레븐에 들러 맥주와 오징어, 물을 사왔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해 사방팔방에서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와 우왕좌왕 거리를 헤메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나는 '홀로' 우산을 쓴 채 그 모양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발바닥이 빗물에 잠긴다. 반바지 섶이 젖어든다. 우산을 뚫고 들어온 빗방울이 물안개를 이룬다. 비맞은 생쥐들이 처마 밑에서 벌벌 떨고 있다. 내 우산과 나를 쳐다본다. 거리는 텅 비었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건배.

빨래하고 샤워했다. 11시가 넘었다.

7/10

9시 기상. 바깥의 습기는 60%가 넘지만 통유리로 막아놓은 방에서 에어컨을 밤새 틀어 놓으니 방이 몹시 건조하다. 아내가 홍익인간에 들러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아내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만남의 광장을 싫어한다면 나는 홍익인간을 꺼렸다. 별 이유는 없다. 만나는 장기여행자마다 만남의 광장이나 홍익인간 얘기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홍익인간은... 특별히 아는 사람이 아닌 한 노골적인 푸대접 때문인 듯. 장기여행자들 대개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한 사람 들어오면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들어 좁은 일층 식당을 점령한 채 나갈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일 없으면 안 가고 안에서 개기지 않는 것이 타지에서 고생하는 교민을 돕는 길인 듯 싶다.

아내가 벌써 여러 번 한국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전화카드를 구입하란다. 아내더러 인터넷 까페에서 인터넷으로 전화하라니 자주 끊긴다며 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카오산을 돌아다녔다. 걷다가 지칠 무렵 분당 15밧 하는 인터넷 전화를 걸었다. 통화 품질이 깨끗하고 전화도 잘 걸렸다. 15밧이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땅화생 백화점 가는 길에 있는 국수집에서 25밧 짜리 꿰이띠오 남을 먹었다. 파쑤멘 거리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위만맥 맨션으로 향했다. 47밧. 50밧을 내고 아내는 3밧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고 기사와 실갱이를 벌였다. 우수리는 보통 기사에게 그냥 주는 것이고 태국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해줬다. 방콕 시내의 택시가 모두 미터로 바뀐 다음 sur-(over-) charge는 없어졌다. 방콕에 무수히 들렀지만 아내는 그런 세세한 것들을 잘 몰랐다. 카오산의 어딘가 숙소에 짱박힌 채 어디 돌아다닐 생각도 안 하고 식당과 숙소 사이를 전전하며 아는 사람들 만나는 장소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관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내와 여행할 때 한번도 택시를 탄 적이 없다. 오늘 그 사실을 알았다. 택시란 3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버스에 투자하는 돈을 다 합친 가격의 3배 이내일 때라야 내키진 않지만 탈만 하다고 본다. 위만맥 멘션까지 가는 버스비가 4밧이니까 둘이 합치면 8밧, 택시비가 50밧이니 무려 6배나 되는 가격이다. 50밧이면 쌀국수(25) 두 그릇 또는 꼬치(10) 다섯 개, 또는 계란(5)을 얹은 팟타이(15) 한 접시 먹고 고명을 얹은 밥 한 접시(20) 먹고 수박 쥬스 한 봉지(15) 마실 돈이다.

위만맥 멘션의 입장료는 100밧, 뭐 그리 대단한 볼꺼리가 있다고 이다지도 비쌀까 싶었는데 12군데의 전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 이거 의외로 보람차네? 열한시 부터 두 시까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Royal Carriage Building,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his royal highness) Princess Orathai Thep Kanya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Arunwadi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등 특히 공주들 방을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공주들은 하나같이 못 생겼다. 현재의 국왕이 재즈에 미쳐 있다는 얘긴 오래 전에 들은 바 있고, 그가 찍은 그저 그런 사진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공주집. 인형, 오래된 시계들.

오늘의 주요 관람꺼리인 Vimanmek mansion을 구경했다. 라마 5세가 기거하던 곳인데 들어가기 전에 짐 맡기는 곳에서 20밧을 삥 뜯겼다. 다른 곳은 돈 안내고 짐을 무료로 보관해 주는데 유독 비만맥 맨션에서만 돈을 받으니 확실히 이건 삥이 맞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짐을 다른 곳에 보관해 두는 건데! 10밧 짜리 동전 두개를 바꿔 코인락커에 짐을 넣은 후 잠그려는데 안 잠긴다. 직원을 불러 안 잠긴다고 말하니 동전을 넣지 않은 것 아니냐, 다른 동전을 넣은 것 아니냐며 되레 의심한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해결할 생각을 않길래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도둑놈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더니 우리 짐을 무료로 맡길 수 있는 곳에 맡기는 것이 아닌가. 나쁜...


티크목으로 만든 건물 중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Vimanmek Mansion을 방문한 중학생들. 300개의 창문, 200개의 문.

1시 15분 영문 안내를 받으며 맨션을 돌아다녔다. 안내원이 한쪽 구석을 가르키며 여기는 2차대전 중 일본이 폭탄을 떨구어 파손된 부분입니다 라고 말하니 어떤 노인네가 'fuck japan'이라고 중얼거렸다. 안내원: 여기 일본사람 없지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맞아요 fuck japan이에요. 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보내온 썩 괜찮은 청자가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었다. 눈여겨 보면 볼만한 것들이 꽤 많지만 후다닥 해치우려는지 머물 시간을 안 준다.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려니 영 지겨웠다. 위만맥 맨션은 라마 5세가 5년만 살고 주욱 잊혀져 있다가 현재 국왕의 왕비가 82년에 리노베이션해서 박물관으로 열어놓은 것.

두 개의 운하에는 똥물이 흐르고 있지만 두씻 정원은 시원한 열대를 보여줬다. 맨션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그럴듯 했다. 그 기분에 왕 노릇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밧 내고 뙤약볕 아래서 여기저기 땀을 펑펑 흘리며 구경하는 왕궁 보다는 두씻 정원과 맨션이 훨씬 나았다. 왕궁은 일반에 공개된 장소가 별로 없어 사실상 볼꺼리가 없는 곳이다.

오후 두 시부터 위만맥 맨션 옆 스테이지에서 타이 전통 춤 공연을 했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 여기저기서 한 부분씩 훌쩍 떼어내 맥락없는 내용을, 약간 솜씨가 떨어지는 것 같은 춤꾼들이 공연한다. 이들 공연중 볼만한 것은 라마야나인데 오래되어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다섯이나 여섯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는 라마야나 얘기를 몇 차례 해줬지만 관심없어 보였다. 라마는 나쁜 놈이라고 몇 번쯤 말했던 것 같다. 고생스럽게 구한 아내가 악마와 놀아났다고 그녀를 버린 놈이다. 그녀가 불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순결을 증명했지만 라마는 끝끝내 아내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인도놈들은 마음에 안드는 아내를 태워 죽이거나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열녀가 되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에 태웠는데도 타 죽지 않고 살아 남아야 '정품 인증' 마누라다. 옛날옛날에 자기 마누라를 마녀로 고발해 태워 죽인 유럽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몹시 궁금해지는군.


라마와 시타. 기쁨의 춤.


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보낸 나날(라마야나의 앞부분? 또는 시타를 구한 뒷부분?). 나도 내가 왜, 어떻게, 어째서 이들의 춤이 라마야나의 한 장면 임을 추측도 아니고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주부리는 얘는 하누만 같다.


두씻 정원의 한가운데 쯤 있는 거대한 나무. 매력적.

abhisek dusit throne hall을 구경했다. 대관식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안을 꽉 채운 것은 공예품들 뿐이었다. 하지만 수공예품의 손기술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 저런 물건을 시장통에서 구할 수는 없겠지 싶다. 그런데, 이란의 보물들을 구경한 다음 부터는 왠간한 보석들은 시시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어 건축 양식으로부터 확연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Abhisek Dusit throne hall의 입구.

어느 건물에 들어가나 건물을 지키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지, 물건을 훔쳐가는지 감시했다. 사진은 기회가 되면 찍었다. 반도 채 보지 못했지만 오후 3시가 넘었고 배도 고프고 지쳐서 궁전 옆에 임시로 가설한 건물에 들어선 오이시에서 초밥(65)과 샐러드(40)를 사 먹고 방람푸로 돌아가는 택시(41)를 탔다.

꼬치를 먹고 싶은데 아직 때가 일러 꼬치구이가 노변에 보이지 않아 계란을 넣은 팟타이(20; 비싸네?)를 사 먹고 구아바(10)과 수박(10)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구아바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별 맛이 없다는 이유로), 비타민의 황제, 열대과일 중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난 과일이다. 구아바 3개는 지각있는 여성의 하루 두 끼 식사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다. 태국 여성들의 건강한 피부는 구아바가 책임지고 있다. 구아바는 그렇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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