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아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한결같이 최근 여행자들은 예전만 못하게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뭐 대단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나라 언어나, 문화, 역사조차 공부하지 않고, 중대 결심을 해야 나올 수 있던 소위, '해외여행'을 이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옆집 애가 갔으니 나도 갈 수 있다 분위기. 그리고 머리가 나쁘다는 것. 뒈지게 더운 나라에 와서 뒈지게 덥다고 말하는 바보가 있는 것이 증거? 현지어는 한 마디도 모르고 영어만 사용하는 여행자나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기가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워낙 교조적인 이야기이고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있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먹지 않거나(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벌레를 먹어야 한다) 오른쪽 차선 통행인데 죽어라고 왼쪽 차선으로 오토바이를 모는 것. 태국 같은 좋은 나라에 와서는, 외국에 나와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자기는 팍치도 잘 먹는다고 하면서 죽어라고 태국음식만 먹어대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가긴 마찬가지다. 이런 예를 보면 질이 떨어지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전 여행자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저녁에 땅화생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오징어에 대한 아내의 불가해한 정열로 인해: 오징어포 17, 생선포 16, 비스켓 스틱 9,
집에서 노상의 불량식품 스러운 수박 쥬스를 만들어 먹으려면 : 연유 18
꿰이띠오 남을 집에서 해 먹자: 쌀국수 3개 단가 6.75, 쁘라놈 소스 17.5, 고추 소스 11, 남 쁠라 18, 고추가루 15.25, 갈릭 파우더 27.5
아내가 월남쌈을 만들어 보겠단다 그래서 : 라이스 페이퍼 59
술먹은 다음날 꿀차? : 꿀 228
그리고 집에서 월남미로 카우 팟을... : 쌀 20

쌀 까지 산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들을 아내와 내 배낭에 나눠서 차곡차곡 쑤셔 넣었다. 남 쁠라를 매번 느억 맘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자주 했다. 남 쁠라는 참치나 멸치 등의 생선을 발효시켜(썩혀) 만든 생선 간장같은 것인데 태국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말하자면 핵심 컴포넌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쁘라놈은 달고 시고 매운 소스인데 남 쁠라와 마찬가지로 식탁에 항상 놓여 있다. 국수 먹을 때 마다 내오는 다섯 가지 소스 중 빠진 것은 고추기름과 고추 식초 절임인데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추 절임에 라임이 살짝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확실치 않다. 수퍼 마켓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향신료가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거리를 거닐다가 그리웠던 카우 카 무(족발덮밥)을 먹었다. 아내는 쌀국수 매니아다. 시공사의 Just Go 태국편을 잠깐 봤는데 대부분 나하고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음식 섹션 하나 만큼은 장관이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어디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국 음식 기행은 할만한 것이다. 이렇게 싸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태국 말고 다른 나라가 있을까 의문이다.

숙소에 들어왔다가 잠깐 나갔다. 빗속을 거닐어 홍익인간 앞에서 봉지 구아바를 샀다. 나보다 앞서 구아바를 산 용감한 한국인들이 이게 대체 무슨 과일인데 맛이 하나도 없냐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판매상은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중인데 내가 '알로에 막막'이란 말을 제대로 발음하도록 갖은 애를 썼다. 얌마, 정신차리고 구아바나 제대로 깎아라. 니가 지금 발음이 안 되는거야.

7/11

새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월텟에 들러 몇 가지 쇼핑을 하고 돈이 남으면 영화를 보고 마사지를 하고 수끼를 먹기로 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반 버스 대신 에이컨 버스를 타는 바람에 빠두남 시장에서 내렸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용산 전자 상가에 해당하는 빤팁 플라자에 들러 일 없이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월텟으로 갔다. 지갑을 몇 개 사려고 들렀지만 백화점이다 보니 흔해빠진 가오리 지갑이 1000밧이 넘어갔다. 50% 할인을 하더라도 500밧 가량?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것이라고 해서 뭔가 남다른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디자인, 평범한 박음질.

원래 가려고 했던 MBK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국에서 뭔가 물건을 살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는(본의아니게) 항상 MBK에 들렀다. 적당한 가격에 쓸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까. 선물, 기념품은 짜두짝 주말시장과 나라야 판, 이세탄, 센 백화점 따위를 전전했고 생필품을 살 때는 삔까오 다리 건너 있는 이름을 잊어버린 백화점과 짜두짝, 빠두남, 나이럿 시장, 카오산 옆 시장을 배회했다.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형편없는 곳은 언제나 카오산이었다. 카오산에서는 가짜 학생증을 만들거나, 가이드북이나 중고소설을 구매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착하자마자 팟 타이와 바나나 팬 케잌(로띠)을 먹는 장소였다. 방콕에 가면 매번 숙소를 수쿰윗에 잡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김없이 카오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직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때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MBK 6층 Thai Corporation 매장에서 코끼리 가죽 지갑을 샀다. 가오리 지갑이나 상어 가죽 지갑은 워낙 흔해빠진 아이템이라 희소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상어 가죽은 비싸다. 코끼리 가죽으로 밀어 붙이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선물하기로 했다 -- 휴가를 일주일 갔다오기로 했는데 일주일 더 놀았다. 지갑은 정가 600밧 가량 하는 것이고 잘 깎아봤자 300밧 정도 될 꺼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협상 솜씨는 여전히 눈부셨다. 개당 225밧 가량, 일곱 개를 샀다. 그리고 860밧 짜리 실크 삼각 베게를 600밧에 샀다. 협상이 가능하지만 마침 파는 곳이 거기 뿐이고 기념품 천지인(게다가 상점 점원들의 악어처럼 상큼한 미소) 나라야 판까지 가기는 이 더위에 거리가 멀다.

카오산에서 워낙 싸구려 같은 것들만 봐서인지 이 가게에서 산 것은 의외로 품질이 좋았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아내가 가지고 있던 65$ 미화 짜투리를 다 환전해서 간신히 물건들을 구매했다.

거대한 비닐봉투에 삼각 베게를 담고 묵직해진 보조 배낭을 어깨에 맨 채 다시 센트랄 월드 플라자로 향했다. 제철이 아니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데도 아내는 망고스텐을 먹고 싶단다. 정 먹고 싶으면 빅 씨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빅 씨의 단 한 코너에서 망고스텐을 팔고 있다. 껍질을 보아하니 맛이 간 것 같다. 실패할 것이 뻔해 반 케이지(kg)만 샀다. 그리고 저녁 대신 먹을 이런저런 식품들을 샀다. 바나나빵 6개(13), 초밥 세트(99), 구아바 쥬스(10), 벨프룻 쥬스(10), 드래곤 프룻 반 토막(9). 초밥을 맛 때문에 먹는 것은 아니다.


싸얌에서 월텟 쪽으로 가는 길에서 보는 철사 공예품 판매상. 몇 년이 지났건만 매번 그 자리에 있다.


이세탄 백화점. 이런 사진은 대체 왜...


방콕의 악명높은 교통 체증... 가변 차선... 아니다. 이 구간은 체증이 없다.


Big C 수퍼마켓의 과일 판매대

시간이 너무 지나 초조하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6시 무렵. 서둘러 숙소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고 복권청 앞에서 59번 버스를 기다렸다. 남은 돈은 34밧 뿐인데 59번 일반 버스는 올 생각을 안 한다. 돈이 모자라 탈 수 없는 59번 에어컨 버스는 벌써 두 대가 지나갔다. 기다린 지 50분이 지났다. 머칫까지의 교통 체증이 걱정되고 초조해서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오는 에어컨 버스를 탔다.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1034밧, 500밧 짜리 공항세 티켓 두 장을 사면 34밧 밖에 남지 않아 에어컨 버스 비용인 두당 20밧에서 6밧이 모자란다. 아내가 안내양에게 사정하자 옆에 있던 태국인이 10밧을 그냥 준다. 아내가 답례로 10밧 짜리 구아바 쥬스를 그에게 줬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면 가방에 잔뜩 들은 몇 가지 물건을 꺼내 태국인들에게 물건을 주고 모자란 돈을 얻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한심한 기분이었다. 바로 전에 레몬티만 마시지 않았어도 59번 에어컨 버스에 진작 탈 수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먹다 얼음만 남은 레몬티 봉지는 초밥을 차갑게 식히는데 쓸모가 있다. 초밥은 차가워야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카오산 옆 랏담넌 거리. 겁나게 피어오르는 구름.

아내는 짐을 부치고 나는 짐을 들고 비행기에 타기로 했다. 아내 비행기는 10.30pm에 떠나고 내가 타는 비행기는 11.15pm에 떠난다. 통로 옆 의자에 앉아 아까 BigC에서 산 음식들을 꺼내 펼쳐 놓고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니들 99밧 짜리 럭셔리한 초밥 도시락 먹어봤냐? 주머니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탑승대기실에 앉아 있다. pda를 꺼내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대기실은 한국인들의 수다로 시끄럽다. 지나가던 한국인이 아는 척 한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이다. 저장해 놓은 mp3를 들으며 이 글을 작성중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리얼타임 로그는 여기까지다.


공항에 앉아. PDA 속에 담긴 내 여행 기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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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보딩 패스를 내밀고 문을 나와 셔틀버스를 탔다. 이런 저런 비행기가 창 밖으로 보인다. 예전 숙소에서 봤던 아줌마가 아는 척을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 버스가 비행기를 향해 공항을 한가하게 운행하고 있을 때 PDA에서 마침 Mascagni,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3:31) 가 흘러 나왔다. 대화를 중단하고 음악을 들었다. 뭔가 사무치는 감정이 일었다. 이런 것이다; 항공권 본전도 제대로 못 뽑고 이 좋은 열대를 떠난다는...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아가씨들은 CA(cabin attendant가 맞다)가 하는 영어를 당체 알아듣지 못했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흘낏 쳐다보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다. '줄거리'라고 씌어있는 문서 뭉치를 읽고 있다. 옛날 중국 여행할 때 따리에 짱박혀 뭔가를 쓰고 있다는 작가인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이번 열대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황가나 아내에게 부처 얘기를 해 줬다. 옛날에 부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누린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설교를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물 위를 걷거나 치료기적을 행하거나 하다 못해 공중 제비 돌기 등의 아크로바트 하나 변변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다 쓸만한 제자 하나 없는 부처가 민심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도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두들이, 바바들이 있었다.

제자가 열댓명은 되야 그나마 한 가닥 하는 성자 축에 끼고 무슨 말을 하건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자기 패거리를 늘리기 위해 제자를 수집(구걸)하고 다녔다. 똘똘한 제자를 거느려야 성자의 후광도 그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팔정도 같은 것은 부처가 만들지도 않았다. 비교적 역사화가 잘 된 예수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똘똘한 제자들이야 말로 성자의 값어치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영성사업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키 포인트가 된다.

제자 수집 사업을 열심히 하다보니 오버했다. 그의 밑에 따르는 무리가 한떼거지가 되니까 부처 및 제자 일동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떼거지를 몰고 다니면 패권을 다투는 지역제후나 동종 업종(영성 사업)에 근무하는 바바지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그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부처가 워낙 유명한 성자다 보니 그의 그런 궁상은 잊혀지거나 무시당했다. 내가 그 얘기를 하는 동안 황가는 슈렉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내는 내가 또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NWD theory 같은 것을 차마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서양이 동양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류의 얘기들이 즐비했다. 동양의 정신적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에 관한 얘기다. 까보면 의외로 보잘 것 없는 정신성 나부랑이에 스스로 흡족해 하면서 과학기술에 비딱한 태도를 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은 아직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동양에만 특이한 스피리튜얼리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문화적 차이를 혼동하거나 착각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정신세계는 서양인들이 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뻥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도 정신적인 것들에 부정적인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지나치게 영적인 삶을 살아서 일께다. 마치, 청자라면서 흔해빠진 싸구려 개밥 그릇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서양인들이 그 개밥그릇을 보고 감탄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과 기분이 비슷했다. 아무튼 건강한 육신과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제대로 된 회의(skeptism)가 나온다.

아내가 오기 전부터 한 달 동안 고생하고 왔으니 편히 지내라고 먹을만한 식당을 물색했다. 황가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방콕에 있는 동안 사전답사도 하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태국에 오기 전부터 내 PDA에는 방콕의 유명한 식당 리스트와 여차하면 호텔에 들어가려고(아마리 워터게이트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 할인 바우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여행사 전화번호 따위를 저장해 두었다. 번번이 한 두 시간씩 일정이 늦어지고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고, 유명 식당 대신 25밧 짜리 국수를 파는 식당이나 노상에서 음식을 해결했다. 아내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스럽게 돈 몇푼에 조잔해지는 내 궁상(?)을 미리 알고(게다가 심하게 영적이라서 욕심이 없기까지 하다) 편한 숙소나 맛있는 음식을 부러 마다했다. 일정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쓸만한 레스토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번쯤은 호강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 반편에는 돈을 쳐발라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1500밧 짜리 호텔에 들어간 다음 카드 결제액수를 보고 신경질을 낼 꺼라고 부러 짐작했다. D-flawless나 스바로프스키, fossil 매장을 쓰레기 봉투같은 짐을 질질 끌면서 빈티나게 돌아다닐 때 비교적 값싼 다이아몬드나 괜찮은 시계를 사주고 싶었다. 단가 100$ 내외면 심하게 동양적인 내 영혼이나 아내의 불가해하고 이니그마틱한 영혼이 동시에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보잉 777-200 이 떴다. 보잉 777의 엔진은 ETOPS 롤스 로이스 엔진(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s)이다. 777은 사연 많은 비행기다. 시시한 기내식. 하지만 시시한 비행기. 다섯 시간 비행 후 오전 6: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이미그레이션을 광속으로 빠져나왔다.

아내가 먼저 도착해서 어라이벌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6800원 짜리 602번 버스를 타고 신촌역에서 내렸다. 비가 추절추절 내리고 있다. 집에 돌아와 배낭을 풀어 헤치고 방콕의 수퍼에서 산 각종 '생필품들'을 정리한 다음 오후 7시까지 내리 잤다.

깨어나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 드래곤 프룻과 밤이 있다. 배낭여행자는 세관에서도 검역에서도 잡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집이 불에 타 없어진 '파이트 클럽'적인 당황스러운 상황을 상상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 쓴 태국 휴가 기록을 살펴봤다. 잘못 적어놓거나 모호한 것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실수한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행 기간: 13일 (6.29 ~ 7.11)
항공료: 309000원 (세금 포함)
2주간 여행 경비: 420000원. 일평균 32300원(28$).
쇼핑(여행경비와 겹침): 3000 baht -> 8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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