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 해당되는 글 119건

  1. 2003.05.07 Panama blues 3
  2. 2003.05.06 Panama City 5
  3. 2003.05.05 Panama
  4. 2003.05.04 Costa Rica
  5. 2003.05.01 Granada 2
  6. 2003.04.30 Nicaragua 2
  7. 2003.04.28 La Ceiba에 있을 때 TV에서 1
  8. 2003.04.27 Tegucigalpa
  9. 2003.04.26 Isla Utila
  10. 2003.04.25 La Ceiba
  11. 2003.04.23 Copan Ruinas 1
  12. 2003.04.22 Honduras
  13. 2003.04.21 San Salvador
  14. 2003.04.21 El Salvador 2
  15. 2003.04.19 Guatemala City
  16. 2003.04.19 Chichicastenango
  17. 2003.04.17 San Pedro la Laguna 1
  18. 2003.04.16 Pickpocket 1
  19. 2003.04.14 lost in the volcano 3
  20. 2003.04.12 Antigua
  21. 2003.04.11 Tikal Ruinas
  22. 2003.04.11 to Guatemala 2
  23. 2003.04.10 Nightscene 2
  24. 2003.04.09 Banana Republic
  25. 2003.04.08 Isla Mujeres 2
  26. 2003.04.06 Chichen Itza, Cancun 1
  27. 2003.04.05 Uxmal
  28. 2003.04.04 Merida
  29. 2003.04.03 Palenque 2
  30. 2003.04.02 Palenque

Panama blues

여행기/Panama 2003. 5. 7. 15:36
킁킁. 어디서 한국인 냄새가 나는군. 혹시 중국인 냄새가 아닐까? 그러다가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를 보고 놀랐다. '서울식당'이라는 간판도 보였다. 좀 살만하다 싶은 동네다 싶으면 한국인이 없을 리가 없지. 두세 시간 어디라도 외딴 거리를 걸어보면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 저것 뒤져보니 파나마 시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기좋은 나라 3위 안에 든단다.

반바지 입기를 꺼리는 편인데 옷들이 땀에 절어 할 수 없이 그걸 입고 돌아다녔다. 공원에 앉아 있으니까 말을 걸어오는 곱상한 녀석이 있었다. 내 다리를 보더니 걷는 근육이 아니라 뛰는 근육이라고 말한다. 음? 난 뛴 적이 없는데. 그가 해변을 따라가는 조깅 코스를 소개해 주면서 다리를 만졌다. 잘 얘기하다가 기분이 언짢아 져서 너 호모섹슈얼이냐 그랬더니 왜요? 그러면 안되나요?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쳐다본다. 어휴... 그러면 안되지 자식아... 녀석의 팔을 아프게 꽉 쥐고 여자는 그냥 슬며시 피하는 정도지만 남자는 싫다고 말했다. 자기는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단다. 그러면서 되레 설교를 늘어 놓고는 클럽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꼬셨다. 마침 어제 본 세구리가드(사설 경호원)이 아는 척을 해서 그를 벤치에 앉혔다. 셋이 앉으니까 벤치가 좁다. 세구리가드가 호머더러 뭐라고 비웃는 듯한 호통을 지르니까 그가 일어서서 사라진다. 담배 한 대 내놔 봐. 세구리가드한테 담배를 얻고 내것을 줬다. 내껀 켄트 라이트인데 비싼거다. 이렇듯이 난 거지는 아니다. 나한테 호모가 꼬이는 것이 우스운지 낄낄 웃더니 저 녀석들은 도둑이라고 말한다. 그래 보이진 않았다. 어느 대도시에나 널려있는 외롭고 쓸쓸한 '여자' 중에 하나였을 것 같다.

번개가 심하게 치더니 비가 왔다. 어제와는 달리 그리 심하진 않았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1.25$ 짜리 식사를 했다. 시장에서 간간히 25센트짜리 식사를 보긴 했지만 튀긴 바나나와 쌀밥 한줌이라 그거 먹어서는 가다가 멎을 것 같았다.

사람들 표정이 무뚝뚝하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표정이 대체 이 모양이다.

여행사에 들러 항공권을 예매했다. 내일 항공권을 손에 쥘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학생증을 내밀고 10% 할인된 가격의 항공권을 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학생증이 가짜인 것이 탄로날 것 같다. 40불 아끼려다가 가짜 학생증을 빼앗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40불이면 큰 돈이라 학생증을 내밀고 도박을 했다. 지금은 항공권 가격이 300불이었는지 400불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심지어 항공권을 구매한 여행사 이름이나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사 아가씨가 예쁘고 수줍었던 것만 기억났다. 여행사를 이리저리 알아본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첫번째 여행사에 들어가서 덜컥 구매의사를 밝혔다. 경험상, 여행사별 항공권의 가격 차이가 5-10불 정도 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물론 아주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싶어도 알고 싶어하는 본능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 마음속 구석탱이 어딘가에서 이 정도면 적정가격이다 라고 푸른 불이 들어왔었다. 내일 항공권을 손에 쥐면 웃을 것이다. 아가씨에게 25센트 짜리 사탕 하나 줘야지...

다음날 여행사를 찾아가니 돈을 돌려준다. 구멍을 뚫어놓은 가짜 국제학생증과 함께. 어... 이거... 15불이나 주고 만든건데... 어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 여행사를 나왔다. 원래 304$을 돌려줘야 하는데 학생증에 구멍을 내서 미안했는지 307$을 돌려줬다. 3$ 먹었다. 다른 여행사 가서 예매했다. 학생증을 안 돌려줄 것 같다는 예감은 들었지만...

오늘도 우체국을 뺑뺑이 돌았다. 물건은 오지 않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지만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광장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거지들이 지나다니며 담배를 달라고 하거나(없어 새꺄) 호모가 옆에 앉아 다리를 쓰다듬거나 가끔은 예쁜 아가씨들이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모자 가장자리로 빗물이 뭉쳐 떨어졌다. 건물 처마에서 누군가 손짓한다. 이리와서 비를 피하란다. 그에게 머리 깎는 시늉을 하면서 이발소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5불 주고 머리를 깎았다. 한국에 잠깐 있을 때 미장원 아가씨가 여행 중에 머리 깎지 말고 돌아와서 깎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자기가 깎아 주겠다고. 터키 괴뢰메에서 깎은 머리 모양이 영 아니었나 보다. 이발사는 마쵸 스타일로 깎아줬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사진 찍고 페인트 샵으로 이리저리 노력을 기울여 봤지만 어떻게 해도 뽀사시가 나오지 않았다. 베트남 여행중에는 장동건 소리까지 들었는데 이렇게 망가지고 얼굴이 굳었구나... 생각하다가 얼굴이 더 굳어지고 말았다. 호모같은 자식이 집적대도 인상 긁지 말아야하나?

호주제가 폐지 된다니 기쁘다. 여성에게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법/제도는 다 뜯어고쳐야 한다.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어야 나같은 여성 차별 주의자가 상황에 굴절되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나저나 '유림' 분들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 같던데... 흠... 원래는 조선일보 전용 문구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또라이들이 소신을 가지고 있을 때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

Panama City

여행기/Panama 2003. 5. 6. 14:49
가물에 콩나듯이 가끔 말 붙여주는 현지인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어 심심하다. 담배가 있지만 거리에서 거지한테 담배를 얻어 피웠다. 그만큼 나도 줬다. 홍콩인들의 흡연 사스 예방론이라고 있다. '생고기는 쉽게 썩지만 훈제고기는 그렇지 않다'

깨보니 12시. 거리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공쳤다.

파나마시티는 우체국에서 집으로 우편이나 소포를 배달해주지 않는다. 우체국 안에 사서함을 개설해서 그리로 받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거리가 엉망진창이다. 번지나 건물 번호 같은 것이 아예 없었다. 길 이름이 두 블럭마다 바뀌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길 이름을 잘 모른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종단할 수 있는 길을 다섯 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오락가락했다. 비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물어물어 우체국을 찾아 거의 시 전역을 돌아다녔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체국 네 군데를 돌았다. 물건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세관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세관이라...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피나마 이외의 나라에서는 도난 사고가 잦아 받을 가능성이 낮았다. 이건 일종의 도박이다. 최장 3-4일은 더 머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될 것 같다.

비가 오니 우울하다. 꼬스따 리까부터 꼬미다 부페가 보여 한두 번 들락거렸다. 2-3불 정도면 먹을만한 양이 되었다. 밥 먹으니 기분이 그나마 나아졌다.

배터리까지 맛이 가는 것 같다. 충전을 시키면 1/3 정도 충전되다 말았다. 충전기, 충전지 어느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다. pda가 다시 맛이 갔다. 기계들이 하나둘 맛이 가면서 나를 희롱하는 것 같다. 충전지를 뜯었다. 인덕터스가 맛이 갔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파상을 찾았다. 인두와 납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그가 불쑥 영어로 말한다. 네 직업이 뭔지 알겠어. 하지만 이건 내 프로페션이야. 기술자들이란... 그에게 어디를 고칠지 알려줬다.

무슨 놈에 여행이 rpg 게임의 search and quest가 되가는 것 같다. 당면 과제: 충전기라는 아이템을 수리할 것. 우체국을 찾아낼 것. 항공사에서 적당한 가격의 항공권을 알아볼 것. 페루 자료 수집.

길거리에서 대형 x-men 2 포스터를 보았다. 극장 이름이나 위치가 적혀있지 않다. 흠.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키는군. 또다른 퀘스특 되려나. 거리 이름도, 극장 이름도, 극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극장을 물어 찾아내서 한번 보고 싶다.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물가가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인터넷은 시간당 0.5$ 밖에 안 한다. 거리에서 조그만 과일 쥬스 한 잔 마시는 가격이다. 중미 전역에서 가장 싸다. 호텔은 10불 정도면 묵을만한 곳들이 많다. 내일쯤 더 좋은 호텔로 옮겨볼 생각이다. 2불 더 주고 욕실과 에어컨이 달린 곳으로. 이럴 때 호강해보지 언제 호강한다냐... 나중에 예산 정리하면서는, 빠나마시티는 숙소값이 비싸서 어쩔 수가 없었지. 라고 자조하면 될 것 같다. 다음 날 호텔을 옮겼다. 전등에서 전기를 끌어썼다. 전화기까지 놓여 있었다. 글쎄.. isp만 알면... 인터넷을... 침대에 누워...

파나마에 왔는데 운하를 안 보고 갈 수 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운하 보려면 미라플로레스 락스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가면 된다. 쉽다. 운하는 이미 tv로 많이 봤다. 옛날 옛날에 자금성 만들었던 중국인들이 빠나마 운하를 만들었다. 안 봐도 훌륭하게 잘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홍콩인들은 알콜이 사스 균을 예방해준다는 낭설에 심취해 있다. 보라, 죽어라고 술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사스에 안 걸리지 않냐? 하면서. 홍콩 사람들은 정말 멋지다.

빠나마에서는 요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별걸 다 한다. 신호등이 있어서 거리를 횡단할 때 괴로움을 느꼈다. 중동에서 길들인 버릇 때문인지 차들이 달리는 거리로 뛰어들어 시간차를 절묘하게 활용하여 건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옛날에 하던 개구리 게임처럼.

게임에서 살아남은 개구리가 되고 싶다.
자, 움직이자.
,

Panama

여행기/Costa Rica 2003. 5. 5. 18:14
San Jose -> border -> Panama City

복사한 론리의 파나마 섹션을 들쳐 보았다. 가이드북을 살펴봐도 싸게 먹히지가 않는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고 돈도 많이 들고... 하는 수 없이 투어 버스를 잡으러 갔다. 투어 버스의 가격은 17$, 내가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8$), 손수 국경을 건너고, 늦은 밤이라 차가 없으니 국경마을에서 1박 하고(6-7$) 다음날 파나마 시티로 가면(10$) 투어 버스 타는 편이 편하다. 표를 사는데 옆에 있던 멕시칸이 영어로 당신 왕복 티켓을 사야지 국경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알고 있지만 편도 티켓을 샀다. 왕복 티켓은 40불이나 해서 거지가 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돈이 별로 없다.


버스를 탔는데 옆 자리에 앉은 작자가 영어를 할 줄 안다. 아... 얼마나 오랫만에 들어보는 제대로 된 영어냐... 읽고 있는 책이 심상치가 않다. 중미 근현대사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 자락에는 소니의 MD 플레이어가 달려 있었다. 잘 사는구나... 꼬스따 리까 사람인데 직장이 파나마에 있단다. 그와 어쩌다가 중미의 경제 사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생각하는 중미의 경제는 정치와 지나치게 맞물려 있어 암울하다는 것이다. 멕시코는 괜찮지 않나? 했더니 실실 웃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의 가장 큰 문제는 국부가 계속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멕시칸은 돈을 좀 벌면 모두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고 또 미국으로 넘어갔다. 또한 미국인의 투자러시가 지속되면서 멕시코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이미 잠식했다는 것도 있었다. 멕시코인이 미국 비자를 받기가 워낙 까다로운 관계로 멕시코 부모들은 국경을 넘어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선물'한다고 했다. 왜 자꾸 미국으로 가려고 하느냐 하면 정치적인 불안감 때문이란다. 멕시코 의회나 대통령의 권한이 워낙 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서 누가 방아쇠만 한번 당기면 곧바로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국경에서 이민국 통과와 짐검사 따위로 2시간을 보냈다. 이민국 관리가 징그럽게 생겼다. 빠나마 이민국에서 뜬금없이 날더러 한국 돈을 보여달란다. 여권만으로는 당신이 북한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믿을 수 없단다.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었지만 내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터라 실랑이만 벌이고 있을 수가 없다. 배낭에서 한국돈 5000원 짜리를 꺼내 보여주니 자기한테 달라고 한다. 줄 수 없다고 우겼다. 이 자식이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10분이 흘렀다. 내가 졌다. 한국 동전 100원 짜리를 던져주고 투어리스크 카드를 사서 다시 스탬프를 찍으려고 이민국 관리 앞에 섰다. 밤 9시다. 그 자식이 스탬프 찍어주길 망설이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왕복 티켓 얘기가 나오면 어쩌나 속으로 좀 캥겼다. 날더러 인지를 사란다. 앞 사람이 사길래 별 생각 없이 1달러 짜리 인지를 샀다. 서류 작성비 2불을 내란다. 못주겠다고 말했다. 벌써 15분이 넘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너 이름이 뭐야? 라고 물으니까 마지못해 여권을 건네주면서 실실 웃는다.

배고파 죽겠는데 돈은 없고... 남은 꼬스따 리까 동전으로 빵 두 개를 사서 먹었다. 버스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했다. 인지는 꼬스따 리까 국민들이나 사는 것이다. 5불짜리 투어리스트 카드만 사면 되는 것이다.

빠나마 시티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썰렁하다. 어쩌라는거여... 물어물어 호텔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찍어둔 숙소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니 너무 멀다. 택시 타기는 싫고... 하는 수 없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 그럭저럭 쓸만한 숙소를 잡았다. 8불이나 들었지만 방에 TV가 있다는 점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잠 자고 일어나 인터넷 까페부터 찾았다. email을 작성해서 파나마 관광청과 이민국 앞으로 보냈다. 대통령 email 주소는 못 찾았다. 하자가 없음에도 인지 판매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내가 멍청했다는 얘기지만 그런 낌새는 비추지 않았다. 국경 이민 사무소 놈들 어디 한번 엿먹어 봐라. 과연 엿먹을까? 엿먹었으면 좋겠다.
,

Costa Rica

여행기/Costa Rica 2003. 5. 4. 11:34
Granada -> Rivas -> Panas Blancas -> border -> Costa Rica San Jose

5월 2일은 오이 먹는 날. 그래서 vitamin C가 풍부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오이를 먹었다. 니카라구아 오이맛은 최~악~이다.

나와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대박이다. -- 어느 음반 기획자가 로또 말고도 우리 인생이 행복해야 할 '망할' 이유들이 많다며 하는 말.

언제나 대박? 맛없는 오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멜론을 먹고 싶어도 부담스러운 크기 때문에 과일 칵테일류만 먹었다. 오렌지 한두 쪽, 멜론 한두 쪽, 수박 한두 쪽, 파인애플 쪼가리가 비닐봉지에 1킬로그램쯤 들어있는 한화 300원짜리 비타민과 섬유질 덩어리. 천성적으로 과일과 야채에 '친화력'을 가진 여자들과 달리 남자애들이 여행하면서 말라가는 것은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하도록 도와주는 비타민의 섭취를 등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열대지방에서 열대과일의 비타민은 일종의 생명선 같은 것이다. 여자들이 과일과 채소에 집착하는 것은 그간 문명의 발달이나 인류 진화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듯.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봐주려는 노력이 있어서 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당신 인생은 대박이고 내 여행은 쪽박이다. 이 더위에 살 빠지면 맛이 갈 것 같아서 밥은 걸러도 과일을 챙겨 먹는다.

국경 이동이 잦아 최근 늘 긴장해 있다. 긴장해 있으므로 현지인을 대하는 것이 뻣뻣하다. 한밤중에 지나가던 술 취한 아저씨가 내가 떨구고 잊은 담배를 줏어준다. 히죽 웃는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니카라구아인은 친절했다. 니까라구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에 하나니까 친절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엘 살바도르나 온두라스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에스빠뇰만 좀 할 줄 알면 재밌을 것 같은 나라다. 수퍼에서 아줌마가 쇼핑에나 전념할 것이지 옆에서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묻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대충 짐작해보니 어떻게 니카라구아에 왔냐는 질문인 것 같다. 말도 못하는 바보 취급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영어도 한국어도 스페인어도 안하고 그냥 바보같이 어버어버 거렸다. 친니, 라면서 아줌마들 끼리 무슨 놀라운 것이라도 발견한 양 자기들끼리 열심히 쑥덕거린다. 부질없는데 관심 두는 것이나 당사자를 바보로 만들어 소외시키는 것은 한국의 아줌마들하고 똑같다.

눈에 띄는 현상만 보건대, 중미인들이 숫자 계산에 약한 것 같다. 지난 3일 동안 경험한 것들; 케이스 1: 수퍼에서 10.25가 나와 20 짜리 지폐와 50짜리 동전을 주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설이다가 50짜리 동전을 돌려주고 9장의 지폐와 50짜리 동전과 25짜리 동전을 거슬러줬다. 딜버트를 보면 엔지니어들의 영 바보스러운 버릇 중에 하나가 상대방의 편의를 배려해준답시고 내가 하듯이 해서 계산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던데, '숫자에 밝은' 엔지니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인들이 다 그러지 않나 싶다. 동전이 싫다. 환전이 안되니까 거지한테 줘야 한다. 어떤 거지는 외국돈이라며 사절하기도 했다. -_-

케이스 2: 국경으로 가는 버스에서 계산이 잘못 되었다. 버스비가 얼마냐고 물으니까 15란다. 잔돈이 없어 100 짜리를 주니 20짜리 다섯장과 5짜리 동전을 건네준다. 100-15=105가 되었다. 왜 이러나. 돈도 남고 해서 버스가 잠깐 섰을 때 바구니를 든 아줌마에게 아구아 데 오차따(Agua de Hochata; 쌀 가루와 계피 가루를 타서 얼음을 넣은 물)를 샀다. 3 꼬르도바 짜리인데 잔돈이 없단다. 그래서 과자 2개를 더 샀더니 20짜리를 받아 11을 돌려준다. 13을 돌려줘야 맞지만 그 동안 중미인들이 보여준 친절에 보답할 겸 그냥 넘어갔다. 1 꼬르도바는 0.06896551724138 달러다.

케이스 3: 피씨방 주인이 계산을 잘못해서 콜라값을 빼먹었고 2시간을 사용했는데 1시간 10분 사용한 비용만 받았다. 다시 들렀을 때는 내가 얼마를 사용했는지 되려 나한테 물어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두 시간 썼지만 한 시간 비용만 냈다. 이렇게 돈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웃으며 고객에게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의 모습이 몹시 흐뭇하다. 피씨방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이유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였다. 울컥.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내 오렌지 쥬스를 누가 다 마셨다. 여행자가 몇 명 있는데 가만히만 있으면 아는 척 하지 않아서 좋다. 다들 가만히 있는다. 그라나다 시내에서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싼 숙소라 여기 들어오는 작자들은 대충 서로 서로가 어떤 사람들인지 말 안해도 알고 있는 것 같다. 혼자 다니고, 허름한 옷차림에 음식을 늘 해먹고, 일 없이 시간을 잘 때우는 모습을 보면 그간 얼마나 굴러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냉장고에서 남의 재료를 조금만 슬쩍 해서 활용하는 것조차 '장기 여행자의 도'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서로 여행 얘기는 입도 뻥끗 않는다. 오늘 숙소에서 상영하는 영화 제목이 하루 일정을 결정하기도 하고...

부엌을 남김없이 활용하는 재주 중 하나는, 냄비선점이다. 냄비에 뭔가를 남겨놓고 악착같이 내주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다. 나도 최근에 이들로부터 배웠다. 우리는 샤워실에 있는 누구것인지 모르는 작자의 비누를 돌려 가면서 사용했는데 어느새 다 닳아 버렸다. 세탁대의 세탁 비누도 마찬가지다.

숙소 중앙의 작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형형색색의 빨랫줄만 봐도 그렇다. 피차 돈이 없으니까 빨래를 론드리에 맡겨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 중남미에서는 론드리가 싸지만 이 숙소에 모인 거지들은 이 더위에 땀을 꾸역꾸역 흘려가면서도 빨래를 했다.

그 돈을 아껴서 맛있는 바나나 스플릿 같은 것을 사 먹을 때 쓰는 것이다. 숙소에 있는 친구들을 시내에서 가장 싼 식당에서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약간 머쓱하다. 어떻게 여길 귀신같이 알고 찾아왔지...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그 가게에서 제일 싸고 양 많은 똑같은 메뉴라는 점이다... 물을 공짜로 준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으면... 으...

아이스크림 집이 문을 열지 않아서 몹시 안타까웠다. 값싸고 양 많아서 한끼 식사로 충분한 바나나 스플릿을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바나나 스플릿은 아이스크림계의 꽃 중의 꽃인데 그라나다에서 틈틈이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골고루 섭렵하면서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것이다. 거리를 샅샅이 뒤져 그 아이스크림의 본점을 이미 파악해 둔 상태였다. 각국의 바나나 스플릿을 먹어보는 것이야 말로 중미 맛따라 길따라의 기본 정석이라고 믿는다. 중미 아이스크림은 값이 싸면서도 품질이 수준급이다.

꼬스따 리까에 가면 엑스맨2를 볼 수 있을까? 마그네토가 인체의 철분을 뽑아서 무기를 만들어 감방을 탈출한다던데... 요즘 생체 자석이 말을 안 들어서 길에서 종종 헤멨다. 북쪽(자북)으로의 쏠림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체내에 철분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그라나다에 부동산 가게가 많은 이유를 꼬스따 리까에서 알게 된 것 같다. 꼬스따 리까는 살기 좋은 나라다. 그래서 정착해서 살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이 많아 부동산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여파가 니까라구아까지 건너간 것 같다.

-*-

다음날 국경을 건넜다. tica international bus를 타면 전처럼 편하게 넘을 수 있지만 비자 문제가 나 모르게 처리되는게 마음에 걸려 혼자 넘기로 했다. 버스 두 번 갈아 타고 니까라구아 출국장에 가니 이민국이 세 개가 있어 그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삽질했다. 꼬스따 리까 이민국에서 입국신청할 때 사람들이 리턴 티켓을 들고 있어서 불안했다. 리턴 티켓을 제시해야지만 입국시킨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국경에서 니까라구아행 티켓을 판다나... 돈 들어서 사기는 싫고, 종이 한 장 줏어와 반쯤 접어 마치 티켓인 양 다른 사람들처럼 손에 쥐고 있었다. 여권을 살펴보던 작자가 파키스탄 비자에 멈칫한다. 또야? 환장하겠군. 파키스탄 사람들 착하기만 한데... 창구 너머로 나를 흘낏 쳐다본다. 미소를 짓고 손을 들어 '티켓'을 슬쩍 흔들어보였다. 무사히 넘겼다. 티켓 검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안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있어 보이는 티를 내야 할 것 같다. 그렇잖아도 국경 넘을 때와 대사관 갈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꾸했다.

스탬프를 보니 꼬스따 리까 공짜 비자가 90일 짜리다. 비싸기만 하고 딱히 볼 것도 없고 그링고들이 우글거리는 나라라 2-3일 머물다가 파나마로 갈 생각이다. 휴게실 매점 아줌마의 영어 솜씨가 유창하다. 남은 동전은 환전할 수가 없었는데 아줌마가 음료수 사면 환전해 준단다. 아침부터 과일 칵테일 먹은 것 빼고 쫄쫄 굶었다. 숙소 냉장고에 있는 내 오렌지 쥬스와 우유를 누가 다 먹어서 콘플레이크를 그냥 먹기가 뭣해서 놔두고 왔다. 간만에 콘 플레이크 좀 먹어볼까 했는데...

산 호세까지의 버스표를 샀다. 계산해 보니 티카버스는 22불인데 이렇게 혼자 넘으니까 8불 들었다. 흐뭇하다. 한 시간 반쯤 멍하니 앉아 산 호세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pda도 날아가고, 책이라고 있는 것은 가이드북 달랑 하나라 할 일이 없다. 암케가 꼬리를 세우고 나다니는 것을 보니 꼬스따 리까의 경제 사정이 좋고 국민들이 행복한가 보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짐 검사를 좀 심하게 했다.

국경을 넘자마자 어쩌면 이렇게 풍광이 확 달라질 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시원스러운 들판이 펼쳐졌다. 모두 잔디밭이었다. 간간히 그 잔디밭 위에 축구 골대가 덜렁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잔디밭 만들기는 쉬울 것 같다. 풀밭에 소 한두 마리 풀어 놓기만 하면 다음날 말끔해지니까. 음... 축구장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랄 수도 있겠다. 관중들이 화장지를 던지면 그 사이를 소들이 지나다니며 줏어 먹는다던지... 해가 지고 있다. 고생스럽게 빨리 이동할 필요는 없는데,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경치 보는 것이 재미있다.

졸다 차가 멈춰 깨어보면 경찰의 검문, 가는 길에 검문만 다섯 번, 그래서 5시간 걸린다는 버스가 6시간 30분 걸렸다. 차에서 내리니 저녁 8시가 다 되어 거리에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럽다. 내린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고도는 1100m, 3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에서 연평균 기온이 24도인 곳에 오니 쌀쌀하다. 발걸음을 서둘러 한참 걸으니 중심가가 나왔고 사람들이 지나 다녀 안심했다. 가장 싼 숙소를 잡고 근처 중국집에서 광둥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식당이 보통 소란스러운 것이 아닌데 다르게 보면 사람들이 활기차달까. 바나 테이블에 빈 맥주병이 그득하다. 중국 음식점이 정말 많다.

테드 치앙이 상을 받았다. 처음 테드 치앙 글을 읽었을 때 상 받을 글 쓰는 타입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렉 이건을 좋아할 줄 알았다. 테드 치앙 같은 작가는 그렉 이건처럼 시대를 선도하는 오리지널리티를 생산하는 작가를 좋아할 것 같았다. 한 시대를 앞서간(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전격 하드보일드 막 나가자 sf를 썼던 그렉 이건의 폭력적인 상상력이야 말로 진정한 sf 사나이의 로망이다.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sf를 그닥 재밌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단편집 보는 내내 하품을 했다. 구한말 공룡 씨나락 까먹는 구리터분한 얘기를 머가 지금 봐도 신선하다는 건지. 21세기에 불사판매주식회사를 읽는 것만큼 하품 나온다. 차라리 라엘리언 사이트와 안티 라엘리언 사이트를 찾아서 논쟁을 읽는 것이 더 나았다. 어서 빨리 라엘리언 재단에서 클론을 대량 생산해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엿먹여 주길 바라는 편이다. 라엘 재단은 장생, 불노불사(냉동수면 연구도 포함해서), 인간복제, 외계인과의 교류, 프리섹스 등 재밌는 것들만 콕 집어서 다 해먹고 있는 관계로 미워하기가 힘든 집단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앎으로부터의 자유에서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배우려는 자는 언제나 중고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쳤다. '믿음과 이상은 부정직한 삶을 만든다'고도 했다. 믿음과 이상은 '앎'이라는 '착각'으로부터 온다. 참고로 크리슈나무르티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중고가 된다. 최신판 인간이 되고 싶으면 그의 주장은 흘려들어야 한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슬쩍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사실 인간은 중고라는 점이다. 중고면 어때? 중고는 값이 싸고 부서져도 안타깝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여튼 주관적인 인식으로 우주라는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지난한 과정을 통해) 크리슈나무르티가 한 말이 그가 한 말이 아닌 자신이 한 말이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의 의도가 그것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크리슈나무르티는 항상 자유에 관해 이야기 했는데(그는 평생 자유를 추구했던 관계로 부인을 비롯한 여자 관계가 안 좋았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배움과 삶을 강박관념이 아닌(삶과 배움은 때때로 강박적이다. 심지어는 대박 운운 하며 예찬할 필요가 없는 삶을 예찬하는 행위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위 등) 애시당초 '자유로운'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과 연결시키고 싶어했다. 각성을 통하여 자연스러움으로의 회귀. 글쎄다. '앎' 만큼이나 희망이자 착각으로 보인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술은 껍데기에 설탕을 발라놓은 고급 궤변에 속한다고 보았다. 언어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술을 포함하여, 제한적인 삶을 투영하는 제한적인 도구이다. 역으로 말해 언술이 삶 자체가 되고 힘이 되는 소수도 있게 마련이다.

말(앎)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자유로운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자신이나 타인은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면 된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가 직관과 통찰을 얻었다는 뜻이 된다. 자신은 그렇다 치고 타인이 그가 자유로운지 아는 방법은 그럼 무엇일까? 간단하다. 타인 역시 직관과 통찰을 얻어 자유로운 자의 머리를 꿰뚫어보고 즉각적이고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인지하면 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자는 자유로운 자를 알아볼 수 있다. 피차 초능력자들이니까. 인류가 모두 초능력자라면 기아나 전쟁은 없을 것이고 저 남자가 저 여자와 자고 싶어한다는 것을 전 인류가 다 함께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이 자유로워 지려면 초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대개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럴 일이 없으니까 자유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자유 없이도 만족할 만한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이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음에도 자유 운운 하고 말았다. 왜 했을까? 안 해도 되는데. 이왕 사는 김에 자유도 한 번 얻어 보자고 결심한 사람들이(수요가) 의외로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는 '앎으로부터의 자유'를 써서 벌어들인 인세 수입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얻었을 것 같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의도했던 것은 그런 길로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였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직관과 통찰은 누구의 도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얻는 보석이니까. 이쯤 막 나가다 보니 갑자기 골다 메이어의 주장이 생각났다; 겸손할 것 없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올더스 헉슬리도 그랬다. '45년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학습했는데, 이런 말을 하기가 조금은 부끄럽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충고는 각자에게 조금만 친절하라는 것이다.' 두 양반의 말에 힘입어 하고 싶은 말은, 여행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희안하게도 참 많아서 웃긴다는 것이고, 내가 30년 동안 갈고 닦은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불친절하게 간단히 말하면, 조까고 있네 쯤이 되겠다.

nucleus(core) 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음... 정말 이상한 영화였다.

한국 음식점이 있다는 가이드북의 '주장'을 믿고 어렵게 찾아갔는데 중국집이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광둥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홧김에 맥주도 시켜 먹었다. 뭐 가장 값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배낭식이니까. TT 이놈에 가이드북의 레스토랑 섹션 만큼은 확 찢어버리고 싶다.
,

Granada

여행기/Nicaragua 2003. 5. 1. 20:01
더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체온이 1도 상승하면 신진대사가 10% 가량 증가하고 그에 따라 500~1000ml의 수분이 더 필요하단다. 체온을 낮추기 위해 얼음을 넣은 코코아물로 버티고 있다. 코코아물은 마시고 비닐봉지에 든 얼음을 목덜미에 얹어 다니니까 애들이 웃는다. 우기가 시작된 줄 알았는데 아직 며칠 더 남았다. 어서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

에어컨이 그리워서 숙소를 전전해봤지만 지금 묵고 있는 숙소보다 비싸서(도미토리가 7.5$, 지금 있는 숙소는 선풍기가 있는 싱글로 4$) 가기가 꺼려진다. 여행중 만난 한국인이 추천해준 호스텔에는 풀장이 있고 인터넷이 30분 동안 무료다. 생까고 마구 써도 될 것 같다. PS2가 있어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복도 곳곳에는 해먹도 있었다. 도미토리를 살펴보니 A/C 아우틀렛이 없다. 그래서 안 갔다.

이 작고 매혹적인 식민지풍의 도시에 있는 건물들이 멕시코에 있는 식민지풍 건물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처마의 폭이다. 도로 쪽으로 난 처마가 넓어서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려준다. 마음에 든다. 대신 2층이 없고 따라서 꽃 장식을 해 놓은 작은 베란다가 없다.

같은 식민지풍 건물인데도 조금씩 차이가 눈에 띈다. 식민지, 스페인 풍 건물은 길거리로 난 벽면에 창문 몇개 달랑 달려 있고 출입구가 정문 하나, 건너편 길쪽으로 쪽문이 하나 달려 있다. 입구 안은 일종의 리셉션이고 리셉션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면 빠르께(정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복도가 있고 복도를 따라 방들이 있다. 바깥의 소음과는 달리 안은 조용하고 시원하다. 한켠에는 물을 담아놓는 커다란 콘크리트 수통이 있고 거기서 빨래를 할 수 있다.



니카라구아 식민풍 건물의 내부에는 복도를 따라 많은 수의 흔들의자와 해먹이 놓여 있다. 때로 벽에 무랄을 그려놓는다. 색감은 전반적으로 얘네들 먹는 푸르고 붉은 망고와 닮았다. 열대임에도 건물 내부에는 모기가 없다. 높은 천정 탓에 언제나 바람이 불어 습기를 날려 버리고 모기 또한 조용히 쓸어버리는 것 같다. 벽은 일반적으로 속이 빈 콘크리트인데 겉에 회벽을 두껍게 발라 벌레가 잘 기어다니지 않는 것 같다. 벽돌도 물론 사용했다. 언젠가 벽돌 굽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대체로 잘 굽는 편은 아니다. 벽돌을 제대로 구우려면 벽돌집을 쌓아 내부에서 불길이 골고루 번지도록 통퐁로를 잘 만들어줘야 하는데 벽돌을 굽다가 심한 열변형으로 벽돌집이 무너지거나 풍로를 작게 만들고 벽돌을 두껍게 쌓아 한쪽만 심하게 그을리고 부르튼 벽돌을 만들었다. 정원에 꽃은 잘 키우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용 자재나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 성의가 없어서 좀 안타깝달까. 내가 십장이거나 공사 감독이었으면 즉각 잘라버리고 값비싼 한국인 인부를 투입했을 것이다. 일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가장 상위 층에는 방수도료나 고무를 발라야 하는데 안 바른다. 비가 많이 안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붕과 천정 사이에 배수로를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지은 집이 그 모양이라 제대로 짓지 않은 집은 껍데기는 멀쩡해 보여도 영 꽝이다. 지진나면 틀림없이 무너질 얇은 벽과 물이 샐 구석이 너무 많고 지붕과 천정 사이는 대낮의 열기로 열지옥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여튼 높은 천정을 만든 것은 잘한 것이지만 높은 천정에 걸맞는 건축이 아니라서 유감스럽다.

그라나다에서 눈에 많이 띄는 것은 해괴하게도 부동산 가게였다.

틈틈이 입력하고 있는 라틴위키가 여기를 여행하게 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인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중남미는 누워서 떡먹기랄까... 인도나 여타 여행지와 다른 점이라면 동선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택시를 타지 않을꺼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 아, 달리 말해 나는 상당한 체력을 지녔다. 4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들고 32도를 오락가락하는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 다니니까.

bLog는 자폐증 환자들의 노출증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 같은데 홈페이지의 조회수가 45일 동안 2700회가 나와서 대단하다. 같은 코스를 밟는 여행자들이 이 blog를 봐주고 어디 가 보라고 제안이나 충고를 해줬으면 싶은데, 중미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씨가 마른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안녕하세요?' 라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크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미국인, 한국에서 얼마간 놀았고... 별 관심없는데 자꾸 말을 시켜 도망가느라 애먹었다. 좀 고독하게 내비두면 좋겠다. 대신 니카라구아 애들과 놀았다.


멋있어 보이려고 인상을 긁긴... 니카라구아인들은 여자에게 쓸데없이 친절한 것만 빼면 한국인과 많이 비슷해 보인다.

볼거리가 없다. 볼거리는 멕시코와 과떼말라에서 모두 끝장난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일없이 도시 사이를 잇는 기분 밖에 들지 않는다. 거대한 니까라구아 호수를 보고 나니 오떼뻬께 섬에 안 들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스따 리까로 직행이다. 호수나 섬이나 화산이나 정글 같은 거 말고 좀 더 신선한 것 없을까? 모험과 로맨스가 있고 24시간 편의점과 24도의 쾌적한 온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친절한 상어와 열대어가 우글거리는 잔잔한 초호 바다, 5분 거리에 쏘가리가 잡히는 맑은 시냇물, 거리에는 친절한 아랍인 장사꾼들, 식당에서 타이음식과 베트남 음식과 광둥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 있고, 삐끼는 인도스럽고 숙소비는 이집트처럼 싸고 멕시코처럼 손쉽게 맛있는 맥주를 구할 수 있고, 여행자 거리에는 미국인과 이스라엘리가 전혀 안 보이고, 숙소는 산 뻬드로 라 라구나처럼 한가하고, 현지 여자들이 나같은 동양인에게 반갑게 꼬리치는 그런 여행지 없나?

책 10권 만드는데 15만원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다. 여행 끝나면 여행기를 제대로 손봐서 책자로 만들어 친지들에게 나눠줄까 보다. 진작 알았으면 처음 여행 시작할 때부터 여행기를 제대로 써둘껄 그랬다.

hawler monkey가 뭔지 알았다. congo다. 띠깔에서 그들의 괴괴한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쫓아가서 돌이라도 던져보는 건데... 아쉽다.

더위를 무릅쓰고 거의 아비규환에 가까운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닭을 잘라서 판매하는 가판을 발견. 앗. 오늘은 백숙이나 해먹자. 최근에 배운 것을 토대로 잘린 부위가 분홍색인 것을 골랐다. 싱싱한 닭은 분홍색이라고 하더라. 이것 저것 재료를 다 사니 25꼬르도바(1.7$). 흐뭇. 한국인에게 고춧가루를 받은 것이 있어서 제대로 된 오이절임과 제대로 된 것 같은 무지 매운 닭죽을 해 먹었다. 용기 있어 보이는 외국애에게 맛 보게 해 주었더니 오 쉿! 이라고 외쳤다. 참고로 외국인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오 쉿 !이라고 외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맵단다. 그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두 그릇을 해치웠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위장이 얼얼하다. 콧물이 나왔다. 닭죽 먹으니까 살 것 같다.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수준이다.

담배를 물고 신문을 들여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멜론 사러 시장 갔다가 마땅한 놈이 보이지 않아 정처없이 걷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세 시간 동안 계란 네 개 사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못 산 채 거리를 헤맸다. 한심하다.

니카라구아 인은 친절하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니면 한 블럭이나 두 블럭 쯤은 우습게 지나쳤다. 멕시코서부터 중미인들의 뛰어난 방향감각과 거리 감각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냥 친절하기만 했다. 정확하게 친절했으면 더더욱 좋겠다.

사내 대탐험/데이브 베리 지음/조경숙 옮김/아름드리미디어 -- "이 책은 여성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이해시켜주므로." -- 놀고 있네.

페로몬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페로몬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개미나 벌같은, 그러니까... 벌레같은 인간이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나오는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 이런 홈페이지나 보고 있다니... 우윽... 인터넷이 워낙 빨라서 마음에 든다.

여행 오기 전에 iRiver의 Flash Memory MP3 Player를 사려고 고심했었다. 안 산 것이 후회스럽다.
,

Nicaragua

여행기/Nicaragua 2003. 4. 30. 09:54
Tegucigalpa -> border -> Nicaragua Managua -> Granada

한산한 밤거리에서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은 거지와 강도와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는 마약상들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일년 동안 강도만 세 번을 당하고 소매치기는 다섯 번, 마리화나를 파는 작자들을 마약상 취급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거나 가내수공업 약재상 패밀리는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만났다. 또 있다. 거리의 여자들. 모두 슬기롭게 대응해서 돈 한푼 잃지 않았다. 거참... 한편으로는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몸이 솜뭉치 같아 걸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택시를 탔다. 약발이 워낙 쎄서 헤롱거린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몸이 좋아진 다음에는 내 몸이 그동안 얼마나 나빴는지 잘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알코올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몸이 알코올을 예전처럼 좋아하길 빌었다. 그 와중에도 택시를 잡아 협상했다. 그래 이놈아 나는 꼬레아노다. 꼬레아노는 다 나같은 놈들이다. 기사가 거지나 그 돈으로 불쌍해서 태워준다고 직직거렸다. 어젯밤 틈내서 게스트하우스 주인한테 택시비 다 물어본거지만 입을 다물고 실실 웃었다. 뭐 그냥 한국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 온두라스를 박살내면 그만이다.

비자 문제 만큼은 신경을 곤두 세우는데 비자 정책이 자주 바뀐다는 니카라구아의 외교부 홈페이지에 가보니 그렇잖아도 스트레스 돋게 만드는 에스빠뇰로 잔뜩 적어 놨다. 용어의 특성상(특히나 외교용어의 특성상) 영어로 적어 놓은 것도 이매모호해서 알다가도 모를 지경인데 간간히 아는 단어가 눈에 띄는 에스빠뇰 문서라면 짜증만 돋굴 뿐이다. 외교용어라... 이를테면 기분좋게 '당신은 웰컴이에요'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이런 이런 포말리티가 필요하며 이런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제한은 이러이러하다 라는 원칙론을 적어놓는데(애매하게) 실제 가서 영사나 사무관을 만나면 제한조건은 거의 없거나 명시적일 뿐 실무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엄포용이다. 우리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여 라는. 여행자/관광객은 별다른 꼬투리가 없으면 비자가 쉽게 나온다. 그리고 그 꼬투리라는 것들은 언제나 이유가 부족하므로 허점이 많아 헛점을 잘 캐치해서 강짜를 부리다보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경험상, 이성적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니카라구아 대사관에서 발급하는 비자는 25불 짜리인데 몸도 성치 않고, 여러 경험자들이 국경에서 받았다길래 국경에서 받기로 했다. 미친 가이드북은 대사관에서 받을 것을 권고했지만 얘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몸이 천당에 가 있으니 안전빵하게 투어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경에서 비자 발급 없이 투어리스트 카드를 10$에 발급해준다. 음? 왜 10$일까 싶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앞에서 얼쩡거렸는데 5$가 맞을 것 같아 왠지 속이 탔다. 투어버스라서 출국수속과 입국수속을 안해서 좋은데 비자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가 없다. 말이야 뭐 늘 안 통했으니까 그렇다치고. 이 망한 놈들은 왜 영어를 안 하는겨? 돈을 걷어가서 1시간 반 기다리니까 자기들이 서류까지 다 써서 한꺼번에 처리해서 가져온다. 물론 그걸 노린 것이긴 했지만 왠지 투어버스라는 것이 탐탁치가 않다. 쓰잘데 없이 미묘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차장 녀석은 내 패스포트를 들춰 보지도 않고 내게 건네준다. 다른 서양인들은 일일이 이름을 불러 여권을 돌려주면서. 녀석이 나를 기억한다는 뜻인데... 과떼말라 때부터 국경에서 이상하게 관심을 받았다. 파키스탄, 시리아 비자 때문인가? 내 얼굴을 보라고. 나쁜 짓하고는 거리가 멀게 생겼잖아. 국경에서 패스포트를 들출 때마다, 파키스탄 비자에서 멈칫하는 사무관들의 야릇하게 바뀌는 표정을 볼 때마다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환전상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눴다. 주로 숫자로 대화했다. 2003/4/29 고지환율은 1 USD 당 14.75 니까라구안 꼬르도바인데 14.50 정도까지 언급해서 흔쾌히 환전했다. 기분좋은 거래다. 환차손은 100불 기준 1.6$ 가량. 대단히 훌륭한 환율인데 요르단-이집트 국경에서 관리가 뉴스 볼 시간이 없어 잘못 알고 있던 덕에 공식환율보다 더 높게 받은 이후로는 환차손이 가장 적은 케이스다. 그만큼 양심적인 장사꾼이랄까? 엘 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 넘어올 때 환전상이 계산기로 장난을 쳤다. 기괴한 계산기였는데 10/2=4가 나오는 식이었다. 확인하지 않았으면 깜빡 넘어갈 뻔 했다. 어쨌거나 그때는 환차손이 너무 커서 안했다. 계산기에 무슨 조작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나도 배워서 써먹고 싶은데.

국경에서 기다리는 동안 서양 여자들 다리통을 보니 내 다리만큼 말이 아니다. 대체 뭐에 물렸기에 이 지경이 되었냐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개미라고 알려주니 반신반의한다. 당신 나무로 지은 집에서 잤지? 그렇단다. 한 여자는 워낙 긁어서 피멍이 들었다. 칼라민 연고가 소용이 없단다. 글쎄, 칼라민 연고가 소용없다는 말을 두어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럼 왜 그 약을 판매하는 것이고 왜 그 약이 벌레 물린데 치료제로 광범위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일까? 벼룩과 모기와 샌드플라이와 개미가 짖밟고 지나간 흔적들 사이의 차이를 말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만큼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없었다. 다 물려 봤으니까. 말 나온 김에 피부를 뚫고 자기 알을 낳는 벌레도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한 여자애는 자기 남자 친구랑 안 돌아다녀본데가 없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이 벼룩 저 벼룩 얘기를 늘어놓았다. 난 왠지 저러고 싶지가 않다. 약을 나눠줬다. 한 알에 0.7$나 하는 비싼 약인데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거 먹으면 쓰러지니까 자기 전에 먹으라고 당부했다. 난 정말 쓰러질 지경이었다. 버스에 올라 한 알을 삼키고 연구 좀 하다가 세상 모르게 잤다.


가장 쉽게 통과한 국경 되겠다. 국경에서 내려 한 시간 반쯤 기다렸다가 다시 투어버스를 탄 것이 고작이니까. 국경을 넘어 니카라구아 들어서서 시간 계산을 잘 해보니까 잘만하면 마나구아에서 바로 그라나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나구아는 나중에 또 들르게 될테니까. 그렇게 했다. 버스에서 내려 달겨드는 택시기사들과 쇼부를 쳐서 1$ 주고 4킬로쯤 떨어진 터미널로 향했다. 보통 2~3$ 정도 한다는 조언을 여행자들에게 들었는데 어째 인도에서처럼 협상이 내 뜻 대로 '합리적이고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게' 진행되어서 마음에 든다. 약 기운에 제정신도 아닌데. 그라나다행 완행 버스에 오른 시각이 저녁 6시. 미적미적 대는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도착하니 8시. 가게문을 다 닫아 텅빈 거리를 바짝 긴장한 채 30분쯤 걸어(헤메어) 싼 숙소(기쁨과 함께)에 도착.

그라나다는 밤에 안전한 도시같다. 엘 살바도르나 온두라스에 비하면 잘 사는 나라같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밤에 군경이 사방에 깔려있어 나다니기가 좀 캥기는 곳이었다. 그나저나 덕택에 하루종일 굶었다. 가게문을 다 닫아 뭘 먹을 형편이 안된다. 배는 고프고... 어쩔 수 없이 밤 늦은 시각까지 여는 비싸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밤늦은 시간에나 먹는 그저그런 음식을 시켜 먹었다. 오픈 테라스라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식사 한 끼로 어제, 오늘 삐끼들과 투쟁해서 아껴 모은 돈을 가볍게 날려버렸다. 하는 짓이 매번 이랬다. 절약해서 밥값으로 날리기.

음식이 맛있기나 하면 투정을 안 부리지!

숙소에 누워 오늘의 유머(조선일보)를 봤다. 며칠전보다는 증세가 호전된 것 같다.
,
La Ceiba에 있을 때 TV에서 farscape란 SF 드라마를 봤다. 대충 훌터보니 지구인 우주 비행사가 재수없게 웜홀에 빠져들어 엉뚱한 외계인들 한 통속과 돌아다니며 자기가 속한 세계로 돌아가기를 고대한다는... 그런 얘기인 것 같은데 재미있어 보였다. 돌아갈 곳이 없거나 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서 한가해진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온두라스 정보 정리. 온두라스 사진

한 프로그래머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어떤 잡지의 인터뷰에 밝히고 나서 DoD는 그가 손보고 있던 OpenBSD 개발자금을 중단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가 되어 만들고 손질하고 있는 openbsd가 국방성에서 미사일의 os로 탑재되는 것을 탐탁치않게 생각했고 그래서 국방성에 밉보여 한 마디로 짤린 것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i love the universe. it doesn't love me back. but that's okay.

돌아다니다가 어느 홈페이지에서 본 말.

1. 우주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2. 그냥 일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사랑하려면 보통 용기나 정성이 아닌 것 같다.
3. 나는, 지나가는 개미들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실없이 히죽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4. 사랑 받는 편이 사랑하는 편보다 편하지 않나? 사랑받지 않을 때도 생활에 별 무리는 없다. 여자들은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지만.
5. 그래서 저 문장들을 다시 재구성해 보았다. the universe doesn't love me. that's okay/fine/even nice.
6. 5항을 적어 놓고 보니까 내 정신상태와 훨씬 접근한 것 같다.

꽃의 유혹/샤먼 앱트 러셀/이제이북스 - 샤먼 앱트 러셀은 화원 한 가운데 서 있다가 열정적으로 섹스를 나누는(거의 무차별적으로) 꽃들에 둘러싸여 민망해서 얼굴을 붉힌 채 몸둘 바를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꽃을 사랑한다. 꽃들이 그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꽃들이 그에게 꽃잎을 유혹적으로 흔들려 애교를 떨었으리라고는 상상이 불가능) that's okay 내지는 no problem이었을 것이다.

우주나 꽃들에게 사랑받았던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했을까? 인류의 지성을 총 동원해도 아직은 밝힐 수 없는 문제다. 대개의 인류는 우주나 꽃들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사랑이 없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음. 우주가 인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인류는 망했을 지도 모른다. <-- 이런 주장은 심지어 최근의 과학자들까지도 한다. 과학자들 버젼의 목적론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가능성 속에서 인간이 나타났다는 것이고 마치 인간을 위해서, 우주가 존재한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조차 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인간이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같은 이유로, 꽃들이 더이상 인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인류는 멸종할지도 모른다. 나를 심하게 물어뜯은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에 물었다?

며칠 전에 후세인이 자신의 궁전 은밀한 곳으로 종종 외계인을 초청했으며 후세인이 갑자기 증발한 것은 외계인들이 그를 데려갔기 때문이라는 이라크인들 사이의 소문을 들었다.

꽃들이 나를 사랑한다거나 후세인이 외계인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이나 잠시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관해 말하다보면 어느새 바보로 되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을 생각한답시고 자꾸 말하다보면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불쌍한 바보들을 위해서 '바보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있는 행위이며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는 먼저 우리가 바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다'... 라는 위로를 하자는 것인지 희롱하자는 것인지 하는 주장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먹으면서 생각했다. 접시 한가득 나온 볶음밥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최소한 3인분은 되는 양이었다. 2인분까지는 어떻게 되었지만...

4월 25일부터 멕시코에서 즉시 발급해 주던 과떼말라 비자가 약 3주 이상 소여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본국의 허가를 받는 기간이 그렇다는 얘기고 비자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본국의 심사 여부를... 기가 막혔다. 시리아 때도 그렇더니만 과떼말라 마저... 그럼 과떼말라를 마지막으로 통과한 사람이 나와 나 다음으로 다음 날 국경을 넘은 어떤 한국 아가씨, 둘 뿐이라는 얘긴데... 그러고보니 그 아가씨가 국경에서 나를 기억하고 내 얘기를 하더란다. 내가 운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액운을 몰고 다니는 것인가.

산 빼드로 라 라구나 같은, 배낭여행자에게는 환상적인 곳에 못가게 된 사람들이 왠지 불쌍하다...
,

Tegucigalpa

여행기/Honduras 2003. 4. 27. 12:02
San Pedro Sula -> Tegucigalpa

수년 전 태풍 미치가 온두라스의 국토를 초토화한 후 별다른 국가적 제도적 장치의 보호가 없었던 온두라스 시민들은 집과 닭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온두라스 수탉은 한국의 장닭처럼 멋있게 생겼다. 닭을 잃은 농부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흉악한 절도/강도 사고가 무수히 발생하는 탓에 왠간하면 거리에서 걷지 말고 택시를 타길 충고한다. 주변국의 실정에 비추어 택시값이 워낙 싸기도 했다. 개중에서 콜렉티보라 불리는 '더럽게 싼' 택시들은 마치 이란의 사바리처럼 정해진 주행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1킬로미터쯤 가는데 0.2$ 가량. 대부분의 시민들은 언제 올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버스 보다는 택시를 더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택시비보다 음료비를 더 많이 쓰면서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바닷물에 담궈놓은 듯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도 뙤약볕 아래서 삐거덕 거리는 고물 로봇처럼 전진했다. 숙소로, 식당으로, 버스 터미널로, 광장으로.

태양이 가장 격렬하게 활동하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가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태양의 고도가 45도를 넘은 3시부터 해가 지기 1시간 전인 4시 반 정도까지가 가장 땀이 많이 흐르는 때다. 광선의 각도가 변화하면서 빛이 닿는 신체의 면적이 증가하고 대기를 뚫고 들어오는 태양광 중 자외선은 공기와 부유 입자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지고 대기와 먼지를 뚫고 전진하는 적외선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적외선은 쉽사리 몸을 뚫고 들어와 내장과 근육의 온도를 꾸준히 높이면서 몸을 행주 비틀듯이 땀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땀으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적어도 2리터 이상의 물과 음료를 마셨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딱히 건조한 날씨가 아님에도 흡수된 수분은 빠른 속도로 체외로 빠져나가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습도는 90% 이상 올라갔다. 피는 피를 부르고... 아니지, 땀은 땀을 부르고... 수분이 피부를 덥자 땀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할 열은 몸 안으로 되돌아간다. 덥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다...

볼거리 하나 없는 가엾은 거리를 할일 없는 개처럼 배회했다. 이 동네의 볼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민들을 가난으로 몰아놓은 천연덕스럽고 아름다운 주위의 자연 환경이다. 전 국토의 80 퍼센트 이상이 가파른 산악이라 농작물을 키울 형편이 안된다. 열대 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보이는 과일은 극단적으로 종수가 적다. 바나나, 망고,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사과가 거의 전부다.

개미한테 심각하게 물어뜯긴 팔다리가 가려워서 안티셉틱/안티히스타민을 구해야 하는데 마침 토요일, 일요일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다. 대체 얼마나 피곤했길래 섬에서 개미에게 그렇게 물려 뜯기면서도 곤히 잠들 수 있었을까. 피곤한 것이 당연한가? 왠만하면 무식하게 걸어 다녔으니. 하여튼 벼룩이나 모기도 아니고 개미한테 물리다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모기, 벼룩은 그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할 수 있었다. 벼룩이 찌를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 하고. 그 지독한 개미산 때문에 빨갛게 부풀어오른 작은 종기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워 참느라고 더 미칠 지경이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에어컨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일요일이라서 오후 3시 반 차 하나 밖에 없단다. 표 파는 아가씨는 도도했고 난 몹시 안타까왔다. 아픈데... 되돌아서 온 거리만큼 꾸역꾸역 다시 걸었다. 그나마 오전이라 땀이 많이 나지 않았다. 한 시간쯤 기다려 히터를 켜놓은 듯한 버스에 올랐다. 순서대로 약을 삼켰다. 기침/진해라고 씌어진 것 두 알과 진통제 500mg과 항생제 500mg.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배합과 똑 같다. 이 품종의 기침/진해약(안티히스타민)은 단 한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한 방에 뿅 가는 액티피드가 내게는 아주 잘 맞았다.

항생제 기운이 퍼지면서 슬슬 행복해지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차가 달린다. 10분도 안되어 시내를 빠져나간다. 차에 탄 사람들은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인다. 지금 빠져 나온 도시는 온두라스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다. 걸어서 25분이면 종단 내지는 횡단할 수 있다. 지금은 온두라스에서 첫번 째로 큰 도시인 떼구시갈빠로 향하는 중이다. 사람들이 떼구시갈빠라는 이름을 들어보기나 해 봤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진 cloud forest의 풍광은 더없이 위협적이고 아름답다. 차창 밖이라...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후덥지근한 열풍이 얼굴에 와 닿는다. 버스가 1초라도 멈추면 이마에서 주르륵 땀줄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있는 시민들의 염원은 한결 같다. 제발 계속 달려주기를, 열풍이라도 좋으니까, 차 안에서 풍기는 각종 냄새를 날려주시고...

고개를 돌렸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온두라스는 마치 열대판 설악산 같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허리에 정글 칼을 찬 메스티소(스패니시+인디언)와 가리푸나(인디언+흑인)가 나란히 도로 옆을 걷고 있다. 정복자 스패니시의 체면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 대단한 색욕에 삼가 경의를 표했다. 불과 다섯 세대 만에 온두라스 인구의 75%가 메스티소가 되었다. 첫 세대에 스패니시 한 마리가 몇 명의 토착 인디언 여성을 능욕해야지 2200만의 인구 중 75%가 혼혈이 될까. 세대당 평균 자녀수와 출산율과 사망율을 알면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약 기운에 기분이 좋아져서 만사가 귀찮다.

비몽사몽에 산자락 위로 떠오른 뭉게구름을 쳐다 보았다. 푸른색이다. 사진기를 더듬다가 관뒀다. 어차피 찍히지 않을텐데 뭐... 푸른색 구름을 두번째로 본다.

찢어지게 가난한 이 나라의 도로 시스템이 마치 전문가가 시공한 것처럼 정교한 이유를 알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개입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 때문이다. 이 정교한 도로망은 미국이 깔아준 것이다. 이를테면 도로의 회전반경이라던가 슬로프, 아스팔트의 두께 따위를 유지하는 토목공사는 선진 기술, 특히 측량과 설계, 시공과 그만한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돈이 없는 온두라스가 만일 도로를 자체적으로 건설했다면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처럼 아스팔트를 깔긴 깔았으되 설계하지 않고 대충 깔은 울퉁불퉁하고 괴상한 도로였어야 한다. 정글칼과 소 달구지로는 도로의 속도 한계를 계산한 후 설계한 이런 종류의 도로를 만들지 못한다. 너무 무시했나? 이 도로는 온두라스의 비참한 미국 현대 식민 역사로 보여서 그렇다.

온두라스인은 혁명을 통해 나라를 독립시키고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 최소한 그래 보인다. 태풍 미치만 아니었더라면, 아니 근본적으로 미국과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부패한 군부 독재 정권만 아니었더라면 온두라스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을까? 온두라스에는 혁명과 개혁을 짖밟은 미국이 있었다. 이 나라 걱정해 주러 여행온 것은 아니지만... 온두라스는 아마도... 레바논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꼬라지로 봐서는 발전속도가 참으로 더딜 것 같아 보인다... 안된 얘기지만 별다른 기적이 없는 한 동남 아시아권역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자력갱생으로 향하는 길이 저 밀림과 산세를 뚫고 나아가는 것처럼 험난해 보인다...

우띨라 섬에서 허겁지겁 빠져 나온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날 저녁 무슨 파티에 초대 받았었다. 분위기가 이상한 섬이었고 그 이상하다는 분위기의 대부분이 온두라스와는 다른, 정상적이지 못한 것임을 막연하게 감지했다. 어쩐지 그 섬은 미국인이 사들이고 그들의 이기적인 커뮤니티를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찌감치 빠져 나와서(파티에 안 갔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없었지만 혹시라도 우띨라 섬의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변칙적인' '비온두라스적인' 부분에 관해 딴 사람들에게도 좀 들어봐야겠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고? 중동 여행 끝나고 나서 그 동안 쓰고 다니던 노란 색안경은 버리고 지금은 색없는 안경 쓰고 다닌다. 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와 깐꾼은 서양, 특히 미국 여행자들이 판을 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떼말라의 치치까스떼낭고는 별명이 그링고떼낭고다. 그것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 둘은 각자의 문화라든가 삶의 양식에서 그 나라의 보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또한 미국적이라는 특성이 외부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우띨라에서는 거꾸로 '온두라스틱'하면서 온두라스의 보편적인 도시와는 아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관광지라던가 그런 부분이 아니라 가끔 여행자를 잡아서 인신 공양을 드리고 증거가 안 남게 나머지 살과 뼈는 잘 갈아 쏘세지로 만들어 파는 듯한...

멕시코가 미국과 캐나다를 엮는 북미권 자유 무역 협정의 기본 골격을 마련하고 곧 실현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멕시코는 중미 국가가 아니고 북미 국가다. 멕시코는 그 나라가 지닌 수많은 불가피한 행운에 하나 더 역사적인 행운을 타고났다. 지정학적으로 '돈버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중미로부터 원자재 수입과 싼 노동력을 이용해 북미라는 거대한 하이엔드 마켓에 팔아 먹거나 또는 그 반대도 되고. 21세기에 멕시코만큼 희망찬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헤롱거리면서 이런 저런 잡상을 떠올리다보니 아무도 이름을 기억해 줄 것 같지 않은 온두라스의 수도 떼구시갈빠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LA의 'HOLLY WOOD'라는 글자처럼 저 멀리 맞은 편 언덕 위에 하얀 글씨로 씌여진 대형 간판이 보였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Coca Cola


착취를 일삼았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군부 독재 정권 지원과... 내가 느낀 우띨라의 이상스러운 분위기에 대한 온두라스인의 답변은, Coca Cola Siempre(Coca Cola Always)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웃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내 편견이 웃음꺼리가 된 것이다.
,

Isla Utila

여행기/Honduras 2003. 4. 26. 19:13
La Ceiba -> Isla Utila -> San Pedro Sula

선착장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버스도 없고... 배 시간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50 렘피라(3$ 가량) 정도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정가는 25렘피라였다. 이거야 원.

배 타고 섬에 진입할 때 부터 영... 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쿠버가 아니면 별로 오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은 섬이었다. 작은 해변이 한 둘 있고 근처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볼거리였다. 해변에는 샌드플라이가 우글거렸다. 대낮에는 샌드플라이에게 뜯기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개미들에게 뜯겼다. 특히 개미한테 물린 정도가 워낙 심해 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밤새도록 뜯겼다. 다음 날, 마침 배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서 바로 짐 싸들고 섬을 나와 산 뻬드로 술라로 향했다.

산 뻬드로 술라에서 괜찮은 숙소를 싼 값에 잡고 샌드플라이와 개미한테 얼마나 물렸나 살펴보니 이건 좀 심했다. 왼팔에만 80방쯤, 오른팔, 다리, 허리, 목 부위까지 합치면 수백군데를 뜯긴 것 같다. 육보시 한 번 징하게 했다. 개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섬이 좀 실망스러워 만사(스쿠버, 스노클링, 해변에서의 한가한 오후) 다 포기하고 나왔다. 원래 계획은 적어도 4-5일은 짱박혀서 논다는 것.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에서 그래보지 못했으니까. 거기서 뭘 기대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뭔가, 여태까지 가봤던 섬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걸 해변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보잘 것 없는 해변에서 한숨이 나왔달까...

캐리비언 최고의 섬 중 하나라는데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라... 인터넷 가격이 시간당 5$~10$로 지난 1년 가량의 여행 중 최고의 물가를 자랑했다. 스쿠버 비용이 가장 싼 곳 중 하나라는데 여러 모로 비교해봐도 뭐가 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이빙을 안 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워낙 섬이 마음에 안 들어서 후회스럽지는 않다. 가까운 태국에서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으니까.

무척 덥다. 남미로 내려갈 때 까지는 이 더위에 한동안 정신 못 차리겠지.
,

La Ceiba

여행기/Honduras 2003. 4. 25. 12:10
Copan Ruinas -> San Pedro Sula -> La Ceiba

어제 만났던 한국인은 과테말라 비자를 국경에서 받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다. 남미 쪽에서 비자 받아 올라오기가 힘든 듯. 방을 같이 썼다. http://www.wowlife.net

꼬빤 루이나스에서 중국 음식점을 발견하고 저녁을 거기서 먹었다. 중국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양과 맛에서 사람을 감동시킨다. 지금까지 먹은 중국 음식 중 접시를 다 비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La Ceiba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으러 배낭을 매고 한 시간 반을 돌아다녔다. 싼 숙소가 안 보이거나 싼 숙소는 너무 싼 탓인지(2$ 가량) 머물기 꺼려졌다.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자로 사면 벽을 대충 막고 천정을 덮은 로맨틱한 방인데 아름답고 지저분한 침대가 하나만 달랑 놓여있고 창문이 없다. 전등이 없다. 바닥은... 환경친화적인 흙바닥이었다. 문명의 도시에서 날문명 내지는 비문명을 힐끗 쳐다본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막연히 시내를 헤메다가 그라스를 파는 잘 생기고 자메이카식 영어를 하는 믈라토의 도움으로 찾아보려던 숙소를 포기할 수 있었다. 그의 영어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치 레게를 듣는 것처럼 리드미컬한 영어였다. 토킹을 뮤직으로 만든 것 같다. 하여튼 믈라토의 말에 따르면 그 숙소는 시내에 있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헤메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시내와 버스 터미널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가이드북이 깜빡 잊고 안 적어 놓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땀으로 걸죽하게 목욕하며 운동 하니까 건강은 점점 좋아지기만 한다. LP의 지도를 보고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LP에는 길 이름도 없었고 길 위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길을 찾을까. 택시를 탈까? 택시를 딱 한 번 타봤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국의 거리를 이해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지만 내가 먹은 음식들도 위장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소화될 것 같았다.

몹시 더웠다. 흠뻑 젖었다. 어깨가 쑤신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내를 돌자 하다가 운 좋게 100 (5.8$) 짜리 아주 깨끗한 더블을 얻었다. 시내의 더럽고 지저분한 방이 10$ 가량이었는데 훨씬 낫다. 멋진 실링팬과 TV가 있었다. TV 있는 방에서 자보기는 중미 여행 중 처음이다. 호텔 부페에서 음식을 사와 베란다에서 garafono라는 사람들의 삶을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내가 택한 숙소 근처의 거리는 더럽고 지저분해서 하룻밤을 간신히 잘만 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럴듯한 말이다. 판자촌 한가운데니까. 밤이 되자 한 가라포노가 다른 가라포노를 때렸다. 남자 가라포노는 여자 가라포노를 울리기도 했다. 여러 여자 가라포노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바가지를 긁는 모습도 보였다.

경로 짜야 하는데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한된 시간에 남미에서 하나만 제대로 본다면 페루가 나온다. 엄한 곳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페루와 볼리비아만 가자고 일단은 정했다. 이 재미없고 시시한 중미는 어쨌거나 빠져 나가야 하는데, 정말 귀찮아 죽겠다.

멕시코의 깐꾼에서 운이 좋았다. 버스를 타던 날 섬머타임을 실시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한 시간 일찍 가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탔다. 아구가 맞아 떨어진다. 빨렝게에서 과떼말라로 넘어올 때 왜 한 시간 일찍 깨우러 왔는지... 같은 투어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기습적으로 섬머타임을 실시한 멕시코 정부 탓이다.
,

Copan Ruinas

여행기/Honduras 2003. 4. 23. 19:29
어제 여행 중 두번째로 한국인을 만났다. 그는 남미에서 중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맥주를 좀 마시면서 남미의 가볼만한 곳들을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다 까먹었다. 아아... 형편없는 기억력이란...

꼬빤 유적지가 중요한 것은 마야 유적지 중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sculpture 때문인 듯 싶은데 그저 그랬고 폐허의 규모가 아담해서 2시간 정도면 유적지 전체를 꼼꼼이 둘러볼 수 있었다. 유적지의 입장료만 10불, 터널의 프레스코인지 아니면 부조인지를 보는데 12불을 더 내야 하고 박물관 관람에 다시 10불, 온두라스가 꼬빤 유적지로 관광객을 등쳐 먹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이렇게 조그마한 유적지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마야 유적 중 입장료가 가장 비싸다는 점이 희안하다. 내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는건가. 1830년에 발견되어 카네기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부 복구가 진행되다가 온두라스 정부가 맡기 시작, 그런데 지난 170년 동안 대체 뭘 했다는 것인지... 입장료가 비싸서 유적지만 보았다. 워낙 조그마한 유적지라 유적지 전체를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마땅히 낮잠을 즐기고 쉴만한 곳을 찾지 못해 일찌감치 나왔다.


유적지 입구에서 본 앵무새들

지금까지 돌아본 마야 유적지 순위 메기기: 띠깔, 치첸 이사, 빨렝게, 우스말, 꼬빤. (뚤룸, 보남빠크 등은 안 갔는데, 안 가길 잘했다)

우리나라 남자 직장인의 40.5%는 주 1회 이상 폭음하고, 7.3%는 거의 매일 폭음한다? 폭음의 기준이 고작 소주 한 병 또는 맥주 네 병을 마시는 것이라고... 그랬구나. 어제 맥주 네 병을 마시고 푹 잤던 이유가.

체질량지수 : 21.72(kg/m^2. (과체중 23이상, 비만 25이상. 비만관련 질활은 23~27 사이에서 급격히 증가) 혈압 120/75. 수치로 나타낸 내 건강은 극도로 좋다. 그래서 모기들이 내 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비타민은 어쩐지 체내에 축적 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비타민을 왕창 먹어도 내일은 내일의 비타민이 필요한 것이던가, 비타민 소비량이 매우 높던가.
,

Honduras

여행기/Honduras 2003. 4. 22. 18:53
San Salvador -> El Poy -> Honduras 국경 -> Ocotepeque -> La Entrada -> Copan Ruinas.

미친 가이드북의 횡설수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도를 그렸다. 잘만 하면 꼬빤까지 하루에 꾈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5.30am) 버스 터미널로 걷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국경으로. 거기서 정신없이 입출국 수속과 환전을 마치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탔다. 온두라스에서 탄 두 번째 버스의 운전수는 중간에 내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길 건너편을 보니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반가운 정경인데... 배고픈데 아침에 쿠키 다섯 개와 오렌지 쥬스 반 병을 먹었고 오는 길에 남은 포도로 끼니를 때웠다. 삶은 옥수수 하나가 0.1$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치고 산악을 휫감아도는 도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 훌륭한 도로 위로 말들이 지나간다. 가끔은 버스 같은 것도 지나갔다. 엘 살바도르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

San Salvador

여행기/El Salvador 2003. 4. 21. 18:50
아침부터 온두라스 대사관을 찾아 다녔다. 가이드북에 나온 주소는 옛날 것이고, 온두라스 대사관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난감하다. 용감하게 버스를 타고 거리에 내리긴 했는데 대책이 없네. 전화번호도 바뀌고... 무작정 걸었다. 인터넷 까페가 보이면 들어가 온두라스 대사관 주소를 확인해 볼 참이었다. 중간 중간 대략 3-40여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물었다. 결국 택시 한번 안 타고 땀 흘리며 걸어 대사관을 찾았다. 비자 발급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줌마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비자 스티커를 붙인 후 10달러 달라고 말한다. 감동했다.

대낮의, 멀쩡한 대로에서 술 취한 작자가 시비를 건다. 무시하고 가려니 모자를 나꿔챈다. 본의 아니게 인상을 구겼다. 기분이 나빠져서 안경을 벗었다. 거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반쯤 일어섰다. 생략. 가던 길을 갔다. 그나저나 도시 분위기가 왜 이 모양일까. 7000번의 지진이 나는 동안 시민들의 두개골이 심하게 흔들려서 정신이 어떻게 된건가? 아니겠지. 술 취한 녀석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굳이 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다.

미친 가이드북이 산 살바도르를 이렇게 묘사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지만 그 짧은 동안에 경험하게 되는 산 살바도르 시민의 친절과 미소는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이다.'

아무렴.

엘 살바도르 사진
,

El Salvador

여행기/El Salvador 2003. 4. 21. 11:02
8.20am. 늦게 일어났다. 대충 씻고 체크아웃했다. 걷기 싫어서 매연을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산 살바도르행 버스에 올랐다. 2시간 반쯤 아름다운 풍경을 달리자 다리가 나타났다. 국경인가 보다. 출입국 수속은 어이없게 간단했다.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엘 살바도르에 비자나 투어리스트 카드 없이 들어갈 수 있다지만 제대로 출입국을 한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삐끼가 환전하라고 달라붙었지만 하지 않았다. 38불 어치를 28불에 환전 해준다니 도둑놈이 따로 없다. 협상이 잘 안되고 일요일이라 은행이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과떼말라 꿰찰을 그냥 들고 버스에 올랐다.

산 살바도르에 내렸지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 더위에 또 걷고 싶지는 않아 물어물어 시내 버스를 탔다. 달러를 사용할 수 있다길래 급한 김에 달러를 내미니 달러로 거슬러준다. 허거덕.

숙소까지 걸었다. 긴장했다. 공원에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실업자처럼 보였다. 지진과 내전 때문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서 무장 강도가 판을 친다나? 과떼말라 시티의 사설 경호원 숫자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숫자의 사설 경호원들이 가게 곳곳에 널려 있었다. 경찰은 방탄복을 입고... 어? 저 총은 k2 잖아?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며 유심히 쳐다보니 살벌한 눈빛이 되돌아온다. 선량한 시민은 관심 끄고 조용히 꺼져 주십쇼 하는 듯한.

숙소에 짐을 내려놓았지만 일요일이라 딱히 할 일이 없다. 볼거리도 없는 나라다. 거리를 세 시간쯤 돌아다녔다. 시장통을 빼고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쩌면 그런 거리를 돌아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물어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알아듣질 못한다. 아니면 엘 살바도르 최대의 대학은 시민의 관심꺼리가 못 되던가.

간간이 골목에서 불쑥 나타나 말을 걸어온 다섯 중 넷은 평범한 거지였고 하나는 구걸이 아니라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는 인상 드러운 녀석이다. 소리를 꽥 지르며 돌로레스! 라고 외친다. 하핫. 중미 1개월이면 에스파뇰을 안다고, 돌로레스가 무슨 뜻인지 알지. dollor말이지?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쪼개보면서 진중하게 한 마디 했다. 쫄았잖아 새꺄. 영양상태가 부실한 놈이 총도 아닌 조그마한 쇠꼬챙이를 흔들며 위협해서 가당찮았다. 손사레를 하고 등을 보인 채 그냥 걸었다. 뒤에서 그라시아스! 하고 소리쳤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길을 못 찾아서 더운 날씨에 가뜩이나 열 나는데 홧김에 두들겨 패지 않아서? 대낮부터 이 모양인 걸 보니 밤에 돌아다니기는 글른 것 같다. 메뜨로센뜨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해산물이 잔뜩 들은 이런 저런 부페를 4불 주고 먹었다. 맛있긴 한데, 식사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 가난하다면서...

엘 살바도르에는 변변한 쇠 쪼가리 하나 없어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복이나 학살은 없었다. 옥수수만 무럭무럭 자라는 무심한 땅이다. 가끔 지진이 모든 것을 쓸어갔다. 2001년 3개월 동안 여진을 포함해 7000번의 지진이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건물이나 나무들이나 하는 수 없이 지진에 맞춰 살사를 땡겼을 것이다. 산 살바도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화산이다. 참 지지리도 복이 없는 나라다.

마음이 변해서 지폐 몇 장 챙기고 간소한 옷차림에 시계마저 벗어두고 맥주를 마시러 밤 거리로 나섰다. 술집 입구에서 경비원이 몸수색을 한다. 맥주나 마실까 하고 들어간 바에는 왠 여자들이 앉아 무슨 말인가를 한다. 문맥상, 분위기상, 자기도 한 병 사달라는 뜻인 것 같다. 거절했다. 쥬크박스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쥐구멍만한 가게가 왠만한 디스코텍 못지 않게 출력이 쎄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 볼륨이니 머큐리의 정신병자같은 절규가 들어줄만 했다. 노래가 열댓 곡 쯤 이어지는 동안 담배를 피우고 목구멍을 축이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노랫가사가 왠지 심금을 울린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서 서성이는 창녀들이 쳐다보았다. 마주 쳐다 보았다. 금새 외면한다. 그들은 저렴한 남자를 한 눈에 알아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왠지... 쓸쓸했다. 이 동네에서 내가 좀 이국적인 편 아닌가?

아홉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두운 거리에는 이상한 녀석들만 간간히 보이고 개조차 지나 다니지 않는다. 분위기가 영 안 좋아 발걸음을 서둘렀다. 숙소 문이 잠겨 있다. 떨린다. 문을 두들기자 호텔 주인이 문을 열어준다.

내 욕망과, 내가 가진 것 만큼 이 밤거리가 위험한 것인가? 거리에서 서성이는 창녀나, 술에 취한 거지는 위험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그렇고 그런 동네에서 지금껏 살았으니까. 스승께서는 요점만 말씀하셨다. 욕망을 버릴 것, 마음을 비울 것. 그런데 갑자기 골목에서 괴한이 불쑥 나타나 그의 불알을 꽉 움켜쥐고 가진 거 다 내놔 라고 말하면 앞서 깨달은 스승은 과연 뭐라고 말할까? 음. 이를테면 라즈니쉬나 예수가 괴한에게 불알을 잡혔다면? 가진 거 없어. 라고 정직하게 말하겠지? 그럼 네 머리라도 내놔. 생각할 수 없는 머리가 없으면 일곱 차크라를 열고 군달리니의 기쁨을 누리는 머리도,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머리도, 사랑이 샘솟는 머리도 없다. 스승이라도 그 상황에서는 별 수 없다. 머리를 잘리던가, 안 잘리던가. 그건 괴한의 의지니까. 괴한이 에스빠뇰을 사용하고 스승은 에스빠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았다. 불알이 잡힌 상황에서 스승의 처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스승은 어떻게 목이 안 잘리고 살 수 있을까. 막무가내인 괴한에게 고작 1달러만 주면 되는데, 평소 무소유라 그 돈이 없고... 말이 안 통하니 설교가 안되고... 불알은 아파 죽겠고... 고민해 봐야겠다.

이왕 고민하는 김에 이순신, 강감찬, 김두한, 김구, 노무현 들이 괴한에게 불알을 잡힌 수치스럽고 괴로운 정국에서 1 달라를 줄까 안 줄까도 함께 고민해 봐야겠다.
,

Guatemala City

여행기/Guatemala 2003. 4. 19. 18:49
Chichicastenango -> Guatemala City -> El Salvador border -> San Salvador

2003/4/19 토요일

깨어보니 9시. 아는 척 하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침 지나가는 닭장차에 올라탔다. 작은 도시에서 이틀이나 묵으며 같은 길을 열댓번은 지나 다녔으니 '꼬레아'를 모를 리가 없겠지. :) 지금까지 탄 닭장차들 중에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버스였다. 세 시간을 다리에 힘주고 버티다가 과떼말라 시티에 내리니 기진맥진했다.

황량하다.

과떼말라 인구 2천만 중 천만이 살고 있는 도시 임에도 거리에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들은 거의가 아니라 전부 문을 닫았다. 항공권 날짜를 조정하려고 하루나 이틀쯤 묵을 예정이었는데, 세마나 산타 때문에 엿되었다.

배낭을 단단히 메고 걸었다. United Airlines 사무실을 먼저 찾아보려고 했다. 문득 '부활절 휴가'라는 것이 생각났다. 한숨 짓고 중도에 포기했다. 숙소를 찾으려고 한시간 쯤 더 걸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택시가 보여야지 타던지 말던지 하지.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 마자 바로 나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산 살바도르행 버스 정류장을 찾아 다시 한 시간을 걸었다. 출발시간이라도 알아놓을 참이다. 이 도시에는 터미널이 무려 13개나 되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버스편을 미리 알아둘 밖에.

거리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다. 술주정뱅이를 향해 한 경찰이 총을 겨누고 다른 경찰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보고 세 사람이 사이좋게 장난치는 줄 알았다.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 업무 수행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 경찰에게 살그머니 다가가 산 살바도르행 버스 정류장을 물었다. 발길질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닦고 싱그럽게 웃으며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신시가지로 일컬어지는 INGUAT(과떼말라 관광 사무소) 앞이었다. 그리고 다시 업무 수행에 열중했다. 저러다가 사람 잡겠다. 내가 뭘 어쩔 수도 없고...

세마나 산타 행렬을 피해 성당 안에 들어갔는데 마침 미사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라서 성당을 나왔다. 십일조가 겁났다. 이 화려한 성당을 짓고 유지하려면 엄청난 십일조를 걷었을 것이다. 성당이란 참 편리한 곳인 것 같다. 뭔가 나쁜 짓을 하고 나면 성당으로 쪼르르 달려와 몇 마디로 용서를 빌고 그 덕에 가벼워진 영혼으로 나쁜 짓을 더 하러 나갈 수도 있고... 음... 마음에 쏙 든다. 오늘은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하나님이 무시할만한 시시한 것 밖에 없다.

많이 지쳤다. 해가 진 후 광장 앞에서 따꼬스와 맥주를 시켜 먹으며 한가하게 거리를 구경했다. 다들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 과떼말라의 따꼬스는 맥시코에 비해서 별로 맛이 없는 편이다. 따꼬스는 그렇다치고 지난 한 달 동안 먹은 또르따다스 중 가장 맛있고 stuffy한 것도 멕시코에서 먹은 것이다. 맛이 별로인데 뭔가 하나 제대로 먹을 요량이면 3-4000원은 들었다. 과떼말라 음식값은 전혀 싸지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따꼬스와 샤와르마와 펠라펠과 수불라끼 삐따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고기와 야채와 소스를 밀가루/옥수수 전병에 싸 먹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곁들여 먹는 것이 피클류의 식초에 절인 야채류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어째서 이다지도 대중 음식이 비슷하게 다양성이 부족한 것일까? 고대문명은 모두 한통속이었던가?

멕시코와 과떼말라에서 사용하는 마이스(옥수수 전병)는 영 아니었다. 아랍에서처럼 진흙 화덕에서 원적외선으로 구워야 제맛이 날 것으로 추측된다. 원적외선과 철판구이는 확연히 달랐다. 전병에 얹어먹는 속은 다양한 고기와 매운 소스를 사용하는 멕시코와 과떼말라가 훨씬 낫지만, 가격 대비 성능을 생각하면 아랍쪽 음식들이 월등히 나았다. 맛? 아랍쪽 음식은 별 맛이 없다. 맛있어 하는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간식이든 주식이든 따꼬스를 한두 개 씩은 꼭 먹어 봤는데, 개중 치치카스떼낭고의 광장에서 파는 따꼬가 과떼말라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괜찮았다. 고기 기름을 끼얹어 4-6장의 마이스를 뜨거운 불판에서 지지는 동안 돼지 족발을 포크로 재주를 부려 갈기갈기 찢은 다음 반쯤 불판에서 튀겨진 마이스 위에 얹고 볶은 양파와 절인 야채를 얹고 그 위에 두 종류의 칠리 소스를 뿌리고 다시 마이스 두어장으로 덮어준다. 다시 마이스로 덮는다... 이런 따꼬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다. 열이 달아나지 않도록 하는 것일까? 2-3개 정도 먹으면 배가 불렀다. 레몬즙을 약간 짜 주면 고기맛도 상큼해지고 위생에도 좋을텐데 과떼말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약간 아쉽다. 멕시코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레몬을 뿌려 먹었다. 레몬즙(citric acid?)이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세균에 의한 급성 복통 같은 것이 생기지 않도록 한 합리적인 후처리로 생각된다. 멕시코에서 흔히 쓰이는 레몬은, 아니 거의 모든 음식에 곁들여지는 레몬은, 콜레라에 대한 공포심 때문인 것 같다.


광장 앞 노점에서 따꼬스에 맥주 한 잔 하며 찍은 사진

맥주와 따꼬스로는 배가 안 찼다. 거리에 유난히 중국 음식점이 많이 보여 그중 한 군데 들어가 별 기대를 안 하고 볶음밥을 시켰다. 5분 후에 나온 볶음밥의 기쁘지만 한편으로 부담스러운 양은 그렇다치고, 정통 중국식으로 제대로 만든 것이라서 몹시 놀랐다. 달콤한 간장 냄새, 샹차이와 파를 넣은 것은 물론,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적당한 그을음까지? 널쩍한 중국식 프라이팬에서 조리를 해야 나는 제대로 된 화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맛도 좋았다. 정통 중국식 볶음밥처럼 목구멍으로 삼켰을 때 밥알이 위장에서 곤두서는 기분이 제대로 났다. 오오...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다가 누군가 인사하길래 쳐다보니 그집 주인장이다. 중국인이다. 니 하오마! 그럼 그렇지. 아는 중국어는 다 말했다. 이, 얼, 싼, 쓰. 음... 할 말이 다 떨어져서 엄지를 들어 최고라고 말해줬다.

중국 노동자들이 파나마 운하 건설 때 집단 이주 했다는 얘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여기서 중국 음식점을 하는 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의 후손인 것 같다. 가이드북에서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점은 놔두고 영 거지같은 음식점들만 추천하는데 그런데서 맛 없고, 양 적고, 영양가 없고, 값비싼 음식을 먹다보면 어느새 영국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영어에 important(importado)라는 단어가 있었지. 그 단어의 어원이 import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 먼 외국에서 수입한 것은 귀중한 것이다? 커피도 그렇고 후추도 그렇고, 감자, 고추, 토마토, 옥수수, 각종 보물 등등. 특히나 영국은 자국의 음식 전통은 쥐꼬리만큼 남았고, 인도와 중동 등 제 3세계의 음식문화를 대거 수입하여 사실상 영국인의 식단을 갈아치웠다. 식사가 부실한 국가는 정신병자가 많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이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생마늘을 들고 다니며 가끔 비타민제 먹듯이 먹었다. 웹에서 찾아보니 항암작용은 물론이고, 알려진 것만 해도 27 종류의 세균에 페니실린보다 '독하다'고 나와 있었다. 마늘의 참조 항목에 된장(soy paste)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드라큘라에게 간장을 뿌리면 몸부림 치다가 간장 냄새를 풍기며 고통스럽게 죽을 지도 모른다.

과떼말라에 한국 식당이 20여개나 있다던데, 별로 갈 생각은 없다. 비쌀테니까. 과떼말라 공업의 20%를 한국계 봉제공장이 장악했다. 그런데 봉제공장 사장들이 여종업원에게 나쁜 짓을 자꾸 하고 노조문제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부도를 내고 달아나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져 비자 받기가 까다롭다나.

저녁 8시, 거리는 벌써 썰렁해졌다. 경찰이 두려워서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낮에는 몰랐는데 방 벽에 친숙한 마크들이 보인다. 잘못 그린 옴 마크와 피스 마크 따위들... 아... 어디가나 배낭 여행자 숙소들이란... 죽어라고 비틀즈 노래만 불러대는 일본 여행자 한 떼거지만 있으면 '완벽한' 배낭여행자 숙소처럼 보일 것이다. 그 대신에, 다소 철이 지난 감은 있지만 흐뭇하게도 메탈리카의 음악이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숙소 안의 작은 정원에서 과떼말라인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잠깐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방으로 돌아갔다. 아니다 다를까, 술 먹다가 욕설이 오고간다. 며칠 안 있어봤지만 과떼말라인들 술 버릇이 개판이라고 생각하는 편. 미국인들이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얼굴에다 대고 욕을 해서야 쓰겠나... 욕 나오게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과떼말라의 사정을 싸가지없이 언급하는 미국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술 먹고 하는 주사는 제 3자에게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어쨌거나 마음 좋게 생긴 주인 아저씨가 수습을 하고 나니 정원이 비고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 위로 비행기 폭음이 들렸다.

밤은 깊어가는데 간혹 총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열한발 째다. 과떼말라 시티의 시가지 중심부는 단위면적당 사설 경호원 수가 지금껏 돌아다녔던 23개 도시 중 가장 많다. 120 달러면 라이플을 구할 수 있단다. 파키스탄하고 가격이 비슷하다는 점이 믿기지가 않는다. 예전에 미국이 군부를 지원할 때 공급한 무기란다. 과테말라를 분열 양상으로 몰고 있는 심각한 빈부 격차는 국부의 대부분을 점거하고 있는 스페인계 백인 혼혈, 메스티소 mestizo와 그러한 계급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애썼던 민주적 정치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메스티소와 군부를 지원한 미국 때문이다. 동남아와 중동에서 제국주의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
San Pedro -> Panajachel -> Solora -> Los Cuentros -> Chichicastenango

새벽 5시에 아담이 시계를 돌려준다고 깨웠다. 그 차림으로 가면 힘들텐데? 괜찮아. 면 바지와 면 티셔츠 한장만 걸치고 어깨를 움츠린 채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길로 휘청휘청 걸어간다. 아담 덕택에 오랫만에 아름다운 새벽을 구경했다. 온갖 새들이 포근한 안개 속에서 지저귀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한기가 스며들어 방으로 기어 들어가 10시까지 잤다.

Darien Gap을 통과하는 꿈을 꾸었다. 파나마와 콜럼비아 사이의 전설적인 정글 속에서 나는 총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여행 내내 다리앤 갭을 통과하는 공상을 했다. 어젯밤 아담과 그것에 관해 얘기했다. 그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몇몇 사람들이 시도했다가 실종자 리스트에 올라갔고 자기도 하려고 했지만 안전에 들이는 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만사를 싸다 비싸다로 구분짓는 것은 나와 비슷했다. 그가 경제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면 나는 심각하게 저렴한 표정을 짓는 편이었다. 다리앤 갭을 통과한 사람이 있긴 있었다고 한다. 파나마 시티에서 간혹 정신병자들이 팀을 이루어 길잡이 내지는 총잡이를 고용하고 대략 일주일 동안 트럭과 보트를 이용해서. 요리용 바나나를 잔뜩 짊어지고... 다리앤 갭 통과는 돈들인 개죽음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썩 괜찮았던 산 뻬드로를 떠난다. 선착장에 우두커니 앉아 보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보트가 화산에 둘러싸인, 놀랍도록 잔잔한 호수를 시속 40km로 달린다. 보트가 멈추었을 때 밑을 볼 수 있었다. 바닥에는 수초가 깔려 있었고 기포가 방울방울 올라왔다. 어쩌면 클레오파트라 배쓰처럼 밑바닥에서 물이 스며 올라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gps를 켜놓고 있으니 옆에 앉은 서양인 둘이 gps가 왜 필요한가 서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다큐멘터리 제작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과떼말라에 온 걸 보니 그 직업이 여간 고생스러운 것이 아닐듯 싶었다. 한 친구는 손가락 세 개가 없었다. 그는 동네 마약상처럼 거의 멸종해가는 히피였다.

치치행 직행 버스는 사람이 워낙 없어 취소되었다. 택시를 타겠냐고? 배시시 웃었다. 물어물어 미어 터지는 닭장차를 두 번 갈아탔다. 로스 엔꾸엔뜨로스에서는 버스가 안 보여 트럭 뒷편에 배낭을 던져 놓고 앉았다. 혼자 화물칸에 기대어 전후좌우로 흔들리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신선한 공기와 햇살을 마음껏 만끽했다. 닭장차보다 분위기가 좋다. 해발 2300미터의 산지에 위치한 치치카스떼낭고에 도착. 목요일 시장을 보러 왔다. 거리가 한산한데?

할 일이 딱히 없어서인지 길거리에는 대낮부터 술 먹고 맛이 가서 개처럼 뒹굴고 있는 마야의 후손들이 곳곳에 보였다. 시장은 철저하게 간강지화 되어 있었다. 다만 원주민들이 우글거렸다. 규모는 멕시코에 비해 작았다. 망고 장수마저 외국인을 등쳐 먹겠다는데 한 치의 후회나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양반에게 제 가격에 산 것을 들고가 보여 주면서 희롱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혼자 다니다 보니까 외로워서... 갑자기 최고의 여행지에서 최악의 여행지로 굴러 떨어진 듯하지만,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별다른 유감은 없다. 그런 관광지가 어디 한두 군데였던가?

마야의 창세 신화를 담은 Popul Vuh가 우연히 발견 되었다는 Santo Tomas에 들렀으나 뽀뿔 부가 거기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뽀뿔 부를 알게 된 것은 대략 15년전 쯤 된다. 동명의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이 있다. 대신, 러그를 파는 아낙네들과 돈을 달라는 아이들에게 둘러 싸였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숙소 삐끼를 따돌리고 싼 값에 숙소를 잡아 이틀을 편안히 묵을 예정이었으나 2시간 만에 관광을 끝내고는 허무해졌다. 갈 곳이 더 없다 -- 박물관에는 갈 생각이 없다. 그곳에 묵는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며 매니저가 신기해 하는데, 이틀에서 하루만 묵고 하루치 방값을 돌려줄 수 없냐고 애원하니까 징그럽게 웃으며 안 된다고 막무가네다. 그러고는 할 일이 있다며 황급히 자리를 뜬다. 어휴, 숙소가 마음에 들어 이틀치를 선불한 내가 바보지. 숙소의 종업원들은 나를 '코리아'라고 불렀다. "코리아, 세마나 산타야. 와서 보라구." "코리아, 하루 더 묵길 잘했지?" "코리아, 식당은 윗집이 괜찮아." 코리아, 코리아... 무슨 여자 이름 같다.

양지 바른 테라스에 앉아 벼룩에 물린 상처를 바늘로 찔러 피를 냈다. 닭장차를 타다가 옆 사람에게서 옮긴 것 같은데?

기기들이 점점 맛이 가기 시작한다. 돌연 PDA가 먹통이다. 리셋이 되는 바람에 프로그램들이 날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이럴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플래시 모듈 역시 고장 나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중남미 지역에서 pda 악세사리 구할 데를 알아봤지만 없다. 별 대책이 없어 한숨이 나왔다. 포스떼 레스딴떼로 부쳐 달랄까? 워낙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pda를 사용할 수 없으면 괴롭다.

거리의 가게들은 세마나 산타와 이스터 때문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일주일 동안 노는 것이다. 아침부터 주변 마을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교회 앞으로 모여들더니 오후 무렵에는 바글바글하다. 세마나 산타 준비로 하루종일을 보내더니 두 시간쯤 행진. 생전에도 수난을 많이 당한 예수를 비롯한 여러 성자들이 매일 거리를 쏘다니느라 몹시 피곤해 보였다.


숙소 뒷편에서 바라본 Semana Santa 행진

여행자들이 없다. 다들 세마나 산타 때문에 안띠구아에 있는 것일까? 치치는 그렇다치고 어렵게 찾아온 이 숙소는 정말 괜찮은데. 여행자들이 없어 거리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들과 거지들, 주정뱅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시내를 한 바퀴 산책하고 숙소의 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아무도 없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지는 않았다. 다만, 거리의 불빛이 약해 슬며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윤곽이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씬 같달까.

과떼말라 여행이 끝나가면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찾아왔다. 해가 졌다. 별들이 소박하게 반짝였다.

배가 고파 거리에서 따꼬를 사서 먹었다. 거리에서 나를 '꼬레아'라고 부르는 녀석이 있었다. 소문 한번 빠르군.
,
엘레나는 미국 처녀다. 에스빠뇰을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친구와 여행을 시작했다. 멕시코 여행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과떼말라에 와 있단다. 그녀는 계획이 전혀 없다. 무뇌아인 줄 알았는데 내 가이드북을 쳐다보길래 빌려줬더니 게걸스럽게 읽는다. 마약 하는 친구들은 밥맛이라고 흉을 보고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자기 방에서 친구와 빈둥댄다. 그녀의 친구는 돌부처처럼 말이 없다.

그녀는 나처럼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부엌에 있던 각종 소스들이 사라져서 아침부터 우리는 조금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설탕'을 냅킨에 조금 덜어 가져왔다고 말하며, 여행을 오래하다 보면 이런 꽁수가 생긴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그녀는 자기 방에서 비닐 봉투를 가져와 봉투에 담긴 살사 칠리를 천진하게 보여준다. 허거덕. 액체를? 그녀는 치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준비된 고수였다...

엘레나는 여행자들을 만나거나, 풀밭에서 다른 미국인들처럼 요가에 몰두하거나, 파티씬에 휩쓸리지 않은 채,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낸다. 한 마디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보는 시간이 한 없이 느리게 흘러가거나 아예 정지된 놈팽이였다. 그렇다고 여행을 통해서 현지인과의 각별한 우정을 기대한다거나 모험과 로맨스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쿨함을 과시했다.

첫 여행이라는데, 장기 여행자의 노련미가 철철 풍겼다. 장기여행자들이야 만사가 시들하기 그지없다. 뭘 봐도 그게 그거같은 돌덩이인데... 가 증세다. 장기 여행자가 말하는 모험이란, 기껏해야 삐끼에게 당해 고생하거나(삐끼도 바보는 아니라서 몹시 경제적인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는 나같은 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주머니를 몽땅 털리거나, 비자 문제로 국경에서 오도가도 못하거나, 화산 꼭대기에서 폭풍을 만나 오들오들 떠는 종류의 것으로, 별로 낭만적이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쓸데없이 두뇌의 소중한 메모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아무 탈 없이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진국인 것보다 많았다. 로맨스? 우리는 각자 같은 목적지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 삶을 맛보다가 어느 순간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자다가 깨어 후회한다. 어쨌거나 엘레나는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나에 비해 어른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저 경지에 도달하려면 여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야채나 과일을 오물거릴 수 있을까. 저중심 설계 탓일까?

그런 사람이 게스트 하우스에 한 명 더 있다. 나이 70 먹은 과떼말라 노인이다. 그는 한밤중에 불을 꺼 놓고 방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닭이나 개를 뚜러지게 바라보고는 했다. 심지어 사람도 닭 보듯이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그 나이에 이르면 닭이나 사람이나 비슷해지는 걸까? 하지만 닭은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서 의자에 앉아 있고는 했다. 하루에 칫솔질을 세 번하고 세수도 세 번 했다. 나와 엘레나가 음식을 해 먹는 광경을 보고 고무된 나머지, 이제는 그 노인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음식 만드는 과정은 장인의 솜씨를 담은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였다. 단순한 야채 스프를 만드는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재료를 씻고 써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그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최고의 장기여행자였다.

날이 흐려서 마당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뭔가 움직이는 것들이 없어 볼거리가 떨어져 살아갈 희망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를 노인과 나는 하루에 여섯 차례 인사를 주고 받았다. 에스빠뇰을 잘 모르는 관계로 노인과 무슨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다가 눈길이 마주치게 되면, 아침이면 아침 인사, 점심에는 점심 인사, 저녁에는 저녁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꼬모 에스따? (how are you?)라는 에스빠뇰을 익혔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가 어제보다 윤택했다. 내가 부에나 따르데스(good afternoon)하면 그가 부에나 따르데스 라고 답했다. 내가 다시 꼬모 에스따? 라고 하면 그는 비엔, 그라시아스 아미고(fine, thanks my friend)라고 말했고, 그가 꼬모 에스따? 라고 물으면 나는 비엔 그라시아스 라고 대꾸했다. 그는 흡족한듯이 다시 닭들을 쳐다보고 나는 히히 웃고 새로운 에스빠뇰을 찾아 보았다.

이제 Que Soy? 라는 에스빠뇰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돌아갈 날이 머지않은 노인과의 대화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무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꿰 쏘이?' 는 아마도 '나는 누구인가?' 내지는 '나는 뭔가?' 라는 뜻일께다. 안띠구아의 거리를 지나가는 한 청년이 그 문장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은 동네에 짱 박혀 사는 서양 마약 장수가 커미션이나 벌어보자고 음산하게 생긴 서양인을 한 명 데리고 왔다. 게스트 하우스에 막 도착한 그가 한 첫 질문은, 부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한 동안 부엌과 주방기구를 정성스레 살피며 무엇을 해 먹을지 골몰하다가 눈썹을 찌푸리며 비관적인 표정을 지었다. 옷 차림새를 보니 작정하고 찾아온 장기여행자 같다.

그의 이름은 아담이다. '애덤'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링고구나. 표정이 왜 저 모양일까 싶었다. 그래서 세면대에 가서 내 표정을 살펴 보았다. 내 표정이 아담하고 많이 비슷했다. 아랍에서 표정이 굳은 후로 별로 풀리지 않았다. 특히 눈꼬리가 조금 반항적인데, Que Tu?(넌 뭔가?) 라고 묻는 듯이 건방졌다.

아담과 함께 한가하게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조용히, 화장실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부디 아름다운 보름달과는 아무 상관없는 질문이기를 바랬다. 한때 나는 태양이 250와트 짜리 할로겐 전구이고 보름달은 15와트 탄소 전구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각박하게 살았다. 이제는 안다. 달은 대기가 없는 황량한 곳일 뿐이고 달을 쳐다보는 내 시선이 백만배는 아름다우며 그건 몰지각함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사람은 바보스러울 때라야 행복해진다. 따라서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 그 바보스러운 상태를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바보스러움은 (부질없는) 열정과 결합했을 때 인간이 가진 가장 부도덕하고 매력적인 것이 된다. 그 바보스러움은 아담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화장실에 갔다온 그는 음산한 표정으로, 내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알람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내일 아침이 세계 멸망의 그날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다른 미국인들과 정신 상태가 달랐다. 코맹맹이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남미에서 많이 굴러먹었다. 볼리비아에 꼭 가야 한다면서 하던 말을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 노? 잇츠 라이크 인디아 한다. 대체 볼리비아에 뭐가 있길래 만나는 사람마다 볼리비아 하면 감격부터 하는 것일까... 혁명 정신에 몰지각한 볼리비아에서 게바라가 손목이 잘리고 비참하게 죽지 않았던가?

그는 여행 내내 본의 아니게 나처럼 독실한 수도승이 되어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다른 미친 미국인들과 달리 엘레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엘레나에게 한 첫 마디가, 여기가 샤워실이군 이었고 엘레나는 별 꼴이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설겆이에 열중했다. 수도승처럼 생긴 사람들은 여자들에게 무시당하기 때문에 더더욱 수도승의 길로 정진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는 샤워실을 몹시 비관적인 표정으로 살핀 후 입을 다물었다. 아무 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식당에 혼자 앉아 식사하는 서양 남자 여행자를 많이 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오래토록 식당에 앉아 있지 않았다. 밥 먹으면 바로 일어섰다. 어디 딱히 갈 데도 없으면서 갈 데가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서두른다. 사람들과의 화학반응을 신경쓰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거게 남자 (수도승) 여행자들의 공통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차고 있던 손목 시계를 빌려주었다. 마약 장수가 데려와서 마약하는 녀석인 줄 지레 짐작한 것이 미안했다.

혹시나 해서 그에게 이곳 게스트 하우스가 하룻밤에 20퀘찰이라고 넌지시 말하니까 알람시계가 없음을 밝힐 때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표정을 지었다. 마약 장수한테 주는 커미션을 포함해서 방값을 좀 많이 지불한 모양이다.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묵고 있는 방값을 끝끝내 말하지 않는 여행자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낙천적이며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듯한 말투로 종종, 10꿰찰 더 주고 배쓰가 포함된 아늑한 방에서 안락하게 묵는 것이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방보다 낫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데, 그럼 나는, 그럼요. 그깟 10꿰찰(1.5달러)이 얼마나 대단한 돈이라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없지요. 라고 대꾸했다. 언제나 그 게임의 승자일 수 없기에 내가 한 말은 비웃음이나 조소가 아니었고 사실 그대로였다.

음산한 아담은 별 말 없이 앉아 오랜 기간 간경련에 시달린 듯한 비극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방문을 열어 놓은 적이 없었다. 창문도 꼭꼭 닫아 걸었다. 마당에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그래서 그가 안에 있는지 없는지는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나 알 수 있었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보름달을 보고 화장실이 생각나는 자폐증 환자 같은 미국인은 처음 보았다. 멕시칸 마초같이 껄렁대는 녀석들은 무진장 많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중얼거리거나 떠벌리거나 친절한 척 하거나 상황에 쫄았다는 티를 안 내려고 시시껄렁한 위트를 꼭 빼놓지 않고 사용하는 미국인은 많이 보았다.

말 나온 김에, 미국인이 웃기는 점 중에 하나가 무척 약은 척 하면서 사기는 다 당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카우시우스하고 컨시우스하고 프래그마틱 한 체 하는 것은 어쩌면 미국에 사는 백인의 국민성 내지는 자기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편인데(얼웨이즈 노우 더 얼터너티브 웨이), 나보다 정도가 심해서 옆에서 보면 좀 안쓰럽다.

투어 하다가 가이드한테 팁 좀 주자고 뭔가 그럴듯한 제안을 해서 기쁜듯한 표정을 짓는 놈이 개중 제일 증오스럽다. 하여튼 미국인들이 아담처럼 뭘 묻기 전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묵묵히 바퀴벌레를 입에 물고 있는듯한 아담은 과떼말라에서 한 달 정도 보낼 예정이었는데 의외로 가볼만한 곳이 없더라고 말했다. 그는 마야 유적지의 이끼 낀 돌덩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오리지날 장기 여행자였다. 아스카 관광은 어땠는지 물었다. 가격은 그럭저럭 적당한데 비행시간이 짧다. 그렇다고 걸을 수는 없고 운운. 우주인에 관한 견해라도? 긴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짧다. 모르겠다. 잉카 트레일에 관해 묻자, 투어리스틱해서 재미없고 비싸다고 말했다. 어디가 좋아? 온두라스 해변. 싸다. 끝내준다. 열 댓마디가 찬사 일색이었다. 특히 싸다는 점이 요점이었다. 이 친구, 비록 표정은 꽝이지만 무언가 유용한 정보를 말할 줄 아는 친구같다. 아.. 다시 카리브해가 생각났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모든 투숙객들은, 아마도 담배를 안 피우는 아담도 앞으로 포함될 것 같은데, 음식을 만들 때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기 위해 여행자 중 유일하게 라이터를 갖고 있는 나에게 라이터를 빌리러 왔다. 엘레나에게 내 이름은 인디안 식으로 '머나먼 동쪽에서 불을 가지고 온 자'라고 말했다. 인디오 아줌마처럼 복스럽게 가슴을 흔들면서 웃는다.

이렇게 해서, 네 명의 여행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인사를 주고 받고, 하나 밖에 없는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

인류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것과 어울리거나 그것을 극복하거나 심지어 그것으로부터 소외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냥 경계없이 주마간산격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지능이 있는 한, 필요한 만큼 울궈 먹으면 될 것 같다.

아띠뜰란 호수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마을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부응한 개발욕을 막을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할 줄 아는 '지성인'의 주장은, 각박한 환경 내지는 현실 속에서 대낮에 일 없이 울어대는 미친 닭들의 울음소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일 없이 벽에 기대 졸고있는 주민들은 돈에는 크게 욕심이 없어 보였다 -- 주님이 있었다. 오히려 이 마을에 흘러 들어와 정착해서 살고 있는 서양인들이 서양인들을 상대로 장사 잘 하면서 건물 층수를 나날이 올리고 있었다.

산 뻬드로에는 식민지풍의 예쁘장한 건물이 없다. 계획없이 무절제하게 지었는데, 한 마디로 하드보일드했다. 어두컴컴한 맨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걸어나온 전형적인 인디오 복장의 아줌마가 주저없이 호숫가에 세제를 풀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의 목욕을 시켰다. 그 물을 퍼다가 음식을 만들고 식용수로 썼다. 경찰은 경찰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버스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차례차례 도시에서 온 짐들을 내리고, 아침마다 장이 열리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쳤다. 그럼 난 여기서 환경 걱정은 집어치우고 뭘 해야 하지? 요가를 하던가, 카누를 타던가, 말을 타던가, 화산 트래킹을 하던가, 쏠라 파워로 데운 호수물에서 목욕을 하던가. 아니면 마리화나를 피우던가? 음... 그냥 일없이 시간을 죽였다.

콘크리트 벽에 써 있는 글자들: Dios es amor 또는 Dios te ama. 미루어 짐작컨대 '신은 사랑이시다'. Jesus mi mejor amigo. '예수는 나의 가장 친한 벗'. 거리에는 요란한 개신교 찬송가가 하루 종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을에 개신교도가 꽤 많은 것 같다. 이런 저런 교회에서 아침 저녁으로 집회가 열린다.

담벼락에 기대앉은 젊은 인디오는 외국인들에게 그라스를 팔고 있었다. 그에게도 주님이 있었다. 경찰이 다가오자 갑자기 어투가 미묘하게 바뀌면서 악세사리 장사꾼으로 돌변하여 내게 해마 목걸이를 쥐어주며 영어로 그 정교한 기교와 오리지널리티를 유창하게 설명한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인디오 개신교도의 52배속 접신이라든가 현격한 영혼의 상승이 기대된다. 진심으로, 영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나 하나님의 축복이 깃들길 바랬다.

과떼말라에 온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레스토랑에서 식사해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라 죄책감이 들어 삐노끼오라는 이탈리아 '관광' 식당에서 라자냐를 주문했다. 무려 25꿰찰이나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무늬만 라자냐였다. 시장 골목에서 계산이 서툴러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야만 하고, 그러고도 번번이 셈이 틀리는 할머니와 옥신각신 하면서 야채를 사서 저녁을 해 먹는 편이 나았다. 할머니는 낄낄낄 웃으면서 어제처럼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마치 어린애 같다.

인터넷 가게 주인이 2꿰찰을 이유없이 할인해 주었다. 어제 사진 찍어줘서 그런가? 주민들은 멕시코에 있을 때보다 현저하게 아미고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조금 있으면 떠날 나라이지만 사람들이 기분 좋은 나라다. 그런데 남들 다 좋다는 안띠구아는 별로 좋은 줄을 모르겠다. 하지만 산 뻬드로는 좋다. 그냥 좋다. 세월이 흐르면 여기도 변할 것이다. 너무 늦지 않게 온 것을 행운이랄 밖에.
,

Pickpocket

여행기/Guatemala 2003. 4. 16. 15:54
미국의 침공으로 바그다드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박물관에 있던 수메르 유물들이 몽땅 털렸다는 뉴스를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나저나 부시는 게임 이론 대로 움직이는 장난감 같다.

공원에 앉아 감사하게 내리쬐는 햇빛으로 가이드북을 말렸다. 떡이 된 책이 제대로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옷들은 다 빨아서 말렸지만 신발은 대책이 없다. 덕지덕지 묻은 검은 화산탄 가루를 털어냈다. 털어도 털어도 어디서 기어 나오는지 끝이 없다.

거리를 할 일 없이 헤메다 보니 5인조 밴드가 광장에서 악기를 팔면서 연주와 노래를 하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잊었다.

왜 xp에서 뉴스를 다운받을 때면 한없이 느려지는가 싶더만, joc web spider 3.43에 버그가 있는 것 같았다. 3.50을 사용하니 잘 작동한다.

밥해먹고 나니 밤에 할 일이 없어 밴드 소리를 좇아 교회를 방문. 교회 안팍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교회의 제단 장식이 무엇에 소용되는가 싶더니만 어이없게도 그것을 배경으로 빛과 소리의 쇼가 진행되는 중이다. 교회의 높은 천정과 기둥 사이에서 강력하고 장엄한(때로 닭살 돋는 비장한 나레이션과 함께) 사운드가 울려 퍼지자 교회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벤허의 테마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교향곡들, 심지어 스타워즈의 테마까지 흘러 나왔다. -_-; 일요일의 대단원을 보기 위해 토요일 쯤에 안티구아로 돌아올까? 숙소가 있긴 할까?

옆방 꼬마가 깨워 일어났다. 전날 밤 삶아둔 계란 두 개와 망고와 오이와 3일째 먹고 있는 3리터짜리 쥬스로 아침을 때웠다. 빠나하첼에 가야하는데... 젖은 후 안 마르고 여전히 걸레같은 가이드북을 살펴봐도 몇 시간 걸린다던지 하는 정보가 없다. 벌써 10시. 되는 대로 짐을 싸서 일단 버스 터미널로 나갔다. 마침 출발하는 차를 타고 치말떼낭고에 도착.

뙤약볕 아래서 30분을 기다려도 빠나하첼행 버스가 오지 않는다. 에스빠뇰이 좀 되는 것 같은 서양 여자애 둘은 기다리다 지쳐서 대절 봉고에 오른다. 나도 탈까 하다가 비싸 보여서 망설였다. 마침 오고 있는 산 뻬드로행 버스를 타도 되겠다 싶었다. 아띠뜰란 호수 근처니까. 입구는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 하. 이런 버스 오르는 것은 자신있지.

버스에 막 오르려는데 누군가 앞 주머니를 건드렸다. 지갑을 슬며시 꺼내려는 것이 느껴진다. 지퍼 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손을 잡으려니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간다. 타이밍도 그렇고, 솜씨가 프로다. 감격이다. 닭장차에 아비규환에 소매치기까지, 꿈꾸던 그림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감격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서둘러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누군지 알 수 없다. 어떤 새끼인지 잡아서 족쳐야 할텐데... 버스가 막 떠나려고 한다. 발이 공중에 떴다. 버스가 언제올지 기약이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냥 올라탔다.

닭장 차에는 더 이상 사람을 실을 수가 없을 정도로 미어 터졌다. 홰를 치는 닭들도 몇 마리 보인다. 여행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형형색색의 로컬리들 뿐이다. 너무 기쁘다. 이런 차를 타야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테말라 온 후부터는 줄곳 닭장차였다. 말 그대로 chicken bus, 미국에서 수입해 온, 유치원 애들이 타고 다니는 다 낡은 '노란색' 버스의 좌석에는 어른 둘이 앉을 자리 밖에 안 되지만 한 좌석에 셋이 앉았다. 한 사람은 엉덩이를 반만 걸치는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날더러 닭장차를 견딜 수 있겠냐고 걱정스러운 듯이 묻기도 했다. 돈 조금 더 들이면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사서 고생하는 것이 바보스러운가 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배낭을 잡고 한 시간 반을 서서 갔다. 가끔 차장이 소리를 지르면 서있는 승객들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경찰이 과적 차량을 단속하는 것이다. 외국인이 자기들처럼 곧잘 하니까 재미있는지 낄낄 웃는다. 우둘두둘한 길을 달리는 동안 이빨이 와다닥 부딛친다. 커브를 돌 때는 한줄의 일곱 명이 동시에 쏠렸다. 재밌다.

올더스 헉슬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극찬해 마지 않던 아띠뜰란 호수 lago atitlan에 도착했다. 3시간 걸렸다. 오는 중에 화산 분진과 가스로 숲과 마을이 자욱하게 덮여있는 멋진 광경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준 재난상태 같기도 하다. 화산이 한번 폭발해줘야 잊지 못할 추억이 될텐데...

그런데 내릴 때 모자를 버스에 두고 내렸다. 소매치기는 안 당하면서 왜 매번 모자만 죽실나게 잃어 버리는 것일까...

몇군데 들러봤지만 숙소가 꽉 찼다. 고생길이 열렸다. 계획에 없던 도시에 오고, 소매치기를 못 잡고, 특히 모자를 잃어버려서 짜증이 났다. 한창 공사 중인 hospedaje에 물어보니 방이 있단다. 살았다. 숙소가 만족스럽다. 넓은 마당이 있고 처마가 있고 빨래줄이 걸려 있고 부엌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너른 마당이 마음에 든다.

하릴없이 호숫가를 배회했다. 물이 검어서 호수에서 빨래를 하며 호수를 오염시키는 아줌마들을 저주했는데, 자세히 보니 바닥에 검고 잘디잘은 화산탄이 깔려 있었다. 물은 매우 깨끗했다. 이런 호수는 사람 손이 닿지않는 몽골 같은 곳에나 있을 성 싶다.


아띠뜰란 호수. 해발 1530m

해가 지기 전에 뭔가 만들어 먹으려고 시장에 들러 야채를 샀다. 오늘 요리는... 음... 오에코돈? 시도해보자. 쌀과 야채를 넣고 일단 끓였다. 뜸을 들일 무렵 밥 위에 계란을 풀어서 얹었다. 거기에 케첩과 살사 칠리를 얹으니 맛이 그럴듯 하다. 그 이상한 음식을 오에코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다. 1.5퀘찰(250원)에 배불리 한끼를 해결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밤이 되자 희미한 하늘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풀문 파티로 정신없는 '서양 여행자 거리'를 제끼고 조용한 호숫가를 돌다가 숙소의 내 방 앞에 의자와 탁자를 끌어와 앉아 달을 쳐다 보았다. 산 빼드로에 장기체류자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여러 화산에 둘러쌓인 깨끗한 호수가 있고 풀벌레 소리와 동네의 패권을 다투는 개들의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에 동네를 거닐어보니 꼬리가 잘린 개들이 종종 눈에 띄어 간밤의 치열한 격전을 떠오르게 했다.

카약을 빌리려고 여기저기 헤메다가 포기했다. 뭐, 안 타도 그만이지.
,
빠까야 화산에 갔다 온 후 정신적 충격이 대단해서 하루 더 안띠구아에서 느긋하게 지내기로 했다.

엊그제 끝내주게 맛있는 초우멘을 만들었지만 정작 자랑하고 싶었던 중국 여자애는 체크아웃하고 나가 버렸다. 그래서 2인분을 배불리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텅 비었고 어제, 오늘 내린 비로 빨래는 걸레가 되었다.

이번이 세번째인가? 전에 만났던 한국인을 다시 봤다. INGUAT 관광청 추천 시티 투어 코스를 함께 슬슬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국인이 아는 척을 했다. 광장에 멍하니 함께 앉아 하품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감동한 것 같았다. 그날 하루 쓴 돈이 숙박비를 포함해서 10불이 채 안 되었으니까. 나? 난 6불 썼다. 난 밥을 해 먹으니까.

어제 빠까야 화산에 갔다왔다. 조난 비슷한 상황에서 고생을 하다 왔기 때문에 돌아오자 마자 뻗었다.

오후 1시쯤 12명이 투어차를 타고 출발했다. 오후 2시 화산 아랫 마을에 도착. 대략 4킬로미터를 올라가는 산길. 고도차는 740m. 어림잡은 예상 등반 시간은 2시간 정도였으나 미국인들이 워낙 굼떠서 거리의 반에 해당하는 본격적인 화산지대로 들어가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오후 3시 반. 답답해서 미국인들과 가이드를 제끼고 앞서갔다.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해서 앞서가던 경비대 마저 추월했다. 비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메케한 아황산 가스 냄새가 풍겼고 풍향이 수시로 바뀌었다. 비구름 속을 통과할 무렵 차갑고 두꺼운 빗줄기가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경사는 45도 가량, 비바람 뿐이면 별 문제 아니지만 비가 분화구에 떨어지면서 대량의 수증기가 발생하여 가시권이 3미터 이내였다. 잘게 부서진 화산탄이 발목에 푹푹 잠기면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살갗이 따끔거리고 온몸을 휘청이게 만드는 강한 비바람 때문에 잔자갈들이 비탈을 구르면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오기가 생겼다.


비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빠까야 화산 오르막길. 포기하고 돌아갔어야 했다. 이후로는 사진을 찍을 상황이 아니었다. 살기 바빠서... -_-;

정상에 도착. 손목시계를 쳐다보니 불을 켜도 시각이 안 보인다. 아황산가스 때문에 목구멍이 다소 쓰리다. 물과 결합하면 이것들은 체내에서 황산이 된다. 빗물이 바위에 닿을 때마다 치익치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화구 주변에는 거대한 수증기의 벽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무 것도 제대로 안 보이고 비바람이 심해서 분화구 안쪽에 기대 앉았다. 추워서 손이 곱고 이빨이 닥닥거리지만 대조적으로 발밑과 엉덩이는 매우 뜨겁다.

일행이 도착하길 30분쯤 기다렸지만 정상에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시계를 문지르고 품에 넣고 잘 쳐다보니 4시 50분. 해는 5시 30분에 진다. 팬티 속까지 젖었다. 모자 주변으로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바람과 수증기가 뒤죽박죽 되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안 좋다.

올라 오는 길에 능선의 대략적인 방향을 파악했고 거리도 대충 알고 있다. 봉우리는 대략 300미터 가량. 그 후 이어지는 능선은 1킬로쯤 남서쪽. 풍향은 남동. 발밑은... 보이지 않는다. 재수없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 좋으련만. 목이 슬슬 아파온다. 오래 있으면 위험해질 것 같다. 냄새나는 아황산가스 뿐만 아니라 목을 탁탁 막히게 하는 이산화탄소도 있었다. 그보다는 당장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미끌거리는 발밑을 조심하기만 하면 15분이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손이 곱아 신발끈을 조이는데 애를 먹었다. 뜨거운 화산암을 쥐고 있다가 신발끈을 맸다. 조난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고작 2500미터짜리 조그만 봉우리라고 방심한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저 미친듯한 비바람과 수증기 속을 통과하는 것이 겁난다. 갈짓자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옷과 신발은 이미 화산탄 부스러기로 뒤범벅되어 시꺼멓다. 미끄러졌다. 되는대로 손을 뻗어 화산탄을 잡았다. 맥없이 부러진다. 손바닥에 감각이 없다. 잔자갈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스키 타는 것 같아서 신나긴 했다.

유령 같은 그림자 둘을 보았다. 우리팀, 몽카 블랑카 소속의 두 독일인 연인이 오도가도 못하고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일행과 떨어져 조난당한 것 같다. 따라오라니까 선뜻 발길을 떼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아라. 나한테 gps리시버가 있다. 남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반팔에 샌들 차림으로 온 여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지친 것 같다. 골치 아픈데... 여자들은 저중심 설계로 제조되어서 내리막길에서는 쥐약이다. 특히나 힘이 빠져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잖아도 엊그제 띠깔에서 어떤 아줌마가 15미터 계단을 굴러내려 이빨이 다 깨지고 두개골 일부가 함몰되고 피범벅이 된 채 기억상실증에 걸려 유적지 일부가 폐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작 2500미터 라길래 물을 들고 오지 않았고 담배 피우면서 올라왔다. 비바람 속에서 강풍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자 희미하게 능선의 거무스레한 윤곽이 보인다. 한숨을 쉬었다. 길을 찾았다.

300미터쯤 내려오자 비바람이 잦아 들었다.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 앞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조그만 동양 남자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자기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남자는 비에 젖은 시궁쥐처럼 떨고 있었다. 내 꼴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자에게 나머지 일행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모른다. 그럼 그들은 올라오지 않은건가? 뛰어 내려갔다. 20분 정도 걸려 마을에 도착했다. 몽카 블랑카 팀원들은 모두 무사했다.

우습게도 정상에 올라간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상에서 천사들이 날개를 손질하는 모습을 본 것은 나 밖에 없었다. 분화구에 사악한 절대반지를 버리고 세상을 구했지만 아무도 몰라주게 되었다.

입구 화장실에서 양말을 빨고 신발에 묻은 흙을 대충 털었다. 옷을 짜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었다. 사람들이 떨고 있다가 독일인 연인이 도착하자 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라 안띠구아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바보짓을 했다. 내가 한 치명적인 바보짓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오버트라우저를 가져가지 않았다. 가져갔으면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분화구에서 용암을 구경했을 것이다. 오버 트라우저가 없어서 물에 쩔은 쥐새끼같은 꼴로 돌아다녀 체면을 구겼다.

2. 껌을 안 샀다. 껌을 씹으면 날씨가 개판이건 말건 호연지기가 생기고 기분이 즐거워진다.

3. 무엇보다도, 날계란을 안 가져왔다. 계란을 뜨거운 바위 틈에서 익혀 맛있게 먹는 것이야말로 화산 여행의 묘미다. 그런데 분화구 곁에 쭈그리고 앉아 열기를 쬐면서 배가 고파 살구와 망고를 먹었다. 화산에서 살구와 망고라니... 알만한 사람이 그런 무식한 짓을 한 것이다.

이런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했기 때문에 조난은 필연적이었다. 이번 산행을 반성의 기회로 삼자.

국립공원 입장료 25꿰찰을 내려고 50꿰찰 짜리 지폐를 주니 70꿰찰을 건네준다. 잔돈이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인도보다 0을 먼저 발명하는 등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바 있는 마야 후손의 믿을만한 계산법이고, 다들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라서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안될 것 같아 얌전히 낼름 집어 삼켰다.

오락가락 하는 정신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다운 받고 밥을 해 먹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숙소에 도착하니 9시. 1500미터 고지에서 딱 라면에 말아먹을 분량만 인디카 쌀을 씻어 알맞은 정도로 찰기와 윤기가 지게 밥을 짓는 것은 예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라면은 또 어떻고? 이제 처음 보는 라면으로도 기본적으로 삼양 라면 맛을 낼 수 있다. 어떤 거지같은 면발도 쫄깃쫄깃하게 되살릴 수 있다. 매운 라면 국물과 밥. 꼭 그렇게 먹어야 추위로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 들이듯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해치웠다. 찬바람 맞으며 고생하다가 뜨겁고 얼큰한 국물을 들이키니 살맛이 났다. 야채와 탄수화물이 풍부한 진정한 구휼식품이었다.

칫솔질과 간단한 세수만 하고 따뜻한 침낭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아... 좋다.

아침에는 갑자기 영양보충 하고 싶어져서 스테이크를 해 먹었다. 며칠 전에 멕시칸 스타일로 스테이크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바닥에 마늘을 깔고 고기를 얹은 후 양파 등을 넣고 지지면서 맥주를 때때로 붓는다. 소금과 후추로 적당히 간을 맞췄다. 당근을 넣고 지지다가 계란을 얹자 먹음직스러운 등심 스테이크가 완성되었다. 맥주 때문에 맛이 좀 썼다. 설탕을 좀 넣을껄 그랬나? 그래도 처음 만들어 본 스테이크 치고는 맛이 훌륭했다. 다음번에 할 때는 붉은 와인을 쓸 것이다. 육즙을 은근히 우려내는 것이 테크닉인 것 같다.


프라이팬에서 덜다가 계란이 뭉개져 모양이 망가졌지만 맛있는 스테이크. :)

돈을 좀 찾고 스노클과 옷가지를 우편으로 한국에 부쳤다. 우편료가 비싸다. 5일치 경비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돈을 더 찾아야 하나.

"노스웨스트항공은 이달 15일 정오 온라인(www.nwa.com/kr)상에서 부산발 LA 또는 샌프란시스코행 89만원짜리 왕복 항공권을 39만원에 할인판매하는 행사를 벌인다고 11일 밝혔다." -- 새삼스럽게 왜 이렇게 운이 안 따라주는 것일까 하고 울부짖기도 뭣하다.

"국민의 값진 세금을 이런 편집증적인 일에 써도 된다고 언제 국민의 동의를 얻었는지도 묻고 싶다.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는 게 정상인데 우리는 정부가 언론을 감시하겠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 -- 2003.4.12 조선일보 사설. 어차피 영문 모를테고, 말문이 주욱 막혔으면 좋겠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 리오리엔트, 이산 출판사.
,

Antigua

여행기/Guatemala 2003. 4. 12. 19:14
인터넷 까페에서 옆에 앉아있던 그링고가 내가 사진 올린 것을 점검하고 있으니까 url을 가르쳐 달란다. 나갈 때까지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찍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슬며시 감췄다. 쪽 팔렸다.

사진을 잘 찍겠다는 욕심이 사라졌다. 일부는 입장시간 제한 때문이다.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이 드물다. 인도라면 가능했다. 오직 인도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스타워즈의 어떤 씬이 띠깔의 이 광경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 Great Pyramid에서 바라본 이 사진을 아주 잘 찍는 방법을 알고 있긴 했다.

해는 5시 45분에 맞은편 지평선에서 뜬다. 해가 뜨기 20분 전에 사이트에 도착한다. 숲속에서 안개가 피어오를 것이다. 지평선 부근은 핑크빛을 띄고 먼 하늘은 푸르게 빛날 것이다. 화면을 네 부분으로 대충 나누고 지평선을 3/5 위치에 둔 다음 근경과 원경, 핑크빛과 푸른빛 사이에 피라밋 대가리를 위치시킨다. 그러려면 저 사진처럼 꼭대기에서 찍을 것이 아니라 피라밋에서 열계단쯤 내려온 후 카메라를 약간 아래로 내리는 기분으로 찍으면 될 것 같다. 해가 뜨려고 할 때쯤 빛은 지평선과 근경 사이를 수평으로 달린다. 해가 거의 질 무렵도 마찬가지다. 석양 무렵이 아침보다 낫지 않은 것은 정글에 깔리는 안개 때문이다. 안개가 숲을 반쯤 가리면 띠깔 유적지는 지구가 아닌 곳이 될 것 같다. 달이 아주 밝은 날 해가 바로 질때쯤. 음 이건 일년중 며칠 기회가 없겠군. 예전에 이란에서 터키로 넘어올 때 아라랏산을 보고 맛이 간 적이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아랫동이는 어둠 속에 잠기고 꼭대기는 날카로운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그때는 멋진 광경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스무장이 넘는 사진 중 단 한 장도 제대로 찍힌 것이 없어서... 울었다.

띠깔보다 멋있는 광경이 있을까? 있다. 인도 함피다. 띠깔 유적지가 20km^2나 되는 '거대' 유적지라지만 함피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엄청난 유적 규모와 비교하면 세발의 피다. 함피의 비자야나가르 유적지는 거의 공짜면서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띠깔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있다. 지금까지 내가 돌아본 유적지 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도 카쥬라호의 서부 유적군이고 단일 건축물로는 인도의 마두라이에 있는 미낙쉬 신전이다. 미낙쉬 신전에서 넋이 빠져서 사진 찍는 것을 잊었다. 규모와 아름다움 양자를 다 말하려면 앙코르와트 뿐이다. 세상의 어떤 유적지도 보는데 적어도 3일이 걸리는 곳은 앙코르와트 말고는 없다.

섣불리 단정짓지 말고, 다 보고 나서 얘기 하라고 말할 개제가 아니다. 주요 고대 문명은 잉카를 제외하고 다 봤으니까. 잉카의 사이트는 크기나 아름다움에서 상기한 사이트보다 나을 수가 없다. 시니컬하게 말해서 마야/아즈텍/잉카 문명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선구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나마 미국/유럽인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유적지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를 찾느라 한 시간을 거리에서 헤멨다. 이 삐끼, 저 삐끼를 전전했지만 방값이 비교적 비싸다. 왜 그런가 싶더니만 세마나 산타라는 그리스도 수난극이 다음주 중에 안띠구아에서 벌어질 예정. 전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축제인데(관광청 팜플렛을 보니) 시작되자 마자 다른 도시로 뜰 생각이다. 지금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고 축제 덕택에 숙소 잡기가 어려워서 애 먹은 생각을 하면...

부엌을 사용할 수 있다길래 오랫만에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밥을 얹어놓고, 야채를 썰고, 볶다가, 밥이 다 익어서 야채 볶는데 그냥 부었다. 국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겠기에 야채를 잘게 썰어 소금 약간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붓고 저으면서 거품은 건졌다.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는 무진장 시끄러운 중국 처녀가 괜히 시비를 걸었지만 개무시하고 묵묵히 만들었다. 남이사 '복잡하고 손이 가는' 요리를 만들어 먹던 말던 신경쓰지 말고 얼른 나가서 관광이나 잘하란 말이야. 자기가 권한 옥수수를 안 먹으니까 '점잔을 빼면서' 심통 부리는 것 같다. 음. 다 만들어놓은 음식은 고양이조차 거들떠보지 않았다. 삐깐떼(매운 야채 절임)와 곁들여 먹으니 무척 맛있다. 저녁에는 '광둥 스타일 정통 초우면 컴패티블 푸드'을 만들어서 중국 여자애를 한코 죽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수퍼마켓에서 Salsa Soya 소스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Salsa란, 재료가 뭐든 간에 '무조건 맛있다'는 뜻이다.


정식 요리 명칭: backpacker's 'really' gut-filling fried rice with unstable quatum mechanical probablity

화산에 가려니 아침 6시에 출발한단다. 또 새벽인가? 좀 쉬어야겠다. 화산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활화산이라는 소리를 해서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가능하면 투어 안하고 호젓하게 혼자 올라가고 싶은데... 산적들을 만나서 산생활의 고충을 들어보고 도네이션도 좀 하고...

띠깔 유적지 사진들
,

Tikal Ruinas

여행기/Guatemala 2003. 4. 11. 17:47
환경이 훌륭함에도 대마는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땅에서 대마가 핍박받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덥다길래 일찍 가면 덜 덥겠거니 싶었는데, 아니다.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한테나 더울 것 같다. 새벽 바람에 '떨면서' 짐을 싸서 호텔에 맡기고 띠깔 유적지행 차를 탔다. 새벽 6시에서 저녁 4시까지 10시간 가까이 띠깔 유적지에서 개겼다. 뭐 사진을 찍는다거나 마야 문명의 미스테리에 관한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잡으려고 두리번 거렸다기 보다는... 싸 가지고 간 두 끼 분량의 도시락을 천천히 먹거나 모기에 뜯기면서 밀림 속을 거닐거나(헤메거나) 유적의 제단에 누워 잠을 자는데 시간을 보냈다. 제단은 의외로 포근했다.

띠깔 유적지는 띠깔 국립공원 한복판에 있었다. 빨렝게에서 그렇게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원없이 밀림을 헤메다녔다. 밀림 속에 혹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유적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야생동물을 부지기수로 만났을 뿐이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쌍안경을 구하지 못했다. 쌍안경으로 야생동물을 관찰하기에는 끝내주는 곳이다. 바나나 한 조각이나 빵 한 조각에 혈안이 된 녀석들이 우글거렸다. 유적지 곳곳에 뜻은 잘 모르겠지만 comida, anima 란 단어 따위가 들어간 에스빠뇰 게시판이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밥 먹을 때마다 아장아장 기어와 옆에서 밥 달라고 쳐다보는데.. 안 주기가 뭣했다.


길을 잃고 정글 속을 헤메다가...

마야 유적에 워낙 흥미를 잃어서 이젠 뭘 봐도 그저 그렇지만(아시아에 비하면 엄청 단순한 인간들인 것 같다) 사원 양식을 대충은 구분할 수 있었다. 이건 떼오띠와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군. 이게 이거보다 앞서 지은 것 같은데? 등등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지금까지 들러본 박물관 덕택이다. 멕시코에 비하면 유적 관리는 엉망임에도 입장료는 동등한 수준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추측이 대충 맞았다. 끔찍한 가뭄이 이어지는 동안 피지배층이 사제 계급을 대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천문 관측은 점점 덜 중요해지고 달력은 잊혀지고 사제들은 권력을 잃었다. // 중간계급이 없었던 마야 사회에서 지배층의 붕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했을 것 같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두 계급 구조 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주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사회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가 의문이다. 그럼 상거래로 돈을 버는 상인들 역시 지배층이었다는 말인가? 세금을 징수하는 관료도 지배층이고, 기술과 학문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야 사제들이었을 것 같지만. . 마야 제국(?)이 순식간에 붕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그걸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석기 동굴 씨족 원시인들의 자위행위지.

세력 확장이 없었고 계급갈등이나 권력의 분배 문제가 별로 없고 인디오들 전부가 교육을 받지 못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른 대륙과 긴밀한 무역을 하지 않아 우물 안 개구리였고 청동기도 없었고 세상에 그 흔해빠진 사랑의 시조차 기록에 남은 것이 없고 두 말 할 것도 없이 학문이나 기술의 전승도 없고 어둠의 일곱 신과 싸우는 태양신을 돕기 위해 인신공양이나 드리고 앉아 왕의 '신전'을 건설하는데 몰두해 있었다면 이 문명은 망해도 싸고 망해야 한다고 봤다.

마야 유적과 마야 유적지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AD 12~18세기 무렵까지 '찬란하게 이어졌다는' 마야 문명이 의외로 초라하고 한심하다는 것. 뭐가 찬란하다는 것인가. 대체 뭐가? 그 시기에 건너편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다른 문명권은 마야에 비하면 1000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마야 문명이 그럴듯하고 신비스러워 보이는 것은 새로운 문명을 발견한 고고학자들 눈에나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정체된 문명, 정체된 사회, 내부적으로 소통조차 없었던....

너무 심하게 말했나? 흠. 박물관에 가서 친히 둘러보라. 그 시절까지 꾀죄죄한 토기들과 천 쪼가리들,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금세공품 밖에 안 보인다. '문화'가 실종되었고 '발명'과 '발견'이 없다. 도시에 수로를 만들었다지만 하천의 관계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하천을 제어하면 대규모 농경이 가능함에도 대규모 농경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식량창고가 있기나 했을까? 정글에 불 지르고 화전을 계속 하면서 움직여 다녔는데 그건 지극히 원시적인 농경이다. 열대다 보니 천문관측기술이 농경에 도움이 된 적은 없을 것이다. ·"$%"·$%"·$

남쪽 유적지의 따뜻한 바위에 누워 있다가 선잠에서 깨어보니 벌써 오후 4시. 사방에서 원숭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해가 지고 있다. 유적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산타 엘레나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어젯밤 삐끼가 말해준 중국 음식점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양 많고 싸다길래... 그런데 음식점이 아니라 디스코텍이다. 왜 음식점 이름이 mi disco일까 궁금했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주인에게 물으니 음식을 판단다. 메뉴판을 갖다준다. 음식점 맞군. 쵸우면과 맥주를 시켰다. 중국인이 운영하니까 정통 초우면을 먹을 수 있을 꺼라 내심 기대했는데 국적불명의 이상한 음식이 나왔다. 어떤 음식이든 칠리 소스를 뿌리면 맛있어지기 때문에 왕창 뿌렸다. ...... 짬뽕맛이 났다.

피곤하지만 과떼말라 시티에 갔다가 바로 안띠구아로 움직였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유적지에서 자고 유적지에서 세수하고 움직이는 형편. 차 시간이 많이 남아 광장에서 애들 농구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플로레스나 안띠구아나 짐작대로 관광도시였다. 차 타고 오면서 안띠구아에서 일주일쯤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스페인어를 배워서 여행하려면 아랍에서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스페인어를 알게 되면 중남미인들과 아주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데 그건 아랍도 마찬가지였다. 여행하러 왔지 스페인어 배우려고 온 것이 아니고, 다른 데에서는 하지 않았는데 왜 굳이 중남미에서는 하려는가... 하는 반성을 했다. 앞으로도 줄기차게 어려움이 이어지겠지만, 끝까지 게기자. 음... 그래도 치치까스떼낭고의 분위기가 정 좋으면 더 머물기 위해서라도 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안띠구아에 도착하자 마자 커다란 화산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해서 세 시간쯤 잤다.
,

to Guatemala

여행기/Guatemala 2003. 4. 11. 11:05
출발은 여섯시인데 다섯시부터 깨우고 지랄이다. 왜들 이리 부지런을 떠는가. 피곤해 죽겠는데. 샤워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돌리니 물이 안 나온다. 머리가 젖은 채로 잤더니 심하게 뻗쳤는데... 하는 수 없이 피같은 미네랄 워터를 조금씩 부어가며 칫솔질과 세수를 했다. 250ml 밖에 안 썼다. 리셉션에서는 미네랄 워터로 세수했다니까 웃고 지랄이다. -_-; 잠이 덜 깨 거리를 나서니 마치 베트남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멕시코가 잘 사는 이유는(값비싼 여행지가 된 이유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있는 것 같다. 부지런함.

비가 온다. 우기가 시작된 것 같다. 비가 아주 심하게 왔다. 잤다. 깼다. 멕시코 이민국에서 출국 수속을 마쳤다. 유속이 아주 빠른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강이 아무래도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것 같다. 맥주캔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강물 곳곳에는 작은 소가 형성되었다.

썰렁한 강 건너편에 도착하니 거기가 과테말라 이민국이란다. 내 비자를 굉장히 유심히 쳐다본다. 패스포트를 이리저리 넘겨본다. 코리아? 씨.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봤자 어쩌겠냐. 비자 받았으면 그만이지.

과테말라행 편도 투어행을 잡길 아주 잘했다. 혼자서 빨렝게에서 이런 저런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새벽 네시부터 차를 두 번 갈아타고 배를 타러 온 미국인은 사공이 건네주지 않으려 해서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투어팀은 강을 건넜지만 그는 300뻬소를 주고도 배에 사람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간신히 보트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50꿰찰을 지불한다. 그가 소요한 총 경비는 400뻬소 가량, 투어가격은 250뻬소. 나같으면 보트 가격을 협상해서 100뻬소만 주겠다. 안 받으면 안 간다. 미쳤냐? 25분 배 타는데 무슨 비행기 타는 것도 아니고 300뻬소 씩이나 주게. 하여튼 가이드북의 괴이한 헛소리를 믿었더라면 고생할 뻔 했다.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 이민국 앞.


아이들이 마을 공터에서 축구하고 있다. 떼거지로 몰려들어 인사를 한다. 서양것들은 애들을 애써 무시한다. 귀여운 것들, 인사성도 바르지. 누군가 갑자기 군바리식 경례를 했다. 답례를 하자 다들... 경례를... 왠지... 인도 깡촌이나 라오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떼말라에 오길 잘했다. 굉장히 친근감이 들게 생긴 고물차를 타고 역시 친근하기 짝이 없는 비포장도로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린다. 이렇게 차가 심하게 흔들려야 관절과 근육이 골고루 움직여 뻐근해지지가 않는다. 비포장도로와 똥차가 그래서 좋다. 친근감이 팍팍 우러나오는 소들이 마치 차를 처음 보기라도 하는듯이 화들짝 놀래 길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화전을 보았다. 정글 곳곳에서 마른 불꽃과 연기가 치솟았다. 이것이야말로... 마야 역사 3000년 동안 변치 않았던 바로 그 농작법! 오오... 아. 감탄할 일은 아니지. 메소아메리카 문명권은 어쩐 일인지 청동기가 없었다. 청동기 문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알래스카로 넘어간 후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것일까? 고립은 그렇다치고, 동광맥에서 불 한번 지펴보지 않았단 말인가? 이렇게 축복받은 땅에서.

국경을 건너자마자 이렇게 달라지다니. 재밌다. 25년 전에 과떼말라를 방문한 늙은 미국인 부부가 버스에 타고 있었다. 직업을 묻진 않았지만 고고학자 처럼 보인다. 마야 유적만 죽실나게 돌아다녔는지 모르는게 없다. 아는 게 없어서 질문할 것도 없었다. 그냥 어떻게 해서 마야력이 그렇게 정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는지 아냐고 물으니 실실 웃으면서 자기는 모른다고 대꾸했다.

플로레스에서 내렸다. 국경에서 환전하지 않았다. 환율이 나쁘니까. 플로레스에 도착한 것이 4시, 은행은 문을 닫았다. 2시 반에 도착해야 할 차가 사람이 덜 찼다고 안 가고 개기니까 네시가 되서 도착한 것이다. 과테말라 돈이 없어서 숙소를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배고프고 더위에 지쳐 갈증 나는데. 여기 저기 물어 인터넷 가게에서 환전. 다섯시. 가이드북의 숙소 정보는 믿을 수가 없어서 땀나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싼 숙소를 찾아보았다. 40꿰찰 이하의 숙소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무시했다. 과테말라는 인도같은 곳이다. 있다. 있을 것이다. 다섯시 반 간신히 체크인. 30꿰찰, 약 4불 가량. 숙소는 인도의 감방같이 생긴 그런 곳이었다. 길에서 만난 저렴하게 생긴 일본인에게 숙소 정보를 물으니 20불 짜리에 묵으면서 아주 만족한다고 말한다. 나와는 레벨이 다른 사람이었다. 해브 펀 하고 돌아섰다.

잘 사는 멕시코와 달리 과테말라 사람들은 인간 냄새가 난다. 헤헤 잘 웃고. 수도인 과테말라 시티가 위험한 곳이니 가지 말고 안띠구아로 바로 가란다. 고개를 끄떡였지만 가야 한다. 그에게 한국이 대체 어디 붙어있는지 지도를 그려 가르쳐 주었다. 자기들 땅보다 좁은 땅덩이에 4500만이 산다니까 몹시 놀란다. 과떼말라 총 인구가 2천만이란다. 알지. 잘 알고 있지.
,

Nightscene

여행기/Mexico 2003. 4. 10. 10:25
칠레가 무비자 국가가 된 것을 말 그대로 '천진난만'하게 좋아했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상(FTA)이 곧 있을 예정이었다.

호텔이 무덥고 답답해서 밤거리로 나섰다. 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핥아 먹었다. 맥주를 먹고 싶지만 뻬소화가 거의 바닥났다.

광장에는 갓 구운 빵을 구워 파는 상인들과 가죽 제품을 수공하는 공인들이 책상 하나만 들여놓고 작업중이다. 일 없이 깔깔대며 웃는 젊은이들이 광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가족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광장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런닝셔츠 차림의 인부들, 과일이나 따말레나 따꼬스나 아구아 데 오차따를 팔고 있는 행상, 그리고 나무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매일밤 광장에서 보는 풍경인데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할일 없는 여행자들도 광장에 나처럼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할텐데 오늘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먼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어젯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보았다. 우기가 시작되려나 보다.

정작 중요하고 재밌는 순간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가라폰의 수정처럼 맑은 스노클링 포인트에서도, 대낮의 열기를 피해 나무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앉아 있을 때에도, 아니면 타이티섬을 주제로 한 고갱의 그림같은 밤의 낭만이 지금 내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데도. 밀림의 고색창연한 유적지에서 울부짖는 원숭이들을 찍지 않았다. 빛과 구름의 기묘한 변화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아도비를 쳐 박아 놓은 그 웅장한 건축물의 번쩍이는 모습도, 아름다운 퀘찰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마르코스의 모습도, 선주민들의 화려한 복식도 마찬가지고. 이런 광경들이 훗날 힘들고 괴로울 때 다시 생각날까? 그럴 리가 없다. 난 잊어 버리는 일이 전문인 새대가리다. 훗날 기억나는 인상이란 스스로 조작한 왠지 천당스러운 이미지 뿐일 듯.

내일 새벽에 떠난다.
바나나는 충분했다.
,

Banana Republic

여행기/Mexico 2003. 4. 9. 05:26
아끼느라 애를 썼지만 섬에서 이틀 쓴 돈이 80$ 가량 되었다. 멕시코에서 펑펑 쓰는 돈을 생각하면 500$이 아까워서 안 간 이라크 생각이 절로 났다. 미국의 침략군이 바그다드를 부수고 있어서 더더욱 속이 쓰렸다. 이제 다시는 옛 바그다드를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깐꾼으로 돌아가는 느린 페리는 15n$ 밖에 안 했다. 1시간 45분 후에 출발. 45분 소여. 느린 걸 타도 되지만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시각을 확인해 보지 않아 일단 빠른 페리를 탔다. 35n$, 25분 소여. 바보.

가는 길에 카리브해의 연초록색 물결을 바라보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러고보니까... 물이 별로 안 짰다.


7.30pm 빨렝게행 차표를 끊고나니 할 일이 없다. 배낭을 맡기고 끝내주는 카리브 연안에서 여자들 몸매나 구경할까.. 하다가 짐 맡기는 데 7시간에 35n$, 허그덕. 남은 돈이 얼마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뙤약볕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싼 식당을 찾아 방황하다가 가장 싼 메뉴를 주문해서 식탁에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다 먹고 시간이 펑펑 남아 인터넷 좀 쓰다가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6.30pm 빨렝게행 버스, 차장에게 타도 되냐고 물으니 타란다. 한시간 일찍 도착하면 빨렝게에서 바로 과테말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밤 늦게 메리다에 잠시 섰다. 5분간 정차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알아들은 나 자신이 신기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재빨리 버스를 뛰쳐나가 터미널을 지나쳐 편의점에서 4.5n$짜리 컵라면을 샀다. 뜨거운 물이 없다. 급한 대로 찬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넣고 초조하게 3분을 기다렸다가 떠나려는 버스를 가까스로 탔다. 컵라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맛있다. 배가 고파서 더더군다나.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플로레스행 투어편부터 알아봤다. 투어 아니면 '미친' 가이드북이 설명한, 해골 복잡하고 돈은 돈대로 드는 이상한 코스를 택해야 한다. 아쉽게도 내일 아침 6시에 출발한단다. 돈을 세어 보았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투어비와 숙박비를 빼면 50n$가 남았다. 값싼 식사 한끼하고 내일 먹을 먹이를 구하면 딱 떨어진다. 바나나를 잔뜩 사자. 바나나는 영양가가 풍부하지. 배도 부르고. 핫핫핫.

그러다가 빨렝게 유적이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0n$이면 입장권과 왕복 차비를 합친 것보다 1n$이 많다. 여차저차해서 사정하면 1n$쯤은 깎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밥을 못 먹는구나... 바보. 밥값을 조금 아껴서 10n$만 인터넷에 쓰기로 했다.

갈 시간이다. 과떼말라가 예전에 악명높은 'banana republic'이었지. 바나나를 사서 숙소에 돌아가 과떼말라의 루트나 잡으며 여행지에 관한 꿈을 꾸어야지.
,

Isla Mujeres

여행기/Mexico 2003. 4. 8. 04:43
옷가게에서 반바지를 살 때 50% 밖에 깎지 못했다. 오래 여행하고도 이 모양이다.

해변에서 면 팬티만 입고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 음부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난 어떤 토플리스 걸을 쳐다보았다. 뚜러지게 그 부위만 쳐다보왔다. 여자가 다가와 뺨을 때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랍에 있다가 헐리웃의 거리에서 판매하는 변태용 란제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동양 여성이 해변에서 상체를 벗은 모습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혹시... 크기가 비교되서?

카리브해는 명성 그대로였다. 태국의 여러 해변을 돌아봤지만 이런 데는 없었다. 특히 가라폰 리조트. garaffon 리조트에서 오랫만에 스노클링을 했다. 물결은 겁이 날 정도였지만 산호초 사이에서 움직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라이프 자켓을 입었음에도 50-80cm 높이의 파도가 수시로 목젓까지 넘실거려 공포스러웠다. 발 밑은 12미터 깊이의 너무나 맑은 바다속. 파도에 휩쓸릴 일은 없겠지만 산호초에 부디치며 그걸로 끝장이다. 일렁이는 파도와 적나라하게 밑바닥이 드러난 바다가 무서웠다. 일본인 남녀가 바다를 처량하게 바라보더니, 스노클링은 안하고 그냥 돌아간다. 걔들도 무서운가 보다. 장비 대여료가 비싼데... 입장료와 스노클링 장비 대여한 것만도 30달러 정도여서 허걱했다.

싸들고 간 도시락을 까 먹었다. 오렌지와 튀긴 또르띠야. 왠지 처량하고 청승 맞았다. 유원지에 놀러온 멕시칸들은 15달러나 하는 입장료와 10 달러나 하는 장비 대여료를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내고서 채 한 시간도 안되어 다 놀았다고 돌아간다. 30달라가 아까워서 무료시설을 악착같이 이용했다. 리조트를 나올 때는 스노클을 기념으로 줬다. 의외의 기쁨이긴 한데, 들고 다니기가 영...

스노클링 한다고 파도 속에서 무의미하게 허우적 거리다가 해먹에 누웠다. 평소에는 읽지도 않는 가장 재미없는 소설을 읽었다. 그래야 잠이 잘 왔다. 눈부신 햇살과 바람이 야자수를 움직였다. 깨보니 하늘이 붉다. 가라폰에 놀러왔던 사람들은 다 돌아간 것 같다. 터벅터벅 20분을 걸어서 버스를 기다려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살이 노릇노릇하게 탔다. 오이를 사다가 intensive skin care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드리프트 다이브가 유명하다는데 다이브샵들이 문을 닫아 가격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대신 해변에서 죽여주게 잘 빠진 여자를 보았다. 와...

벨리스를 경유해(이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과떼말라로 들어가려면 돈이 꽤 많이 들었다. 제대로 점검해보지 않은 탓이다. 가이드북에는 되는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믿을 수가 없다. 가이드 북 보고 계획을 짜다가 책을 확 집어 던지고 싶어졌다. 횡설수설 하고 있다. 8시에 배가 떠난다는데 6시에 출발해서 4시간 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라니. 정신이 나간건가? 경로가 하도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다. 새벽 4시부터 시간에 쫓기면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툭하면 제 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배를 타고(배를 놓치면 모터보트 운전수에게 부탁해 그 배를 쫓아 가란다) 그렇게 국경을 건넌다? 국경을 건너도 어느 것 하나 버스 시간이 맞질 않았다. 나흘에 걸쳐 잠도 못 자고 쓸데없는 개고생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총 경비가 싸지도 않다. 이쪽 루트는 포기했다.

테러 공포: 떼죽음에 대한 미국식 히스테리. 슬럼가에 살고 있는 흑인들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 누군가는 으슥한 거리에서 총을 맞겠지만 내가 조심하면 안 당하던 상황과는 다르니까. 랩과 테이프, 마이크로웨이브와 항생연고가 그들의 대책이었다 -- 미국 여행자가 괴기스러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편지를 받으면 마이크로웨이브로 살균한 후 개봉한다는 것이었다. 왠간한 미생물은 다 죽는다고 한다. 사실 그것도 의심스러워 양 손에 항생연고를 듬뿍 바른다나. 그전까지만 해도 안전장치를 제거한 전자렌지에 시끄러운 옆집 개나 고양이, 때로는 자기 머리를 넣고 폭발시키는 아이디어가 가장 신선했었다.

뉴스를 보니 미국시민들은 생화학무기 테러를 조기 경보할 수 있는 식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그동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감마선 복사가 시작되기 10분 전에 그것을 감지한 후 한국어로 말해주는 영특한 유전자 조작 바퀴벌레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정 안되면 핵폭발을 '기'로 막을 수 있는 애국 기공사라도 키워야지 않을까 싶다. 만나는 녀석마다 북핵 문제를 떠들어서 골치가 아프다.

길을 가다가 아미고에게 담배 한 대만 달라고 했다. 자기는 마리화나 밖에 안 피운다고 주장했다. 살테니까 꺼내보라고 말했다. 질이 나쁘면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 경찰이 반쯤은 정신이상자 무리였다. 왠간하면 감방에 쳐박아놓고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팬 후 벌금을 뜯어낸 다음 무혐의로 풀어준단다. 사설 경호원들은 더 심했다. 그들은 산탄총을 자기 애인처럼 사랑했다. 옆구리에는 폼으로 정글칼을 차고 시가전을 한다는 자세로 민간인을 밀쳤다. 하지만 천진한 외국인이 담배 한 대 달라면 줬다. 아마 내가 여자였으면 담배 뿐만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쳤을 것이다. 그럼 담배와, 몸과, 마음을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맥주에 레몬즙과 소금이면 족했다. 이제는 비웃을 수 있다. 데낄라 마실 때 잔에 소금테를 두르고 안주로 레몬을 먹는다고? 세상이 바뀐 줄 모르는 촌뜨기들이나 하는 짓이지. 피식, 콧방귀를 끼고, 맥주에 레몬즙을 짜 넣고 소금을 타서 잘 저어 마셨다. 이게 2000년도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그렇다치고 맛이 좀 얼얼하다.

갑자기 마르코스를 만나보고 싶다. 복면을 뒤집어 쓴 그의 사진을 산 끄리스또발의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보았다. 내 나이 또래였다. 그는 혁명가였다. 나는 백수고.
,
한국만 SARS 걸린 사람들이 없는게 고추와 마늘 때문 아닌가? 워낙 독한 사람들이니... 마늘이 먹고 싶다. 돼지고기 먹을 때마다 마늘 생각이 나고는 했다. 어젯밤 햄버거를 먹을 때도 절인 고추가 없었더라면 다 먹지 못했을 것이다.

늦게 일어났다. 늦게 잤으니까. 급한 김에 노점 음식을 두 차례 허겁지겁 먹고 뱃속을 미리 물로 가득 채웠다. Chichen Itza로 가는 2등 버스표를 끊었다. 에어컨을 켜도 버스 안은 무더웠다. 입장료 87뻬소(8$). 무시무시하다. 그 돈을 다 내는 멕시코인들도 무시무시했다. 정글을 뚫고 유적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시도를 할 생각을 못 한 것은 입장권이 두 개이기 때문인데... 하나는 손목에 채우는 것이었다. 우스말의 입장권도 마찬가지였는데 한 서양인은 요행을 바라고 우스말의 입장권을 달고 다녔지만 치첸이사의 입장권과 색깔이 달랐다. 사방에는 큰 눈이 부리부리한 유적지 관리인들이 깔려 있었다. 참, 어렵다.

열대에 오니까 짐 무게가 1.5배는 더 나가는 것 같다. 오후의 햇살은 기세등등했다. 삼십분도 안되 팔과 목덜미가 타들어갔다. 바람이 불어줬지만 열풍이라 땀을 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유적을 관람하면서 위안이 되었던 것은 옷을 거의 안 입은 굉장한 미녀가 남자들을 이끌고 유적지를 종횡무진 누비는 모습을 시종일관 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음... 그런 여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러 메뚜기같은 남자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유적의 보전 상태가 훌륭했지만 여자들의 모습은 더더욱 훌륭했다. 어느새 마야 유적지에 꽃이 잔뜩 피었다. 뜨겁고 강렬한 햇살이 여자들의 옷을 벗겼다. 사실 안 입은 것만 못했다. 입장료가 하나도 안 아까왔다. 그러고보니까 발기가 안되는 늙은이들이 햇볕 정책을 싫어했던 것 같다.


El Castillo. 보고 뻑 가다.

멕시코 사진 다섯번째


유적지를 돌고 나온 시각이 4시. 버스 정류장 앞에는 배낭여행자로 보이는 친구들이 잔뜩 있었지만 Cancun행 2등 버스를 타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어? 이상한데? 한번 들러볼까 했던 발라볼리드 근처를 지나친다. 발라볼리드에서 5km 가량 떨어진 멕시코 교도소를 지나쳤다. 그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만들어 교도소가 판매하는 해먹은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던데... 들를 껄 그랬나.. 왠지 아쉽다. 유카탄 시골은 인도의 촌락처럼 허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탓일 것이다.

지평선 위로 해가 졌지만 여전히 정글 사이로 뱀처럼 가늘게 뻗어있는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손님이 나 밖에 없었다. 맞은편으로 아주 가끔 차가 한 대씩 지나쳤다. 분위기가 영 을씨년스러워 잘못 탄 것인줄 알았지만 운전수가 맞단다. 검은 아가리를 쫙 벌리고 있는 울창한 정글을 버스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촌락의 불빛조차 안 보인다. 저녁 9시쯤 되어서야 깐꾼에 도착했다. 안도감에 담배를 연거푸 빨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바글거리는 유스호스텔에 짐을 내려놓았다. 멕시코에 온 후로 유스호스텔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그만 방에 침대를 여덟 개쯤 들여놓아 비좁아 터진데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사방에서 부스럭거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스말에서 보았던 한국인을 다시 보았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가씨였다. 어쩌면 과테말라에서도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겠다. 맥주 한 잔 하고 도미토리로 기어가 샤워만 간신히 하고 눈을 붙였다.

호스텔에서 아침이랍시고 주는 것이 몇 안되는 빵쪼가리 달랑 그것 뿐이다.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국물은 고춧가루가 잔뜩 들은 '한국맛'이지만 면발이 영 꽝이었다. 물어물어 이슬라 무헤레스로 가는 배를 탔다. 별 도움이 안되는 가이드북을 제끼고 숙소를 전전하며 가격을 맞춰봤지만 150뻬소 이하의 싱글은 더 이상 없는 듯 했다. 섬에 들어왔으니 이제 나갈 때까지 본의 아니게 탐욕스러워진 상어들에게 뜯어 먹히는 일만 남았다. 아미고 삐끼가 맥주 사달라고 조른다. 망할 놈, 니가 사주면 덧나냐? 여기도 형광등이 나갔다. 매니저와 함께 형광등을 갈았다. -_-

마돈나가 노래했던 '라 이슬라 보니따'가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임을 어느날 갑자기 알게 되었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무헤레스는 화장실에서 많이 본 단어였다. 무헤레스는 여자라는 뜻인데, 여자 화장실에 몇번 들락거린 후로는 절대로 잊지 않게 되었다. 에스빠뇰로 남자는 뭔지 모르겠다. '남자'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슬라 무헤레스, 여자의 섬. 1500년에 대량 출토된 Ixchel 여신의 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름 때문에 뜯어먹힐 각오를 하고 섬에 들어왔다.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카리브해의 해변이 시원스럽다. 해변을 걸었다. 여기저기 가슴을 축 늘어뜨린 채 자고 있는 서양 여자들이 보였다. 봐도 그저 그랬다. 하도 많이 봐서... 랄까. 그것도 보니따 스러운 것만. 80뻬소 짜리 아바나산 시가를 물고 30 뻬소나 하는 마르가리따를 홀짝이며 60뻬소 짜리 비치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카리브해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간간이 물속에 들어가거나 살을 태우며 잤다. 더 태우는 것은 끔찍해서 파라솔 아래에서 편히 누워 있다가 해가 떨어질 무렵 자리에서 일어섰다.


Isla Mujeres의 북부 해변

놀랍게도 깐꾼이나 이슬라 무헤레스나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영어를 알아듣는다. 하긴, 분위기가 미국인들 휴양지나 다름없어 보였다. 휴양지이므로 맥주 한병 살 때도 허걱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섬 휴양지라도 빈틈은 있게 마련이다. 섬에 살고 있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있을테니까. 태국에서도 섬에서 지역주민들이 애용하는 식당으로 근근이 살아남았다. 태국의 해변 만한 곳은 지구상에 없을 것 같다.

해변의 마야 유적지인 뚤룸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입장료가 무섭다. 그래도 멕시코 내의 중요한 마야 유적지는 다 본 셈이고(Mayapan을 안 갔지만) 내가 마야 문명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음을 확인했다. 서점에서 이 지역의 문명에 관한 책을 잠시 읽다가 내려놓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성 싶다.
,

Uxmal

여행기/Mexico 2003. 4. 5. 12:57
형광등이 나갔다. 수리하려고 불렀다. 언어가 안 되니까 수화를 사용했다. 형광등이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어 우리는 아주 단순한 문제로 추상적이고 애매한 대화를 나눴다. 일단은 현상을, 그 다음에 원인을, 그리고 해결 모색을 위한 방법을 탐구하는... 마치... 천정에 걸려있는 바나나를 따먹기 위해서는 궤짝이 몇 개나 필요할까 라는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원숭이들처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이런 '표준화된 절차'나 '공통 관심사'가 아니라면 나와 지배인 사이에 대화가 통할 전망은 없어 보인다.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그래서 habla inbgles?(do you speak english?)와 no entiendo(can't understand) 그리고 no habla espanol(i can't speak spanish)였다.

언어가 안 통해도 외국인 아줌마와 30분 대화한 것 만으로 그 집안 내력을 파악하는 한국 여자를 보고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났다. 여자들은 인간관계를 삶의 핵심적인 요소로 파악하는 것 같다. 아줌마 둘이 모이면 그들이 보유한 전력을 상대방에게 노출시키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들 사이의 원순적인 공통 관심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스말 Uxmal 유적지로 가는 길에 에스파뇰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한국인을 만나 동행했다. 그에게 세계를 간다 멕시코와 중미편을 빌려 보았다. 숙소 정보는 영 떡이었지만 깨알같은 글자로 1200페이지나 하는 내 가이드 보다 유적을 설명하는 수준이 나았다. 세계를 간다 번역판을 읽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리는 얘기는 아니고, 정말 그렇게 부실한 정보로도 여행 잘 해 나가는 것이 신기하다. 여행을 11개월째 하고 있지만 그들이 나보다 훨씬 여행을 잘 하는 것 같다.

우스말 유적에 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 돌덩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분위기를 즐겼다. 360도 사방으로 정글이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빨렝게를 본 경험을 바탕으로 단언컨대 우스말 유적이 한 수 위였다. 어쩌면 마야 유적에 관해 얘기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전고전주의와 후고전주의의 차이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유적의 규모는 비교적 작았다. 작은 유적인데 87뻬소나 받아 먹었다. 그러고도 가장 중요하고 정말 정말 멋지게 생겨 반드시 기어 올라가봐야 될 것처럼 생긴 마법사의 신전(soothsayer니까 예언자쯤?)에 기어 올라가지 못하게 막았다. 인류의 공동 유산인데, 계단이 가파라서 누군가 기어오르다가 떨어져 죽었건 말건 왜 못 들어가게 하냔 말이냐. 왜 호기심을 키워놓고 본전 생각이 나서 관광 수입에 혈안이 된 멕시코 정부를 저주하게 만드냔 말이다. 음. 흥분했군. 빨렝게에서도 기록의 신전에 못 올라갔는데...


마법사의 신전 Mexico 사진 4번째 페이지


마법사의 신전이라고 누가 적어놨는지 모르겠다. 예언자가 맞을 것이다. 예언자도 아니고 사제가 맞을 것 같다. 정글 한 복판에 혼자서 고고하게 서있는 그 신전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천체의 흐름을 읽고 정확한 달력을 제작했을텐데 그건 최고위 사제들만이 가진 고급 정보에 속하는 것일께다. 고급 정보? 그러고보니 당시에 몇 년 마다 중미 전역의 사제들이 모여 일자 수정에 관한 역법 회의를 했다는 말도 본 것 같다. 그런데 마야인들이 정밀한 달력을 제작하게 된 이유가 짐작이 안 간다. 치아빠스를 비롯한 유카탄 반도의 마야 문명의 전통적인 농경법은 대규모 경작을 하지도 않았고 날씨, 기후와 유달리 깊은 관계를 지니지 않았다. 정글에 불 지르고 땅 파서 옥수수알 심어 놓으면 잘 자랐으니까. 기거나 날거나 걸어다니는 단백질 수집도 용이한 편이고. 일년에 겨우 0.0002일의 오차 밖에 없는 초정밀 달력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그들의 역법 체계에서 52년 마다 한번씩 세계가 바뀐다는 말도 안되는 개뻥을 사제들이 민간인에게 강요하기 위해서 였을까? 아무리 신앙심이 견고한 사람이라도 52년이 지났음에도 어제와 오늘이 같음을 알텐데 그런 뻥이 통할 리가 없다. 하지만 52년마다 짓던 신전과 문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현상의 경이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사제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되지 않을 테니까? 어쨌거나 답답한 마야 학자들이 결국 외계인론으로 얘기를 몰고 가는 것이 수긍이 간다. 게다가 낭만적이잖아.

사제들의 '횡포'(구체적으로 어떤 횡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배자는 늘 포악했으니까)에 저항하는 유카탄 반도의 마야인들이 수천년부터 그들의 피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지독한 혁명 유전자 덕택에 사제 계급을 싹 쓸이하고 스스로 분서갱유를 시도하여 찬란했던 마야 문명이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야인들이 계급사회를 이루었고 당시 로마에서나 있었던 매우 훌륭한 관계수로 시스템을 운영했으면 빨렝게 유적에서는 steam bath의 흔적마저 있었다. 돌을 달구고 그 위에 물을 뿌려 증기탕을 만들었다. 그러니 로마가 최고인줄 알았던 우물 안 개구리 제국주의자들이 경악할 수 밖에 없었을테지.

마야 문명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현지인과 친해진 어떤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었다는 글을 읽었다. 원주민은 그들이 신성시하는 채색화를 고고학자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때까지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있었지만 문서로 남겨진 기록이 없었는데 이집트의 꽃게 기어가는 듯한 회화와 동일한 마야 회화를 보았다는 얘기. 그레이엄 헨콕이던가? 신의 지문? 별로 내키진 않지만 초고대문명이라는 매력적인 가설을 만들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헨콕 못지않게 '과학'과 '경이'를 빌미로 사기치는 한국의 어떤 집단 때문에 영 정은 안 가는 편이지만.

만일 그들이 정말로 정밀한 달력을 만들기 위한 천체 관측을 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필수적인 기구나 지식이 필요하다. 삼각법이나 삼각법과 대등한 원의 성질에 관한 지식, 육분의, 기본적인 천문도, 무엇보다도 시계. 0.0002일의 오차를 가진 달력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많이 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오차가 그것 밖에 안 나오는지 설명하는 글은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세차운동까지 알고 있거나 지동설과 비슷한 천문관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런데 왜 유적지에서는 마야의 전설에 등장하는 뱀 대가리와 새 대가리는 그렇게 많으면서 별들이 신성하게 반짝이는 부조는 없는가. 아... 금성 사원은 있구나. 하지만... 하다못해 점성학이라도... 그리고 수 체계는 물론이고 계산 체계와 측정 도구가 있어야 할텐데 마야 유적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서 황금으로 수를 놓은 멋지게 생긴 천구도나 천문관측기구는 본 적이 없다. 서기 600년경의 아랍세계에는 있었다. 기껏해야 왜 털없는 짐승의 이름을 털있는 짐승인 것처럼 써놨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춘분때 생기는 그림자 모양이 그 짐승의 털모양이었다는 류의 얘기로 마야인들이 얼마나 영악했는가를 설명하는 기괴한 글이나 있고... 시간을 들여서 조사해 볼 필요를 느꼈다. 생각보다 대단치도 않은 건축물과 얼마 안되는 기록으로 어떻게 그들의 수학이랄지 산법이 나왔는지. 인도보다 먼저 0을 발명했다... 계산도 했는가? 그들은 분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무리수도 알았을까? 별 기록이 없는데 혹시 어디서 '발명'된 낭만적인 얘기들 아닐까? 혹시 스톤헨지류의 지어낸 이야기들? 스톤 헨지에 외삽해 놓은 자료가 그 돌무더기보다 더 많듯이... 돌덩이를 쪼개는 도구가 돌덩이 밖에 없던 작자들이 어떻게 해서 산법을 개발했는가?

마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외계인설로 몰고 가는 것 같군. 외계인들이 2000년 후면 완전히 부스러지는 환경친화적이고 멋진 전자시계와 계산기를 줬다.

아니면 치사하게도 지들만 사용하고 노예로 멋대로 부려먹다가 재미가 없어서 떠났다. 음. 미솔하를 보러 간 것도 사실 프레데터가 그런 비슷한 류의 주제를 가지고 만든 흥미 만점의 sf액션 스릴러였기 때문이다.

수만 년 동안 지구는 외계인들의 레저용 사냥터였다. 하지만 무분별한 학살을 지양하려고 지구의 유카탄 반도 지역만 자유 수렵구로 지정해 놓았다. 그래서 외계인들은 유카탄 반도의 마야인들을 사냥하고 살을 발라내 뼈를 수집하여 서재에 걸어두었다. 지구에서의 짧지만 흥미로웠던 휴가을 되새기면서 눈가위가 뻥뚫린 신기하게 생긴 동물의 두개골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것이다. 마야인들이 워낙 미개한 나머지 위험이 없는 일방적인 사냥 내지는 학살의 재미가 시들해질 무렵, 일부 사냥꾼들은 마야인들에게 한시적으로 도구를 쥐어주고 사냥의 재미를 높였는데 몇 차례 사고가 생긴 후 외계정부가 그런 일을 자행한 불법 사냥꾼들을 적발해 엄벌에 처하고 유카탄 수렵구를 영구히 폐쇄했다. 외계인들이 떠난 후에도 마야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52년 마다 거주지를 옮겼다. 아니 충분히 정착해 살 수 있었음에도 정글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쫓기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뚜러지게 쳐다보며 외계인들이 쳐들어 오는가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의 문명과 삶은 전적으로 이렇게 하늘을 목이 부러져라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었다. 잉카 제국이 있었던 나스카 평원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외계인들의 휴양지 였기 때문에 학살을 모면했으며 비행장을 건설하여 멀리서 휴가 온 외계인들을 맞았다. 외계인은 두 종족이었다. 하나는 퀘찰이라 불리던 새 모양의 날개가 달린 종족이었고 다른 하나는 뱀 모양을 한 파충류였다. 뱀 모양을 한 외계인은 지구의 고대 인류를 발전시키는데 흥미가 있었지만, 새 종족은 지구 환경 보호 차원에서 그것을 적극 말리고 있었다. 뱀 종족은 마야인들에게 공공연하게 무기를 쥐어 주기도 했다. 훗날 환경보호자들이 승리하고 조류는 미화가 되어 천사가 되었으며 뱀은 미개한 지구인들에게 악마로 불리웠다. 그들은 전세계 모든 문명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신화적인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멕시코 국기는 이들 두 외계 종족의 정치적 분쟁을 상징하는 그림을 국기에 새겨 놓기도 했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 였던 마야인들은 그들을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 박물관에 가면 그들의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두개골 수집을 본 딴 마야인들의 토착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우하하하!

메리다 시내에서 네 번이나 인터넷 까페에 들렀다가 컴퓨터들이 부적절해서 돌아섰다. 다섯번째 가게에서 사용을 마치고 나오니 한 시간에 20뻬소란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무심코 호텔에 들어와서 인터넷을 사용했던 것이다. 한 시간에 12뻬소씩 하는 인터넷 까페를 놔두고 왜 이런 곳에 들어왔을까... 소름이 끼쳤다.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모기에 뜯기면서 잠들었다.
,

Merida

여행기/Mexico 2003. 4. 4. 11:08
체크아웃 하려고 내려와보니 주인이 없다. 짐을 맡기고 나가봐야 하는데... 한 시간쯤 멍하니 기다리다가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 나왔다. 버스 터미널에서 Merida행 표를 끊고 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니 10시간에 30n$. 눈물이 나왔다. Misol-Ha로 가려고 콜렉티보를 알아보러 땀나게 돌아다녔다. 아직 12시 이전이라 그런지 투어 차량 밖에 없었다. 미솔하 편도가 30n$, 왕복이 60, 투어 티켓이 2군데 포함해서 100. 고작 30분 밖에 안 걸리는 곳에 있는데 30이라니... 그렇게 한 시간을 돌아다니니 지쳤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 Misol-Ha와 Agua Azul을 가는 투어 버스를 탔다. 담합이라도 한 것인지 가격이 다 똑같다.

미솔하에서 30분 쯤 꽤나 멋진, 시원스런 폭포 구경을 했다. 어디가 프레데터를 찍은 부분인지 모르겠다. 아구아 아술로 향했다. 졸립다. 봉고는 40킬로만 넘으면 항공기 뜨는 소음이 났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남매 지간이라는 두 캐나다 여자애들 뿐이었다. 둘 다 유창한 에스빠뇰과 프랑스 어를 하지만 의외로 영어는 더듬 거렸다. 그중 동생은 영 수줍어서 말도 안 하고 있었다. 내일 과떼말라의 띠깔로 간다고 말했다.


아구아 아술에서 캐나다 여자애들은 물놀이하고 있는데 수영팬티가 없어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얼쩡거렸다. 혼자 라면 어떻게 그냥 들어가겠지만 여자애들 보는 앞에서 민망하게 쇼는 못하겠다. 물이 드러워서 못 들어가겠다고 우겼다. 베트남의 한 도미토리에 두고 운 수영팬티가 간절하게 생각났다.

미솔하의 폭포만 보려고 했는데 아구아 아술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미솔하 폭포는 30분, 아구아 아술에서 4시간을 머무는 투어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돌아오는 길에 멕시코 친구를 태웠다. 워낙 손님이 없어서 운전수가 태운다고 했을 때 별 반대가 없었다. 그는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멕시코를 횡단하고 있었다. 에스빠뇰을 기차게 잘하는 두 캐나다 여자애들이 간간이 통역해 주었지만 언어 차이로 인한 상대적인 소외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멕시코 친구를 보니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를 여행했던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저 친구도 수년 후 혁명가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음. 물론 체 게바라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뛰어난 머리... 가 뒷받침 되어야 겠지만...

아구아 아술의 폭포 옆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향후 일정을 궁리했다. 빨리 움직이고 싶다. 하지만 몸이 따라줄지 모르겠다. 빨렝게 유적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다시 가봐도 괜찮을 곳 같다.

버스 시간은 밤 11시 45분. 투어가 오후 6시에 끝나 6시간 동안 할 일이 없다. 할 일이 없으니까 통 안가던 바에 들어가 맥주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오고 신나고 요란한 멕시칸 음악이 흘러 나왔다. 손님은 없었다. 거리에서 가게들이 하나둘 씩 문을 닫는 모습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몽사몽에 깨어 메리다에 도착. 첫번째 호텔을 찾았으나 문을 닫았다. "See you in Winter Season!" 터덜터덜 걸어 두번째 게스트 하우스를 잡고 샤워하고 우스말에 갈 계획을 세웠다. 찬란하고 뜨거운 유카탄의 아침이다.
,

Palenque

여행기/Mexico 2003. 4. 3. 10:34
마야 유적지로 간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얼른 세수를 마치고 막 출발하려는 꼴렉티보를 손짓해서 세우고 잠시 기다리라고 소리친 후(모멘또! 모멘또!) 바나나를 사서 올라탔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햇살은 깔끔했고 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다. 여행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꼴렉티보에 탄 사람은 나와 아줌마 한 명 뿐이다. 매표소에서 학생인데 할인 좀 해달라고 해봤지만 나쇼날 nacional 이라고 생글생글 웃을 뿐. 멕시코 국내 학생증이 아니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입구에 그 유명한 석관 부조의 모조가 전시되어 있었다.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는 죽은 왕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로, 마야 문명을 아주 신비롭게 각색하는 사람들의 주 테마 중에 하나. 진짜를 봐야지 아무렴 하고 무시하고 지나갔다가, 후회했다. 유적지는 물론이고 박물관에도 원본을 전시하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무척 기대했는데. templo inscripcion에도 줄을 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아. 가장 중요한 신전인데... 문 닫을 시간 쯤에 관리인에게 싸바싸바하면 살짝 들어가게 해 준다고 가이드북에 적혀 있었다. ...... 그냥 말지.

유적지는 정글 한 복판에 있었다. 단체 관광객 몇 팀 정도가 소란스러웠을 뿐 대체로 평화스러워서 왕의 무덤에 앉아 싸들고 온 바나나와 망고를 펼치고, 바나나와 망고를 까먹고 행복해진 나무늘보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유적지 위로 매가 날고 있었다. 저 멀리 아득한 정글 너머로 지평선이 보인다. 궁전에서 30분, 그리고 태양의 신전에서 일없이 한 시간을 보냈다. 울창한 밀림이 그늘을 드리우고 시원한 바람이 사이사이를 샅샅이 지나갔다. 좋다.


Temple of the Cross, 내 앞으로 정글 속에 푹 파묻힌 궁전이 보인다

중앙 광장의 궁전을 중심으로 한 구조물들은 그렇다치고 정글 곳곳에 오솔길을 따라 널려있는 유적지를 돌아다닐 때는 기분이 그럴듯 했다. 마침 사람도 없었고, 있는 사람들이라봐야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마야의 후손들'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도 했다. 이 아줌마는 구르포 에이로, 저 할아버지들은 구르포 비로, 미국인 팀은 지옥으로. :)

망원경을 들고와 정글 속에서 요사스럽게 울고 있는 열대의 새들을 관찰하는 프랑스인들이 있었다. 나도 보고 싶은데... 뭔가 열심히 프랑스어로 논쟁을 벌이는 중이라 끼지도 못하고... 종종 망원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앗. 그러고보니 망원경이 있으면 망원렌즈를 안달아도 되는 것 아닌가? 망원경의 접안 렌즈에 카메라를 바짝 대고 찍으면 되잖아. 음. 아니군. 상이 많이 흔들리겠구나. 내 것 하고 똑같은 gps를 들고 유적지를 헤메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야생의 감각과 개코로 길을 찾았다.

정글 속에서 뭔가가 자꾸 목덜미와 팔등을 물어 간질간질하다. 모기 같지는 않고, 대체 뭘까. 떡대좋은 아줌마가 긁지 말라며 사래질을 한다. 뭐라뭐라 그러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냇물에 얼굴을 씻었다. 석회수? 위를 쳐다보니 정말로 석회기둥들이... 그랬구나. 유적지의 건물들은 거친 석회암으로 지어진 것들이었다. 지붕은 A-beam형태로 높고 뾰족한데 벽면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일직선의 환기 시스템을 구성했다. 사실 잘 지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할 건축이었다. 건물의 사면으로 짐작컨대 복도를 따라 긴 그늘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 같다. 석관이 소장된 무덤터는 사방이 꽉 막혀 있어 무덥고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벌써 두 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소녀에게 저 데드 마스크의 소재가 뭐냐고 물었다. 비취인지 옥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옥이라고 했다. 마침 그녀의 애인으로 보이는 작자가 나타나서 슬며시 꼬리를 접고 마야 문자들을 쳐다보러 갔다. 유적지에서 너무 시간을 보낸 것이 아쉽다. 한 시간쯤 박물관에서 발견된 부장품을 둘러 보다가 박물관 앞에서 꼴렉티보를 타고 시내로 귀환. 거리를 뒤져 20페소 짜리 menu del dia(오늘의 메뉴)를 잘 먹고 아주 흐뭇해졌다. 우유같은 음료수의 이름이 hochata라는 것을 드디어 알았다.

고생 끝에 windows 2000/xp용 한글 IME를 다운 받았다. 용량이 무려 11메가. 여섯 번이나 끊기고 2시간이 걸렸다. 위성 링크라지만 속도는 느리고 가격은 비싼 편. 이럴 줄 알았으면 산 끄리스또발에서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얼른 받아두는 건데. 이제 어떤 운영체계에서도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어어! 단, USB 포트가 있어야 한다. 우어어! 그런데 한글 쓸 수 있으면 뭘 하지? 딱히 할 일이 없잖아? 우어어어어!!

사진을 200장쯤 찍었다. 그중 몇 장을 버려야 할까 생각하다가 많이 지웠다. 유적의 돌덩이들이야 어디가든 사정을 모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사진을 정리해야 하는데 박물관에서 본 것들 때문에 머리속이 뒤죽박죽 되어 어디부터 시작할 지 난감하네...

어제 먹은 맛있는 빵집에서 빵을 여덟 개 샀는데 어제보다 더 싸게 받는다. 웃는다. 그 옆집에서 우유와 담배를 샀다. 200짜리 지폐를 건네니까 30뻬소라면서 아저씨가 50뻬소 짜리 네 장과 15뻬소를 건네 주었다. 200-30=215? 묵묵히 잔돈을 받아들고 시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요즘 머리가 굳어서 뺄셈이 잘 안된다.

식당에서도 그렇고 거리에서 만난 '아미고들'이 어깨를 두들기며 지나간다. 오늘 무슨 날인가? 외국인에게 친절해지는 날?
,

Palenque

여행기/Mexico 2003. 4. 2. 06:17
비가 오는 길을 모자만 쓰고 반팔로 닭살이 돋은 채 추적추적 걸어갔다. 거리에서 반팔로 돌아다니는 미친놈은 나 밖에 없었다. 광장에서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담배를 물었다. 춥다.

멕시코의 190번 국도, 따빠출라에서 산 끄리스또발 데 라스 까사스 까지 이어지는, 푸른 구름이 솟아나던 오르막 길. 186번 국도, 산 끄리스또발에서 빨렝게로, 5시간 동안 2230미터를 서서히 정글로 추락해 가는 아름다운 코스. 이 근처의 폭포에서 프레데터를 찍었다. 춥긴 하지만 안개 속에 싸인 정글이 아름다웠다.

옆에 앉은 캐나다 할머니는 자기 친구들이 멕시코 여행을 하는 자기를 몹시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혼자 메리다로 향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멕시코에서, 아니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따꼬스를 맛 볼 수 있는 곳이 산 미구엘 데 아옌데라고 말했다. '그걸 먹고 감동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영어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뻐킹 굿이라고 할까? 옆에 앉은 멕시코 여자는 에스빠뇰로 뭐라고 말하다가 우리 둘이 이해를 못하니까 간단히, 따꼬스, 치아빠스, 굿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음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샀다. 버스 안에서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왠지 약올리는 것 같았다. 안개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얼어 죽을 지경인데도 버스에서는 에어컨을 끄지 않았다. 옆에서는 컵라면을 맛있게, 오래오래 먹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하나 남은 오이를 불쌍하게 깍아 먹었다. 결심했다. 나도 반드시 컵라면을 먹을테다.

데스꾸엔또! 데스꾸엔또 포르 화보르! 방값을 깍아 달라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되묻는다. 꼬레아? 동족에게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국인은 어디가나 게시판에 걸려있는 정액을 무시하고 나 처럼 깎으며 다니고 있을 생각을 하니까. 거리를 걷는 도중 얼핏 까페에서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두 명의 한국인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종종 그런 지친 표정을 보았다. 뭐가 문제일까? 아무튼 건승을 기원했다. 난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 관계로...

밥을 먹어야겠는데... 다시 미친척하고 가이드북에서 'highly recommand'하는 'seriously cheap and good' 음식점을 찾았다. 역시 실패였다. 가이드북을 믿고 간 음식점마다 실패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추측해 보았다. 비싼 곳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끼에 5불 이상을 줘야 한다. 이상하게 생긴 스파게티가 나왔다. 칠리 소스를 잔뜩 뿌리고 후추와 소금을 쳐서 먹었다. 그제서야 음식 같았다. 메인디시는 꿰사디야스인데 고기를 안 쓰고 햄을 썼다. 소스를 한 가지만 줬다. 레몬을 주지 않았다. 용서가 안된다. 부르르 떨었다. 가만, 이 가이드북... 영국에서 만든거지? 그랬었군. 이해가 간다. 부질없는 짓 그만하고 앞으로는 다리품을 팔아 '가이드 북에 안 나오는, 멕시칸들이 가는 음식점을 찾아서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3코스 정식이나 먹어야겠다.

음식점마다 desayunos라는 것을 팔고 있었다. 오고 갈 때마다 봤는데 언젠가는 먹어야지 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데싸유노스가 무엇인지 알았다. breakfast라는 뜻이었다. 바보.

망고와 빵을 샀다. 빵 맛이 훌륭하다. 내일 점심인데 그냥 다 먹어 버렸다. 거리에서 일본인 3명을 보았다. 일본인 3명, 한국인 2명이 있으니까 비로소 빨렝게가 관광지 같아 보였다. 그러고보니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극히 드물다.

무척 덥다는 빨렝게 역시 춥다. 빨렝게가 chol어로 fortification place라는 뜻이라고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팜플렛에 적혀 있었다. 내 노트에는 '빨렝게에서 모기 조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기들은 얼어 죽은 것 같다.

볼리비아에서 산사태로 700명이 죽었다. 어떻게 산사태가 나서 일주일간의 미국군 전쟁 사망자보다도 더 많이 죽을 수가 있지? 볼리비아에 꼭 가고 싶다. 비단 전세계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썸스업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싸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