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마카오 여행기
여행기간: 9/30~10/7, 8일간
여행목적: 전산언어학회 참석 및 최근 추세와 연구동향 파악. (시간날 때마다 땡땡이 쳤다)
한줄짜리 감상: 홍콩은 비좁고, 비싸고, 시끄럽고, 답답한 곳이다
인상깊었던 것: 홍콩의 야경. 불꽃놀이. 중국음식. 그외 없음.
경비: 비행기삯, 숙박비를 제외하고 40만원
여행기 작성: 10/8~10/10, 대략 100kbytes, 사진 71장 포함해서 2.1MB
9/30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은 일단 짐싸기. 짐을 싸려니 별로 쌀 것이 없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물벼락을 맞았을 때를 대비해 여분의 바지 한 벌과 오버 트라우저, 그리고 티셔츠 두 장,
Lonely Planet Hong Kong(가이드북), 디지탈 카메라, 팜 파일럿, 작은 나침반, 들고갈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가져 가기로 한 노트북, 만능칼 정도. 노트북은 꽤나 무거웠다. 사우나에 들러 전날밤 술독을 풀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의 셋업을 끝마쳤다.
반바지와 푸른색 티셔츠를 줏어입고 거울을 흘낏 쳐다보았다. 약간은 늙었지만 천진난만한 대학생 배낭여행객으로 보였다. 달리 말해, 없어 보였다.
노트북에 파일럿 데스크탑과 디지탈 카메라용 소프트웨어를 깔고 그것으로 짐은 다 싼 셈이다. 그전에 CD-R로 필요한 한글 소프트웨어 따위를 작은 CD에 구웠다. 앞으로 여행가서 한글이나 팜을 싱크 시킬 일이있으면 이것만 들고 다니면 된다. 집을 나와 작은 수첩을 샀다. 미래를 위한 도전? 미래가 누구야? 동네 은행 몇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홍콩 달러로 환전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삼성역에 들러 외환은행을 찾아 전전하다가 간신히 돈을 살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500HK$, 100HK$, 50HK$, 20HK$ 짜리로 골고루 환전해 준다.
서점에 들러 간단한 중국어 회화책을 구입했다. 아무래도 홍콩인들이 영어를 한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홍콩 반환 전에야 그들이 캐나다나 호주로 이민가려고 영어를 득달같이 배웠다지만 반환 후 이민갔던 사람들이 후회하고 있다거나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면서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접하게 될 사람은 교육수준이 높고 영어가 가능한 작자들이 아니라 거리나 시장 귀퉁이에서 쭈그리고 있는 오리지날 중국인, 이를테면 광동어를 하고 영어는 모르는 사람들이 될 터였다. 그러나 광동어 교재는 서점에 없었다. 보통어(만다린?) 교재뿐. 할 수 없이 그거라도 가져갔다. 언어교재만 벌써 두 권이다. Lonely planet에서 나온 이걸로 과연 중국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cantonese phrasebook과 그 조그만 책 한권. 과연 쓸모가 있을까?
홍콩에 간다는 것이 뒷동산을 산보하러 가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도시를 떠나 다시 도시로 가서 8일쯤 머문다는 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지. 학회에 가는 것이지만 굳이 내가 홍콩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가끔 email로 교수님이 call for paper를 보내주곤 했다. 자연어 처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한다면 그것도 일단은 흥미롭겠지만 나는 프랙티컬한 시스템을 만드는 단순한 기술자일 따름이다. 공교롭게도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1년 만에 해외여행이 된다. 1년에 한번은 반드시 여행을 하자던 다짐이 지켜진 셈.
13:42, 김포공항에 도착. 함께 가기로 한 김박사를 찾았으나 로비에 보이지 않았다. 시외버스 터미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돗대기 시장 같은 김포공항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애국심이 솟구쳐 이런 국가적인 개망신이 어서 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갯벌을 메우고 짓고 있다는 영종도 신공항은 부실 공사 때문에 지반을 채 다지기도 전에 갯벌 속으로 가라앉았다.
제대 군인은 더 이상 병무사무소 앞에서 출국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병무 사무소 앞에서 그 점이 재미있어 히죽히죽 웃었다. 로비는 중국인, 일본인, 태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단체 관광과 패키지 관광은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내 생각보다 타지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는 것 같다. 한 귀퉁이에서 일본 젊은이 둘이 벤치에 앉아 지도를 번갈아 보며 방금 원화로 환전한듯한 돈을 세고 있었다. 한 눈에 알아보았다. 저 녀석들은 여행을 할 줄 안다. 게다가 저 엄청난 돈다발이라니, 그걸 훔쳐서 내 팔자를 개선하고 그들에게 거지 여행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게 해 줄까? 풋.
케세이퍼시픽 항공 카운터에서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을 찾았다. 일주일 전부터 항공권과 묵을 곳을 예약 하려고 웹 사이트를 뒤지고 다니다가 만사가 귀찮아서
케세이퍼시픽의 수퍼시티 홍콩 패키지를 구매했다. 1급 호텔에 리무진 버스로 호텔 앞까지 모셔다주고, 돌아갈 때는 다시 공항까지 모셔다 주는, 돈많고 겁많고, 편한 거 좋아하고 시간없는 관광객들이나 하는 패키지 상품을 산 셈이다. 아, 후회된다.
내 돈으로 가는 거라면 항공권과 게스트 하우스 8일 체류로 80만원을 넘기지 않는, 로맨틱한 거지여행을 실현할 것이다. 그 과정이 고생스럽고 번거러워도 이오스 여행사나 탑 항공에서 가장 싼 항공권을 끊고, 그럭저럭 견딜만한 게스트하우스에 팩스 예약을 해 놓거나 현지에서 헤메다니며 저렴하게 갔다 오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있었고, 무엇보다 홍콩의 전반적인 숙소 가격이 비싸다. 지저분한 청킹 맨션의 도미토리도 한화로 무려 10000원 가까이나 했다.
내 생각에 홍콩은 한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볼거리가 별로 없고 여행하기에는 비싼,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곳인데 왠일인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갔다. 아시아 자유무역의 대표적인 심벌이기 때문이겠지. 애시당초 홍콩에 대한 나 자신의 거부감은 그곳이 도시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도시는, 비슷한 수준으로 산업화가 진행된 20세기의 도시는, 세계 어디가나 똑같다고 여기고 있다.
김박사를 만났다. 그는 악명높은 가이드북
'세계를
간다'를 서점에서 구입했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그거라도 있는 것이 나았다. 세관을 거쳐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큰 배낭에서 늘 들고 다니는 작은 힙쌕을 꺼냈다. 그나저나 25리터짜리를 과연 큰 배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번 제주 여행때 남대문에서 만원 주고 산 검은색 가방인데 비를 한번 흠뻑 맞아서 인지 길이 잘 들어있다. 지퍼와 배낭 옆에 포켓이 하나 더 있었더라면 썩 괜찮은 물건이 될 뻔 했지만 아쉽게도 없다. 힙쌕은 정말 물건이다. 1년 내내 들고 다녔지만 아직 터진 구석도 없고 허리에 차거나 손으로 들고 다니거나 어깨에 맬 수 있는 등산용 가방이다. 그 안에 가이드북과 카메라, 팜을 옮겨 놓고 보딩을 기다렸다.
백날 들고 다니는 힙쌕. 오른쪽에 작은 나침반을 붙여 놓았다.
보딩은 별 이유없이 20분쯤 늦어졌다. 케세이퍼시픽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라면 길이길이 악명을 떨치고 있는 대한항공과 크게 다를게 없는데? 대한항공은 기내식이나마 맛있다지 아마?
기내 서비스는 그저그랬다. 영화의 사운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브랜디를 주문하자 스튜어디스가 당황했다. 스튜어디스는 내가 비행기를 타면 언제나 브랜디를 한 잔 마신다는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침착하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20분 후 반 잔을 가져왔다. 얼음을 넣겠냐는 말을 물어보지도 않고. 얼음을 넣겠냐고 물어보면,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신다고 말할 것이다. 그쪽이 멋있어 보이니까.
비행기만 타면 왜 브랜디 생각이 나는 것일까? 누군 아사히 맥주만 줄기차게 마신다던데. 브랜디의 향과 맛이 형편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도 케세이 퍼시픽 항공의 기내 서비스로 제공되는 술맛이 꽤 형편없다는 말을 안한 것 같다.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설문지'에 적어 놓을만한 항목이다.
기장은 적절한 때에 안내방송을 해주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케세이 퍼시픽의 부실한 기내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덮으라고 나누어 준 블랭킷은 품질이 우수했다. 촉감은 물론 보온력이 뛰어났고 알맞은 크기에 무게가 가볍고 부피가 그리 크지 않았다. 도착하면 하나 슬쩍 해야겠다. 김박사가 옆에 있어서 트럼프 셋을 주문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그런 걸 무료로 제공하고 그냥 들고가도 된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시끌벅적한 아랍인들 중 하나가 담배를 피우다가 기내에 소란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스튜어디스들이 달려왔고, 그 친구가 좀 버팅겼는지 기장이 기내 방송을 틀고 엄격한 목소리로 기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등등의 엄포를 늘어놓았다. 기내에서 담배 피우다가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담배를 잠시 삼가해 주십사하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길어야 홍콩까지 두시간 날아갈 뿐인데.
비행기가 도착했다. 재빨리 블랭킷을 가방에 쑤셔넣었다. 나는 거지가 아니다. 나는 outrage나 criminal도 아니다. 이런 좋은 품질의 블랭킷은 시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훔칠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것일 따름이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기내에서 제공되는 훌륭한 블랭킷을 훔치는 것이 일종의 전통같은 것이라는 말로 불편한 궤변으로 점철된 자기합리화는 이만.
첵랍콕 공항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아시아에 지어지는 신공항들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섬 등지에 세워지는 것 같은데, 그것도 일종의 유행인가 보다.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 홍콩의 첵랍콕 공항, 한국의 영종도 신공항. 첵랍콕 공항은 아시아에서 벌어진 20세기 마지막 대규모 건설공사로 기록되었다. 디자인은 간사이 공항과 비슷했지만 간사이 공항 만큼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함께 겸비한 것 같지는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한장 얻었다. 이미 하이텔 세계로 가는 기차 동호회(go train)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얻은 상태였다. 최근에는 홍콩 여행이 뜸해졌는지 올라오는 정보가 별로 없다.
리무진 서비스를 받기 위해 창구에 들르니 스티커를 한장 달랑 주었다. 이걸 붙이고 한가하게 걷고 있노라면 누군가 다가와 리무진 버스로 안내해 줄 꺼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 시키는 대로 가방에 붙이고 버스 정거장을 찾아 헤멨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홍콩의 공기는 무덥고 습했다. 벌써 밤이다. 라이터를 잃어버렸다. 한쪽 귀퉁이에서 처량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외국인에게 불을 빌렸다. 그리고 나도 그 옆에서 불쌍하게 담배를 피웠다. 홍콩인 몇몇에게 영어로 버스가 오냐, 오면 언제오냐, 지나가지 않았냐? 등등을 물어보았지만 알아듣기는 하는지 광동어로 몇마디 중얼거릴 뿐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홍콩섬에 있는 호텔사이를 전전하는 H2 에어포트 리무진 버스는 한참만에 도착했다. 버스의 연체는 홍콩의 도심 교통 상황을 반영한달까? 이미 들어본 말이다. 버스에 화장실이 달려 있었다. 한국에서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시외고속버스 같은 리무진 버스와는 격이 달랐다. 훨씬 고급스럽고 편안하게 발을 뻗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두번 졸았다. 이미 밤이 내려앉아 있었던 탓에 별다른 풍경을 보지 못했고 긴장이나 흥분, 재미 따위를 느끼지 않았던 탓일께다. 산업화가 잘 진행된 도시는 아무튼 밥맛이다.
체크인을 하고 호텔에 들어섰다. 홍콩섬에 있는 century hong kong hotel이다. 가이드북에는 1급 호텔로 소개 되어 있지만 슬리퍼나 일회용 면도기, 일회용 칫솔 등이 보이지 않았다. 객실은 비좁았다. 화장실 변기를 제대로 청소한 것 같지 않았다. 이게 과연 1급 호텔 소리를 들을만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커튼을 걷자 빌딩들 사이로 항구가 보였다. 하버 뷰(harbor view) 객실은 프리미엄이 붙어 비싸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것 때문인지도... 흠. 농담도 유분수지.
Century Hong Kong Hotel의 Twin Room. 비좁다. 한국의 여관만도 못한 게 성수기라서 2인 1실 하루 투숙비가 무려 1000HK$ 가까이 된다. 한화로 16만원 가량.
로비에서 만난 이기영 교수님은 마침 둥글 넙적하게 생긴 플러그 어댑터를 들고 카운터에 뭔가를 물어보려고 서 계셨다. 그 분이 출출해서 근처 식당에 닭발 도시락을 시켰다가 입맛에 안 맞는지 우리에게 주었다. 하나 먹어 보았더니 맛있다. 닭발은 정말 닭발 같이 생겼다. 양념이 눈에 안 띄었지만 한약 달인 향과 맛이 나는 것이 정말 그럴듯 했다. 여자애들이라면 너무나 닭발스러운 이 닭발이 징그러운 나머지 안 먹을 것만 같다. 정말 닭발스러웠다. 나야 비교적 무던한 편이라서 닭발다운 닭발을 맛있게 먹었다. 소주는 이 닭발에 어울리지 않을 듯 싶다. 중국에서 잘들 먹는다는 독한 화주라면 또 모를까.
짐을 풀고 나니 할 일이 없다. 남자 둘이 객실에 쳐박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것도 아니고... 객실의 컨센트에 노트북의 어댑터 플러그가 맞지 않았다. 시장 구경도 할 겸, 이것 저것 구할 것들이 있어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Palm에 간단히 기록한 목록은 이렇다:
1. 전원 플러그 컨버터 구입
2. 인터넷 엑세스 방법 알아보기
3. Dialpad를 사용하기 위한 헤드셋 구입
4. Palm Vx 가격 알아보기
스타페리 항까지 가는 길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2층이 서로 연결된 보도 겸 육교였다. 수월하게 찾아간 완차이 스타 페리 항에서 2.2HK$( US$는 사용한 적이 없으니 이하, $는 Hong Kong Dollar를 가르킨다)을 내고 홍콩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스타 페리를 탔다. 기분 좋게 불어야 할 바닷바람은 후덥지근했고 홍콩섬과 침사추이 사이의 바다는 한강 넓이만 해서 바다같다는 기분이 안들었다.
홍콩섬의 마천루 사이를 서로 연결하는 육교, 도로를 지나가며 무수하게 연결되어 있다.
Tsim Sha Tsui Star Ferry Terminal에서 내렸다. Cultural Centre가 있는 Salisbury Road 바로 앞의 YMCA에 들렀다가(이곳은 여러 여행자들로부터 적당한 가격과 깨끗한 시설로 정평이 난 곳인데 홍콩에 오기 전에 이곳에 묵을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다) 침사추이 MTR(Massive Transit Railway; 간단히 말해 지하철) 에서 지하철을 타고 Monkok 역으로 향했다. 4$. 시장에서 Computer Centre의 상점들을 물어 물어 찾아 다녔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홍콩의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표의 구입은 모두 기계에서 한다. 터치 스크린으로 지도 상에서 가려고 하는 역을 누르면 화면에 금액이 표시되고 그러면 동전이나 지폐를 넣으면 표가 빠져 나온다. 표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재활용된다. MTR, 버스, 미니버스를 이용할 일이 많고 늘 동전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으므로 Octopus Card를 구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충전식 악토퍼스 카드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패스카드같은 역할을 한다.
홍콩의 MTR(지하철) 지하철 노선이 두개 있다. 구룡반도, 홍콩섬. 그 사이를 건너 운행되는 MTR은 가격이 비싸다. 거리에 따라 요금이 4$~11$ 사이. 지하철로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페리(2.2$)로 건너는 편이 싸다.
MTR 내부. 도착하는 역마다 안내 표시판에서 깜빡인다. 중앙에 바가 하나 뿐이다. 매우 시끄럽다. 한국보다 더 시끄러운
것 같다.
23시 무렵, 페리 운행이 중단되었으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지하철을 타고 터널을 지나 완차이 역까지 돌아왔다. 11$. 수퍼에서 음료를 몇가지 샀다. 호텔 프런트에서 컨버터 플러그를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니 모두 고장난 상태. 프론트의
더벅머리 총각은 자기가 알아듣는 영어에만 성실히 답하는 경향이 있다.
방으로 돌아와 컨센트를 찾아보니 화장실에 220V 컨센트가 유일하게 하나 달려 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여겨졌다. 컨센트에는 shaver only라고 적혀 있었다. 노트북의 전원 플러그를 거기에 꽂아보니 얼추 돌아가는 것 같다. 켜봤자 뭐하나. 인터넷이 안되는데.
노트북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shining을 잠깐 보았다. 할일 없을 때 영화나 보려고 한국에서 다운받아 노트북에 넣어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큐브릭의 폭력에 대한 독특하고 강렬한 시각적 퍼스펙티브는 변함없었다. 작년에 그가 죽었을 때 그가 완성하지 못한 영화 A.I. 때문에 기분이 우울했다. 20세기의 존경할만한 거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그가 찍은 마지막 영화는 아껴 두었다가 천천히 보기로 했다.
몇분 지나지 않아 노트북 전원이 꺼졌다. 면도기용 컨센트는 면도기에 걸맞는 전류만을 공급하는 듯 싶었다. 낙담.
3.4$ 짜리 기름이 줄줄 흐르는 튀긴 땅콩을 안주 삼아 산 미구엘 (7$)을 마셨다. 그것보다 김박사가 사온 15$짜리 '오늘 만든'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신선하고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오렌지 쥬스는 처음이다. 한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이상한 오렌지 쥬스에 괜히 흥분할 필요는 없겠지만서도.
침대에 누워 지도와 가이드북을 펴들고 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학회의 튜토리얼과 컨퍼런스를 빼고는 내일부터 혼자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김 박사의 후배나 선배, 그리고 교수님들이 한국에서 몇분 오셨기 때문에 김박사를 내버려 두고 매정하게 혼자 돌아다닌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떼로 몰려다니는 것은 정말 싫었다. 인도에서 한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벌이는 행동에 눈쌀을 찌푸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행동의 제약을 받고,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게다가 떼로 다니면 사람들에게 이상한 자신감 내지는 '깡'이 생기는 것 같다. 원래 떼로 몰려다니면 개개인의 평균 지능보다 훨씬 밑도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라, 떼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인 여론(입방정, 개소리(오피니언), 헛소리(통계)로 특징지을 수 있는)은 늘 천박하고 밥통같은 정치적 견해와 통념으로 점철된 사회적 분석의 얄팍함과 몰상식함, 그 말초적 경향, 특정개인에 대한 잔인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같다.
10/1
아침, 여행중에는 일찍 일어나게 된다. 호텔 프런트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비지니스 센터에 관해 물어보니 오늘은 휴일이라 문을 닫았단다. 그들이 알려준 23층에 올라가보니 로열 클럽이라는 곳이다. 아마도 호텔의 VIP들을 위한 클럽인 듯 싶은데 20$를 주고 인터넷을 조금 사용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ACL 학회 웹 사이트에서 튜토리얼 일정을 적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Clearwater Bay 근처에 있는 홍콩 과학기술 대학(HKUST)에서 튜토리얼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떻게 가야 하고 몇시부터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이드북에도 비교적 최근에 생긴듯한 HKUST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일단 급한대로 VNC로 사무실에 있는 내 컴퓨터에 접속하여 ICQ로 몇몇 중요한 메시지를 팀장들에게 남기고 HKUST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호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모른다.
로열 클럽에 문의했다. 비즈니스 센터에서 100$ 주고 5일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엑세스 카드를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은 쉰다니 내일쯤 구매할 생각.
침사추이에서 바라본 홍콩섬의 모습
홍콩섬에서 바라본 침사추이의 모습. 앞에 있는 건물은 홍콩문화센터.
페리에서 바라본 홍콩섬의 마천루
대충 짐을 챙기고 호텔 옆의 식당에서 국수를 먹었다. 메뉴는 순 한자로 되어 있다. 몇몇 아는 글자들이 있었지만 글자들 만으로는 그게 무슨 음식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줒어들은 얘기로 곤지(gonzi; 중국식 죽)를 주문해 먹으려고 했지만 식당 주인과 마음과 정이 통하지 않아 대화가 불가능했다. 홍콩인들이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이 면을 시켜 먹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중국어인 우롱차를 발음하자 정말 우롱차가 나와서 흐뭇했다.
식당의 메뉴판(일부)
홍콩섬의 거리 모습
홍콩섬의 거리 모습. 앞에 있는 포스터는 '우리 함께 홍콩을 맑고 깨끗한 도시로 만들자'라는 내용의 캠페인. 맨 오른쪽 그림에 한 직장인이 술병을 든 채 경찰에게 끌려가고 있다.
중국 비자를 알아보려고 하버 로드 근처에 있는 harbor view 호텔에 들렀다. 전망이 매우 좋다. 여기서 오후에 홍차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잉글리시 티 타임 동안 느긋이 뻗어있으면 오후가 보람찰 것 같다. 비자 오피스를 찾을 수가 없어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안 받았다. 옆에 있던 호텔 투숙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니 오늘은 홍콩 전체가 휴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저녁 때 불꽃놀이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답답해서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니 중국 여행 패키지를 권했다. 나는 비자만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China Travel Service를 자꾸 언급했다. 하버 뷰 호텔 투숙객도 아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가 오히려 뒤가 캥겨 다시 고려해보겠다고 말하고 그냥 나왔다. 훗날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말한 CTS에서 비자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트램 역에서 트램을 기다리는 시민들. 노란색 2층 버스. 홍콩 택시는 빨간색과 회색. 택시는 기본료가 14.5$로 비싸서 한번도 타본 적이 없다.
지하철을 타러 갔다. 루트를 몰랐지만 Quarry Bay에서 구룡반도 서쪽에 닿는 페리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쿼리 베이에서 내렸다. 쿼리 베이역 근처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페리항으로 인도하는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았고, 중국인들에게 영어로 질문을 해보았지만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영어로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희안한 것은, 영어로 질문하면 그들은 대답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광동어로 뭔가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지껄인다는 점이다. 대답을 안 하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럼 영어를 알아듣는다는 말인가? 프랑스인들에게 영어를 사용하면 알아도 모르는 척, 대꾸하지 않거나 프랑스어로 대꾸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들 역시 대답은 반드시 광동어로 한다는 문화적 전통이 있다는 말인가? 홍콩인들의 일견 냉정해 보이는 무표정함과 무뚝뚝함은 한국인들을 많이 닮아 있다. 한국인들에게 장난삼아 영어로 질문하면 알아듣고 나서 대답을 할 줄 몰라 웃거나 더듬거리다가 도망가기 일쑤였다. 일본인에게 영어로 질문하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도와주고 싶어 미치겠지만 어떻게 해야될 지 몰라 혼자서 안절부절했다. 그것도 일종의 학습된 사회적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
쨍쨍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바닷물을 정수하는 공장이 하나 보였고 근처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었다. 인부들은 하나같이 웃통을 벗어 제끼고 구릿빛으로 잘 달구어진 피부를 드러낸 채 일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다. 더 걸어가자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또, 가이드북을 잘못 본 것이다. 쿼리 베이와 Lam Tin 남부는 지하철로만 연결되어 있었다.
쿼리 베이에서 북쪽으로 한참 더 가면 항구가 있긴 하다. 거기서 람 틴까지 이어지는 배편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10:00, 시간이 많이 늦었다. 기분이 상해서 발길을 돌려 지하철 역으로 돌아와 람 틴까지 갔다. 가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언제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무지 탓에 그래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내 기분을 알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봤자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버스 터미널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갔다. 클리어워터 베이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짐작이 들었다. 가이드북에서 람 틴 역 주변은 백지로 표기되어 있었다. 볼 것이 없어서 아무도 이쪽으로 가 본 적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버스는 있을 것이다. 이곳은 홍콩섬의 두 페리 역, 완차이와 Central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데다 버스 스테이션은 주로 두 역이 닿는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왕좌왕 헤멨다.
예상 대로 버스 터미널이 나타났다. 이제 어떤 버스가 HKUST로 가는 것인지만 알면 된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잡고 물어보았다. 팜을 꺼내들고 이번에는 말로 몇 마디 먼저 하고 나서 글자들을 정성스레 써서 내밀었다. 중국 여행기 몇몇을 들춰보니 이것을 '필담'이라고 한다. 두세번 만에 한 친구가 HKUST로 향하는 루트가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는 버스 타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버스 넘버 투 나인 에잇' 298번? 오케바리. 흐뭇한 나머지 그와 악수를 했다.
기다리고 있자, 폼나는 2층 버스가 나타났다. 기사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HKUST까지 간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영어를 알아들은 후, 대답까지 해 준 것이다! 홍콩인들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스르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런데 주머니에 동전이 없다. 동전이 없으면 100$ 짜리 지폐를 고스란히 내야 한다. 홍콩 버스는 중국 버스와 마찬가지로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8.5$ 하는 버스를 타려고 100$를 내는 미친짓을 할 수가 없었다.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고 멍청히 서있자 기사 아줌마가 일단 타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냥 come이라고 말한 후 광동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손짓했을 뿐인데 나는 제깍 무슨 소린지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그녀의 손짓은 이런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동전을 받아 너의 그 지폐와 교환해 줄테니 일단 올라와서 내 옆에 앉아 기다려라.
홍콩인들은 손이 빨랐다. 아줌마가 미처 손을 내밀기도 전에 수금 포켓에 동전을 재빨리 집어 넣어 그녀가 거스름돈을 내게 건네줄 여유가 없었다.
안되겠는지 자기 지갑을 꺼내 건네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이번에도 제깍 알아들었다: 이것은 내 개인 돈이다. 지갑을 뒤져 너의 지폐 분량 만큼 동전과 교환한 후 수금 포켓에 알맞은 금액을 넣은 다음 지폐와 지갑을 나에게 돌려달라. 나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댕큐 베리 머치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처음 대하는 친절함이다. 버스는 HKUST에서 멎었다. 애들이 많이 보이니 생생하고 활기차 보였다.
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내부. 홍콩 경마 클럽과 함께 붙어 있다.
메인 홀까지 이어지는 작은 길은 현대적이고 귀여웠다. 정문으로 들어서는 길과 나란히 이어지며 ACL(Association of Computational Linguistics)이라는 글자가 적힌 A4용지가 간혹 벽마다 붙어 있다. 그늘을 따라 난 길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고 주 광장의 붉은 조형 장식물이 나타났다. 건물은 원형이었으며 아담하지만 아름다웠다.
대학 건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바다의 전경이 들여다보이는 건물 한쪽의 테라스에서 클리어워터 베이가 보였다. 클리어워터 베이의 반대편은 Junk Bay라고 한다. 정크 베이는 오염이 심한 지역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명이 그 모양인 것이다. 멀리 요트가 섬들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판기에서 오렌지 주스를 하나 뽑아 마시고 담배 한대 빨고 튜토리얼이 열리고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HKUST에서 바라본 클리어워터 베이의 모습. 앞 건물은 대학 기숙사.
이런 곳에서 학교 다니면 공부는 물론 연구도 잘 될 것 같다. 세션은 재미있다고도 재미가 없다고도 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틀 후부터 열리는 컨퍼런스에 대한 예비훈련으로 보이기도 했다. 첫번째 세션의 kevin knight의 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 noisy channel과 phonetic transfer step을 거쳐 bilingual text corpos로부터 가장 근접한 번역문을 찾는 과정에 관한 설명이었다. 중간부터 들었지만 여러 논문이나 학습을 통해 익히 알만한 내용들이었고, 영한 번역이나 일한번역기라고 국내 시장에 나온 것들은 형태소 단어 대치 수준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10여년을 연구해도 별다른 결과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의 한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프로시딩은 그 정도로 비참했다.
잠시 휴식 시간에 다과와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서양 빵이야 흔해 빠진 것이고, 중국 햄과 두부 튀김이 유난히 맛이 좋았다. 거기에 차를 곁들여 마셨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한국 학생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그들이 김박사를 향해 아는 척을 했다. 담배를 피우러 바깥으로 나갔다. 담배를 실내에서 피우면 5000$의 벌금을 문다는 경고문을 홍콩의 건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5000$라... 한화로 74만원에 해당하는 돈. 그래서 실내나 화장실에서 뻔뻔스럽게 담배를 피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시 세션. 센타우리안과 시리안, 두 외계인 사이의 바이링규얼 텍스트 번역은 재밌고 웃기는 얘제였다. 1997년 AI 잡지에 나온 예라는데, 더글러스 아담스의 바벨 피시 babel fish 같은 것을 보는 듯. 센타우리안과 지구인이 홋날 만나게 될 때까지 그들로부터 대량의 코포라를 입수하여 디코딩하고 실시간으로 통계적 번역이 가능할까? 팀 버튼의 화성 침공 Mars Attack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이 만든 기괴한 번역기는 화성인의 적대적인 언어를 매우 평화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바람에 여럿이 레이저 광선에 타죽었다. 외계인이 지구에 평화의 사절로 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팀 버튼은 SF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선한 이미지를 비틀어서 기괴하게 묘사했다. 생각해보니 인류는 역사를 통털어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개발했다.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컴퓨터로 만든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ocr 필름에 사인펜으로 직접 쓰고 그린 것들을 복사해서 나누어준 튜토리얼 교재는 묘하게 인간적으로 '훈훈하게' 느껴졌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진 커다란 인쇄체 문장과 틀에 박힌 그림들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런지도.
나이트는 세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35개의 언어 리스트를 나열했다. 첫번째는 중국어(만다린, 보통어?), 그 다음이 스패니시라는 것이 약간 의외였고, 3위가 영국 영어(UK English)라는 것도 의외, 그 다음이 방글라데시의 벵갈어, 5위가 인도의 힌디어, 8위가 일본어, 한국어는 12위였다. 나이트는 튜토리얼을 끝내면서 동티모르 분쟁을 소개하고 그들의 웹 사이트를 만들어 그들의 언어를 번역하는 컨테스트를 소개했다. 재밌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palm이 자꾸 맛이 갔다. 아무래도 저번 제주 여행때 물을 흠뻑 뒤집어 쓴 탓인 듯. 이젠 물기가 말랐을 때도 되었는데. 홍콩에 온 김에 Handspring의 팜 호환기종인 Visor를 구매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았다. 아마도 Visor를 사라는 신의 뜻일런지도.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코즈웨이 베이에 있는 Time Square로 갔다. 누가 영국 식민지 아니랄까봐 이름이 그 모양일까? 어쩌면 coughnut place나 victoria rd.라는 지명도 있을 법도 싶다. 지도를 뒤져보니 정말 있어서 웃었다.
타임 스퀘어 7층 상가에서 Palm Vx를 발견했다. 홍콩에서 혹시 Vx를 발견하면 구해달라며 내게 카드를 맡겼다. 가격이 적당해 보였다. 3080$, US$로 대략 400$ 정도 된다. 워런티가 의심스러워 물어보니 인터내셔널, 1년 보증이란다. 안심. 그래서 당장 카드로 구입하고 호텔의 안전금고 속에 넣어 두었다.
구매 대행한 Palm Vx. 앞의 것은 내가 들고 다니는 Palm III. 옆의 노트북은 여행내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빌린 노트북. 후지쯔 라이프북.
김박사가 들고 다니는 Palm IIIe(8MB 개조)에 그가 구매한 팜 포터블 키보드를 장착한 모습.
어제 실패한 일들을 마저 하려고 몽콕 시장에 가기로 했다. 일단, 침사추이로 넘어가기 전에 지리도 익힐 겸 센트랄 페리 포트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수퍼에서 새빨간 사과 두 개를 샀다. 개당 2$, 그럭저럭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적포도주는 고작 10$ 정도, 진열된 와인과 술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흐뭇하다. 할 일이 있어 술을 사지 않았다.
19:00 무렵,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해안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경찰이 설치한 저지선을 지나가던 시민과 경찰 사이에 사소한 언쟁이 붙었다. 사람들은 해안선을 따라 난 도로에 앉거나 서서 침사추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인파가 점점 더 밀려왔다. 그 틈새를 빠져나가는 것도 힘겨웠다. 지나가다가 어떤 젊은 친구와 어깨를 부딪쳤다. 녀석이 도로에 자빠졌지만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팔이 달려 있으니 일어나겠지. 왜 갑자기 부딪쳐? 어떤 가족들은 아예 식사꺼리를 가져오기도 했고 연인들은 맥주 몇병씩 들고와 거리에 앉아 있었다. 더이상 길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그들처럼 막연히 길에 서서 바다쪽을 쳐다보았다. 불꽃놀이 때문일까?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1주년 기념 행사라고 한다.
불꽃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너군데에서 3-4개씩 무리를 지어 불꽃들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엄청난 양의 불꽃들이 하늘로부터 바다로 쏟아져내렸다. 떼거지로 모인 시민들로부터 탄성이 흘러 나왔다. 위치가 좀 안좋아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이기 시작할 때 눈치있게 좋은 자리에 앉아 있을껄... 수퍼에 들렀을 때 맥주나 사 가지고 올 걸... 출출해서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먹으며 하늘을 환하게 수놓은 불꽃을 구경했다. 뭘봐도 탄성이 잘 흘러나오지 않는 탓에 담담히 구경 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광경이다. 무려 20분에 걸쳐 불꽃놀이가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세어본 것을 평균해보니 초당 12발씩 발사했다. 거의 10000개의 불꽃이 하늘에서 터진 셈이다. 마지막 피날레는 엄청난 양의 불꽃이 하늘에서 작열했다. 중국인들이 불꽃놀이를 좋아한다는 거야 들은 바가 있어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 보는 불꽃놀이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불꽃놀이가 화통하달까? 갑자기 홍콩에 온 것에 보람을 느끼기까지 했다.
센트랄 페리 항에서 페리를 탔다. 2.3$. 금액이 2.2$가 아니라 조금 이상했다. 배가 엉뚱한 방향, 북쪽이 아닌 동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승객이 얼마 없다. 실수 했구나 싶었지만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돌아오는 배를 타고 다시 센트랄 페리 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배에서 내렸다. 침사추이 east 항이라고 써 있다. 힙쌕에 엮어놓은 나침반을 살폈다. 뱃길로 먼길을 온 것도 아니고, 홍콩이 그리 넓지 않으니 동쪽으로 무작정 가다보면 침사추이 항이 나올 것이다.
해변을 따라 주욱 난 길이다. 8:30분에 끝난 불꽃놀이 덕택에 길은 깔아놓은 신문지, 캔 쪼가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경찰들이 저지선을 치우고, 청소부들이 한창 청소중. 연인들은 주변의 열악한 상황에도 흔들림없이 얼싸안은 채 정열적인 키스에 열중해 있다.
침사추이 역 근처의 시계탑에서 무슨 퍼포먼스를 한다. 잠깐 구경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진 바람에 센트랄에서 지하철을 타고 Tsam Shoi po 역에서 내렸다. 컴퓨터 상가가 있는, 홍콩인들이 자주 찾는 지역이라고 했다. 문을 닫았다. 낙담. 아까 불꽃놀이 때문에 시간이 늦었다. 근처 튀김집에서 머뭇거리다가 꼬치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별 말을 하지 않고 돈을 내밀자 알아서 어묵 꼬치를 튀겨서 간장을 바르고 겨자 소스를 발라서 건네 주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것과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꼬치를 씹으며 시장을 어슬렁 거렸다. 가게들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10시가 넘은 시각. 돌아가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완차이 역에 도착.
사과와 꼬치 밖에 안 먹어 배가 고파서 길가에 있는 면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영어로 지껄이니까 역시 알아듣지 못한다. 조리대 옆에서 계란과 밀가루로 반죽한 듯한 노란 면과 그 위에 얹을 것들을 가르키다가 그가 도대체 알아듣질 못해서 다른 사람이 시킨 것을 가리켰다. 진한 수프에 들어있는 라면 같은 것에 곱창을 얹어 주었다. 생각보다 맛이 있다. 곱창도 맛있고 국물도 맛있다. 그래도 오사카의 시장 바닥에서 먹은 라면 맛보다는 약간 떨어졌다. 그때 주인에게 엄지 손가락을 내밀며 스고이! 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침반에 의지해 호텔까지 돌아왔다. 여행하면 도시에서는 유난히 헤메는 경향이 심했던 탓에 이번에 나침반을 가방에 매달아 온 것은 아주 잘한 행동이다. Palm Vx의 실물을 보니 매우 탐이 났다. 김박사는 팜 키보드 자랑을 늘어 놓았다. 키보드가 좋아 보인다.
10/2
한참 로비에서 기다렸지만 학생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튜토리얼 교재를 살펴보니 아침에 호텔을 돌아 HKUST로 가는 무료 셔틀 버스를 운영한다고 나와 있다. 생각난 김에 프런트에 비지니스 센터가 열었냐고 물어보니 08:30에 연다고 말했다. 7:45분까지 학생들을 기다리다가 버스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 완차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어제처럼 람 틴에서 내려 298번 버스를 타고 HKUST에 도착.
오늘 튜토리얼은 Morphology for Asian Languages인데, Chinese Morphology부터 시작했다. 40분은 늦게 도착했지만 여전히 그걸 하고 있었다. 중국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어의 경계를 추출하는 것, segmentation이었다. 경계 부근의 모호성(ambiguity)을 resolve하는 것이 큰 문제이고, 거기다가 영어를 '무리하게' 한자어로 번역시키는 바람에 신조어와 단어 경계를 추출하는 것이 매우 복잡했다. 광동어로 '지'는 30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점이 중국어 형태소 분석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불쌍한 중국인들... 세상에서 가장 분석하기 어려운 언어가 중국어였다. 단어 경계 추출 시스템의 다이어그램은 불명확했고 그동안 중국 학자들은 뭘 했는지 싶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내용이었다.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사전검색으로 대상 문장에서 최장매치 패턴을 찾는 지극히 단순한 시스템인데, 어쩌면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학자가 타이완 쪽 사람이라서 본토의 연구 진전과는 별개의 작업성과를 설명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세션은 매우 지루했다. 일부분은 그의 영어 탓이기도 하고, 일부분은 그의 어눌하고 느려터진 말투 탓이기도 했다.
다음 발표자는 NTT 사이버 스페이스 연구소에 근무하는 마사키 나가타의 일본어 형태소 분석의 기본적인 알고리즘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영어를 듣기가 좀 불편하긴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튜토리얼 교재에 일본어 형태소 분석이 아닌 중국어 형태소 프레젠테이션이 끼워져 있었다. 휴식 시간에 밖에서 빈둥거리다가 급조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화면만 쳐다보아야 했다. 이전 세션의 중국어보다는 결과나 과정이 비교적 명확해서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지만 일본어의 문장 체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일본어도 중국어 만큼이나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보다는 분석하기가 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띄어쓰기를 멋대로 한다거나 조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어 형태소 분석에서 단어 분리 문제는 일본어나 중국어 만큼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홍콩에 오기 전에 안경알을 갈아끼웠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눈이 침침해 화면에 나타는 글자들을 잘 알아볼 수 없다. 눈이 아프다.
중국어 세션과 일본어 세션이 길어지는 바람에 한국어 세션에 할당된 시간이 짧아졌다. 고려대의 이기영 교수님이 나와 한국어 형태론에 관한 몇가지 기본적인 사실들(some basic facts of korean morphology)에 관한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프로젝터가 말썽을 부려 10여분 정도 지체되었다.
이기영 교수님이 매우 열정적인 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봄과 여름에 한국에서 참가했던 튜토리얼과 학회에서 그를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왠 늙다리 아저씨가 강연을 들으러 오나 싶어 인상에 남았던 것 같다. 그의 강연을 듣고서 그가 열정적이라는 의견에 동감했다. 그는 이전 세션에서 나가타가 일본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중국어는 물론 한국어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의 오류를 지적하고 한국어가 일본어와 중국어와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어의 기본적인 체계와 한국어 형태소 분석의 문제점을 한국어 언어학자의 견해로서 피력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세션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일부는 한국어 체계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짧다. 최기선 교수님에게 바톤 터치.
여운이 남았다. 비록 이기영 교수님이 뛰어난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그의 강연은 재미있었다. 그의 세션은 한글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한글을 알리고 한글 형태소 분석의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강연에 불과했지만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최기선 교수님의 세션에서 김박사의 Part of Speech Tagger가 언급되었다. 알고보니 김박사는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이 ACL 학회에서 논문 발표를 했단다. 최기선 교수님의 세션은 이래저래 논문들을 읽어본 탓에 알기 쉬웠고 그래서인지 재미는 없었다.
이기영 교수님의 세션이 중국어, 일본어 세션 때문에 짧아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니,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이 기회에 자국의 언어를 포기하고 한글을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짖궂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영어를 자국어로 표기하느라 참 고생들이 심하다. '코카콜라'를 '가구가락'이란 한자어로 억지로 표기하는 중국인들이 불쌍하지 않다면 말도 안된다. 중국에도 외래어가 늘어 가고 있고 영어로 된 신조어가 매년 20%씩 증가하는 중이다. 코카콜라를 가구가락으로 표현한 절묘함은 지극히 한정된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외래 신조어를 한자로 표기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자나 일본어 키보드는 또 어떻고? 한자는 그 수많은 글자들 덕택에 입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일본어 역시 마찬가지. 일본인들은 영어로 자기들의 글자를 소리나는 대로 발음하여 입력한다. how pitty.
튜토리얼이 마무리 된 다음에야 사회자가 keneath church 임을 알았다. 프로젝터에 문제가 있을 때 그가 농담을 했다. we can do segmentation, but we can't do presentation 이라고. 그는 일본어 형태소 분석 세션이 끝나고 질문이 나올 때 나가오가 버벅대니까 그 대신 질문에 답해주기까지 했다(월권이라고 해야하나?). 하여튼 그 유명한 처치의 얼굴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난 그저 그의 논문이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되길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인데, 김박사의 말로는 처치가 statistical nlp를 처음 도입한 선구자라고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튜토리얼에서 건진 것이 그다지 없다. 그저 동향파악을 하는 정도였달까? 뭔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좋았을 성 싶은데.
튜토리얼을 마치고 밖에 나와 셔틀버스를 간신히 올라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김박사가 영화 첨밀밀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 영화부터 빌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그 영화를 봤다.
호텔 로비에서 김박사의 후배들을 발견, 길가에서 서성이다가 Oliver's Super Sandwitch에 가서 간단히 식사. 샌드위치 안에 치즈나 뭐 기타등등 씹히는 것이 있었고 빵이 두꺼워서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그렇지만 여기와서 이런 샌드위치 따위나 먹는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트램을 타고 가다가 홍콩섬의 Central 부근에서 본 건물. 햇빛이 번쩍번쩍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힘차게 흔들리는 붉은 깃발은 중국기, 그 옆에 축 쳐져 있는 것이 홍콩 깃발.
오후 두시, 학생들과 트램을 타고 성완역까지 갔다. 할일도 없는데 Macau에 가서 잘 놀다오기로 했다. 마카오행 페리 피어에 가보니 가는 배는 있는데 오는 배가 없단다. 금액도 141$나 했다. 휴일이라 금액도 비싸고 마카오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중국인들은 휴일에 마카오에 가서 놀다온다. 의견 수렴이 잘 안되었다. 사람이 많으면 늘 있는 일이다. 하는 수 없어 6:30pm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흩어졌다.
나는 몽콕 시장에 간다고 말했다. 각자 흩어질 꺼라고 생각했지만 여섯명이 한꺼번에 몽콕 시장으로 몰려다니는 모양이 되었다. MTR을 타고 몽콕 역에 도착, 일행과 헤어져 좁은 길을 따라 상가가 늘어선 지역을 지나 심 소이 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청계천의 물고기 시장보다 작은 시장을 지나쳤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웅성였다. 차들은 길 바닥에 멎은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팔려고 내놓은 팬티나 브라가 창공에 줄줄 매달려 있다. 망고를 하나 가르키며 10$짜리 동전을 시장 과일가게 아줌마에게 건네니 5$을 돌려준다. 미적지근하고 달착지근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다먹고 거리 아무데나 내던졌다. 중국인들처럼.
몽콕 시장의 모습. 건물들이 다 썩어간다.
날이 덥고 등짝에서 땀이 근질근질 타고 흐르길래 후줄그래한 공원에서 잠깐 들러 앉아있기로 했다. 작은 폭포가 있었다. 공원에는 신문을 깔고 자고 있는 사람, 직장을 구하려고 신문을 뒤지고 있는 처자, 할아버지들이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 시내 곳곳에 공원이 참 많았다.
주택가 부근의 공원. 할아버지들이 주로 점령하고 있다.
홍콩섬 센트랄 부근의 놀이터(playground)
일어서서 조금 더 올라가니 그들이 playground라고 부르는 닭장같은 축구장이 나타났다. 쪽수가 정확히 맞지는 않지만 노랑머리와 검정머리, 그리고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개발'을 휘두르며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공이 굴러와 차보니 축구공이 좀 이상했다. 누군가 손짓을 했다. 끼어서 축구를 하자는 소리같다. 노. 콘크리트 바닥에서 축구를 하다니, 태클은 어림도 없을텐데. 그러고보니 홍콩이 축구 잘한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운동장이 저 모양이니. 축구장과 그 옆에 있는 농구장은 거리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홍콩은 그정도로 여지없이 땅이 부족했다.
주택가에 가끔 보이는 Playground. 축구장 바닥이 아스팔트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이 길은 침사추이에서 곧게 뻗어난 Nathan Road이다. 네이단이란 영국인 작자가 홍콩의 총독으로 부임해 왔을 때 그가 이 길을 닦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 길을 'Nathan's Folly'(네이단의 우매함)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넓은 길을 만들어서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침사추이의 페리 항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이 네이단 로드를 Golden mi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황금의 1마일, 부동산이 환상적으로 비싸다는 뜻인데, 네이단 로드를 따라 온갖 가게들이 늘어서 여행자의 주머니를 뜯어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카메라를 사는 멍청한 관광객들이 있긴 한가보다. 용산의 관광터미널 같아 보인다.
론리 플레닛에서 추천하는 쇼핑방법은 10% 정도까지만 디스카운트를 하라던데, 통상적으로 50%를 깎아도 그놈에 가격이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하여튼 물건값을 깎으면 희안한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왕창 깎아 구매하면 원래 카메라에 딸려오는 배터리와 충전기, 카메라 가방을 주지 않고 그것에 별도의 금액을 메겨 받아낸다는 것이다. 3500$ 짜리 카메라를 1000$에 구매하면 이때 따로 구매하는 카메라 가방과 배터리의 가격은 2500$이 된다.
꾸준히 걸어 심 소이 포에 도착했다. 홍콩 길거리에서 유명하다는 mr. sweetie라는 이동식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무려 6$을 주고 별 맛도 없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맥도널드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은 2$ 정도. 거리에 늘어선 전자상점마다 물건들이 쌓여있다. 생각보다 조잡하고 상가의 규모가 작다. 주로 시계가 많았고 이런 저런 케이블과 전력기구들, dvd player 따위가 쥐구멍만한 가게나 노판에 진열되어 있다. 20$를 주고 허리에 차는 시계를 하나 충동구매했다. 나중에 이것이 쓸모가 있었다. 플러그 어댑터를 4$ 주고 샀다. 핸드폰을 수납하는 허리에 차는 케이스를 팜에 쓰려고 68$를 주고 구매했다. 생각보다 비싸다. 상점 주인들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거래했다. 그저 돈을 내밀고 물건을 받고 그들이 뭐라고 지껄이면 고개를 끄떡이거나 가로저었다. 그들은 나를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하긴 너희들처럼 내 피부는 노란색이니까. 아니 검정색인가?
거리에서는 더 볼만한 것이 없어 오늘의 타겟인 Golden Centre로 들어갔다. 심 소이 포에 온 것도 이곳 때문이다. 현지인들이 애용한다는 컴퓨터 상가, 복도는 좁고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좁은 복도에는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진열창에 여러 메인보드나 상품을 붙여놓았는데 가게마다 취급하는 물건이 비슷비슷하다. 그 밑에 적힌 가격을 보면서 한국의 용산 상가 가격과 비교하느라 해골이 복잡했다. 게임기와 게임기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업체가 유난히 많다. 동종 마더보드중 가격이 용산보다 싼 것은 없었다. 가격 수준이 대체로 비슷하다. 쇼윈도를 기웃거리며 Palm이나 Visor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가게 주인들에게 visor를 물어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샅샅이 뒤져본 결과 어제 브로드웨이에서 산 Palm Vx의 가격이 130$ 더 싼 2950$ 에 판매하는 곳이 있다. 어쩐지 당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Golden Centre를 몇바퀴 돌았다. 같은 자리가 나왔다. 고작 이것 밖에 안된단 말인가, 상가 규모는 다 합쳐봤자 나진상가 1층 정도였다. 더 찾는 것을 포기하고 이번에는 Dragon Centre로 갔다. 2층씩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면이 유리로 지어진 건물을 올라가며 석양에 물들기 시작한 홍콩 거리를 바라보았다. 오염이 심해 가시거리가 1km 정도 밖에 안된다. 도착한 컴퓨터 매장은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한심했다. 형태는 아웃렛 매장이지만 전시되거나 판매되는 제품의 종류가 극히 제한적이고 가격도 골든 센터보다 10-15% 가량 비싸다. 몇몇 부품들은 오랫동안 팔리지 않았는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이들 놀이기구가 잔뜩 있었다. 두 층에 살짝 걸쳐 있는 청룡기차를 타보니 아래층까지 뻥 뚫려있어 으시시하다. 출출해서 식당가가 잔뜩 몰려있는 밑의 층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몰리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중국인들은 맛있는 식당에서는 자리가 날 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던데... 잘되었다 싶어 줄을 섰다. 가격은 22$, 부페식, 쿠폰 끊을 때 반찬을 몇 가지 얹을 것인가에 따라 가격에 조금씩 차이가 났다. 손짓발짓 하면서 주문했다. 주먹만한 왕새우와 닭을 얹은 푸짐한 밥, 거기에 국을 포함하여 고작 22$ 라니... 매우 인상적인, 맛있는 식사였다.
지하철 역으로 갔다. 이제는 지하철은 그만 타고 싶었지만 버스를 어떤 것을 타야할 지 모르겠다. 버스 노선도를 구해야 하는데 매 번 잊어버렸다. 호텔에 들러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19:30까지 오기로 해놓고 내가 늦은 것이다.
Victoria Peak에 가보기로 했다.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피크 트램은 별로 내키지가 않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센트랄에 도착하여 exchange square를 지나쳐갔다. 엄청난 수의 여자들이 그곳에서 마치 새들처럼 짹짹거리고 있었다. 필리핀인들, 주로 홍콩에 가정부로 고용되어 주말까지 일하다가 주말이면 익스첸지 스퀘어에 모여 수다를 떤다.
익스첸지 스퀘어 밑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필리핀 여자들
구멍가게 아저씨와 생쑈를 해가면서 간신히 오렌지 주스를 하나 집어들어 마셨다. 같은 양의 에비앙 생수 값이나 마찬가지인 12$. 물값이 오히려 비싼 건가? 페리 역 옆의 버스 터미널에서 15번 피크행 2층 버스를 탔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손님은 커플 두팀 뿐이었다. 홍콩에서 본 커플들은 대개 남자는 머리가 벗겨졌고 여자는 어려보였다. 게다가 평균적으로 한국인보다 키가 작은 듯. 버스는 퀸즈 로드를 지나 피크를 향해 올라갔다. 길이 비좁아 이층버스가 좌우로 흔들렸다. 벼랑을 아슬아슬하게 달려간다. 간간히 나뭇가지가 버스 창에 부딛쳤다. 정상 부근에서 버스가 많이 막힌다. 위태위태하게 피크까지 올라갔다. 1시간쯤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Victoria Peak 부근의 트래픽 잼. 노는 날이라 막히는 듯.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 산정(피크) 부근에 영국인들의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곳은 항상 바닷가보다 평균적으로 5도 정도 온도가 낮았다. 아침 무렵에 25도, 오후 무렵에 30도를 넘나드는 해변과 달리 20-25 정도의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꼭대기에는 습한 바람이 불었고 생각보다 서늘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소문대로 백만불 짜리였다. 문명이 일구어낸 현란한 빛들, 아름다운 저녁,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의 쿠사나기 소좌는 2501을 쫓다가 형편없이 망가진 후 그의 동료가 암시장에서 구해준 새로운 육신에 자신의 정신을 심는다. 그리고 동료의 집을 빠져나오면서 말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자문자답한다.
'네트는 광대해' 그의 앞 이마로 가벼운 바람이 스치며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현란하게 반짝이는 도시의 모습이 펼쳐진다. 공각기동대의 많은 장면은 홍콩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김박사 일행은 피크에 나타나지 않았다. 10시가 넘었다. 그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여러번 눈에 띄었다. 그들의 한국어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야경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려고 올라온 사람들 누구나 법석을 부렸다. 그런 것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사진은 당신이 그곳에 있었음을 입증할 것 같지 않다. 배경은 인물과 너무나 손쉽게 분리되었고 인물은 종종 그 배경을 망쳐놓았다. 서양애들은 인물없이 사진만 찍었다. 그네들은 저 광동인과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광경을 낯설어했다. 몇몇 한국인들은 내가 한국 사람임을 눈치챈듯 싶었다. 한국인들은 언제나 티가 나게 마련이니까. 양반다리, 개폼, 담배를 피울 때의 자세. 하지만 와서 아는척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긴가민가 하고 있겠지. 여행지에서 일본인과 중국인과 한국인을 제대로 알아맞추고는 했다. 그들은 조금씩 달랐다.
내려가야지. 앞에 가던 일본 녀석들 몇명이 '조센징'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낄낄거렸다. 그들 눈에 나는 조센징처럼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심심해서 그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여자 셋, 남자 하나. 불안을 느꼈는지 점점 말수가 적어지다가 종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네들에게서 긴장감을 냄새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뭐라고 생각할까? 재미있다. 장난은 그만하고 따라가던 발길을 돌려 버스를 타러 내려갔다. 올라올 때보다 20분은 단축되었다. 센트랄에 닿기 전에 아무데서 내렸다. 나침반에 의지해 호텔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한참을 싸돌아다녔더니 출출해서 눈에 띄는 첫번째 식당에 들어가 국수를 주문할 참이었다. 주방장이 광동어로 떠들고 나는 영어로 떠들었다. 오후, 저녁 내내 걸었기 때문에 피곤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떠들었지만 말이 통한다. do you have english menu or have you some special menu tonight?
Q#$R!!$#!@$!@#$NJ@@%ASSSFAS aF A!@#$ i see.let me choose
AF af!@ @#$%WG$% @#%!$^#%^ i'll eat noddle with beef soup. ok?
1@#$!@$!@!% WT@$#%!$ 12%$QR !$%!$ but i wanna make decision before order.
@%!!!@#$!@ @!#$%! 1@#$ !@#$ !@# hmm... this. looks good.
@%@!#@#$@#$ !@$#!@#$ !@$# !@#$ and this. ok?
#%^ !#$ !#@$ !$%^ GW@@$#SESF @#@#$&^#$ reasonable price. give me this and this then.
@@!!@#$!@%^@^#&^
속편하게 실컷 떠들었다. 그 양반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다. 계란을 튀긴 면에 진한 스프, 그 위에 얹은 이름모를 반찬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맛이 어울렸다. 홍콩에 온 이후로 뭘 먹어도 맛있는 걸 보면 얘네들이 음식을 잘하긴 잘하는가 보다. 단지 음식을 먹어보려고 홍콩으로 여행온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음식맛을 보기 위해 여행한다, 그런 부류를 '맛따라 길따라'라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보니 김박사의 후배들이 와 있다. 조그만 배를 먹은 후, 노트북과 김박사 PDA 사이에 적외선 싱크가 가능하도록 ir 포트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러다가 그의 팜을 날렸다. 하드리셋을 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보니 노트북과 싱크가 된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10/3
어렴풋이 김박사가 깨어나 후배들에게 못간다며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잠결에 들으면 김박사 코고는 소리가 심한 편이긴 하나 나는 며칠동안 시체처럼 잘만 잤다. 깨어나서도 어제 피곤하게 돌아다닌 탓인지 눈꺼풀이 자꾸 감겼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카오에 가겠다고 전날밤 결심했다. 다시 잠들었다. 깨어보니 12시가 다 되었다. 웹 사이트에 들어가 마카오에 관한 정보를 얻어 팜에 넣어두었다. 호텔을 나와 369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되는대로 주문하니까 튀긴 누룽지와 맑은 고기 수프, 그리고 고기 만두가 나왔다. 다 합쳐서 140$, 그 정도면 이 품질에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맛있게 먹었다.
홍콩섬의 Tseung Wan에서 Chai Wan을 가로지르는 트램. 예전에는 이 트램이 있던 곳이 해안선이었다. 트렘을 타고 상완 역으로 갔다. 마카오 편도 티켓을 131$에 끊고 immigration 앞에 섰다. 어제처럼 싸움 구경을 하면서 이민국을 지나쳤다. 내 뒤에는 한국인 아줌마들이 서 있었다. 마카오에 도박하러 가나보다. 고스톱에 신물이 넘어온 탓일까? 서로 이년, 저년 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러고는 앞에 중국인이 새치기를 했다고 흉을 보고 있었다. 같잖아서 잠자코 있었다. 날 한국인 취급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묘했다. 차츰 로컬라이즈가 된 탓일까?
Jetfoil, 사방이 꽉 막힌 배, 좌석은 안락하지만 창문을 열 수 없어 갑갑하다. 차라리 침사추이 페리 터미널에서 75$짜리 마카오행 배를 타는 것이 나을 뻔 했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하얀 슬립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남자애가 노래 부를 땐 인상을 긁는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달짝지근한 발라드를 불렀다. 홍콩에 락이나 메탈을 하는 그룹이 있는지 궁금했다. 한 남자가 인상을 긁은 채 옆 얼굴로 정면을 쪼개보며 노래를 불렀다. 갖가지 표정을 지어보인 후 간주가 흘러나올 무렵에 갑자기 두 줄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러고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끝날 때쯤 되서는 몹시 화난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엔 여자문제 때문인 것 같다. 여자문제가 아니고서야 그런 오만가지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을테니까.
페리 피어를 나와 이민국을 지나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관광 사무소에서 마카오 지도를 한장 얻었다. 관광지도라... 어쩐지 지도가 부실해 보였다. 터미널 바깥에는 cyclo가 세대쯤 서서 호객하고 있었다. 호기심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갔다. king's way 호텔까지 얼마야? 100$. (웃기는군) 나는 2.5$짜리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말하니 가격이 반으로 떨어졌다. 낄낄 웃으며 하는 꼴을 구경했다. 30$까지 떨어졌다. 버스 터미널이 어딨냐고 물었다.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건너편으로 건너갔으나 거긴 터미널이 아니라 버스 대기소 같은 곳이다. 되돌아오며 지하도를 걷다가 영웅본색류의 홍콩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검은 양복을 입고 브리프 케이스를 든 갱처럼 보이는 작자들이 곁을 스쳐갔다. 그렇지, 여긴 동양의 진주인 홍콩의 어둠, 마카오니까. 지하도의 거지에게 동전 한닢 던져 주었다. 시클로의 옆을 슬쩍 지나갔다. 그동안 곰곰히 생각 많이 했는지 10$! 라고 크게 소리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다린 오리엔탈이 좌측에 보인다. 답답스러운 홍콩과 달리 도로가 시원스럽다. 이 코스는... 흐흠... 그렇다. 나는 이 코스를 본 적이 있다. 이건 그랑프리 레이스 코스, 레이싱 게임에서 한번쯤은 본 적이 있는 길이다. 매년 11월이면 마카오에서는 레이스가 벌어진다. 관람석 티켓은 400$~600$ 사이에 팔렸다.
마카오의 도로 표지판과 미니버스.
king's way 호텔이 얼핏 보였다. 재빨리 내렸지만 지도를 봐도, 주위를 둘러봐도 막막하기만 했다. 홍콩이 반환된 후 2년이 지나 마카오도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마카오의 반환은 홍콩과 달리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었다. 마카오는 홍콩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홍콩이 영국령이고 마카오가 포르투갈령이어서 일까? 길들이 홍콩에 비해 훨씬 시원스럽고 건물에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거리는 한산했다. 왜 한산한 것일까.
호인 장군 가든 같은데...
호인 장군 가든의 내부 모습. 내가 공원 따위를 왜 찍었지?
마카오 정부 건물에는 Macau SAR(Special Administration Region; 특별행정구역) Office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1주년을 축하하는 커다란 네온사인을 건물 외벽에 설치해 두었다. 정부 건물을 지나 king's way 호텔 근처까지 왔으나 도대체 어디가 비자 오피스인지 모르겠다. 홍콩의 신계 지구가 중국 본토와 연결되어 있다면 마카오 역시 북부는 관문(Barrier Gate)을 통해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 홍콩에서 비자를 못 구했으니 여기서라도 구해 마카오에서 하루를 즐기고 중국의 광쩌우(광주)로 넘어가려고 마음먹었다.
광쩌우에 가면 홍콩에서 경험했던 심상치 않은 중국요리들을 보다 싼 값에 더 많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국 음식은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재료에만 신경쓰지 않고 먹기만 잘 먹으면 뭘 만들어도 맛있게 만들 줄 아는 놈들이다. 광동사람들은 음식을 마누라에 비유했다. 광동 사람들은 책상 다리만 빼고 네발 달린 것은 무엇이든 먹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광동은 싱싱한 야채와 신선한 해산물을 비롯하여 무궁무진한 요리 재료가 풍부하여 옛부터 음식의 본고장으로 정평이 난 곳이다. 홍콩에서 그것들의 맛만 보고 그냥 돌아가기는 아까웠다. 홍콩은 전반적으로 요리 값이 비쌌다. 하지만 광쩌우에서는 20-50위엔이면(위엔=중국 화폐 단위, 1위엔은 대략 130원 가량) 제대로 된 요리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중국음식에 맛이 들린 나머지 나는 한심하게도 종종 비웃어 마지 않던 '맛따라 길따라'가 되고만 것이다.
눈이 벌개져서 비자 오피스를 찾아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목이나 축이려고 수퍼에 들어가 음료를 샀더니 홍콩의 반 값이다. 5$. 흠. 마음에 드는걸? 싸잖아? 길을 따라가다 보니 레이스 관제소가 보였다. 그리고 king's way 호텔을 조금 지나자 와인 박물관이 나타났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까 오늘은 공휴일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홍콩은 이틀만 쉬는데 마카오는 왜 3일을 쉬는거야? 관리인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뭐니뭐니해도 술은 인삼주가 최고라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와 농담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술을 좋아하고 직업이 기술자라고 하니 자기 집에 있는 컴퓨터가 펜티엄 3 600Mhz라고 자랑을 늘어놓아 배가 아픈 나머지 Palm을 꺼내 이것저것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와 30분쯤 얘기하다가 그가 건네준 email 어드레스를 받아쥐고 와인 박물관을 나왔다.
호텔 입구에 Travel Agency가 하나 있다. 진작 호텔로 들어올 껄 그랬군. 거기 아가씨에게 중국 비자 발급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묻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예쁘다. 이런 예쁜 여자가 있다니... 대답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안 예쁜 얼굴이 영어로 유창하게 대꾸했다. SAR 옆에 비자 오피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됬다는 표정으로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는 말을 했다. 시계를 보니 5:10pm, 이런 낭패가... 와인 박물관에서 술에 관해 심혈을 기울여 떠들다보니 늦은 것이다. 술이 왠수다. 술 때문에 여행을 망친게 한두번이 아닌데... 한심한 기분이 들어 벤치에 주저앉아 스스로를 저주하는데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마카오 시내 중심지로 가는 버스를 물었다. 숙소를 잡아야 한다. 고등학생 둘이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유창한' 영어로 버스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감동... 망할 홍콩놈들은 뭐라고 영어로 묻기만 하면 망할 광동어로 참새처럼 짹짹 혼자 중얼거리다가 마는데... 기분이 좋아서 담배를 하나 건네주었지만 주변을 살펴보더니 휘적휘적 사라졌다. 어라? 담배주면 다들 좋아하던데?
마카오 중심로 부근의 거리 모습
버스를 탔다. 풍광이 신선하다. 오토바이들을 많이 타고 다닌다. 마카오가 점점 마음에 든다. 친절한 사람들, 홍콩의 1/2에 불과한 물가, 시원한 거리 풍경, 시내에 스페인 풍의 건물들이 아기자기 하게 들어서 있었다. 가이드북을 살펴보니 libiero 광장 쯤에 들어선 듯 싶다. 버스를 내려 리비에로 광장을 살펴 보았다. 마치 유럽의 한 거리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벤치에는 할아버지들이 앉아 배나 등을 긁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다.
리비에로 광장. 앞에 중국깃발이 보이고 그 뒤의 조형물은 용을 타고 있는 사람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1주년 축하행사의
잔재. 건물들은 전형적인 식민지풍...
이렇게 여유부릴 때가 아니다. 가이드북을 펼쳐 근처에 머물만한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Vila Universal이 있군. 길을 따라 갔지만 자꾸 엉뚱한 도로와 건물이 나타났다. 골을 딱 쳤다. 방위를 잘못 본 것이다. 실수를 두번이나 하다니... 시발시발 거리며 길을 거슬러 올라가 리비에로 거리 부근의, 식당가 귀퉁이에 있는 Vila Universal을 찾았다. 첵인 하기 전에 맥주를 한병 사고, 프론트에서 먼저 방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게스트 하우스는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돼지우리같다고 말해서 확인해 두고 싶었다. 방은 썩 괜찮았다. TV가 있고, 에어컨이 있고 샤워도 할 수 있다. 일회용 칫솔과 슬리퍼, 그리고 의자 둘과 차 마시는 테이블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오히려 홍콩의 센추리 홍콩 호텔보다 나았다. 둘 사이의 가격차이는 무려 10배나 됨에도 불구하고. 체크 인. Key Deposit(일종의 보증금)으로 30$을 더 지불했다. 가격은 98$.
아줌마가 차가 든 보온병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키를 건네준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머뭇거리며 웃으면서 몸을 비비 꼬았다. 왜 저러지? 난 아줌마는 싫은데... 땀으로 젖은 옷도 벗지 못하고 멍청히 쳐다보다가 이 아줌마가 팁을 원하는 거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3$를 건네 주었다. 헤헤 웃으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방을 나갔다.
옷을 벗으려는데 다시 문을 두들긴다. 아까 보온병을 들고 왔던 아줌마와 또 다른 아줌마가 밖에 서 있다가 배실배실 웃으며 서 있었다. 다른 아줌마의 손에는 화장지가 들려 있었다. 허어... 5$를 그 아줌마에게 건네주니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런데 아까 3$를 받은 아줌마의 표정이 말도 아니게 찌그러졌다. 왜 자기는 3$ 밖에 안 줬느냐는... 히죽히죽 웃으며 화장지를 가져온 아줌마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내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아줌마와는 영어로 얘기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기를 들어보이며 2$의 의미가 여기있다는 듯한 제스처를 지어보였다. 아줌마가 싱겁다는 듯이 웃으며 사라졌다. 쟈스민차를 보온병에서 따라 마셨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화장지를 들고 온 아줌마가 찍어준 2$ 짜리 사진. 쟈스민 차가 든 보온병이 눈에 띈다.
열대지방 특유의 미적지근하고 약간은 미끌거리는 듯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방 열쇠가 부실해서 귀중품들은 가방에 넣어두고 옷가지만 침대에 벌려놓은 채 게스트 하우스를 나왔다. 리비에로 광장에서 희안하게 생긴데다 맛도 독특한 튀김(재료를 궁금해하면 중국음식을 먹지 못할 것 같다)과 아이스크림 등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먹고 ruinas de Sao Paulo(ruins of st. Paulo; 성 파올로 성당의 폐허)로 서둘러 올라갔다. 노변에는 여자애들이 좋아할법한 유럽풍의 안티크 샵들이 늘어서 있었다. 밝은 색조의 건물과 돌을 박아놓은 거리는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폐허에 다다랐다. 내가 여태까지 본 어떤 하늘보다도 새파랗고 완벽한 남색 하늘을 배경으로 간신히 세월을 버텨낸 성당의 앞 벽이 우뚝 서 있었다. 폐허는 폐허답게 별볼일 없었다. 폐허가 역사라고 말한다면 난 역사에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이다. 나는 파르테논 신전이나 피라밋에도 콧방귀를 뀌는 타입이다. 인도에서는 거리에서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이 수천년 묵은 유적이었다. 인도인들은 거기에 오줌을 갈기고, 똥을 싸고 그걸로 돌담을 쌓거나 화덕을 만들었다. 고고학자에게는 유적과 유물에 그런 대우를 하는 인도가 무척 지옥같은 곳인가 본데 내 정서에는 그런 식의 수천년에 대한 '재활용'과 '개무시'가 취향에 맞았다. 인도의 정신은 현생에 충실함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그 인도에서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유적을 본 적이 있었다. 아잔타 석굴 속에 그려져 있었던 새까맣게 탄 보디사트바(보살)의 모습이다. 수천년전의 그림에 넋을 잃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어쨌든 폐허는 폐허고 마카오의 남색 하늘은 너무나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성 파울로 성당 옆의 오솔길을 무작정 따라가니 fortaleza de monte(fort of monte쯤?)가 나타났다. 벤치에 앉아 점점 어두워져 가는 하늘과 아기자기한 도시국가를 바라보았다. 관리인이 나타나 시간이 지났으니 그만 내려가라고 말했다. 슬금슬금 내려와 벤치에 앉았다. 아이들 몇몇이 주변을 시끄럽게 돌아다녔다. 앞으로 내 삶에 관한 생각을 했다. 할일없이 한가해지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돈벌어서 노후를 걱정없이 보내자는 생각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중국인들이 연초에 국수를 먹으며 국수다발처럼 길고 가늘게 살기를 기원하듯이 나 역시 먹고 살 정도의 돈이 되고 일년에 한번 정도 여행경비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면 만족할 것이다. 그쯤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맛있는 저녁 먹을 시간이다.
내려오는 길에 두 브론즈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올라오는 길에는 폐허가 눈에 걸리적거려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는 한 서양인이 어떤 동양 여자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동-서양의 만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건 그렇다치고 길 반대편에 있는 이상한 동상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개가 한 마리 있고 여자가 앉아 사타구니를 쫙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동-서양의 만남까지는 좋은데 동양은 저렇게 사타구니를 벌리고 있어야 하나? 밥맛이군.
대로에서 버스를 탔다. 택시 타고 편하게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버스가 어디까지 가는지 조마조마했다. 길을 놓치기 쉬운데다 홍콩과 마카오가 워낙 작은 동네라 골목 하나라도 놓치면 거리 감각을 잃기 일쑤였다. 바다가 나타나자 마자 내렸다. 종점이다. 이 근처가 맞을텐데... A Lorcha 레스토랑을 찾아 보았다. 길거리에 있는 경찰관에게 레스토랑보다는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지명인 A-ma Temple을 물어보았다. 그가 등뒤를 가리켰다. 댕큐.
레스토랑은 방금 문을 닫은 듯 싶다. 어쩔까 하다가 옆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흑묘백묘, 마카오에서 유명하다는 african chicken만 먹으면 장땡이니까. 생글생글 웃는 아줌마가 에피타이저로 올리브유에 마늘과 작은 토마토를 버무린 접시를 내왔다. 생각보다 맛있다. 해물 스프가 나왔다. 박하를 잔뜩 넣어서 좀 떫은 맛이 났다. 그 다음에 빵과 버터가 나왔다. 빵 잘 만드는 마카오라는데 별로 맛이 없다. 아프리칸 치킨이 나온 모습을 보고 킥킥 웃음이 나왔다. 닭 반 마리를 양파와 마늘로 범벅해서 구운 것이다. 약간 거무스름하게 타서 이걸 아프리칸 치킨이라고 부른 듯 싶다. 와인을 곁들여서 마셨다. 치킨은 비싸기만 하고 백숙보다 맛이 없었다. 이게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음식인가? 음 중국음식이나 먹을껄 그랬군.
할 일도 없고 maritime museum 옆의 바닷가 벤치에 앉아 담배를 빨며 바다 구경을 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가 충분히 바람을 쐰 후 사라졌다. 30분 쯤 앉아 습기찬 바람을 맞다가 일어서서 시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골목에서 화장을 한 소녀가(중국 여자들은 화장을 잘 안하는 것 같다) 나를 부르며 뭔가 놀려대었다. 몇마디 대꾸하고 돌아섰다. 찜찜해서 생각해보니 그녀가 창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작고 별로 예쁜 몸매도 아니라 호기심을 보이지 않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리타임 박물관 앞의 건물. 레스토랑 뒷 건물. 이게 뭐 였더라?
마카오의 이름이 비롯된 아마가우, A-Ma라는 여신의 사원.
부두에 중국인들이 플로팅 카지노라고 부르는 배가 정박해 있었다. 홍콩 영화에서 몇번 본 적이 있는 모습. 앞에서 아저씨들이 한가하게 장기를 두고 있다. 길을 따라가다가 호텔이 두셋 늘어서 있는 거리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떤 여자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억지로 호텔 로비로 끌고 갔다. 대략 2-30명 되는 여자들이 로비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수다스럽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 줄로 주욱 늘어섰다. 누군가 골라보라고 소리쳤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여자들의 얼굴과 몸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키가 작고 얼굴은 그저 그렇게 예쁘장한 수준이었다. 이래저래 여자들을 평가하며 로비를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한심한 기분이 들어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나는 돈이 없다.
마카오 창녀들에 대한 애기는 들어봤다. 중국에서 돈 벌려고 넘어온 자그마한 아가씨들, 여자를 집어 숙소나 호텔의 객실로 들어가면 십분이 채 안되 문이 벌컥 열리면서 경관이 들이 닥친다. 그리고는 매춘은 불법이라며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물어 지갑을 털어간다. 얼이 빠져 있는 동안 창녀와 경찰이 나가고 어느 골목에서인가 창녀와 경찰이 뜯어먹은 돈을 나눠먹는다. 때로는 진짜 경찰이 아니라 포주가 경찰 복장을 하고 들이닥치기도 한다.
중국인 숙소는 원칙적으로 남녀가 한방을 같이 쓰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부부라도 여관에 들어오면 방을 따로 잡는 것 같다. 만일 한 방을 잡으면 여관 주인이 경찰에 신고한다. 풍기문란으로.
10시가 넘자 가로등 밑에서 주머니를 뒤적여 창녀를 살만한 돈이 되나 세고 있던 나를 지나쳐 술취한 중국인들 몇몇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고는 내가 방금 허겁지겁 빠져나온 호텔을 기웃거리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대머리가 발라당 벗겨진 늙은이들이다. 회춘하고 싶어서 저러나?
리스보아 호텔 카지노에 잠깐 들렀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있다. 테이블에서 한국말이 간간히 들려온다. 도박은 취향에 안 맞아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수퍼에 들러 맥주와 자두를 샀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아줌마가 성화를 부리길래 하는 수 없이 육포를 한장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자두를 씻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자두를 깨물어 먹었다. 자두 맛이 형편없다. 뭐 이런 자두가 다 있나 싶어서 겉에 붙은 레이블을 살펴보았다. california plum이라고 적혀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수입해온 자두인 듯 싶다. 이런걸 자두라고 먹는 놈들이 불쌍하다. 4개를 10$에 사온 것이지만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아깝지만 쓰레기통에 버렸다.
맥주 한 잔 하니 바람 쐬러 나가고 싶어졌다. 광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니까 창녀들이 골목마다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창녀가 사방에 우글거린다. 안아도 되니? 하니까 노~ 라고 말하고 배시시 웃으면서 도망친다. 창녀들과 농담따먹기를 하다가 아가씨들이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관심을 잃었다. 젠장, 공짜로 한 번만 중국 맛을 보여주면 덧나나?
숙소로 다시 돌아와 TV를 잠깐 보았다. 여성 피임에 관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리얼하군. 저런걸 애들도 본단 말이지... 가이드북을 샅샅이 뒤져 리비에로 거리 근처에 있는 비자 오피스를 하나 발견했다. 빙고! 불을 끄려니 침대 맡에 있는 등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전구를 살짝 빼내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10/4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8:30, 어제 생각보다 식사양이 적어서 배가 출출하다. 보온병의 차는 아직도 따뜻했다. 한 잔 마시니 기분이 좋아진다. 자스민 차는 비눗물 같아서 통 마시지 않았는데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은 후 마시기에딱 좋다. 고기 등의 기름진 음식을 먹은 입을 비눗물로 헹군다는 기분이 드니까.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 입고 체크 아웃하고 나왔다.
중국식과 포르투갈 식이 뒤죽박죽 섞인 건물의 모습
아침 먹으려고 리비에로 광장 옆에 있는 St. Dominic market으로 향했다. 가게들이 마악 문을 열고 있었다. 호기심 때문에 옷값을 물어보니 역시 홍콩 재래시장의 반값이다. 옷의 품질은 그저그래 보였다. 점점 마카오에 정이 간다. 시장 옆의 조그만 현지인 식당에 들어섰다. 중국인들은 테이블에 타인과 합석하는데 별다른 거리낌이 없나보다. 홍콩에서 나는 매번 중국인과 합석했다. 그러면 차를 홀짝이는 동안 내게 광동어로 말을 걸어온다.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무안한지 눈길을 돌린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메뉴판을 보고 영어로 불평하듯 종알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가 외국인임을 눈치챈다.
내 앞에는 자매인듯한 여자 셋이 앉았다. 식당 아줌마가 뭘 주문할꺼냐고 묻길래(식당에서 주인이 뭔가 중얼거렸다면 그것 뿐이지 않겠나?) 시험삼아 '곤지' 하고 말했다. 대충 알아듣는 눈치다. 그리고는 벽에 붙어있는 메뉴를 다시 한번 가르켰다. 오호라, 죽에 넣어먹는 건더기를 고르라는 뜻인가보군. 대충 아무거나 가르켰다. 한 자리에 앉아있는 자매들은 국수를 시켜 다소곳이 잘 먹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평생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홍콩의 백만불짜리 야경에 버금가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굿모닝~'이라고 말했다. 화들짝 놀란다.
죽 맛이 끝내준다. 이거 말린 전복같은데? 으허허허... 중국 음식은 정말 세계 최고다. 먹고 계산할 때 또 한번 놀랐다. 그 맛있는 것이 고작 9$ 밖에 안했다. 과연 광쩌우에 가면 이게 얼마나 할까? 5위엔? 6위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래! 거기가서 배터지게 한 번 먹어보는거야! 컨퍼런스고 나발이고!
죽맛이 좋아서 비자 오피스가 있는 건물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마카오인들은 누구나 친절하다. 경비원이 가르킨 종이를 읽어보니 비자 사무소는 마카오 SAR 근처로 이전했다고 적혀 있었다.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게으른 마카오인들은 남들 이틀 놀때 3일 노는 것 뿐만 아니라 업무시간도 9:00가 아닌 9:30부터 시작이란다. 지금 시각은 9:00, 아직은 실망할 때가 아니다. 버스를 잡아타고 어제 헤메던 그 거리의 SAR 빌딩으로 들어섰다. 역시 홍콩의 망할 놈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친절함이 몸에 배인 '마카오표' 안내원이 SAR 건물 뒷편에 있는 비자 사무소를 알려 주었다.
들어서자마자 중국 비자를 만들고 싶다고 다짜고짜 말했다. 그녀는 오늘 오후 4시나 되야 나온다고 말했다. 광쩌우에 가려는데, 거기까지 몇시간 걸리냐고 하니 2시간 반쯤... 세상에... 비자가 좀더 빨리 나올 수는 없냐고, 급행비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중국정부가 좋은 점은 웃돈 약간 얹어주면 모든 사무처리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쓸데없이 똥고집을 부린다. 그새 관료들이 청렴해졌단 말인가? 아이고 세상에. 그럼 오후 4시에 비자 받아 중국 관문을 통과해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광쩌우행 고속버스를 타고 광쩌우에 도착하면 7시나 7시 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샤미엔까지 가면 넉넉잡아 8시 반, 숙소 잡고 저녁 한끼 먹으면 하루가 땡이다. 다음날 오전에 청평 시장 둘러보고 식사 한끼 하고나면 곧 홍콩으로 출발해야 한다. 한숨이 나왔다. 비자를 만들겠냐고 재차 물었다. 노. 비자가 오후 4시에 나오면 광쩌우에서 이틀을 머물러야 한다. 울화가 치밀어 근처 수퍼에서 술 이름이나 구경하며 화를 삭였다.
간혹 보이는 수퍼에 진열된 엄청난 종류의 술. 맨 밑에 있는 허연 통들은 4리터 들이 중국술이다.
술 이름을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내친 김에 조그만 적포도주를 한병 사서 거리에 앉아 홀짝홀짝 마셨다. 날도 더운데 몸에서 열이 나고, 비자 못 만든 것 때문에 화가 나서 스스로에게 욕이 나왔다. 어제 와인 박물관에서 수다 떨지 말고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오늘 아침에 비자를 받아 국경을 걸어서 건너 광쩌우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후 2시쯤에는 도착할 수 있었을텐데...
허무하고 기분이 나빠서 홍콩으로 돌아가기 위해 페리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딴 생각 하다가 페리 터미널을 지나쳤다. 아니 페리 터미날이 보이지 않았다. 마카오에 온 이후로 실수의 연속이다. 거리가 꽤 멀어 택시를 타려고 하니 마침 그 택시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진 한번 더럽다.
택시 운전수의 도움으로 버스를 타고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 10:00, 11:00에 홍콩의 침사추이에 닿는 배표가 마침 있어 샀다. 110$. 한 시간 동안 뭐하나, 밖에 나가서 시클로꾼들과 장난이나 칠까? 아참! 그 술들! 맛있어 보이는 술들! 마카오에 기껏 와서 포르투갈제 와인 한병 하나 안 사갖고 돌아가면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되는 것이다. Mateus Rose를 옆구리에 끼고 홍콩에 도착해야 한다.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리비에로가에 도착했다. 40분 남았다. 어제 숙소를 잡으러 가는 도중에 잠깐 구경하려고 들렀던 와인샵을 찾아갔다. 다행히 문을 열었다. 레이블을 서둘러 훌터 보았다. 마테우스 로제는 보이지 않았다. 30분 남았다. 점원에게 물어도 없단다. 시간은 자꾸 가고, 아무 거나 고를 수는 없고... 레이블에 쓰여진 글 중에 마음에 드는 놈을 골랐다.
'이 와인은 최고의 시간에 가장 아끼는 잔에 담아 당신의 오랜 벗들과 함께 마셔야 한다. 안주로는 최고급 치즈가 적격이다' 한껏 뽀다구를 잡는 그 오만한 문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덥썩 집어들고 계산했다. 이걸 같이 마실 놈이 하나 있다. 그 놈은 치즈를 싫어한다. 그럼 안주는 몽땅 내 차지다. 우하하하!!
20분 남았다. 버스가 안 온다. 초조하다. 시계를 살폈다. 15분 남았다. 버스가 도착하자 마자 재빨리 기어올라 승객이라고는 한명 밖에 없는 그 버스에서 아줌마 옆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부탁했다.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면 알려달라고. 페리 터미널을 알아듣지 못한다. 손짓발짓으로 제트포일, 홍콩, 되는대로 지껄였다. 아하! 그녀가 알아들었다. 페리 터미널이 어떤 백화점 건물에 살짝 가려져 있어서 아까도 그냥 지나쳐 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나를 따라 내렸다. 그리고는 건물 앞까지 데려다 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켰다. 건물 이층을 통해 터미널로 가면 된다는 뜻인 것 같다. 마카오 사람들, 너무 친절해서 눈물이 다 난다. 그녀는 건물에서 등을 돌려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다른 버스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를 향해 웃고 있다. 댕큐 베리 머치.
서둘러 immigration까지 달려갔다. 5분도 채 안 남았다. 출국수속을 과연 5분 안에 마칠 수 있을까?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수속이 끝나자 제트포일이 정박한 곳까지 마구 달려갔다. 선원이 배의 문을 막 닫으려는 참이다. 간신히 들어가 숨을 들이켰다. 위기는 지나갔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술 때문에 일을 망치는 놈이다. 인도에서도 그랬다. 술 퍼먹다가 경비가 바닥났다. 저 아줌마가 아니었으면 쌩돈 100$를 고스란히 날리고 마카오 여행은 마지막까지 완전히 구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마카오 사람들의 친절함 때문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길을 묻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상한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길을 알려줘야지.
마카오에서 허겁지겁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 마카오에서 경험한 친절함 때문에 미소를 짓고 있다.
침사추이에 도착했다. 12:00가 조금 넘은 시각. 길을 걷다가 한 친구와 시계끼리 부딛혀 시계 유리에 금이 갔다. 이 근처에 딤섬을 먹을만한 식당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ocean centre를 뒤져봤지만 별달리 눈에 띄는 식당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쾌찬점이라는 중국식 fastfood 가게에 들어갔다. 그 가게의 today's special 메뉴를 주문하니 젤리가 든 오렌지 주스 하나가 달랑 나왔다. 이게 다냐? 하니까 그게 다란다. 15$ 짜리면 국수나 가이(gai)라 불리우는 중국애들 잘 먹는 덮밥 류가 나올 줄 알았는데 나참, 갑자기 마카오가 그리워졌다. 경찰 아저씨와 합석해서 왠지 기분이 우울해졌다. 오렌지 주스를 쭉쭉 빨아먹었다. 아무래도 배가 안찬다.
스타페리항 앞에서 왠 여자 둘이 포스터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싸인을 받고 있었다. 아니 싸인을 해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에로 배우들 같다. 키는 작아도 (중국인 여자들은 왜 한결같이 키가 작은 걸까?) 가슴과 엉덩이가 푸짐하고 다리가 날씬해서 보기 좋다.
컨퍼런스는 들어야겠고 그래서 일단 페리를 탔다. 일본에서 왔다는 사진사가 내가 홍콩인인줄 알고 이것 저것 물어봤다. 재래 시장에 가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거기 가봤자 별볼일 없다고 말하고 돌아가는 그날까지 식당에서 맛있는 요리나 실컷 먹는게 낫다고 충고했다. 아, 에버딘의 거지떼가 몰려있는 수상가옥에 가보라는 말도 했다(거기 가보지도 않았지만). 완차이 페리 피어에 내려 근처의 식당에 들어섰다. 닭고기를 얹은 덮밥을 시켜 먹었다. 국이 함께 나왔다. 맛있다. 중국음식은 뭘 먹어도 안심이다.
센트랄 페리 피어에서 바라본 스타 페리의 모습. 저걸 타고 홍콩섬과 침사추이(뾰족한 모래사장이란 뜻) 사이를 왕래한다.
페리 터미널에서 찍은 홍콩섬의 모습. 오른쪽의 둥그런 건물이 학회가 열리고 있는 컨벤션 센터.
홍콩섬의 마천루와 대기오염. 말을 듣자하니 홍콩섬과 침사추이 사이의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해양생물이 전멸했고 그래서 갈매기 한 마리 없단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쉬러 호텔로 갔다가 김박사를 만나 함께 컨벤션 센터로 이동. summarization에 관한 세션을 들었다. 대학원생들의 눈문 발표는 보기 딱할 지경이다. 바짝 긴장해서 ocr 필름을 떨구질 않나, 우왕좌왕 횡설수설 하기도 했다. 한 여자애가 레이저 포인터로 스크린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포인터가 화면에서 덜덜 떨고 있다. 그나마 내용도 대개는 부실하거나 기술자의 관점에서는 실용성과 거리가 멀었다. 돈 주고 듣기는 조금 아까운 발표들이다. 하품나는 강연을 듣다가 임교수님과 학생들과 함께 타임 스퀘어 근처의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시켰다. 한국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영 불편했다. 학생 중 몇몇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중이라고 하더라. 그 앞에서 멋도 모르고 중국 음식은 뭐든 맛있다고 떵떵거렸으니...
외국에서 먹는 한국음식이 어떤 것인지 대충은 알고 있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실패를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음식을 찾기 위해 부질없는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을 했다. 이전에 교수님이 외국에 가면 늘 한국음식을 먹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일부터는 이 자리에 끼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알맞지 않은 재료로 만든 한국음식보다 현지에서 만든 중국음식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김치찌게는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김치찌게 안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은 중국 두부였다. 주인 아줌마 말로는 한국에서 한국요리를 배운 주방장이란다. 그래도 한국에서 3- 4천원이면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을 14000원에 먹는게 아까웠다. 교수님이 음식값을 내셨다.
일행과 헤어져 빅토리아 피크로 향하던 도중, 마음이 바뀌어 sogo 백화점 지하로 갔다. 20:50, 여기서 스시(초밥)을 9시 부터 할인 판매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21:00부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포장된 초밥을 만지작 거리는 여자들이 주변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찜해놓은 초밥을 놓지 않고 김박사와 함께 여자들 틈에 끼어 그걸 들고 있으려니 왠지 자신이 추하게 느껴졌다. 그걸 50% 할인한 가격으로 사들고 기분이 흐뭇해져서 빅토리아 피크행은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포도송이를 하나 10$ 주고 사서 한국인 일행에게 나눠주었다. 수퍼에서 술을 사왔다. 포도는 정말 맛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한국 포도가 지나치게 단거야!' 통신 잠깐하고 사진 정리하고 김박사와 얘기하다가 잠들었다. 피곤한 하루다.
10/5
아침 일찍 김박사를 깨웠다. 많이 피곤한 듯. 어제 산 초밥을 나눠먹고, 그가 세수하고 나간 후 잠시 메일 체크하고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컨벤션 센터를 한바퀴 빙 둘러보게 되었다. 건물 설계가 여유있고 전망이 좋다. 그렇게 20분쯤 헤메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소방출구의 문을 열고 나가니 문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컨퍼런스에 도착하니 40분쯤 늦었다. 여전히 어제처럼 재미없는 발표가 이어졌다.
컨퍼런스. 발표자는 일본에서 온 한국인. 발표도 잘했고 간만에 내용이 들을만 했다.
workshop paper를 사려고 물어보니 웹으로만 판매한다고 말했다. 25US$, IR과 IE, 그리고 KB 구축에 관한 전산언어학적 연구논문 모음집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신청할 생각이다.
11:30 무렵에 발표 듣다가 영 지겨워서 나왔다. 나머지는 논문집을 살펴봐도 될 성 싶다. 시간날 때 이미 몇몇 논문은 살표 보았다. 내일 괜찮은 발표 둘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전에 할일이 있다. 결국 결심이 섰다. 중국에도 못가서 억울하다. 한국에서 MBE 서비스(Mail Box Etc)로 Visor를 주문 구매하면 우송료 포함해서 290$ 가량은 될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도 한 2주쯤은 걸릴 것이고 이래저래 절차가 복잡하다. 차라리 홍콩에 온 김에... 중국에도 못갔으니까... 그걸 사자. happy valley행 트렘을 타고 타임 스퀘어에서 내려 7층으로 올라갔다. 어? 가게 문을 아직 안 열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오후부터 연단다. 홍콩 녀석들도 마카오 녀석들과 게으르긴 마찬가진가?
할일이 없어 주변 매장을 돌아다녔다. 이젠 완전히 홍콩인 취급들을 하는 건지 날더러 알아듣지도 못하는 광동어로 혼자 막 지껄인 후 설문지를 내밀어 설문을 작성해달라고 한다. 되는대로 아무거나 찍어 주었다. 무척 기뻐하는 눈치였다. 며칠전 타임 스퀘어에 처음 왔을 때는 바깥에서 컴퓨터 판매 매장이 벌어졌는데 컴퓨터 구경이나 하려고 서성이니까 왠 홍콩놈이 옆에 달라붙어 10여분 넘게 나한테 그 컴퓨터에 관해 떠들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떡이던가 생각하는 척 미간을 좁히거나 했을 뿐이었는데 그 친구를 완전히 속여넘긴 것 같다. 혹시 이들이 내가 영어로 떠들면 광동어로 대꾸하는 이유가 '이 자식이 같은 중국인이면서 잘난 척 하려고 괜히 영어로 떠드는구나'하는 괘씸한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건물 상부에서 물 방울이 떨어졌다. 에어컨을 하도 틀어대서 상가 주위를 걸으면 더울 새가 없었다. 에어컨의 외부 냉각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리 곳곳에 고여 있다.
식당에서 왠 할아버지들과 합석해 점심을 주문했다. 할아버지들은 쉴새없이 잡담을 하며 큰 접시에서 음식을 덜어내어 요리를 나누어 먹었다. 냄새가 야릇한게 재료가 좀 이상한 듯 싶다. 먹어보라는 말도 안한다. 점원이 다가와 아직 덜 비운 잔에 차를 첨작하면 나도 할아버지들처럼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노인네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계속 앉아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한동안 테이블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다. 할아버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답례를 받았다.
다시 타임 스퀘어 7층으로 올라가보니 다행히 가게를 열었다. 엊그제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바이저가 보였다. 워런티를 물어보니 홍콩 only란다. 잠시 생각해 보았다. 충분히 소중히 다루기만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palm iii처럼 네번이나 싱가폴로 a/s를 보내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저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액정이 깨끗하고, 속도도 빨라 보인다.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다. 눈 딱 감고 카드로 긁었다. 가방을 들고 매장을 빠져나올 때 뭔가 한껀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바이저부터 셋업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호텔에 돌아와 자료를 옮겼다. 가지고 다니던 palm iii는 용량이 부족해 엄두도 못냈던 concept kitchen의 lonely planet hong kong guide을 설치했다. 프로그램을 띄우자 홍콩 지도가 나타났다. 오예.
구매한 바이저. 검정색. 흐뭇.
센트럴로 향했다. exchange square 근처에서 스탠리행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니까 운전수가 뭐라고 하더라. 이상하다 싶더니만 스탠리에서 돌아오는 버스였다. 5$만 날렸다. Jardine House 1층에서 6번 버스를 타고 스탠리로 향했다. 마치 춘천가는 길 같다.
스탠리 가는 길. 일부분 빅토리아 피크 올라가는 길과 겹친다. 숲 밑은 절벽이다.
스탠리에 내려서 담배 한대 물고 무단횡단했다. 건너편에 서있던 서양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나를 따라 무단횡단했다. 나는 로컬라이즈가 확실하게 되어서 홍콩 사람들처럼 차만 안 보이면 신호등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잘 했다. 마카오에 있는 동안은 마카오 사람들이 차를 좀 정열적으로 모는 경향이 있어 제때에 길을 건너기가 어려웠다. 거기서는 그 지역 사람들이 하는 모양을 따라했다. 그들이 건너면 나도 건넜다.
스탠리 시장에서 학생들 셋이 땡땡이를 치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늘 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중이란다. 기념품 가게의 물건들 가격을 살펴보니 재래시장에서 보던 것들보다 약간씩 비싸다. 하지만 스탠리 시장은 집에 돌아가기 전에 기념품을 장만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로 보인다. 그들과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은 취향에 안 맞아 적당히 헤어졌다.
18:10, 해가 지고 있다. 인도의 펀잡 출신으로 보이는 풍채 좋은 경관이 해변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갯바위에 올라앉아 바람을 맞으며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았다. 이곳 바다는 녹색이다. 옆에 책을 읽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해변은 그저 그랬다. 스탠리 근처에는 갑부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던 길에 보았던 건물 모양도 어딘가 달랐다. 해안길을 따라 유럽풍의 까페가 몇몇 보였다. 연인들이 방파제 부근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다.
스탠리의 모습. 앞의 건물들은 맨 유럽식 레스토랑들.
별달리 볼 것도 없고(유럽풍의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가게는 왠일인지 짜증이 난다) 할 일도 없었다.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들춰봤지만 비쌌다. 줄곳 20-30$ 짜리 식사를 하다가 한 접시에 80$에서 100$이나 하는 식사를 하자니 돈이 아까웠다.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더운 지방 여행할 때는 물이나 음료수보다 아이스크림이 여러모로 편하다. 부족한 당분을 보충해주고, 열기를 식혀주고, 공기가 수분보다 많아 물처럼 자주 마시다가 헛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울 때는 경험상 아이스크림이나 과일이 가장 좋았다.
스탠리의 갯바위에서 바라본 일몰.
갯 바위 뒷편에 있는 다 썩어가는 중국식 집.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볼일 보고 살 거 다 사고 이미 상가에서 나갔다. 상인들이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거장 부근으로 꾸역꾸역 몰려왔다. 중국인들이 본래 명랑한 건지 시끄러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서로 떠들기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옆에 있는 아가씨들에게 물어보니 버스가 자주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아가씨들의 도움으로 9$짜리 미니버스를 탔다. 트램은 어딜가나 2$이다. 트램이야 말고 홍콩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타보는 미니버스도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몇군데 섰다가 사람들이 좌석에 꽉 차자 더이상 승객을 태우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중국에 가면 미니버스를 자주 볼 수 있을 터이다. 손님이 없으면 마냥 세월아 내월아 하며 서 있다가 손님이 다 차면 더 이상 태우지 않는 미니버스가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중국 비자 때문에 속상했다. 미니버스의 목적지는 코즈웨이베이. 에버딘 터널을 거쳐 올 때보다 빨리 도착했다.
재래 시장. 수산물을 팔고 있다. 한국과 별 차이 없다.
재래 시장 2.
거리에서 빈둥거리다가 수퍼에 들러 술병들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한병 사들고 나와 거리 귀퉁이에서 홀짝홀짝 마셨다. 시장바닥의 한 켠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술을 사갖고 왔다. 마침 김박사가 돌아왔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돌아와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의 디지탈 카메라의 감도가 내 것보다 좋은데다 노출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서 그런지 야경이 생각보다 선명하게 나왔다.
각종 술병들. 왼쪽에 있는 빈병은 크레믈린 보드카. 가운데는 포르투갈 와인. 오른쪽은 오미자술. 앞에 있는 것은 그레네이드처럼 생긴 보드카. 용법: 안전피(병따개)를 뽑고 완샷한다.
10/6
교수님이 일찍 돌아가신단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마땅히 갈 데가 없다. 아마 중국식 죽이나 중국인들이 아침에 먹는 면류를 먹자면 인상을 찌푸릴 사람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호텔 근처의 올리버스 수퍼 샌드위치에 갔다. 아침부터 오믈렛 같은 것을 먹으니 속이 놀라는 것 같다. 교수님과 인사하고 난 후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중간에 학생들과 헤어져 옆길로 샜다.
컨벤션 센터 부근의 작은 중국식 정원. centre를 '중심'으로 번역한다.
어젯밤 가이드북을 자세히 읽어보니 하버 로드 부근의 chinese resource centre 6층에 중국 비자 만들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어차피 늦었지만 나중에 도움이 될 정보이기에 30분 쯤 투자해서 어딘지나 알아두자는 생각으로 그곳에 찾아갔다.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았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무리봐도 5층까지만 가고 계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더더욱 희안한 것은 그 건물이 적어도 10층 높이는 된다는 점. 고개를 갸웃갸웃 하다가 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탁자에 팔을 걸치고 있던 할아버지가 느적느적 일어나 내게 다가와 뭐라고 말했다. 나는 비자 오피스 라고 간단히 말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또 뭐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무시한 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레스토랑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할아버지가 졸졸 따라다니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놈에 홍콩은 건물에 왠 놈에 막다른 길이 이다지도 많은건지. 어쩐지 1층에서 6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컨퍼런스를 들어야 하고, 시간도 없고, 시끄럽게 떠드는 할아버지를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다. 중국 비자는 끝까지 나를 엿먹이고 있다.
컨퍼런스 얘기는 생략. 한둘은 재미있었지만 나머지는 그저 그랬다. 김박사나 교수님이나 올해 ACL보다 2개월 앞서 열린 COLING 때문에 죽을 쒀서 그런지 들을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국제 학술대회에 처음 참가해 보지만 학술대회가 이 모양이면 굳이 구경하러 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점심때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에 내렸다. 마침 주머니에 동전이 없어 수퍼에서 파파야 우유를 사 마셨다. 시금텁텁한 맛이다. 팜으로 지도를 잘 확인하면서 가니까 버스에서 내려야 할 지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Temple street에 내릴 생각이다. 재래시장은 이쯤 해두고 더 다니지 말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아 그리 볼 것이 없다. 저녁 무렵에 와야 재미가 있다고 하던가? 저녁에 술 마시기로 해서 시간이 없다. 어제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 적당한 bar를 발견했다. 중국인들만 들락거리는 것 같다. 마음에 든다.
홍콩섬과 침사추이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스타 크루저. 엄청나게 큰 배다.
2층 버스 위에서 바라본 네이단 로드 파빌리온처럼 꾸며놓은 jade market에 들어섰다. 노판 가게들이 쥐구멍만해서 뭐 볼 것도 없었다. 옥을 볼 줄 모르면 거기서 물건을 사지 말라는 가이드북의 간곡한 충고가 있었지만 중국 상인들의 상술과 여행지에서 노련하게 갈고 닦은 내 디스카운팅 솜씨 양자간에 자웅을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 일단 중국인 노부부 뒤꽁무니에서 두어 가게를 따라 다녔다. 돋보기를 눈에 끼고 옥을 불빛에 비추며 살펴보는 모양이 옥을 볼 줄 아는 모양이다. 그들이 던져놓는 것과, 한참을 자세히 살펴보고 가격을 물어보는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한 가지 차이를 발견했다. 가격을 물어본 것들은 불빛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불규칙한 실 모양의 무늬가 내부에 있다는 것. 중국인들은 장수하기 위해 옥을 몸에 지니길 즐긴다? 애들이 옥 악세사리를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아마도 홍콩영화에 나오는 열혈처럼 짧고 굵게 살려고 결심한 것 같다.
옥 시장의 내부 모습
옥으로 만든 묵직한 목걸이를 들고 가격을 물었다. 주인 아줌마는 슬쩍 계산기를 꺼내 숫자를 적어보였다. 500$. 위장속에 있는 밥알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비실비실 웃고 고개를 저었다. 원하는 가격을 적어보라며 계산기를 내밀었다. 자판을 두들겨 200$을 적었다. 생각하는 척 하더니 300$을 적어 보여준다. 손을 흔들고 옆 가게로 이동, 똑같은 제품을 꺼내 흔들었다. 떠나온 가게 아줌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게 주인이 200$을 적었다. 검지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100$. 두 가게쯤 건너뛰어 다시 비슷한 모양의 옥 목걸이를 집어 들고 검지 손가락을 세웠다. 그 가격에 주겠단다. 좀 더 둘러보겠노라고 말하고 가게를 떠났다. 한참 느적느적 구경하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처음 들렀던 가게의 젊은 주인 아줌마가 내 잘 생긴 얼굴을 잊지 못해 뛰어온 것이다. 그녀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옥목걸이를 한 차례 흔들고 계산기에 80$을 적었다. 고개를 끄떡였다. 조금 있다가 그 가게에 들르겠다고 말했다. 약속하라고 한다. 고개를 끄떡였다. 에이티 달러, 오케이? 하고 크게 떠들었다. 다음 가게에서 비슷한 옥 목걸이를 옥 전문가처럼 한참 살펴보는 척 하니까 주인이 계산기에 50$을 적었다. 방금 내가 한 말을 들은 것이다. 일부러 가격을 떠든 것이지. 나는 30$을 적었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척 하다가 가게를 나왔다.
옥시장을 빠져 나오니 햇볕이 따가워서 모자를 눌러썼다. 옥을 볼 줄 모르면 이런 곳에 오는 것이 아니다. 모조품을 500$에 부르는 깡이 놀랍지만 그게 100$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이 짱께 장삿꾼들이 남대문 이나 용산 용팔이보다 상술이 한끗발 아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한국에 차이나타운이 없는거지. 노련한 한국의 장삿꾼들이라면 500$ 짜리 짜가라도 300$ 이하로 팔지 않는다. 짱께 상인들은 인접한 가게들과 입을 맞춰놓는 기본적인 담합도 제대로 안했다. 외국인 몇몇이 옥을 사들고 파빌리온을 나오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옥 전문가던가 아니면 장사치에게 놀아나는 멍청이들이겠지.
오리와 닭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시장이다. 어디가나 상점과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홍콩의
집값이 비싸단다. 3대가 마르고 닳도록 벌어도 살 수 없는 그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엄마와 딸이 이층 침대의 각기 한켠에 붙어 땀으로 흥건한 속옷속을 더듬거리며 곤히 잠들 것이다. 금요일 밤이면 시민들은 떼거지로 외식을 했다. 홍콩인들은 대체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먹지 않는다. 집에 식당을 가질 여유가 없으니까. 베란다라고 할 수도 없는 난간에 너저분하게 걸려 흔들거리는 내의들, 시장 가장자리에 놓인 다 쓰러져가는 초가들 사이에서 수천년전에 만든듯한 저울에 차잎을 계량하여 파는 무표정한 얼굴의 노인네가 있었다.
템플 스트릿 부근의 재래시장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어차피 영어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딤섬!, 슈마이! 학카우! 따위를 크게 외쳤다. 딤섬(점심, point of the heart)을 두 통 주문하고 옆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신문을 빌려 읽었다. 한자 투성이라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누가 죽은 것 같다. 홍콩이 반환된 직후, 비교적 입이 가벼웠던 홍콩의 언론사 중 어떤 신문의 기자가 베이징 정부의 전횡을 성토하다가 2년인지 10년인지 징역형에 처해졌다. 그후로 홍콩 언론은 알아서 기었다고 한다. 대나무통에 담겨온 슈마이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30분 쯤 차를 홀짝였다. 중국인들처럼 느긋하게 딤섬을 먹으며 신문과 파일럿을 뒤적이다가 일어섰다. 딤섬값은 두 통 합쳐 19$이다. 가이드북의 지시 대로 '유명' 레스토랑 따위를 전전했더라면 한 통에 25-30$씩은 주고 먹었을 것이다. 무척 보람을 느꼈다. 비록 싼 값에 중국인들이나 들락거리는 식당에서 주로 식사 했지만 양과 맛에서 고급 레스토랑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식사는 언제나 성공적이다.
네이단 로드를 걸어갔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 햇빛이 뜨겁다. 노변 곳곳의 가게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잡아 끌었다. 못 이기는 척 들어가 관심도 없는 카메라 구경을 하다가 가격을 물어보고 잠시 생각하는 척 하다가 가게를 나왔다. 에어콘 바람이나 잠시 쏘여보는 것이다.
청킹 맨션을 찾았다. 이 근처가 미라도 맨션인 것 같은데, 뒤로 돌아가 보았다. 예상대로다. 인도인, 필리핀인, 흑인들이 계단에 주저앉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지나갈 동안 나를 관심있게 쳐다 보았다. 나도 그들을 관심있게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나마스떼! 하고 인사하니까 인도녀석들이 답례해 준다. 커다란 나무 밑에 흰 사틴 두루마기를 입은 덩치좋고 머리를 빡빡 민 작자가 앉아 무슨 글을 읽고 있다. 그 옆에 말쑥하게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작자가 공손하게 서 있다. 무슨 보스쯤 되나보다. 저 서류 가방을 열어제끼면 혹시 우지와 권총 따위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청킹 맨션의 뒷 골목들은 분위기가 심상치않고 어딘가 음울했다. 거리에서 어슬렁 거리는 녀석들은 소문대로라면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일 것이다. 홍콩 사회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며 외국인의 돈을 뜯어먹던가 아니면 시궁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을 것이다.
청킹맨션의 지저분한 뒷 골목. 시선을 피해 잽싸게 찍었다.
맨션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정겨운 인도 냄새가 확 풍겼다. 온 사방에 인도인들이 왔다리갔다리 하고 있었다. 어떤 인도 꼬마가 게스트 하우스의 사진을 들고 다가와 방을 찾냐고 물었다. 청킹 맨션에 온 이유는 타임 트래블사를 찾기 위해서다. 거기서 덤핑 항공권을 팔고 중국 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악명높은 청킹맨션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흑인이 하나 탔다. 인도인 두명이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었다. 네명이 타니까
엘리베이터가 꽉 찼다. 시꺼먼 나까지 합치니까 상자속에 든 초코 뻬빼로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멎을 듯 올라갈 듯 삐꺽이면서 몇층인가 올라갔다. 위에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다. 미친 척하고 카운터에 다가가 방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방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지저분한 시트에 벽은 누렇게 떠 있다. 창문이 작아 어두침침했다. 벼룩이나 바퀴벌레가 튀어나올 것 같은 방이다. 부근에서 짐승같은 눈빛을 한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대낮에도 침침하고 습기가 배인 채 담배 연기가 잘 안빠지는데다 샤워 꼭지에서는 미적지근하고 미끈거리는 녹물이 쏟아졌다. 이곳에서 가끔은 낡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재수없이 맞아죽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미로처럼 얽힌 도로, 난민떼같은 사람들, 어쨌든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이 되었던 청킹 맨션을 제대로 본 것 같다.
청킹 맨션의 엘리베이터. 스릴있다.
내려왔다가 타임 트래블 서비스를 찾아 15층인가 16층인가 까지 다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한쪽 켠에는 커다란 글씨로 담배피면 벌금이 1000$라고 적혀 있었다. 주머니에 있는 담배곽을 만지작 거렸다. 레몬티 향이 나는 그 담배곽에는 간단하게 'smorking kills'라고 적혀 있다.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무슨 뜻인지 애매하다. 이런 뜻이 아닐까? '담배피우기, 죽여준다'
문이 열리니까 여자들이 떼로 모여 있었다. 뭐야 이건? 창녀들인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창녀들에게 다가가니 무슨 볼일이냐고 물었다. 타임 트래블. 그들은 뒤를 가리키며 오늘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염병할 놈에 중국 비자는 끝까지 나를 엿먹였다.
일층에 내려와서 인도인들이 우글거리는 지저분한 식당에 앉아 짜파티 두장과 콜라를 시켜 먹었다. 내가 향수에 젖어 짜파티를 먹는 동안 인도인들이 줄곳 관심있게 쳐다봐 주었다. 속으로 어떤 놈인데 인도 동포들이 우글거리는 인도 식당에 버젓이 들어와 뻔뻔하게 식사를 하는 것일까 하고들 생각하고 있겠지. 여기가 인도였다면 니들은 다 내 밥이다.
침사추이 옆 시계탑. 앉아있는 여자들은 거의 필리핀 인들. 무척 시끄럽다. 늦기 전에 페리를 타고 완차이에서 내렸다. 컨벤션 센터에 올라가보니 이미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번 컨퍼런스 기간 동안 가장 재미있는 발표였다. 발표가 끝나고 로비에 나가 보니 김박사는 쇼핑하러 갔고 학생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더 들을 것도 없고 나도 선물을 좀 사야겠기에 트램을 타고 코즈웨이 베이로 향했다.
스타 페리 터미널
스타 페리 터미널의 승무원. 배가 나왔고 머리를 빡빡 밀었고 가슴에 별을 달고 있다.
일전에 찜해 두었던 우롱차 패키지는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름이 well-known tea, 번역하면 '유명차'쯤 되겠다. 이훙이 만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차인데 파리에서 열린 차 경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음... 1986년에. 사실 재래시장에서 싼값에 왕창 파는 차를 사는 것이 아무래도 나았지만 그걸 선물이랍시고 비닐봉투째 건네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금 비싸더라도 패키징이 제대로 된 이걸 살 생각이었다. 점원이 다가와 계속 중국인 취급을 해서 조금 짜증이 났지만 10개를 한꺼번에 샀다.
경찰이 불법체류자를 잡았다. 신호등 제어기 뒤를 자세히 보면 경찰이 보일 것이다. 옷이 허름하고 여행 가방을 든 채 거리에
앉아있으면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이런 광경을 흔히 보았다.
선물도 다 샀고 해서, 수퍼에 들러 군침을 흘리며 술병을 쳐다보다가 싸구려 죽엽청주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이상한 술병을 하나 샀다. 그리고 어제 길을 걷다가 저녁 무렵 보았던 사람들이 웅성이던 식당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이라면 일단 맛은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메뉴판은 순 광동어, 지나가는 점원 총각에게 영문 메뉴를 달라고 하니 혼자 뭐라고 지껄이며 슬그머니 사라져서 5분이 지나도 안 나타났다. 차 따라주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 메뉴 고르는 법을 물었다. 간신히 58$에 세가지 요리를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입이 쫙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가게의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킬 뿐이었다. 한자를 면밀히 검토해 보았다. 첫 글자는 요리법, 그다음 글자들은 재료와 가공법을 나타내고 마지막 글자가 스프냐, 면이냐, 밥이냐를 나타낸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여튼 세 가지를 주문하고 손짓발짓으로 만두도 하나 시켰다.
주문한 만두는 만두 전문 요리사가 주문을 받자마자 만들기 시작해 직접 들고 갖다 줬다. 굉장히 맛있는 만두였다. 살짝 깨무는 순간 안의 육즙이 터져 입안에 고였다. 고기를 감싼 부드러운 만두피가 입 천정과 혓바닥에 달라붙고, 고기 안에 뭘 넣었는지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났다. 아, 맛있다. 오늘 식사도, 어제, 그제, 그그제처럼 성공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뭘 먹어도 이렇게 맛있단 말인가. 다음에 나온 것은 허여멀거한 스프였다. 나중에 그림을 보고서야 그게 제비집 스프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사천식 매운 면이 나왔다. 마지막은, 세상에! 삼선짜장이 나왔다. 중국음식 중에 짜장면이 없다는 말을 얼핏 들어본 것 같은데, 아니다, 이것은 완벽한 짜장면이다. 58$에 배 터지게 먹고 차로 입가심을 한 후 식당을 나왔다. 나오자 마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이 황급히 들어와 채 상을 치우기도 전에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덥썩 앉는다. 똥꼬가 흐뭇하다. 58$에 세가지 요리를 한 시간에 걸쳐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다. 술 먹기로 하고 어디로들 간 거지? 어쩔 수 없군. 아까 사온 작은 술병을 따서 다 비울 때까지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에 있는 HMV에 갔다. 커다란 매장이지만 예상대로 구하기 힘든 것은 여기에도 없었다. 김이 새서 앤디 워홀이 강짜를 부려 니코를 그룹에 끼워넣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의 두장짜리 cd와 꽤 오래전에 빌려줬다가 잃어버린 yes의 close to the edge 앨범을 하나 사들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bc Magazine을 한부 뽑아 들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읽었다. 홍콩의 연애, 엔터테인먼트 잡지인데 조만간 리키 마틴이 홍콩을 방문해 정열적인 밤을 보낼것이라고 한다.
침사추이 페리 포트에서 침사추이 이스트까지 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빅토리아 피크까지 올라가긴 시간이 뭣하고, 마지막으로 여기서 야경을 즐길 심산이다. 맥주 한병 사들고 노변에 앉아 반딧불처럼 번쩍이는 자본주의를 바라보았다. 홍콩섬의 센트랄과 코즈웨이베이에 늘어선 건물들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공각기동대의 대사가 다시 생각났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썅! 홍콩은 좁아 썅!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 숙소 근처의, 엊그제 봐 두었던 bar에 들어갔다. 아직 happy hour다. '행복한 시간'이란 오후 3시부터 밤 9시 사이, 술집이 파리날릴 때 술값을 반만 받는 시간대를 말했다. 반면 unhappy hour(안 행복한 시간)은 술집이 붐비기 시작하는 저녁 9시 이후부터를 말했다. 맥주 한병에 18$, 손님이라고는 구석에서 낄낄거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중국인 몇몇뿐, 가게는 비좁고 의자와 탁자가 연달아 있어서 식당에서처럼 합석을 한 셈이 되었다.
맥주 마시면서 그들과 몇마디 주고받았다. 묻는 것이 국적과 여행목적, 어디를 갔다왔냐 정도, 철학적인 대화는 없었다. 나는 진짜 호스테스 바와 광쩌우 따위를 물어보았다. 론리 플래닛에서 보니까 호스테스 바랍시고 들어가보면 여자가 곁에 앉아 한 2-30분 대화하고 나서 무려 1000- 2000$ 이란 값비싼 댓가를 치러야 하는 곳이라고 나와 있다. 2-30분이면 인사 나누고 국적 묻고 홍콩이 이렇다 저렇다 떠들 시간밖에 안된다. 날더러 라이 콰이 펑에 가보라고 말했지만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독한 술 없냐고 말하니까 이상한 술을 한잔 따라 주었다. 완샷에 들이키니까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낄낄거린다. 더 마시면 골로 갈 것 같아 내빼야겠다. 중국 친구들에게 작별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수퍼에서 다시 술 두병을 사고 안주를 사러 돌아 다니다가 호텔 맞은편의 커다란 매장에 사람들이 웅성이며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보니 일본 av물 vcd를 판매하는 가게다. 4장에 100$ 정도 하는 것 같다. 3장 사고 75$ 냈다. 오는 길에 장당 30$씩하는 vcd를 두 장 더 샀다. 이런 걸 내가 뭣하러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온 김에 페리 포트 근처의 해변(정말은 그저 강변같은)에 주저앉아 침사추이 쪽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두 병중 한병을 비웠다. 술이라면 정말 원없이 다양하게 마셔보는 것 같다. 오늘 술값으로 280$ 가까이 썼다. 남은 돈도 이제 얼마없다. 40만원 들고와서 1주일 동안 거의 다 썼다.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한병을 들이켰다. 술 이름은 건빠이 였다. 홍콩의 야경에 건배 하면서 정말 재미없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열두시가 다되어 김박사가 돌아왔다. 술집을 찾아 좀 헤멘듯 싶은데, 나랑 같이 갔더라면 좋았을껄. 한국인 몇몇이 독한 화주를 연달아 들이키며 중국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10/7
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 아침 늦게 일어났다. 바리바리 짐을 싸고 첵 아웃 했다. 지난 5일 동안 사용한 전화료가 220$ 가량 나왔다. 한 통화당 4$씩, 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썼는데 전화가 자주 끊기는 편이었다. 벨보이에게 짐을 맡겨 놓고 밥 먹으러 나왔다. 일전에 한번 들렀던 369 레스토랑에 다시 갔다. 이것저것 주문하다 보니까 새우볶음밥과 샥스핀 요리, 그리고 오리 고기 요리가 나왔다. 오리는 예상대로 좀 질겨서 손이 안 갔지만 게살을 넣은 샥스핀 스프는 무척 맛있다. 계산서를 보니 299$, 홍콩에 와서 마지막으로 가장 비싼 식사를 한 셈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분이다.
침사추이 북쪽 부근의 항구. 무관세 자유무역항으로서의 홍콩. 대기오염에 찌든 홍콩섬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인다.
산을 타고 지나가는 전신주. 아마도 중국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듯. 이것들이 홍콩의 쇼핑상가를 밝혀주고 있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베이징의 정치적 컨트롤을 받는다 뿐 중국은 홍콩의 경제 시스템에 거의 간섭하지 않고 있다. 장쩌민의 흑묘백묘 논리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 돼지들에게 돈벌이만큼은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술을 몇병 가져온 것 때문에 세관을 혹시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짐을 엑스레이 대에 올려놓고 지나가니 경비원이 뭔가 말을 걸어왔다. 뜨끔했다. 가방에는 음란 cd가 다섯장 들어있고 술병이 다섯 개 들어있다. 침착하게 생각해보니 떠날 때까지 날 짱께 취급하는 이놈들이 내게 몸에 금속성 물질을 지닌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소리인 것 같다. 그래서 셔츠를 살짝 걷어 일전에 재래시장에서 산 허리에 차는 시계를 살짝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손짓을 하며 짐 검사를 바이패스하고 얼른 통과하라는 것이 아닌가! 허어 이게 무슨 조화인가. immigration을 빠져나와 허리춤에 찬 시계를 뜯어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살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Royal Hong Kong Police. 그 친구들은 내가 경찰인 줄 알았나 보다.
첵 랍 콕 공항은 무척 크다. 크긴 큰데 어쩐지 잘 만든 공항같지가 않다. 간사이 공항에는 흡연실이 따로 있지 않았다. 흡연 구역이라고 뻥 뚫린 공간에 금만 쳐 놓았다. 거기서 담배를 피우면 배기 시스템을 어떻게 해 놓았는지 연기가 곧바로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여기는 이중문이 달린 닭장 같은 곳이 흡연실이었다. 로비에서 한참 떨어져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그래도 쿠알라룸푸르의 지옥같은 공항보다는 낫다.
책랍콕 공항 내부 풍경
공항에서 발견한 선전. 작년부터 좋아하게 된 앱솔루트 보드카. 병 위의 할로가 예사롭지 않다. 이 보드카를 마시면 말 그대로
앱솔루틀리 맛이 간다.
케세이 퍼시픽도 마음에 안든다. 윈도우 싯을 달라고 했는데 창가는 맞긴 맞지만 창문이 저 앞에 달려 있어 바깥을 살펴볼 수가 없다. 벨을 눌러 스튜어디스를 불렀지만 안 온다. 한참 후에 왔을 때 내 앞에 있는 한국인 커플은 연석에 앉게 해달라고 했는데 두 사람의 자리가 엉뚱하게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스튜어디스에게 항의한다. 귀찮아서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음료를 주문할 때 브랜디를 달라고 하니 또 한참이 지나서야 갖다 준다. 바보들. 기내식 맛이 영 아니다.
타이완 상공 11300, 시속 961km, 바깥이 차츰 어두워지고 있다. 공항에 도착하니 20:06.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려놓았다. 돌아온 후 중국에서 하도 잘 먹은 탓인지 거의 하루동안 식사를 하지 않았다. 밤에 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통 맛이 없었다. 광동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달까? fin.
홍콩에서 사용한 동전들. 왼쪽 상단부터 10$, 5$, 2$, 왼쪽 아래부터 1$, 50c, 20c, 10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