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Hsipaw

여행기/Myanmar 2005. 4. 3. 14:27
6시 알람이 울렸다. 십오분쯤 잠자리에서 누워 있었다. 벌떡 일어나 샤워하고 짐을 챙기니 6시 45분. 늦겠다. 남은 옷가지들을 챙겨 얼른 체크아웃하고 버스 티켓 오피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근처 노점 야채상에서 토마토 두 개를 사 먹었다. 여행할 때는 본능적으로 야채나 과일을 찾았다. 밥은 안 먹어도 야채와 과일은 먹어야 한다.

버스 터미널까찌 승객을 실어나르는 픽업 트럭은 7시 십오분 출발. 7시 45분 버스 터미널에 도착. 짐을 꾸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버스는 여덟시 이십분이 되어서야 출발. 요마 익스프레스, 고속도로를 올라가는 이 버스의 바닥에는 상자들이 가득했다. 온갖 종류의 짐이 다 실리고 사람이 짐짝과 골고루 잘 섞여 빼곡히 들어찬 후에야 버스가 털털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 그러고도 굴러가는 것이 신통하다.

차가 핑우린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더위에 퍼진 차들이 즐비하게 길가에 늘어서 있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중고차다. 운전수들은 제각각 물병을 들고 라디에이터에 직접 뿌리거나 공구를 꺼내 엔진을 분해한 후 실린더를 한가하게 걸레로 닦고 있었다!! 이 나라 운전수들은 대체...

좌석이 좁아 역시 편히 자기는 글른 듯. 왠 중이 하나 다가와 미얀마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어릴 적에 출가해서 줄곳 중 생활을 해 왔는데 절간에서 대학을 마쳤단다. 총명하고 잘 생긴 친구라 절간에서 썩히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출가했으면서 왜 자기 여동생과 놀러 다니는 걸까. 날도 더운데.

만나는 미얀마 사람들마다 마치 누추한 집에 초대한 귀한 손님 맞듯이 나를 대하니 좀 불편했다. 중은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아 있는데도 졸졸 따라다니며 밥 먹을 때나 담배를 피울 때나 충심을 다해 도와주려고 애썼다.

내 옆에도 중이 하나 앉아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버스를 갈아타야 할 때, 멋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자기 갈 길을 안 가고 내가 버스 탈 때까지 도와줬다. 말은 안 통해도 고마운 작자들이다. 마치 이란에 온 듯한 기분. 대하면 대할 수록 미얀마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자기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사람 불편해 할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눈길을 안떼고 쳐다보고 있다가 '살며시' 도와주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런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미얀마가 잘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군부 독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많이 늦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앞으로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3세계 거북이들이 느릿느릿 움직일 동안 서구세계(서구화된 세계) 토끼들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버스가 해발 천여미터의 핑우린을 지날 무렵 잠시 시원했을 뿐, 얼레벌레 도착한 띠보 역시 어나더 더운타운(hot town)이었다. 별 정보 없이 왔으니 어디로 가야 하나 거리를 휘휘 둘러봐도 마땅히 보이는 것이 없어(그러나 가이드북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길 건너편의 Mr. Kid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갔다. 천오백짯(under 2$) 짜리 방을 보여준다. 얼씨구나 하고 잡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상관없다. 주인장이 지도를 건네주고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준다.


게스트하우스 리노베이션 중 -- 침대 매트리스를 가는 일. 새로 산 그 매트리스에 처음으로 자빠져 누운 놈이다.

차를 일곱시간 탔더니 드러난 피부에 먼지가 앉고 얼굴은 햇빛에 타서 시커멓고 콧구멍에서 검정때가 나왔다. 샤워 할까 하다가 시간이 얼마 없어 자전거를 빌렸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 2시간에 200짯(하루 종일은 400짯, 아쉽지만).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신나게 달려 두 마을을 방문, 동네방네 기웃거리며 '저 왔어요'하고 인사하고 다녔다. 인도였다면 어떤 꼬마가 날더러 헬로 하고 인사를 할 때 응수라도 한 마디 해 주면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쫓아오면서, 게다가 그 수가 점점 불어나, 헬로 헬로 미친듯이 짹짹거릴 터이지만, 이곳 동남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정하고 따뜻하달까. 아내가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은 후회할 만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곳인데...

하늘이 흐려 멋진 선셋을 뷰포인트에서 바라보기는 글른 것 같아 강변으로 내려가 빨래하는 동네 아줌마들과 동네 꼬마들이 물장구 치는 곳에서 옷을 벗고 강에 뛰어들었다. 동남아 치고는 덜 똥물이다, 아니 이 경우에는 맑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께다. 상쾌한 기분으로 병아리들을 괴롭히다가 더운타운으로 돌아왔다.

단 시간에 자갈길을 미친듯이 달렸더니 엉덩이 곳곳이 욱신거린다. 신사용 자전거다. 신사용 자전거로 폭 2-30cm의 자갈이 비쭉비쭉 돋아난 농로를 달렸다. 그 길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교차하기도 했다. 내가 자전거를 이리도 잘 탔던가? 옷가지에서 물이 두둑두둑 흘러내리고 봉두난발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샤워 하고 저녁 준비중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맞은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 지나면 강변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난다. 다만 그 곳이 공공 쓰레기 투기 장소라서 냄새가 좀 난달까...

마을(이 아니라 엄연히 도시지만)이 참 예쁘다.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까 하다가 내일 아침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빨래하고 잠시 자리에 앉아 쉬었다. 입고 다니는 옷이 하나 뿐이라 그 점이 좀 아쉽다. 빨고 나니 입을 것이 없어 이 더위에 츄리닝을 입고 있는 꼬라지라니.

츄리닝 입고 다시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 중국 음식점(Mr. Food)에 들러 터민쪼(볶음밥)와 800짯 짜리 만들래 비어 스트롱을 시켰다. 도시에서는 똑같은 맥주 한 병에 천이백짯을 받았다.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두 잔째, 알딸딸하다. 볶음밥을 정성 들여 만들었고, 맛도 있었다. 술을 더 먹을까 하다가 여행 초심 생각이 다시 나서 자제했다.

맞은편 식탁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앉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근처 농가 사람인 듯 한데 아내한테 호강 한 번 시켜 주려고 이 중국집에 들러 값비싼 음식을 시켜 먹은 것 같다. 단순히 알딸딸한 내 상상에 불과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미얀마 농민은 한 달에 30 달러를 못 번다. 그들이 시켜먹은 볶음밥 2인분과 여자 앞에 놓인 스타 콜라 한 병은 다 합쳐 0.8$ 가량 된다. 돌아갈 때 보니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없다. 남자가 앞서고 여자가 뒷서서 걸어간다. 내 상상일 따름이지만, 어쨌든 보기 좋다.

전기가 '덜' 들어오는 관계로 별빛이 화창하게 빛나는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생맥주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았다. 이 동네 정말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돌아다녀 본 도시 중 단연 순박함 만큼은 최고다. 그래서인지 실수 하는게 아닐까 싶다. 며칠 더 있다가도 괜찮은 동네다.

숙소에 도착하니 하나뿐인 외국인 손님인 나를 위해 발전기를 돌려 주셨다. 얼른 할 일을 마무리 짓고(남은 돈 세기, 일기 쓰기) 자리에 누웠다. 재빨리 불을 껏다. 발전기가 슬며시 멎는다. 주인 내외도 이제 자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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