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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05.21 Back to Cusco
  5. 2003.05.20 Machu Picchu 4
  6. 2003.05.19 Cusco -> Machu Picchu
  7. 2003.05.17 Arequipa to Cusco 2
  8. 2003.05.15 Colca Canyon
  9. 2003.05.13 Arequipa 4
  10. 2003.05.12 Isla Ballestas 1
  11. 2003.05.11 Pisco
  12. 2003.05.09 Movable ego 5

Titicaca

여행기/Peru 2003. 5. 26. 19:40
아침 일찍 일어나 띠띠까까 호수로 향했다. '아침 일찍'... 으윽... 배를 타고 보니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열세 명. 나와 일본인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쌍쌍이다.

미국인 아줌마의 주장에 따르면 자국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이 좀 한심한 편이란다. 그녀는 가이드가 구사하는 '복잡한' 단어에 감동한 것 같다. 그녀는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고 여행 좀 하게 생긴 마이애미 총각하고 줄곳 얘기를 나누었다. 마이애미 총각은 아줌마에게 이란에 꼭 가보라는 얘기를 했다. 내심 그가 이란을 여행하다니, 참 대단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국적이 탄로나면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하니까. 그와 단 둘이 얘기 할 기회가 있어서 페르세폴리스에 관해 얘기했다. 페르세폴리스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추 피추를 능가한다고 안 되는 영어로 하나 둘 따지고 있었는데, 이 친구 쉬라즈 얘기를 하면서 페르세폴리스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의아해서 이란에 언제 갔었냐고 물으니 얼버무린다. 엉? 케밥 먹어봤다며? 그는 쉬쉬케밥이 무언지 몰랐다. 황급히 도망친다. 그 친구 대신 미국인 아줌마한테 진짜 페르시아를 느끼고 싶으면 케르만의 시장통에 가보라고 열나게 설명했다. 가급적 '어렵고 우아한' 단어를 써가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끼리 떠들거나 서로 개성을 존중하는 것인지 앙숙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테면 '너 같은 관광객 때문에 띠띠까까 호수가 오염되고 있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Uros, Amantani, Taquile 섬을 도는 1박 2일 투어였다. 여러 투어를 비교해서 밥을 가장 많이 주는 이 투어를 선택했다. 섬의 민가에서 하룻밤 자고 점심, 저녁, 심지어 아침까지 얻어 먹는다. 저렴하고, 밥이 공짜라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어떻게 40km 이내에 있는 섬들을 둘러보는데 2일씩이나 걸리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배를 타고 gps를 켜보니 이해가 갔다. 배는 12km/hr라는 어이없는 속도로 '일정하게' 달렸다. 자전거도 아니고... 띠띠까까 호수에는 모두 40여개의 섬이 있었다. 호수 건너편은 곧 가게 될 볼리비아다. 볼리비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 거렸다. 싸다니까.

우로스 섬은 갈대를 1m 두께로 얹어 띠띠까까 호수 위에 떠 다니는 인공섬이다. 띠띠까까 호수에 관해 이전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로스 섬의 원주민들이 유전병 치료의 혁명적인 단초를 제공한 순수한 피를 가진 종족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외에도 잉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화 속의 호수 라던가(그들 태양신의 탄생지), 내륙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큰 규모의 호수라는 등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titi = puma, caca = great or stone 이라는 뜻인데 심혈을 기울여서(또는 사시를 치켜뜨거나 스스로를 납득시키면) 호수 모양이 문득 푸마처럼 보일 때가 있다. 띠띠까까 호수에 얽힌 잉카 전설과 그들의 전통적인 삶은 원주민들과 뿌노의 관광업 종사자들을 먹여 살리는 주수입원이므로 강력하게 보전되어야 마땅했다.

우로스 원주민들이 가족혼을 통해 순수한 혈통을 면면이 이어 왔으리라 생각하고 물어보니 인근 아유마라와 혼인을 해서 피가 섞인 상태였다. 실망.

워낙 철저하게 강간지화가 진행되어 거의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갈대 배 타고 다른 곳으로 간 동안 할 일이 없어, 띄엄띄엄 영어를 할 줄 아는 원주민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태양전지를 발견하고 환호했다. 제대로 사네? 그는 '관광수입'으로 지멘스제 750불 짜리 태양전지를 최근에 장만했다. 저녁이 되어 관광객들이 돌아가면 태양전지로 축전된 전기로 TV를 관람하고 전등을 켰다. 그런 모습을 대낮부터 보여주면 관광산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태양전지 때문에 한 달에 150달러가 날아간다고 한다. 페루의 교사 월급이 2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그는 꽤 잘 사는 편이었다. 날더러 사진 찍겠냐고 묻길래 돈 받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그럼 안 찍는다. 돈 안 받을 테니까 찍어도 좋다. 그래서 그가 즐겨 먹는 물고기 사진과 그의 거친 팔뚝을 찍었다. 그는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에 다소 짜증이 난 상태인 것 같았는데, 자기가 지금 이런 집에서 살고 있지만 집 뒤에는 야마하제 모터를 단 최신식 모터 보트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갈대배만 몰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그래서 엿먹을 전통이나 갈대로 만든 좆 같은 관광 상품은 제껴두고 주로 남들이 재미없어 하는 얘기들을 나눴다. 그가 우로스 섬에 '전통적으로' 앉아 있으면 투어 가이드가 간강객들을 데리고 와 동물원 원숭이처럼 자기들을 보여준 후 여행사가 적당액을 분배해 주는데 그 수입이 변변치 않아서(여행사가 착취) 먹고 살기 위해 물고기도 잡는다고 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니 밭이 없어 농작물을 사와야 할 때가 죽을 맛이란다. 너도 '전통'맛 좀 보겠냐고 위협했다. 오... 노...

전통을 피해 달아났다. 배는 세 시간을 지루하게 달려 아만따니 섬에 닿았다. 원주민 가정 한 가구당 관광객 두 명씩 배정했다. 짝이 없는 나는 일본인 할아버지와 같은 가족을 따라갔다. 할아버지는(오까다 상)은 몸이 불편한데도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오스까라는 그집 아들네미와 마리라는 그집 딸네미와 땀 나도록 놀았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어쩐지 애들 놀이상대로 그 집에 들어간 듯 했다. 마리는 내 다리에 찰싹 붙어 다녔다.

오스까가 가진 재산 일호는 소니 라디오였다. 20솔 짜리 라디오인데 내 gps는 소리가 안 나기 때문에 그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사실 기를 쓰고 5불도 안 되는 그 싸구려 라디오보다 120불이나 하는 내 gps가 더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등 좀 한심한 짓을 했다. gps는 말이야, 아웃도어의 거친 세계를 지향하는 사나이의 첨단 로망이라고... 이 자식 영어를 모른다. 소니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전깃줄이 곳곳에 보이고 방 안에 전구가 있어 전기가 돌아오나 싶었는데 그건 그냥 폼이었다. 우로스 섬과는 달랐다. 집 안을 슬며시 뒤져 보았지만 태양전지나 축전지나 TV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 섬에서 라디오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첨단 미디어 통신기기인 셈이다. 왜 그리 라디오를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겠다.


Isla Amantani

밥 먹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할머니들과 어린 여자애들만 반긴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았다. 이래 가지고야 언제 젊은 원주민 처녀들과 로맨틱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보나 싶어 아쉬웠다.

산꼭대기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석양이다. 빛들은 칼날처럼 구름 사이로 쪼개졌다. 여기가 몇 미터더라... 4100m 되는 것 같다.

그 다음은 별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조금 더 참았다. 저녁을 먹고 사람들이 관광객용 피에스타(파티)에 몰려간 동안 마당에 서서 별을 쳐다 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오카다 상의 손을 끌어 별을 보여 주었다. 그는 감동했다. 말을 잊었다. 3900m의 전깃불이 없는 청명한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수이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믐에서 며칠 안 지났다. 운이 좋다.

한참 후에 오카다 상이 혹시 남십자성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남십자성을 별자리 지도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다. 쉽게 찾았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지금 적도를 넘어 남반구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여름으로 향하고 있지만 여기는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별자리들 중 생소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니까. 아아... pda가 날아가지만 않았어도 밤새도록 덜덜 떨면서 별을 잇는 기쁨을 맛 보았을텐데. 심지어 여긴 전기도 안 들어오는데...

마리가 꽃잎을 잔뜩 들고 방안에 들어왔다. 심심한가 보다. 촛불 아래서 마리의 산수 공부를 지도했다. 내가 경험한 중남미인들은 뺄셈, 특히 돈 계산에 취약하니 그거라도 가르쳐줘야 생활이 보탬이 될꺼라고 생각했다. 밥이 공짜니까 있는 대로 더달라고 해서 계속 먹었다. 일본인 할아버지는 음식이 워낙 더러워서 잘 먹질 못했다. 관광지라더니 내가 묵고 있는 집의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쩔쩔 매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산업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으로 믿는다.

간간이 일본인 할아버지와 얘기했다. 그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진로'를 그리워했다. 일본애들 만나면 의례껏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고 한국음식 매니아였다. 예전에 부산을 방문한 목적도 '본토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라나. 그에게 페루의 전 대통령인 후지모리의 안부를 묻자 좀 당황한 것 같다. 그가 나와 그 가족 사이의 통역 역할을 해 줬다. 고마웠다. 어딘가 모르게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일본 승려와 닮았다. 나보다 꼭 2배 나이가 많다.

밤에는 몹시 추웠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엄두가 안 나 그냥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아줌마가 뜬금 없이 춤추는 거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다 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었다. 어젯밤에 마리랑 춤을 췄는데 걔가 고자질한 것 같다. 어휴...

따말레섬, 주민들이 '전통적인 삶'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가이드의 지리한 설명을 들었다. 미국인들이 원주민 사진을 찍고 돈을 몇 푼 슬쩍 건네주는 모습을 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해 한다. 씁쓸하다.

만족스러운 투어를 끝마치고 픽업을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자기 호텔에 내렸다. 2성, 3성 하는 호텔에 내리는데 나 혼자 여인숙 같은 곳에 내리니까 기분이 좀 묘했다. 다들 저렴한 여행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여행 1주년을 자축하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지나쳤다. 오늘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돈을 펑펑 썼다. 그래봤자 4.7$어치 밖에 안 되었다. 지금까지 먹은 식사 중 가장 비싼 것은 꼬스따 리까의 산 호세 번화가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한 접시에 10$ 가량 하는 파스타였다. 워낙 고가라서 카드로 긁었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 식히는 과정인 것 같다. 잠시 머리 식히자는 것이 어느덧 일 년 째가 되어 머리가 점점 식어 가다가 절대 0도 부근에서 대뇌가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생체자석이 말을 안 들어 고민했다.

주간지 3개, 일간지 6개를 포함해 12개의 사이트를 정기 구독하고 틈틈이 만화책을 다운받아 보았다. 그런지 벌써 3개월쯤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인터넷 사용하면서 blog를 기록하거나 사진을 업로드하는 동안 뉴스와 만화책을 다운 받았다. 1시간 다운 받으면 3시간 정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용량의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값싸고 저렴한 문화생활이다. 그래서 웃겼다.

숙소에 돌아오니 뜨거운 물은 커녕 찬물도 나오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종업원들을 상대로 지랄했다.

여행 중에는 빛나는 승리로 점철된 영웅적인 행각을 이어갈 수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난 좆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노다메처럼 행복했다. 별빛 아래서 꼬마애와 춤도 추고.

띠띠까까 호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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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o

여행기/Peru 2003. 5. 23. 20:59
오늘도 늦잠을 잤다. 차는 11.30am에 출발하는데 일어나니 10.30am. 고양이 세수를 하고 비바 라틴에 들러 가이드북을 전해주고 터미널까지 뛰었다. 데모 때문에 중심가에 택시가 다니지 않는다. 저 빌어먹을 데모는 페루에 도착하면서 부터 줄창나게 보았다. 알고 보니 후지모리가 쫓겨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교사 봉급을 인상해 주기로 하고 안 올려서 교사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기차가 멎은 것도 데모대가 기차 운행 중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꾸스꼬에서 마추 피추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그게 멎었으니 관광객들은 엿 되고 말았다. 그래서 엿된 관광객인 나는 삽질하며 트럭을 타게 된 것이고.

3300m에서 배낭 메고 뛰는 것은 할 짓이 못 된다. 간신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11.30am. 숨을 고르면서 버스 회사에 물어보니 아직 출발하지 않았단다. 버스는 12.30pm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내가 산 10솔 짜리 싸구려 티켓은 자리가 배정된 것이 아니라서 이리 저리 세 번쯤 쫓겨 다니다가 간신히 자리를 얻었다. 여러가지 복합적이고 페루적인 냄새가 나는 자리다. 일층에서 현지인들과 쭈그리고 앉았다. 관광객들은 이층에 있었다. 그래도 10솔에 비즈니스 클래스가 어디냐...

차량 운행을 방해하는 데모대가 없는 춥고 황량한 사막을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펑크가 났다. 해는 이미 졌다. 3800m에서 덜덜 떨며 쭈그리고 앉아 펑크 때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관광객들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담배 한 대 물었다. 멀리 민가의 불빛(장작불이었다)이 보이고 개가 늑대처럼 울고 있었다.

뿌노에 도착하니 8.30pm. 택시를 타야 하나. 두리번 거리니 마침 버스 터미널을 하릴없이 배회하는 삐끼가 있었다.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가 숙소를 권한다. 20솔. 노, 10솔. 숙소는 쉽게 협상이 되었다. 10솔에 욕실 포함된 걸 잡아보긴 처음인데?

그와 15분 쯤 열나게 달려서 숙소에 들어갔다. 날더러 꼬레아가 고산 지대에 있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대꾸했다. 내 나이를 묻는다. 동갑이다. 희안하게도 그가 묻는 에스빠뇰이 귀에 들린다. 왜 묻나 싶더니 난 배낭 매고 뛰는데도 숨 한번 안 헐떡이는데 그 친구는 헉헉거리고 있었다. 무척 신기한가 보다. 꾸스꼬에서 여행자들에게 들어보니 우아나피추를 30분 만에 뛰다시피 기어 올라간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다들 한 시간 걸렸단다. -_-;

숙소를 잡아준 동갑내기 삐끼와 협상해서 띠띠까까 섬 1박 2일 투어를 40솔에 쇼부쳤다. 35솔 정도면 그놈에게도 마진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구워 삶아도 씨알이 안 먹힌다.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바가지 쓴 것 같은 필이 왔다. 그 필링은 정가는 25솔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쩌겠나 시간도 없는데 협상하기도 귀찮고, 어서 투어를 잡아야지. 1-2불에 연연하지 말자. 나중에 정보를 뒤져보니 다른 사람들도 40솔에 잡은 것 같다. 고개를 갸웃 했지만, 맞겠지.

밥 먹으러 나오니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한참 삽질하며 걷는데 누가 뒤에서 갑자기 덮쳤다. 경찰이다. 가방 조심하란다. 고작 그 말 해주려고... 깜짝 놀랬잖아. 주먹이 나갈 뻔 했다. 소매치기나 강도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지만 경찰을 대하면 좀 캥겼다.

아침에 또 늦게 일어났다. 요즘 왜 이러지? 볼리비아 대사관에 들어가니 비서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꼬레아노! 하하하하!! 라고 소리친다. 어이가 없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한국인인 줄 알았지? 알아본 건 둘째치고 대사관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렸지만 이런 괴상한 사무관은 처음 봤다. 여권의 파키스탄 비자 가지고 뭐라 왈가왈부 하지 않는 최초의 사람이다. 20불 은행에 납부하고 영수증을 갖다주었다. 스탬프를 여권 페이지에 찍은 후 은행 영수증을 붙인다. 별 것 아닌 그걸 하는데 10분이 걸렸다.

비자 받으니까 기분이 좋다. 등짝에 햇살을 받으며 광장을 거닐었다. 아레끼빠나 꾸스꼬하고는 분위기가 또 다른 도시다. 그들 도시 보다 더 가난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활기차고 밝다. 광장에서 기분좋게 햇살을 쬐며 구두닦이 소년들과 웃었다.

데모가 한창이라 술렁거리는 거리에서 가판대의 신문을 흘낏 봤다. 꾸스꼬의 데모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꾸스꼬의 광장에 있는 성당 옆에 서 있던 데모진압용 차량을 보았다. 사과탄을 쏜 것 같다. 6월 24일이 페루의 태양 축제라는데(교묘하게 피해가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태양 축제 때 몰릴 관광객들 때문에 정부 쪽에서 강경하게 진압할 것 같다. 돈 되는 그링고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데모하는 교사들의 월급이 700솔이란다. 겨우 200달라.


꾸스꼬 광장 앞의 데모대의 광장 진입을 저지하고 있는 경찰(오른쪽). 왼쪽 구석에 보이는 시위진압 차량. 며칠 후에는 경찰도 파업할 예정이란다.

하루종일 남은 돈이 얼마나 되나 계산했다. 그게 왜 하루종일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루트를 짰다. 시간이 별로 없다.


고산 적응은 잘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코카 잎을 너무 씹은 것 같다. 하루종일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은 까닭은 코카 잎 때문이다. 어제 이리저리 길길이 키아누 리브스 처럼 뛰어 다녔는데도 피곤하지 않은 것도 코카잎 때문이다. 이렇게 효과적인 진통제는 처음 경험해 본다.

self destruct dvd의 불투명한 장래: 한번 보고 버린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환경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좋은 방법이 있는데. 48시간이 지나면 dvd가 쿠키로 변하면 되지 않을까?

정치에는 낭만이 있어야지 -- 김종필이 룸사롱에서 술 먹다가 그렇게 말했다. 왈가왈부를 떠나, 재밌다. 하하하

한국행 항공권 정보:
2003-6-11 1220-1555 UA897 LA-TOKYO
2003-6-12 1900-2130 UA827 TOKYO-INCHEON

이글 보는 사람 중에 혹시나 해서: 마중 나오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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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le

여행기/Peru 2003. 5. 22. 21:14
거리에서 한국인 남녀를 봤다. 버스표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그 한국인 남녀를 다시 봤다. 비바 라틴에서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을 때 한국말이 들렸다. 책을 읽다가 계산을 치르고 나오는데 주인 아저씨가 방금 지나간 여자가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란다. 이 책의 저자를 웹에서 한동안 자주 봤다. 그럼 미키님 인가보죠? 예스. 아까 거리에서 본 여자가 미키님이었구나. 이틀에 걸쳐 비바 라틴 사장님과 미키님 등 유명인사 둘을 다 본 셈이다. 흐뭇하다. 마주 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뻘줌해 질 것 같아서 서둘러 나왔다.

비바 라틴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가난한 배낭 여행자가 밥 한두끼 먹어준다고 사업에 보탬이 될 것 같지는 않고...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중미 가이드북이나 슬며시 놓고 가야지.

"미얀마인들은 Minggala Sutta라는 부처님의 설교집 속에 있는 행복해 질 수 있는 33가지 교시를 통해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이중 마음에 드는 것들만, 바보 같은 친구를 멀리할 것, 술에 취해 이성을 잃지 말 것, 검소할 것, 해탈에 이르는 길을 견지할 것, 공포심을 버릴 것. 팔정도; 정견(正見), 정사유(正思維),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情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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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Cusco

여행기/Peru 2003. 5. 21. 18:59
Machu Picchu photos

Agua Caliente -> Ollantaytambo -> Urbamba -> Cusco

새벽 5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밍기적거리다가 5.30am, 기차는 5.45am에 출발. 짐을 싸고 허겁지겁 달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동네 아줌마들이 깔깔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기차역을 알려준다. 계단에서 한번 엎어졌다. 일으켜준다. 추운 새벽인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기차는 8시쯤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해야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중간에 섰다. 자다 깨서 객실을 살펴보니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러 짐을 짊어지고 나갔다. 기차가 언젠가 가겠지, 여기서 움직이면 돈 낭비고 체력 낭비라니깐 하는 무책임한 희망을 품고 느긋이 객실에 앉아 눈을 붙였다. ...... 합쳐서 두 시간 넘게 지나도 아무 일이 없어 차장에게 물어보니 기차가 언제 출발할지 자기도 모른단다. 멋지군. 하는 수 없이 짐을 들었다.

gps로 찍어보니 목적지인 오얀따이땀보까지는 직선거리로 12km. 고개가 많은 산악이고 고도가 높아 배낭을 메고 도저히 걸어 갈만한 거리는 아니다.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탔다. 합승객이 너무 많아 아비규환이다.

차는 시속 10km의 속도로 비포장 도로를 달려갔다. 마추 피추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왜 도로를 안 만들었을까? 기껏해야 40~50km 구간인데. 대부분의 수입이 정부에 귀속되어 다른 일에 쓰여지던가 아니면 일부 재벌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페루의 IGV라는 부가세 비슷한 세금은 무려 18%나 했다. 도로 건설은 국가 개발 계획의 핵심적인 사업이다. 세금 걷어서 도로를 지을 것이지 빌어먹을 새끼들. 그러고 보니 주요 도로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페루의 관광지를 전전하면서 비까번쩍한 도심의 상가와 페루 농촌의 극단적인 가난이 이루는 대비가 보통 가난한 나라들 수준 이상 임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페루에서 데모가 잦은 것 같다.

트럭은 오얀따이땀보를 4km쯤 남겨두고 섰다. 앞에 데모 행렬이 걸어가면서 도로에 돌을 던져 놓고 있었다. 운전수가 내려 돌을 치운다.

하는 수 없네. 걸어야지. 트럭에서 내릴 때 말썽이 좀 있었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서양 여행객들과 트럭 이용료가 3솔이라고 바가지를 긁는 운전수와 대판 싸움이 붙었다. 대략 10km쯤 달렸으니까 운임은 0.5솔 정도가 적당한데 서양인들은 1솔 이상은 못 주겠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2솔 정도로 타협할 것이다. 나는 그 가격에 절대로 못 탄다. 일부는 달라는 대로 다 준 서양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서양애들이 흥정할 때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같이 덤터기 쓰니까. 나 혼자만 외롭게 0.5솔(신 꿴또~~)을 외치다가 목소리가 묻혀 버려서 트럭에서 내려 운전수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돈 안 내고 그냥 걸었다. 서양애들에게 바가지 씌우느라 바빠서 0.5솔 짜리를 신경쓸 틈도 없을 것이고 내가 0.5솔 짜리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협상해봤자 본전도 못 건질테고... 운전사와 차장이 뻘쭘하게 웃으면서 보내준다. 3솔 낸 녀석들이 내 운임까지 내준 셈이 될 것이다. 나야 그런 일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몇몇은 씩씩거리며 억울하다는 듯이 2솔을 말 그대로 도로에 집어 던지고 나를 따라 걸었다. 앞으로 2km만 걸어가면 된다. 대여섯 명이 걸었다. 미국인 셋, 좀 시건방진 프랑스 여자애 둘. gps를 보고 몇 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상대하기 싫어서 혼자 성큼성큼 걸었다. 그들이 현지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밥맛 떨어져서 그랬다.

기차가 멎자마자 재빨리 튀어나와 먼저 트럭을 타고 도착해서 헤메고 있는 여행자들과 시장통의 북적거림을 뚫고 지나갔다. 데모로 사방이 정신이 없다. 말려야 할 경찰은 박수치면서 데모대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페루의 사정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여기서 꾸스꼬 행은 드물게 한 두 차례 밖에 없다. 우르밤바에서 꾸스꼬 행을 갈아타는 것이 낫다. 꾸스꼬행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허름해 보이는 여행자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 했다. 까탈 안 부리고 따라오면 저렴하게 너희들을 꾸스꼬까지 데려다 줄 수 있지롱. 꾸스꼬행 다이렉트 버스는 5솔이다. 우르밤바까지 1솔, 한 시간 거리. 꾸스꼬까지 3솔, 두 시간 거리. 4솔.

꾸스꼬에 내려 여행자들과 바이바이했다. 푸노 간단다. 고도차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고산증이 벌써 일주일 넘게 괴롭힌다. '비바 라틴'이라는 한국 식당에 들어가 라면을 시켜먹었다. 라틴 여행인가 하는 책을 보니 중남미 코스를 밟은 몇몇 여행자들의 글이 있었다. 비바 라틴 사장님이 한국인이다. 숙소를 같이 하는 것 같아 물어보니 10달러란다. 아! http://www.amigos.co.kr이 여기였구나! 10달러는 좀 비싸서 짐을 지고 숙소를 찾으러 광장으로 향했다.

전에 묵은 숙소도 좋지만 다른 숙소를 찾아보려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숙소가 정말 많다. 15솔 하는 숙소를 30초 만에 10솔로 협상하고 얻었다. 새로 지어 깨끗하다. 하룻 동안 쌓인 피로가 그제사 갑자기 몰려왔다. 밤 열시쯤 컴퓨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었다. 뭘 할까...
마추 피추를 보고 나니 잉카 유적은 좀 그렇다. 더 보고 싶지도 않다.
다 제끼고 그냥 빈둥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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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u Picchu

여행기/Peru 2003. 5. 20. 19:33
gps가 고장났나? 마추 피추에 올라왔다. gps에는 2500m라고 찍혔다. 오얀따이땀보가 3500m니까 그것보다 훨씬 잘난 마추 피추는 4000m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200m를 더 올라가 와나 피추에 이르렀을 때 정상 지석에는 2700m라고 적혀 있었다. 어라? 맞잖아? 학자들이 마추 피추가 경이로운 건축물이라고 게거품을 물었을 때 나는 마추 피추가 최소한 4000m는 되어서 엄청난 노동력을 들여 어렵게 건설한 것으로 믿었다. 2500m라... 약간 실망. 멕시코의 떼오띠우와깐이 중남미 전체를 통털어 최고의 건축인 것 같다... 잉카의 건축가들은 부조나 조각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 단지 벽을 쌓고 집을 지었는데 아파트 건설업자와 뭐가 다른지 누가 설명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마추 피추 입구에서 폐기된 국제학생증의 구멍을 살짝 가리고 내밀었다. 학생할인, 되었다. 만세다.

남들은 120$ 주고 잉카 트레일로 3박 4일 벌벌 떨며 고생해서 와 닿는 곳인데 나는 50$ 들여서 2박 3일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마지막까지 안 걸으려고 버스 타고 마추 피추에 올라갔다. 그 사람들이 잉카 트레일을 트래킹해서(고생해서) 닿았는데 마추 피추가 별로 안 멋있으면 김 새거나 열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마추 피추는 최고다. 이렇게 멋진 계획 도시는 로마 시절에는 흔해 빠진 것이긴 하지만 700m의 깍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세운 건물들과 저 멋지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테라스는 입에서 으윽 하는 감탄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심하게 씹었군.

처음 마추 피추의 테라스를 보았을 때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올랐다. 우연찮게도 작은 광장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야마 몇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음... 유럽 여행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도 웃통을 벗고 선텐을 하고 있었다. 보기 싫다.


마추 피추 전경. 맞은편의 산은 와나 피추.

마추 피추의 사소한 단점들은 몇 안 되었다.

그들은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정교하게 지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탐구욕으로 가득찬 채 건물의 돌을 들어 보았다. 들린다. 밀어 보았다. 밀린다. 욕 먹을까 봐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주위에는 인부들이 돌 틈에 낀 이끼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저 이끼들은 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하여튼, 발로 열나 걷어차면 마추 피추는 무너진다. 이유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얄 패밀리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몇몇 건물들과 성스러워 보이는 것들은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잘 지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종으로 힘을 균등하게 받지 못해서 그렇다. 기초 공사를 어떻게 한 거지? 어떤 일본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마추 피추의 어떤 부분은 한 달에 1cm씩 가라앉고 있단다. 그래서 2002년부터 마추 피추에 하루 입장객 수를 500명으로 제한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마추 피추는 언젠가 그링고 관광객들과 함께 무너져 내릴 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장관일 것 같다.

그 다음은 용도를 알 수 없는 테라스다. 테라스에는 작물을 키울 수가 없다. 농작물을 키우면 테라스가 무너진다. 테라스가 좁아 농작물을 키우면 지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그래서 테라스를 만든 것이 경작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건축물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잉카인의 아크로 폴리스를 지탱하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야마를 키우려고 뿌리가 깊숙히 박히지 않는 풀들이 테라스 에서 자라게 내버려 둔 것 같다. 풀이 자라면 야마들이 풀을 뜯어먹고, 잉카인은 야마를 잡아먹고. 테라스의 또다른 목적은 도시를 잘 은닉하는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밑에서는 테라스 때문에 건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에서는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마추 피추에는 자폐증 왕족들이 살고 있었을까? 어떤 주장에 따르면 선택받은 여자들이 마추 피추에서 살았다고 한다. 유골의 80%가 여성이었다. 소수의 사제와 다수의 여성들이라면 음... 흔한 그림이 나오는군...

마추 피추 유적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게 '과학적'인 부분은 태양석이다. 한눈에 보자마자 알았다. 그런데 그놈에 태양석은 하루 중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눈금이나 파낸 흔적이 없다) 계절의 변화만을 추적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천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장치 같은 것은 없었다. 잉카 문명은 ad 12세기에서 ad 17세기 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에 다른 문명권에서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천문 관측 시설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천문관측의 목적도 아리송하다. 주변에 컬티베이션이 가능한 면적은 강을 따라 지극히 좁았다. 여긴 꼴까 계곡처럼 광대한 경작지가 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잉카인들은 창문을 항상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건축의 기적 중에 하나인 아치를 17세기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은 ad 2세기 무렵 그것을 발견했다. 아마 더 이전에 아치를 알았을 것이다. 가이드라면 왜 그들이 마름모꼴로 창문을 만들었는가 라고 질문한 후, who knows? nobody knows!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연극적으로. 흐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3000년 전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은 완전히 똑같다. 현세의 사람들이 그 당시 사람들이 뭔가를 하나 이룩해 놓았으면 기특하다는 듯이 찬탄을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추 피추의 수로 관계 시설: 로마에 비교할 바는 아닌 것 같고, 위쪽 지방의 떼오띠우아깐 문명의 사우나 시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당시 아랍 문명권은(특히 무굴은) 기압차를 이용하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끌어 올리고 자랑 삼아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잉카는 2단계 수도꼭지를 만들었다. 이거 정말 신기하다.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고 눈으로 보면 재밌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가이드가 시범을 보일 때는 오얀따이땀보의 수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실험해 보니까, 된다.

아무튼 여러 가지 면에서 마추 피추는 최고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 보았다. 잘못 읽었다. 마추 피추는 '남미' 최고의 유적지였다. 으어어어...

마추 피추는 고소 공포증을 유발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분위기가 사뭇 으시시했다. 직접적인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사진들의 입체감이 없는 묘사와는 달리 그 테라스를 걷고(모르타르 안 발랐다. 모서리에서 발 구르다가 추락할 수도 있다) 건물 사이를 돌아 다니면 내가 마치 공중에 뜬 건물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발걸음이 가볍다->시원하다->썰렁하다->으시시하다 순으로 기분이 변했다. 감이 느려서 그런건가...

마추 피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심심해서 와나 피추로 올라갔다. 와나 피추란 마추 피추 사진에 흔히 등장하는 마추 피추보다 약 200미터 높은 모나미 볼펜 끄트머리처럼 생긴 산이다. 올라가는 입구에서 이름을 적었다. 가끔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봐 이름을 적어두고 돌아오면 돌아왔다고 신고하란다. 그렇게 위험한가? 고소 공포증이 거의 없는 편인데도 올라갈 때부터 분위기가 안 좋다. 바위는 미끄럽고 계단은 무너질 것 같았다. 다시 생각나는 것인데, 이 미친 놈들은 모르타르를 안 썼다. 잉카인은 날개라도 달렸단 말인가? 아니면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라도 했나? 최소한 잉카인들에게 고소 공포증은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정신병인 것 같다. 태양과 콘돌의 후손이니까?

빡세게 30분 가량 올라가 마지막 오분은 오체투지로 기다시피해서 정상에 이르렀다. 2500미터라서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무시무시하다. 뭘 하나 굴리면 지엄한 중력 가속도를 충실히 지키며 떨어져 내릴 것 같은 900미터의 깍아지를 듯한 절벽이 눈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와나 피추에서 중력의 사과와 에너지 바를 피지컬한 점심으로 먹고 담배 한대 피운 후 내려왔다. 바람이 안 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상에서 겁에 질렸음에도 겁에 질리지 않은 체 하는 있는 집 페루 자제들과 농담 따먹기를 했다. 어제부터 줄곳 만났는데, 재밌고 밝은 아이들이다.

에너지 바: 트래킹할 때 반드시 지참하라는 식품. 여러 곡물류와 견과류를 살짝 압축해서 만든 과자. 대략 100kcal 정도인데 400kcal라고 믿을 수 없는 사기를 치는 제품도 있다. 적어도 4개를 먹어야 한 끼 식사를 한 정도가 되는데(1솔) 조금 무겁더라도 사과(1kg에 1솔)가 나을 것 같다. 초콜렛바만도 못하다. 신뢰가 안 가는 제품이다. 잉카의 전통적인 어떤 식품은 고단백질이라 우주 비행사들이 먹는다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음료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잉카 사람들은 콘돌이 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들도 날아보자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콘돌 같은 커다란 날개를 만들고 벼랑에서 연습 끝에 드디어 조정에 성공했다. 상승기류를 정복했다. 그들은 당시 잉카의 전통적인 고단백질 음료수를 끼니 때마다 마셨을 것이다.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와나 피추와 마추 피추와 그 아래에 있는 아구아 깔리엔떼 사이를 행 글라이더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잉카 글라이더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들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예술의 방종이 인간성을 망가뜨리고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신석기 시대에 숙지한 다음 모든 과학문명을 폐기하고(글라이더나 바퀴 따위 빛나는 최신 기술) 그것을 기록하는 문자 체계를 없애버린 채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서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들은 황금을 찾아 헤메다니는 스페냐드라는 돌발변수를 예측하지 못했다. 때문에 잉카는 몰살 당하고 현재의 잉카 후손들은 스페인 문화에 거의 동화되거나 흡수되고 심각한 빈부의 격차가 중대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잉카의 후손들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게 된 데에는 거개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지, 잉카 문명이 다른 문명과 교류를 못해 심각하게 정체된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발해와 돈독한 교류를 가졌더라면 글라이더에 바퀴를 달고 양 날개에 화통을 설치하고 몸통에 화약을 달아놓은 콘도르 전폭기를 개발했을 지도 모른다. 수백대의 콘도르 전투기가 푸른 하늘을 뒤덮고 구름 사이를 넘나들며 스페냐드의 무적 함대를 전멸시키는 장쾌한 광경을 상상해 봤다. 상상만 할 수 있어서 아쉽다. 식민 역사란 더럽게 슬프고 구역질나는 것이다.


와나 피추 정상. 매우 스산.

돌아와서 몇 명이나 와나 피추를 올라갔나 봤다. 오늘은 140명 가량. 별로 추천해주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가봤자 전망이 끝내 주게 좋지도 않았다. 원근이 안 잡힌다. 그냥 정력이 남아돌아서 올라갔다 오는 것이지. 마추 피추는 hut of the care taker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가장 멋지다. 엽서 사진에 워낙 많이 등장해서 식상하긴 하지만. hut of care taker에서 draw bridge 쪽으로 좀더 가면 테라스와 도시 윤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발자국이 나 있었다.

마추 피추에서 내려 올 때 버스를 탔다.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에는 노인네들만 탔다. 다른 사람들은 걸었다. -_-; 1m 라도 덜 걸어보자고 하는 짓이긴 하지만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마추 피추가 4000m는 되는 줄 알고 부러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4000m가 어떤 곳이냐. 내리막길에서도 숨이 턱까지 차고 땀이 주르륵 흘러 내리는, 그런 곳이다. 사전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않은 탓이다.

마추 피추에 올라가느라 고생 했으니 이제 온천욕을 즐겨야지. 수영복은 없고 반 바지와 타올을 들고 온천을 찾아갔다. 오오... 단돈 1.5$짜리 노상 온천이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천에는 서너 명의 인디헤나 밖에 없다. 머리에 비를 맞으며 따뜻한 온천 속에서 손가락이 심하게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밍기적 거렸다. 뼈속까지 시원하다... 여독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 같다. 온천은 흙바닥에 사방을 콘크리트로 둘러놓은 단순한 것이었다. 발바닥이 따끈따끈한 것을 보니 밑에서 물이 데워지는 것 같다. 서양애들이 몇몇 들어오려고 해서 재빨리 나왔다. 서양 애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한 공포 내지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들이 탕에 들어오면 물이 더러워 진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며칠 샤워를 안한 내가 더 탕을 더럽혔을텐데...

온천을 끝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자. 식당을 전전했다. 별로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 고르는 건 정말 일이다. 그러다가, 입이 방정이라고... 20솔 하는 식사를 6솔에 해주면 먹겠다고 말했다. 그는 7솔을 불렀다. 맙소사. 식사를 가지고 흥정을 하다니... 그리고 흥정이 되다니! 아무리 everything is negotiable이라고 하지만 식사 가지고 흥정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섰다. 손님이 없다. 비수기니까. 레스토랑 세팅이 럭셔리하다. 괜히 비싸 보이는데 들어온 것 같은데.. 그냥 점심 때처럼 시장통에서 왕창 퍼주는 밥이나 배불리 먹을 껄 그랬나? 그래도 빈티 좀 그만 내고 제대로 먹어보자. 온천에 들어가 모처럼 기분이 개운한데...

송어가 이 지방 특산물이었지. 물이 차갑고 맑은 동네다. 하지만 강원도하고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온두라스 정도라면 강원도와 막상막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옥수수 크림 스프와 송어 튀김과 밥과 감자 튀김과 샐러드와 레몬 쥬스를 시켰다. 감자 튀김은 언제나 plentyful하게 나와서 만족스럽다. 감자의 제국이니까.

스프가 잘 나왔다. 제대로 크림을 얹어왔다. 따뜻하다. 적당한 끈기에 맛이 고소하고 식욕을 돋군다. 식탁 세팅은 약식이지만 제대로 해 놨다. 한켠에 스페인 와인 셀렉션 북이 놓여 있다. 암 그래야지.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메인 디시가 나왔다. 송어 튀김은 뼈를 바르고 양쪽을 저며서 밀가루 옷을 아주 얇게 입혀 튀겨왔다. 모양은 예쁘장하고 그럴듯 한데, 소스가 약간 무겁고 고기 맛이 별로다. 무슨 망할 놈에 양식이라고... 역시 송어는 회를 떠서 회고추장에 퍽퍽 발라 소주와 함께 배불리 먹어야... 샐러드는 약간 미끈거리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먹을만 했다. 레몬 쥬스는 단순히, 신선했다. 레몬 쥬스는 만점이다. 서빙 보는 태도가 나쁘고 와인을 권하지 않았다. 아무리 싸게 '할인'해서 먹는 것이지만 디저트 주문을 안 받아 점수가 많이 깎였다. 난, 젤리를 먹을 생각이었다... 음. 빈티가 나서 그랬나? 뜨내기 손님을 받는 관광지 식당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럭 저럭 맛있게 먹었다. 온천욕 다음에 괜찮은 식사를 한 정도면 까탈 부리지 말고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맨날 식당에서 이 지랄을 하니 여자가 도망가지.

지배인이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계산서를 내밀었다. 나도 약간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계산을 치렀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당근 하뽕(일본)이지. 사요나라, 하고 인사한다. 암, 사요나라지. 마추 피추 마을은 관광지답게 숨이 턱턱 막히는 가격을 제시하고는 했다.

아, 그러나 마추 피추...
오늘 저렴하게 한 관광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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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군데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사서 10불 주고 사서 그중 여섯 군데를 돌았다. 구멍난(폐기된) 학생증을 내밀었지만 25세 이상이라며 할인이 안된단다. 성당 들어가는데 돈을 받는 것에 익숙해 지지 않는다. 중미에서는 즐비하게, 화려한 것들을, 공짜로 봤는데... 남미는 다른가?

꾸스꿰냐,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 중 최고봉에 속한다는 것. 벽돌 이음새에 면도칼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만들었다는 것. 꾸스꼬의 도시 계획을 보니 꾸스꼬의 거리와 건물 배치가 푸마를 닮도록 해 놓았다. 샥샤이후만이 머리에 해당한다면 꾸스꿰냐는 음경 쯤에 위치. 암. 머리만큼 음경은 중요하지. 규모로 보아 그럴게 대단치는 않았다. 그러나 대비는 매우 인상적이다. 몇백 명 안되는 피사로의 부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성당을 지었을 리는 만무하고, 스페냐드 군대의 칼날에 떨었을 잉카인들이 자신의 조상들이 지어놓은 멋진 성을 파괴해서 그 벽돌로 스페냐드식 건물을 지었을 터인데, 그것들과 더러 남아있는 꾸스꿰냐의 기반이 부조화를 이루었다. 형편없이 만든 성당과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만든 성벽이라...

잉카 문명이 지배했던 시기를 살펴보았다. ad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다. 전 세계적으로 그 시절의 건축술을 비교해 보건대, 잉카 건축술이 남다르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돌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 쯤은 할 수 있다. 건물 벽 마다 약간의 경사를 주었는데(0.5도 가량)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놨는지, 이런 건물을 왜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건물을 짓기 전에 일종의 3차원 설계 조감도를 돌로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는 것. 특이하다고 하는 이유는 진흙으로 만들면 간단한데 왜 돌로 만들었나 하는 점이다. 아니면 돌로 만든 것만 남아있는 것이던지. 잘 만든 것들은 아름답다. 부스러기와 윤곽 밖에 남지 않았지만 꾸스꿰냐는 아름다웠다.

까떼드랄에서 사진 찍다가 걸렸다. 부주의했다. 사방에 사진 찍는 것을 감시하는 짭새가 깔려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날더러 여권을 달라고 한다. 어... 지금 없다고 했다. 이건 명백한 절도 행위이므로 경찰에 가자고 한다. 바쁜데 경찰에는 왜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그러면 사진 지우면 될 꺼 아네요. 개중 혼자서 길길이 날뛰는 작자가 있었다. 아아 사진 찍으면 안 되는지 몰랐다. 미안하다. 내가 지우려니까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 염려스러웠던지 자기가 직접 지운다. 성당이 성스럽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걸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찍은 잉카 유물을 찍은 사진은 지우지 않았다. 잉카 유물 찍은 것은 안 지우고 성당의 별볼일 없는 그림들은 지운다? 재산의 값어치를 평가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상황이 안 좋으니 부조리에 항의하지 말고(잉카 유물 사진도 지워야 공평하지 않은가!) 입 다물자. 경찰이 성당 바깥까지 정중하게 안내해 주었다. 다시 말해, 쫓겨났다. 성당 바깥에서는 성당 내부를 찍은 엽서를 버젓이 팔고 있었다. 비웃어야 하는데 민망하기만 하다. 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므로 돌아 다니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까뜨리나 성당에 들어가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관리인에게 들켰다. 굴뚝에 관해 좀 이상한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성당의 역사에 관해 설명해 주려고 했다. 별 관심 없는데... 내 국적을 묻더니 내가 리마에서 왔거나 미국인일 꺼라고 생각했단다. 거짓말. 그래서 그녀에게 시내에 일본 음식점이 있냐고 물었다. 알려준다. 킨 따로 주인은 나를 보더니 대번에 한국인인 줄 알아보았다. 음식이 쥐꼬리만큼 나와 몹시 허전했다. 한국인은 이렇게 먹으면 쓰러진다...

한국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corea house라고 씌여 있었지만 메뉴에는 중국식, 일식, 페루음식들이 뒤죽 박죽 섞여 있었고 심지어 가라오께도 운영하고 있다. 메뉴를 보고 이게 꼬레아노 라면 맞냐고 몇 번을 확인해서 물으니 그렇다면서 가져온 것이 중국식 완탕 스프였다. 어? 아닌데. 신라면 봉투를 들고온다. 바로 그거라고요! 끓여온 라면에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들어가 있다. 어쨋든 라면에 밥 말아 먹으니 좋다. 고기는 건졌다.

구불구불한 꾸스꼬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개중 절반이 레스토랑과 호텔이었다. 해가 질 무렵 산 블라스에서 느적느적 고개 중턱으로 올라가(꾸스꼬의 도시 설계상 푸마의 등 언저리에 해당)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달은 둥글고 선명했다. 달은 광장에 서성이는 레스토랑 삐끼떼와 그링고 그룹 관광객들과 무력하게 앉아 있는 거지들을 자세히 비춰 주었다.

밤에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꾸스꼬에서 경험한 여러 아이러니와 부조리 때문이라고 믿는다. 낮에는 쌀쌀하고 잘 때는 어깨가 시렸다.

디즈니가 48시간 이후면 다시 읽을 수 없도록 스스로 망가지는 self destructing dvd를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산소에 노출되면 dvd가 붉은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해 레이저를 차단한다나. 렌탈 회사에 다시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일회용... 훌륭한 기술이다. 빌려서 48시간 이내에 복사하고 원본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조지 부시가 '조지고 부시는' 사람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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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co -> Urbamba -> Ollantaytambo -> Agua Caliente

마추 픽추를 힘 안 들이고 가장 싸게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꾸스꼬 부근의 전 유적지를 3.5일 만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괜찮은 스케쥴을 '발견'했다. 그것보다 짧은 루트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난 그대로 하지 못한다. 이미 옵티마이징을 할 시기가 지나 버렸다. 꾸스꼬는 페루 관광의 핵심이라 많이들 찾는 곳임에도 최적 루트에 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리마에서부터 만나는 여행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하긴, 내가 지금 가는 코스는 페루 남부 여행 루트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지.

무슨 무슨 협회의 고산병 적응에 관한 몇 가지 주의점을 읽었다.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1. 물을 많이 마실 것.
2. 탄산 음료를 마시지 말 것. <-- 증세를 악화시킴.
3. 기름기 있는 음식을 피할 것.
4. 코카잎이나 코카잎으로 만든 차를 계속 마실 것.
5. 서서히 운동을 해 나갈 것
6.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을 것.

어떤 멕시코 여행자가 가르쳐 준 고산병 적응에 관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달디 단 캔디를 수시로 복용.

오얀따이땀보에서 예기치 못한 수확을 얻었다. 잉카 시절의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저 기차 시간이 남아서 돌아다닌 것 뿐인데... 운이 좋다. 성스러운 계곡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들이 많아 어차피 조용하게 시간 보내기는 글른 곳이었다. 지나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하면서...

페루는 투어를 따라가는 편이 안 그런 것 보다 나아 보인다.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도 아니고. 바예스타스 섬이나, 나스카나, 꼴까 계곡 등은 투어가 아니면 도저히 제대로 볼 방법이 없다. 바예스타스 섬이나, 나스카는 투어가 아니면 아예 갈 방법조차 없다. 꾸스꼬 주변의 잉카 유적도 마찬가지다. 왠간히 공부해 오지 않는 한, 이건 정말 심한 돌덩이들이다. 부조가 전혀 없다. 그래서 추측이나 상상이 매우 어렵다. 유적 형태의 기능적인 분류가 일부분 가능한 정도다. 이 지역을 방문할 때 배낭 여행자들이 늘 그렇듯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추천해 줄 수가 없다. 투어가 낫다. 가이드들 대개가 성실하다. 이런 것을 누가 조언해 줬더라면(아니면 게시판에 올리던가) 페루에서 멍청하게 도시를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텐데...

중남미 쪽은 한국 여행객들이 찾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 같다.

기차를 타니 아구아 깔리엔떼로 가는 배낭 여행자들이 거의 200명 가까이 되었다. 마추 픽추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잉카 트레일은 3박 4일에 140$ 가량 하고 지금 내가 따라온 길은 2박 3일에 50$ 정도 든다. 140$ 가량 들면서 나흘 동안 추위에 벌벌 떨면서 갖은 고생을 하고 마추 픽추를 찾는데, 나처럼 이런저런 트래킹을 많이 해 본 사람에게는 잉카 트레일이 별다른 매력이 없을 것 같다. 여행사를 전전하면서 잉카 트레일의 사진들을 쳐다보다가 안 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을 안 봤으면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사진에는 산뜻한 오솔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떼거지로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음에 안 든다.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해서 오후 3-4시면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고 그 다음에는 밥 먹고 할 일이 없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덜덜 떠는 것 밖에. 으쓱. 돈 더 들여 더 고생 하겠다는 패기가 하나도 안 부럽다. :)

Colca Canyon &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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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quipa to Cusco

여행기/Peru 2003. 5. 17. 19:11
엊그제 바빠서 미처 적지 못한 것들. Colca Canyon tour에 추가할 것들.

함께 투어에 간 일행은 페루에 정착해 살고 있는 미국인 가족 4명(아들, 딸은 페루인) 25$, 캐나다인 2명 20$, 한국인 1마리 18$, 페루 가족 3명 ?$. 캐나다인들과 한국인만 빼고는 모두 에스빠뇰을 할 줄 아는 관계로 스트레스 받게 에스빠뇰로 자세히 설명하다가 영어로 다시 설명한다. 남들 다 웃은 다음에 웃는 기분 아나?

국립공원을 지나갔다. 길은 내내 비포장이었다. 그 옆으로 아스팔트 길을 내고 있었다. 하하, 나는 운이 좋다. 뻑 가게 멋있는 국립공원이다. 특히 당나귀처럼 신음하는 고물 봉고로 비포장에서 먼지 날리며 달려야 제맛이 날 것 같다. 강수량이 연중 40mm에 불과한, 매우 황량한 동네라 정착해 살고 싶은 기분은 영 들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아닌 곳은 종종 멋졌다. 꼴까 계곡과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은 구차하게 주전부리를 떨 것이 아니라 그냥 한가할 때 가서 보면 될 것이다. 자외선이 듬뿍 들어간 햇살로 살균하면서. 구름, 새파란 하늘, 화산, 탁 트인 지평선, 점점이 움직이는 짐승들.


Reserva Nacional Salinas y Aguada Blanca. 앞 산은 El Misti(5822m). 아레뀌빠를 작살냈던 화산. 그 앞에 거의 멸종될 뻔 했던 Vicunya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

적어놓은 가격은 그들이 투어에 지불한 액수다. 가격 탓인지 우리는 각각 다른 숙소에 묵었다. 페루인 가족과 나는 한 숙소에 묵었다. 수준 차이가 현격하게 났다. 캐나다인 둘과 투어 내내 붙어 다녔는데, 별 이유는 없고 에스빠뇰이 물결치는 투어 차량 안에서 우리 셋먼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잉카 문명에 관해 공부할까 하다가 김이 새 버렸다. 그들이 식용으로 사용한 감자의 종류가 2000종이라는 글도 있고 200종이라는 글도 있었다. 헷갈리잖아. 문제는 그게 아니고 그들이 품종 개량을 시도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떻게 수천년 동안 자기들이 재배하는 주요 농작물을 그렇게 방치해 놓을 수 있을까. 시장에서 본 감자들의 종류가 여전히 가지각색이다. 바퀴가 없었다는 것은 이번에는 부차적인 문제다. 수도사 멘델 이전에도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은 인위적인 교배가 품질 개량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꼴까 계곡은 그런 육종학 실험을 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연간 서늘하고 일정한 기온과 풍부한 수량, 비옥한 토질 등등. 어쩌면 그런 이상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 근심 없이 살다보니까... 모르겠다. 나란 놈은 그런 시시한 것에 토라진다.

중간 중간 다른 투어차를 타고 온 일본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걔네들 가이드는 설명을 안 해주었단다. 차를 타고 행선지에 도착하면 사진 찍고 멀뚱히 있다가 다시 이동한다고. 그래서 그들에게 잉카 토착인들의 복식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우리 가이드는 아는 것이 많아서 너무 많은 설명을 해 줬다.

우리 팀 가이드는 머리가 벗겨진 인텔리인데 잉카 제국 얘기를 하다가 아레뀌빠의 식민 역사와(초기 피사로의 정복 기지) 현재의 아레뀌빠에 살고 있는 토착 인디헤나(인디언)의 비참한 삶을 얘기했다. 그들은 요즘 물이 없어 원주민끼리 돈을 걷어 50솔에 물탱크 하나를 산다고 한다. 아레뀌빠 시민들의 자존심 얘기도 줄기차게 늘어놓았다. 아레꿰빠는 식민지에 정복당하여 식민 생활에 젖은 페루인들을 멸시했는데, 먹고 살자니 자기들도 서양인들이 가져온 편리한 서구식 생활에 적응하는 등 전통적 이념과 생활의 불일치가 한동안 골이 깊었다나. 그런데 지진이 싹쓸이를 한 후 사정이 변했단다.

우리 안경을 끼고 머리가 벗겨진 인텔리 가이드는 취미생활로 태권도를 하고 있다. 날더러 한국에서도 태권도가 인기있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것은 태권도 협회의 뿌리깊은 비리 뿐이었다.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종류의 무술과 구기 종목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지 오래되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데이빗(캐나다인)이 나에게 물었다. 넌 그중 뭘 할 줄 아냐? 아무 것도 못해. 몹시 비웃는다. 당황한 나머지 나를 포함한 한국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태권도를 배우고 살인술도 배우고 개나소나 총질을 다 한다고 말했다. 나한테 M16A1 한 자루만 주면 여기 있는 콘돌들을 한 시간 만에 전부 몰살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말 좋은 사격 표적이라고도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몹시 썰렁해졌다. 콘돌이 페루의 국조였던가?

데이빗은 참 대단한 친구다. 한숨도 못자고 지난 밤에 10시간 동안 설사를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투어 팀의 여자들 앞에서 미소를 띄운 채 재롱을 떨며 그들을 즐겁게 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그 정신 만큼은 본받을만 하다.

캐나다인들을 포함한 우리 아웃사이더(떨거지) 셋은 콘돌을 멍하게 쳐다보는 일이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사실 할 일이 없어서) 1200미터짜리 계곡을 내려 가려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무안을 당했다. 하긴 그랬다, 우리는 콘돌이 아니라서 떨어지면 상승기류를 탈 수 없을 것이다.

높이 높이 높이 멀리 멀리 멀리 하지만 우아하고 느긋하게. 9시가 지나자 콘돌들이 사라졌다. 콘돌은 어디로 갔나. 잉카인의 비극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시나 노래 제목으로 어울릴 것 같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그런 얘기를 들어서 지금 기억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머리 인텔리 가이드 아저씨 말처럼 페루인들은 정체성을 잃고 특히나 돈이 한푼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인디헤나의 유아 사망률은 극단적으로 높단다. 페루는 극빈국 중에 하나였다. 잊어먹기 전에 적자. 가이드의 이름은 기예르모다. 그는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전공을 살려 가이드로 삽질하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얘기는, 스페니야드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토지를 약탈당한 사람들이 반군을 만들어 그들과 대항하다가 죽어간 얘기다. 그중 한 명은 잡혀서 사지를 말에 묶어 능지처참을 하려고 했는데 잘 찢어지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목을 잘랐다고 한다. 그 찢어지지 않은 남자를 꾸스꼬의 거리 무랄에서 발견했다. 과떼말라의 가엾은 인디오처럼 술과 마약에 쩔어 길거리에 개처럼 나뒹굴지 말고 잉카의 후손들은 잘 해 나가길 빌어줬다.


돌아오는 길에 치바이에서 데모가 있었다. 선생들이 파업하고 학생들이 그들을 밀어줬다. 선생들 봉급 인상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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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끼빠에서 꾸스꼬까지 12시간 걸리는 버스가 실제로는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편하게 가지고 그나마 침대차를 탄 것인데 이 모양이다. 중간 중간 도로를 점거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때마다 버스가 멎었다. 그때마다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데모를 한 모양이다. 어쩌면 일시를 정해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한 데모인지도 모르겠다. 이 데모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주요 도로 상에 돌을 깔아 차량 통행을 막고 구호를 외친다는 점이다. 투어 이틀하고 20시간 차를 타고 고산병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서 거진 3일째 맛이 간 상태인데 어서 빨리 꾸스꼬에 도착해 발 뻗고 누워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해 도착하자마자 페루 소식을 뒤져봤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다. 대체 이 나라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

버스가 멈춘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벌써 4시간을 기다렸다. 하는 수 없이 지도를 펼치고 gps로 지점을 찍어 대충 위치를 파악했다. 26번 도로와 어떤 도로가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한마디로 교통의 요충지인데 여기서 2시간을 더 가야 꾸스꼬가 나올 것이다. 직선 거리는 98km. 버스 앞으로 수십 대의 차량이, 버스 뒤로 또한 수십 대의 차량이 네 시간째 데모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짐을 버스에서 내려 각개전투를 할 생각이다. 히치라도 해야지 이거야 원.

버스가 움직였다. 다시 선다. 피시식 김이 샌다.

남들이 한 번 쯤은 와 보고 싶어하는 꾸스꼬에 그렇게 간신히, 꾸역꾸역, 돌을 치워가며 도착했다. 데모대는 도로에 깔아 놓은 돌을 치우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하지만 아레끼빠에서 꾸스꼬로 오는 도중에 본 풍경이 오래오래 인상에 남을 것 같다. 엄청나게 커다란 보름달이 평원을 비추는 장관을 넋을 잃고 쳐다 보았다. 잠을 못 잤지만... 아...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정말 운이 좋다.

별 생각 없이 페루에 와서 좋은 것 많이 본다. 멕시코 여행할 때처럼 어리버리 하다가 한 달 보내는 것은 우스울 것 같은 나라다.

꾸스꼬를 페루의 카트만두라고 하던데 도심의 지독한 매연이 카트만두와 정말 똑 같았다. 다른 점? 많다.

고산병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 마떼 데 꼬까(코카잎으로 끓인 차)와 코카잎을 줄기차게 마시고 씹었다. 차 안의 안내양은 내가 시들어 갈 때마다 따뜻한 마떼 데 꼬까를 건네줬다. 아레끼빠 사람들의 친절이 인상에 남는다. 아레끼빠 사람들은 지금까지 만난 페루 사람들과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다른 것 같다.

광장에 있는 INTEJ로 학생증 만들러 가봤다. 만드는 작자가 마추 피추 할인받으려고요? 라고 묻는다. 그런데요? 카드는 만들 수 있지만 꾸스꼬에서는 이 카드로 아무 것도 할인 안 됩니다. 예? 안되요. 예... 안 되는구나. 안 되는데 가지 말까?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랬지.

지쳤다. 만사가 귀찮아서 택시 타고 시내로 들어와 밥부터 먹고 빨래는 론드리에 맡겼다. 수염 안 깍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걸레같은 옷 뿐만 아니라 마음도 남루해졌다. 지금은 그냥 우라늄 235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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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a Canyon

여행기/Peru 2003. 5. 15. 18:26
9am. 투어 시작. 4800m에서 잠시 휴식. 머리가 아파 줄곳 Coca잎을 씹었다. 한번에 10개 이상은 씹지 말란다. 그래서 20개씩 씹었다. 황홀하다.

3.30pm. Chivay 도착. 꼴까 계곡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계곡이 아니다. 하지만 가이드 설명에 초를 치지는 않았다.

펀치 드렁큰 상태로 작은 마을을 좀비처럼 어슬렁거렸다. 고산에 오르면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적응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1.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수가 원래 적다. 빈혈끼가...
2. 운동 부족과 흡연으로 폐활량이 작다. 폐가 망가져서...
3. 대뇌의 산소 소비량이 매우 크다. 머리를 많이 써서...

3항이 유난히 마음에 든다.

고산증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통을 가라 앉히면서 적혈구 숫자가 늘어나길 기다려 보는 수 밖에.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는 관계로(앞으로도 주욱) 내게는 코카잎이 꼭 필요하다. 원츄~

그나저나 4000미터만 넘으면 한결같이 화성같아 보일 꺼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꼴까 계곡 근처는 좀 달랐다. windows xp 초기 바탕화면 같은 곳이었다.

5am. 기상. 아침. 코카잎을 너무 많이 먹어 밤부터 10시간을 줄곳 잤다.
6am. Cruz del Condor 방문.

콘돌이 1200미터 깊이의 계곡 사이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활공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스프링처럼 빙글빙글 돌며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꼬리 날개를 좌우로 비틀어 방향을 조절했다. 갈색의 새끼들은 이곳에서 활공 연습을 한다고...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잉카 전기 시대에 두 종족이 이 꼴까 계곡으로 내려왔는데 하나는 콘헤드고 하나는 플랫헤드였단다. 콘헤드 족은 뾰족한 화산에서 살았고 플랫헤드족은 평평한 분화구가 있는 화산에서 살았는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기 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머리를 모자로 묶어 머리 모양을 완성한단다.

참... 멋진 부족들이다. 피사로가 꾸스꼬에서 산맥을 넘어와 그들을 몰살시켰다. 그래서 콘헤드와 플랫헤드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5.30pm. 아레뀌빠로 돌아왔다. 꾸스꼬행 버스표를 예약했다. 한 시간 후에 꾸스꼬로 떠난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

나스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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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quipa

여행기/Peru 2003. 5. 13. 17:45
Nazca Lines Over Flight tour는 아침 8시에 시작해서 딱 한 시간 만에 끝났다. 공항 픽업, 3인승 경비행기 35분, 다시 시내로. 예쁜 일본 아가씨가 함께 해서 즐겁게 오버했다. 그나저나 너무 일찍 끝나서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Arequipa행 버스는 저녁 8시에 떠난다. 체크아웃한 숙소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세 시간쯤 잤다.

40년 동안 나스카 라인을 연구한 마리아 라이히 Maria Leiche 여사의 주장에 따르면, 나스카 라인은 별자리를 나타낸다. 몽키가 큰곰자리하고 같다나? 그 그림들은 나스카 사람들이 심심해서 그린 것 같다. 왠일인지 학계는 인류 문명과 예술을 발전시켜 온 가장 큰 동인인 '심심함'을 줄곳 무시했다.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다가 시작한 것들.

예술이 죽여주는 점은 처음에는 심심해서 했는데, 하다 보니까 의미와 추상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찍어 놓은 나스카 사진은 맨눈으로 판독이 불가능해 이미징 작업이 필요해서 아직 안 올렸다. 미스테리 스럽지는 않았다. 심심해서 만든 티가 확연히 났다.

라이히 여사는 1998년에 죽었는데 올해는 라이히 여사의 100년째 탄신을 맞아 이런 저런 행사를 일주일 동안 하는 모양이다. 행사, 축제는 가능한 피해 다니는 형편이라 뭘 하는지 관심은 없지만.

LP를 보고 들어간 파스타 집에서 맨 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그게 가장 쌌으니까. 맨 스파게티에 약간의 소금과 후추와 버터 가루만 뿌린 것 임에도 맛있다. 오랫만에 잘 만들고 제대로 삶은 스파게티를 먹어본다.

책 만드는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면 차라리 이 사이트를 화석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읽기나 할까? 재미없고 쓸데없이 긴 여행기로 텍스트의 쓴 맛을 보여주지.

아레뀌빠까지 9시간. 버스는 좋았지만 자기엔 매우 불편했다. 터미널에서 바로 꼴까 계곡으로 가려다가 감기 기운 때문에 하루 쉬기로 했다. 음... 가지 말까? 가봤자 별 것도 없을텐데. 콘돌 몇 마리 보고 1200m 짜리 계곡을 잠시 걸어다니는 것이 전부다. 3-4000미터고, 추울테고, 가면 1-2일 묵어야 할 것이다. 교통이 불편하다.

평생에 한 번 와볼까 말까 한 곳이니 빼먹지 않고 다 가는 여행자와 내가 다른 점은 그런 것에 별 미련이 없다는 점이다. 여행 중 포기를 잘 했다. 귀찮거나 힘들어서.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고, 실패란 바느질할 때나 쓰는 말이다." -- 어느 집의 가훈.

가훈이 왜 저 모양일까. 배추가 없어서 꼴까 계곡 투어를 신청했다. 처음 들어간 여행사에서 가격도 묻지 않고 신청했다. 아줌마가 믿음직스러워서. 18$. 14시간 왕복 교통편, 하룻밤 숙박, 아침식사, 입장료 포함.

'오늘의 메뉴'(Menu del dia)는 리마, 삐스꼬, 나스까를 거치면서 점점 싸지더니 아레뀌빠에서는 2솔(0.5$)에 새우 스프와 오징어 튀김, 샐러드, 밥, 음료수가 나왔다.

페루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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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 Ballestas

여행기/Peru 2003. 5. 12. 14:18
Isla Ballestas 투어 참가. 여행사를 돌며 깎아보려고 애 쓰다가 그냥 40솔 짜리로. 거의 12$ 가량 되는 투어. 차 타고 배 타고 한 시간쯤 섬을 빙빙 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인데 왜 이렇게 비싼가. 추워 죽겠구먼. 펭귄 한 마리, 펠리컨 잔뜩, 그리고 바다 사자의 군락지를 보고 왔다. 바다 사자들이 떼거지로 모여 목청껏 소리지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물개는 컹컹 짖지만 바다 사자는 으르렁거린다. 그 차이다. [바다사자의 울음 소리]


바에스따스 섬 가기 전에 빠라까스 반도에서 깐델라브라라는 이상한 그림을 목격했다. 모터 소리에 파묻혀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모래밭에 그려진 저 그림은 2000년전 것이란다. 황당했다. 내가 잘못 들은건가?

바에스따스 섬에는 투어 외에는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뭐 원하는 장관을 구경했으니 40솔이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차 시간이 남아 시장 구경 하다가 시장통에서 세비체를 먹었다. 멸치(anchovy)와 조갯살, 문어를 잘라 야채와 레몬즙으로 버무려놨다. 거기에 푹 끓인 마 비슷한 식물이 곁들여져 나왔다. 맛있다.

버스를 탔다. 차가운 사막이다.

중남미 오기 전에는 그 나라가 그 나라 같았는데, 바로 옆 나라라도 워낙 다른 것이 많아 마치 동남아시아 인접국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듯 했다. 동남아시아는 잘 지내고 있을까?

5시. 일찌감치 해가 지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반갑게 아우성치는 삐끼들, 10솔을 부르는 삐끼가 있어 미끼를 물은 붕어처럼 나도 모르게 끌려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르는 숙소 가격은 10솔로 한결 같았다. 나스카라인 보려면 항공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담합이라도 한 것인지 40$로 일정했다. 숙소 삐끼 말로는 독점이란다. 삐끼 말은 안 믿는다. 날더로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며(feliz mama dia; good mother day쯤 되겠지. 이젠 그냥 몰라도 찍는다) 가격 다 똑같으니까 어서 계약하고 자길 집에 보내달라며 사정한다. 그를 자리에 앉혀두고 만일 다른 곳도 가격이 다 똑같으면 10분 후에 돌아와서 당신 껄로 해 주겠다고 말하고 거리로 나왔다. 45$ 부르는 도둑놈들 투성이였다. 한 시간쯤 느적느적 돌며 대여섯 군데를 둘러보고 돌아보니 가격이 다 그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물어봤다. 자기들도 다 알아봤단다. 걔들도 40$. 어? 그런가? 숙소로 돌아오니 삐끼가 처량한 표정으로 아직도 앉아 있다. 정성이 갸륵해서 계약했다. 입이 찢어지게 좋아한다.

밥 먹으러 숙소를 나오니 누군가 나를 잡는다. 아까 들렀던 사무실인데 30$에 해달라고 우기다가 영 협상이 안되서 그냥 나온 곳이다. 그가 이제 와서 30$에 해 주겠단다. 한숨이 나왔다. 진작 그럴 것이지. 계약 다 해놓으니까...

짱께집에서 5솔 짜리 식사를 주문, 또 다시 엄청난 양의 접시를 보고 기겁했다. 거기다가 620ml짜리 맥주까지 시켜 놨으니... 맛이 없으면 남기겠지만... 그렇지도 않고... 꾸역꾸역 먹고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갈수록 운동량은 적어지고 식사량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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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co

여행기/Peru 2003. 5. 11. 12:13
날씨가 쌀쌀하다. 날이 흐리다.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위험하다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엘 살바도르에서처럼 나를 주시하는 부랑아의 눈길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저녁 9시가 넘었지만 안전하다. 새벽애는 거리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했다.

귤 1kg가 1솔(345원), 점심 한 끼가 3.5솔(1200원) 가량. 꼬스따 리까나 빠나마보다 싸다. 두 나라는 이해할 수 없이 물가가 비쌌다. 지들이 미국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 나라들 밥값이 비싼 것은 오로지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페루도 후지모리가 대통령 하던 시절에 떼거지로 이민 온 일본인들 때문에 물가가 상당히 오른 편이라고 들었다. 몇몇은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극장에서 x-men 2를 봤다. 마치 서커스 단원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연습한 다음 한 가지씩 묘기를 부리러 나온 것 같았다. 스토리의 밀도가 희박하다. 잘들 놀고 있구나 싶었다. 마그네토의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자비에르 박사에게 그런 대단한 능력이 진즉부터 있었다면 성능이 떨어지는 보통 인간들을 싹쓸이 해 버렸어야 한다. make it so 해 버리라고 피카드. 정신병에 걸린 호머 사피엔스는 6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도가 안 보인다.

방법 개념도를 그렸다. 멕시코에서 손으로 그려 보고 두 번째로 그리는 셈이다. 작전지도를 그리고 나니 루트가 한 눈에 들어왔다. 페루 북부(아마존과 안데스의 고봉)는 제꼈기 때문에 간단해서 좋다. 15일 정도면 관광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리마에서 삐스꼬로 이동. 사막과 해변 한 가운데로 길이 나 있다. pan-america highway. 적도 부근이고 해변 근처인데(따라서 고도가 100m가 채 안되는데) 날씨가 이렇게 차가운 것은 그... 악명 높은 해류의 영향 때문인가? El Nin~o. 에스빠뇰을 아주 조금(little, poco)이나마 이해하기 때문에 니뇨가 작은 사내아이를 뜻하리라고 짐작한다. 엘 니뇨는 7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고(7년 짜리 어린애) 그 다음 해에는 La Nin~a(작은 소녀)가 이어진다. 엘 니뇨와 라 니냐는 말 그대로 집안(페루)의 재앙이다. 엘 니뇨 때문에 사막이 암처럼 자라나는 것 같다. 나일강을 따라 이어진 누비아의 사막이 떠올랐다. 그 사막은 자존심이 있어 보였다.

삐스꼬에 도착하자 시큼한 생선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는데 내 앞에 있는 아저씨가 작성한 카드를 보니 corea del sur(남한)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분이세요? 고개를 끄떡인다. 그 아저씨도 나처럼 사람 만나는 일에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하다. 같은 숙소에 묵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서 다시 만나지 않았다. 피차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인 것 같다.

빠라까스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좀 일찍 도착했더라면 물개가 왕창 있는 국립공원 뒷편에 가 볼 생각이었는데 버스 기사가 이 시간에 가면 별로 안 좋을 꺼라고 말렸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반도를 돌다가 나를 내려준다. 친절하다. 하는 수 없이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다가온 거지와 얘기했다. 그는 삐스꼬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들이 자기를 미친 놈 취급한다고 말한다. 무슨 사고가 나서 삐스꼬에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횡설수설이다. 물개 얘길 하다말고 갑자기 펭귄으로 바뀌었다. 거지가 어떻게 그리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나. 미쳤다고 생각할 밖에. 그와 오랜 시간 옥신각신 하다가 내가 1솔을 동냥하고 그가 리마에서 나를 재워 주기로 합의를 봤다. 펠리컨들이 자기 배인 양 어선에 올라서서 저녁식사로 무슨 생선을 먹을까 골몰한다. 태평양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삐스꼬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세비체를 먹을까 했는데 음... 이 집에는 없네? 아로스 꼰 마리스꼬스. 1.5불로 엄청난 양의 밥과 샐러드가 나와 어안이 벙벙했다. 여러 종류의 어패류가 밥 속에 파묻혀 있다. 페루 사람들은 대식가인가? 며칠 동안 밥 양이 너무 많아 남기기도 뭣하고, 좀 난처했다. 식당을 나와 배가 무거워 펭귄처럼 걸었다.

pc방을 기웃거리다가 마침 컴퓨터를 조립하는 친구가 보여 펭귄처럼 걸어가 windows xp cd를 구워달라고 부탁했다. 12솔. 약 3달라 가량? 비싸게 받아먹는군. 으쓱. 어쩌겠나 아쉬운 사람이 손 벌려야지. 2개월 전 집을 나올 때 빅토리녹스 칼과 xp cd를 두고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얼간이인 것 같다.

원숭이 우리에 컴퓨터를 넣어두고 어떤 글자를 타이핑하나 살펴 보았단다. 원숭이들은 S를 유난히 좋아했다더라. 서칭 엔진의 검색 1위를 차지하는 단어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S로 시작했다. 결론: 인류의 90% 이상은 원숭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

오아시스 도시인 Ica에 가볼까?
내일 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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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able ego

여행기/Peru 2003. 5. 9. 17:41
엘 도라도. 빠나마 시티의 어떤 구역. 빠나마 시티가 줄곳 발전하면서 시 외곽으로 날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가다가 생긴 곳. 내게 전해질 소포가 보관되어 있어야 할 곳. 엘 도라도를 들락거리면서 FlashPlus를 받을 수 있을 꺼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2주 전에 한국의 컴퓨터부품 쇼핑업체를 통해 플래시플러스를 전자결제로 구매하고 지인에게 부탁해 우편으로 파나마로 부쳐달라고 했다. 그동안 줄곳 국경을 넘나들고 있어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하는 것을 잊은 것이 잘못이다.

1. 빠나마 시티에서 우편을 받으려면 지역을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 poste restante 서비스 우체국이 하나가 아니다. 가이드북에서 말한 main post office는 그 자리에 없다.
2. 소포는 관세부과를 심사하므로 플래시플러스를 종이로 싸서 우편봉투에 넣어 부쳐야 한다.
3. 일반 우편 서비스는 3-5일 안에 처리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더 많은 시일이 걸릴 수 있으므로 fedex나 dhl을 사용했어야 한다.

그런데 '부품이 도착하면 그걸 바로 파나마의 이 주소로 부쳐주기 바란다' 라는 SMS 메시지만 달랑 남기고 말았다. 주도면밀하게 계획했더라면 그 부속품을 제때 수신했을 것이다. 왜 주도면밀하지 못했을까. 1항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2항,3항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가이드북만 보고 빠나마에서 영어가 통하리라 짐작하고 만일 수신할 수 없으면 추적이라도 가능하겠지 싶었는데(지정한 곳으로 재전송 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우체국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할머니였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다/안했다/난처해했다. 어떻게 그들에게 복잡한 내용을 에스빠뇰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내 이름은 이러한데 우편을 찾고 싶다. 당신이 안되면 영어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담당자를 불러달라. 아니다. 그건 우편이 아니라 소포다. 소포란 이렇게 생긴 것을 말한다. 그림. 한국에서(그림) 누군가가(그림) 소포를(그림) 나에게(그림) 보냈다(그림). 지금 그 소포는 관세부과 심사(난해한 그림) 중인가. 그렇다면 세관(매우 난해한 그림)은 어디인가. 아니면 다른 우체국(그림을 그린 나조차도 이해가 잘 안가는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가?

2-3일 동안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며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부품값과 운송료 50$과 이틀을 고스란히 허공에 날렸다. 아아... 삽질로 보낸 아까운 내 청춘.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플래시플러스가 없으면 한번 리셋된 pda는 기본적인 기능 밖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읽을 책이 단 한 권도 없는 난처한 상태가 되었다. 요즘은 늘 그런 상태다. 앞으로는 해변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을 골라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재미없는 책이 없으니까 멀뚱멀뚱 있다가 그냥 갑자기 잔다. 요즘 장거리 버스에서 하는 짓이 그렇다. 자기 전과 깬 후가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순탄하고 연속적으로.

그나저나 우편을 집에서 수신하지 않고 poste restante(빠나마에서는 entrega general이라고 불렀다) 서비스로 우체국의 사서함을 통해 받는다는 것이 의외로 낭만적으로 보였다. 오늘 편지가 왔나 우체국을 방문해 안 왔으면 다음날 다시 방문하고... 방문하고... 나들이할 때마다 혹시나 하고 방문하고... 마치 떠나간 님이 보낸 편지가 오늘은 도착하지 않았을까, 저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혹시 내 편지를 지나치고 못본 것은 아닐까 애가 타는 심정으로...

캬...
내가 그랬지.
애가 탔지.

항공권을 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이드북의 페루 페이지조차 들춰보지 않았다. 그대신 스포츠 투데이의 만화와 작문 실력이 출중한 굿데이의 연애란을 낄낄거리며 쳐다보았다. 굿데이를 좆데이라고들 하던데 한국 3류 연애 가십 언론의 꽃 중의 꽃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신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기업으로 넘어간 뒤 매우 한심해졌다는 리마 국제 공항에 내리면 삐끼들이 반겨준다는 말을 들었다. 미라플로레스행 택시를 타면 된다나. 그 와중에 잡음이 좀 있을테지만 평소처럼 인상 쓰고 악 쓰다 보면 별일 없이 순탄하게 풀리는 것 같다.

충전기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동안 사진을 줄곳 찍지 못했다. 충전기 수리를 맡긴 작자에게 디지탈 카메라 수리까지 맡길 껄 그랬나? 어디를 고치면 멀쩡해지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여태 안 고치고 있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사실 사진 찍기 귀찮아서 며칠은 배낭에서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Costa Rica 사진
Panama 사진

서울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어줄까 했는데 오후만 되면 문을 닫았다. 빠나마시티는 조금 색다른 국제도시였다. panamian authentic cousine이 있기나 한건지 의심스러운, 다국적군같은 부페 식단에 익숙해지자마자 떠날 때가 되었다. 생선은 신선하고 스프는 야릇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야채와 돼지고기 비계를 함께 오랫동안 고아 만든 스튜인지 스프인지(그들은 스프라고 한다) 알 수 없는 음식이 특히 그랬다. 비계가 느끼하지 않고 젤라틴처럼 쫄깃하고 맛있다. 고수가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스프맛이 제대로 안 났을 것이다. 싼 음식점임에도(이름 있는 음식점이었지만) 훌륭하다.

-*-

교통체증 때문에 공항까지 가는데 1시간에서 3시간까지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찌감치 일어났다. 한시 반에 자서 다섯시에 일어났다. 씻고 어젯밤 수퍼에서 산 빵과 비스켓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틀 동안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잤다. 스스로가 바보스러웠다. 에어컨을 끄고 자면 되는데. 입김이 서린다.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갔다. 도로 중간에 서서 지나가는 버스를 세웠다. 도로가 엉망이고 버스 정류장 표시는 있으나 마나 였다. 아무나, 아무데서나 세웠다. 이점은 마음에 든다. 공항까지 1시간 30분 걸렸다. 아침인데도 땀에 절었다.

출국 수속할 때 파나마 출국세 20$와 페루 입국세 15$를 내고 나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검문대를 통과하다가 경찰이 라이터 있냐고 묻길래 엉겁결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모처럼 라이터를 담배곽 안에 잘 숨겨놨는데 빼앗겼다. 한번도 뺏긴 적이 없었는데...

비행기가 비구름 위로 날아올랐다. 비행기나 시내버스나 요즘은 그게 그거였다. 멀뚱멀뚱 하다가 잠이 들었다. 가이드북을 뒤적여 페루에 관해 뭣 좀 알아봐야 하는데 정신이 딴데 가 있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출국장으로 나오니 막막하다. atm에서 돈을 찾다가 300솔(대략 90불)을 찾는다는 것이 300달러를 인출했다. atm에 머리를 한 번 박은 다음 추가로 300솔을 인출하고 잔돈을 거스를 겸 인터넷으로 숙소를 뒤져봤지만 없다. 기껏 돈 들여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환율을 점검해보지 않고 일어섰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신이 구름 위로 올라가 있는 걸까. 한숨 한 번 쉬고 출국장을 나왔다.

택시 기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나를 둘러쌌다. 오..예... 정신이 번쩍 난다. 처음 가 보는 곳에서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 힘이 솟고 여행할 맛이 난다. 오늘 한 바보짓을 만회할 기회다. 그들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쏘이 데 꼬레아. 꼬레아 수르. 티코, 꼬레아!(난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남한이라고요. 아저씨들 몰고 있는 티코가 한국제에요.) 티코는 남자라는 뜻도 있었다. 꼬스따 리까인들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티코라고 말했다. 술집에서 술 마시고 껄껄 웃으며 소란을 피우는 그들은 정말 남자스러웠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티코 택시 기사였다. -_-; 그런데 난 돈이 없어서 버스를 탈 꺼에요. 그리고 나서 평소에 잘 짓고 다니는 저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가락질 해서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가르쳐준다. 왜들 이러나. 이러면 안되지. 택시 밖에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야지. 삐끼 교범 1장. 먹이감의 한정된 시야와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고립된 상황을 조장한다.

음. 버스라? 버스는 관두자. 스스로의 바보짓에 의기소침한 나를 행복하게 해준 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인도에서나 하던 경매를 시작했다. 30초도 안 되어 가격이 죽죽 떨어진다. 10불에서 20솔(5.76$)까지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한 아저씨를 집어서 얼마? 라고 물었다. 20! 노! 아저씬 얼마? 15! 그러면 안되지 아저씨. 10 없어요? 10을 부르자 모두들 야유를 던진다. 한 용감한 아저씨가 13을 소리쳤다. 괜찮을 것 같아서 오케이 했다. 열받은 한 아저씨가 10에 해주겠다고 나선다. 뒤에서 다른 기사 아저씨가 찌른다. 저거 10달러야 10달러. 아무래도 10은 무리인가보다. 13이면 3.74$ 가량인데... 제대로 한건가 모르겠다.

가방을 티코 뒷자석에 던지자 차가 출렁거린다. 이제 차에 올라 제 2 라운드를 시작해야지. 아저씨가 중간에 잔대가리를 굴려보려고 한다. 기름값 좀 줘. 푸하하하. 그럴 줄 알았지요. 드리지요 네. 돈을 줬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기름을 넣자마자 잔돈을 그 자리에서 주려고 한다. 어? 사기 쳐야 하는데? 공항 이용료가 택시비에 포함되지 않았다거나 짐값은 별도라거나 톨게이트 통과료를 내야 하고 잔돈 없어서 나중에 준다고 말해야 하는데? 안 그럼 맥 빠지는데? 페루에 관해 여행자들로부터 내가 들은 얘기는 어떻게 실랑이를 벌였고 어떻게 사기를 당하고 어떻게 도둑질을 당했는가 하는 얘기 뿐이었다.

잔돈 계산을 못해 쩔쩔매는 아저씨의 손바닥에서 필요한 만큼 집어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인도에서 배운 것 같다. 좋든 싫든 인도에서 굴러먹은 것 때문에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데도 여행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상황이 손바닥 보듯 늘 뻔하다.

차가 멈추면 시동이 꺼진다. 그래서 신호등 정차 후에는 번번이 시동을 다시 건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그 아저씨와 즐겁게 얘기했다. 페루가 좋아질 것 같다.

미라플로레스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미라플로레스로 안 가기로 했었다. 그래서 시내로 들어왔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좋다. 더 볼 것도 없이 마치 길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번도 안 헤메고 숙소를 잡았다. 싱글 6$. 양쪽 벽에 라파엘 풍의 아도니스(?) 그림이 걸려있는, 그럭저럭 괜찮은 아담한 방이다.


WinHEC 컨퍼런스에서 빌 게이츠가 오버를 좀 한 것 같다. 참가자들은 누군가 빌 게이츠를 해킹해서 새로 프로그래밍한 것 아니냐고 야유를 던졌다. 게이츠가 거진 맥과 비슷한 컨셉(펀 컴퓨팅, 굿 룩스)을 들고 나왔다. 낯설지 않다. 게이츠는 10여년 전부터 맨 머신 인터페이스에 관해서는 종종 이성을 잃곤 했다. 맨 머신 인터페이스와 상관있는 것중에, 무선랜을 이용해서 화장실에서 컴퓨팅을 하도록 만들어보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변비 걸린다고. 마오쩌뚱도 모르나? 천한 것들...

빌 게이츠가 불쌍해 보이는 것은 그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작자임에도(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할 의지와 돈도 있다) 그가 가진 말쑥한 댄디 이미지에 가려져 아무도 그를 제정신이라고 믿어주지 않는데 있다. 솔직히 말해서 컨퍼런스에서 윈도우즈의 보안 따위의 정 떨어지는 얘기를 하면 속으로 짜증이 나지는 않았을까? 그가 보이는 정열은 어쩌면 그가 망쳐놓은 이상적인 컴퓨팅 환경에 대한 원죄 의식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의 방법이 재수없어 보였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10년 전에 일어났어야 했을 인터페이스 혁명을 그가 저승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대로 완수 해 보길 바란다. 인터페이스는 변해야 한다. 컴퓨터와의 인터랙션 속도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점 때문에 늘 짜증이 났다. 이 지긋지긋한 마우스, 이 지긋지긋한 키보드...

blog는 점점 '박진감 넘치는 소설'이 되어가고 있고 앞으로는 점점 더 심해질 것 같다. 이전에는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라에드라는 친구의 글이 블로거들을 바글바글 끓게 했다면 이번에는 이사벨 V.라는 정략결혼에 희생된 어느 여자가 쫓기는 스토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뭐 둘 다 재미가 없어서 안 보지만... 그런 거 말고 NSA 전직 직원이 쓴 콘돌같은 스토리가(사실이건 아니건) 블로그에 등장하는 날을 고대한다. 나를 포함하여, 남들의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는 시시껄렁한 일상에서 잔잔한 감동 따위의 평소 지겨워 하는 종류를 다시 보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 보다는 액션과 모험, 위험과 로맨스, 그리고 하이테크와 죄악이 병존하며 활활 타오르는 블로그가 등장하길 고대했다.

활활 타오르는 블로그라.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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